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왜 우리나라 4강 못갔어요 image

2006 독일월드컵 스위스와의 경기에서 최진철 선수가 부상에도 불구하고 압박붕대를 싸맨 채 투혼을 펼치고 있다. 특약

최진철씨의 첫인상은 밝고 선했다. 미남(?)이라고 불러도 그리 어색하지 않을 듯 싶었다. 가끔 웃을 때의 표정은 경기 중에 봤던 그의 표정과 사뭇 달랐다.

“선수시절엔 사진기자분들의 불평이 대단했죠. 제 사진을 100장 가까이 찍어도 겨우 한장 건질까 말까 한다고요. 경기장에서는 인상이 그렇게 안좋다나요. 사실 성격이 좀 다혈질이긴 하죠.”

그렇다면 지금은 나아졌다는 뜻일까. 상대선수를 놓치면 골을 허용하는 수비수였던 그다. 그 냉혹한 승부의 세계에서 인상을 펴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그는 지난해부터 대한축구협회 전임지도자로 유소년 대표팀을 가르치면서 달라졌다. 선수들 입장에서 생각하다 보니 엄할 땐 엄하지만 성격이 부드러운 쪽으로 변하고 있단다. 그도 그렇지만 그 역시 어릴 적부터 선수로 뛰었던 경험이 작용한 것은 아닐까.

그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제주에서 축구를 시작했다. 워낙 운동을 좋아했고 놀거리도 공 차는 것밖에 없어서였다. 그렇지만 당시 제주에서 운동을 특기로 육지에 나가기란 무척 어려웠다. 그래서 그가 선택한 학교가 오현고등학교. 오로지 서울 소재 대학에 가기 위해서였다. 왜냐고? 축구부 몇몇 선배가 서울대 체육학과에 입학했기 때문이다.

“고교 입학 후 첫 대회, 그것도 첫 경기에서 졌어요. 축구부 선배들에게서는 물론 학교 전체에서 살기를 느꼈다면 이해하실지요. 그 뒤로는 졸업할 때까지 진 적이 전혀 없었습니다. 당시 경기에 임하면 진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거든요.”

승승장구하던 그였지만 숭실대에 입학하며 좌절을 겪었다. 정확히 말하면 입학이 결정된 고교 3학년 10월경이었다. 대학에서 합숙하며 새벽에 연습을 나갔는데 추위가 뼛속까지 파고들더란다. 제주에 살던 그에게 그런 추위는 난생 처음이었다. 더구나 고교 때까진 공격수였던 그의 포지션이 그때 수비수로 바뀌었다. 낯설고 적응도 어려웠다. 그의 일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인 ‘도망’을 감행한 이유였다.

“서울에 있는 누나집으로 숨는다고 숨었는데 어느새 누나한테 연락이 왔더라고요. 누나와 제주에 계신 부모님들까지 저를 설득했죠. 하루만에 돌아가는데 마치 지옥으로 향하는 느낌이었어요. 하지만 ‘평생 축구할 거면 다시는 도망가지 말자’고 다짐하는 계기였습니다.”

그 다짐에 대한 보답이었을까. 프로축구단인 전북 현대 모터스에서 뛰던 그에게 어느날 기회가 찾아왔다. 거스 히딩크 감독의 부름이었다. K리그 수원전을 마치고 호남고속도로를 타고 내려가던 도중에 축구단 감독이 히딩크 감독의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그에게 이렇게 전했단다. “국가 대표팀에 들어가라.” 히딩크 감독이 그를 살피러 경기장까지 왔었다는 것. 하지만 그는 내키지 않았다. 1994년과 1997년에도 대표팀에 합류했지만 훈련만 하다가 제대로 뛰어보지도 못했던 아픔 때문이었다.

“경기 전날 연습에서 노란 조끼를 입으면 거의 선발로 나갑니다. 웬걸? 저에게도 노란 조끼를 주더라고요. ‘설마 선발이 아니겠지?’ 그런데 크로아티아와의 평가전 당일 오전에 발표된 출전명단에 제 이름이 올랐어요. ‘다음엔 아니겠지?’ 예상 밖이었어요. 다음부터도 계속 뛰게 되었죠.”

대표팀의 목표는 단 하나, 16강이었다. 그 목표를 향해 똘똘 뭉쳤다. 2001년 컨페더레이션컵대회에 참가한 대표팀은 프랑스와 겨뤄 5대 0으로 졌다. 비난이 쏟아졌지만 히딩크 감독은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단다.

‘성적이 안 좋아도 목표는 현재가 아니다. 점점 나아지고 있으니 우리는 계속 밀고 나갈 것이다.’

그리고 본선을 맞았다. 경기에서 맞닥뜨린 외국선수들은 체격이 우리 선수들보다 컸고 힘도 ‘황소’였다. 몸싸움을 하면 뼈가 아릴 정도였다. 얼마나 경기가 과격했는지 이탈리아전 때 김태영 선수는 코뼈가 부러졌다. 그 역시 탈진해 경기가 끝난 후 병원으로 실려가 링거액을 맞아야 했다.

“4강전이 끝나고 차량으로 이동하다 서울 강남역 쪽에서 도로를 가득 메운 사람들을 보았어요. 우리를 응원하는 국민들이었습니다. 그런 거리응원을 저는 그때 처음 봤어요. 평생 동안 잊지 못할 행복한 경험이었습니다.”

하지만 행복만 있지는 않았다. 독일월드컵에서 1승 1무의 성적을 거둔 상태에서 16강을 기대하며 스위스와 세번째 경기를 치르던 중이었다. 상대선수의 헤딩을 막으려 같이 떴지만 골을 허용했다. 더구나 상대선수와 머리를 부딪쳐 그의 눈 위쪽이 찢어졌다. 그는 부상당했다는 사실 자체를 몰랐다. 골을 먹은 후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후배가 “형, 피 난다”고 알려줬다. 그제야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나중에 알았지만 더 깊이 찢어졌으면 눈에 심각한 영향을 끼칠 뻔 했다고 한다. 하지만 부상보다 자신의 수비 잘못으로 실점했다는 미안함이 그를 사로잡았다.

“운동장 밖에서 치료하는데 1초가 너무 길게 느껴졌어요. 또 중앙수비수가 빠진 상태라 다른 선수들의 부담도 컸고요. 오로지 빨리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어요. 부상이 심하지 않았냐고요? 앞은 보였으니 다시 들어갔어요. 뛸 때엔 머리에 두른 붕대가 거추장스러웠지만요.”

이제는 추억처럼 당시의 심정을 편하게 털어놓는 그였다. 그 추억 속에서 걸어나와 그때의 영광을 다시 이루려는 이가 있다. 당시 함께 수비를 맡았던 선배이자 지금은 브라질월드컵 도전의 선봉장인 홍명보 대표팀 감독이다. 홍 감독을 비롯한 대표팀에 대한 그의 믿음은 바위 같았다.

“명보 형은 카리스마가 대단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존경하는 축구인이자 닮고 싶은 모델이기도 하죠. 경험이 풍부하고 철두철미한 성격이라 준비를 잘할 겁니다. 거기다 후배 선수들의 기량도 예전보다 낫거든요. 우리보다 실력이 떨어지는 상대 국가는 없지만 분명 좋은 결과가 나오리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최진철씨는 1971년 전남 진도에서 태어나 5세 때 부모와 함께 제주로 건너갔다. 고교를 졸업하고 상경해 숭실대와 상무를 거쳐 1996년 K리그 전북 현대 모터스에 입단했다. 수비의 중심으로 활약해 ‘전북의방패’란 별명을 얻으며 2008년 은퇴할 때까지 오직 전북 한팀에서만 뛰었다. 지금은 프로축구단감독을 목표로 대한축구협회 전임지도자

의 길을 걷고있다.

용인=강영식 기자

한국·스위스전 궁금한것 3가지 ‘왜 한국 대표팀이 그동안 낯익은 붉은 유니폼을 입지 않고 흰색을 입을까?’ 한국의 16강 진출 여부가 가려질 G조 조별리그 최종전에 관심이 고조되면서 팬들의 궁금증도 많아지고 있다. 스위스와의 역대 전적은 어떠했는지, 프랑스와 추첨을 해 조 2위를 결정하는 상황이 생길 경우 추첨은 어떻게 하는지. 24일 오전 4시 동시에 치러지는 한국-스위스, 프랑스-토고전을 앞두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3가지 궁금증을 모았다.

대표팀, 붉은 유니폼 왜 안 입을까
한국-스위스전이 열리는 하노버 월드컵경기장은 온통 붉은색 물결로 넘실댈 것이다. 한국의 ‘붉은 악마’를 비롯해 양 팀의 응원단 복장이 모두 붉은색이고, 스위스 선수들의 상·하의와 양말까지 붉은색 차림이다. 유일하게 한국 대표팀만 흰색인 셈이다. 경기마다 형식적이지만 홈팀과 원정팀이 있고 스위스전은 한국이 원정팀이라 역시 전통적으로 붉은색 유니폼을 입어온 스위스에 양보해야 했다.
그렇다고 태극전사들은 심리적으로 고립될 필요는 없다. 대표팀이 흰색 유니폼을 입고 뛰었을 때 성적이 괜찮았기 때문에 오히려 자신감을 가질 필요가 있다. 1994년 미국월드컵 때 흰색 유니폼을 입고 강호 스페인에 맞서 서정원의 동점골로 2-2 무승부를 기록했다. 월드컵에서 상·하의 모두 흰색 유니폼을 입고 뛰기는 이번이 12년 만이다. 2002한일월드컵 때 조별리그 3차전 포르투갈전에서 흰색 상의를 입고 1-0으로 이겨 16강에 진출했고, 8강전에서도 흰색(상의)을 입고 스페인을 눌러 4강에 올랐다.

스위스와 역대전적 어떻게 되나

스위스와 A매치로 맞붙은 적은 없다. 이번이 첫 대결이다. 과거에 진 적이 없기 때문에 선수들이 더욱 자신감을 갖고 뛸 수 있다.
하지만 청소년대표팀은 패한 적이 있다. 지난해 네덜란드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20세 이하)에서 박성화 감독이 이끈 한국 청소년대표팀은 F조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스위스와 만나 전반 25분 신영록이 선제골을 넣었으나 이를 지키지 못하고 고란 안티크와 요한 폰란텐에게 연속골을 내줘 1-2로 역전패했다. 한국은 결국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한국축구는 스위스와 썩 좋지 않은 인연을 맺어왔다. 한국이 처음 월드컵 무대에 나선 1954년 스위스월드컵에서 헝가리에 0-9로 패했고, 터키와 2차전에서도 0-7로 참패했다. 헝가리와 1차전 패배는 월드컵 본선 사상 최다골차 승부로 기록돼 있다. 이번 스위스전이 악연의 고리를 끊을 절호의 기회이다.

조2위 추첨한다면 어떤 방식으로

한국과 프랑스가 월드컵 사상 처음으로 제비뽑기로 16강 진출팀을 가릴 수도 있다. 한국이 스위스와 0-0으로 비기고, 프랑스가 토고를 2-1로 꺾는다면 한국과 프랑스가 골득실차(+1), 다득점(3점)까지 같다. 양 팀이 1-1로 비겼기 때문에 승자승 원칙으로도 구분이 안 된다. 이럴 경우 국제축구연맹(FIFA)은 추첨으로 16강 진출팀을 결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추첨 방식은 정해지지 않았다. 스위스전 하루 전날에 결정될 예정이다. 2000년 1월 북중미 골드컵에서 한국과 캐나다가 ‘동전 던지기’로 8강 진출권을 결정한 적이 있다.
당시 허정무 감독이 고배를 들었다. 한국과 프랑스가 다른 장소에서 각각 경기를 갖기 때문에 경기 직후 바로 할 수 없어 제3의 장소에서 FIFA가 정한 방식으로 운명을 결정한다. 추첨은 딕 아드보카트 감독이 직접 할 수 있고, 대표팀 단장인 이회택 축구협회 부회장이 나설 수도 있다.

박호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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