다잉라이트 집을 확인해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본다

내청춘SS『어쨌든 히키가야 하치만은 유키노시타 하루노의 남친(가짜)에 적합한가』

 ——————————————————————–

 가가가문고 와타리 와타루 저 역시 내 청춘 러브코메디는 잘못됐다 SS

 6권과 7권 사이 이야기입니다.

 예정보다도 길어져버렸습니다. 중간에 지루한 점이 있으면 용서해주시길.

         유이"힛키, 오늘은 평소보다도 눈이 썩었네!? 무슨 일 있어?!"

 방에 들어오자마자 유이가하마 유이가 인사도 대충하고 얼굴을 경직시켰다.

 하치만"…아아, 기분전환으로 옛날 게임을 끄집어냈다가, 그만 푹 빠져버려서. 정신을 차리고보니 철야했다"

 나는 스스로도 알 만큼 탁해진 눈을 유이가하마에게 향한다.
덕분에 수업 내용은 거의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뭐, 그건 오늘에 한한것도 아니지만.

 덧붙여 오늘 유이가하마의 머리형태는 평소와 똑같이 핑크색이 걸린 갈색 머리카락을 경단모양으로 묶어 있지만, 자세히보니 경단 위치가 미묘하게 다른 느낌이 든다.
만약 내가 모르는 공전주기가 있어서, 조금씩 이동하는걸지도 모른다. 뭐야 그거 엄청 무서운데.

 유이"기분전환이라니, 시험전도 아닌데 공부했어?"

 하치만"아니, 만화책 읽다가 질려서 기분전환으로"

 유이"그거 기분전환 아냐…"

 하치만"그보다, 너 일단 같은 반이니까 보통은 방과후가 되기 전이라도 눈치챌거 아냐"

 유이"그치만 쉬는 시간에도 줄곧 혼자서 책상에 엎어져 있었잖아? 말을걸 타이밍이 없다고 할까…"우물쭈물

 하치만"…잘 보고 있구만. "핫, 혹시 너 스토커니? 사회적으로 말살당하고 싶은거니?""

 유이"아, 닮았-……앗, 본인 있잖아?!"

 뒤돌아보니 내 반대측, 창측 자리에 앉은 흑발의 미소녀 ―― 유키노시타 유키노가 어느샌가 나에게 얼음같은 시선을 향하고 있었다.
무심코 부실의 체감온도가 2도 정도 떨어져, 그러는 김에 내 수명도 3년정도 줄어든다. 그러는 김에 줄어드는거냐.

   유키노"어머, 그랬니. 네 눈이 썩어있는건 평소 일이라서 전혀 깨닫지 못했어. 기르는 주인으로서 실격이구나"

 하치만"뭐야 너 언제부터 내 주인이 된거야?" 혹시 네 정체는 인기복면 작가라도 되냐? 가위 같은거 휘두르냐?

 유키노"교육시키지 않은 개를 조교하는건 주인의 역할이지? 안 그러니, 히키가야 견?"생긋

 채찍 같은게 묘하게 어울릴것 같은 엄청 좋은 미소네요. 하지만 나한테 그런 취미는 없으니까. 전력으로 사양할테니까.
거기다 그거 이미 교육이 아니라 학대거든. 누가 동물 애호단체를 불러줘. 아니면 고다이 장군이라던가.

 하지만 나도 그저 묵묵히 듣고만 있는게 아니다. 눈에는 눈을, 이에는 이를, 비아냥에는 비아냥으로 돌려주는게 나의 철칙. 설령 마지막에는 일방적으로 매도당하여 끝나더라도 말이다. 그리고 내게는 궁극의 최종병기가 있다. 예를 들면 그렇다, 엎드려 빌기다.

   하치만"그럼 유키노시타, 네가 나를 길러줄거냐?"

 ―――― 훗, 어때? 이거라면 뭐라 말 못하겠지? 아무튼간에 내 주인을 자청할거면 당연히 그 정도는…

 유키노시타&유이"…에?"

 …어, 어? 뭐야, 그 엄청 미묘한 반응.

 유이"…그, 그건 유키농이 힛키를 기른다는 소리…?"

 유키노"…가, 갑자기 그런 소리를 들어도, 나, 나로서도, 고, 곤란하다고 할까…"///

 하치만"…하? 너희들 대체 무슨 소리를…"

   히라츠카"여어-"드르륵

 아저씨스런 목소리를 내면서 봉사부의 고문, 히라츠카 선생님이 부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덕분에 미묘한 분위기도 운산무소한다.

 유키노"선생님, 부실에 들어올때는 노크를…"

 히라츠카"응? 아아, 그거말이냐? 뭐, 세세한건 신경쓰지 마라"

 여전히 러프하고 프랭크하고 어바웃하고 와일드한 대응이군요. 내가 여자였다면 진짜로 반해버렸을것 같다. 이 선생님, 차라리 성전환하면 바로 결혼할 수 있는거 아냐?

 유이"히, 히라츠카 선생님도 눈 아래에 다크서클이 생겼는데요?"

 히라츠카"'도'? …음, 교사 끼리 어울림이라는거지. 철야 마작이다" 나른하듯 한손으로 입을 덮으면서 하품을 한다. 어이, 이제 방과후라고. 뭐, 남말은 못하지만.

   유이"히라츠카 선생님은 마작도 하나요?"

 히라츠카"음. 이래봬도 '통곡의 시즈카'라고 하면 그런대로 이름이 퍼진 존재다"히라츠카 선생님이 자랑스럽게 가슴을 편다.

 아니아니아니아니 확실히 그 가슴은 자랑스럽다고는 생각하지만, 뭔가 다르지 않아? 그건, 교사 이전에 여성으로서 좀 아니지않아?

 하치만"…그런것만 하고 있으니까 점점 혼기가 늦어지는거 아닙니까?"

 히라츠카"큭…그, 그러는 히키가야도 오늘은 평소보다 눈 썩은게 빛을 발하고 있는 모양이구나. 조만간 여자애가 아니라 파리가 꼬이게 될거다?"

 "하하하…""후후후…"마른 웃음소리가 부실에 덧없게 울려퍼진다. 뭐야 이 완전 어른 대화.

   유키노"규칙 바른 생활을 보내지 않으면 조만간 몸을 망가뜨릴거야"유키노시타가 문고책에 시선을 떨군채로 짐짓 퉁명스럽게 중얼거렸다.

  히라츠카"호오, 유키노시타가 스스로 남 걱정을 하다니 드물구나"

 유키노"아무도 그 남자 따위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히라츠카"그러냐. 나도 히키가야라고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는데"

 유키노"!"///

 그러니까 새빨개져서 나를 노려본들 어쩌라고. 나도 어떤 표정을 지으면 좋을지 곤란해지잖아. 일단 웃으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하치만"…뭐, 나는 그렇다치고. 확실히 너는 오래 살것 같은데"

 인류가 쇠퇴한 후에도 요정 씨들과 함께 평범하게 살것 같다. 뭐야 그거 어디의 조정관이야?

 유키노"히키가야, 그건 무슨 의미니?"

 하치만"…아니, 아무것도 아냐"

 쓸데없는 소리를 하면 안그래도 마모되어가는 내 수명이 더욱 짧아질것 같으니까. 이미 바람 앞의 등불이지만. 누가 생명줄좀 늘려줘.

   히라츠카"아-, 실은 오늘 봉사부에 손님이 올 예정인데…"

 유이"호와와? 손님? …의뢰인이 아닌가요?"

 히라츠카"뭐, 그렇다"

 유키노"'손님'이라고 하는걸로 보아, 역시 외부 사람인가요?"

 히라츠카"음. 부외자는 곤란하다고 했지만, 어떻게선지 총무에 억지로 부탁한 모양이라 말이다"

 히라츠카 선생님치고는 평소와 달리 말 끝을 흐린다. 어쩌면 거북한 사람인걸까.
이 사람이 거북해하다니, 돌머리 교사랑 끈질긴 학년주임 제외하고는 다마구모 캐논이나 아칸비 가라스 밖에 떠오르지 않는데?

 하치만"상당히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군요"

 히라츠카"뭐, 그렇군…너희들도 잘 아는 인물이지만…"

 유이"저희들도 아는 사람…인가요?"

 하치만"부외자이고 선생님이 거북해하고 영향력이 있는데다 우리들이 아는 인물…? 그런가, 알았다! 범인은 집사다!"

 유키노"…네 머리는 언제나 평화로워서 좋구나"

 하치만"이 부활동은 필요 이상으로 살벌하지만 말이다"지금 당장 살인사건이 일어나지 않는게 신기할 정도로.

 물론 범인은 유키노시타고 희생자가 나. 희생자가 범인을 맞추다니 참신한데. 갈릴레오도 깜짝 놀란다고. 살아있는 동안 다잉메시지 남겨놓을까?

 그렇게 말하고나니 부실 문을 누가 노크했다.

   히라츠카"아무래도 온 모양이다…들어와도 좋다"

 "실례합니다-"

 히라츠카 선생님의 허락과 함께 문이 천천히 열린다.

 "아, 있다있어. 히키가야, 얏하로-"

 귀에 친숙하고 밝고 부드러운 목소리. 남자가 꿈꾸는 이상적인 바디 라인. 여신처럼 아름다운 단정한 용모.

 거기에는 강화외골격처럼 철벽의 외면을 둘러싼 미녀로서 봉사부 부장인 유키노시타 유키노의 언니 ―― 유키노시타 하루노가 완벽한 미소를 짓고 서 있었다.

   하치만"하, 하루노 씨?!"

 눈 앞에 나타난 인물의 너무나 뜻밖의 등장에 무심코 그 이름을 말하니, 유키노시타와 유이가하마가 나란히 뚱한 얼굴을 내게 향한다.

 뭔데, 내가 무슨 짓 했냐? 혹시 이름을 부르면 안 됐어? 볼드모드냐?

 유키노"…왜 네가 언니를 가볍게 이름으로 부르는거니?"

 하치만"아? 그야 너랑 같은 성씨고, 둘 다 성씨로 부르면 그거야 말로 헷갈리잖아?"

 유키노"그건 그렇긴 하지만…"유키노시타가 석연치 않은 얼굴로 중얼거린다.

 하루노"어머, 그럼 그 경우, 보다 친한 쪽을 이름으로 부르는게 아닐까. 히키가야, 유키노도 이름으로 불러주는게 어떠니? 분명 기뻐할거야"

 유키노"에?"///

 하치만"하? 이 녀석을? 이름으로? 내가? 왜?" 의미불명이잖아 그거. 오히려 나이프에 찔리겠다.

 그보다 무서워서 이름으로 부를리 없잖아. 긴장해서, 설령 세 글자라고 해도 절대로 깨물을 자신이 있다. 틀림없이, 깨문다. 아니, 무슨 소리 하는거야 나?
그러기는 커녕 부끄러운 나머지 기절해서, 부른 순간 자신의 혀를 깨물어 잘라버릴지도 모른다.
왜 여자애 이름을 부른것 만으로 적에게 사로잡힌 닌자같은 마지막을 맞이해야하는건.

   영문도 모른채 당혹해하는 내 소매가, 꾸욱꾸욱 잡아당겨졌다.

 하치만"아? 뭔데?"뒤돌아보자 유이가하마가 나를 올려다보고 있다.

 유이"히, 힛키, 나, 나도 이름으로 불러도 되…거든…?"///우물쭈물

 하치만"아니, 네 경우엔 애시당초 한 명 밖에 없으니까, 그야말로 이름으로 부를 필요성이 전혀 없잖아?"

 유이"으윽…"

 뭘 뚱해지는거야? 너, 복어야? 혹시 유이가하마가 아니라 복어가하마였어?

 하루노"아-, 그래! 그럼 차라리 히키가야가 나를 '처형'이라고 부르는건 어때?"

 유키노&하치만"!"///

 하치만"…어째선지 그 단어에 불온한 악센트가 포함되어 있는 느낌이 드는데요"움찔

 어때? 가 아니잖아. 얼렁뚱땅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이 사람.

 핫!? 혹시 실은 동생인 코마치를 노리는거야?
나를 자기더러 누나라고 부르게 해서, 점차 코마치를 자신의 동생으로 삼을 생각이었다고 하면. 이 무시무시한 심모원려한 음모안. 제갈공명도 깜짝놀랄 책사다.

 하지만 '코마치의 오빠'라는 칭호는 세계에서 단 한 명, 나 만의 것이다.
설령 상대가 누나라고 해도, 코마치에게 '오빠'라고 불리는 권리는 절대로 양보할 생각은 없다…뭐, 역시 양보되어도 곤란할지도 모르지만. 여자니까.

   유키노"커, 커흠. …그런데 오늘은 대체 무슨 일이야, 언니?"///

 여느때처럼 유키노시타의 목소리는 친언니를 향해서 너무나도 쌀쌀맞게, 가시가 과잉으로 돋친듯한 느낌이 든다.
너 지나치게 가시돋쳤잖아. 밤 가시냐?
만약 이게 츤데레라면, 너무나도 츤츤거려서 데레 성분이 대체 어디 갔냐는 느낌이다.

 하루노"어머, 유키노, 인사해줬구나. 언니가 귀여운 동생을 보러오는건 딱히 이상한 일은 아니잖니?"

 하치만"음음. 그 마음 알지-. 나도 동생인 코마치가 너무 걱정되서, 가능하면 24시간 감시하고 싶어질 정도니까"

 유이"우와아…. 나왔다, 시스콘…"어째선지 유이가하마가 깬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하치만"아아? 동생이 없는 네가 동생을 가진 오빠의 마음을 뭘 알겠냐?"

 유이"힛키의 시스콘이 범죄 수준이라는것 정도는 알아!"

 칫, 이러니까 외동자식은 곤란하다니까. 상식이 없어서.
이런건 아직 그레이 존이다.

 덧붙여 어디의 전○문고의 오빠처럼 동생한테 고백하고, 그런데다 공개 프로포즈까지 해버리는건 노골적인 레드 존.
거기다 그리고나서는 트와일라이트 존에 돌입해버리는건 초보자인 오빠로서는 주의가 필요. 코미케에서 파는 얇고 그거한 책이라던가.

   유키노"언니가 내 걱정을? 있을 수 없어. 이번에는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거야?"유키노시타가 쌀쌀맞게 말한다.

 하루노"히키가야, 지금 들었어-? 유키노도 참 너무해-. 훌쩍훌쩍"

 하치만"하하…" 물론 내 입으로는 사막처럼 마른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웃음이 나온것만으로도 칭찬해줬으면 싶을 정도로. 웃는 하아치이만. 두둥!!!!

 뭐, 이 사람의 경우, 평소 언동이 그거니까 동생이 이러한 태도를 취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이래보여도 문화제 일건의뢰, 동생농의 태도는 부드러워지고 있는 편이다. 이걸로 부드러워지지 않았을 정도니까, 원래는 얼마나 딱딱한 경질이었던 느낌.
됐으니까 누가 이제 이 녀석을 위해 시카쿠이 타이드를 원만하게 하는 문제집 같은걸 만들어줘.

   히라츠카"뭐, 기다려라 유키노시타. 하루노도 이렇게 일부러 학교까지 온거다. 이야기 정도는 들어주는게 어때?"히라츠카 선생님이 수습하듯 끼어든다.

 유키노"서,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하신다면…"유키노시타가 마지못한 느낌으로 끄덕였다.

 하루노"우훗, 시즈카짱, 고마워"

 히라츠카"그 이름으로 부르는건 그만두라고 했을텐데"///

 어째선지 수줍어 하는 히라츠카 선생님.하지만 조금 귀여울지도. 시즈카와이. 나도 불러볼까. 순살당할것 같지만.

 하루노"그치만 오늘은 말야, 실은 유키노가 아니라 히키가야에게 용건이라고 할까, 부탁이 있어서 왔어"

 하치만&유키노&유이"엑?!"

 하치만"…저에게 부탁? 당신이?"어째선지 불길한 예감이 든다. 그보다 오히려 불길한 예감밖에 들지 않는다.

 그거다, 나의 야생의 감이 전력으로 적신호를 키고 있다.
예를 든다면 사육된다면 사축이 되어도 천성적인 본능과 야생의 감을 바보취급해선 안 된다.
내 경우엔 적어도 시험칠때 연필 굴리기와 같은 적중률을 자랑한다. 아니 왠지 미묘한데 그거.

   하치만"…도, 돈이라면 없다고요? 뭣하면 제자리에서 점프해볼까요?"

 하루노"히키가야. 나한테 뭐 오해하는거 아냐?"

 뭐, 확실히 이해하고 있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보다 가능하면 하고 싶지 않다. 여성불신이 걸릴것 같으니. 아니 그 이전에 나, 인간불신인데.

 유키노"히키가야한테 돈을 빌리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안심하렴. 네 지갑 사정은 불을 보듯 뻔한걸"유키노시타가 한숨 쉬며 중얼거린다.

 하치만"왜 네가 내 지갑 사정까지 파악하는거야?!"불을보듯 뻔하다니, 실은 이미 불났지만 말이죠. 안됐습니다. 내가.

 유키노"어머, 그치만 언제나 말붙일때마다 돈이 없어, 돈이 없어라고 하잖니?"

 하치만"어? 진짜? 나, 그런 말 했어?"

 유키노"네 경우, 일부러 말하지 않아도 제대로 얼굴에 쓰여 있단다?"

 하치만"내 얼굴은 트위터 아니거든"

 유키노"당연해. 왜냐면 네 얼굴은 팔로우 할 수가 없는걸"

 하치만"그렇게 말할 생각이었냐!?"

 유키노"적당히 용돈 관리 정도는 제대로 해두지 않으면, 장래에 빚에 몸을 망치게 될거야.
  너처럼 계획성 없는 남자에게 돈을 빌려줄만한 기특한 사람이 있다면 하는 얘기지만"

 응, 하치만 알아. 이용은 계획적으로, 소비자 금융도 밝은 가족도 말하니까.

   하루노"어머, 그럼 장래는 유키노가 돌봐주면 되는거 아니야? 금전면에 한하지 말고 여러가지로, 응?"

 유키노"뭣?"///

 하치만"싫어…그것만큼은 싫어"

 분명 재형저축이니 생명보험이니 내 수패에는 참새 눈물 만큼 밖에 남지 않는다.
점심값도 코인 하나로, 그러면서 나는 그늘에서 엄마 친구와 호화 런치할게 틀림없다. 뭐야 그거 너무 구체적인데. 대체 누구의 이야기야.

 유키노"이 남자에게 빌려줄 돈은 1엔도 없어. 그럴거면 시궁창에 버리는 편이 훨씬 나아"

 하치만"아니, 시궁창이 버릴바에야 은혜받지 못한 사람한테 기부해주라고. 그렇구만, 예를 들면 나라던가. 나라던가, 엄청 은혜받지 못했다고, 특히 친구한테"

 유키노"네 경우, 은혜받고 자시고 이전에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친구라고 부를 사람이 없는것 뿐이잖니?"

 유이"…마지막까지 없구나"

 하치만"그보다, 너한테 돈을 빌리게 되면 어지간한 뒷돈보다도 상당히 이자가 붙을것 같은데"

 땅끝까지 쫓아오는데다, 지불 못하면 내장판매라던가 할지도 모른다.
폐나 신장이라면 둘 있으니까 괜찮지, 라던가. 전혀 괜찮지 않거든. 빚반제를 위해 장기판매로 내 몸에서 장기가 바이바이 해버릴것 같은데.

 유키노"너야말로, 빌린 은혜를 10배로 갚아줄것 같구나………원수로"

 뭐야 그거 어디의 버블 조냐.

   하루노"어머머, 여전히 사이 좋구나-. 언니가 허락할테니까 차라리 얼른 사귀는게 어떠니?"

 유이"엑?!"

 유키노"그, 그러니까"///

 하치만"아니라고요"///

 왜 그렇게 되는거야. 눈이 썩은거 아냐? 아, 그건 나였습니다.

 하치만"아-…,그래서 돈이 아니면, 저한테 부탁할거라는건 대체 뭡니까?"

 그다지 심장에 좋을것 같지는 않지만 일단 물어본다.
애시당초 이 사람이 내게 부탁이라니 짐작도 가지 않는다. 동생 관련이 아니라면, 역시 억측해버리는건 어쩔 수 없잖아.

 하루노"아, 맞다맞아!"생각났다는듯 가슴 앞에서 손을 탁 친다.

 자신의 매력을 충분히 이해하는 만큼, 귀여운 몸짓이 도리어 약삭빠르다는 느낌도 들지만, 잘 어울리니까 곤란하다.아니, 딱히 내가 곤란할 필요는 없지만.

 하루노"히키가야, 갑자기 난데없기는 하지만, 내 남친이 되어주지 않겠니?"

   유키노"엣?!"

 유이"헷?!"

 하치만"하앗?!"

 미소지은채로, 또 대수롭지 않게 터무니 없는 소리를 하셨다.

 하루노"…라고는 해도 하루만 해줘도 괜찮은데"

 하치만"무…"

 유키노"무슨 소리야?"

 아니, 그거 내 대산데.

 하치만"다…"

 유키노"당연히 이유를 설명해주겠지?"

 그러니까 그거 내 대사지? 왜 네가 먼저 말하는건데? 멋대로 선수치지마. 카루타 퀸이냐?

 하루노"어머, 왜 그런것까지 유키노에게 설명할 필요가 있을가. 혹시…질투하는거야?"

 유키노"바, 바보같아. 여기는 봉사부 부실이고, 히키가야는 봉사부 부원이니까 봉사부 부장인 내가 알 권리는 충분히 있다고 생각하는데"///

 뭐, 바보같다는건 나도 같은 의견이지만, 봉사부 봉사부라고 무척이나 봉사부를 강조하는데, 이거 봉사부 활동하고 관계 있는거냐.

 힐끔 히라츠카 선생님을 본다…네, 신경 안 쓰는군요. 알고 있었지만요. 멋대로 내가 지참한 만화책 읽지 말라고요.

   하루노"만약 그렇다면 내가 히키가야에게 개인적으로 부탁하면 봉사부하고도 유키노하고도 관계없는일이 되는걸까?"

 유키노"읏!"///

 정론…이군. 하지만 왜 또 이 사람은 굳이 자신의 동생을 도발하는 말투를 쓰는걸까.
문화제 사건으로 조금은 다가가려고 보였다고 생각했지만, 아냐? 혹시 너무 다가가버려서 그대로 어긋나버렸다거나?

 눈에서 불꽃이라도 튀길듯한 기세로 노려본다. 어느 의미로 대극이라고 할 수 있는 둘이지만, 역시 자매인만큼 이런 점은 많이 닮았다.
하지만 너희들, 그런건 집에 가고나서 해주지 않겠어?

 하치만"아-, 오늘 MAX 커피는 또 특별히 맛있지-"

 유이"힛키, 현실을 봐…"

 하치만"현실을 보고 있기 때문에, 참을 수 없어져서 도피한거라고"

 도피나 도망이나 도주나, 도망치는거 완전 특기. 문제는 도망친 뒤의 일이지만, 그건 또 다른 문제니까.
일단 당면한 문제가 일시적으로 회피할 수 있으면 그걸로 충분하겠지.
아무해결도 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대개는 시간이나 주변 사람이 어떻게든 해줄거라 생각한다. 아마.
어느정도 식은 후에, 대수롭지 않은 얼굴로 돌아오면 완전히 OK. 돌아올 장소가 아직 남아있다면 하는 이야기지만.

 하루노&유키노"어떠니, 히키가야?!"

 하치만"어? 나?"어라, 그러고보니 나였지.

 줄곧 모기장 밖 취급 당해서 깜빡했지. 그러는 김에 이 사람들도 까먹고 그대로 돌아가주지 않을까 옅은 기대를 했었지만 역시 무리였나.
오히려 내가 먼저 돌아갔어야 했어.

 하지만 누구야 이런 트러블을 데려온거? 그러니까 히라츠카 선생님. 내 만화책 보지 말고 뭐라 말을 해요.

   하치만"…일단 저도 알 수 있도록 사정을 설명해주시겠습니까?"

 아무래도 세심한 문제인것 같아서, 지장없도록 말한다.
여러모로 지장이 생기거나 건드리기라도 하면 곤란한 부분도 있으니까. 특히 여성의 경우. 이제 대화에도 여성전용 차량 같은게 도입되어야겠지.

 하루노"후우, 뭐, 됐나. 실은 말야, 나 어떤 자산가의 아드님한테 정식으로 결혼을 전제로 한 교제가 들어왔어"

 유키노"엣?"

 유이"후왓?"

 하치만"…굉장한데"

 히라츠카"?!"움찔

 삼인삼색 놀라는 한편, 약 한명. 귀를 쫑긋 세우면서 듣지 않는 척을 하던 사람도 있지만…. 흥미가 있으면 지금부터라도 대화에 끼어도 된다고요?

 하루노"흐흥. 뭐어-" 이거 보라는 듯이 푹신해보이는 가슴을 편다.

 그러니까 말이죠, 제가 생각하건데 그런 태도가 말이죠, 동생농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게 아닐까 생각한다고요.
혹시 알면서 하는거 아닙니까?
거 봐, 유키노시타가 뚱해졌잖아. 파이팅이다, 동생농. 인생은 포기하면 패배라고? 우유라던가 마시면 좋은 모양이던데?

   하치만"…하지만 당신에게 결혼을 제안할만한 배짱있는 남자가 정말로 있군요…세상 참 넓구만"끄덕

 하루노"응? 어떠려나-? 그 발언 뒤에는 뭔가 다른 의미가 담겨있는것 처럼 들리는데?"생긋

 하치만"아뇨…딱히"그러니까 그 미소가 무섭다니까요. 뭐냐고 이 자매. 미소 지은채로 살○ 당하는거야? 다른 교사의 암살교실이야?

 하루노"하지만 나도 아직 하고 싶은 일이 있고, 이 나이에 벌써 장래 일까지 정해버리는건 좀 아니라 생각해"

 하치만"…하고 싶은 일이라니, 혹시 정계출진같은거 생각하는겁니까?"

 하루노"싫다 참! 히키가야도 참, 농담만 하네!"

 어이어이어이어이어이어이어이어이어이어이어이어이 눈이 웃지 않는다고요. 진짜인거냐, 어이.
덧붙여 영어로 하자면 oi! 이렇게까지 어이 연발하는거, 펑크 밴드 정도 밖에 모른다고. 가운데 손가락 세운다?

 하루노"그러니까 나로서는 가능한 모나지 않도록 잘 거절하고 싶어"

 그럼 그 전에 동생을 상대로 모나게 하지 마요. 가는곳마다 모난 미로는 물론 미궁같은 느낌이 되었다고. 최심부 레벨99 라스보스도 길을 잃을것 같다. 히스클리프라던가. 게다가 그 반동이 이쪽으로 와서 큰일이라고.

    하치만"…그래서, 그게 저랑 무슨 관계가 있는겁니까?"

 하루노"그게 말야, 순간 '좋아하는 사람 있거든요' 라고 거절했는데…"

 펄떡

 부실에 책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히라츠카"거, 거절 했다…라고?" 히라츠카 선생님이 믿을 수 없는걸 보는 듯한 눈으로 하루노 씨를 응시하면서 경악하며 중얼거린다.

 역시 듣고 있었군요. 그보다 그거 제 만화책이라니까요. 남의 물건은 좀더 조심스레 쓰라고 학교에서 안 배웠습니까.

   하루노"그 때, 그만 히키가야의 이름을 말해버렸어"

 하치만&유키노&유이"엑?!"

 유키노"언니, 그건 대체…"

 하치만"뭐, 잠깐만"나는 한손으로 유키노시타를 제…

 유키노"무슨 생각이야?!"…아니 듣질 않고.

 그렇지요-. 제가 유키노시타를 제어할리 없지요-.
이 녀석, 언니가 관련된 일이면 냉정하게 대응 못하니까. 언제나 쿨 뷰티한 유키노 씨는 어디간거야.
그보다 평소 나를 대하는 태도가 헤뷔 더티하잖아.

 하치만"당신 정도의 재각이 있다면, 달리 어떻게서든 빠져나갈 수 있을텐데, 왜 또 하필이면 그런 뻔히 들킬만한 거짓말을 한겁니까?"

 하루노"어머, 거짓말이 아니야. 나, 히키가야를 좋아하는건 사실이고"

 유키노&유이"!"

 하치만"…뭐, 좋아하는데도 여러가지로 있으니까요"

 과거에 온갖 착각을 펼쳐온 내가 새삼 그런 초보적인 낚시에 낚일까보냐.
중학교때도 여자들 사이에서 나한테 고백하는 벌게임이 유행했을 정도고…아니, 나 잘도 지금까지 자○하지 않았구만. 나도 참 감탄한다.

   하루노"흐-응, 의외로 반응이 옅네. 만약 여자애한테 좋아한다고 들으면, 그럴때는 좀 더 기뻐해줘도 되지 않니?"

 하루노 씨가 재미없다는 얼굴을 하는 반면,

 유키노"과연. 역시 겉멋으로 눈이 썩은건 아니라는거구나"유키노시타가 감탄했다는 듯이 끄덕인다.

 하치만"뭐야 그거 혹시 칭찬하는거냐?"

 유키노"어머, 최상급의 칭찬인데? 언니한테 좋아한다고 들어놓고서 기뻐하지 않는 남자는 처음 봤어…설령 그게 사회인사라고 알고 있어도"

 하치만"바보냐 너. '좋아해'나 '사랑해' 같은 말을 하나하나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아주 기어올라서 매달려버리잖냐, 내가 코마치한테"

 유이"앗, 역시 시스콘이다?!"

 하치만"시스콘이 아니지? 나는 필요이상으로 동생을 사랑하는것 뿐이다"

 유키노"…그걸 세간 일반적으로는 시스콘이라고 하는거야"유키노시타가 기막힌듯 한숨을 쉰다.

 응, 뭐, 그렇다고도 할 지 모르지. 요즘은.

   하루노"그치만 히키가야, 그래선 여차할때 여자애의 OK사인을 놓쳐버린다?"

 하치만"훗, 좋습니다. 만약 그럴 기회가 있다면 부디 보고 싶네요"뭣하면 혈안이 되서 찾아보기까지 한다.

 유이"말은 멋진데, 그 자신감이 너무 슬퍼…"

 오히려 내가 여자애한테 고백했을때 KO당하지 않도록, 누군가 수건을 투입해야한다. 펀치 드링커가 되버리면 어쩌자는거야. 더는 재기불능이잖아. 덧붙여 지금 전적은 올 KO승으로 무패. 상대가.

 하루노"어머나, 꽤나 강하구나"하루노 씨가 즐거운듯이 미소짓는다. 그저, 쥐를 앞에 둔 고양이가 짓는 듯한 위험한 미소다.

 애시당초 외톨이는 남의 호오 감정의 울타리 밖에 있는 존재니까. 타인에게 영향을 주지 않고, 또 자신도 영향을 받지 않는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이른바 무연의 경지.
그런 내가 새삼 연상의 여성에게 좋아한다고 들은 정도로 동요할리가할리 없다…어라? 혹시 나 지금 동요했어?

 유키노"그래서 히키가야보고 언니의 남자친구인 척을 하라는건 무슨 소리야?"

 하루노"내가 히키가야의 이야기를 했더니, 그 사람이 무슨 일이 있어도 한번 보고 싶다고 했어"

 질린다는 얼굴을 하는 점을 보건데, 상대가 상당히 집요했을 것이다. 끈질긴 남자는 대개 미움산다. 딱히 끈질기지 않아도 미움살때는 미움사지만. 출처는 물론 나. 뭐야 그거 엄청 슬픈데.

    하루노"그래서 미안하긴 하지만, 하루만이라도 히키가야에게 남자친구 역할을 부탁할 수 없을까 하는거야"

 하치만"과연, 사정은 잘 알았습니다. 하지만…"애시당초 왜 난데? 그걸 잘 모르겠다.

 유키노"그거라면 언니의 남아도는 인맥을 살려서 좀더 적합한 남성을 남친 역으로 세우면 되는거 아니야?"

 하치만"뭐…그렇지?" 괴로운 나머지 했다고 해도 사람 선택이 이상하잖아. 미스 캐스팅 수준이 아니야. 혈통을 넘어선 선데 사일런스나 노스플라이트까지 하다.

 하루노"그래? 예를 들면?"

 하루노 씨는 동요하지도 않고, 반대로 되물었다. 뭐야 그 여유?
여기는 그녀에게 있어 어떤 의미로 적지인데, 마치 자신의 집처럼 차분하게 보인다. 연상의 관록이라는건가?
교실 구석에 주눅들어있는 어느 선생님하고는 굉장히 차이가 있다. 됐으니까 내 만화책 내놔요. 그리고 부탁이니까 누가 신부로 받아가줘. 슬프기 짝이 없잖아. 보고 있는 쪽이.

 유키노"그렇구나, 하야마라면 어떨까. 그라면 적임이라고 생각하는데"

 유이"하야토라. 아, 그거 좋을지도!"무심코 "좋네!" 단추를 누를듯한 기세로 유이가하마가 찬동한다. 찬성표 2표. 동의적 지지.

 과연, 확실히 하야마라면 무슨 일이든 대수롭지 않게 해치울것 같다. 확실히 집안 관련있다고 들었으니, 그 점으로는 아무 지장도 없을 것이다.
산뜻하고 잘생겼고 사교적이고, 그야말로 상남자의 원한을 사고 폭발해도 부끄럽지 않을 정도의 리얼충도이다. 아니, 폭발하는거냐, 어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 정도가 하루노 씨가 생각 못할리가 없다. 분명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다. 하야마한테 있고 나한테 없는것…유일하게 내가 하야마보다 뛰어난 점이 있다고 하면, 역시 그건 귀여운 동생이 있는 정도일까. 진짜 압도적인 대승리. 틀림없다.

   하루노"하야토…라. 그것도 생각은 했지만, 이번 경우엔 그렇게는 안 돼"드물게도 하루노 씨의 얼굴이 흐려진다.

 유키노"무슨 소리야?"

 하루노"실은, 상대는 그 이와시미즈 씨야"

 유키노"이와시미즈 씨라면, 그 이와시미즈 콘셰른의 이와시미즈 시즈오 씨?!"

 유이"후에?…콘체르?"

 유키노시타와 유이가하마가 동시에 놀란 목소리를 낸다. 유이가하마의 경우엔 아마 의미를 잘 모르는거다.
문자면으로서 치바역 서구의 서서 먹는 국수 가게랑 착각하는것 같은 느낌도 들지만, 거기는 굳이 방치. 왜냐면 착각시켜두는 편이 재미있으니까.
덧붙여 그건 잇○웰이다.

   하지만 이와시미즈 콘셰른인가…일개 고등학생인 나도 이와시미즈의 이름 정도는 알고 있다.

 확실히 제 1차 세계대전의 불황으로 경제위기에 빠진 이와시미즈 재벌을 이은 걸물. 이와시미즈 시즈미로 인해 재건되었다고 하는 기업 그룹이다.
방목을 되풀이하여 그룹 경영을 기울인 장남. 차남을 중구에서 실각시켜, 기업재건할때 상당한 솜씨를 휘둘렀다고 들었다.

 석유, 천연가스, 철강, 전자부품에서 의류, 식료품에 이르기까지 폭 넓게 손을 벌려 경제면은 물론, 정계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모양이다.

 그 이와시미즈의 이름을 자청한 이상, 필시 하루노 씨의 구혼자라는것도 이와시미즈의 본가나, 적어도 친척쯤 될 것이다.
어쨌든 초가 붙을 만큼 부자라는건 거의 틀림없다.

   하루노"맞아. 하야토의 아버지도 일 관계로 알고 있으니까, 그는 좀 그래"

 유키노"그래…나는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이와시미즈 씨라면 여러모로 이야기는 들었어…"

 하루노"그럼 유키노도 사태의 중대함을 알겠지?"

 유키노"…그렇구나"드물게도 유키노시타의 말이 막힌다. 어지간히도 분했을 것이다. 입술을 깨물고 있다.

 하치만"상대가 상대인 만큼, 이후 일도 생각해서, 가능한 심증을 나쁘게 하고 싶지 않다…라는 겁니까"

 아무래도 내가 생각했던것 이상으로 세심한 문제인 모양이다.

 하루노"그래. 과연 히키가야. 고등학생답지 않은 혜안이네"

 하치만"자주 듣습니다…………눈이 썩었다고"주로 당신의 동생한테 말이지만요.

 유키노"그렇다고해서 아무리…"

 하루노"그렇기때문에 그런거야. 차라리 전혀 면식이 없는 히키가야라면 되지 않을까, 그만 이름을 꺼내버렸는데…"

 유키노"저, 정말로 이유는 그것 뿐이야?"

 하루노"어머, 뭘 걱정하는거니? 아무리 나여도 그렇지 동생의 것을 가로챌 만큼 악취미는 아니란다?"

 유키노"따, 딱히 내거라는건…"///

 하치만"어이, 아까부터 애완견 취급하던건 어디의 누구야?"

 유이"…힛키는 상당히 오래 품는 타입이구나"

 하치만"그런건 아니다. 절대용서 노트는 아직 3권째고"

 유이"3권이나 있구나…"

   유키노"확실히 아무리 그래도 언니의 취미가 그렇게까지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유키노시타가 복잡한 얼굴로 나를 본다.

 아니 복잡한건 오히려 나잖아. 본인이 눈 앞에 있으니까, 그 부분은 좀 더 배려해서 오브라이트로 오던가 대화를 하라고.

 하치만"그보다, 단순히 면식이 없는것 뿐이라면 딱히 제가 아니라도 되잖습니까. 그렇네요, 예를 들면 자이모쿠자라던가?"

 유이"엣, 중2?!"

 유키노"…히키가야. 이건 진지한 이야긴데"

 하치만"그 녀석의 존재는 그렇게나 진지하지 않냐?"

 유키노"어머, 아니니?"유키노시타가 바로 되물었다. 그러니까 귀엽게 고개를 갸웃거리지 말라고.

 하치만"…대충 맞지"

 유이"맞구나?!"

 하치만"뭐, 기다려라 유이가하마. 나는 그 녀석의 존재 자체를 전면 부정하는건 아니야"

 유이"그, 그런거야?"

 하치만"긍정할 수 있는 부분이 거의 없다고 하는것 뿐이다"

 유이"그거 의미 같잖아?!"

 하치만"그럼 너, 자이모쿠자의 장점 말해봐"

 유이"그건……………그게………아-…………미안. 내가 잘못했…을지도?"

 자이모쿠자 순살이구만. 망설이지 말고 성불해라. 같은 외톨이의 정분으로 뼈는 내가 주워주마.

   유키노"됐어, 유이가하마. 자이모쿠자든 히키가야든 분명 남들은 이해못할 부분에서 세상의 도움이 되는 점이 있을지도 모르잖니?"유키노시타가 유이가하마를 다정하게 도와준다.

 유이"유키농…"///

 나왔다, 백합유리. 유리노시타 유리노와 유리가하마 유리. 거기 언니. 당신의 동생이 공중의 면전에서 백합행위에 빠지고 있다고요? 뭐라 말해주는게 어때요?

 유키노"…예를 들면, 그래. 죽으면 밭의 비료가 된다거나"

 유이"그거 죽지 않는한 세상에 도움 안된다는 소리지?!"

 하치만"게다가 아무렇지 않게 나도 같은 취급이냐…"백합은 백합이더라도 유키노시타의 경우엔 흑백합이구나. 꽃말은 '저주'였던가?

 하루노"자이모쿠자는, 얼마전 문화제 뒤풀이때 만났던, 그 재미있는 애?"

 하치만"그걸 재미있다고 말하는 당신은 솔직히 존경할 수 있습니다"덧붙여 머리 속은 좀 더 재미있다. 오히려 너무 재미있어서 반대로 웃을 수 없는 것이다.

 하루노"그렇구나. 하지만 그의 경우엔 좀…다른 의미로 문제가 있어…"형태 좋은 눈썹을 모으며, 뭐라 형용하기 어려운 얼굴을 하고 있다.

 하치만"다른 문제? 자이모쿠자한테?"

 우리들은 무심코 얼굴을 마주봤다. 자이모쿠자한테 문제라니…

 하치만"너무 많아서 짐작도 안 가…"

 유이"짐작가는게 너무 많아…"

 유키노"오히려 문제밖에 없다고 하는 편이 좋을 정도야…"

 솔직히 자이모쿠자 일로 이렇게까지 심각한 이야기가 될줄은 예상도 못했다. 역시 그 녀석은 없을때가 훨씬 진지한 취급이 되는건가.

 잘하면 자이모쿠자에게 이 역할을 떠넘기려고 생각했지만, 역시 무리인 모양이다. 처음부터 기대는 하지 않았다고는 해도, 진짜 못 써먹을 놈이네. 알고 있었지만.

 뭐, 어쨌든간에 그 녀석이 관련되면 언제나 제대로 된 일이 안 되니까. 애시당초 있는것 만으로도 더워지는데다 짱난다.
하지만 다행이라고할까, 이번 일에 관해서만 말하자면 자이모쿠자가 관여해올 여지는 1미리도 없어 보인다.
뭐라고 해도 상대는 자산가의 도련님이다. 불확실한 요소가 난립하는 가운데, 그것 만큼은 유일하게 안심할 수 있는 점일지도 모른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던 시기가 저에게도 있었습니다.

   하치만"그래서, 오늘은 그걸 위해서 일부러 학교까지 온겁니까?"연줄까지 써서 고생하셨다.

 하루노"그런거야. 실은 다른 장소에서 히키가야를 붙잡아도 괜찮았지만…"

 하치만"잠깐, 그거 내가 있는 곳을 하나하나 파악하고 있다는겁니까, 혹시?"움찔

 유이"힛키, 뭘 허둥대는거야?"

 하치만"아니, 발신기라도 붙어있나 생각해서…"

 하루노"에이 참, 그런 번거로운 짓을 하지 않아도 달리 방법은 많이 있잖아?"

 하치만"그 편이 더 무서운데요?"뭡니까 그 많은 방법이라니. 혹시 이 인근에 길들인 닌자 같은거라도 숨겨뒀어? 다다미바닥 같은거 밟으면 안 되는거야?

 하루노"하지만 그래선 역시 공정하지 않구, 이상한 오해받아도 곤란하니까-"

 하치만"하? 이 경우, 딱히 공정하든 아니든 관계없잖습니까?"

 애시당초 공정하다니 뭐가. 장막 메세지 콘서트라도 열 생각인가? 차라리 치바 군도 불러보지?

 하루노"그럴까. 아마, 그렇게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거라 생각하는데…"

 그렇게 말하며 하루노 씨가 힐끔 의미심장한 시선을 향한 곳에 유키노시타와 유이가하마가 어째선지 더 이상 없을 만큼 불만스런 얼굴을 하고 있었다.

    유이"그, 그치만, 역시 그건 좀…어떨까나…"

 하루노"어머, 어째서니?"

 유키노"부적합하다기보다 오히려 부적절해. 애시당초 남녀교제는 커녕 제대로된 친구조차 없는 이 남자한테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을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어. 언니가 부끄러움을 살 뿐이야"

 하치만"어이, 잠깐 유키노시타. 아무리 그래도 지금 발언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유키노"그렇구나. 미안해. 정정할게"왠일로 유키노시타가 솔직하게 사과한다.

 하치만"알면 됐어"

 유키노"너에겐 제대로되지 않은 친구조차 없는걸"

 하치만"그 발언에는 좀 더 문제가 있잖아!?"

 유키노"진실이란 언제나 잔혹한거구나"나한테서 시선을 피하고 슬프다는 듯한숨을 쉰다.

 하치만"잔혹한건 진실이 아니라, 그걸 말하는 너 자신이라는걸 슬슬 깨닫는게 어때?! 그리고 그 태도 관둬라 진짜로 상처입으니까"

 유이"진실이라는건 부정하지 않는구나…"

   하루노"그럴까? 그런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그치만 얼마전에 유키노랑 데이트할때도 꽤 즐거워보였는데?"

 하치만&유키노"!"///

 유이"헷? 데, 데이트?"유이가하마가 바둥거리며 나와 유키노시타의 얼굴을 교대로 본다.

 유키노"그, 그건, 데, 데이트…같은게 아니야"///

 하치만"…유이가하마의 생일 선물을 고르던것 뿐이고"

 유이"두, 둘이서 골랐구나…"

 하치만"코마치도 같이 있었지만 말야"도중까지였지만. 거짓말은 안 했다. 하치만 거짓말 안했어. 인디안 떡 찧지 않아.

 어째선지 무척이나 거북한 분위기가 흐른다. 예를든다면 마치 내가 여자애한테 말을 걸었을때 같은 완전 미묘한 분위기. 뭐야 그거 예시가 너무 슬프지 않아?

 하루노"어머머, 나 뭔가 안좋은 소리라도 한걸까?"

 그러니까 슈퍼급 폭탄을 떨궈놓고 새삼 테헤페로 거리며 끝내려고 하지 마요.

   유키노"유, 유이가하마, 일단 그 이야기는 나중에 천천히"

 유이"으, 응"

 그래그래, 그 정도로 평상시부터 백합유리 하던 둘의 관계에 금이 갈리 없는 것이다. 무르다고, 하루노 ㅆ…

 하루노"어머, 유이가하마도 유키노 몰래 여름방학때 히키가야랑 불꽃놀이 데이트했잖니?"

 유키노"엣?! 그, 그랬어?"

 하치만"끄――――――――악! 아니야!"

 그러니까 왜 이 사람은 그런 오해를 부를법한 소리를 태연하게 하는거야?! 그것도 이 타이밍이라니, 완전히 일부러지?! 그보다 괴롭히기지?! 실은 나 싫어하는거지?! 내가 대체 뭘 했다는거야?!

 유이"그, 그건 코마치한테 사브레를 맡겼던 답례로!"///허둥지둥

 유키노"…히키가야. 일단 그 이야기도 나중에 천천히"생긋

 유키노시타 씨, 엄청 무섭슴다, 그 미소. 그 이야기 후에 내 인생이 조금이라도 남아있을지 굉장히 걱정되는데? 무심코 노트에 유서를 쓰고 싶어진다. 감자 마시씁미다….

 내가 도끼눈으로 노려보는걸 하루노 씨가 시원스럽게 받아흘린다. 마치 버들나무에 부는 바람같다. 역시 한수 높은 모양이다.

 하지만 유키노시타는 내가 여름방학 중에 하루노 씨랑 만난건 알고 있었으니까, 그건 완전히 끝난 얘기라고 생각해서 방심했었다.

 정보를 조금 흘려놓고 여차할때 우리들을 뒤흔들다니, 유키노시타 하루노 ―― 역시 천사같은 외모와 반대로 악마처럼 속이 시커면 여자다. 이렇게 배가 시커먼건 치바 동물 공원의 레서 팬더 정도 밖에 본 적이 없다. ○타냐.

   하치만"아,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잘 생각해보니, 이 이야기. 저한테 어떤 메릿트가 있습니까?"

 오히려 이대로라면 디메릿트가 많다. 무심코 5명의 갓핸드를 소환해버릴 정도. 그건 베힐릿이지만.

 상시 손득계산으로 움직이는 나는 아니지만, 수고와 시간을 생각하면 이번 일은 역시 리스크가 크다. 하이 리스크 로우 리턴을 그려서 액면에 쓰여진채로 2과전에 출품할 수준이다.

 불필요한 리스크는 극력 회피하는데는 외톨이가 아니더라도 처세술에 있어 기본중의 기본이다. 그럼 어찌 생각해보아도 거절하는 편이 무난할 것이다.

   하루노"…그렇구나. 유키노의 말을 빌리자면, 내게 은헤를 팔아둘 수 있는데?"

 하치만"은혜?"

 하루노"빚 하나를 만들 수 있다, 라고 생각해도 좋아"

 하치만"빚…입니까"예상밖의 제안에 무심코 당혹하고 만다.

 하루노"그래, 빚이야. 이 유키노시타 하루노에게 빚을 만들 수 있어. 결코 나쁘지 않은 거래라고 생각하는데"

 가슴에 손을 대고, 오만하게 말하는 모습은 어느 의미로 불손하다고도 할 수 있는데, 그 매력에 한 점의 흐림도 보이지 않는건, 역시 천성적인 카리스마가 보이는 기술일 것이다.

 유키노"언니, 이 남자한테 빚을 만들어놓으면 제대로 된 일이 안 될건데?"

 하루노"어머, 그러니?"

 유키노"빚은 모, 몸으로 갚으라고 할지도 모르고…"

 하치만"과연, 여성의 약점을 잡다니 정말로 비겁하고 비열하고 최악인 놈이구만. 그것도 정말로 말할지도 모르는 점이…엇, 혹시 그거 나 말하는거냐?"

 유이"엣?! 그런거야? 히, 힛키는 최악! 변태! 진짜 말도 안 돼!"

 하치만"잠깐, 기다려 너희들. 나는 아직 아무말도 안 했는데, 왜 그런거라고 결론짓는거야?!"

 유키노"이거 봐. '아직'이라는건 앞으로 말할 생각이었다는거지? 무심결에 진실을 말했구나"

 하치만"그러니까 들고자시고! 누명이다 누명! 나는 단연코 무죄를 주장한다!"

 유키노"공소각하야. 원망할거면 네 평소 언동을 원망하렴. 그리고 그 썩은 눈이라던가"

 하치만"어느틈에 유죄판결?! 그보다 왜 내가 피고같은 취급을 받는건데?!"

 유키노"무슨 변명은 있니? 피고가야?"

 하치만"그러니까 그거 이름 아니거든!"

    뭐야 이거 혹시 마녀재판이나 그런거였어? 나, 남자인데 마녀야? 어느샌가 남녀평등이 이런데까지 침투한거야?
그보다 유이가하마도 바로 받아들이지 마. 딱봐도 풍평피해가 발생하잖아. 더 이상 확산하지 않도록 보도규제를 해야한다.
너희들, 정보 리테라시라고알고 있냐? 아무리 평소부터 백합유리하고 있다고 해도, 마이너스 리테라시는 하지마라?

 하치만"애, 애시당초 말이다, 페미니스트를 자인하는 내가 여성에게 그런 짓을…"

 유키노"전혀 생각도 안 했다고 할 수 있니?"

 하치만"다, 당연하지! 천지신명에 맹세코…"

 유이"힛키, 눈이 굉장이 흔들리고 있는데?"

 유키노"흐-응, 썩은 주제에 활기가 있다니, 네 눈은 꽤나 재주 좋은 짓을 할 수 있구나?"

 …이 흐름은 혹시, 나를 몰아붙이는거 아냐? 이대로 유무를 언급하지 않고 유죄판결 받고 화형에 처해지는거야?
일본은 법치국가 아니었어? 정의는 어디로 간거야?

     하루노"어머, 그건 그거대로, 나는 딱히 상관없는데. 후훗"하루노 씨가 요염하게 웃는다.

 하치만"…………"

 유키노"………히키가야, 왜 거기서 침묵하는거니?"

 아, 완전히 막혔다. 이거.

    하치만"끄악-! 잠깐! 그러니까 오해라고"

 유키노"가시관, 오이밭 신발…이구나. 역시 너에겐 한번 크게 뜸을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교육 일환으로"

 하치만"우왓-, 아직도 애완견 드립을 치는거냐?!"죄송함다, 이제 역의 계단에서 스마트폰 안볼테니까 용서해주세요.

 하루노"그래서, 어떠니? 히키가야라면 이 제안의 가치는 잘 알거라 생각하는데?"

 천사의 미소를 지으면서 소악마가 귓가에서 속삭인다. 무심코 등골이 오싹해졌다.
유명한 괴테의 '파우스트'를 예를 들것도 없이, 악마와 거래한 남자는 대저, 비참한 말로가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하치만"…좋겠죠. 알겠습니다. 받아들이겠습니다"나는 힘없이 말했다.

   유키노&유이"엣?!"

 하루노"꺄-, 고마워-!"하루노 씨가 내 팔에 안겨붙는다.

 가까워가까워가까워가깝다니까. 왜 그렇게나 단번에 거리를 좁히는거야? 축지법 쓴거야? 멋대로 내 AT필드 무효화하지마.
게다가 여전히 부드럽고, 좋은 냄새구나ー…앗, 그게 아니지.

 유이"힛키, 너무 가까워!"

 유키노"히키가야, ○고 싶지 않으면 지금 당장 언니한테서 떨어져!"

 바로 얼음같은 질책이 날아왔다. 지금 왠지 무서운 소리를 했다!

 나는 반사적으로 물러선다. 뭐야 이거, 파블로프의 개 상태 아냐? 어느샌가 애완견 근성이 스며들었어?

 하루노"후후. 너라면 분명 받아줄거라 생각했어"이겼다는듯 하루노 씨가 미소를 짓는 한 편에,

 유키노"정말이지 이 남자는, 대체 어디까지 실망시켜야 내키려나…"유키노시타가 경멸하는듯한 차가운 시선을 내게 향한다.

 하치만"…그러니까 아니라고"

 잽싸게 뿌려쳤다고는 해도 팔에는 아직 하루노 씨의 부드러운 감촉이 남아 있었다.
확실히 하루노 씨의 제안은 남자로서 매력을 느끼지 않을리는 없지만…아니, 지나치게 충분할만큼 느끼지만, 나에게는 또다른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그걸 이 자리에서 말할 생각은 없다. 적어도 유키노시타가 있는 앞에서는.

 어째선지 불쾌함의 절정을 찍은 얼굴을 하는 유키노시타와 유이가하마에겐 미안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하루노 씨와 나의 거래다.

 그리고 유키노시타 하루노라는 카드는 만일의 사태에, 내게 있어 유일한 조커가 될지도 모르니까.

   하루노"그렇게 정해졌으면 이야기는 빠르구나. 이와시미즈 씨와 만나는건 일요일에 세팅해줄테니까, 토요일에 같이 옷을 고르러 가자"

 하치만&유키노&유이"엑?!"

 하루노"아무리 그래도 내 남친 역할이니까, 속은 그렇다치더라도 겉은 그런대로 멋져져야지. 속은 그렇다치고"

 과연 이 경우, 속은 아무래도 좋은거군요. 그보다 왜 굳이 2번이나 말할 필요가 있는거야.

 하치만"저한테 그렇게 여유로운 돈은 없다고 했는데요"실제로 필요한 돈조차도 없다. 다음 용돈 받을 날까지 코마치한테 돈을 빌릴까 생각했을 정도고.

 하루노"어머, 괜찮아. 이번에는 무리한 부탁을 들어주는거니까, 그 정도는 내가 내줄게"

 하치만"아니, 그건 그래도 좀…저한테도 남자로서 자존심이라는게…"

 유키노"너에게 자존심이라는 고상한게 있다니 처음 들었는데?"

 하치만"너 바보냐. 남자한테는 자존심이 중요하거든? …여차할때 버릴때를 위해서라던가, 엄청 필요하다고?"

 유이"버리는게 전제구나?!"

 하치만"자존심을 버릴때는 전력으로 버리는게 내 자존심이니까"

 물론 사과할때는 엎드려 비는게 기본. 상황에 따라선 뒤로 눕기까지 한다. 어디의 사형수냐.

 유키노"네 자존심은 제거 가능한 옵션 기능 같은거구나…"

 덧붙여 양심이나 양식도 상황에 따라서 캐스트 오프 할 수 있다. 마치 가면라이더 카○토라던가, 미소녀 피규어 콘파치 옵션같다, 그거.

    하루노"나로서는 이번 일에 관해서, 가능한 만전을 기하고 싶어"

 하치만"그런거라면…뭐…어쩔 수 없군요…저, 교복 말고는 그다지 공적인 옷은 갖고 있지 않고"

 유키노"하지만 이 참에 아버지 수트같은걸 입어도 되지 않니?"

 하치만"아버지 수트는 사이즈 커. 애시당초 곰팡내가 스며있으니까…"그러는 김에 처자식 딸린 사축 중년남의 인생의 비애도 스며있기도하다. 가능하면 평생 입고 싶지 않다. 사축이 감염(윽)되기라도 하면 싫으니까.

 유이"후에? 힛키네 아버지는 그렇게나 인도 요리를 좋아해?"

 하치만"카레 냄새가 아냐! 그렇게 향긋한 냄새도 아니고! 우리 아버지, 인도 사람이냐?"

 유키노"인도 사람도 깜짝 놀라겠구나"중얼

 하치만"…너, 진짜 나이는 몇살인냐"과연 유키페디아. 히라츠카 선생님도 그런 드립은 모를거다…아마.

 하루노"아, 모처럼이니까 공통 화제를 만들기 위해서 영화같은거 같이 볼래? 물론 식사를 제공해줘도 되는데?"

 유키노&유이"뭣?!"

 하치만"아니, 그건 마치…"

 하루노"그래, 데이트야. 남친인걸"그게 당연하다는 듯이 말한다.

 일순 마치 지구가 정지한듯한 침묵에 둘러쌓였다. 헛기침도 주저할만한 거북함.

 자이모쿠자가 있었으면 "으음, 결계인가!?" 라고 말할지도 모를 수준. 정말로 다행이다. 없어서.

 반대로 귀가 아플만큼 깊은 정적 가운데 유키노시타가 아연한 표정으로 노려보고, 평소엔 온후한 유이가하마마저 드물게도 비난섞인 눈을 향해온다.
이런 눈으로 보여지면 보통이라면 큰 남자여도 주저하고 말 것이다. 연약한 여성이라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그러니까 왜 너희들은 나를 쳐다보는건데? 그거 노려볼 상대 다르지 않냐?

   하치만"커흠…죄송하지만 저, 코마치 말고 다른 여자랑 데이트는 미연시로 밖에 경험한 적이 없다고요?"그것도 강제 이벤트 뿐이었고."

 유키노"코마치랑 외출은 데이트라고 쉽사리 인정하는구나…"

 유이"힛키, 미연시 하는구나…"

 하치만"그야, 여차할때 시뮬레이션…아니 너희들 진짜 유도심문 쩌는데?! 하마터면 몽땅 털어놓을뻔했잖아?!"

 유이"스스로 멋대로 고백한것 뿐이고…"

 하치만"하지만 신기하게도 언제나 어째선지 배드 엔딩이 되어버린단 말이지, 이게…"

 유이"우와ー…게임인데 리얼하구나…"그러니까 나를 불쌍하단 눈으로 쳐다보지마. 정말로 울고 싶어지잖아.

 그보다, 소프트 회사는 좀 더 기업노력의 일환으로서 게임 난이도를 낮춰서 좀 더 상남에게 꿈을 갖게 해야하는거 아냐? 특히 나라던가.

 하치만"핫, 혹시 버그가 있었나?! …내가 샀던 게임 전부!"

 유이"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건 말도 안 되구…"

 유키노"버그가 있다고 하면, 그건 오히려 너 자신이라고 생각하는데"고개를 저으면서 유키노시타가 한숨을 쉰다.

 하치만"움직이면 되잖아, 움직이면"

 유키노"납기직전에 재개봉한 프로그래머같은 말을 하는구나…"

 하치만"괜찮아. 문제가 일어나도 '아, 나 그런거니까'…라고 말해두면 어떻게든 되니까"매뉴얼에도 그렇게 쓰여 있었고.

 유키노"그 이상으로 폭주하기 전에, 너라는 존재채로 이 세상에서 완전히 딜리트 해두는 편이 좋을것 같은 느낌이 들어"

 하치만"너라면 딜리트는 물론이고 포맷할지도 모르지. 이 세상채로"

 유키노"그건 최종수단이야"

 하치만"일단 생각은 하고 있구나…"너 혹시 매트릭스의 두목이냐.

   하루노"그럼 그야말로 당일에 실수하지 않도록, 지금부터 여러모로 연습해두는 편이 좋지?"

 하치만"켁, 진짜로 할겁니까…"

 하루노"괜찮아, 내가 리드해줄테니까. 히키가야는 아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걱정하지 말라고 해도, 어째선지 안심할 수 있는 요소가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그러기는 커녕, 혼자서 마음편하게 보낼터인 귀중한 휴일이 사라지는걸까 생각하니, 오히려 기분이 잠긴다.
네거티브한 생각에 잠겨버리는 것이다.

 유키노"그럼 나도 같이 가도록 할게"

 유이"나, 나도 갈래"

 하치만"그러니까 왜 그렇게 되는건데!? 너희들 나를 너무 좋아하잖아?!"

 유키노&유이"읏!?"///

 하루노"아-아, 말해버렸다…"중얼

   …잠깐만 기다려봐. 뭐야 이거 미묘한 분위기는. 너희들 그렇게나 나 싫어하냐? 진짜로 울것 같은데. 아니, 진짜로 조금이지만 눈가에 눈물 맺혔고.

 유이"그, 그치만 힛키가 하루노 언니랑 단 둘이서 데이트라니…"

 유키노"누, 누가 제대로 감시하지 않으면, 너 무슨 짓을 할지 모르잖니?"

 하치만"나는 그렇게나 신용 못 받는거냐?"

 유키노"어머, 나는 네 인간으로서 쓰레기 부분을 전폭으로 신뢰를 하고 있다고 하지 않았니? 쓰레기가야?"

 하치만"그런 신뢰는 필요없어! 그보다 이름도 틀렸고! 얼마나 바리에이션이 있는거야?!"

 유키노"거기다 이 남자를 제대로 일으켜 세울거면, 제 3자의 기탄없는 의견을 참고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

 하치만"너는 반대로 조금 사양하는 편이 좋다고. 나한테 대하는 수많은 폭언이라던가"

 유이"아, 그렇지! 힛키의 경우, 비뚤어졌으니까 솔직하게 남의 의견에 귀를 기울일거라고는 생각이 안들구"

 하치만"너도 평소부터 남의 얘기를 들어라, 특히 수업중이라던가"

 크…, 그럼 숫자에 맡겨 내 퇴로를 막으려는 혼담이로군. 모처럼 데이트를 한다고 보여주고 틈을 보고 도중에 도망치려고 생각했는데, 계산이 틀어졌다.

   하치만"…무르구만, 너희들. 항상 소수파에 속하는 내 경우, 자신의 의견이 통한적은 좀처럼 없다고?"

 유키노"네 경우, 그 소수파에 마저 속하지 않는, 단순한 외톨이잖니?"

 하치만"뭐, 그렇다고도 하지"

 하루노"어머머, 모처럼 토요일은 단 둘이서 즐겁게 데이트 하려고 생각했는데, 예정이 틀어져버렸네"

 하치만"하하하…. 그것만큼은 절대로 싫습니다. 용서해주세요"전신전령을 다해 전력전속도로 거절한다.

 이 사람과 둘이서만 데이트라니, 오히려 고행이나 황행에 가까운 일이다. 한겨울에 폭포나 천일회봉이, 물놀이나 바이킹을 생각할 정도로.
내 안에서 새로운 파워가 눈을 뜨면 어떡할건데. 무심코 레벨6에 도달한다고.

 하루노"흐-응, 아, 그래. 하지만 히키가야가 그렇게 말한다면 어쩔 수 없네-. 어쨌든 나는 부탁하는 입장이니까?"

 여기서 절대로 말썽이 있을거라고 생각했더니, 의외로 쉽게 하루노 씨가 물러섰다.
너무나도 쉽게 물러서서 뒤에서 뭐 꾸미고 있지 않을까 무서울 정도다.

 혹시 일부러 잘못된 집합장소를 가르쳐준다거나…나한테. 혹은 일부러 틀린 집합시간을 가르쳐준다거나…나한테. 아니, 그러니까 어째서 나인건데.

 확실히 옛날에 다같이 놀러가는 약속을 할때 그런 일도 있었지만…앗, 어째서 멋대로 트라우마가 뒤집기가 된거야?
그보다 나, 지뢰 너무 많잖아. 분쟁지대뿐이다. ODA라던가 인도지원으로 제거해주지 않는거냐?

   하루노"…그저, 한가지 조건이 있어"하루노 씨가 그렇게 말하면서 형태 좋은 손가락을 척 세웠다.

 역시 굴러도 그냥 일어서지 않는구나, 이 사람. 지푸라기 엮어서 장자가 될 타입이다. 덧붙여 내 경우엔 지푸라기 잡고 빠질 타입.

 유키노"…뭐지?"당연하듯 유키노시타와 유이가하마가 그런 그녀를 수상쩍게 쳐다본다.

 하루노"일요일에 이와시미즈 씨와 만날때는 둘 다 따라와선 안 돼. 설령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우리 방해를 하지 말것"

 유키노&유이"…읏!"

 하루노"아까도 말했지만 이번 일에 관해선 만전을 기해두고 싶어. 어때? 약속할 수 있어?"

 잠시 무겁고 깊은 침묵이 이어졌지만,

 유키노"…알았어"유키노시타가 체념한듯 답하고, 세게 입술을 문다. 유이가하마도 말없이 끄덕였다.

 어이어이, 고작 하루만 남친인척 하는것 정도로 뭘 그렇게까지 염두를 둘 필요가 있는거야? 도리어 축시 참배에서 지푸라기 인형에 못을 찔리잖냐, 내가.

 결코 가벼운 마음으로 받아들인건 아니지만, 왠지 모르게 발걸음이 위태로워진 느낌이 드는건 기분 탓일까.

 어딘가에서 근본적인 선택지를 잘못한걸지도 모른다. 세이브 포인트로 돌아가서 다시 해도 될까? 그렇구만, 인생 처음부근 부터.

 하지만 이유는 그렇다치고 미녀 3명과 외출이라니, 대체 무슨 게임 이벤트야. 하지만 전혀 기쁘지 않아. 그보다 솔직히 고통 말고 그 무엇도 아니다.
보통 여자와 데이트는 좀 더 가슴이 뛰는거 아니었어? 아-…, 아니 아무리 봐도 혼자만 물리적으로 무리한 사람도 있지만….
힘내라, 동생농! 인생을 내던지면 안 된다고 프로 야구 투수도 말했다고. 말 안했나. 그리고, 이소호라본 같은것도 좋은 모양이라고?

    하치만"아ー…, 그런데 그 이와시미즈 씨는 실제로 어떤 분입니까?"만일을 위해 사람과 생김새 정도는 들어두는 편이 좋을 것이다.

 고인 말하길, 나를 알고 적을 알면 포기한다…아니, 포기하면 어쩌라고.

 하루노"그렇구나, 참고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사진을 갖고 왔어"

 그렇게 말하며 깨끗하게 장정된 사진을 꺼낸다. 일단이라고 하면서 꽤나 준비성이 좋다.

 하치만"어디, 이건…?"그 체제는 마치 맞선 사진처럼 보인다.

 하루노"본인이 보내왔어. …장미 다발과 함께"

 유이"호와와, 그건, 좀 멋질지도…"///

 칫, 이러니까 브루주아 리얼충이라는 놈은…. 폭발하면 좋을텐데. 아니 오히려 지금 당장 박살나라. 나는 원한을 담은 눈으로 하루노 씨한테 받아든 사진을 노려본다.

 유키노"히키가야, 네 썩은 눈에 살기가 깃들어 있는데?"

 하치만"아니, 살기가 아니라 틀림없는 살의다"

 리얼충, 죽어라. 세상 상남의 질투를 온몸에 알아라.

 하치만"…그보다, 하나하나 썩은 눈이라고 하지마. 그거 나한테 하는 수식어냐"

 유키노"그러는김에 말하자면 계절어구로서는 "영원의 겨울"이구나…왜냐면 너에겐 봄이 안 오니까"

 하치만"냅둬!"

    내가 자신의 생령이 찍히는게 아닐까 생각할 만큼의 기세로 노려보는 그 사진에는, 가는 얼굴형에 안경을 낀 30세쯤 되는 호청년이 찍혀 있었다.
입가에서 엿보이는 희고 정연된 이빨이 무척이나 눈부시다. 아마 직사일광 아래에서 보면 난반사해서 위험하게 된다.
사고 방지를 위해, 이빨에 먹을 칠해둬야한다. 그런 느낌에 눈썹도 밀어라. 갈아버려. 수레로 이동해라.

 하루노 씨와 나이 차이는 10살 정도인가. 조금 차이나는 느낌은 있지만, 부자연스런 정도는 아닐 것이다.

 유이"호와~ 좀 잘 생겼을지도…"유이가하마가 내 어깨너머 사진을 들여다본다.

 …얼굴 가까워. 덤으로 머리카락이 내 볼에 닿아서 간지럽고. 그보다 대수롭지 않게 내 어깨에 손 올리지 마, 착각해서 차이기라도 하면 어쩔건데?
아니 우선 차이기 전에 반하는것부터 시작하자고, 나. 여러모로 뛰어넘기고 결론에 너무 날아들었잖아.

 유키노"나, 나도 봐도 될까?"유키노시타가 내 옆에 서서 머뭇거리고 있다.

 하치만"오오, 좋아. 자"나는 유키노시타가 보기 쉽도록 사진을 건낸다.

 유키노"………………"어째선지 갑자기 뚱해진 표정을 짓고, 빼앗듯이 사진을 받아들었다.

 뭐야, 나한테 직접 건내받는게 그렇게나 싫은거냐? 그러고보니 있었지, 중학교 시절에 그런 여자.
'히키가야한테 프린트 받고 싶지 않으니까, 거기 놔줘'라고 주눅들지도 않고 말하고. 자의식 과잉이라고.
뭐, 문제는 같은반의 여자 대부분에 나한테 자의식 과잉이었다는 점이지만. …어라? 혹시 단순히 내가 미움산것 뿐인가?

 하루노"이와시미즈 씨 본인은 파티 자리같은데서 몇번 만나기는 했지만…"

 유키노"과연. 거기서 언니를 봤다는걸까?"

 하루노"뭐, 그렇게 된걸까…"

 어째선지 애매하게 말을 흐리는 하루노 씨의 태도에 위화감을 느끼지만, 유키노시타는 사진에 집중하고 있어서 깨닫지 못한 모양이다.

 하치만"그건…"

    히라츠카"커흠…아ー…하루노?"내 말을 가로막듯 히라츠카 선생님이 끼어든다. 그보다, 아직 있었군요.

 하루노"어라, 무슨 일이야, 시즈카짱?"

 히라츠카"나를 그 이름으로…아니, 뭐 됐다…하루노는 그 얘기 거절했지?"

 하루노"어? 어어. 그럴 생각인데?"

 히라츠카"거, 거절했다면, 그, 그게, 나, 나한테, 소개시켜줘도 되는데?"///중얼중얼

 하루노&하치만&유키노&유이"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

 그, 그렇게까지 떨어졌나, 히라츠카 시즈카?!

   마치 티라노 사우루스가 강력한 프레데터(포식자)가 아니라 실은 스카벤져(썩은고기 사냥꾼)였을지도 모른다는 학설을 들었을때 같은 경악.

 하루노"아ー…, 저기…미안해, 이번 일은 좀…"역시 하루노 씨도 질겁하고 있다.

 굉장하다고, 히라츠카 선생님. 그 하루노 씨를 이렇게까지 당황하게 만들다니, 혹시 지온의 붉은 혜성하고 맞먹는거 아냐?

 히라츠카"그, 그걸 어떻게든…"물고 늘어지는 히라츠카 선생님. 필 사 적 이 로 군 .

 하루노"…거, 거기다 이와시즈미 씨, 젊은 애가 취향인 모양이구…"

 …아, 이걸로 끝장이군요. 감사합니다.

 히라츠카"…이, 이래보여도 이 학교에서는 젊은 편인데"히라츠카 선생님이 울상지으며 어깨를 풀썩 떨어뜨린다.

  우으, 가여워 보여서 보고 있을 수 없다. 만약 영화화 되기라도 하면 틀림없이 전세계가 운다.

 이제 됐어요, 선생님. 여차여차하면 제가 분명 받아줄테니까요…. 아니, 오히려 나를 받아줘서 길러줘도 되는데요 ?

   간단하게 토요일 약속을 한 후에 하루노 씨는 겨우 부실을 뒤로했다.

 나는 이미 유키노시타 하루노라는 천재에 말려들어서 모든걸 포기하는 수 밖에 없었다. 포기하는것만큼은 완전 특기고.
과거에 유일하게 포기할 수 없었던 일이라고 하면 포기하는걸 포기하는것 뿐이었고, 그마저도 마지막에는 포기하는걸 포기하기를 포기한것으로 인해 무실을 알았다.
나도 참 의미불명하지만, 이미 의미불명마저 포기하고 있으므로 문제 없다.

 아무튼 요컨대 즉 말이다. 인생 만사 포기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결혼생활에 있어선 필수사항. 무겁구만, 그거, 대체 어디의 누군데. 나중에 히라츠카 선생님한테 가르쳐주자. 필요없는 참견이라고 얻어맞을지도 모르지만.

 그보다 이번 인적손해(특히 나)의 반성점을 살려서, 기상청은 유키노시타 하루노 주의보라던가 내야할 것이다. 메일 주소 등록하니까 내 스마트폰에 배신해줘. 7초 있으면 도망칠테니까…엇, 역시 도망치는게 전제냐.

 하루노"그럼 히키가야, 토요일 기대하고 있을게"갈때 한 손을 흔들면서 긴 속눈썹 달린 한 쪽 눈을 감는다.

 하치만"아ー…, 네"움찔

 무거운 소리를 내듯 부실의 기압이 올라간다. 뭐야 이거, 내 주위만 G가 높지 않아? 어깨 뭉치는데?

   이어서 히라츠카 선생님도 길고 무거운 한숨을 내쉬면서 어슬렁어슬렁 부실을 나간다. 게다가 내 만화책 가져갔어. 나중에 회수해야겠다.

 그리고나서 잠시 뒤 하교 종이 울고서 유키노시타가 유이가하마에게 다정하게 말을 걸고, 읏하며 뚱해진 표정을 지은채로 내 앞을 지나간다.

 신발장에서 일단 발을 멈추고, 내가 있는 방향을 돌아보고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않고 그대로 부실에서 나가버렸다. 물론 인사는 커녕 몸짓도 없다. 어이어이, 요즘 ATM이나 자동판매기도 좀 더 붙임성 있게 인사같은거 해준다고? 맥이면 스마일 0엔이라고.

 아무래도 아까전 일로 오해받은 모양이지만, 그거라면 그거대로 방도가 있다. 오해라고 하도 하나의 해결법이다. 이미 회답란이 채워진 이상, 내가 한 행동에 대해 새삼 다른 해답을 구할 수는 없다.

    하치만"자, 나도 돌아가기로 할까…"덜컥

 한숨과 함께 혼잣말을 하면서 일어서자, 불만스런 표정을 지은 유이가하마와 눈이 마주친다.

 하치만"뭔데? 너도 나한테 뭐 불만이 있냐?"

 유이"딱히 불만이 있는건 아니…지만"

 하치만"그럼 뭔데?"여전히 거짓말이 서툰 녀석이다.

 유이"…힛키 말야, 하루노 언니를 어떻게 생각해?"조심조심 말을 꺼낸다.

 하치만"뭐,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니까, 솔직히 '무서운 여자'…일까"그보다 진심으로 무섭고.

 유이"흐-응. 그럼 유키농은?"

 하치만"그야……… '께름찍한 여자'겠지"

 유이"너무해!"

 하치만"아니, 오히려 내가 평소 심한 꼴을 당하고 있잖아…"

   유이"그, 그럼…나, 나…는?"///

 하치만"하아? 뭐야 그거. 역시 '바보 여자'잖아?"

 유이"뭐야 그거?! 진짜 말도 안 되는데?!"뿡뿡

 하치만"아, 알았으니까 그렇게 화내지 말라고, 그, 그럼 빗치는 어때?"미우라도 좀 들어있다고? 근주자흑이라는것도 있지 않냐?

 유이"어떠냐니…아니, 그러니까 빗치라고 하지마!"

 뭐야, 질문해서 대답한것 뿐이잖아. 솔직하게 대답해서 혼난다면 남에게 길을 물어도, 수업 중에 선생님한테 지적받아도 무시하는 수 밖에 없잖아.

 유이"…어째서 하루노 언니의 부탁을 들어준거야? 왠지 평소 힛키 답지 않다고 할까…"

 하치만"네가 말하는 평소 나는 어떤 놈인데"어중간한 지식으로 멋대로 나를 말하진 마라. 그런게 제일 짜증나니까.

 유이"에? 예, 예를 들면, 적당한 소리 하고, 얼렁뚱땅 얼버무리고 도망친다…거나?"

 하치만"…반론하고 싶지만 표현이 정확한 만큼 뭐라 반박할 수 없다는게 참 슬프다…"혹시 내가 모르는 사이에 히키가야 검정같은거 받고 있었냐.

   뭐, 이 녀석이라면 말해줘도 괜찮나…

 하치만"유이가하마, 너, 문화제때 했던 말 기억하지?"

 유이"아, 그러고보니 둘이서 어디 놀러가기로 약속했지?!"

 하치만"아ー…그러고보니 그런것도 있었지…"(먼산)

 유이"벌써 잊었어?!"

 하치만"아, 아니, 그게 아니라. 유키노시타가 학교 쉬고, 둘이서 집까지 병문안 갔을때 말이다?"

 유이"그렇구나. 그때 큰일이었지. 정말, 사가밍도 참…"뿡뿡

 유키노시타의 일인데, 마치 자신의 일마냥 화내는 유이가하마를 보고 무심코 쓴웃음을 짓는다.

 하치만"뭐, 확실히 직접적인 원인은 사가미지만, 솔직히 유키노시타의 성격상 언젠간 저렇게 될거라고 알고 있으면서 제지 못했던 내 책임이라고도 생각한다"

 유이"그, 그런거 아냐. 나, 나도…"

 하치만"뭐, 기다려라. 하지만 그렇게 될 원인을 만든건 실은 하루노 씨다"

 유이"어? 무, 무슨 소리?"

 나는 문화제 실행위원회에 없었던 유이가하마를 위해, 사정을 어느정도 얘기한다. 조금 나의 억측도 섞여있지만 아마 대강은 맞을 것이다.

   유이"…흐-응. 그랬구나"

 하치만"뭐, 하루노 씨에겐 하루노 씨의 생각이 있던것 같지만…"

 유이"하지만, 그래도…"

 유이가하마가 하고 싶은 말은 잘 안다. 이 녀석은 정말로 좋은 녀석이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반드시 세계가 평등하게 우리들에게 다정하다고는 할 수 없다.
특히 내게 대해서는 엄청 엄격하다. 조금 더 어리광부려도 되지 않냐? 나. 칭찬받으면 열심히 하는 타입인데. 아니, 지금은 나는 딱히 아무래도 좋다.

 하치만"그러니까 또 같은 일이 일어났을때를 생각해서, 이번에는 제대로 유키노시타의 서포트를 할 수 있도록 해두고 싶어"

 유이"아, 혹시 그래서…?"

 하치만"하루노 씨에게 만드는 빚도, 언젠가는 무슨 도움이 될때가 올지도 모르니까…"

 외톨이이기에 갖는 메릿트는 인간관계가 희박한 만큼, 타인의 영향력을 받지 않고 끝난다는 점에 있지만, 동시에 그건 타인에게 영향을 주기 어렵다는 디메릿트도 내포한다. 요컨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영향력을 가진 인간의 힘을 이용할 뿐이다. 그리고 유키노시타 하루노라는 인간은 나에게는 없는 남에게 주는 영향력이라는걸 충분히 갖추고 있다. 이걸 이용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는 없을 것이다.

 유이"…그런걸 생각했구나. 여, 역시 힛키는 유키농을…"유이가하마의 목소리가 갑자기 습기를 띠기 시작하고 작아진다.

    하치만"…하아? 무슨 소리하는거야 너? 역시 바보냐?"

 유이"그러니까 바보라고 하지마!…어, 헤?"

 하치만"여차할때 유키노시타를 도와주라고 했던건 너잖아? 벌써 까먹었냐?"

 유이"엣? 아, 그, 그렇긴하지만…"

 하치만"약속한 이상은 지켜야지. 뭐야? 그…외톨이 주의에 반한다고 할까…"

 유이"그, 그렇구나? 아, 그, 그런거지? 힛키, 기본 인간 쓰레기지만 그런 점은 이상하게 성실하다니까?!"

 하치만"인간 쓰레기라고 하지마"

 유이"그치만, 그런가아-, 그랬구나"…얘길 듣지 않고 있고.

 어째선지 갑자기 유이가하마의 기분이 좋아졌다. 왠지 콧노래까지 부르고 있다. 잘 모르겠지만 속물적인 녀석이다.

 하치만"역시 너는 그런 식으로 기뻐할때가 귀엽다니까…"중얼

 유이"엣?!"///

 하치만"아니, 아무것도 아냐"///

 앗, 나는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유이"아! 그럼 둘이서 놀러가는 약속도 잊지 마?"

 하치만"아ー…그건 또 다음에 적당하게…"나는 순간 시선을 피했지만, 유이가하마가 뒤쫓듯이 고개를 들여다보고 있다. 저기, 얼굴 가까운데….

 유이"그래서, 언제 갈래?! 응? 응?"

 후에엥, 유이가하마, 그 미소 완전 무섭슴다.

   코마치"하루노 언니의 남친? 오빠가?!"

 하치만"뭐…남친인 척 하는거지만"

 코마치가 만든 저녁을 먹은 후에 우리들은 부엌에서 나란히 식기를 씻으면서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서 얘기했다.
아, 이 녀석 조금 키가 컸을지도. 가슴 쪽은 여전하지만. 이 참에 우유같은거 마셔두는 편이 좋겠는데, 안 그러면 크고나서 작아지고 만다? 유키노시타처럼.

 덧붙여 아버지랑 어머니는 오늘도 일때문에 귀가가 늦는 모양이다.
이렇게 매일 이러면 어쩌면 요즘 유행하는 블랙 기업 같은데 근무하고 있는게 아닐까 조금 걱정이 되기도 한다.
둘은 건강하게 오래 살았으면 하니까. 적어도 다음에 나를 길러줄 상대를 찾을때 까지는.

   코마치"…흐-응. 오빠는 기본 쓰레기에 삐줍데레하고 귀찮기도 하니까, 확실히 연상 부인이 좋을지도 모르겠지만…"코마치가 턱에 검지 손가락을 대면서 중얼거린다.

 하치만"왜 갑자기 그렇게 비약하는건데"아무리 그래도 너무 비약했다. 제한속도 지키지 않으면 조만간 사고 난다?

 코마치"그래서 토요일은 데이트구나?"

 하치만"뭐어. 코마치도 올래?"

 코마치"에ー…? 그건 좀~. 아무리 코마치여도 포인트 낮다고 할까~"

 하치만"유키노시타랑 유이가하마도 오는것 같다. 그러는김에 토츠카나 자이모쿠자한테도 말 걸어볼까…"나는 스마트폰을 꺼낸다.

 코마치"잠깐"찰싹

 홱

 하치만"우왓, 뭐하는거야 너. 내 슈퍼 포터블 커뮤니케이트 디바이스가 거품투성이가 되버리잖아. '조직'에서 긴급지령이 들어오면 어쩔거야?!"

 코마치"중2 오빠처럼 말하지 마"

 하치만"완전히 희생"

   코마치"혹시 데이트라는거, 넷이서 외출하는거야?"

 하치만"아아. 왠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된것 같다…"

 코마치"역시 걱정이구나아"히쭉히쭉

 하치만"뭐, 자매니까. 엄청 사이 나쁘지만"그보다 일방적으로 유키노시타가 라이벌시하고 있는것 뿐이지, 하루노 씨는 아마 이도 들이대지 않는다.

 코마치"그쪽이 아니라"어째선지 코마치는 기막힌 얼굴이다.

 하치만"에? 그쪽이라니, 어느쪽이야?"이쪽저쪽? 뭐야 그거, 어디의 현립묘모고등학교?

 코마치"이거 참…오빠가 알아주는게 무린가…"

 하치만"그러니까 그 오빠를 경멸하는 눈으로 보는건 그만해"

 코마치"그렇구나ー…, 예를 들면 오빠, 혹시 코마치가 누군가랑 데이트 간다고 하면 어떡할거야?"

 하치만"전력으로 저지한다. 상식이잖아?"

 코마치"…그거 어디 상식이야"

   하치만"그럼 나도 따라간다. 걱정되니까"그러는 김에 뒤에서 여러 방해공작까지 한다.

 코마치"그러니까 유키노 언니랑 유이 언니도 아마 그런 기분인게 아닐까나-…"

 하치만"어? 그건 즉…"

 코마치"응 그거"

 하치만"백합인데다 시스콘이라는 소리냐?! 엄청나게 문드러진 관계구만…"

 코마치"…코마치 입장으론 문드러진건 오빠의 머리속이라고 생각해"

 하치만"핫?! 알았다! 혹시 질투하는건가?!"

 코마치"앗! 오빠 날카로워! 왠일이래!"

 하치만"…아니, 딱히 왠일이고 뭐고 없잖아. 그보다 어디까지나 남친인 척 하는것 뿐이니까, 뭐 질투할 필요도 없다고. 코마치가"

 코마치"…아-, 네네. 그렇구나ー…(국어책 읽기)"

 하치만"…뭐야 그 엄청 적당한 대답…"

   코마치"그치만 역시 코마치는 그 날 다른 일이 있으니까 됐어"

 하치만"어? 그런 말 했던가?"

 코마치"그치만 하루노 언니의 남친역이라는건 오프 레코드지? 알고 있는건 4명 뿐이지?"

 하치만"뭐, 그것도 그렇지…"엄밀하게는 히라츠카 선생님도 포함해 5명이지만.

 그 후에 또 혼자 노래방 가서 울분 푼다고 했으니까. 너무 가엾어서 상상만으로 눈가가 뜨거워진다.
자전같은거 쓰면 '여교사 애사' 라는 제목이 붙을것 같은데. 혹은 '나ゝ40고개' 라던가. 제목 들은것 만으로 4명 몫은 운다.

 코마치"모처럼 데이트구, 방해하는것도 미안하니까"

 하치만"하? 딱히 방해도 아니잖아"오히려 완충재 역할을 해줄것 같아서 기대하고 있을 정도고, 뭣하면 방패로 삼을 정도다.

 그 녀석들이랑 있으면 혹시 기름 떨어진거 아냐? 라고 생각할만큼 삐걱삐걱거리니까.

    코마치"…거기다 수라장에 말려들고 싶진 않으니까…"중얼

 하치만"아? 뭐라 말했어?"

 코마치"으응. 딱히~"

 하치만"뭐야 그 생각하는척. 조금 짜증☆ 인다"

 코마치"아・무・튼・간・에! 오빠, 제대로 해야해"그렇게 말하며 다정하게 내 어깨에 손을 올린다.

 하치만"코마치…"

 코마치"응? 왜?"

 하치만"일단 내 옷으로 거품 닦는건 그만둬라…그리고 선물 같은거 기대하지 마라?"

 코마치"칫, 들켰나"그렇게 말하며 귀엽게 낼름 혀를 내민다.

 언제나 그렇지만, 내 동생은 어디에 내보내도 부끄럽지 않을 만큼 엄청 귀엽다. 물론 어디에도 내보낼 생각은 없지만.

   토요일 점심이 지나, 약속 장소에 지정된 카페에 도착하니 이미 하루노 씨가 테라스 자리에 있는 모습이 보였다.

 굳이 찾을것 까지도 없이 한 눈에 알아버리는게 과연. 오늘은 지극히 청초한 복장인 모양이지만, 그 눈부신 아름다움은 멀리서도 인목을 끈다.

 실제로 내가 도착할때까지 그 짧은 사이에도 몇명의 남자들이 그녀에게 말을 걸고 있었지만, 모두 한결같이 송사리 캐릭터처럼 훌륭하게까지 가볍게 타일러졌다.

 이게 만약, 동생농 쪽이었으면 아마 쓸데없이 사망자가 나온다. 그 녀석을 헌팅하려고 한다면, 그야말로 그 날카로운 혀에 걸려서 꿈이 박살난 사나이들의 겹겹이 시체 산이 만들어질지도 모른다.
이 평화로운 일본에서 게다가 여자애와 약속 장소로 향하는 그 흔해빠진 일상 광경 속에서 왜 뼈와 피의 강산을 넘어가는 세기말적인 바이올런스한 시츄에이션을 경험하지 않으면 안 되는거야. 수라국의 사람이야?

   하루노"아, 히키가야, 이쪽이야 이쪽"나를 눈치챈 하루노 씨가 손을 흔든다.

 눈부신 미소에 무심코 가슴이 두근거린다. 혹시 이건………심근경색? AED야?

 주위 남자들로부터 내게 향하는 선망과 질투의 시선이 엄청 따갑다. 지금 내게 부어지는 시선을 가시화한다면 아마 성게가 되는게 아닐까 생각할 만큼.
질량이 주어지는 날에는 바늘방석이 되서 무사시보 벤케이처럼 서서 죽을 참이다.

 나의 갈고 닦인 스텔스 기능을 무효화하다니, 혹시 오른손에 환상○라던가 깃들어 있어? 어디의 금서의 무슨조 씨냐.

    하치만"세요"나는 주위를 돌아보면서 쓴웃음을 숨길 수 없었지만, 하루노 씨는 전혀 신경 쓰지도 않는다. 아마 이미 익숙해진거겠지.

 하루노"일찍 왔구나"

 하치만"당신 만큼은 아닙니다"

 힐끔 시계를 보니 아직 약속 시간보다 20분 정도 이르다.

 하치만"혹시 기다리고 있었습니까?"

 하루노"예정보다 빨리 도착했지만, 책을 읽고 있었으니까 그렇지도 않았어"그렇게 답하면서 조금이지만 의외스런 얼굴을 한다.

 하치만"왜 그러십니까?"

 하루노"히키가야는 의외로 여자애를 배려하는 타입이었구나. 아, 미안해. 그런 식으로는 안 보였으니까"

 하치만"무슨 소리를 하는겁니까. 저는 이렇게 보여도 엄청 배려한다고요? 평소엔 분위기를 읽지 않는 척을 하는것 뿐입니다"

 배려하기 때문에 그 자리의 분위기가 흐려지지 않도록 항상 발언을 자제하고 있고, 상대를 곤란하게 하지 않도록 놀러가자고 해도 거절하는 것이다. 놀러가자고 권유 받은 적도 없지만.

   하루노"읽지 않는 척…이라. 흐-응"뭔가 납득한것 처럼 눈을 가늘게 뜬다.

 하치만"뭐, 뭡니까?"

 하루노"문화제 때도 그랬던가…랄까"모든걸 꿰뚫어보는 듯한 눈을 내게 향한다.

 하치만"아ー…읽니마니 한다고 보니, 무슨 책을 읽고 있었습니까?"

 하루노"후후, 뭐라고 생각해?"

 거북해져서 일부러 화제를 바꿔봤지만,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응해주는 점을 보건데 역시 연상의 여유라는걸 느낀다.
동생농이라면 이쪽이 말할때까지 캐묻는다. 그보다 따진다. 심리적인 프레셔가 장난이 아니다. 아마, 토하기 전에 운다. 요컨대 울면서 소리지르게 된다. 엄청 무섭다.

   하치만"아돌프 히틀러의 '나의 투쟁'같은거…인가요?"어쩌면 마키아밸리의 '군주론'같은것도 어울릴것 같네요.

 이사람의 경우, 정말로 실천할것 같아서 농담이 아니지만. 저거, 하우 츠 한권 같은게 아니니까.

 하루노"아하하. 땡. 이거야"그렇게 말하면서 고급스런 가죽 커버를 벗기고 제목을 보여준다.

 릴케 시집 ―― 솔직히 의외였다. 뭐, 독화대어록이라는게, 이 사람답다고 하면 답겠지만.

 하치만"초기의 연애시집입니까. 의외로 소녀틱하네요"

 하루노"어머, 실례네. 나는 소녀란다?"

 하치만"에, 아니, 그런 의미가 아니고 말이죠…"나는 말이 막혀서 머리를 긁는다.

 하루노"말 안했니? 이래보여도 나 아직 처…"

 하치만"아무도 안 물었습니다!!!!"///

 뭘, 냉큼 커밍아웃하려는거야. 방심도 빈틈도 없잖아.
뭐, 언뜻 놀고있는것으로 보이면서도 실제로 양가의 자녀니까 몸가짐은 단정한게 당연한가. 의외라고 하면 의외고, 판단에 곤란하다…일단 보류.

   당사자는 허둥대는 내 얼굴을 보면서 키득키득 웃고 있다. 이런, 완전히 연하 풋풋한 소년을 놀리고 있어. 역시 소악마다, 이 사람.

 하치만"커흠. 아-, 실은 저도…좋아한다고요"

 하루노"엣?"갑자기 벙하니 입을 연다.

 하치만"핫?나, 지금 뭐 이상한 소리 했나?

 하루노"에, 그게 그건…무슨 의미…이려나?"///

 어째선지 볼을 붉게 붉히며, 드물게도 파닥파닥 혼란해하고 있다. 뭔진 모르겠지만 처음 봤다, 이 사람의 이런 얼굴. 의외로 귀여운 구석이 있는데.

 하치만"'세상의 연인들을 보라, 겨우 고백했다고 생각하니, 이미 사기였다'였나요? 시는 아니지만 제가 좋아하는 릴케의 격언 중 하나입니다"

 하루노"아,아아. 그러니까… '말테의 수기' 중 한구구나. 과연 비뚤어진 만큼 그런걸 기억하는구나"

 하치만"제가 말하자면 연애란 그야말로 거짓과 사기 덩어리 같은거니까요"

 하루노"아하. 그건 동감일지도"

 평소처럼 계산적인 표정을 지으며 웃는다. 하지만 그건 그거대로 이상한 착각을 하지 않는 만큼, 내게 있어서 안심할 수 있는 부류의 미소였다.

    "꽤나 즐겁게 대화하는 와중에, 실례하는것 같은데?"

 얼어붙는듯한 차디찬 목소리에 뒤돌아보니 어느샌가 내 뒤에 아연한 표정을 지은 유키노시타와 유이가하마가 서 있었다.

 뭐야 너, 평소부터 나한테 차갑다고 생각했더니, 냉장고였냐? 프리더 같은거 탑재했어? 화내면 최종형태로 변신하는거냐?

 하루노"어머, 유키노. 꽤 늦었구나? 아, 유이가하마랑 같이였구나. 얏하로-"

 유이"아, 야, 얏하로-, 에요"그러니까 그거 경어냐?

 둘의 사복 차림을 보는건 오랜만이지만, 어째선지 오늘은 둘다 기분이 나쁜 모양이다.
왜 도착하자마자 그렇게 기분 나쁘단 표정을 짓는거야? 기분 나쁘면 차라리 집에 가는게 어때? 뭣하면 내가 먼저 집에 가도 돼? …아니, 괜찮지 않냐.

   유이"힛키도 참, 너무 좋아하고있구"뿡뿡

 하치만"하아? 딱히 좋아하지 않았어"나른해하는건 평소 일이고, 눈도 눅눅하게 썩어있다. 요컨대 평소대로다. 내 입장으로는 이상 없음. 올 그린.

 유키노"유이가하마. 이 남자의 얼굴이 한심한건 딱히 지금 시작된 일은 아니야. 그걸 탓하는건 잔혹한거야. 본인에게 죄는…있겠지만"

 하치만"그렇구만. 네 입이 험한것도 지금 시작된 일이 아니지"아마 미래영겁 그대로라고 생각하니까.

 이제 일본 경찰은 이 녀석을 '언론의 하나의 흉악 준비 집합죄'라는 명목으로 둘러싸야할 것이다. 그러는김에 치안유지법 같은것도 부활해버려. 이대로 방치하면 조만간 절대로 위험한 일이 일어난다? 주로 내가.

 하루노"자 그럼, 다들 모인 모양이고, 슬슬 갈까"하루노 씨가 기지개를 피면서 의자에서 일어섰다.

 하치만"그렇군요…그럼 나, 일단 집에 가겠습니다"타악

 유이"그러니까, 일단 이라고 하면서 그대로 집에 가려고 하지마!"

 칫, 얼렁뚱땅 이대로 집에 가려고 했는데.

   하루노"잠깐만 기다려. 지금 계산 마치고 올테니까"하루노 씨는 그렇게 말하고 핸드백을 들고 자리를 떠났다.

 나는 테이블에 남은 어렴풋한 입술자국이 남은 티컵을 왠지 모르게 본다. …이거, 옥션에 팔면 비싸게 팔리지 않을까?

 유키노"우리들이 오기까지, 언니와 무슨 대화를 했던거니?"유키노시타가 무뚝뚝한 표정으로 묻는다.

 하치만"아? 지극히 평범한 잡담이었는데?"

 유키노"네가 남들과 '극히 지극한 잡담'을 할 수 있다고는 생각 못하겠는데?"

 하치만"그런건 아냐. '응'이나 '아아'나 '흐-응, 그렇구나' 라고 말하면 대개 대화는 성립한다. 내용은 부속이다"

 유이"내용이 부속이구나?!"

 하치만"당연하잖아? 일상대화도 대충 지장이 없는 소리만 할 뿐이고, 내용은 거의 없는거나 마찬가지니까"

 오늘은 좋은 날씨네요, 던가, 그런거 하늘을 보면 일목요연하잖아. 왜 일부러 동의를 구하는건데. 나는 하치만이지 예스맨이 아니라고. 세상의 중심에서 예스 위 하치만! 라고 소리지르면 되냐?

 유키노"너는 평소부터 남에게 그 '지장없는 소리'조차 하지 않잖니? 가끔은 응이나 승이나 말해보는게 어떻니?"

 하치만"응? 승?"

 유키노"…대책없네"유키노시타가 포기했다는 듯 한숨을 쉰다. 이 녀석 이런 점은 되게 엄격하니까 어쩌면 지금 그걸로 정말로 나를 다시 본걸지도 모른다.

   하루노"기다렸지~. 자, 히키가야. 가자"

 계산을 마치고 돌아온 하루노 씨가 지극히 자연스런 흐름으로 내 팔을 잡는다. 너무나도 자연스러워서 도망치는것에 관해선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내가 무심코 도망칠 타이밍을 놓칠 정도다.

 유이"므읏…"유이가하마가 불만스런 소리를 지르고,

 유키노"언니, 그 남자한테서 팔을 놔!"유키노시타의 질책이 날아든다.

 하루노"어머, 괜찮잖니. 오늘은 데이트구. 거기다 아직 반대측 팔이라면 비어있는데?"

 주눅들지 않고 답하는 하루노 씨의 말에 유키노시타와 유이가하마가 얼굴을 마주본다.

 아니, 너희들 이거 벌게임 같은거 아니잖아. 딱히 무리 안해도 된다고?
수업에서 남녀 짝을 정할때처럼, 남은 사람끼리 서로 양보하는 척 하면서 나를 밀쳐내는거 그만해. 그거 정말로 견딜 수 없게 되니까.

   하치만"하하하(국어책 읽기), 팔짱끼는건 참아주세요"

 나는 트라우마에 짓눌릴것 같으면서 가능한 실례되지 않도록 부드럽게 하루노 씨에게 감긴 팔을 떼어냈다.
마침 팔꿈치 부분이 가슴에 닿아서 두근거리고 만다. 유이가하마라면 모를까 유키노시타라면 이렇게는 되지 않는다. 아마. 무서워서 말 못하지만.
하루노 씨는 힐끔 내 얼굴을 보고, 가볍게 어깨를 으쓱여 보였지만 특별히 기분이 상했다는건 아닌 모양이다.

 하루노"히키가야의 입장으론 어깨 나란히 걷는 편이 좋으려나?"그렇게 말하면서 살며시 내게 다가선다. 그러니까 괜히 가깝다니까요.

 하치만"…아뇨, 저의 기호같은거 문제가 아니니까요"당연히 알면서 말하는거죠, 그거?

 적당한 안전거리를 유지하지 않으면 사고 일어나잖아, 내 하반신이 폭주해서!

 내가 뛰쳐나가듯 떨어지는 모습을 보고, 하루노 씨는 의미 심장한 미소를 지었지만, 특별히 무리하게 할 생각은 없는 모양이다.
그대로 우리들의 길안내를 하기 위해,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간다.
그 매력적인 뒷모습을 눈으로 쫓는 와중에, 나는 처음으로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말았다.

 …역시, 여성의 가치는 가슴보다 엉덩이 일지도 모른다, 응.

 안심해라, 유키노시타. 너한테도 아직 희망은 있을지도 모른다?

   유이"힛키, 왜 그래?"유이가하마가 말을 걸어와서 나의 숭고한 철학 타임은 중단되어, 억지로 현실로 되돌아온다.

 유키노"히키가야, 뭘 엉거주춤하는거니? 얼른 오지 않으면 두고간다!?"

 하치만"아니, 그러니까 나 두고 가면 너희들끼리 대체 어디로 뭐하러 갈 생각인데?"이미 본래의 목적같은거 잊고 있지 않아?

 선행하는 셋의 뒷모습을 쳐다보면서 나는 이거 참, 거리며 작게 한숨을 쉰다. 이제 진짜로 얼른 집에 가고 싶은데?
마치 향수병에 걸린 아이같은데. 그보다, 이 권태감을 비롯한 두통이나 현기증상은 오히려 향수병에 가까운걸지도 모른다. …아니, 집하고 전혀 관계없잖아, 이거.

   오늘 예정에 대해서 자세하게는 듣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하루노 씨 쪽에서 여러모로 수배해준 모양이다.
나는 자신의 의사에 맡기지 않고 듣는대로 따라가는 수 밖에 없다. 번개가 내려도 큰 나무 그늘로 가고, 길어지면 뱀이라도 기쁘게 감아버리는게 나라는 인간의 정책이니까.

 하루노"우선 그 머리부터구나"

 유키노"언니, 이 남자의 머리 속은 이제와서 손을 대봐야 어떻게 되지도 않는데? 포기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하는데"

 하루노"그건 알고 있지만, 내가 말하는건 내용물이 아니라 머리형태 쪽이야"

 하치만"…내 머리 속은 세간 일반적으로 대체 어떤 평가를 받는거야"

 유키노"어머, 듣고 싶니? 너, 의외로 도전적이구나…"

 하치만"…아니, 역시 사양해두마…"

 네 입에서 들으면 아마 한동안 재기 못할것 같고.

 하치만"…그보다, 머리라면 저번달에 깎았다고?"

 유키노"어머, 뇌 수술이라도 받았니? 그 때 의시한테 이미 가망없다고 들었던거니?"

 하치만"이발소에 갔다는 의미다. 너 그거, 알면서 그러는거지?"

 유키노"그럼 차라리 로보트미(뇌두엽 절제) 수술같은걸 받아보는게 어떠니? 그러면 네 그 비둘어진 성격도 조금은 솔직해질지도 모르잖니? 한번 시험해볼 가치는 있지 않겠니?"

 하치만"한번 시험하면 두번 째는 없지만 말이다"그보다 인도적으로 문제 많잖아. 그 발언을 하는 너 자신이.

 유키노"그런데 이발소에 갔다면 그 삐쭉 튀어나온 털은 어떻게 안 되니?"

 하치만"아니, 일단 이 바보털이 내 트레이드 마크니까. 이거 빼버리면 누구인지 모르게 되고"

 유이"괘, 괜찮아! 힛키한테는 아직 그 썩은 눈이 남아 있으니까!"

 하치만"…바보털과 썩은눈 만이 나의 아이덴티티 전부냐"

 어디 부근에 괜찮은 요소가 있는건지 누가 나한테 자세하게 설명해줘.

   하루노 씨를 따라, 우리들은 화려한 느낌이 드는 미용실을 갔다.
멘즈 논케라던가 팝 아이에 실릴듯한 그거다. 읽은 적은 없지만 아마 그런 느낌.

 화려한 가게에 화려한 카리스마 미용사가 있고, 그야말로 난해하여 화려한 전문용어를 구사하여 화려한 대화를 하고 있다…그저 하나 다른건, 오늘 손님은 외톨이였다는겁니다…라는 나레이션이 들어갈듯한 가게다.

 요컨대 평소 나라면 절대로 접근하지 않을 법한 곳이다. 오히려 귀문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 불길한 곳은 비해야하잖아. 누가 음양사 불러줘.

 하치만"아-, 나 화려한 가게 들어가면 죽어버리는 병에 걸려서…"

 유키노"…그건 또 새로운 패턴이구나. 네 경우, 조만간 갈 곳이 없어지는게 아니니?"

 하치만"됐다고, 장래엔 줄곧 집에 틀어박힐 예정이니까"

 유이"근성부터 힛키구나…"

 유키노"그냥 차라리 히키코모리가야 라고 자처하는게 어떠니?"

 하치만"그거라면 이미 중학교 시절에 불렀었다…멋대로 주위가"

 유이"불쌍하기 짝이없는 흑역사구나…"

 하치만"애시당초 머리자르는데 돈을 낸다는건 뭐야? 그런건 시계 줄도 못 사잖아?"

 유키노"'현자의 선물'…이구나. 너는 제대로 숫자도 못 세는 주제에, 어째서 그런 지식만 풍부한거니?"유키노시타가 기막힌 얼굴로 지적한다.

 유이"후와? '현자의 선물'이라니…?"

 유키노"그게, 빈곤한 부부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서로 머리카락과 시계를 팔아서, 각자 시계줄과 머리빗을 사는 이야기야?"

 유이"아, 그거라면 알고 있어! 분명…"

 하치만"인간의 추악한 정신이나 제멋대로된 호의 강요를 경계한, 고맙고도 구제못할 이야기다. 마지막은 모두 죽어"

 유이"아니 안 죽어!"

 유키노"너한테 걸리면 도덕적인 이야기도 모두 비극이 되버리는구나…"

 하치만"나의 지금까지 인생은 비극의 연속같은 거였으니까"

 유키노"얼굴만 희극이면서?"

 하치만"그러니까 그런 말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귀여운 얼굴로 하지 말라고…"

    하루노"전화로 예약한 히키가야인데요"하루노 씨가 카운터에서 가게 스태프에게 말을 건다.

 스태프"아, 알고 있습니다. 남성분 한 분이죠. 이쪽으로 오세요"

 특별히 기다릴것도 없이 안내받은 의자에 앉고 잽싸게 나를 담당하는 미용사가 말을 걸어온다. 젊고 예쁜 축의 누나다.

 미용사"어서오세요. 어떤 느낌으로 할까요"생긋

 괜찮은 영업용 미소가 썩은 내 눈에는 엄청 눈부시다. 소비전력량이 비싸보이는데. JIS 조도기준 같은데 비추어봐도 좀 지나치게 밝잖아. 원기옥이냐.
내게 보여주는 미소로 하면, 냉소와 조소와 실소와 고소 정도 밖에 없는 누군가 씨는 조금 배워야 한다. 굳이 누구라고는 말 안하겠지만. 유키노시타라던가.

 하치만"하, 하아, 적당하게 부탁합니다"항상 그늘진 곳에 있는 나로서는 거울 너머라고는 해도 그 밝은 미소를 직시하지 못해 그만 눈이 헤엄치고 만다.

 진정해라, 나. 딱히 순경한테 직무질문 받고 있는것도 아니니까.

    나는 평소부터 머리형태 같은데 신경쓰지 않는 편이지만, 그건 단순히 나 자신이 무정하다는것 만이 아닌, 내버려둬도 머리카락이 그런대로 어떻게든 되버리니까 내버려두는 것이다.
뭐, 귀찮다는건 틀림없지만, 딱히 투구 앞에 '사랑'문자가 새겨져 있는것도 아니다. 뭐야 그거 어디의 위풍당당이야.

 그러니까 아침에도 특별히 세팅 같은거 하지 않고, 당연히 정발료도 쓰지 않는다. 사람에 따라서는 1시간 가까운 시간을 들이는 녀석도 있는것 같지만, 그런 시간이 있다면 틀림없이 1분 1초라도 길게 잘 것이다, 보통. 성장기인 청소년에겐 충분한 수면시간이 필요하고, 나같은건 제대로 8시간 이상 수면시간을 확보하고 있다. 그래도 부족할때는 수업중까지 자고 있으니 초 건강우량아. 불건전하지만.

 하지만 아무리 풀어졌다고 해도 규칙도 있으니, 이번에도 너무 기발한 머리형태는 하지 않는 편이 무난할 것이다. 거기다 너무 눈에 띄면 외적에게 습격당할 걱정이 있다…있는거냐, 외적.

 어쨌든 적당하게 머리 정리하고 간단하게 정리받을 정도로 하기로 마음 먹고, 나는 그 취향을 대충 미용사에게 전한다. 아니, 대충 잘라버려도 곤란하지만, 목이라던가.

   내가 익숙치 않은 가게의 분위기에 긴장해서, 한결같이 두리번거리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미용사는 신경쓰지 않고, 프로다운 착실하게 작업을 진행하면서 싹싹하게 말을 건다.

 일이라고는 해도, 이런 내게 말을 걸어주다니, 이 사람. 상당히 커뮤력이 높다. 혹시 스카우터로 계측하면 한계치 돌파하는거 아냐?

 그에 반해 나는…힐끔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본다.

 "훗…커뮤력…고작 5인가…쓰레기자식"중얼

 무심코 셀프 디스걸어버릴 정도로 슬프다.

   미용사"응? 왜 그래?"

 하치만"아, 아뇨 딱히…"

 미용사는 내가 진정할 수 있도록 속어를 써주는 모양이다. 이 부근의 임기응변에 대응할 수 있는 스킬도 커뮤력 높다는 거겠지.
마치갑자기 10년만에 친구라도 만난듯한 착각해버릴 듯한 친근감. 아니, 나, 친구 없으니까 잘 모르겠지만.

 미용사"학생?"

 하치만"하아, 네"

 미용사"몇 살?"

 하치만"열…일곱…입니다"

 미용사"어디 학교?"

 하치만"치, 치바 소부 고등학교…입니다"

 미용사"여친 있어?"

 이런, 역시 직무 질문이지, 이거? 혹시 사건 당일 알리바이같은거 묻는거야? 이제 차라리 토해내고 편해질까?
카츠동 먹을 수 있을지도 모르고.

 그보다 보통 별로 해본 적이 없으니까, 이런 오픈 대화는 엄청 거북한데.
새삼 일본어를 못하는 척도 못하고, 여기는 역시 오스독스로 자는 척이라던가? 아니, 차라리 죽은 척을 하는편이…어, 딱히 곰한테 덮쳐진것도 아니니까.

 기세좋게 요동치는 내 눈이 미용사의 네임 플레이트를 포착하자 거기에는 '히노구마'라고 쓰여있었다.

 …응, 역시 죽은 척 할까?

    하치만"…아뇨, 지금은 없습니다"

 나는 죽은 척하기를 포기하고 대화를 계속하니, 일단 '지금은' 부분을 대수롭지 않게 강조해둔다.

 실은 과거나 현재는 물론 미래에도 확률적으로 통계적으로도 실로 수상쩍지만, 초대면인 사람한테 좀 허세부려서 답하는 정도라면 용서되겠지?
거짓말이 아냐. 어디까지나 희망적 관측이니까. 설령 상대가"그렇다는건 옛날에는 있었어?"라고 착각을 해도, 그건 그거대로 어쩔 수 없고. 여기가 일본어의 어려운 점이지? 응, 현대국어 학년 3위인 내가 말하는거니까 틀림없다. 다행이다. 영어로 대화하지 않아도. 해라고 해도 무리지만.

 히노구마"…그렇다는건 전에는 있었다는 소리니?"

 하치만"…………………………아뇨"

 왜 어딘가 아파보이는 소년의 약간의 허세마저 몰아붙이는걸까, 이 사람.

    미용사"그래? 저렇게나 귀여운애 세 명이나 데리고, 좀처럼 구석에 둘수 없다고 생각하는데?"힐끔 대기실 쪽을 본다. 셋 모두 소파에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다. 딱히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데.

 하루노 씨는 헤어 카탈로그 계열 패션 잡지를 보고 있고, 유이가하마는 두리번거리면서 때때로 유키노시타에게 말을 걸고, 유키노시타는 거기에 적당하게 대답을 하는 모양이다.
때때로 유이가하마가 식겁하는 장면을 보건데, 목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대화 내용은 상상할 수 있다.

 십중팔구, 내 험담이다. 틀림없다.

    "유키농, 유키농. 봐, 이 머리형태. 왠지 힛키한테 어울린다고 생각 안해?"

 "그럴까?"

 "아, 반응 얕아-. 그럼 이건 어때?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후우-, 유이가하마. 뭘 근거로 그 머리형태가 히키가야한테 어울린다고 하는거니?"

 "에? 왜, 왠지 모르게…려나? 분위기라거나…? 힛키도 조금 더 멋을 부리면 멋지게 보이는게 아닐까나"

 "알겠니, 유이가하마. 저 남자는 머리 형태를 바꾼 정도로 갱생할만한 제대로된 인간이 아니란다? 애시당초 저 썩은 눈에서 배어나오는 부의 오러가…"

 "아, 그, 그치만 힛키의 머리카락은 의외로 부드러워서 고양이 털같은데?"

 "고, 고양이? 히키가야, 고양이야?"

 "에? 아, 아ー…, 딱히 힛키가 고양이인건 아니지만, 확실히 고양이 같은 감촉…일까…?"

 "나, 나도 다, 다음에 한번 만져볼까…"///

 "…유키농, 고양이라면 뭐든지 좋구나…"

    확실하게 봐주는건 좋을지도 모르겠지만…아니, 봐주는것만 상당히 수준 높은걸 인정하는건 인색한건 아니지만, 속은 그거거든.
너무 그거한 정도로 그거하니까.이제 그거가 그거해서 뭘 해버리는 수준. 구체적으로 말로 해버리면, 내 생명이 그거해서 뭘 할것 같으니까 그야말로 아무 말도 못하지만.

 하치만"아ー…에 그게…구, 구석을 좋아하거든요"예를 들면 교실 구석이나. 덧붙여 도시락 구석을 찌르는것도 엄청 특기고.

 내가 횡설수설하게 적당하게 대답을 하니.

 히노구마"뭐야 그거-? 너는 재미있는 애구나"뭔가 웃기기라도 하는지 깔깔 웃는다.

 문득 거울너머 뒤를 돌아보니 유키노시타와 유이가하마가 기분나쁘다는 얼굴로 이쪽을 보고 있었다.
그러니까 나보고 어쩌라고? 구속받고 있으니까 도망칠 수 없잖아?
게다가 상대는 가위나 면도칼이나 흉흉한 날붙이를 들고 있고, 서투르게 움직이다 만일에 하나 찔리기라도 하면 어쩌라고?

    히노구마"얘, 그래서 누가 진심이니?"소근소근

 왠지 이 사람, 터무니 없는 착각을 하는 모양이다.

 하치만"아니, 저, 경마 같은거 하지 않으니까 누구한테 걸지 않거든요"

 히노구마"얼버무리고는. 그렇구나, 내 의견으론…"

 하치만"하?"아니, 그러니까 멋대로 의견 세우지 마요.

 히노구마"저 흑발 아이일까"아무래도 유키노시타인 모양이다. 뭘 착각하는거야, 이 사람. 유감이지만 정답은 4번인 토츠카입니다.

 하치만"…어째서 그렇게 생각합니까?"일단 만일을 위해 들어둔다. 이후 엉뚱한 오해를 부르지 않도록 마음에 새기기 위해서다. 뭣하면 자리 오른쪽에 이름까지 새길테다.

 히노구마"후후. 비밀. 그치만 알고 있지? 그거 '맞습니다'라고 하는거나 마찬가지란다?"

 하치만"…참아주세요"

 진심이라니 터무니 없지만, 유키노시타니까 큰 구멍이라면 있을지도 모른다. 예를 들면 나를 빠뜨리기 위해 함정을 판다거나. 진짜로 그럴법 하니까 완전 무섭다. 게다가 구멍 바닥에 죽창같은거 설치해둘것 같고. 아니, 그 전에 오히려 내가 스스로 구멍을 팔것 같은 느낌도 드는데. 무덤파냐.

    세팅이 끝나고 대충 1시간 정도 걸려 겨우 해방되었다.

 히노구마"수고했어. 히키가야…였나? 괜찮으면 또 와"

 하치만"아, 아ー…, 네. 감사합니다"

 갈때 히노구마씨가 깜짝놀랄 영업 미소를 지어주었다. 사교인사로서도 미인에게 그렇게 들으면 역시 기쁘다.

 분명 이렇게 그만 휘청휘청 술집 호스티스한테 돈을 붓고 몸을 망가뜨리는 남자는 많이 있을 것이다…우리집 망할 아버지라던가.
나도 그 소질을 유전자 레벨로 이어받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역시 조금은 불안해진다. 무의식 중에 인중이 늘어나는 점이 특히.

 하치만"후-, 구치소에서 해방됐을때의 기분을 잘 알겠다. 사회 공기는 역시 맛있구만"나는 얼버무리듯이 혼잣말을 한다.

 유키노"어머, 평소부터 분위기를 읽지도 않는 네가 말하면, 어째선지 굉장히 위화감을 느끼는데…피의자야? 어머, 깨물었어"

 아니, 아무렇지도 않게 깨문척하고 내 이름을 잘못 부르는거냐. 누가 피의자야? 그보다 그거, 절대로 고의로 한거지?

    하치만"알아있다는걸 실감하는데"

 유키노"죽은 생선같은 눈으로 그런 시원스레한 소리 하지 말아주겠니. 굉장히 불쾌해"

 어째선지 유키노시타의 기분이 엄청 나쁘다. 그러는 김에 나를 대하는 태도는 좀 더 나쁘다. 게다가 그게 기본이라는 사실이 가장 최악인 느낌이 든다.

 일단 아마 이걸로 평상분의 일상대화 스톡과, 내가 가진 맞장구 스킬은 모두 써버렸다.
이제 한동안은 누구하고도 대화하고 싶지 않은 기분이다. 수패의 화살이 다 떨어진 지금, 누군가가 말을 걸기라도 하면 진심으로 위험할지도 모른다.
특히 상대가 유키노시타일 경우는 언어의 폭력이 물리적 흉기와 같은 수준이니까. 펜은 칼보다 강하다, 유키노시타의 매도발언은 더욱 강하다. 법률로 규제해라, 규제.

    하루노"헤에, 깨끗해졌잖아. 나쁘지 않은데?"

 유이"뭐라고 말하고 커트 했어?"

 하치만"아니, 딱히…. 적당하게 부탁합니다, 라고 한것 뿐인데"

 유키노"히키가야, 네 사는 방식이 아니니까, 뭐든지 적당한건 좋지 않은데?"

 하치만"왜 내가 사는 방식이 적당하다고 단언하냐?"

 유키노"그럼, 사는 방식이 아닌, 건실한 장래설계라고 생각하는걸까"

 하치만"당연하지. 우선 일단 지금 나의 학력으로도 들어갈법한 대학을 골라서 진학하잖아?"

 유키노"…갑자기 의지가 낮구나"

 하치만"그래서, 재학중에 다정하고 귀여운 여친을 발견한다"

 유이"따, 딱히…대학교에 가고나서 아니라도…괜찮지 않을…까나?"머뭇머뭇

 하치만"뭐, 됐으니까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중간에 자르지마. 너 혹시 참새냐?

 유키노"그래서, 그 여친에게 차이고나서 어떡할 생각이니? 목이라도 맬거니? 꽤 짧고도 슬픈 인생이구나"

 하치만"어느새 이미 차인게 확정된거냐…"그보다 멋대로 나를 죽이지 마.

 유키노"그치만 계획에는 리얼리티가 있는 편이 좋잖니?"

 하치만"리얼리티가 있는 만큼, 꿈이 없거든"리얼이면 죽이지 마.

 내 인생은 꿈조차 꿀 수 없는거냐? 뭐, 너랑 있는것 만으로도 충분히 악몽이지만. 드림 캐쳐같은거 필요 없을 정도로. 다스 단위로.

    하치만"아ー…그래서, 졸업하면 그 여친하고 결혼하고, 나는 전업주부가 되고 부인님이 일해서 평행 키워주는거다. 어때, 더 이상 없을 만큼 퍼펙트한 인생계획이잖아?"

 유키노"…어때라고 해도, 그렇게까지 눈을 썩게 하면서 기쁘게 장래 꿈을 말하는 사람은 처음 봤어"유키노시타가 상당한 기세로 식겁하고 있다.

 유이"역시 썩은건 눈 뿐만이 아니었어…"유이가하마가 중얼거린다. 그러니까 역시가 뭔데, 역시라니.

 유키노"유이가하마, 이 남자의 경우엔 썩은 근성에 눈에 나타난거야. 그러니까 그 표현은 꼭 올바르다고는 할 수 없어. 지렁이도 땅강아지도, 더군다나 좀비나 히키가야도 일단 그런대로 열심히 살고 있잖니? 차별해선 안 된다고 생각해"

 아니, 언제나 차별적인 발언을 하는건 오히려 너잖아. 그보다 아무리 그래도 좀비는 살아있지 않잖아.

   하치만"하아? 너희들 무슨 소리하는거야? 누구든 직업선택 자유가 인정되고 있잖아? 게다가 요즘 남녀공동 삼화 풍조에 빠져있으니까 전업지부도, 지금 딱 그래도 트렌디한 직종이잖아"

 유키노"지당하다는 소리처럼 들리지만, 요컨대 '일하면 패배'라고 하는 니트와 같은 수준의 이론이구나. 이런 남자한테 속으면 안 돼, 유이가하마"

 하치만"나를 나쁜 남자의 견본처럼 말하지 마"

 유키노"어머, 견본이 아니라 딱 그대로 나쁜남자 그대로잖니? 포르말린에 절인채로 '썩은 눈. 바과. 저속. 나쁜 남자(개체명 : 히키가야 하치만)' 라고 쓴 꼬리표를 달고 학술표본으로서 있어야 할 장소에 전시해도 좋을 정도라고 생각하는데"

 하치만"바보냐,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너. 나는 남에게 악영향도 좋은 영향도 주지 않아. 클린하고 에코한 인축무해한 무인 외톨이다!"

 유키노"독으로도 약으로도 쓸 수 없는 남자라는게, 어떤 의미로 가장 최악이구나…"

 그러니까 내 존재 가치를 딱 잘라버리는 소리 마라. 이 녀석 혹시 밤이면 밤마다 지나가던 사람 베어다니는거 아냐?

   하루노"과연. 하지만 그 계획에는 한 가지 치명적인 결점이 있는것 같아"

 거기까지 잠자코 이야기를 듣고 있던 하루노 씨가 갑자기 대화에 끼어들어왔다. 그보다 언제부터 '대화'가 일방적인 매도를 의미하게 된거야.

 하치만"엑? 그, 그렇슴까?"그건 흘려들을 수 없다. 나의 이 완전무비한 인생계획에 결점이 있다…라고?

 유키노"하나 뿐…일까?"유키노시타가 다른 의미로 고개를 갸웃거린다.

 하루노"그럼 질문이에요. 히키가야는 어떻게, 그 귀엽고 다정하고 장래성있는 여자애를 설득해서 함락시킬 생각이었을까요?"

 …………아뿔싸. 맹점이었다.

   하치만"…윽, 그, 그건…엎드려 빈다…던가?"

 유이"난데없이 엎드려 빌기 당하면 여자 쪽이라도 깰거야…"그렇게 말하면서 유이가하마는 이미 식겁하고 있었다. 인간은 빠지는 때가 중요하지? 의미는 다르지만.

 유키노"…아무래도 거기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은것 같구나…여전히 대책없다고 할까 무모하다고 할까 무능하다고 할까…아무튼 죽어주지 않겠니?"유키노시타가 진심으로 경멸하는 눈으로 나를 본다. 그러니까[삐ーーー]하지마. 생명은 귀중하다고? 특히 내 생명이라던가.

 하치만"그, 그런 세세한것 까지 신경쓰지 못했던것 뿐이라고"책사, 책략에 빠진다는걸 이걸 가리키나?

 유이"…그거 전혀 세세하지 않다고 생각해"

 유키노"요컨대 네가 말하는 그 완벽한 계획이라는건 기본설계 단계에서 이미 파탄나 있다는 소리야. 정말, 차라리 몽땅 포기하고 좀 더 견실한 방법을 모색하렴. 그러면 어쩌면…"

   하루노"…그러니까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가 아니라, 이참에 여친 후보를 찾아두는 편이 좋다고 생각하는데?"하루노 씨가 유키노시타의 고설을 가로막듯이, 뜻밖의 발언을 한다.

 하치만"어?"너무나도 뜻밖이라, 이 사람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전혀 모르겠다. 혹시 내 머리가 나쁜것 뿐일지도 모르지만 그 부근은 화려하게 패스.

 유이"마, 맞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어째선지 유이가하마가 물고늘어지듯 찬성한다. 혹시 배가 고픈걸지도 모른다. 물고늘어지는 점을 보건데.

 하치만"어? 그치만 다정하고 귀여운데다 장래성있는 여자가, 그야말로 어떤 의미로 전멸위기종 같은거 아닌가요?"

 스스로 말해놓고도 뭐하지만 어디에 있냐고, 그런게. 말 그대로 레드 데이터 걸. 전자기구가 부서질지도 모른다.
아마 시대가 시대라면 같은 무게의 금과 교환될 정도로 귀중하다. 절벽의 꽃은 물론, 기아나 고지에만 피는 환상의 난초같은 희소종.

 유키노"게다가 너처럼 썩은 눈을 가진 인간 쓰레기에게 호의를 가져주는 여자로 말하면, 그야말로 도시전설같은 거구나"

 하치만"뭐, 확실히 적어도 지금 현재로선 내 주위에는 없겠지…"

 유이"그, 그렇지도 아닌게 아닐까"///중얼중얼

 하루노"어쩌면 뜻밖에 가까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치, 유키노"하루노 씨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보인다.

 유키노"그, 글세. 그건 어떨까"///

 아니, 딱히 내 여친은 하얀 메리 씨라던가, 메리 씨의 양이라던가, 전장의 메리 크리스마스 같은게 아니라도 되니까.
'여보세요, 나 메리 씨. 지금 당신의 뒤에 있어…'라고 내 스마트폰에 전화 걸어오면 어쩐다고. 무서워서 밤에 혼자서 화장실에 못 가게 되잖아.

   미용실이 끝나서, 다음은 마침내 오늘 메인 테마가 되는 옷 선정이다.

 스○라스브○고, 타○・유아・○이, 아○아스 큐○이나, 대체 그거 어디의 나라 격투기 같은 브랜드의 가게 이름을 들었지만, 당연하게도 딱히 오는게 없다.
그저 끌려온 가게 안에서 힐끔 가격표를 본것 뿐이지만, 평생 내가 자력으로 사는것도 입을 일도 없을거라는것 만큼은 잘 알았다.

 셔츠 1장으로 나의 용돈 3개월치는 틀림없이 날아간다. 어쩌면 반년치일지도 모른다. 뭐야 그거 약혼 반지 같은거냐.
이런 비싼 옷으로 가벼운 마음으로 외출을 할 수 있을리 없잖아. 옷 입은채로 유괴당하면 어쩔건데. 이거 혹시 도코노마에 걸어둬야 하는거야?

 유이"아ー…, 너무 화려한건 힛키한테 안 어울린다고 생각하는데…"

 유키노"유이가하마, 화려한 옷이 안 어울리는게 아니야. 이 남자에게 어울리는 옷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거야"

 유키노시타가 유이가하마에게 엄마가 딸에게 간절이 달래듯이 말한다.

 유이"그럴려나-. 아, 보더 무늬같은건 어울리지 않아?"

 유키노"그건 그의 마음이 사악하니까 그런거니"

 하치만"그게 아니잖아"

 유키노"하지만 확실히 죄수복도 가로줄무늬구나"

 하치만"그거 어느 시대 이야기야?"

 유키노"이 참에 익숙해지는 편이 좋을지도 몰라…죄수복"

 하치만"그러니까 왜 내가 형무소에 수감되서 복역하는걸 전제로 이야기를 진행하는거야"

   결국은 옷 코디네이트는 모두 하루노 씨에게 맡기기로 했다.

 스폰서니까 어쩔 수 없지. 아니, 딱히 내 의견이 하나하나 각하되서 그런게 아니거든. 처음부터 들어주지 않은것 뿐이고.

 유이"그러고보니 힛키는 평소 어떻게 옷 고르는거야?"

 하치만"아니, 엄마가 사온걸 적당하게 입는것 뿐인데?"아마 유니실로나, 인근의 바겐세일품이라고 생각한다.

 그 외엔 적당하게 돈을 받고 코마치랑 같이 사러간다. 코마치가 여러모로 어드바이스를 해줘서, 옷을 고르는건 언제나 남에게 맡기고 있다.

   "오, 코마치, 이거 좋다고 생각 안해?"

 "으-음, 그럴까나-. 그치만 오빠한테는 이게 더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그, 그래?"

 "응, 완전 좋아! 멋져! 인기많겠다! 응, 이걸로 하자, 이거"

 "그런가, 응. 그렇구나. 좋아 알았다. 이거 주세요"

 "아, 그치만 그렇게 하면 돈이 좀 남아버리네-. 그렇지! 파르페라도 먹으러 갈까? 물론 오빠가 사는걸로!"

    하치만"…같은 느낌이다. 어때, 귀엽고 똑부러진 동생이지? 부럽냐?"

 유이"…힛키, 그거 완전히 코마치한테 속고 있어"

   마치 옷갈아입히기 인형처럼 번갈아 옷을 갈아입고 있었지만, 하루노 씨는 그다지 납득이 가지 않는 모양이다.

 유키노"오히려 안을 바꾸는 편이 빠르지 않을까?"

 하치만"그래선 의미 없잖아"

 유키노"그럼, 하다못해 얼굴만이라도 깨끗한걸로 바꾸면?"

 하치만"아니, 나는 호○맨 아니거든"

 유키노"그렇구나…아무리 봐도 히키가야 균은 세○맨이라는 느낌인걸"

 하치만"아무렇지 않게 히키가야 균이라고 하지 마"과거의 트라우마가 되살아나잖아.

 큭…나의 봉인된 기억이…아니, 중2병 같잖아, 그거.

 하루노"얼굴도 귀엽고, 어떤 옷도 결코 안 어울리는건 아닌데, 어째서 전체적으로는 이렇게 수상쩍은 인물로 보이는걸까…?"

 유키노"확실히, 옷차림이 단정한만큼 도리어 수상쩍은 느낌이 나네"

 유이"…왠지 결혼 사기꾼같아"

 중얼거린 유이가하마의 말에 유키노시타가 미묘한 얼굴을 한다. 그보다 너희들 옷 고르기 전에 먼저 단어 선택을 하는게 어때?

 유키노"분명 그 썩은 물고기 같은 눈이 모든걸 엉망으로 하는거야"

 유이"그럼 계속 눈을 감고 있는다거나?"

 하치만"못 걷잖아"

 유키노"차라리 눈을 부순다거나?"

 하치만"왜 그렇게 되는건데"

 하루노"차라리 눈알 채로 파내는 김에 코랑 귀도 떼어버린다거나?"

 하치만"…좀 더 온경한 방법이 생각나지 않는겁니까"움찔

 그거, 어느 시대의 어느 나라 형벌이야. 너희 자매는 세계 형벌 대사전 같은거야 뭐야?

    하치만"선글라스? 내가?"

 유이"응, 어때?"

 유이가하마가 또 엉뚱한 소리를 했다. 너무 엉뚱해서 날아가버릴 느낌이다. 스포츠 만능한 녹색의 공령이라던가, 머리에 프로펠러를 단 갈색머리 설남이 나올것 같구만, 그거.

 하치만"아니, 나. 선글라스는 커녕 안경조차 낀 적이 없는데…"

 유키노"신기하네. 그 만큼 썩은 물고기 같은 눈이라면 적어도 시력에도 나쁜 영향이 있을것 같은데"

 하치만"그러냐? 오히려 DHA가 많이 함유되어 있어서 머리 좋아질것 같은데?"

 유키노"…네 그 자신의 결점을 긍정하는 점, 도리어 존경해야하지 않을까 마저 생각이 들어"

 하치만"그럼 좀 더 그런대로 경의를 표해라…"

 하루노"아, 마침 나 갖고 있어. 남녀겸용 디자이너스 선글라스니까. 딱히 이상하지는 않지"

 나는 하는 수 없이 하루노 씨가 건낸 멋진 디자인의 선글라스를 받아들고 살짝 껴본다.

 생각보다 가볍고, 시력도 그리 어둡지는 않다. 이거라면 자신의 카피를 하나 늘리거나, 불법입국 우주인도 여유롭게 붙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유이"…헤?"///

 유키노"…에?"///

 하루노"…어머?"///

 상정밖의 반응에 당황한다. 설마 거꾸로 꼈나?

 하치만"…뭐야? 그렇게나 안 어울려?"

 어쩌면 모르는 사이에 울트라 세븐으로 변신한건 아니겠지. 아니, 어느 쪽이냐고 하면 나 울트라 하치만인데. 직역하자면 초하치만. 왠지 외톨이 냄새가 엄청 나는데 그거.

   하루노"의, 의외로 어울리는구나…"하루노 씨가 당혹해하며 중얼거리고,

 유이"조, 조금 멋질…지도"유이가하마가 왠지 모르게 감탄하고,

 유키노"모처럼 웃을 준비까지 하고 기다렸는데…"유키노시타가 실망의 한숨을 쉰다.

 아니, 딱히 웃기라고 한것도 아니고. 혹시 쿠마다마○시 같은 무언가를 기대한거야? 아니, 나한테 그런 드립은 없거든.
오늘은 그런 취지의 모임이었나? 역시 나 집에 가도 돼?

 삼인삼색의 표현이지만, 딱히 비꼬아진건 아닌 모양이다. 아무래도 다른 의미로 기대에 미치지 못한 모양이지만, 그건 내가 감지할 점이 아니다.

 말하던 유이가하마가 가장 놀라는 점에서 보건데, 왠지 못 먹는 감 찔러나보자 식으로 해봤던 의견을 말해봤더니 왠지 모르게 채용된것 같은 분위기다.
이렇게 또 쓸데없는 짓을 한다니까, 사축이라는 녀석은…. 단순히 어쩌다 생각나서 말한거니까 내일 아침에 기획서 같은거 제대로 정리될리 없잖아. 게다가 프레젠테이션까지 해라던가? …아니, 그러니까 그거 대체 어디의 누구 이야기인데.

   하치만"이제 됐지? 왠지 피곤해졌고. 슬슬 포기하고 집에 안 갈래?"

 역시 익숙치 않은 복장을 입는게 힘들어져셔, 넥타이를 풀고 그러는 김에 머리카락에 손을 찔러 조심스레 세팅된 머리카락을 조금 무너뜨린다.

 유이"…아, 그거 좋을지도!"

 하치만"어? …집에 가도 돼? 그럼 수고!"

 유이"그게 아니라. 그러니까 자연스럽게 집에 가려고 하지 마!"

 하치만"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자연회귀는 인간의 원점이잖아"

 유키노"오히려 너는 흙으로 돌아갸아 한다고 생각하는데"

 하치만"대수롭지 않게 무서운 소리 하지마"

    하루노"응, 그치만 그 비뚤어진 느낌이 왠지 조금 나빠 보여서 좋을지도 몰라"

 유키노"그렇구나, 히키가야의 경우, 비뚤어지거나 초라하거나, 침울해하는거 특기인걸"

 하치만"시끄러워"그러는김에 말하자면 뒤떨어지는것도 완전 특기다. 현재진행형으로.

 유이"아, 그치만 봐, 손자한테도 옷이 날개라고 하잖아?!"

 하치만"너 그거 혹시 칭찬할 생각으로 말한거냐?"

 유키노"유이가하마, 그 속담의 손자는 자자손손의 손자가 아니라, 망아지 라는 의미인데? 뭐, 어디의 색골마인지 모른다는 점에서는 확실히 가히 훌륭할지도 모르겠지만"

 하치만"말이 들어가는 만큼 잘 우려먹겠다는 생각이냐?!"

 하루노"30점"

 여전히 점수 주는건 짜구만, 이 사람.

    하지만 조금 건방진 말이라는건 대체 뭐야? 흑왕호나 카츠카제같은걸 말하나? 나, 세기말 패자도 장수도 아닌데?

 하치만"그보다 너, 조금 더 좋은 말이 있잖아?"

 유키노"미안해. 말이 부족한 모양이구나. 그 복장은 정말로 굉장히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 네 비소하고 소악당 스러운 모습하고 말이야"

 하치만"…아니, 잘 알았다. 너도 나를 칭찬할 생각이 일절 없다는것 만큼은 말이다…"

   하루노"좋아, 일단 이걸로 룩스를 맞추면 클리어구나. 남은건 작법이나 매너인데…"

 하치만"켁, 아직도 있는겁니까"

 하루노"당연하지. 그래도 내 남친이니까 완벽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런대로 수준이 되어주지 않으면 안 돼"

 경험치 벌지 않았으니까, 장비만이라도 충실하게 해도 레벨업은 무리잖았슴까.

 그보다 너무 남친 강조하지 말아주겠습니까? 왠지 유키노시타랑 유이가하마가 나를 보는 시선이 서서히 차가워지고 있으니까.
아- 가을도 가까워졌지-. 내 주위만 한발 먼저 겨울이지만. 이대로라면 나한테 봄같은건 당분간 올것 같지 않다.

   그때 마침, 어딘가에서 들은 적이 있는 경쾌한 멜로디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하루노 씨의 스마트폰에 착신이 있었던 모양이다. 핸드백에서 꺼내들고 화면을 확인하니, 형태좋은 눈썹이 찌푸려진다.

 하루노"잠깐 미안해…네, 여보세요?"

 하루노 씨는 조금 장소를 이동하며 무슨 얘기를 하고 있었지만, 조금 뜸을 두고 나서,

 하루노"유키노, 미안해. 먼저 계산해주겠니?"라며 황급하게 유키노에게 말을 한다.

 유키노"알았어"유키노시타는 그렇게 대답하고 점원을 찾으러 카운터로 향했다.

 

 남겨진 나와 유이가하마는 갑자기 무료해져서 둘이서 나란히 선채로 하루노 씨랑 유키노시타가 돌아오는걸 기다리게 됐다.

 대수롭지 않게 넓은 가게를 돌아보는 사이에, 정면에 놓여진 전신거울 너머로 유이가하마와 눈이 마주친다.

 하치만"…뭐, 뭔데"///

 유이"…따, 딱히"///

 어째선지 거북한 분위기가 흐른다. 아니, 딱히 이상한 짓은 무엇 하나 하지 않았는데?

 옅게 화장하여 평소보다 조금 더 어른스러워 보이는 유이가하마의 볼에, 살며시 복숭아색으로 물들어서 귀엽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눈을 내려뜬채로 손에 든 지갑을 들고 머뭇거리는 모습이 왠지 좀스럽다고는 전혀 생각하지도 않았다.

    애시당초 내가 유이가하마와 단 둘이 된 정도로…아니 그러니까 올려다보기로 나를 힐끔 쳐다보지 마.
네가 그렇게 과잉 의식하니까 상승효과로 내가 거북해지잖아.

 이제 이 지구상에 내가 있어도 좋을 장소는 남아있지 않는걸지도 모른다. 아니, 암만 그래도 그건 지나치게 비관적이잖아.

    하치만"…커흠. 아ー…, 유이가하마…"나는 현재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마지막 수단으로 나온다. 벌써 마지막이냐. 달리 방법은 없어?

 유이"에? 뭐, 뭘…까나?"///

 하치만"이렇게 단 둘이 되버렸는데 말이야"

 유이"으, 응"두근두근"

 하치만"나 이제 집에 가도 되냐?"

 유이"그렇구나…앗, 좋을리 없잖아!"

 하치만"칫"

 유이"왜 늘 그렇게 바로 집에 가려는 거야…"

 하치만"뭐, 이른바 동물의 귀소본능이라는 거지"

 덧붙여 나의 귀소본능은 철새급. 예를 들어 어디에 있어도 집 방향 만큼은 직감적으로 파악하고 있다.

 유이"…천성적인 힛키구나"

 하치만"멋지게 내츄럴 본 힛키라고 불러줘도 좋다"

 유이"의미 똑같구, 전혀 멋지지 않아…"

   유이"아, 힛키. 넥타이 비뚤어졌는데?"

 유이가하마가 나의 표정을 무시하고 복장 흐트러진것을 지적한다. 너 언제 선도위원이 된거야?

 하치만"아까 풀었으니까 그런거잖아?"나는 딱히 신경쓰지 않지만, 막상 다시 하려고 생각해도 평소 그다지 넥타이를 한 적이 없는 만큼 요령을 모르겠다.

 넥타이는 사축의 상징 같은거고, 가능하면 평생하고 싶지 않다. 목에 줄같은걸 감고 자[삐ーーー]하는 사형시킬때 말고 없잖아. 아니, 어느쪽이냐고 하면 그게 흥행하면 난처하지만.

 덧붙여 우리 학교는 비교적 교칙이 풀어져서, 공식 행사에 참가할때 말고는 특별히 넥타이 착용이 의무된건 아니다.
자이모쿠자처럼 일부 학생은 상시 넥타이를 하고 있지만 나는 기본 노 넥타이고, 하야마는 멋쟁이형 끈 타이를 착용하고 있다.
토츠카에 이르러선 늘 체육복 차림이다…그거 괜찮은거냐? 하지만 귀여우니까 용서한다, 내가.
그러고보니 토츠카의 교복차림은 본 적이 없는것 같은데, 굉장히 잘 어울릴것 같은데…특히 스커트 같은거.

    유이"정말, 자. 이리 줘봐"

 내가 버벅거리는걸 보다못했는지 유이가하마가 정면으로 돌아서 넥타이 끈을 다시 매준다.
서로 얼굴 위치가 상당히 가까운것도 신경쓰지 않는 모양이다. 이 녀석은 때때로 약삭빠를 만큼 여자다움을 보여준다고 생각하면, 무의식중에 굉장히 무방비한 모습을 보일 때도 있다. 나로서도 어느쪽이 진면목인지 판단에 곤란한 일이 있다.
포근한 플로럴 계의 향수 냄새가 비공을 간지른다. 이 시츄에이션은 왠지…신혼부부 같지…않나?

 하치만"너, 왜 넥타이 매는법 알고 있어?"잠자코 있는것도 부끄러워서 부끄럼 감추기로 말한다.

 유이"응-? 가끔 아빠 넥타이 같은거 고쳐준 적도 있구-…"

    "잘 어울리네요"

 하치만&유이"에?"///

 갑자기 누가 말을 걸어서 당혹한다. 어느샌가 초로의 점원이 옆에 서 있었다. 아무래도 유키노시타와 엇갈린 모양이다.

 유이"에? 히얏? 그, 그런거 아니에요!"///

 점원"그런가요?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하는데요?"생긋거리며 미소를 짓는다.

 유이"에 그게…그런…거…려나?"///유이가하마가 힐끔 올려다보며 나를 본다.

 잠깐만, 유이가하마. 너 뭘 착각하는거냐. 아니잖아. 그게 아니라…

    점원"네, 사이즈도 딱인 모양이고, 색도 손님하고 잘 어울리십니다"

 유이"에? 아, 그, 그쪽? 그렇지요-. 아, 아하하…"///

 거봐라, 이상한 생각하지 말라고. 내 반응이 난처해지잖…

 점원"두분 다 젊으신 모양인데요, 혹시 부부신가요?"

 하치만&유이"무슨?!"///

 유이"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아, 아니에요. 그그그그그그그럴 수가, 부부부부부부부부부부라고 들으면…저저저저저저저저저저는…고고고고고고곤란해요"///

 그렇지요-. 나도 어떤 표정을 지으면 좋을지 난처하니까-. 그보다 슬슬, 넥타이에서 손을 떼라. 목 졸려서 괴롭다고.

    "어머, 유이가하마. 그 남자를 교[삐ーーー]거면, 미치지 못하겠지만 나도 도와줄건데?"

 흉흉한 소리를 하면서 유키노시타가 돌아왔다.

 유이"아, 아, 아, 유키농? 괘, 괜찮아! 혼자서도 할 수 있어!"///

 그렇게 말하며 더욱 세게 내 넥타이를 조른다. 항복항복. 항복이라고. 아니, 진짜로. 슬슬 경동맥이 조여오니까. 진짜로 위험해.

 유키노"어, 어머, 그러니…"그 유키노시타가 왠일로 식겁하고 있다.

 유이"헤?"겨우 유이가하마가 정신을 차리고 내 넥타이에서 손을 뗐다.

 하치만"쿨럭…너, 자기가 뭘 하고 있는지 전혀 모르지…"

 솔직히, 조금이지만 꽃밭이 보였다. 그 건너편에서 돌아가신 할아버지랑 할머니가 손을 흔드는것도.

   유키노"언니, 늦네…"

 하치만"그러고보니 그렇구만. 혹시 먼저 집에 갔나?"

 유이"설마, 힛키도 아니구…"

 하치만"아니, 나는 지금부터 집에갈 참인데?"

 유이"그러니까 틈보고 바로 집에 가려고 하지 마!"

 유키노"내가 잠깐 찾아보고 올게"

 하치만"…혼자서 괜찮냐? 길 잃는거 아냐?"

 유키노"너, 나를 뭐라고 생각하고 있는거니?"

 하치만"미아 예비군이잖아?"

    이 녀석의 방향치가 유전이라고 하면, 어쩌면 언니농도 상당히 위험한걸지도 모른다. 아마, 지금쯤 알래스카 쯤일 것이다.
여기서 유키노시타를 탐색하러 보내면 2차 조난이 발생할 우려도 있다.

 유키노"실례로구나. 괜찮아. 평소부터 제대로 지도와 나침반을 갖고 다니니까"

 하치만"대도시(내 입장으로) 한 가운데서 평범하게 오리엔테이링 하지마"

 아니 오히려 이 녀석의 경우엔 생사를 건 서바이벌인걸지도 모른다. 유키노시타라면 우선 틀림없이 주택지 같은데서도 평범하게 조난할것 같으니까. 구조반 여러분도 바쁘니까 너무 번거롭게는 하지 마라. 일단, 3일치 비상식량 같은거 갖고 다니는 편이 좋지 않냐?

    하치만"자, 그럼 나도 잠깐…"유키노시타가 모습을 감췄을때 유이가하마에게 말을 건다.

 유이"에? 힛키 어디가? 나도 갈래!"

 하치만"…아니, 화장실인데? 너도 같이 올거냐?"

 여자랑 같이 소변을 보는건 역시 좀 그림으로도 윤리적으로도 문제가 있지. 이게 만약 토츠카였다면…역시 문제 있을것 같은데.
이젠 차라리 성별은 남성.여성.토츠카로 나눠도 되지 않아? 얼른 법률 개정해라고. 내가 토츠카랑 결혼할 수 있도록.

 유이"앗, 아니, 그런건 먼저 말해! 힛키 바보!"///

 하치만"왜 화장실 가는것 정도로 일일이 바보 소리를 들어야 하는건데…"

 너, 바보라고 하는 쪽이 바보라고 학교에서 안 배웠냐? 정말로 바보구만.

    화장실에서 일을 마치고 손수건으로 손을 닦으면서 원래 장소로 돌아가려고 하니, 어디선가 하루노 씨랑 유키노시타의 낮은 대화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미아가 되지 않고 무사히 자매의 재회를 해낸 모양이군.
어쩌면 여자도 같이 소변을 보는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개인실이니까 대화같은거 굉장히 하기 힘들것 같다. 벽을 쳐서 모스 신호 보내는건가?

 나는 둘의 모습을 찾아 주위를 돌아본다. 바로 인근에 있을텐데, 목소리는 나지만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따라 걸어가려고 하니, 갑자기 둘의 목소리가 조금 커졌다.

 하루노"…그럼 유키노한테 있어 히키가야는 뭐니"

 무심코 다리가 멈춘다. 무슨 대화를 하는거야, 이 녀석들.

   유키노"그하고는 같은 부활동의 부장과 찌질이 부원이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그 이외 무엇도 아니야"

 어이어이, 찌질이는 필요없잖아. 확실히 그 말대로긴 하지만.

 하루노"흐-응. 그럼 만약 내가 정말로 히키가야랑 사귀게 되어도 딱히 상관없지? 유키노한테 있어 히키가야는 단순한 찌질이니까."

 아니, 그러니까 찌질이가 아니라 부원이라고. 그보다 누구랑 누가 사귄다고?

 유키노"…읏! 그건…"말이 막힌다.

 이거 참. 무슨 얘기를 하는거야.
평소 유키노시타라면 "어머, 언니. 꽤나 취미가 나쁘구나. 저런 눈이 썩은 사람이라도 괜찮다면 어딜 데려가줘도 상관없어. 애시당초 데리고 걷는것 만으로 언니의 평판이 바닥을 치게 될건 불을 보듯 뻔하겠지만"정도는 할텐데…뭐야 그거, 내가 생각해도 너무 슬프지 않아?

 아무튼, 너는 결단코 도박 같은건 하지마라. 분명히 흥분해서 몸을 망친다. 아니, 패배한 화풀이로 도리어 세계를 멸망시킬지도 모른다. 그냥 평생 자라. 루루이에 같은걸로.

    유키노"서, 설령 언니라고 해도, 유키노시타 집안 이름에 흙을 칠하는 짓은 허락할 수 없어"

 집안 이름까지 더럽히는거냐…나는 얼마나 오염물질인거야? 세간에서 제염되어버릴 수준? 비제하기 위해 제오라이트나 벤트나이트가 필요해?

 하루노"슬슬 솔직하게 인정하는게 어떠니? 유키노. 너는 히키가야를…"

 유키노"아니야"

 유키노시타가 한층 큰 목소리로 언니의 목소리를 가로막는다. 그 울림은 마치 자기자신에게 들려듯 들렸다.

 하루노"이거 참, 정말로 둘 다 완고하다니까. 그런 점은 많이 잚았구나"

 어? 둘 다라는건 나도 포함되는거? 어느 틈에 투 맨셀이야?

 하루노"…아니면 서로 자신의 마음을 깨닫지 못한 척을 하고 있는건, 혹시 그 아이 때문이니?"

    그 때 내 머리에 떠오른건, 지금 여기에 없는 한 명의 여자애였다. 끊임없이 주위의 분위기를 읽고, 그마저도 깊게 내딛을 수 없는, 다정하고 기운차고 그러면서도 겁이 많은 구석도 있는 여자애. 그녀는 지금 이때마저도, 줄곧 기다리고있을 것이다. 유키노시타를.

 유키노"유, 유이가하마는 관계없어"

 하루노"어머, 나는 유이가하마라고 한 마디도 하지 않았는데?"

 유키노"…윽!"

 이거 참. 외톨이가 익숙치 않은 친구를 가지면, 역시 그것 만으로도 약점이 되는구만. 그 점에서 나한테는 약점도 사각도 없다. 무슨 소릴 한들 친구가 없으니까.

    유키노"어, 언니하고는 관계없잖아?"

 하루노"어머, 관계 없지는 않아. 유키노는 나한테 있어 단 한 명 뿐인 귀여운 동생이니까"

 응응, 그 마음은 잘 알지. 나도 코마치를 엄청 사랑하고. 그 한점에 있어선 의외로 마음을 맞을지도 모른다. 동생을 향한 사랑의 방향이 너무 다르지만.

 하루노"…거기다, 솔직히 히키가야한테도 흥미가 있어. 물론 한 명의 남성으로서"

 거봐 왔다. 하지만 그런 훤히 보이는 수에 낚인다면, 지금쯤 산더미 같은 그림과 술병과 빚을 안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뭐라고 해도 내게는 위대한 스승, 선구자들이 있다. 빌어먹을 아버지라는 이름의 반면교사가.

    뭐, 실제로 나로서도 결코 연상 여성을 싫어하는건 아니지만. 무심코 히라츠카 선생님의 얼굴이 떠오르지만, 물론 공손하게 패스.
하지만 하루노 씨는 신용할 수 없고, 확실하게 말해서 거북하다. 이번 일도 실제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러니까 지금 말도 결코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생각은 없다. 뒷면이 없는 수표는 빈말이나 똑같아서 전혀 신용할 수 없으니까.

   하루노"히키가야도, 이래저래 말하면서 유키노를 위해 진흙을 뒤집어 쓰고 있는데, 조만간 분명 웃는걸로 끝나지 않게 될건데?"

 유키노"그, 그건…"

 하루노"지금도 말로 하지는 않지만, 꽤나 심한 대우를 받고 있는 모양이야. 여러모로 하야토랑 시즈카짱한테 들었어"

 유키노"에?"

 아마 사가미 신파극에 의한 공작활동을 말하는거겠지. 확실히 다소 번거롭지만, 그리 대단한건 아니다.

 나의 흑역사랑 트라우마 파내기는 늘 있는 일이고, 그것도 기껏해야 고등학교 졸업할때까지 잠시 일 뿐이지, 영원히 그런것도 아니다.
긴 인생으로 보면 아주 짧은 시기다. 참고 견뎌낸다. 봄을 기다리는 복수초의 경지이다. 잡초의 끈질김을 얕보지 마.
뭐, 나한테 봄이 올지 아닌지는 정해진건 아니지만………오, 오겠지?

 그보다, 그보다도 분위기에 휩쓸리기 쉬운 토베의 재미반품 언동이 훨씬 짜증난다. 완전 짱난다. 하지만 그거 굉장히 단순하게 '짜증나는 지수'로 말하자면 자이모쿠자가 단연 톱이고.

   하루노"본래, 그의 포지션과 스탠스는 '외톨이. 주위 신경쓰지 않는다'일테지? 그런 그가, 너 때문에 상처투성이가 되어가는건, 언니는 가만히 보고 있을 수 없어"

 그보다, 내가 심한 처우를 당한건 근원을 따지자면 당신 탓이죠? 게다가 웃으면서 보고 있지 않았습니까?

 하루노"그리고, 이건 잘 기억하렴. 아무리 졸렬한 정의를 휘둘러도, 히키가야의 호의에 일방적으로 어리광부리는 동안은, 너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나'는 될 수 없어"

 그건 언니를 동경하는 유키노시타에게 너무나도 일방적이고 단정적이며, 게다가 결정적인 선고였다.

    나는 발소리를 죽여 우회하고, 그 자리를 떠나 유이가하마가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유이"아, 힛키! 늦어-! 증말, 뭐 하고 있었어?!"붕붕

 하치만"아아, 미안. 조금…"

 유이"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내 분위기에서 뭔가 낌새를 눈치챘는지, 유이가하마가 걱정스러운듯 말을 걸어온다.

 하치만"아니, 딱히. 아무것도 아냐"

 유이"흐-응. 그럼 딱히 상관없지만…"

 전혀 좋지 않다는듯 유이가하마가 배려하는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나는 그런 그녀의 눈을 직시하지 못하고 살며시 피해버렸다.

 유이"…하지만 무슨 일 있으면 혼자서 전부 안지 말고, 나한테도 상담해줘?"

 하치만"새삼 너한테 들을것 까지도 없이, 나한테 고민이라면 안지 못할 만큼 있거든. 갖고 싶으면 조금 나눠주고 싶을 정도라고?"

 유이"아하하…뭐야 그거-?"

 유이가하마가 무리하게 밝게 웃어보인다. 그리고

 유이"…그치만, 정말로 거짓말은 하지마?"쭈뼛쭈뼛 덧붙였다.

 하치만"아아, 물론이다. 거짓말은 하지 않아"

 ――― 나는 그렇게 말하고, 또 거짓말을 하나 했다.

     결국 하루노 씨한테 용건이 들어와서, 그 날은 급격히 그대로 해산하게 됐다.
아까전의 전화로 이와시미즈의 이름을 말했던게 들린 느낌이 들어서, 어쩌면 일요일 만나는것과 관계가 있는걸지도 모른다.

 그 후로 하루노씨랑 유키노시타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듯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을 하고 돌아왔다.
기분탓일까, 평소부터 흰 유키노시타의 얼굴이 약간 창백하게 보인다.

 유이가하마도 그걸 눈치챈 모양이지만, 내 얼굴을 힐끔 보기만 하지 특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차로 집까지 보내주겠다고 하는 하루노 씨의 제안을 사양하고 나는 양손에 큰 짐을 안은채로 혼자서 가게를 나간다.
고급 옷은 상자에 넣는구만. 상자에 들어간건 여자애라고 생각했다. 혹은 귀신이라던가.

 이 세상에는 신기한건 아무것도 없어…불합리한거라면 산더미 만큼 있지만.

 가게를 나와 잠시 걷고 있으니, 시기 나쁘게 일기예보로는 말하지 않았던 비가 내려, 우산을 갖고 오지 않은 나는 발이 묶이고 말았다.

 편의점에서 비닐 우산을 사더라도 양손이 가득해서, 쓸래야 쓸 수 없다.
하는 수 없이 셔터를 내린 가게의 처마에서 잠시 비를 피하기로 했다.

 이거 참, 운도 없구만. 어쩌면 여자랑 드물게 외출해서 그런가. 눈이나 우박이 내리지 않았던 만큼 아직 나을지도 모르지만. 혹은 개구리나 생선이나. 파플로츠 키즈냐.

 그러고보니 초등학생일때, 빗방울을 눈으로 쫓아 세어보거나, 빗방울을 피하는 수행이라며 놀았던 적이 있지. 어? 그거 혹시 나 뿐이냐?

 멍하니 비가 멎는걸 기다리는 내 옆에, 마찬가지로 비를 피해 왓는지, 첨벙첨벙 뛰어오는 인영이 있었다.
수고하심다. 좁은 공간이지만 살짝 이동해서 자리를 양보한다. 양보하는 정신은 소중하지? 딱히 내 가게인건 아니지만.

 "실례합니다…에, 아? 히키가…야?"

 인사와 함께 들려온 목소리에 뒤돌아보니 목소리 주인은 아까전에 가게에서 헤어졌던 유키노시타였다.

    하치만"뭐야 유키노시타냐…아직 집에 안 갔어?"

 유키노"그, 그래. 비가 내려서. 너야말로 아직…"

 하치만"보다시피다"

 유키노"…살아 있었어?"

 하치만"그쪽이냐?!"

 여전히 입이 험한 여자다. 덤으로 태도도 나쁘고, 성격은 더 나쁘다. 이래놓고 이 녀석이 이 만큼 미인이 아니고, 내가 패미니스트가 아니었다면 틀림없이 주먹 휘둘러서 된통 얻어 터졌을 것이다. 다행이다, 내가 패미니스트라서. 목숨 건졌구나, 내가.

    하치만"유이가하마는? 같이 있던거 아니었어?"

 유키노"갑자기 비가 내려서, 언니한테 부탁해서 차로 집까지 보내달라고 했어"

 하치만"그래서, 너는?"

 유키노"나는…그 차에 타는건 아직 조금…저항이 있다고 할까…"

 하치만"흐-응…"

 아까전에 언니농이랑 대화한것도 있어서 그런거겠지.

 거기다 아마, 고등학교 입학식 첫날에 내가 유이가하마의 애완견…그 사각 씹히는 식감과 버터 풍미나는 쿠키같은 양과자같은 이름의 개…사브레였나?…를 감싸고, 유키노시타가 탄 차에 치여서 입원하게 된걸 아직 신경쓰고 있는 모양이다.

 몇번이나 말했지만, 잘못한건 나고. 좀 더 잘못한건 고삐를 놓친 유이가하마고, 좀 더 잘못한건 차도로 뛰어든 사브레고, 뭐라고해도 가장 나쁜건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다는 상황이니까, 그저 뒷좌석에 앉아있었던것 뿐인 유키노시타가 신경쓸만한 일은 아니다.

 그보다, 좀 더 달리 신경써야할게 있잖아? 예를 들면 평소 나를 대하는 처우나 태도라던가, 언동이나.

    빗발이 더욱 강해져, 이대로라면 잠시 기다린다고 해도 멎을것 같지 않다. 노면에 검은 얼룩이 퍼지고, 빗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급격한 강수량 탓에 하수 배수처리가 쫓아가지 못하는 모양이다.

 유키노"…어째서 언니의 부탁을 받아들일 생각이 들게 된 거니?"전혀 신경쓰지 않는 식으로 유키노시타가 물었다. 얼굴은 서로 정면을 쳐다보고 있는 상태다.

 나답지 않다…그 유이가하마 마저 그렇게 말했다. 그렇다면 총명한 유키노시타가 깨닫지 못할리가 없다. 하지만 나는 거기에 대답할 생각은 없다. 그러니까 대답은 정해져있다.

 하치만"…딱히"

 유키노"그래…"유키노시타도 무리하게 추궁하려고는 하지 않는다. 그 마저도 내 안에서는 계산 끝이다.

 뚝 끊겨버린 대화지만 이상하게도 거북한 느낌은 없었다. 유이가하마와 달리, 이 녀석이 상대할 경우 이상하게 의식을 하지 않아도 되니까.
남은건 생명의 위험만 조심하면 만사 OK. 이 상황은 마치 라이프 오브 파이다. 유키노시타는 파이는 아니지만.

   유키노"…그 때는 그런 소리를 해버렸지만, 네가 한거니까 분명 제대로 된 다른 이유가 있겠지"

 하치만"그거 참 꽤 신뢰받고 있구만"생각지도 못한 말에 내가 비아냥을 섞어 대답한다. 도주로 확보는 잊지 않는다. 도망치는거냐.

 유키노"그렇구나…너에겐 문화제 때도 상당히 도움도 받았으니"의외로 솔직한 대답이 돌아와서 도리어 내가 당혹해버렸다.

 하치만"…아니, 그건 딱히 그런게 아니고"어디까지나 내가 멋대로 한 일이다. 이 녀석이 은혜를 느낄 필요는 조금도 없고, 그런걸 바라지도 않는다.

 유키노"하지만, 그 탓에 우리 반 여자애들한테…"///중얼중얼

 하치만"어? 너네 반에서 나 가지고 뭐라 말 들었냐?"

 혹시 나랑 관여되서 괴롭히기 당했다거나? …그건 말도 안 되나. 유키노시타가 상대가 되면, 괴롭히는 쪽도 그런대로 상당한 각오가 필요할테니까.
 이 녀석의 경우, 정론으로 상대를 끝까지 논파해서, 마음이 꺾일때까지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테고. 상대가 나같은 경우라면 특히.

    유키노"아니, 그게 아니라 그게…너랑 관련해서…여러모로…"///

 하치만"여러모로라니 뭐가?"

 유키노시타가 어째선지 새빨간 얼굴로 나를 힐끔 쳐다봤지만, 한숨을 한번 내쉬고 결심한듯 중얼중얼 말하기 시작한다.

 유키노"이, 인터컴으로, 부, 부부 만담했다…던가…"///

 하치만"큭"///

 유키노"커, 커플끼리 같은 차를 탔다…거나…"///

 하치만"컥"///

 유키노"그, 그리고…"

 하치만"죄, 죄송합니다 유키노시타 씨. 물어본 제가 잘못했습니다. 그 쯤 해주세요"한계입니다. 죽을것 같아요.

 유키노"내, 내가 학교 쉰 날에 바, 방에, 그게…벼, 병문안하러 왔다…거나…"///

 앙대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 이제 진짜 그만둬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그야 사실이긴 하지만, 남의 입으로 들으면 파괴력이 발군이군.
객관적 사실은 의외로 무서운거군요.

    유키노"저기, 나, 이런 성격이라서 제대로 말하지 못했지만…저기…너에게 되게 감…"

 유키노시타가 뭐라 말하려던 타이밍을 노리기라도 한 듯, 눈 앞에 자동차가 지나가, 그 차에 타이어가 물웅덩이를 감아올렸다.

 "우왓" "꺄악"

 아슬아슬하게 피했지만, 다리에 조금 물이 끼얹어진다.

 조금 뜸을 두고, 같은 방향에서 이번에는 트럭이 달려왔다.

 나는 다시 물웅덩이의 물이 날아오기 전에, 등을 돌려 유키노시타의 앞에 나선다.

 좁은 처마 아래라서, 필요 이상으로 몸이 붙어버리는건 어쩔 수 없다.
가능한 얼굴을 피했지만 유키노시타에게서 풍기는 옅은 쟈스민 향을 인식할 수 있는 정도로 접근해버렸다.

 하치만"억"

 유키노시타에게 정신이 팔린 탓일까, 가게 앞에 세워둔 치간에 머리를 세게 부딪치고 만다.

 방금전하고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크게 감겨오른 물은 나의 바지를 조금 적셨지만, 진작에 치워둔 양 손의 짐은 무사한 모양이다.
안도의 한숨을 쉰다. 이걸로 만약 더러워지기라도 했다면 여러모로 뒷일이 무서우니까. 상황에 따라선 국외도망도 생각해볼 필요마저 있을지도 모른다.

    유키노"괘, 괜찮아?"조심조심 유키노시타가 말을 건다.

 하치만"아아"

 유키노"저, 저기, 고, 고마워"///사그라질듯 작은 목소리.

 하치만"아니, 딱히. 그런것도 아니고. 우연히 피한 방향에 네가 있었던것 뿐이다"

 유키노"일부러 물이 날아오는 방향으로 피할것도 없지 않니?"

 하치만"그러니까 우연히다. 우-연-히"/// 지나치게 우연스럽게 둥그러워서 피존한테 먹혀버리거나, 진화해서 나시가 되어버릴 수준이다.

 유키노"…늘 그렇게 나를 위해 진흙을 뒤집어 쓰는구나…"중얼

 유키노시타의 중얼거림은 내 귀에도 들렸지만, 빗소리에 섞여 못들은 척을 했다.

 딱히 코끼리도 아니니까, 더위 대책으로 늘 좋아서 진흙을 뒤집어 쓰는것도 아니다.
애시당초 진흙투성이같은 인생이다. 새삼 조금 정도 더러움이 늘어난들 누구도 신경쓰지 않고, 나도 신경쓰지 않는다…그것 뿐인 이야기다.

    유키노"이마, 피가 좀 배어나오고 있어"

 하치만"이런건 침 바르면 나아"

 유키노"비 위생적이야"

 하치만"주문같은거야. 거기다 타액에는 멸균작용이 있는 모양이니까…"

 유키노"흐-응. 그렇구나. 몰랐어"

 아무래도 과연 유키페디아 씨도 모르는게 있는 모양이다.

 어쩌면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걸지도 모른다. 갑자기 기분나쁘다는 듯 입을 다물고 말았다.

 뭐야 이거, 여심과 가을은 공허하다고는 하지만, 이 녀석의 경우엔 여름 대기 수준으로 불안정하지 않아? 부어오르고, 때때로 피바람 불고, 그러므로 유키노시타.
그러고보니 노스트라다무스가 예언한 세기말에 하늘에서 내려온다는거, 공포의 대왕이 아니었던가? 뭐, 비슷한거지만.

   유키노시타의 침묵을 계기로 여태까지와는 다른, 거북한 분위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아-, 얼른 비 멎지 않으려나. 차라리 휴대용 휴지로 테루테로 보우즈라도 만들어버려?
그러고보니 테루테로 보우즈는 비가 멎지 않으면 목을 자르는거였나? 뭐야 그거, 혹시 새로운 해고방식이야? 그보다, 몇대째 아사에몬이야?

 유키노"…양 손이 막혀있는데 어떻게 할 생각이었니?"갑자기 유키노시타가 입을 열었다.

 하치만"…하?"

 뭐야? 그거 테루테루 보우즈 말야? 그보다, 혹시 아까 얘기 계속하는거야?

 이거 참, 듣고나서 깨달았지만 확실히 도로는 이미 비로 침수해버려서, 짐을 내려놓을만한 상황도 아니다.

 하치만"…그렇다고해서, 아무리 내 혀가 길다고 해도, 이마까지 닿을 정도는 아니고…"아니, 베로링가도 아니고.

 유키노"혀의 수만 센다면 둘은 물론이고 셋이나 있을것 같은데…"

 하치만"…네 경우엔 혀에 가시가 자라있는데다 독이 섞여있지만 말이다. 그것도 치사성의 독이 말이다"

    유키노"…어쩔 수 없구나"

 유키노시타는 한숨을 쉬면서 어깨에 맨 가방에서 판다 판씨가 프린트된 귀여운 반창고를 꺼냈다.

 하치만"…너, 판씨 너무 좋아하잖아"

 유키노"시끄러워. 딱히 상관없잖니"///

 하치만"혹시, 그거, 내 이마에 붙일 생각이냐…"우와, 완전 부끄럽다. 오히려 괴롭히는거에 가까운걸지도 모른다. 내 입장으로는.

 유키노"됐으니까 입다물고 이마를 내밀렴!"

 독한 말과는 반대로 내 머리에 손을 올려 살살 끌어모으고, 살며시 앞머리를 쓸어올렸다.

    바삭

 유키노"…!"

 하치만"…?"

 바삭바삭

 유키노"……"///

 하치만"……"

 바삭바삭바삭바삭바삭바삭바삭바삭바삭바삭

 유키노"…………"///

 하치만"…………"

 …왜 내 머리카락을 필요이상으로 만지는거야?

   유키노"저, 정말로 고양이 털 같구나…"///

 황홀한 표정으로 중얼거린다.

 하치만"하? 너, 무슨 소리 하는거야?"

 물어볼때 무심결에 눈이 마주친다. 제정신을 차린 유키노시타의 볼이 순식간에 새빨갛게 물들었다.

 유키노"엣? 앗? 아, 그게, 똑바로 쳐다보면 견딜 수 없으니까 그 썩은 눈을 감아주겠니?"///

 하치만"…예이예이"왠지 지독한 소리를 들은것 같지만, 나는 얌전히 눈을 감는다.

 거스르면 뒷일이 무서우니까. 딱히 부끄러운것도 아니니까. 정말이다?

 …그치만 이 녀석 정말로 눈썹 길구만. 이쑤시개 정도는 여유롭게 올리는거 아냐? 검고 예쁜 머리카락이랑, 마찬가지로 검은 눈동자, 연마된 대리석처럼 매끄럽고 흰 피부의 잔상이 눈꺼풀 뒤에 남는다. 그러고보니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기회는 일상에선 별로 없지. 무서워서 반경 3미터 이내에는 접근할 수 없고.

 유키노시타의 말을 들은대로 눈을 감고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지만 어째선지 부자연스러운 뜸이 생긴다.

 하치만"어이…?"역시 조금 불안해져서 쭈뼛쭈뼛 말을 걸어본다.

 혹시 내가 보고 있지 않는걸 기회삼아 얼굴에 낙서하는거 아니지? 유성 펜같은건 진짜 봐줘. 그거 진짜로 잘 안지워지니…까…

     유키노"…주문이야"

 갑자기 생각외로 가까이서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는 듯한 소리가 들리고, 내 이마에 부드러운 감촉이 전해졌다.

 하치만"?!"나는 반사적으로 눈을 뜰뻔했지만,

 유키노"아직 뜨지마!"큰 소리로 듣고 도리어 눈을 세게 감아버렸다.

 하치만"…예이"///

 이번에는 같은 위치에 반창고 같은게 찰딱 붙여진 감각이 전해진다.

 유키노"…끄, 끝났어"///

 내가 눈을 뜨니, 유키노시타는 나한테서 떨어진 위치에 서서 귀를 붉히고 고개를 홱 돌리고 있었다.

 하치만"…어, 어어. 땡큐"///

    깨닫고 나니 이미 비는 멎어서 햇살이 비치기 시작했다. 역시 잠시 내리는 비였던 모양이다.

 유키노"…그럼 내일은 언니에게 수치를 끼치지 말도록, 제대로 해"

 유키노시타는 그렇게 말을 하고 그대로 나를 보려고 하지 않고 잽싸게 가려고 했다.

 하치만"야, 유키노시타"

 내가 부르는 목소리에 움찔 반응하고 발을 멈춘다. 그리고 얼굴을 붉힌채로 천천히 돌아봤다.

 아스팔트의 노면을 적신 물이 구름 사이에서 비치는 태양빛을 반사해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하지만 가장 빛나 보이는건 그 빛에 비추어지는 유키노시타 자신이었다.

 유키노"무…무슨 일…이니…?"///

 하치만"………아니, 역이라면 반대 방향인데?"

    나는 이마에 판씨 반창고를 붙인채로 집을 향해 걷고 있었다. 남들과 스쳐지나갈때마다 키득키득 비웃어지는 느낌이 들었지만, 이상하게도 그리 나쁜 느낌은 들지 않는다.

 하치만"하지만…왜 하필이면 판씨냐고…"

 집에 도착할때까지 줄곧 얼굴이 화조를 띠고 있었다는걸 깨달은건, 무척이나 소녀취향인 반창고 탓 뿐만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왼쪽 뺨에 새겨진 낙엽 흔적 탓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떻게든 집에 도착했을 무렵에는 이미 인근은 어두워져 있었다.

 하치만"다녀왔어-"

 아버지랑 어머니는 일에 쫓기는 모양이라 이번 주말도 출근해서 아직 돌아오지 않은 모양이다.
순풍만항에 사축항로다. 행선지는 버뮤다나 사르갓소같은 느낌도 들지만.
하지만 이렇게 연달아 일하게 되면, 아무리 박정한 나라고 해도 슬슬 불안해져간다. 다음에 기회를 보고 생명보험 증액을 말해두자.

    코마치"오빠, 어서와-"

 코마치가 파닥파닥 소리를 내면서 현관까지 맞이나왔다.

 하치만"이거야, 지쳤다"나는 짐을 내려놓고 쭈그려 앉는다.

 코마치"왜 그래 오빠. 꽤 짐이 크네"

 하치만"아아, 이거?"

 코마치"우와, 그거 브랜드 제품아냐!? 오빠, 이런건 대체…"

 하치만"뭐, 그게…"

 코마치"…어디서 훔쳐온거야?!"

 하치만"…너는 네 오빠를 뭐라고 생각하는거야?"

 코마치"에이참-, 농담이래두. 그런데 110번은 몇번이더라?"

 하치만"됐으니까 전화기 내려놔"오빠는 인근 흉악범죄자 보다도 네 머리가 훨씬 질이 나쁘다는 느낌이 들거든?

    코마치"어라? 그 이마, 왜 그래?"

 하치만"아아, 좀 부딪쳤다"

 코마치"판씨구나…흐-응…그렇다는건 혹시…흠흠"

 하치만"왜 그래?"

 코마치"응-, 딱히…순조롭게 플래그 세우고 있구나- 해서"

 하치만"플래그? 나한테? 그거 혹시 사망 플래그냐?"아니, 플래그보다도 먼저 내 묘비가 설것 같은데 말이지.

    코마치"그래서, 오늘 데이트는 어땠어?"

 하치만"딱히…머리 자르고, 옷을 선물 받은것 뿐이다"

 코마치"서, 설마, 오빠야. 여자가 돈 내게 한거야?!"

 하치만"왠지 듣기 거북하네…오빠를 마치 호스트처럼 말하지 마"어느 쪽이냐고 하면 상대가 호스트(숙주)니까. 오히려 나는 패러사이트 같은 무언가이다.

 코마치"어, 어쩌지. 쓰레기라고는 생각했었지만, 여기다 여자애한테 돈을 받아먹는것까지 배워버리면, 진짜 제대로 된 인도에서 벗어나버리는데?"

 하치만"너 바보냐. 장래엔 전면적으로 아내님한테 길러질 생각이니까, 지금부터 이 정도로 당황해서 어쩌자고?"

 코마치"그거 기둥서방길 일직선이야"

 하치만"기둥서방이 아니라 전업주부일 뿐이다"

 코마치"고쳐 말했어?!"

    하치만"하아?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집에서 일하든 밖에서 일하는 차이일 뿐이지, 일하는건 마땅히 존경한다고"

 요컨대 사축이 되나 가축이 되나 선택지가 2개 밖에 없다는거지만. 뭐야 그거 스스로 말해놓고도 엄청 슬픈데.

 코마치"그러니까, 다른 선택지는 없어?"

 하치만"다른건 그렇군, 자택경비원이나, 편의점 경비대나, 인터넷 감시원이나, 1급 재택사나, 대표호체역이라던가?"

 코마치"우와, 진짜 글렀다. 세상에 미혹되지 않도록, 차라리 오빠를 ○이고 나도…"

 하치만"잠깐만, 마음은 알겠지만 오빠는 네 사랑이 무겁다!"그보다 남에게 폐를 끼칠리 없잖아. 가족에겐 끼칠지도 모르지만.

 코마치"도망친다"

 하치만"…도망치는거냐?!"

 코마치"그치만 괜찮아, 안심해도 돼. …코마치, 분명 오빠 몫까지 오래 살아서 행복해질테니까"

 하치만"지금 발언의 대체 어디 부근에 내가 안심할 요소가 들어있는건데…"

 역시 약삭빠르다. 과연 내 동생이다.

    오늘은 내가 당번이라서 냉장고 속에 있는 재료를 사용해서 저녁밥을 만든다. 자랑은 아니지만 이래보여도 주부력은 높다.

 어지간한 '자칭' 가사 도우미라고 하는 언니들보다 월등히 가사 스킬은 높다고 자부하지만, 어쨌든간에 가장 특기인건 손을 빼는거다.

 일이든 가사든, 어떻게든 모르도록 손을 빼는게 중요하니까. 상황에 따라선 가사 스킬 그 자체보다도 수요가 있기도 하다. 이거 사회에 나오고나서도 중요하니까 이 참에 제대로 메모해 두도록. 나는 사회에 나갈 생각 없지만.

    나도 코마치도 성장기인 만큼 일단 영양 균형을 생각해서 적당하게 썰은 야채 샐러드도 만들기는 하지만, 내가 싫어하는 토마토 만큼은 단연코 넣지 않는다. 그러니까 채색 의미로는 엄청 수수하기도 하다. 먹으면 되잖아, 먹으면.
덧붙여 내가 토마토 싫어하는건 확집이다. 스페인 토마토 축제를 보러간 날에는 유탄에 맞고 죽을 자신마저 있다.

 그리고 고기다. 구워도 좋고, 삶아도 좋고, 데쳐도 좋고, 날로도 좋다…아니, 역시 날로 먹는건 위험한가.
성장기 건강한 남자라면 일단 무조건은 아니더라도 고기를 입에 넣어두면 불평은 하지 않는다. 입에 고기를 문채로 불평을 하는건, 그건 꽤나 힘든 짓이니까.

    코마치"그치만 오빠, 정말로 괜찮아?"

 식사를 마치고 식기를 씻으면서 코마치가 내게 말한다.

 하치만"아? 뭐가?"

 코마치"새삼스럽지만, 하루노 언니랑 연인인척 하는거"

 하치만"뭐…, 적당한 시기를 보고 헤어지기로 했다고 했으니까, 딱히 괜찮지 않아?"

 나의 빛나는 전적에 또 하나의 패배라는 두 글자가 새겨질 뿐이다. 조만간 귀없는 호우이치처럼 될것 같다.

 코마치"그게 아니라, 오늘도 유키노 언니랑 유이 언니랑 같이 있었지?"

 하치만"그게 왜?"

 코마치"이거참, 이러니까 오레기는…"

 하치만"누가 오레기야?"그거 혹시 꿈의 섬공원의 새로운 캐릭터냐?

    코마치"알겠어? 오빠, 이런 인기절정기는 오빠의 짧은 인생 중에서 이제 절대로 오지 않는다구?"

 하치만"내 인생은 그렇게나 짧은거냐…그보다 인기절정기? 내가? 언제?"

 코마치"하아~. 틀렸다 이거…"

 하치만"하? 그거 혹시…"

 코마치"이거야원. 이제야 눈치챘어?"

 하치만"토츠카 말이야? 토츠카지? 토츠카가 틀림없다!"

 코마치"오빠야, 토츠카 오빠를 너무 좋아하네?!"

 하치만"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내가 제일 좋아하는건 코마치인게 당연하잖아?"

 코마치"헤? 아와와와와, 오빠도 참,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솔직하게 말하다니. 그래도 그거 코마치 입장으로 포인트 높다고 할까…"///

    파닥파닥 얼굴을 붉히는 코마치를 뒤로 나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확실히 표면상으로는 내일, 자산가의 도련님 뭐시기를 잘 속여서 하루노 씨의 남친인 척을 묵묵히 해내면 그걸로 한건 해결일 터이다.
그리고 내가 뻥 차이게 되어, 이번 사건이 모두 원만하게 수습되어, 아무 일도 없이 평소의 나태한 일생생활로 돌아간다면 정말로 쉬운 일이다.

 하지만, 돌아갈때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도록, 하루노 씨가 나한테 살며시 속삭인 말이,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내 머리 속에서 리플레이 되고 있었다.

 "―――히키가야, 나는 진심이거든?"

 혹시 내가 우연히 서서 듣고 있었던걸, 그녀는 알고 있었던걸까.

    ――― 그리고 당일.

 나는 어제, 하루노 씨가 사준 새로운 옷을 입고, 거울 앞에서 복장을 다듬고 소지품 체크를 주의깊게 마친다.

 지갑, OK!

 스마트폰, OK!

 손수건, OK!

 바지 자크, OK!

 자이모쿠자, NO!

 퍼펙트다. 내가 생각해도 무시무시할 만큼 완벽하다. 특히 자이모쿠자건.

 간식은 300엔까지였나? 분명 바나나는 간식에 포함되지 않았지…아니, 소풍도 아니고.

    내가 제대로 못하는 넥타이를 매는건 코마치가 매주었다.

 이렇게 보람차게 돌봐주는 동생이 있는 점에서, 이미 나한테는 평생 반려가 필요없는게 아닐까 생각마저 든다.
아니, 진짜로 실제로 필요없는거 아냐? 얼른 나라는 세계에 선구하여 남매혼을 인정해버리라고. 아니, 나 이미 시스콘이지만.

 코마치"비싸보이는 옷이네-. 어느쪽이냐고 하면 오빠가 옷에 입혀진 느낌?"빠르게 넥타이를 매면서 코마치가 말을 걸어온다.

 왠지 모르게 행복을 느끼는 점에서 나 엄청 큰일이다. 뭐가 큰일이냐고 하면, 사축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넥타이를 매는데 저항을 느끼지 않는게 가장 큰일이다.
이거 혹시 교묘하게 짜여진 인류 총 사축화 계획의 일환인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만큼 큰일이다.

    하치만"야야, 나는 내용물보다 포장쪽이 비싸보이는 증정품같은거냐?"

 코마치"받아주는 사람이 있다면 진정품도 붙여서 기쁘게 보낼건데? 의외로 기뻐할지도 몰라?"

 하치만"…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잖아…"그보다, 고마운 민폐일 뿐이지.

 스스로 말하는것도 뭐하지만, 마치 받은 쪽이 폐가 되는 결혼식의 미묘한 답례품같은 느낌마저 든다. 신랑신부의 이름이 쓰인 큰 접시라던가. 그거, 쓸 타이밍은 절대로 안 오고. 그렇다고해서 버릴래야 버릴 수도 없으니까.

 코마치"그치만 굉장히 잘 어울리는데? 멋져! 진짜로…"

 하치만"그, 그래?"사양하지 마. 좀 더 칭찬해도 좋다. 내가 허락한다.

 코마치"…마치 오빠가 아닌것 같아!"

 하치만"…칭찬하는거냐, 그거?"

 코마치"오빠의 장한 모습, 천국에 계신 아빠랑 엄마한테도 보여주고 싶었어"코마치가 훌쩍이며 코를 훌쩍이며 숙연히 중얼거린다.

 하치만"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 두 분다 방에서 자고 있을 뿐이잖아"

 이상한 첨가 설정은 그만둬줄래? 나중에 사리계산 맞추는게 힘드니까. 아니, 진짜로 부탁함다.

    하치만"그럼 다녀올게"

 코마치"아, 잠까안만 기다려어~!"

 하치만"뭔데?"너는 무슨 홍장미단이냐? 아니, 요즘 그런거 아무도 모르거든. 그보다 왜 내가 알고 있는거야?

 코마치"이거이거"

 하치만"…너, 라이터 같은거 갖고와서 어쩌려고?"나, 담배같은거 안 핀다. 물론 방화같은것도 안 하고. 불장난 하고 싶어도 같이할 상대가 없고. 그럼 말을 마라.

 코마치"그게 아니라, 거, 시대극같은데서, 거 가장 무르익을때 약속된 장소에 가서 부싯돌 같은걸로 불을 켜서 정화하는거 있잖아?"

 하치만"어, 어어. 왠지 모르겠지만 세심한데"뭐야, 이 녀석 시대극 같은거 보고 있어? 요즘 여중딩 사이에선 유행하는건가? 혹시 역사 좋아해?

 그에 비해선 일본사의 점수, 한자리 수였지? 신선조 1번대 맴버를 기억할거면, 그 전에 헤이안 천도 연호 정도는 알아둬라. 울지마라 파랑새 호호케쿄였나? 뭔가 다른가.

 찰칵 찰칵 찰칵

 코마치"응응응? 왠지 안켜지네~"정신을 차리니 어느샌가 코마치가 진짜로 내 등에 불을 붙이려고 하고 있다.

 하치만"아니, 뭐하는거야 너?!"

 코마치"글세? 찰칵찰칵 산의 찰칵새가 울것 같아서"

 하치만"나는 어디의 성질 나쁜 너구리냐!? 그보다, 진짜로 내 옷에 불 붙이지마. 농담으로 안 끝나잖아, 내 목숨이!"

 코마치한테 불달마형 당한데다 하루노 씨한테 불달마형 당할지도 모른다. 이것만큼은 아무리 나여도 손도 발도 댈 수 없다. 달마니까.

    코마치"그러고보니 오늘은 유키노 언니랑 유이 언니는 같이 안가?"

 하치만"아아, 그런 약속이니까. 이상한 방해가 들어가지 않도록, 실은 오늘 만날곳도 하루노 씨한테 입막음 당했어"

 코마치"그치만 둘 다 걱정하는거 아냐?"

 하치만"뭐, 확실히 내가 무슨 터무니 없는 실수를 저지를 가능성은 전혀 없지는 않으니까"

 코마치"…이거 참, 유이 언니가 손을 부치겠어"

 하치만"하아?"아무리 그 녀석이 요리 허접해도, 설마 자기 손도 부…칠지도 모르겠군. 응.

 코마치"그래서, 오늘은 멧세 호텔 뉴 로열 리갈 프라자 워○턴 호텔이었지?"

 하치만"…왠지 호텔이 하나 많은 느낌이 들지만, 분명 그런 이름이었을거다…아니, 왜 네가 알고 있는거야?!"

 코마치"오빠 책상 위에 팜플렛 떨어뜨렸는데?"코마치가 삭 내민다.

 하치만"그건 '놓여있었다' 라고 하는거다. 일본어로"하루노 씨한테 받은거로군. 정말이지 방심도 빈틈도 있어선 안 된다니까.

 코마치"그런데, 저녁밥은 어떡할거야?"

 하치만"아-, 오늘은 회식 갈거니까 됐어"

 코마치"…흐-응, 그렇다는건 레스토랑이구나…"중얼

    코마치"그치만 오빠는 기본적으로 겁쟁이에 헤타레구, 이번에도 무슨 어찌 못할 일에 말려들것 같아서, 코마치 걱정돼"

 하치만"뭐, 들키면 들킬뿐이겠지. 여차하면 성심성의껏…엎드려 빌면 될 뿐인 이야기다"

 코마치"…오빠, 요즘 엎드려빌기 자세가 몸판에 새겨졌네? 거기다 슬슬 보는거 질렸어"

 하치만"목판이 아니니까 멋대로 판에 새기지 마라"그보다, 동생한테 엎드려 비는 모습을 보는게 질렸다는 오빠는 대체 뭐야? 나, 사죄의 임금님 같은거야?

 코마치"뭐, 됐나. 그럼 힘내-"

 하치만"어, 잠깐 다녀오마"

    "자, 그럼. 이 경우엔 역시 유키노 언니일까? 유이 언니로는 조금 믿음직하지 못하구…"

 삣・삑・삐빗・삐삐삣…

    —————————————————————

 to:유키노 언니

 subject:걱정이에요

 body:

 지금, 오빠가 왠일로 경사스럽게도 외출했어요. 두둥, 이거 혹시 데이트인걸지도?!

 귀여운 동생으로서는 오빠가 너무 걱정이 되서 견딜 수 없어요(아, 여기 코마치 입장으로 포인트 높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치만, 아무리 걱정이 되도 귀엽고 귀여운 여자 중학생의 신분으론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훌쩍훌쩍.

 아아, 이럴때 누가 대신 모습을 보러 가줄 친절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좋을텐데.

 예를 들면 오빠를 잘 아는 사람이라던가.

 덧붙여 오빠가 간 곳은 멧세 호텔 뉴 로열 리갈 프라자 워싱○ 레스토랑인 모양이에요.

 —————————————————————

   "호이, 송신"뚜둑

 삥삐로리로링♪

 "벌써 답신?! 빨랏?!"

    —————————————————————-

 from:유키노 언니

 subject:re:걱정이에요

 body:알았어.

 —————————————————————-

    "이거참, 정말이지 손이 많이 가는 오빠네~"

    지정된 약속 장소에 도착하니 거기에는 낯익은 흑색의 고급차가 정차되어 있었다.

 부자가 타는 운전수 달린 흑색 고급차로 말하자면, 영화에서 곧잘 보는 그 닥스 훈트 같은 몸체가 긴 차 ―― 리무진을 연상하겠지만, 도로사정이 나쁜 일본에선 기껏해야 벤츠나 BMW, 혹은 벤틀리나 마이바흐 정도일 것이다. 아니, 나도 잘은 모르지만.
일단 차체 앞이나 뒤에 무척이나 자기주장이 강한 엠블럼이 달려있는거라고 생각하면 된다.
나같은 서민에겐 흑색의 고급차는 모두 똑같아 보이는건 어쩔 수 없다. 어차피 자력으로는 평생 탈 기회도 없으니까.

 내가 아는 중에서 가장 성금취미인 차로 말하자면 역시, 그 금삐까로 칠해진 궁형영구차 정도지만, 어쩌면 그거라면 평생에 한번 정도는 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인생 마지막으로.

    그러고보니 내가 고급차에 치였다고 들었을때, 빌어먹을 아버지가 가장 먼저 차를 걱정했다가 엄마한테 얻어맞았다는 소리는 들었다…뭐하는거야 그 남자. 늘 그렇지만.

 내가 다가가니 뒷좌석의 스모크 유리창이 열리며 하루노 씨가 이쁜 미소를 보였다.

 하루노"시간 대로 왔구나, 히키가야"

 일부러 운전수가 내려와서 뒷좌석 앞에 서서 공곤하게 말없이 인사를 하고 문을 열어줬다.

 하치만"실례합니다"나는 운전수에게 인사를 하고 넓은 차 안으로 들어간다. 하루노 씨가 멈의 위치를 틀어서 내 자리를 양보해줬다.

 하루노"아, 신발은 벗지 않아도 된다?"생긋

 하치만"…일단 그 정도는 알고 있어요"

 응, 물론 알고 있다. 하지만 순간 망설인건 내 가슴 속에 숨겨두기로 했다.

    오늘 하루노 씨의 복장은 언뜻 보기엔 형식적이지만 산뜻한 배색으로, 가슴부근이 크게 파여있었다.
약간 노출도가 높은 느낌도 들지만, 이상하게도 고급스러워 보인다.
역시 자신의 아름다움을 최대한으로 이끌어내는 요령이라는걸 알고 있는거겠지.

 자칫하면 내 시선이 하루노 씨의 가슴팍에 빨려들어같아지는걸 의지의 힘으로 억지로 떼어난다. 나, 이렇게나 의지력이 강했으면 어쩌면 숟가락도 여유롭게 굽힐 수 있는거 아냐?

 블랙홀의 중력은 빛마저 비틀어버린다고 하지만, 하루노 씨의 유력은 나의 비뚤어진 시선마저 올곧게 포착해버린다.
무심코 차분히, 육안으로 천체관측을 할뻔했다. 눈 앞의 쌍둥이 혹성을.

 하루노"출발해줘"

 운전수"알겠습니다"

 운전수가 인사를 하고 차를 출발시킨다. 정말로 움직인건지 모를만큼 조용하다. 어쩌면 지면에서 떠있는걸지도 모른다.
아니, 이 자리에서 떠 있는건 어쩌면 나 혼자인걸지도 모르지만.

    하루노"이 차는 처음이었니?"

 하치만"확실히 안에 타는건 처음이네요…"푹신푹신한 시트에 허리까지 파묻으면서 대답한다. 너무 푹신푹신해서 제대로 중심을 잡을 수 없다. 이너머슬 같은게 단련될것 같다, 이거.

 차의 외관, 범퍼 색이나 형태나, 특히 강도에 대해선 숙지하고 있다. 머리가 아니라 몸이.

 하치만"혹시 오늘 운전수는…?"

 힐끔 백미러를 통해 운전수의 표정을 엿본다.

 하루노"아니야. 그 때 운전했던 운전수는 이미 그만뒀으니까"

 하치만"에? …그, 그건 역시 저 때문인가요?"

 하루노"딱히 히키가야가 신경쓸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하치만"아뇨, 그렇기는해도 역시…"

 아무리 그래도 끝맛이 나쁘다. 나는 새삼 그때 뒷일을 생각하지 않은 자신의 경솔한 행동을 부끄러워했다.
과거를 돌아보아도 달리 부끄러워할 일은 많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일단 지금은 그 부근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해둔다. 더 침울해질테니까.

    하루노"그러고보니 그 사고 말인데, 유키노는 뭐라고 말했니?"

 하치만"아뇨, 특별히 아무것도. 치인게 저였다는것에 대해서도, 그다지 몰랐던것 같고요"

 그걸 눈치채고 있었다면, 아마 그 녀석이니 좀 더 자신을 탓했을게 틀림없다. 왜 그때 브레이크가 아니라 액셀을 밟으라고 하지 않았냐, 거나.

 하루노"그러니. …하지만 역시 아직 신경쓰고 있는것 같아. 그때 이래로, 그다지 이 차에 타려고 하지 않는걸"

 하치만"신경쓸 일도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이미 끝난 일이고"그러니까 달리 신경써야 할 일은 많이 있잖아? 특히 평소 내 취급이라던가.

 하루노"어머, 본인은 그렇게 생각은 하지 않는것 같은데?"

 하치만"아ー…그 녀석은 결벽증 스러운 점이 있으니까요"결벽한데다 어깨가 뭉칠정도로 완벽주의. 잘 됐구나, 가슴이 없어서. 크면 여러모로 큰일인 모양이라고?

 하지만 가해자와 피해자가 넘을 수 없는 일선…이라….
요컨대 그때부터 이미 정해졌구만. 내가 그 녀석의 피해자가 된다는 운명은…그것도 현재진행형이라구요?

    하루노"…실은 오늘, 안 오는게 아닐까 생각했어"

 창 밖의 경치에 시선을 주면서 하루노 씨가 중얼거렸다.

 하치만"…왜 그렇게 생각한겁니까?"

 하루노"그치만 네가 나한테 억지로 의리를 지킬 필요는 어디에도 없잖니?"

 하치만"그런가요? 당신에게 빚을 하나 만들 수 있다…그건 스스로도 말씀했다시피, 저에게 있어 결코 손해되는 거래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얼버무리듯 모른체 말한다.

 하루노"있잖아, 히키가야. 그거 말인데…"

 하치만"네?"

 하루노"그거 혹시…"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눈치채고 내 몸이 살짝 굳어진다.

 하루노"…유키노를 위해서…인거니?"

 하치만"…!"

   여전히 예리하군. 나의 얕은 생각은 전부 꿰뚫어보고 있다는 거다.

 하루노"…역시 그랬구나"

 나의 침묵을 긍정으로 받아들였는지, 작게 한숨을 쉰다.

 하치만"…하지만 당신도 그걸 전제로 저를 지명한거잖아요?"

 하루노"엣?"

 단순히 함정을 팔 생각이었지만, 아무래도 정답인 모양이다. 순간 하루노 씨의 안색이 변한다. 혹시 무슨 지뢰를 밟았나? 긴급탈출 버튼은 어디야?

 하치만"무엇보다, 당신의 진짜 목적이 뭔지까지는 모르겠지만…"

 하루노"…히키가야? 전에도 말했다고 생각하지만, 나. 감이 좋은 아이는 싫어해…"

 하루노 씨가 나로부터 고개를 돌린다. 어째선지 그 목소리는 작아서 평소의 하루노 씨 답지 않았다.

 그리고 그건 마치, 삐진것처럼 들린건 나의 기분탓이었을까.

 나는 그녀에게 들키지 않도록 작게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여차할때를 위해 손잡이에 대고 있던 손을 살며시 되돌렸다.

    이미 하루노 씨한테 들은대로, 오늘 목적지는 멧세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고급 호텔 최상층 레스토랑이다.

 차에서 내려 최상층까지 올려다보니 목과 허리가 아파졌다. 진짜냐. 운동화가 아니라 등산화를 신고 오는편이 낫지 않아? 일단 현지 산악인이라도 고용할까?

 하루노"히키가야, 여기야"

 하루노 씨는 주위와 다른 환경에 당혹하는 내 팔을 잡고 익숙한 태도로 에스코트 해준다.

 그 자신감에 넘치는 망설임없는 발걸음은 이미 몇번이나 이곳을 이용한 적이 있는게 틀림없다. 그건 필시 부루주아 세계에서 살아온 증거일 것이다.
역시 나 같은것과는 사는 세계가 다르다는것을 새삼 통감한다.

 그리고 유키노시타도 본래는 이쪽측의 인간일 것이다. 나같은 외톨이를 상대할 일도 없이, 화려하게 차려입고 사교계에서 의연하게 빛나 있어야할 존재인 것이다. 그야말로 하루노 씨처럼.

 평소엔 바로 곁에 느껴지는 유키노시타의 존재가 무척이나 멀게 느껴진다. 나는 무의식중에 앞머리로 숨긴 이마의 상처자국에 살며시 손가락을 댔다.
역시 자매인 만큼, 하루노 씨와 유키노시타는 보는 각도에 따라선 얼굴이 많이 닮았다. 어제 일을 떠올리니, 조금 심장 고동이 빨라졌다.

 혹시 이건………………부정맥? 구심제 먹어둘까?

    그러고보니 전에 있었지, 이런데. 그건 분명 카와…카와…카와 뭐시기 일로 역시 호텔 바에 갔을때였나?

 하루노"좀 더 당당하게 있어도 되는데?"

 하치만"아니, 너무 눈에 띄면 저격당할지도 모르잖습니까"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닌가. 탄 낭비니까.

 하루노"너무 두리번 거리면 수상쩍은 인물로 의심받을텐데?"

 나도 들은 적은 있지만 고급 호텔 로비를 악용해서 신용사기같은게 있는 모양이다. 그러고보니 아까부터 나의 일거수일투족에 보디가드의 뜨거운 시선을 느낀다. 이거 참, 인기남은 괴롭구만.

 하치만"괜찮다고요…당신과 같이 있지 않는 이상, 이런곳에 오지 않으니까요"같이 있으면 치한이니 스토커니 착각받을지도 모르지만요.

    어쩌면 평소 습관탓에 밝은 곳을 피해 벽측으로 가려고 하는 나였지만, 하루노 씨는 나와 팔장을 낀채로 플로어의 중앙을 당당하게 가로지른다.
따라서 나도 끌려가듯 그쪽을 지나가지 않을 수 없다. 마치 산책중에 싫다고 떼부리는 강아지 같구만.

 하지만 그렇게해서 무의식 중에 남의 시선을 피하려고 하는 점에서, 혹시 나는 스파이나 특수부대 소질이 있는거 아냐? 캐치 세일스나 티슈 배급 알바도 그쪽에서 피할 정도니까. 내가 평범하게 걷는것 만으로 말을 걸어오는건 순경 뿐이다.

 우리들은 플로어 앞을 빠져나와, 곧장 엘레베이터를 타고 그대로 최상층의 레스토랑으로 직행했다.

 동승한 손님이나 종업원의 시선이 우리…라기보다 오히려 하루노 씨에게 모인다. 역시 미인이니까, 그야 당연히 눈에 띄겠지.
옆에서 보면 나와 하루노 씨는 커플로 보이는걸까? 팔짱도 끼고 있으니까.

 마침 그 때, 음성 방송이 다음으로 정지하는 층을 고했다.

 "띵-동♪ 5층 입니다"

 …아아, 그러냐.

    성층권에 도착해버리는게 아닐까 생각할 정도로 긴시간 탑승한 엘레베이터에서 해방되니, 바로 눈 앞에 그 레스토랑이 있었다.

 유리창으로 하계를 내려다보니, 사람도 차도 과자부스러기처럼 작게 보여서, 왠지 자신이 대단해진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과연, 무심코 "봐라, 사람이 마치 쓰레기 같다"라고 하면서 웃어버리고 싶어지는 기분도 모르는것도 아니다. 하진 않지만.

 우리는 레스토랑으로 들어가 급사에게 안내받아 예약해둔 테이블 자리에 도착한다. 긴장한 나머지 역시, 왠지 모르게 주저하고 만다.

 하루노"히키가야, 혹시 긴장하고 있는거니?"

 하치만"하아, 조금요"

 이런 나하고 안 어울리는 곳에 데려와져서 긴장하지 않을리가 없다. 긴장한 나머지 모기향 같은걸 피워버리고 싶을 정도로 긴장하고 있어서 역시 긴장해버린다. 아니, 나 무슨 소리 하는거야?

 하루노"내가 말한대로 하면 괜찮아"테이블 아래로 하루노 씨가 살며시 내 손에 자신의 손을 겹친다.

 하치만"그렇슴까…. 그, 그렇지요?"그리 말을 듣고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쉰다.

 …그보다, 그러고보니 나, 아직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는데? 뭐가 괜찮은거야?

    하루노"…아, 나 말야. 히키가야한테 있어 중요한걸 깜빡하고 말 안했다는걸 지금 깨달았어"

 하치만"하?"뭐야 이제 와서?

 하루노"미안해. 이야기는 나중에 할게. 이와시미즈 씨가 왔어"하루노 씨가 넌지시 자세를 고친다.

 "하루노 씨,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내 등뒤로 투명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이와시미즈 콘체른의 도련님 뭐시기가 납신 모양이다.

 칫, 목소리로 보건데 이미 훈남이구만. 부자에다 훈남이라니, 세상은 어째서 이렇게나 불공평한거야? 정부는 시급히 격차시정을 해야한다.

 짜증을 느끼면서 천천히 뒤돌아본 나의 선글라스 렌즈에는,

 ――― 어째선지 자이모쿠자의 얼굴이 비치고 있었다.

     하치만"…자"

 하치만"…자이모쿠자…라고…?"

 도련님"하? 자이…?"

 미심쩍게 나를 쳐다보는 남자의 면상은 딱보아 자이모쿠자 그 자체였다.

 도련님"이거원, 처음 뵙겠습니다…저는"

 뻐억

 도련님"흐게헉"

 다 말하기도 전에 난데없이 나의 혼신의 오른주먹이 자이모쿠자의 왼쪽 뺨에 작렬한다.

 하치만"자이모쿠자! 이 자식, 여기서 무슨 짓을 하는거야?!"

 때린걸로는 부족해서 양손으로 멱살을 움켜쥐고 세게 흔들었다.

 도련님"어버버버버버? 무, 무슨 짓을하시느느느느느느느?"

 하루노"히키가야, 스톱! 스톱!"

 하루노 씨가 황급히 제지하러 들어온다.

 하치만"그치만 이 녀석, 자이모쿠자라고요?! 하필이면 자이모쿠자 주제에 자산가의 도련님을 사칭하다니!"

 하루노"아니야! 그는 아니야! 닮았지만 아니야! 다른 사람이야!"

 하치만"다른 사람?!"나는 자이모쿠자의 얼굴을 한 남자와 하루노 씨의 얼굴을 교대로 쳐다본다.

 도련님"…"(백안을 보이며 거품을 뿜고있다)

    하치만"좋아, 그럼 질문이다! 대답해라!"

 내가 더욱 세게 흔들자, 자이모쿠자의 얼굴을 한 남자가 끄덕거린다. 혹시 목이 흔들려서 끄덕거린걸 뿐일지도 모르지만, 그런건 알바 아니다.

 하치만"세○러문에 나오는 지○다이트 역의 성우 이름은?!"

 도련님"코○사카○야"중얼

 하치만"역시 자이모쿠자다!"퍽 퍽

 도련님"아흐억"

 하루노"아니야! 그런거 아니야! 그가, 그 사람이 이와시미즈 씨야!"

 하치만"하아?!"

 나는 다시, 나한테 멱살을 잡힌채 뻗은 남자의 얼굴을 내려다본다.

 이와시미즈"…처, 처음 뵙겠슙니다…이, 이와시미쥽니다…"

    하치만"거짓말! 이런 얼빵한 면상이 이 세상에 둘이나 존재할리가 없어!"그보다 사진하고 전혀 다르잖아?!

 이와시미즈"어, 얼빵한 면상이라니, 실례로군"도련님이 얼빵한 얼굴로 반론한다.

 하루노"이와시미즈 씨, 죄송합니다. 그가 긴장한 나머지 좀 도용해서"

 하루노 씨가 자이모쿠자의 면상을 한 도련님의 얼굴에 바지런하게 손수건을 대면서 사죄한다.

 이와시미즈"으, 음. 잘 모르겠지만, 여기는 하루노 씨를 보고 온경하게 넘어가도록 하죠"

 레스토랑 안이 순간 소동이 되었지만, 이와시미즈와 하루노 씨의 중재로 나의 갑작스런 폭주도 크게 번지지 않은 모양이다.
아무래도 이 호텔에서 둘은 VIP대우인 모양이다. 이와시미즈와 유키노시타의 이름을 올린 업계일테지. VIP라고해도 진공단열재나 버추얼 IP 주소는 아니다. 아무도 그딴거 모른다고.

 하루노 씨에게 달래지고, 땅에 떨어진 위엄도 되찾듯 복장 흐트러짐을 고치고는 있지만, 무심코 앞으로 수인 하루노 씨의 가슴 굴곡에 눈이 빨려가고 있다.
같은 남자로서 그 마음은 아플만큼 잘 안다. 특히 고간이.

    하지만 보면 볼 수록 얼굴은 판박이지만, 확실히 비싸보이는, 좋은 자재의 의상을 입고, 자이모쿠자에겐 없는 좋은 교육에서 느껴지는 기품이라는게 느껴지지 않는것도 아니다. 자이모쿠자의 얼굴에서 기품을 느낄 일이 있을 줄은 예상도 못했지만.
거기다 자세히 보니 나이도 상당히 많다. 역시, 다른 사람인 것이다.
다른 사람이라면, 이건 역시 실수였을지도 모른다…첫인상은 최악이 되버렸다. 뭐, 서로 마찬가지지만.

 여긴 하루노씨의 체면을 세워서, 솔직하게 사죄해두는 편이 좋을 것이다.

 하치만"죄송합니다. 착란해버렸습니다. 지인과 많이 닮으셔서"

 이와시미즈"호오, 친구입니까?"

 하치만"아냐!! 누가 친구냐?!"

 이와시미즈"헤힉?!"

    자이…아니 이와시미즈가 과잉 반응을 보이는건, 오늘 나의 복장과 선글라스라는 조합이 조금 위험한 녀석이라는 느낌으로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전혀 그럴 생각은 없었지만, 좋은 교육을 받은 만큼, 무균배양받은듯한 도련님 쪽이 조금이지만 겁에 질린 모양이다.
그 증거로 불안하다는 눈으로 힐끔힐끔 내 안색을 엿보려고 하는게 보인다.

 하루노 씨도 그걸 눈치챈 모양이라, 태연히 도와준다.

 하루노"죄송합니다, 그는 천성적으로 머리가…아, 그게 아니라 눈이 약해서 선글라스를 벗을 수 없어요"

 이와시미즈"그렇습니까. 머리가…"그러니까 납득했다는 듯 수긍하지 마.

 뭐냐고, 머리가 약하다니. 맞는 소리긴 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잖아. 하지만 자이모쿠자의 면상을 가진 녀석한테 머리 약하다고 들으니 괜히 열받는다.

    하치만"먼저 봤던 사진하고는 전혀 다르군요"나는 일부러라는듯 말했다.

 이와시미즈"어라, 혹시 그걸 보신겁니까. 이야아, 사진이 안좋게 나와서 부끄럽습니다"

 어떻게 호의적으로 보더라도 200퍼센트 정도 수정했다. 거의라고 할까 완전히 다른 사람. 아마, 배경 말고는 원형도 남아있지 않다.
그보다, 이거 그냥 사기잖아, 사기. 흑이니 백이니 하기 이전에, 완전한 사기다.

 산에 함정에 걸린 희고 큰 새를 구해내도 좀처럼 보답하러 돌아오지 않는다고 이상하게 생각해서 따져봤더니, 실은 두루미가 아니라 사기였습니다, 라는 느낌으로, 엄청난 사기다.
다음부터 맞선 사진에는 '이건 이미지 화상입니다'라고 주의를 쓰는걸 법률로 의무해야할 것이다.

    하루노"다시 소개할게. 이쪽이 이와시미즈 씨"

 이와시미즈"므흠. 처음 뵙겠습니다. 이와시미즈 시즈오입니다"존대한 태도로 인사를 한다.

 아니아니 아무리 봐도 도련님 면상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갱지라고 할까 잘 줘야 재생지다. 화장실 휴지로 쓰면 변기에 넣으면 막힐듯한 얼굴이다.

 하치만"…안녕하세요"나는 빼꼼 고개를 숙이고 유릿잔에 담긴 물을 입에 댄다. 갑자기 큰 소리를 질러서 살짝이지만 목이 말랐다. 이 참에 목을 적셔두기로 한다.

 하루노"…그리고 이쪽에 있는 그가, 저의 피앙세인 히키가야에요"

 하치만"붓?!"

 이와시미즈"누와핫?"

 뿜어낸 물이 이와시미즈의 얼굴을 직격한다. 얼굴이 흠뻑 젖었지만, 딱히 물을 끼얹으면 모두가 멋진 남자가 되는것도 아닌것 같다.
뭐, 얼굴이 자이모쿠자니까 당연한가. 그보다 지금, 하루노 씨, 뭐라고 했어요?
나, 와타나베 ○미가 아니니까, 흉내내기 못한다고요? 그건 비욘세인가. 좀 다르다. 아니, 완전 다르잖아 그거.

    하치만(잠깐만요? 피, 피앙세라니?)소근소근

 하루노(쉿. 됐으니까 여기는 잠자코 나한테 맞춰줘)소근소근

 이와시미즈"그렇습니까. 당신이 히키가야입니까. 상상했던 분하고는 전혀 다르군요…"교육이 좋은 모습을 보이며, 당황하지도 난리법석을 피우지 않고 얼굴을 냅킨으로 닦는 자이…이와시미즈.

 하치만"그건 제가 할 소리입니다. 제 예상을 아득히 하회하는 얼굴…아얏!?"

 하루노"히・키・가・야?"생긋

 하루노 씨가 미소를 지은채로, 테이블 아래로 내 정강이를 차고, 그대로 발등을 짓밟는다.
뭐야 그 발기술 콤보. 수수하지만 엄청 아픈데요? 핀 힐이 되게 뾰족하잖슴까. 혹시, 매일밤 연마하는겁니까?

    하치만"…히키가야 하치만입니다"나는 꾸벅 고개를 숙이고 간단하게 이름을 고했다.

 하루노"히키가야는 동생하고 같은 학교의 같은 학년이에요"

 이와시미즈"동생분의? 아아, 유키노짱, 이었나요?"안경을 벗고 정중하게 닦는다.

 뭐라아…? 유키노짱…이라고?

 하치만"…어이?"

 이와시미즈"뭐, 뭔지요?"

 하치만"유키노시타를 잘 모르는 주제에, 짱 같은걸 붙여서 부르지 마!!"

 이와시미즈"힉, 죄, 죄송합니다"

 하치만"그 녀석한테 그런 귀여움따위가 조금도 있을리 없잖아!"

 콰직

 하루노"히・키・가・야?"생긋

 하치만"…죄송합니다"너무 흥분해버렸다. 그보다 메뉴판 모서리로 머리 치지마요. 매너 위반이잖습니까, 그거. 금속으로 보강도 해뒀고.

    하루노"그래서, 히키가야는 동생하고 같은 학교의 부활동도 같이 하는 것도 있어서…"

 이와시미즈"호호오"

 하루노"동생이 여러모로 신세를 지고 있는 관계인데다, 저도 때때로 만날 기회가 있어서 거기서 알게 됐어요. 그치?"

 끄덕끄덕끄덕끄덕. 무서우므로 오로지 잠자코 끄덕인다. 채찍질하는게 아닐까 생각할 만큼의 고속도. 아마 가볍게 음속은 넘었다.

 이와시미즈"과연. 그래서 히키가야와 하루노 씨의 동생분은, 어떤 부활동에 소속하고 있습니까?"

 하치만"봉사부입니다"

 이와시미즈"봉사부?"

 하치만"예,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제가 일방적으로 유키노시타에게 노동이나 봉사를 강요받는 독재정권…이 아니고 말이죠…"

 힐끔, 하루노 씨의 표정을 엿본다.

 하치만"학생이 품는 고민이나 문제를 해결하는 보조를 하는것을 본래 목적으로 한다…는 부활동입니다"적어도 나는 그렇게 들었다. 믿지는 않지만.

    이와시미즈"꽤나 수수한 부활동인 모양이군요. 다재다능한 하루노 씨의 동생이라면, 운동계든 문화계든 분명 화려한 부활동으로 활동할 수 있을텐데요?"

 도련님이 알랑거리는 어조로 하루노 씨에게 말을 건다. 아첨이라는 거겠지.

 하루노"그렇네요. 저도 처음에 들었을때는 솔직히 의외였어요"

 유키노시타가 봉사부에 소속하고 있는건 유키노시타의 의사가 아닌 히라츠카 선생님의 생각이지만, 굳이 여기선 말하지 않기로 한다. 내게 있어선 강제적이고.

 하루노"하지만 동생은 옛날부터 뭘 해도 저를 이길 수 없었으니까요, 비교당하는걸 피하고 싶었던걸지도 모르겠네요"

 그립다는 어조이지만, 진실만을 담담하게 말하는것이다.

 확실히 소질은 발군이지만, 체력이 따라가지 못하니까. 애시당초 아무리 유키노시타라고 해도 상대가 하루노 씨라고 하면 역시 분에 넘친다.

 하루노"테니스, 발레, 승마, 합기도, 저 몰래 필사적으로 연습하고 있었어요"

 과연, 그 녀석은 지기 싫어하는 기질은 확고하니까. 아마 소재도 건다니움 합금일 것이다.

 하루노"아, 하지만 그러고보니 유일하게, 한번이지만 내가 졌던 경기가 있었던가…분명…"

 하치만"…수영입니까? 수영이지요? 수영이군요?"

 하루노"어머, 어떻게 안 거니?"

 하치만"…아니, 왠지 모르게"

 그 녀석, 물의 저항같은거 되게 적어보이니까. 무심코 서늘한 가슴팍이 뇌리에 떠오른다.

    형태뿐인 자기소개가 끝났더니 약속된 환담 타임이라는 것이다.

 생긋 미소를 지으면서 서로 지장없는 대화 뒤로, 각자 심중을 캐려고 하는, 그거다.
자신의 수패를 밝히지 않고, 최대한 상대의 정보를 끌어내는 정보전. 여기서 실수를 저지르면 거짓말이 들켜서 몽땅 끝장이 된다.

 하지만 선글라스를 쓴 만큼, 포커페이스에 있어서 내가 유리하다. 그리고 여차할때엔 비장의패도 있다. 엎드려 빌기라던가.
그에 비해, 이와시미즈는 그야말로 돼지다. 아니, 물론 수패 이야기거든?

 이와시미즈"…이야아, 그치만 하루노 씨가 연하 취향일줄은 몰랐군요"

 하루노"어머, 그치만 젊은 쪽이 컨트롤 하기 쉽고, 자기 색으로도 물들이기 쉽잖아요?"

 하치만&이와시미즈"아-…"(아니, 이유가 무서워!!!)

 둘 모두 식겁하고 있다. 도련님에 이르러선 얼굴에서 핏기까지 빠진 모양이다. 마음은 알겠지만, 이 사람의 본성은 이런게 아니다.
사람은 외모과 전부는 아니라고? 기껏해야 8할 정도다. 하지만 그거 거의 대부분이 외모라는거 아냐?

    하루노"거기다, 연령만 많다고 세상이 다 훤히 보이는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젊어도 의외로 모든 일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다시 비뚤어진걸지도 모르지만"

 의미심장하게 나를 본다. 뭐야, 그거 어디의 누구 얘기야? 확실히 옷 위로도 브래지어 사이즈는 맞출 수는 있지만. 왜 그런것까지 아는거야?

 이와시미즈"그런데 히키가야. 장래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난데없이 나한테 얘기를 돌렸다.

 하치만"그렇군요. 일단 고등학교 졸업후에는 문과 대학으로 진학을 합니다. 대학을 졸업하면…"

 이와시미즈"흠흠"

 하치만"결혼해서, 전업주부로서 가정에 들어가, 죽을때까지 부인님께 부양받을 겁니다"단호

 이와시미즈"저, 전업주부?"

 예상밖의 대답이었을 것이다. 이와시미즈가 나와 하루노 씨의 얼굴을 교대로 보고 있다. 후, 어느 시대에 있어도 파이오니아와 파이오니아는 항상 기이한 눈으로 보여지는 숙명이다.

    하치만"네. 그걸 위해 주야로 가사 실력을 닦고 있습니다"나는 자랑스럽게 가슴을 핀다. 남자의 가슴 따위 아무도 보고 싶지 않다. 나도 그렇다.

 하루노"…요컨대 대학을 졸업하면, 그는 공사 모두 저의 메니저멘트를 해줄 생각이에요"

 마치, 이해못하겠다는 얼굴의 이와시미즈를 위해 하루노 씨가 도와주기로 한 모양이다.

 하루노"저는 가정에 속박되는 타입이 아니니까요, 가사 일이나 사무처리는 우수한 그에게 맡기기로 하고, 일 쪽에 집중하고 싶다고 생각해요"

 이와시미즈"호호오…과연. 그런겁니까"

 아무래도 납득해버린 모양이다. 기본적으로 말하는건 똑같지만, 말하는 인간이 다른만큼, 받아들인 쪽도 다르다는 호례일 것이다. 나도 속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 미인이 상대일 경우엔 특히.

 하지만, 역시 그건 지나치게 추겨세웠다. 대체 어디서 떨어뜨릴 생각이야.

    하치만"너무 샀다고요. 저는 그렇게…"

 하루노"히키가야, 너는 자기가 생각하는것 보다도 훨씬 우수해. 갈고 닦으면 좀 더 빛날거야. …거기다, 신념을 위해서라면 더러운 일도 피하지 않는 모양이고"

 문화제때 나의 뒷공작을 가리키는 거라면 그건 착각이다.
설령 아무것도 하지 않더라도, 아니, 아무것도 하지 않기 때문에, 나는 늘 조연취급이니까.

 지워지지 않는 창문의 얼룩, 교실 구석에 방치된 쓰레기. 아무도 신경쓰지 않기에 안심하고 무시할 수 있는 인간.
때때로 갑자기 생각난듯이 구설에 오를때는 악의와 경멸과 조소의 대상이 되는 존재.

 자신보다도 항상 아래에 위치하기 때문에, 공연하게 때려도 좋다고 착각하고 있는 모양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그들은 겁에 질린 것이다. 나를 때리고, 깔보는 것으로 자신이 그렇지 않다고 안심을 얻으려고 하는데 지나지 않는다.

 확실히 카스트 최하층 그 바닥을 기어다니는 외톨이. 그것이 나다. 딱히 자랑할 만한 입장은 아니지만, 그렇다고해서 비하할 생각은 없다. 자신의 신념을 굽혀서, 친구라고 하는 영문 모를 허구를 상대로 알랑거릴바에야 나는 혼자 있어도 충분하다.
지금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하루노"…하지만 나라면, 자신을 위해 소중한 사람이…네가 상처입어가는걸 그냥 보고 넘어가는 짓은 하지 않아. 그래, 절대로"

 하치만"…에?"

   쨍강

 화분에 가려 옆자리 테이블에서 큰 소리가 울린다.

 "실례. 죄송합니다"젊은 여성이 사죄하는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나는 하루노 씨의 말에 정신이 팔려있어서, 그것이 어딘가에서 들은 적이 잇는 목소리였다는것마저 깨닫지 못했다.

    이와시미즈"과연, 하루노 씨가 자신의 장래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건 잘 알았습니다"

 도련님은 턱 앞에 손을 깍지끼고, 감탄했다는듯 몇번이나 끄덕인다.

 그리고 이윽고

 이와시미즈"…하지만, 이건 그걸로 정리할만한 간단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금까지하고는 완전히 바뀐듯, 조용한 음색으로 무겁게 말했다.

 이와시미즈"이런것도 당신도 알다시피, 애시당초 이 이야기는 당신 아버님이 당가에 융자 의뢰를 가져온게 일의 발발입니다"

    하치만"엑?"

 뜻밖의 이야기 흐름에 따라가지 못해, 나는 무심코 하루노 씨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하루노"네. 물론 그건 알고 있어요"

 그녀는 힐끔 시선을 돌려 쳐다봤지만, 그대로 대수롭지 않은 얼굴로 이와시미즈와 대화를 계속했다.

 하루노"…확실히 양가 사이에 혈연관계를 맺는걸로 결속을 강하게 하면, 비지니스 상으로도 보다 큰 메릿트가 있다…라는 이야기였나요?"

 이와시미즈"그렇습니다. 당신의 아버님으로부터 융자 상담을 받았을때, 양가 사이에서 혼담 이야기가 오른겁니다"

 과연, 이른바 정략결혼이라는거로군. 아무래도 좋은 집안의 도련님이 하루노 씨의 매력에 빠졌다, 라는 단순한 도식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런 중요한 일을 지금까지 다물고 있다니, 대체 이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거야? 아니 어쩌면 내가 아무 생각하지 않았던것 뿐일지도 모르지만.

 생각해보면 상대는 그 하루노 씨다. 무슨 뒷일이 있는게 당연하다고 눈치채도 좋을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냅다 의뢰를 받아버린 나는, 말 그대로 광대말고는 그 무엇도 아니다. 게다가 하루노 씨가 조종하는 인형이 되면, 말 그대로 꼭두각시. 대체 무슨 서커스에 있는거야?

    이와시미즈"…거기다, 분명 당신의 어머님은 상당히 호의적이었다고 기억합니다만?"

 하루노"하지만 아버지는 이번 일에 대해서도 저의 의사에 맡기겠다고 하셨습니다"

 이와시미즈"저로서도 처음에 이 이야기에 관해서는 소극적이었지만, 실제로 만나보니 이처럼 다재롭고 아름다운 공주님이시니…"

 도련님의 대사에 무심코 이를 갈뻔한다. 뭐야 이거 혹시 치주병이야?

 이와시미즈"…하지만 막상 이야기를 들어보니, 당신에게는 이미 약혼자가 있다고 하잖습니까. 솔개에게 먹이를 빼앗겼다는 어구는 이걸 가리키는 말이군요"

 솔개라는거 혹시 나 말인가? 어느쪽이냐고 하면, 솔개는 오히려 그쪽이잖아? 매가 솔개를 낳은 셈이니까.
산후원에서 잘못 데려온거 아냐?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까 DNA감정 받아보는 편이 좋은데? 그러는 김에 분자 레벨로 분해해서 이차원에 전송해줘. 파리같은거랑 같이.

    이와시미즈"본래는 이 이야기는 융자 이야기가 아니게 되어 다행이었지만, 저의 아집으로 서로의 집에 폐를 끼칠 수도 없지요"

 하루노"참 후복하시네요. 과연 도량이 넓으시네요"

 자못 은혜를 베푸는 듯한 말투에 하루노 씨가 비꼬아 답해준다. 물론 이와시미즈는 깨닫지 못한다. 군살 덩어리인 만큼, 비아냥 정도는 통하지 않는걸지도 모른다.

 이와시미즈"그렇다고 해서, 이대로 네 그러십니까 하고 물러서는건 제 체면이 아니죠"

 하루노"그러니까 저도 이렇게 인사를 하고, 제안하신 대로 피앙세를 동석시켜서 이와시미즈 씨와 만나고 있는거랍니다"

 이와시미즈"…그래, 나도 이러한 아름다운 여성의 약혼자는 대체 어떤 사람인지, 꼭 한번 보고 싶어서 무리하게 말해봤지만…"

    이와시미즈"…실례지만, 아까부터 둘을 보는한, 도저히 결혼을 전제로 사귀는 사이로는 보이지 않군요"

 그야 당연하지. 아무리 보아도 나와 하루노 씨는 전혀 맞물리지 않는다. 캐스팅 단계에서 이미 무리가 있던 것이다.

 필시 하루노 씨도 나라면 다루기 쉽다고 생각한거겠지만, 도리어 그게 모가 나버린 모양이다.

 자랑은 아니지만 설령 상대가 하루노 씨가 아니었다고 해도, 친구조차 없는 내게 누군가의 연인 역할을 해낼리 없는 것이다. 확실히 자랑이 아니구만, 그거.

 자, 그렇다면 이 쯤에서 슬슬 내 차례일지도 모른다. 나는 여유롭게 주위를 돌아보고, 엎드려 빌기에 적당한 장소 물색을 시작했다.

 하루노"아니요, 그런건 아니에요. 저희는 러브러브 하다구요. 그치, 히키가야?"

 그렇게 말하면서 하루노 씨는 팔을 껴안듯이 보이면서, 실제로는 내가 서툰 행동을 하지 않도록 팔을 꽉 잡고 있다.
정중하게 팔꿈치 관절을 꽉 세게 잡고 있어서, 움직임조차 할 수 없다. 뭐야 이거, 엄청 무서운데요.

 하치만"그, 그렇지요-(국어책 읽기)"

 나의 팔꿈치 관절은 슬슬 부러질것 같지만요-.

    이와시미즈"그렇습니까. 그렇게까지 주장하신다면, 그걸 이 자리에서 증명하실 수 있습니까?"

 도련님의 안경이 반짝, 수상쩍게 빛났다.

 하루노"증명…인가요?"예상밖의 제안에 하루노 씨도 수상쩍다는 얼굴을 한다.

 이와시미즈"네, 증명입니다"

 왠지 되게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불길한 예감만큼 적중률이 높다는게 나의 경험치. 뭐, 나 정도가 되면 좋은 예감이라는게 거의 없지만.

 이와시미즈"그렇군요. 만약 이 자리에서 두 분이 키스를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일단 둘의 관계를 연인으로 인정해도 좋겠지요"

 하치만&하루노"?!"

    드드드득

 다시 옆자리에서 이번에는 방금전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큰 소음이 들려왔지만, 지금 내게는 그걸 신경쓸 여유는 전혀 없었다.

    하치만"키, 키스…말입니까?"

 허들이 너무 높잖아. 게다가 남들 앞에서, 하루노 씨랑?

 이와시미즈"설마 약혼자인데 아직 한번도 한 적이 없는건 아니겠지요?"

 아니, 딱히 약혼자라고 해서가 아니라, 애시당초 나에겐 여성과 키스한 경험이라는것 자체가 없다. 여친 없는 역사 = 나이인 나를 얕봐선 곤란하다. 아니, 인생의 신맛이라면 싫을만큼 맛보고는 있지만…아니, 그거 관계 없잖아.

 어떻게든 넘길 방법은 없나, 당혹해하며 하루노 씨의 모습을 엿본다.

 하루노"어머, 그런걸로 괜찮다면 쉬운 일이네요"

 하치만"하앗?!"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이 사람? 키스라고 키스. 마우스 투 마우스로, 쪼옥 이라고. 딱히 생쥐하고는 관계없잖아?

 하루노"하지만 그 전에 하나 확인해도 될까요?"

 이와시미즈"호오, 뭔가요?"

 하루노"만약, 이와시미즈 씨의 앞에서 히키가야와 키스하는걸 보여주면, 비지니스 이야기와 관계없이, 결혼은 무조건으로 포기하겠다는걸로 괜찮겠죠?"

 이와시미즈"물론, 나도 남자다. 두 말은 하지 않습니다"도련님이, 의자채로 쓰러질 기세로 배를 불룩 내민다. 어쩌면 가슴을 펼 생각이었던걸지도 모른다.

 하루노"그런가요. 과연, 잘 알았어요"

 그 대답을 들은 하루노 씨가 생긋 미소를 짓는다. 그건 마치 만개한 모란처럼 곱디 고운 미소였다.

    이와시미즈"자, 어떻습니까?"도련님이 나와 하루노 씨의 얼굴을 교대로 보면서 재차 묻는다.

 그 뻔뻔스러운 얼굴에서는 할 수 있을리 없다는 타산을 계측한 표정이 보였다.

 자이모쿠자와 쏙빼닮은 만큼, 쓸데없이 열받기 나위없다.

 하루노"네, 물론이에요. 히키가야, 평소처럼 살살해줘?"

 하루노 씨는 정말로 그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나를 돌아보며, 눈을 감고 형태 좋은 입술을 가볍게 내밀어보였다.

 …아니, 지, 진짭니까? 잠깐- 잠깐잠까안-…아니,나는 무심코 혼자서 2인극을 할뻔한다.

 하루노"왜 그래? 이와시미즈 씨의 앞이라도 딱히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되는데?"

 아니, 부끄러워하는게 아니라, 무서운것 뿐인데. 엄청 무섭다. 진짜 무섭다. 극히 자제해서 말하자면 쩔어주게 무섭다. 그리고 무섭다.

    하치만"어, 어어"

 스-・하-・스-・하-

 하루노(…히키가야, 뭐 하고 있는거니?)소근소근

 하치만(에? 시, 심호흡인데요)소근소근

 하루노(장난치지 말아줄래?)소근소근

 하치만(아, 역시요? 그렇지요-)소근소근

 하루노(당연하잖아? 자, 얼른)소근소근

 하치만(준비체조 부터 하는 편이 좋겠죠-?)소근소근

 하루노"히키가야?"작은 목소리였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또렷하게 내 귀에 들렸다.

 하치만"아, 네?"무심코한 대답이 경솔해졌다.

 하루노"나, 히키가야가 상대라면…딱히 괜찮은데?"

 그렇게 말하고 내 목에 양손을 감아, 젖은 눈동자로 올려다보며 차분히 나를 쳐다봤다.

    꿀꺽

 나는 무심코 큰 소리를 내고 침을 삼켜버린다.

 만약 이게 연기라고 하면 대단한 배우라고 생각해버릴것 같지만, 필시 십중팔구 이건 연기이며, 남은 1, 2할도 틀림없는 연기이다.

 분명 그녀는 그렇게 줄곧 세상을 속여온 것이다. 그 완벽하게 만들어진 외면과 함께.

 그러니까 설령 지금, 나와 거짓 키스를 했다고 해도, 그녀는 전혀 신경쓰지 않을 것이다.
그런건 그녀에게 있어 발밑에 미치지 못할 세세한 일중 하나이며, 단순한 인사정도. 혹은 통과의례 중 하나에 지나지 않으니까.

 ――― 그럼 나는? 나는 어떻게 되는거지. 여기에 이르러, 대체 뭘 망설일 필요가 있는걸까.

 객관적으로 보고 주관적으로 봐도, 이러한 기회로 하루노 씨같은 연상의 미인과 키스를 할 수 있다면 좋고나쁠일도 없을 것이다.
나의 첫키스 상대로서도 전혀 나쁘지 않다. 도리어 거슬러줘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뭐야 그거, 자동판매기냐.

    ―――하지만, 그렇다고 하면 이 가슴 구석에 걸리적거리는건 뭘까.

 내 눈은 하루노 씨의 얼굴을 통해 또 하나의 얼굴을 겹쳐서 보고 있었다.

 같은 얼굴인데, 전혀 다른 얼굴. 같은 눈동자인데, 전혀 다른 눈동자. 같은 미소인데, 전혀 다른 미소. 청렴하고, 결백하고,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는 올곧은 아름다운 눈동자.

 그녀는 어떠한 때여도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도 또한 나 자신에게 만큼은 절대로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뭐, 남들에겐 얼마든지라도 거짓말을 하지만. 죄악감 조금도 없이.

 만약, 여기서 내가 거짓 키스를 해버리면, 필시 나는 두번 다시 그녀를 마주볼 수 없게 될것이다.
설령 거기에 어떤 이유가 있다고 해도. 그리고 그녀도 그런 나를 결코 용서할리 없다. 그야말로 미래영겁, 영원히.

 그건 내게 있어, 그녀와 대등한 입장으로, 친구가 될 자격을 평생 놓치는 것을 의미한다. 그녀의 성격으로 보아, 틀림없을 것이다.
내가 아는 그녀 ――― 유키노시타 유키노는 그런 여자니까.

 그리고 마찬가지로 그녀의 성격을 숙지하고 있기에, 나와 같은 결론에 도달했을 인물이 한명 더.

 그 여성은 지금 내 눈 앞에 있었다.

    내 머리 구석에서 경계등이 번쩍번쩍 점등한다.

 내려솟은듯한 행운에 몸을 맡기는것 마저 할 수 없는 나의 비뚤어진 성격에, 나 스스로도 혐오가 배어나온다. 난처하다고 해도 좋다.

 하지만…

 ――― 누구나가 동경할만한 미녀의 연인을 연기한데다, 그 과정이라고는 해도, 키스까지 하라고?

 만약 여기서 자이모쿠자에게 이 상황 의미를 물어보면, 돌아오는 대답은 정해져있다.

 "그거 무슨 에로겜?"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야기가 너무 좋다. MAX커피급으로 달다. 인생은 마땅히 좀 더 애절하고 괴롭고 힘든 것이다. 특히 내게 있어선 필요이상으로. 그러니까 어째선데?

    그렇다면 냉정하게 현재 상황을 파악해라고 연마된 제 6감이 속삭인다. 혹은 그건 나의 고스트인걸지도 모른다.

 평소처럼 쿨하게. 냉정한 눈으로. 인간심리의 뒤의 뒤까지 읽는다. 뒤의 뒤는 실은 겉면이지만, 그건 굳이 넘어간다.

 하루노 씨의 입술은 눈 앞까지 다가와있다. 달짝지끈한 숨결이 나의 볼을 간지른다. 자칫하면 몽롱해질 나의 뇌에 억지로 컷을 넣는다.

 시간이 없다면 머리 회전을 빠르게 하는 수 밖에 없다. 생각해라. 생각해라. 생각해라. 생각해라…싱싱하고 부드러워 보이는 입술이다…아니 그게 아니잖아. 생각해라.

 새삼 지금까지 하루노 씨의 언동의 뒤를 읽는다. 언뜻보아, 나를 그럴 마음이 들게 할만한 감언구설. 그럴 생각이 들게하는 말시. 의미 심장한 시선. 나도 결코 깨닫지 못한건 아니다.
도리어 과민하게 반응해버릴 정도다. 특히 하반신이.

 그리고 그 순간, 인간심리(주로 뒤)의 스페셜리스트인 나는, 한 가지 가능성에 도달한다.

 혹시 하루노 씨에게 있어 '나'라는 존재는 동생의 정신적인 자립이나 성장을 방해하는, 방해꾼에 지난게 아닐까…하고.

    그렇다고 하면―――

 그렇다고 하면, 이 기회에 나를 홀려 자신에게 빠지게 만들어, 그리고 완벽하께까지 차버린다는 계획의 가능성은 생각할 수 없을까?

 번거로운 구혼자랑, 동생에게 붙은 나쁜 벌레를 동시에 제거할 수 있다면 말 그대로 일석이조.

 만약, 나를 제거할 수 없다고 해도 기성사실을 만들어, 도리어 유키노시타의 마음이 나에게서 멀어지도록 하면 될 뿐인 이야기다.

 그래, 그렇기에, 이 역할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히키가야 하치만이 아니라면 안 됐던게 아닐까―――.

    다각면 적으로 쳐다보아도 하자가 없는 이 이론의 유일무이한 치명적인 결점이라고 하면, 다름아닌 내가 생각한 이론이라는 점이지만, 그건 이 참에 내버려두자.

 하지만 그것과 동시에 약간이긴 하지만, 다른 가능성이 없는건 아니다.

 예를 들면 그래, 그녀가 진심으로 내게 호의를 갖고 있다고 하는 가능성이다.

 나는 그 두 가능성, ――― 하나는 가능성이라고도 할 수 없는 가능성이지만 ――― 을 순식간에 천칭에 건다.

 그리고 나의 재색의 뇌세포(썩은게 아니다)가 즉시 해답을 끌어낸다.

 결론 ――― 필시 이건 하루노 씨에 의한 교묘하게 꾸며진 허니 트랩이다.

 왜냐면, 나같은 남자가, 이런 미녀에게 사랑받을리 없다.

 유키노시타에게 들을것 까지도 없이, 진실이란 늘 잔혹하니까.

    하치만"죄송합니다. 저는 역시…"살며시 그녀의 어깨를 밀어낸다.

 하루노"…어째서…야?"하루노 시의 나를 쳐다보는 눈동자 속이 일순이지만 흔들린다.

 그 눈에는 나의 추리를 근본부터 뒤흔들것 마저도 느껴졌다.

 하지만, 함정이라는 함정을 모두 밟고, 거짓말이라는 거짓말을 모두 몸으로 받아온 나는, 그런 가능성마저 부정한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의 동요를 감추기 위해, 그만 말하지 않아도 될 소리마저 하고 만다.

 하치만"…혹시 당신은, 저를 동생으로부터 떼어내고 싶은것 뿐인게 아닙니까?"

 하루노"…어?"

 그녀가 진심으로 의외라는 얼굴을 했다.

    어쩌면 나는 지금 자신의 착각으로 그녀를 상처입혀버린걸지도 모른다.

 내가 상처입혀버린것이, 이 여성의 마음인지, 자존심인지, 혹은 그 둘 모두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허례허식을 모두 벗겨진듯한 쓸쓸해보이는 그녀의 표정은 여느때와 달리 자신의 나이대로 보여서, 마치 동생과 쏙 빼닮았다.

 하루노"…히키가야. 부탁해"

 나를 올려다보는 귀여운 얼굴의 파괴력은 굉장하다. 나의 약간 남은 이성을 흔적도 남김없이 형체도 남김없이 박살내는데 충분할 정도다.

 내 마음 속에서 천사와 악마가 갈등한다.

 악마(괜찮잖아, 해버려. 부수입, 부수입)

 …과연, 일리 있다.

 천사(괜찮잖아, 해버려. 부수입, 부수입)

 …아니, 너 천사잖아?! 일 해라고?!

 나의 망설이는 틈을 찌르듯이, 하루노 씨의 예쁜 얼굴이 스윽 가까워왔다. 도망치려고 해도 목에 감겨진 양손 탓에 간격을 잴 수 없다.

 이와시미즈"오옷?!"도련님이 양손으로 주먹을 쥐고 앞으로 몸을 내민다. 아니, 뭐하는거야.

 내가 체념하려던 그 순간…

    콰당

 세 번에 걸쳐, 옆자리 테이블에서 이번만큼은 무시무시할 만큼 소리가 울려퍼졌다.

 하지만 지금의 내겐…………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건 신경 쓰이잖아, 어이?!

 "잠깐만 기다려!!"

 하루노&하치만&이와시미즈"…엑?!"

 나는 이번에야 말로, 그 목소리의 정체를 깨닫고 경악해서 돌아봤다.

     하치만"…아니, 너. 여기서 뭐하는거야?"

 푸른색이 섞인 긴 흑발을 수제 슈슈로 묶은 포니테일. 약간 처진 눈이 커다란 눈동자. 왼쪽 눈 아래에 눈물점.

 나의 같은 반으로서, 희대의 브라콘, 코마치의 친구라고 하는 액막이 대사같은 이름의 놈의 누나, 그러니까 그게, 으음…

 분명 이름은 카와…카와…카와무라? 카와구치? 카와코시? 아무튼 카와뭐시기 사키. 줄여서 카와사키다. 대충 맞겠지. 아마.

    카와사키"너야말로 이런데서, 그 여자랑 뭘 하려는거야?"

 날카로운 눈초리로 나를 노려본다. 뭘 화내는거야, 무섭구만. 무심코 눈을 피해버리잖냐. 만약 나한테 꼬리가 있었다면 틀림없이 감았을 수준이다.

 하치만"…뭐냐니, 그거다. 거, 그 뭐냐, 그게 그거해서 뭐하니까…"회피한 시건이 이번에는 기세 좋게 하늘을 멤돈다. 마치 문 워크. 아니 오히려 문 사르트이다.

 카와사키"전에 호텔에서 신세를 진 선배가 지금은 여기서 일하고 있다고 해서 잠깐 인사겸 놀러왔는데…"

 하치만"그, 그러냐. 우, 우연이구만"

 카와사키"…그랬더니, 너, 너랑 많이 닮은 남자가 여자를 데려와서, 그만 신경쓰여서 상태를 보고 있었는데, 아, 따, 딱히 신경쓴건 아니지만…"///

 하치만"…어느쪽이냐?"의미불명해서 내가 신경쓰이잖아, 반대로.

 카와사키"오, 오늘은, 어, 어울리지 않는 차림을 하고 있네. 어, 어울리지만"///

 하치만"…그러니까 어느쪽이냐고"

   하루노"히키가야, 누구니?"하루노 씨가 생글거리면서 내게 물었다. 어째선지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른다.

 하치만"아-…, 같은반인 카와사키(예상)입니다"아마.

 힐끔 카와사키(추정)를 쳐다보니 불만스러워 보이기는 하지만, 특별히 부정을 하지 않으니 아마 이름은 틀림없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카와사키"아,아무튼 너는 여기서 대체 뭘 하려던거야? 그, 그게, 나, 나라는 사람이 있으면서?"

 하치만"…하?"

 카와사키"뭐, 뭐야 그 태도…?"

 하치만"…너, 무슨 소리 하는거야? 머리 왜 그래?"

 카와사키"어, 어째서 아는거야? 조, 조금 잘라본것 뿐인데. 자, 잘도 보는구나. 고마워…"///

 하치만"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 그게 아니라 말이다…"머리 속이 해피 턴스럽잖아. 메이드 바이 카메○나시 제과냐?

    카와사키"어? 그, 그치만 너, 나, 나를 좋아한다고 했잖아?!"

 하치만"그러니까, 하?"뭐야 그거 처음 들었는데.

 카와사키"…말했잖아?!"울컥

 하치만"언제!? 누가 그런 무서운 소릴…"

 카와사키"문화제때! 교실에서! 나, 나한테 그게, 사, 사랑한다고…"중얼중얼

 하치만"아-…"어쩌면 그런 일도 있었던걸지도 모르겠다. 테헤페로.

 하루노"흐-응…그렇구나-…헤에-…"

 갑자기 체감온도가 2도 정도 내려간다. 혹시, 동생농이라도 있나 싶어 주위를 돌아볼 정도라.

 유감, 없었습니다. …아니, 누구한테 말하는거야?

    카와사키"거, 거기다 봐! 게다가 너, 너 말야, 내, 내 속옷도 봤잖아?"중얼중얼

 하치만"속옷이라니…다 비치던 검은 레이스?"

 카와사키"그, 그래 그거…아니, 비치지 않거든!! 바보 아냐? 바보 아냐?!"///

 아니, 그건 어디까지나 내 희망이었지.

 카와사키"그럼 네, 네가 책임 져"

 하치만"책임?"

 혹시 너랑 사귀라는거냐?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닌가. 이 녀석, 확고한 브라콘이니까. 나는 철두철미한 시스콘이고. 전혀 닮지 않은 계열이다.

 그보다 왜 하나하나 책임져서 사귀어야 한다면, 가장 먼저 자이모쿠자랑 사귀게 되잖아?
뭐, 그 녀석의 경우엔 그래도 속옷은 보지 않았지만. 아니, 부탁받아도 보고 싶지 않지만.

    하치만"아-…, 일단 사키사키"

 카와사키"사키사키라고 하지마!"///

 하치만"사정은 나중에 말할게. 기회가 있다면"아마 평생 없을거라 생각하지만.

 카와사키"하아?"

 하치만"가르송(급사)!"나는 영화처럼 폼잡고 손가락을 퉁긴다.

 급사"네, 무슨 일이신지요?"진짜 왔어, 이거.

 하치만"여기 레이디가 돌아가신다. 정중하게 보내드려"

 급사"알겠습니다"

 시험해볼 일이라고고는 생각했지만, 과연 이와시미즈와 유키노시타의 VIP 효과는 절대적인 모양이다. 호랑이의 위세를 빌린 여우의 기분이지만, 이 경우엔 어쩔 수 없다. 오래 끌어봐여 여러모로 귀찮아질것 같고.

    카와사키"어? 아니, 잠깐?"

 카와사키의 저항도 덧없게 급사에게 질질 끌려가듯 퇴장해간다.

 …아, 뭐어. 일단 나의 위기를 구해줬으니까 일단 감사 인사정도는 해줄까.

 하치만"안녕, 땡큐다 카와사키! 사랑한다고!"

 카와사키"아니, 잠깐, 이, 이런 공중 장소에서!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아득히 먼곳에서 카와사키의 비명같은 목소리가 긴 꼬리를 끌며 울려퍼졌다.

 하치만"이거 참"뭐냐고, 대체.

 하루노"…히키가야, 너, 절대로 편하게 죽지 않을거라고 생각하는데?"

    이와시미즈"…지, 지금 그건 대체?"

 카와사키가 끌려간 방향을 망연하게 쳐다보면서 도련님이 중얼거렸다.

 하루노"정말이지, 그렇게 무자각하게 플래그를 난립시키지 말아주겠니…"

 하루노 씨가 더 이상 없을 만큼 차가운 눈으로 나를 보고 있다. 과연, 유키노시타의 그 눈은 실은 언니 유전이었구나. 납득. 하지만 무슨 득이 있는거냐고, 그런 지식.

 하치만"전 태어나고나서 줄곧 플래그를 새운 적은 한 번도 없다고요?"오히려 나정도가 되면 세우지도 않은 플래그를 스스로 회수해버릴 수준이다.

 하루노"어머, 그러니? 하지만 지금 나하고는 제대로 플래그를 세웠잖니"

 그렇게 말하고 하루노 씨는 다시 내 목에 양손을 감았다.

 아-, 확실히 지금 내 머리 위에는 플래그가 우뚝 솟은 느낌이 들었다고요? 특대의 사망 플래그라는게.

 실은 나, 이게 모두 끝나면 이번에야말로 토츠카에게 프로포즈 할 생각이야…아니 스스로 뒤로 미루어서 어쩌자고.

    예기치 못한 카와사키의 난립 덕분에 일시적인 위기는 회피했다고 해도, 실제로 사태는 1미리도 진전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후퇴했다. 이거.

 또 나의 모놀로그 같은걸 어거지로 넣어?

 예를 들면 그렇구만, 내가 아직 외톨이가 아니었을 무렵의 이야기를 해볼까…아니,생각할 것 까지도 없이, 나의 17년 역사 중에서 외톨이가 아니었던 시절은 어딜 찾아봐도 찾을 수 없지만. 모놀로그 강제 종료.

 하루노"자, 히키가야. 방해꾼도 사라졌으니 다시 아까전의 그걸 계속해볼까?"

 하치만"어? 아니, 자, 잠깐만요…하루노 씨?"

 하루노"괜찮아. 아픈건 처음 뿐이야"

 하치만"…아픈거냐고요"

    "기, 기다려!"

    하치만&하루노&이와시미즈"엑!"

 …아니, 이 경우, 이미 아까 끝났잖아. 왠지 이야기가 루프하고 있지 않아? 그리고 몇번을 하면 여름방학이 끝나는거야?

    뒤돌아보니 거기에는 어째선지 숨을 헐떡이면서, 그야말로 숨이 끊어지기 직전의 상태인 유키노시타가 서 있었다.

 유키노"…"하악 하악 하악 하악

 하치만"…!"

 하루노"…!""

 이와시미즈"…?"

 하치만"…유키노시타"

 유키노"무…무슨 일이니?"하악 하악 하악 하악

 하치만"…일단 의자에 앉아서 조금 쉬는 편이 좋지 않냐?"

 여전히 빈약하기 짝이 없는 체력이잖아, 너.

    아무래도 유키노시타는 탈것도 타지 않고, 급하게 여기까지 달려온 모습이었다.

 하치만"대체 어디에서 뛰어온거야? …아니, 설마 너, 여기까지 오는동안 또 길을 헤맨건 아니겠지?"

 유키노"…"///

 유키노시타가 입을 다물고 시선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건데, 아무래도 정답이었던 모양이다.
이 녀석은 절대로 지금, JR의 치바역으로 가지 않는 편이 좋겠다.

 일단 복장도 평상복을 입은채로 온 모양이지만, 이렇게 평상복으로 고급 레스토랑에 있어도 위화감이 없다.
오히려 그 아름다움은 눈에 띈다고 할 수 있었다. 미인이라는것 그것만으로도 드레스코드를 능가하는 모양이다.

 그 증거로 이와시미즈도 갑자기 나타난 그녀에게 아무말도 하지 않고 그저 망연하게 굳어 있었다.

    처음에 말을 끊은건 언니농이었다.

 하루노"유키노, 방해는 하지 말라고 했을텐데?"

 유키노"어, 언니도 우리한테 거짓말을 했으니까, 그 시점에서 약속 그 자체가 무효되어도 좋을텐데?"

 하루노"거짓말?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거니?"

 유키노"이야기는 아버지한테 전부 들었어. 더는 발뺌은 할 수 없지?"

 하루노"어머, 나는 발뺌을 할 생각은 없어"

 유키노"언니 개인이라면 모를까, 유키노시타가의 문제에 무관계한 히키가야를 말려들어서 어쩔 생각이야"

 하루노"무관계하지는 않지? 거기다, 나는 이번 일에서 한번도 거짓말은 한적 없어"

    뭐, 확실히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진실 부분을 교묘하게 감추기는 했지만.

 하지만 여자는 왜 이렇게나 거짓말을 잘 하는걸까. 거짓말을 하지 않고 남자를 속이는게 완전 특기니까.

 특히 궁지에 빠졌을때 여자의 거짓 울음은 그거 범죄 레벨 아냐?
왜 나쁘지도 않은 내가 도리어 범죄자 취급을 받고 반 안에서 규탄까지 받아야해? 그거 왠지 다르지 않아? …아니, 나의 부의 경험치는 지금은 아무래도 좋다.

 그보다 그러니까 너희들 골육다툼은 집에 가서 하라고. 이대로라면 그야말로 뼈가 부서지고, 살이 날아가버리게 되잖아. 내가.

     유키노"그래…. 어디까지나 시치미를 뗄 생각이구나…. 그럼 내가 모든 걸 말할 뿐이야…이와시미즈 씨한테"

     유키노"…어, 어?"

 도련님을 돌아본 유키노시타가 당혹스런 표정을 짓는다.

 유키노"너, 너는 자, 자, 자…"

 그리고 어째선지 나를 도움을 바라는듯한 눈빛으로 봤다.

 하치만"…………자이모쿠자냐"중얼

 유키노"…미, 미안해. 고마워"///

 다시 호흡을 가다듬고 다시 하기로 한 모양이다.

 스으…

 유키노"…너, 너는 자이츠?!"

 이와시미즈"호헤?"

    하치만"…그러니까 자이모쿠자라고 했잖아?! 슬슬 이름 정도는 외워라!"아니, 실은 다른 사람이지만.

 유키노"기, 기억하고 있어. 조금 잊어먹은것 뿐이잖니"

 하치만"…잘못 부른게 아니라, 잊어버린거냐…"아니, 그러니까 잊어버리는거 너무 빠르잖아.

 유키노"자, 자이모쿠자이?"

 하치만"자・이・모・쿠・자"

 유키노"폐재?"

 하치만"자・이・모・쿠・자"

 유키노"산업폐기물?"

 하치만"………대충 맞다 치자"그보다 너, 그거 중간부터 일부러 그러는거지?

 유키노"커흠, 왜 이런데 자이모쿠자가 있는거니? 농담은 견딜 수 없을 만큼 가벼운 존재가치만 해주겠니?"

 하치만"아니 너, 아무리 그래도 존재 자체로 부정하지 마"보통은 기껏해야 얼굴정도잖아? 그래도 충분할 정도로 심하다. 물론 자이모쿠자의 얼굴 이야기다.

    이와시미즈"에? 아? 오?"

 사정을 몰라 도련님이 우왕좌왕하고 있다. 그 얼굴에선 당혹을 숨길 수 없다. 뭐, 마음은 알겠다. 유키노시타의.

 하치만"아-…, 유키노시타. 그 쪽은 자이모쿠자가 아니라 이와시미즈…씨…다. 많이 닮았지만 다른 사람…인 모양이다?"

 유키노"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언니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유키노시타에게 하루노 씨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하루노"맞아. 이 사람이 이와시미즈 시즈오 씨야"

 유키노"언니, 아무리 그래도 그건 이와시미즈 씨에게 실례가 아닐까? 그는 이런 히키가야의 친구같은 얼굴은 아닐텐데?"

 하치만"음음, 확실히 그건 실례구만. 너의 그 발언이. 특히 나한테 대해서"

    하루노"죄송해요, 이와시미즈 씨. 동생인 유키노에요"언니농이 동생농을 도련님에게 소개한다.

 이와시미즈"에? 유키노 씨…? 하루노 씨의 동생분이십니까?"

 유키노"시, 실례했습니다. 언니가 늘 신세지고 있습니다"당혹해하면서 예의바르게 고개를 숙인다. 하지만 그 눈은 아직 반신반의인 상태다.

 이와시미즈"이, 이거이거. 역시 자매군요. 많이 닮으셨습니다. 과연, 동생분도 하루노 씨 못지 않게 아름답다"

 도련님이 감탄하듯 이에 발린 대사를 하면서 언니와 동생을 교대로 비교한다.

    하치만"그런데 왜 네가 여기 있는거야?"당연한 질문이다.

 유키노"어? 그, 그건…그게…신경 쓰였으니까 그런게 당연하잖니…"어째선지 갑자기 유키노시타의 얼굴이 새빨갛게 물든다.

 하치만"어? 혹시…"

 유키노"그, 그래 맞아. 네, 네가 마음에…"///중얼중얼

 하치만"그렇게나 언니가 신경쓰였냐?"너, 역시 츤데레 시스콘이었어?

 유키노"……………마음에 들지 않으니까"

 갑자기 나타나놓고 왜 화내는거야, 이 녀석?

     이와시미즈"흠, 좋아, 정했다!"

 자리 분위기를 전혀 읽지 못한 도련님이 무슨 생각을 한건지 가슴 앞에서 손을 탁 친다.

 이와시미즈"하루노 씨가 히키가야랑 약혼했다면 어쩔 수 없지. 유감스럽지만 이 참에 하루노 씨는 선뜻 포기하도록 하죠"

 하치만&하루노&유키노"…에?"

 예상밖의 급전개에 아연해한다. 혹시 이걸로 한건 해결인가? 왜 갑자기? 뭐, 그건 아무래도 좋은 이야기지만…

 이와시미즈"…음. 그리고, 여기서 다시 나는. 유키노 씨에게 구혼 하도록 하지"

    유키노"에?"

 하치만"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

 아무리 그래도 그건 내 상상을 상회하고 있었다.

 하치만"지, 진심입니까?"식은땀이 줄줄 흐른다.

 이와시미즈"나는 심히 진지한데?"

 아니아니아니, 그런 자이모쿠자같은 얼굴로 진지하다고 해도 반응하기 난처한데.

    하치만"모, 목숨같은거 아깝지 않습니까?!"

 유키노"히키가야, 그거 무슨 의미니"생긋

 죄송합니다, 저는 자신의 목숨이 엄청 아까워서요, 지금 발언을 철회합니다.

 하지만 유키노시타를 겉모습에 속기라도 하면, 그야말로 심한 꼴을 당하지 않아? …나 처럼.

 하지만 그 이전에, 지금은 내가 가장 신경쓰지 않으면 안 될 일이 달리 있다. 그래, 이것만큼은 결단코 양보할 수 없는 중요한 것이다.

 하치만"어, 어이 잠깐만. 나는 절! 대로 인정 못해!"단호하게 단언한다.

 유키노"히, 히키가야?!"///

    이와시미즈"호오, 그건 어째선가?"

 하치만"자이모쿠자의 얼굴을 가진 형제따위, 설령 의리라고 해도 절대로 사양이다! 단고히 거부한다!"

 하루노"…아니, 그쪽이야?"

    이와시미즈"어라어라, 하지만 자네는 하루노 씨의 약혼자니까, 내가 유키노 씨에게 프로포즈를 해도 관계없잖나?"

 하치만"관계는 없어도 문제가 엄청 있잖아, 그거. 애시당초 왜 갑자기 그렇게 되는거야?"

 이와시미즈"이건 애시당초 유키노시타가와 이와시미즈가의 혼담 이야기니까, 나로서는 상대가 하루노 씨든 유키노 씨든 상관없어"

 이치로 따지면 확실히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시 석연치 않은게 있다…

    혹시, 하루노 씨는 이렇게 될 가능성을 우려해서 몸을 던져 동생을 감싸려던게 아닐까?

 그 가능성을 떠올렸을때, 나는 경악하고 그녀의 얼굴을 봤다. 언뜻 무표정을 관철하고 있는 모양이지만, 한순간이지만 나를 향했던 눈에는 힐끔 비난의 색이 보였다.

 ―― 그러니까 그만큼 서두르라고 했는데.

 사태의 조기해결을 바라고 무난한 나를 파트너로 골랐음에도 불구하고, 그 내가 쭈뼛거려서 모두 무너져버린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이 결과로서 유키노시타를 궁지에 몰아버리게 된 모양이다. 이와시미즈에게 있어선 그녀는 말 그대로 스스로 불로 뛰어든 여름 벌레니까

    이와시미즈"…아니면 자네는 혹시 유키노 씨까지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할 생각인가?"

 하치만"아니, 그런건 아니지만…"어느쪽이냐고 하면 내가 소유물 취급 받고 있거든요. 애완견이라는 소릴 듣고 있으니.

 이와시미즈"자자, 두 마리 토끼를 쫓다간 한 마리도 잡지 못한다는 속담도 있다. 이참에 여기서 확실하게 하는건 어떤가?"

 하치만"어? 확실하게라니, 대체 뭘…말입니까?"

 이와시미즈"자네는 하루노 씨와 유키노 씨 둘 중에 누굴 택할건지 말이야"

 하치만"하아?!"

 도련님이 재미있다는 듯 나를 보고 있다. 아무래도 여유가 생긴 모양이라, 나를 괴롭히기로 결심한 모양이다. 자이모쿠자의 얼굴, 용서 못한다.
하지만, 잠깐만. 모처럼이니 여기다 토츠카를 불러서 선택지는 인정받을 수 없나? 혹은 코마치라던가.

 이와시미즈"그러니까, 자네는 '두 여성' 중에 대체 누구를 선택할거지?"

 하치만"…읏!"

    두 여성 중, 누구를 선택하는가 ―― 이와시미즈의 말은 어째선지 전혀 다른 의미로 나의 마음을 흔들어놓았다.

 두 여성 ―― 그 중에 한 명은 지금 내 눈 앞에서 궁지에 놓여져 있고, 그리고 또 다른 한 명은 지금 이곳이 아닌 어딘가에 있다.
언제나 초봄의 선잠에 흘낏 꾸는 꿈같은 상태가 이어질리 없다. 그런건 누구보다도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변화하는게 어쩔 수 없다고 하는건 거짓이다. 변화하는걸 쾌히 받아들여버린 인간의 궤변이다.

 변하는 것이, 변해버린것이 항상 올바르다고 누구도 말 못할 것이다.

 단순한 감상일지도 모른다. 단순한 발버둥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시간을 거쳐 변하지 않는것도 있고, 누구든 변하지 말아줬으면 하는것도 있다.

 그렇기에 변하지 않는걸 바라는 마음도 또한, 결코 틀린것은 아닌 것이다.

    하루노"…그렇구나. 하지만 이참에 히키가야도 확실하게 정해두는 편이 좋지 않을까?"

 하치만"에?"

 나는 하루노 씨의 이와시미즈의 말에 동조하는 듯한 말에 당혹한다. 왜 지금 이 타이밍에 그런 말을…?

 하루노"너는 이후로 대체 '누구'를 선택할 생각이니?"

 하지만 그녀의 냉정한 지적은 새삼 나의 마음을 심하게 헤집어놓았다.

     유키노"………정말로 바보같은 남자구나. 지금은 아직, 그 때가 아니잖니?"

 내 마음의 동요를 모두 꿰뚫어보듯, 유키노시타의 맑은 목소리가 울린다.

 그 눈은 올곧게 내 눈을 쳐다보고 있었다. 한 점의 흐림도 없이. 그야말로 마치 투명한 호수처럼.

 하루노"유키노, 너는 부르지 않았어. 거기다 너도 히키가야한테 그 대답을 듣고 싶을텐데?"

 유키노"그렇게는 안 돼. 이건 우리들만의 문제야. 언니야말로 부르지 않았어. 빠져있어"딱잘라 답한다.

 하지만, 역시 유키노시타라고 해도, 이 자리에서는 역시 손쓸 방도가 없다. 완전하게 막힌 상태다. 그건 그녀도 알고 있을 것이다. 허세는 부려도 그 표정에 평소의 날카로움은 없다.

    하루노"어머, 그러니. 하지만 안 됐구나 유키노"

 유키노"어?"

 하루노"지금 이 시점에선 히키가야는 유키노도, 유이가하마도 아닌, 이 나의 것이야"

 그렇게 말하며 갑자기, 아무런 전조도 없이, 그리고 전혀 망설임없이 둘의 눈 앞에서 나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살짝 겹쳤다.

     하치만"!!!!!"

 어? 이거 혹시 나의 첫키스야? 기념해야할 첫키스는, 이런거야? 왠지 상상했던거랑 다른데?(내 입장으로)

 뭐야? 좀 더, 이거, 뭐랄까? 기쁘고부끄럽고 같은, 혹은 리얼충 폭발해라 아니 오히려 박살나라 이 자식, 같은 의미로, 적어도, 이런 기습이라고 할까, 뒤통수치기랄까, 평타적인 뭐랄까, 는 아닌듯한 느낌이 든다.(내 입장으로)

    영원이라고도 할수 있는 몇 초의 짧은 시간이 지나고, 하루노 씨가 겨우 얼굴을 뗐다. 그 볼은 기분탓일까 붉게 물들어있다.

 하루노"후훗. 실은 나도 처음이야"나의 심장을 움켜쥐는듯한 미소로 살며시 속삭인다.

 아무리 나여도 거기서 '몇번째 첫키스입니까?' 라고는 물을 수 없다. 무서우니까.

    유키노"어, 언니, 무, 무슨 짓을…!"

 유키노시타의 얼굴은 분노로 시퍼래지고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나도 무심코 제정신을 차린다.

 하루노"어머, 왜 그러니? 유키노하고는 관계없잖니? 왜냐면 히키가야는 너한테 있어서, 단순한 찌질이인걸"

 …그러니까 부원이라니까요.

 이와시미즈"…치사해"

 도련님이 부럽다는듯 손가락을 물고 내 얼굴을 쳐다본다. 아까 자기가 하라고 해놓고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이 녀석.

    하치만"하루노 씨! 그리고 유키노시타도! 잠깐, 입맞춤! …이 아니라, 짓정해!"

 아니아니아니 진정할 필요가 있는건 오히려 나지?

 하루노"자아, 이거 보렴. 여기 와서도 너는 히키가야한테 이름조차 불리지 않잖니"

 하루노 씨가 이겼다는 듯 미소를 짓는다.

 하루노"…역시 네 패배야, 유키노"생긋

 그러니까 왜 그렇게 동생을 도발하는거야, 이 사람은. 그런 말씨가, 가장 유키노시타의 신경을 거스르는 거라니까…

     까득

     응? 지금 뭔가 환청이 들린것 같은데…?

     유키노"…패배라고? …이 내가?"유키노시타의 동공이 슥 움츠러 들고, 그 눈동자에서 광채가 사라진다.

 아, 큰일이다-…, 지금 절!대로 뭐 이상한 스위치가 들어갔어…

    유키노"…너무 나를 깔보지 말아줬으면 좋겠어"

 유키노시타는 그렇게 말하고 천천히 내게 다가온다. 입가에는 얼음 미소를 지은 그 얼굴은 귀기어릴만큼 예뻤다.

 유키노"언니"

 하루노"뭐니?"

 유키노"…확실히 지금은 아직 모든 면에 있어서 나는 언니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할지도 몰라…아니, 분명 그럴거야. 그건 인정해"

 그 유키노시타가 쉽사리 패배를 인정한다. 요컨대 하루노 씨는 유키노시타에게 있어 그렇게 까지 대단한 존재인 것이다.

 하지만 언니에게 말을 하면서도 그녀는 올곧게 나를 쳐다보는 눈을 결코 피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로 말하자면 그런 유키노시타에게 매료된듯 움직임조차 할 수 없었다.

    정신을 차리자, 어느샌가 가게 전체가 정적에 둘러쌓여있다.

 새삼스럽지만 결연한 표정의 유키노시타는 신비스럽기까지한 아름다운 빛을 빛내고 있다. 거짓말을 하여 속세의 때가 묻지 않은 그 혼의 결벽이, 더욱 그 아름다움을 돋우게 하고 있는 것이다.

 유키노"언니의 말대로, 나는 이 남자의 호의에 어리광부리는것도, 의지하는것도, 그리고 이 몸을 맡기는것도 결코 불쾌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그리고 볼을 붉히며 고개를 숙인다. 너, 지금 뭐라고 했어?

 유키노"…오히려 그걸 바라고 있다고 해도 좋아"

 그러니까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너?!

 유키노"…하지만"

    유키노"하지만, 나는 언젠가 반드시 언니를 뛰어넘어보이겠어. 나의 방식으로"

 일순이지만 언니에게 눈을 주고, 다시 나에게 시선을 돌린다.

 유키노"…그리고, 이 남자에게…히키가야에게 나를 이름으로 부르게 하겠어"

 그렇게 말하고 유키노시타는 나의 넥타이를 움켜쥐고 난폭하기까지 거칠게 끌어당겨서, 형태 좋은 자신의 입술을 내 입술로 억지로 갖다댔다.

 흡사 소중한 무언가를 강제로 빼앗아가듯이.

 …어이, 그러니까 이런걸로 괜찮은거냐, 키스라는거? 나도 잘 모르겠는데.

     유키노"…덧쓰기 완료, 구나"///

    살며시 중얼거리면서 유키노시타의 얼굴이 내 얼굴에서 떨어져간다. 이별을 아쉬워하듯이 살짝이지만 이어진 실을 수줍어하듯 힐끔 핥았다.

 하루노"…흐-응. 유키노, 얼마전의 문화제때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역시 너, 괜찮은 소리하게 됐구나"

 유키노"언니에게 단련받은 덕분이야. 감사하고 있어. …그리고 이 남자한테도"그렇게 말하면서 살며시 눈을 내리깐다.

 하루노"좋아. 그 도전, 받아줄게"그렇게 선언하는 그녀의 눈은 이미 비호해야할 동생이 아닌, 한 명의 호적수를 보는 눈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것이 자매의 본래 있어야할 모습인지 아닌지는 나는 모른다. 그저 유키노시타는 이때 처음으로 언니와 같은 위치에 섰다고 생각한다.

 결코 사이 좋다거나, 흐뭇한 상황은 아니지만, 나는 그만 미소짓지 않을 수 없었다.

 …그건 혹시, 쓴웃음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유키노시타가 이렇게까지 뜻을 정하고 자신의 역할을 연기한다면, 나도 또한 그런대로 주어진 역할을 연기할 책임이 있을 것이다.

 설령 그것이 단순한 어릿광대 역이라고 하더라도, 미치지 못하지만 손을 빌려주도록 하자.

 이 녀석이, 시시한 일로 열등감을 느끼지 않도록.

     하치만"…어이, 유키노"

     유키노&하루노"!"

 처음으로 이름으로 부르니, 유키노시타가 눈을 끔뻑거리면서 나를 봤다. 그 뺨이 더욱 붉게 물든다.

 유키노"…가, 갑자기 이름으로 부르지 말아주겠니?"///

 하치만"뭐야, 이름으로 부르라고 했던건 너잖아?"부르는 쪽도 충분히 부끄럽거든 이거?

 평소부터 미우라를 이름으로 경칭생략해서 부르는 하야마는 어떤 의미로 굉장하구만. 혹시 리얼충은 강철의 심장이냐?

 유키노"그, 그건 그렇긴하지만, 왜 이 타이밍에…. 나, 나한테도, 마, 마음의 준비라는게…"///

 하치만"너말이다, 정말로 지기 싫어하는구만…"

 유키노"그, 그렇니? 그런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중얼중얼

 아니아니아니, 아무리 그래도 언니를 대한 대항심 만으로 보통 이렇게까지는 하지 않는다고.

 하치만"…하지만, 네 그런 모습, 나는 결코 싫지는 않은데?"

 유키노"뭣?!"///

 실은 오히려 좋다고마저 생각하지만, 굳이 그건 말하지 않는다. 왜냐면, 나는, 히키가야 하치만이란 그런 남자니까.

    유키노"커흠…히키가야, 나를 좋아한다면 좋아한다고 확실하게 말해줘도 된단다? 네 고백은 너무 빙 돌아서, 정말로 알기 어려워. 잘도 그걸로 현대국어 학년 3위를 유지할 수 있구나?"

 하치만"바, 바보냐 너.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누가 너처럼 성격 나쁜 여자한테 반했다는거야!"그보다, 여기서 보통 까대냐?

 유키노"어머, 아니었니. 나는 순전히…"

 하치만"거기다, 고백이라는게 제대로 전해졌으면 일본어로서 기능은 충분히 다한거잖아"중얼

 유키노"엣?! 그, 그건…?"///

 하치만"아니, 예를 들었을때 이야기다"///

 영어로 다시 말하라고 해도 무리니까. 나, 그런 고급 언어스킬은 없고. 아니 그 이전에 2번 말할까보냐.

     하루노"히히덕 거리는 와중에 방해해서 미안하긴 한데?"

    유키노"그, 그러니까, 누, 누가…"///

 하치만"안했다고요"///

 이와시미즈"…하고 있다고"중얼

 하루노"이와시미즈 씨, 이걸로 당신의 유키노에게 한 구혼도 취소, 라는걸로 봐도 되겠죠?"

 이와시미즈"하퐁?"

 아니, 진짜 너, 자이모쿠자인거 아냐?

 하루노"그치만 방금 약속했지요?"

 하치만"아-…!"나는 그녀가 말하려고 하는걸 겨우 깨달았다.

 유키노"에?"유키노시타가 잘 모르겠다는 얼굴로 나를 보고 있다.

 이와시미즈"야, 약속?"그리고 마치 의미불명이라는 얼굴을 한 남자가 한 명 더.

 도련님이 자이모쿠자 같은…이 아니었다, 여우에게 홀린듯한 얼굴로 하루노 씨의 얼굴을 보고 있다.

    하루노"어머, 그치만 '이와시미즈 씨의 앞에서 히키가야와 키스를 하면, 결혼 이야기는 무조건으로 포기한다'가 아니었나요?"

 유키노"어? 그, 그런 약속을 했었어?"

 하치만"…그런것 같다"

 이와시미즈"에?! 아, 아니 그러니까 그건… 하루노 씨하고 약속이지…"

 하루노"게다가 '남자가 두말은 하지 않는다'였지요. 과연 이와시미즈 가의 도련님인 만큼, 통이 넓으셔라. 멋져요"

 하치만"…과연"…당신이야 말로.

    이와시미즈"에? 아니,? 잠깐? 그러니까 그건 말이죠…"도련님이 땀으로 필사적으로 변명을 생각하고 있는게 손에 쥐듯 보였다

 유키노"설마, 이와시미즈가의 도련님이라는 사람이 약속을 번복하지는 않으시겠죠?"

 완전히 상황을 파악한 유키노시타가 생긋 미소를 지으면서 냉정하게 확인사살을 가한다.

 이걸로 완전히 외통수로군.

 이와시미즈"…므, 므흠. 무, 물론 당연하고말굽쇼…"

 도련님이 마침내 포기한듯, 울상지으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하루노 씨는 여전히 훌륭한 책략가네요.

 내가 외경의 뜻을 담아, 새삼 그 예쁜 얼굴을 보고 있으니, 그녀는 그걸 눈치챘는지 짖궂고 귀엽고 그야말로 천사같은 미소로 한쪽 눈을 감으며 답했다.

 ――― 아…혹시…이것도 전부 하루노 씨의 계획 일부였다던가…?!

 이거 참, 아무래도 우리들은 또 하루노 씨의 손바닥 위에서 줄곧 춤추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 사람, 세상을 만의 군세를 종횡무진으로 조종했던걸지도 모른다. 뭐야 그거 어디의 바다 장군이야?

 그런것도 모르고 홀로 착각해서 허둥대던 나는 엄청 부끄럽다. 얼굴에서 불이 나올것 같다. 소화기 어디있어.

 이런것 정도로 착란을 하다니, 나도 아직 수행이 한참 부족한것 같다. 이 몫은 외톨이의 길을 추구하는건 당분간 먼 모양이다.

    이와시미즈"…이런이런, 아무래도 저는 차여버린 모양이군요"

 내 앞에 앉은 도련님이, 재미없다는듯, 중얼거리는게 들려왔다.

 그리고,

    "아-아, 나도…인가…"

 작게, 뒤따른 그 목소리는 누구의 귀에 닿을 일 없이 하늘로 사라졌다.

    막간극 ~ 역시 이 남매는 유감스럽다 ~

 하루노"그치만, 안 됐구나- 유키노. 히키가야의 첫키스를 언니한테 뺏겨서"

 유키노"어머, 필요하면 앞으로 몇번이라도 덧쓰기 해줄건데?"

 하치만"어?"///

 유키노"예, 예를 들면 하는 이야기야"///

 하루노"어머머, 둘 다 수줍어하고. 귀엽다아ー"

 하치만"저기ー…"

 하루노"응? 왜 그래, 히키가야?"

 하치만"아-…실은 그거 말인데요"

 하루노&유키노"어?"

 하치만"…잘 생각해보니까 내 첫키스 상대는"

 하루노&유키노"?"

 하치만"코마치였어…"

 하루노&유키노"…하?"

    "아, 오빠야. 이번주 주말에 쇼핑 같이 가줄래-?"

 "싫어. 나 완전 바빠. 시간죽이느라"

 "흐-응, 그런가-. 그거 안 됐네-. 그러고 보니 코마치, 요즘 길가다가 자주 헌팅 당하는데-…"힐끔

 "…칫, 알았다"

 "와-아, 오빠야 정말 좋아! 코마치 포인트를 환원해서 오빠의 뺨에 뽀뽀해줄게!"

 "그만, 필요없어. 알았으니까, 덥다, 달라붙지마…엇, 우왓" "히얏"우당탕탕

    뭉클

 "?!"///

 "!?"///

 "아와와와와와와와와. 뭐, 뭐어 됐나. 자주 있는 일이니까. 나, 남매인걸?"///

 "아니아니아니아니, 남매니까 진짜로 안 되는거 아니냐, 이거?"///

    하치만"…뭐, 그런 일이 있었지…"

 하루노&유키노"……………………시스콘"중얼

     === 이와시미즈 시즈오의 재난 ===

 결국, 이와시미즈의 권유로 유키노시타도 합류한 넷이서 회식을 마친 후, 호텔 밖으로 나오니 이미 석양이 지는 시각이었다.

 속을 털어놓고 얘기해보니 이와시미즈…씨는 자산가의 도련님이라고는 도저히 생각 못할 인품과 싹싹하여, 나는 조금이지만 후회와 죄악감을 느꼈다.

 이와시미즈"히키가야, 앞으로 수라장일거야~"툭툭 팔꿈치로 내 옆구리를 찌른다. 짜, 짜증나. 전언철회. 이 녀석한테 느끼는 죄악감은 없다!

 "아, 오빠야?!"

 낯익은 목소리에 무심코 돌아보니, 길 너머에서 손을 흔들면서 코마치가 달려온다.

    하치만"코마치?! 왜 여기 있는거야?"

 코마치"걱정되서 마중 나왔는데? 아, 하루노 언니, 유키노 언니, 얏하로에요. 오빠가 늘 신세지고 있어요"빈틈없게 인사를 한다.

 어느샌가 유이가하마의 인사가 침투한 모양이다. 일본어 흐트러지는데, 괜찮은거냐? 아니, 애시당초 일본어도 아니고.

 유키노"어, 어머, 코마치. 안녕"///

 어째선지 유키노시타가 허둥대고 있다.

 하루노"코마치, 얏하로-. 으응, 여전히 귀엽구나. 갖고 가고 싶을 정도루. 얘, 코마치도 내 동생이 되지 않을래?"

 코마치"그렇네요-. 물론 기꺼이 동생이 되어드릴게요? 손이 많이 가는 오빠지만 잘 부탁드려요"

 하루노"…라는데. 유키노?"

 유키노"으, 응!"///

 하치만"아-…, 안 됐지만 우리 코마치는 포인트 서비스는 있어도 테이크 아웃은 하지 않으니…"

 뭘 불안한 뒷거래를 하는거야.

 그보다 코마치…유키노시타…응…?

 내가 코마치와 유키노시타의 얼굴을 교대로 쳐다보고 있으니, 유키노시타가 그만 시선을 피했다…아니, 설마 이 녀석들…?

    코마치"어라? 오늘은 중2씨도 같이 있었어요? …풋, 뭐에요 그 차림. 전혀 안 어울리는데요?"

 어이쿠야, 코마치 녀석, 이와시미즈 씨랑 자이모쿠자를 착각하고 있다. 뭐, 누가 봐도 쏙 닮았으니까. 어쩔 수 없나.

 하치만"아- 이 녀석은…아니, 이 사람은…"나는 코마치를 앞두고 경직한 이와시미즈를 가리키고 소개를 한다.

 이와시미즈"히, 히키가야! 이, 이 아가씨는 대, 대체?"

 하치만"아-…, 동생인 코마치입니다…아니, 설마, 어이?"

 도련님은 나를 무시하고 코마치에게 달려가선 망설임없이 그 손을 잡았다.

 이와시미즈"코마치 씨, 저랑 겨, 결혼해주세요!"

 하루노&유키노&하치만&코마치"하아?!"

    ………이, 이 녀석이라는 자식은. 절족 동물급으로 절조가 없잖아.

 코마치"헤? 뭐야뭐야뭐야뭐야뭐야? 중2씨, 왜 그래요?"코마치가 벙쪄서 이와시미즈랑 내 얼굴을 교대로 본다.

 하치만"야이, 짜샤. 너 이자식 내 동생한테 무슨 짓을 하는거야?!"

 뻐억

 이와시미즈"호게락"

 내가 등을 있는 힘껏 뻥 차자 도련님은 기세 넘쳐서 데굴데굴 구르고 세 바퀴 반 구르고 벽에 부딪치고서야 겨우 멈췄다.

 하치만"알겠냐, 잘 들어! 코마치는 내거다! 절대로 누구한테도 안 줘!"나는 세간 체면같은걸 전혀 신경쓰지도 않고, 큰소리로 포효했다. 세상의 중심에서 큰 소리로 사랑을 외친다. 동생을 향해서.

 유키노"…여전히 일관된 시스콘이구나"유키노시타가 한숨을 쉰다.

 하루노"어머머, 라이벌은 의외인 곳에 있었구나"하루노 씨는 재미있어 하는 모양이다.

 코마치"아와와, 오빠도 참, 사람들 앞에서 그렇게 똑부러지게…그치만 그거 코마치 입장으로 멋지다고 할까, 아, 지금 코마치 입장으로 포인트 높을지도"///우물쭈물

 코마치는 코마치대로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면서 좋아하고 있다.

 유키노"…역시 남매구나. 이상한데서 많이 닮았어. 아니, 오히려 이상한 곳이 많이 닮았어, 라고 해야할까"유키노시타가 기막힌다는 듯 다시 깊은 한숨을 쉬었다

    이와시미즈"혀, 형님, 그런 쌀쌀맞은 소리 말고…"

 하치만"시끄러워! 누가 네 형님이냐? 기분 나쁜 소리하지 마! 처남이니 매형도 각하다 알겠냐?!"

 자이모쿠자의 사례도 있어서 선수를 쳐둔다.그리고 브라더도 금지다. 흑인처럼 될것 같으니까.

 이와시미즈"코, 코마치 씨. 저와 결혼하면 평생 돈에 시달리지 않는다구요?!"내 발언을 듣지 않고 한쪽 무릎을 꿇고 필사적으로 어프로치한다.

 코마치"아-, 저기, 그게-…죄송해요. 그거 코마치 입장이라고 하기보다, 생리적으로 무리라고 할까나아…친구도 좀 사양하고 싶어서…곁에 있는것 만으로도 후덥지근하고…"

 이와시미즈"크허헝"

 아, 피를 토하고 쓰러졌다. 내 동생이지만 사정봐주지 않는 녀석이다….

 귀찮아서 지면에서 움찔거리며 단말마와 경련을 일으키는 이와시미즈를 그대로 방치한다.

 이번에야말로 정말로 끝일 것이다.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그렇게 확신했다.

 하지만…

     "오옷?! 거기에 있는건 혹시 하치만이 아닌가?! 이거 우연이로군!"

     …그-러-니-까-, 오늘은 진짜 무슨 날이야?!

 큰 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는 쪽을 꺼림찍하게 돌아보니, 석양을 등지고 쓰레기통 위에서 팔짱을 낀채 폼잡고 앉아있는 뚱○의 모습이 눈에 비쳤다.

 그보다 너, 언제부터 거기올라서 준비하고 있던거야?

 역광이라서 얼굴은 잘 보이지않지만 그 목소리와 실루엣 만으로 유감스럽지만 짐작이 가고 만다…실로 유감스럽다는 말이 지금 이때야말로 딱 어울린다. 너무나도 유감스러워서 도리어 아쉬울따름이다.

 하루노"어머어머"

 유키노"아무래도 네 진짜 친구가 나타난것 같구나?"

 하치만"…친구 아니라고"그보다, 이 녀석이랑 친구를 할 바에야 나는 망설임없이 평생 외톨이 길을 택하겠다.

 코마치"주, 중2 씨가…두, 두 사람?!"코마치가 경악하여 눈을 크게 뜬다.

 "멀지 않은 자는 소리를 듣고, 가까운 자는 눈으로 보라. 자아자아 본관이야 말로 그 이름도 드높은 검호장군, 자이모쿠자 요시테루이다! 모두들, 머리가 높다! 고개를 숙이라!"

 하치만"………짜, 짜증나"초라는 단어를 붙이는걸로는 부족할 짜증남. 짜증이 부풀어오른다. 그러는김에 짜증나고. 야채잴임 증가. 리필 자유. 필요없어.

 유키노"과연 네 친구로구나"유키노시타가 역시 짜증난다는듯 한숨을 섞으며 중얼거린다.

 하치만"그러니까 친구 아니라고 했잖아"계속 친구친구 들으니 정말로 친구같은 느낌이 드니까 신기하다. 하지만 그거 아니거든.

 이거 참, 하지만 여기 와서 진. 자이모쿠자 요시테루까지 등장해버렸다. 오늘은 정말로 대체 뭐야? 승천일이야? 액일이야? 천중살이야?

    자이모쿠자"아무래도 이러한 곳에서 조우하게 될 줄이야. 역시 그대와 본관은 하늘이 정한 숙명의 우적(라이벌).
    수많은 전장을 빠져나와, 수많은 화살 아래 검극을 나눈 영광과 전생의 기억은…"

 으스댄 얼굴로 중2테이스트 만개한 연극을 시작한 길고 긴 구설을 하던 와중에, 더 짜증나게도 내 발밑에서 죽어있던 이와시미즈까지 도로 숨을 쉬기 시작했다.

 하치만"…어이, 어쩌냐, 이거"

 유키노"몰라. 네가 책임지고 어떻게든 하렴"

 하루노"그럼 히키가야, 뒷일 잘 부탁해-"

 유키노시타 자매가 왠일로 어깨 나란히 걸어간다. 그런 점은 호흡이 딱 맞는구만. 그보다, 너희들 나중에 기억해둬라.

    하는 수 없구만, 일단은 말이지…

 하치만"코마치, 우리도 집에 가자"

 코마치"응"

 자이모쿠자"무슨, 하, 하치만, 자, 잠깐 기다리는거다"

 흠칫거리면서 어슬렁어슬렁 쓰레기통에서 내려오기 시작한다. 무서우면 처음부터 높은곳에 올라가지마. 바보는 높은 곳을 좋아하는구만. 자존심도 높고 머리도 높다.

 코마치"중2씨, 진짜 꼴깝…"

 하치만"그게 저 녀석의 기본이지만 말이다"바야흐로 자이모쿠자 퀄리티.

 자이모쿠자"므하하하하하, 기다렸구나, 하치만"

 그러니까 새삼 포즈를 잡아도 늦거든. 애시당초 전혀 폼이 안 되거든 그거.

 하치만"칫, 아무도 안 기다렸다고. 코마치, 쳐다보지마"

 자이모쿠자"자, 잠까안, 하치만. 부탁이니까아~"

 하치만"시끄러워! 알았으니까 내 다리에 달라붙지마! 짜증나!"

 퍽

 자이모쿠자"타바핫"

 내가 자이모쿠자를 발로 차니, 마침 눈을 뜬 이와시미즈의 앞에 쓰러졌다.

    자이모쿠자"보흥?"

 이와시미즈"하봉?"

 우와, 둘 나란히 보니 진짜 판박이구만…. 접근하면 화학반응이 일어나서 폭발하는거 아냐? 아니 오히려, 폭발해라. 세상의 평화를 위해.

 그대로 서로를 쳐다보길 몇 초. 서서히,

 자이모쿠자"음?!"삭(왼손을 든다)

 이와시미즈"음?!"삭(오른손을 든다)

 자이모쿠자"으음?!"삭(오른손을 든다)

 이와시미즈"으음?!"삭(왼손을 든다)

 자이모쿠자"으으음?!"사삭(양손을 흔든다)

 이와시미즈"으으음?!"사삭(양손을 흔든다)

 코마치"아,왠지 둘이서 튜튜 트레인을 시작하는데?"

 하치만"코마치, 그거 보면 안 돼"

 이 산업페기물같은 녀석들을 어떻게 수습하지? 유료라도 좋으니까 누가 주워가지 않겠나? 보건소라던가.

     "…호오, 여기에 있었나, 자이모쿠자"

    자이모쿠자"호헤?"

 아름다울터인 석양이 갑자기 피색으로 물들어보였다. 말 그대로 블러디 썬셋. 봉마가 시간의 이름에 어울리는 경색이다.

 뒤돌아보니 거기에는 긴 흑발을 바람에 나부낀 백의차림. 입에 문 시거에선 담배연기가 떠다니며, 그눈에는 틀림없는 살의가 깃들어있다.

 (주)걸으면서 담배피는건 노상흡연 방지에 관한 조례로 금지되어 있습니다.

 그 표정은 확실히 이쁘기는 했지만 그 이상으로 전신에서 배어나오는 살기가 너무 강해서, 이와시미즈 마저 목소리 주인을 돌아본채로, 그저 공포에 떨었다.

 자이모쿠자"시, 시즈카 마님?!"중얼

    뭐야 너, 뒤에서 히라츠카 선생님을 그런식으로 불렀던거냐? 어느쪽이냐고 하면 토모에 고젠이라는 느낌이잖아. 확실히 여장부의 이름이 어울린다.

 히라츠카"사방팔방으로 십육방으로 너를 찾아봤지만, 연락이 닿지 않아…"

 히라츠카 선생님이 낭랑하게 말한다.

 히라츠카"아무도 네가 있는 곳은 물론, 연락처마저 몰랐단 말이지…"

 코마치"…과연 중2씨. 오빠랑 맞먹는 외톨이구나…"중얼

 자이모쿠자"어버버버?"

 자이모쿠자가 황급히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들어 전원을 켰다.일순 몸을 젖혔다고 생각하니, 그 얼굴이 점점 시퍼래져간다. 리트머스 종이같구만, 진짜.

 필시 착신이력이 노호처럼 화면을 매꾸어가고, 메일이 탁류처럼 단번에 눈사태처럼 밀려들어오는게 틀림없다.

 자이모쿠자"무, 무거워, 너무 무거워…"자이모쿠자가 손에 든 스마트폰의 무게(주로 정신적인)에 견디지 못한듯 풀썩 무릎을 찧는다.

 그 마음은 나도 아플만큼 이해할 수 있었다. 나도 전에 한번 경험한 적이 있지만, 그거 일종의 정신적인 악성 스트립트니까.

    히라츠카"유일한 연락망이었던 히키가야도 전원을 꺼놓은 꼴이라니…"째릿 나를 노려본다.

 하치만"아니, 그랬던가?"

 코마치"식사 모임이니까, 코마치가 배려해서 전원을 꺼뒀는데?"소근소근

 과연, 그랬나. 내 스마트폰, 좀처럼 착신이 없으니까 전혀 깨닫지 못했다.

    하치만"하지만, 왜 이 녀석이 여기에 있는걸 알아낸겁니까?"

 히라츠카"네가 있는 곳을 파악해두면, 고구마 줄기마냥 따라올거라 생각했지"

 나는 고구마파냐? 어느쪽이냐고 하면 나, 나 여동생파? 확실히 시스콘이지만.

  코마치"네네에-. 오빠가 있는 곳은 코마치가 통보했답니다"

 하치만"…아니, 역시 코마치냐! 아마 유키노시타도 네가 한거지?"

 코마치"에헤헤~. 들・켰・어? 테헤페로"

 칫, 너무나도 바보같이 귀여워서 화낼 마음도 들지 않아.

    하치만"그러고보니 자이모쿠자. 너 왜 여기에 있는거야?"이걸 묻는것도 오늘 몇번째지.

 자이모쿠자"아니 뭘 묻는건가. 이건 요컨대 하치만이 있는 곳에 본관도 있다는 증거말고 무엇이겠나"

 하치만"그걸로 설명했다는 생각이냐? 그보다 시선 피하지마!"

 자이모쿠자"…아니 실은…오던 도중에 코마치 님의 모습을 보고 그늘에서 호위를…"

 코마치"히익?!"코마치가 식겁하고 있다.

 하치만"…아니, 그거 스토커잖아!?"틀림없이 민폐조례로 저촉될 수준이다. 그보다 이 녀석의 경우, 존재부터 이미 위반이지만.

    히라츠카"…그런데 자이모쿠자. 네 녀석은 얼마전에 진로희망 조사에 또 헛소리를 써놓은 모양이구나?"

 하치만"뭐야 너, 또 무슨 짓 저지른거냐? 뭐, 대충은 예상이 가지만. 풋-"

 코마치"오빠도 제 1지망에 '전업주부'라고 써놓고 취소먹었다고 안했어?"

 하치만"뭐, 그런 적도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완전히 잊어버렸다"

 알고 있냐? 인간의 눈이라는건 앞을 보기 위해 얼굴의 정면에 붙어있는거라고? 그러니까 과거를 돌아보면 안 돼. 특히 나의 과거는 직시할 수 없는 트라우마 뿐이니까.

    하치만"그래서 자이모쿠자. 제 1지망에 뭐라고 썼어? 말해보지?"

 자이모쿠자"흠, 거기는 당연히 '인기절정 라노벨작가'다"

 하치만"…제 2지망은?"

 자이모쿠자"'프로○트 X에 나올 게임 크리에이터'"

 하치만"그래서, 덧붙여 제 3지망은?"냅다 던지기 식으로 묻는다.

 자이모쿠자"'성우 씨랑 결혼하고 싶어'"

 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 그거. 진로 희망이아니라 단순한 망상이잖아. 게다가 초등학생 수준.

    히라츠카"네 녀석네 담임이 진로지도에 진로지도가 학생주임한테 울며 매달려서 말이다. 학년주임이 교감한테 상담하고, 돌고돌아서 교감이 어째선지 나한테 직접 어떻게든 해라고 떠넘겼다…아니 분부하셨다는거다"

 와오, 이른바 빙글빙글 돌리기라는거구만, 쩔어. 과연 천하의 공무원. 일해라.

 히라츠카"덕분에 나는 휴일 출근이다…아무래도 진로희망 조사결과를 현교위에 보고하는 기간은 내일 아침 부근인 모양이니까"

 …교육위원회는 기업이 아니지만 블랙이었군요. 그것도 상당히 진한 블랙.

 히라츠카"에에에에잇, 생각만해도 짜증난다! 이 빌어먹게 바쁠때! …그런고로, 자이모쿠자. 일단 네놈은 한대 맞아라!"

 자이모쿠자"헤히익?!"자이모쿠자가 마치 유죄판결을 받은듯한 얼굴로 굳어있다. 아니, 아니지. 자이모쿠자, 실질적으로 사형판결이니까, 그거.

    히라츠카"…라는건 뭐, 농담이다"히쭉

 자이모쿠자"그, 그렇지요-. 실은 저도 그런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하치만"어이, 자이모쿠자. 공포에 질린 나머지 어투가 원래대로 돌아갔는데?"

 히라츠카"…물론, 한대로 끝날리가 없지 않겠느냐?"구구구구구구구구구궁

 자이모쿠자"후베랏"

 우와-…백번 죽어도 여세가 남을듯한 기세구만.

 자이모쿠자의 몸이 띠용띠용 우무처럼 물결친다. 떨고있는걸지도 모른다.

 자이모쿠자"하, 하치만, 작별이다-"자이모쿠자가 몸을 날린다.

 너, 반권위사향의 전국무장이냐? 혹시 하극상 당한거냐?

    히라츠카"놓칠까보냐!"히라츠카 선생님이 잽싸게 손에 든 휴대폰을 내던진다.

 부웅 퍽 퍽

 자이모쿠자"부베랏"

 이와시미즈"호게렉"

 아주 훌륭하게도 자이모쿠자의 후두부를 직격하고, 기세가 너무 남은 나머지 튀어올라 이와시미즈의 얼굴도 분쇄한다. 오늘은 재난의 연속이구만, 도련님. 여러모로.

 히라츠카"훗"차악

 다시 떠오른 휴대폰을 아무 일도 없었다는듯 한손으로 캐치한다. 대체 당신은 어디 학원도시의 레벨5야.

     히라츠카"…응? 자이모쿠자가 둘? 같은 얼굴이 둘…이라고?"

 히라츠카 선생님은 지면에 뻗은 두 남자의 얼굴을 수상쩍게 비교했지만, 이윽고,

 히라츠카"…흠, 뭐 이참에 아무래도 좋나"

 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 보통 좋을리 없잖습니까, 그거.

 하지만 히라츠카 선생님은 신경쓰지 않고 가까이 있던 목덜미를 움켜쥐고……………………저기, 그거 이와시미즈인데요?

 이와시미즈"헤? 에? 아? 자, 잠깐?"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한 모양인 도련님이 끌려가면서 당혹스런 목소리를 낸다.

 히라츠카"문답무용!"

 히라츠카 선생님은 그대로 이와시미즈의 멱살을 잡은채로 질질끌고, 이윽고 석양지는 저너머로 사라져버렸다.

 도나도나도~나~도~나~♪

 코마치"괜찮은…걸까…?"

 하치만"괜찮을리 없잖아…"

 그러고보니 분명 중앙 아시아 키르기스라는 나라에는 눈독 들인 상대를 납치와 같은 짓을 해서 강제로 결혼시키는 '유괴혼' 풍습이 있는 모양인데….

 어쩌면 히라츠카 선생님, 염원하던 사모님이 될 수 있을지도? 굿 잡! 히라츠카 선생님. 그리고 안습! 도련님.

    === 그리고 히키가야 하치만은 평소 나태한 생활로 돌아온다 ===

 다음날 방과후, 나는 평소처럼 특별동에 있는 봉사부 부실로 향했다.

 부실 문을 여니, 거기에는 평소처럼 유키노시타가 의자에 앉아, 마치 한 폭의 그림책처럼 책을 읽고 있는 낯익은 광경이었다.

 열린 창문으로 불어드는 바람으로, 하얀 레이스 커튼이 미약하게 흔들려 조용히 물결친다.

 낯익은 광경이어도 질릴일은 없다. 그리고 그만 넋이 나가버리는것도 또한 평소 일이다.

Toplist

최신 우편물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