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그리고 초록의 주황의 불이 안보이려면 어떻게

[별을 따다줘] 07

1. 씬. 전철역 앞 + 길 (밤)

-빨강, 남이를 업고 계단을 올라오는.

준하의 차 안. 운전석에 앉아 남이를 업고 걸어가는 빨강을 바라보는 준하.

2. 씬. 강하의 집 앞 (밤)

-술에 취해 문 앞에서 휘청이고 있는 태규.

빨강E : 너 또 열쇠 잃어버렸니?

태규 : (홱 뒤를 돌아보는)

-남이를 업고, 걸어오는 빨강.

태규 : (빨강 앞으로 급하게 걸어가는. 술기운에 휘청하고)

빨강 : (어이 없이 보면서) 참 골고루도 한다.

태규 : (술기운에 눈을 꿈뻑이며 빨강을 바라보는)

빨강 : 열쇠 좀 잃어버리지 말고.....

태규 : (갑자기 빨강의 얼굴을 두 손으로 잡으며) 자기, 추운데 이 밤에 어디 갔다 오는 거야?

빨강 : (놀라서 뒤로 물러서려고 하면서) 왜 이러냐? 술을 먹어도 좀 곱게 처먹지.....

태규 : 자기가 추우면 내 마음은 시베리아라는 거 정말 몰라?

빨강 : 네가 헛소리 할 때마다 내 마음은 한증막 같다. (하고 지나치려는데)

태규 : 진빨강.

빨강 : 거 참, 누나라고..... 아. 그래 우리 그냥 친구 먹자. 약 먹는다고 사기 쳐서 한달 벌어준 고마움도 있고, 그래, 좋다.

         친구 하자, 해. 이제부턴 빨강아라고 불러도 돼.

태규 : 싫어.

빨강 : 왜?

태규 : 너랑 친구하기 싫으니까.

빨강 : 뭐?

태규 : 난 친구하고 결혼하는 미친놈은 아니거든. 나랑 결혼하자, 진빨강.

빨강 : (멍해지는)

태규 : (빨강의 손을 잡으며) 나랑 결혼해줘라, 진빨강. (와락, 빨강을 끌어안는)

-그 모습을 멀리 다가오던 차, 바라보는 준하.

준하 : (복잡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태규가 와락 끌어안는 바람에 깨서 울기 시작하는 남이.

빨강 : (태규, 발로 걷어차며) 잘한다, 잘해, 잘 자는 우리 남이나 깨워놓고.

태규 : 난 진심이라니까.

빨강 : 너 정말 약 하는구나?

태규 : 난 진심이라구, 진빨강.

빨강 : 나 너하고 장난칠 여유 없거든. (돌아서서 문을 여는데)

태규 : (톤 높여서) 장난 아니라구. 네가 내 운명의 상대라는 확신이 든단 말이야.

빨강 : (돌아보며) 멀쩡해 보이는데 너 정말 미친놈이다. 친구로도 곤란하겠다, 미친놈하고 친구해서 뒤끝 좋겠냐?

태규 : 나랑 결혼하면 계속 우리 집에서 살 수 있어.

빨강 : ......

태규 : 한 달 뒤에도 우리 집에서 안나가도 된다구.

빨강 : 진짜 구미는 당기는데. 확 하는 마음도 진짜 없지는 않은데.

태규 : 그럼 하면 되잖아?

빨강 : 동생 다섯 뒤치닥거리 하는 걸로 충분하다. 미친 남편 병수발까지 하면서 사는 건 너무 비참하지 않겠냐?

         (돌아서서 걸어가는)

3. 씬. 거실 (밤)

-불 꺼진 실내. 빨강, 남이 업고 들어오는. 태규, 뒤 따라 들어오면서.

태규 : 다시 생각해봐, 응? 응? 난 미친 거 아니라니까.

빨강 : 미친놈이 자기 미친 거 알면 미친 거 아니지. 잘 자라. (지하방으로 들어가는)

태규 : 자기가 아무리 그래도 내 사랑은 변치 않아.

4. 씬. 강하의 집 전경 (아침)

5. 씬. 강하의 방 (아침)

-강하, 눈을 뜨고 기지개를 켜며 일어나려는데, 발치에 뭐가 걸려서 화들짝 놀라 일어나 침대 밑으로 내려서는.

이불을 똘똘 말고 잠이 들어있는 파랑.

강하 : (기가 막혀서, 파랑을 쿡쿡 찌르며) 야? 야?

파랑 : (부시시 눈을 뜨는)

강하 : 너, 왜 여기서 자?

파랑 : 저 몽유병이에요. 아저씨가 이해하세요. (이불 속으로 쏙 들어가는)

강하 : (멍하고)

6. 씬. 거실 (아침)

-노랑, 초록, 욕실 문 열어보고, 소파 밑 찾아보고 정신이 없다.

빨강, 식당에서 나오는.

빨강 : 도대체 얘가 어딜 간 거니?

노랑 : 세탁실에서도 없어.

초록 : 없으니까 어디 간 거냐고 하잖아. 작은 언니는 가만 보면 맹한 소리 진짜 잘하드라.

노랑 : 언니 얘가 나더러 맹하다고.

-주황, 뛰어 들어오는.

주황 : 큰 길까지 가봤는데 없어.

빨강 : 그럼 어디 간 거야.

-준하, 방에서 나오고,

준하 : 좋은 아침입니다. (하다가 애들 얼굴 보고) 왜? 무슨 일 있어?

노랑 : 파랑이가 없어졌어요.

준하 : 언제?

초록 : 그거야 모르죠. 자고 일어나보니까 없거든요.

주황 : 내가 다시 나갔다 올게.

강하 : 그럴 거 없다. (계단으로 내려오는 빨강에게) 내 방에서 자고 있는 그 녀석 좀 치워주죠?

빨강 : 아니, 파랑이가 왜 그 방에?

강하 : 그야, 난 모르죠. 자긴 몽유병이니까 이해하라고 하고 다시 자긴 하대요.

준하 : (웃으며) 그런 말까지 하고 자?

빨강 : 이 자식을 정말.

7. 씬. 강하의 방 (아침)

-이불 똘똘 말고 자고 있는 파랑. 빨강, 주황 들어오는.

빨강 : (이불 걷어내면. 침대 밑으로 굴러 떨어지는 파랑)

파랑 : 아야. 왜 그래?

주황 : (발로 차면서) 왜 그래? 네가 왜 이방에 올라와서 자?

파랑 : 나 몽유병이잖아.

주황 : 그게 자랑이냐? 자랑이야? (패려고 하면)

파랑 : (빨강 뒤에 숨는) 누나, 누나, 형 좀 말려줘.

빨강 : (파랑 잡아서 주황 앞에 세우고) 정신 차릴 때까지 두들겨 패서 데리고 내려와.

8. 씬. 2층 거실 (아침)

-빨강, 강하의 방에서 나오면,

파랑E : 정신 차릴게, 정신 차릴게, 형, 그만 그만.

주황E : 다른 사람 방도 아니고, 이 방에 들어온 놈이 제정신이냐?

-준하, 올라오는.

준하 : 싸우는데 말려야 하는 거 아니에요?

빨강 : 싸우는 게 아니라 두들겨 맞는 거예요.

준하 : 병 때문에 그런 건데.

빨강 : 병원 갈 돈도 없는데, 정신 차리고 살아야죠. (내려가는)

9. 씬. 강하의 방 (아침)

-주황, 따라다니고, 파랑 마구 도망 다니고,

파랑 : 형, 형, 다시는 안 그럴게.

주황 : 너 옛날에도 나한테 직싸게 맞고 1년 넘게 그 병 고친 적 있잖아.

파랑 : 안 맞아도 고칠게, 고칠 수 있어.

주황 : 못 믿겠으니까 맞고 보자.

-준하, 들어오는.

준하 : 고칠 수 있다는데 한번 믿어주지.

주황 : 그렇게 봐주면 큰일 낼 놈이에요, 저 놈은.

준하 : (파랑 안아 올리고) 고칠 수 있지?

파랑 : (끄덕이며) 네, 고칠 수 있어요.

10. 씬. 거실 (아침)

-강하, 마당에서 신문 들고 들어오는.

노랑, 초록, 눈치 보면서, 지하방으로 들어가려고 하면. 식당에서 커피 들고 나오는 빨강.

빨강 : 왜 안 씻고?

노랑 : 저 아저씨 저기 있잖아?

빨강 : 변호사님은 위층 화장실만 쓰시니까 어서들 들어가서 씻어.

-노랑, 초록, 눈치 보면서 욕실로 들어가는.

빨강 : (커피 가져다 강하에게 내미는) 일요일이라 아침 좀 느긋하게 차리는 중인데, 이것부터 드세요.

강하 : (커피 받고)

-준하, 파랑 안고 뛰어내려오고, 주황, 따라 내려오면서.

주황 : 그렇게 편드시면 안 돼요, 아저씨.

준하 : 우린 마당에서 운동 좀 하고 들어올게요. (하고 파랑 안고 뛰어나가는데)

-태규, 방에서 나오면서 보는.

태규 : (준하, 파랑, 주황, 앞으로 지나 현관으로 뛰어나가는 거 보면서) 뭣들 하는 거야?

빨강 : 운동한다잖아.

태규 : 근데 왜 다들 2층에서 내려와? (강하를 보면)

강하 : (커피를 들고 2층으로 올라가는)

11. 씬. 마당 (아침)

-준하, 파랑을 안고 도망치고 있고, 주황 따라다니면서.

주황 : 아저씨가 그렇게 편 들어주면 저 자식 병 못 고쳐요.

준하 : 고치겠다는데 한번만 봐주자.

-태규, 뛰어나와서, 준하 앞에 두 팔 벌리고 서는.

준하 : 왜?

태규 : 우리 애들하고 왜 이래?

준하 : 뭐? 우리 애들?

태규 : 얘네들은 나하고 더 친하단 말이야. 왜 작은 삼촌이 끼어들어서 우리들 사이를 방해해?

준하 : 너 뭔 소리야?

태규 : (파랑이 뺏으면서) 주황아, 나랑 다시 하자. 내가 파랑이 안고 도망.... (파랑이 무거워서 주저앉으며)

         우리 손잡고 도망가야겠다.

준하 : 병은 저 자식이 중증이야.

12. 씬. 식당 (아침)

-뺑 둘러앉은 일동. 빨강, 토스트기에서 빵 꺼내 각자 앞에 놓아주면서.

빨강 : 앞으로 휴일에는 별식으로 해볼까 하는데, 어떠세요?

-아이들. 야, 빵이다. 좋아라하고.

빨강 : (구운 햄 접시 가운데 놔주면서) 빵에다 한 장씩 놔 드시면 되구요.

-아이들 와, 햄, 햄.

준하 : (강하 눈치 보면서) 형은 빵 별로 안 좋아하는데.

빨강 : 어머, 몰랐어요, 죄송해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얼른 밥해서.

강하 : 한 달 동안은 참아보죠. (빵 가져다 먹는)

파랑 : 저기요, 아저씨?

강하 : (보고)

파랑 : 저는요. 노랑이 누나는 팀장 아저씨가 멋있다고 하고, 꼬맹이 누나는 태규 형이 멋있다고 하는데

         저는요. 변호사 아저씨가 짱인 거 같아요. 진짜 아저씨는요, 파워레인저 같아요. 싸움도 잘하시죠?

강하 : .....

주황 : 그냥 빵이나 먹어.

준하 : 저 아저씨 운동 진짜 잘하셔.

파랑 : 제가 그럴 줄 알았어요. 제가 사람 보는 눈은 좀 있거든요.

강하 : 빵 먹어라.

파랑 : 네.

13. 씬. 준하의 방 (낮)

-준하, 컴퓨터 앞에 앉아 모니터 보고 있는데, 영 뒤가 켕기는. 문틈으로 보고 서있는 노랑.

준하 : (참지 못하고 돌아앉으며) 왜? 왜?

노랑 : (옳다구나 하고 문 열고 들어서며) 아저씬, 우리 언니 어떻게 생각하세요?

준하 : 좋게 생각해, 됐니?

노랑 : 아니요, 그런 거 말구요.

14. 씬. 거실 (낮)

-준하, 방에서 나와 식당 쪽으로 움직이는데. 노랑 쫓아오는.

노랑 : 남자가 보기에 여자로 어떠냐 그거죠.

준하 : 진짜 곤란한 질문인데, 난 노랑이 언니를 여자로 보지 않는데 어쩌지?

노랑 : 아저씨 남자시잖아요?

-두 사람 식당 안으로 움직이고. 소파 앞에 앉아있는 태규와 초록.

태규 : 난 네 언니가 운명의 상대라고 생각해.

초록 : 정말요?

태규 : 응. 너한테만 말이지만, 벌써 프로포즈도 했다.

초록 : 정, 정말이요?

15. 씬. 지하방 (낮)

-빨강, 남이 기저귀 갈고 있고, 주황, 이불보 벗겨내고 있는데.

빨강 : 먼지 난다, 남이 입에 다 들어가겠다. 나가서 해.

-초록, 뛰어 들어오는.

초록 : 언니, 언니?

빨강 : (놀라서) 왜 또 무슨 일이야?

초록 : (빨강 손 덥석 잡으며) 축하해, 축하해.

빨강 : 뭘?

초록 : 태규 오빠랑 결혼한다면서?

주황 : 누나?

빨강 : (인상 확 구겨지는)

초록 : 잘 생각했어, 잘 생각했어.

빨강 : 주황아?

주황 : 응.

빨강 : 얘도 두들겨 패야 할 거 같다.

16. 씬. 욕실 (낮)

-준하, 손 씻고 있으면. 문 두드리며.

노랑E : 아저씨, 저랑 진지하게 대화를 좀 해보셔야할 거 같아요.

준하 : 아, 저 꼬마 진짜 왜 저러냐.

17. 씬. 마당 (낮)

-준하, 운동 가방 들고 평상복차림으로 급하게 나오는, 노랑 따라 나오는.

노랑 : 꼭 지금 운동 가셔야해요?

준하 : 응. 몸이 찌뿌등해서 지금 가야겠거든.

노랑 : 어딘데요?

준하 : 저기 멀어.

노랑 : 저 그럼 차 좀 태워주시면 안돼요?

준하 : 차?

노랑 : 동네 구경도 못해봤거든요. 한바퀴만 돌아주시면 안돼요? 소원인데.....

18. 씬. 동네 길 (낮)

-준하, 운전하고 있으면, 옆 좌석에 앉아 종알거리고 있는 노랑.

노랑 : 우리언니가요. 철이 좀 안 들어서 그렇지, 우리 동네에선 옛날에 살던 우리동네요. 우리 동네에선 이쁜 편에 들었거든요.

준하 : (어색하게 미소만 짓고)

노랑 : 보셨어요? 우리 언니 다리 진짜 늘씬한데.

준하 : (어색의 극치로) 어. 어, 글쎄.

노랑 : 못 보셨어요? 요즘은 바지만 입고 다녀서 못 보셨나보다. 한번 보세요. 진짜 늘씬하고 이뻐요.

         여자는 뭐니뭐니해도 미모잖아요? 그렇게 생각 안하세요?

준하 : 어. 어. 뭐....그럴 수도...

노랑 : 저도 우리 반에서 이쁜 애에 속하거든요.

준하 : 어, 그럴 거 같다.

노랑 : 제 얘기 하려고 한 건 아니구요. 다시 우리 언니 얘기로 돌아가면요....

-종알거리는 노랑의 입. 지쳐가는 준하의 표정.

19. 씬. 강하의 방 (낮)

-강하, 책상 앞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데. 뭔가 좀 이상하다.

강하 : 왜 이렇게 조용하지.

20. 씬. 거실 (낮)

-강하, 계단으로 내려오면. 주황, 빨래 널고 있는. 남이 소파에 앉아 놀고 있고.

강하 : 네 누나 어디 갔냐?

주황 : 태규형이랑 보행기 줏으러 갔어요. 초록이랑 파랑이도 쫓아 갔구요. 초록이가 그런 거 전문이거든요.

강하 : 야, 거실에다 빨래를 널면 어떡하냐?

주황 : 오후에 눈 온다는데요. 그래서 여기다 너는 거예요. (윽 신호가 오는. 엉덩이 붙잡고 화장실로 뛰어 들어가는)

강하 : (식당으로 가려고 하는데. 소파에서 놀고 있던 남이가 떨어지려고 하고. 놀라서 달려들어 남이를 끌어안는.

         남이 갑자기 울어 젖히기 시작하는) 야, 야. 애기 우는데.

주황E : 부엌에 분유통 있는데, 물 좀 끓여서 타주세요.

강하 : 네가 해.

주황E : 저 변비예요. 죄송해요. 한번만 부탁드릴게요. 정말 죄송해요.

강하 : 저 남매는 말로만 죄송하대지.

21. 씬. 식당 (낮)

-강하, 엉성하게 남이 안고 물을 끓이는. 남이는 연신 울고.

강하 : (엉성하게) 까꿍...오르르....아 됐다, 그냥 울어라.

-분유통 여는데, 난감하고.

22. 씬. 거실 (낮)

-강하, 욕실 앞에 서서. 남이는 계속 울고.

강하 : 야, 아직 멀었냐?

주황E : 그런 거 같은데요. 죄송해요.

강하 : 야, 말로만.... (말을 말자 싶고) 분유 몇 개 타야 되는데?

주황E : 거기 있는 스푼으로 여섯 개 넣으시구요. 물은 3분의 2만 채우시면 되요.

강하 : 여섯 개, 삼분의 이. (하면서 돌아서는데)

주황E : 너무 뜨거우면 안 되니까 온도 잘 체크 하세요.

23. 씬. 강하의 집 앞 (낮)

-태규, 보행기 들고, 빨강, 초록, 파랑 걸어오는.

초록 : 무슨 동네가 보행기 하날 안 버렸냐?

빨강 : 있는 사람들이 더 무서운 거야. 그렇게 아끼니까 부자로 사는 거구.

태규 : 버리는 거 많아.

파랑 : 하나도 없던데요.

태규 : 동네 망가진다고 사람 불러서 치우니까 집 앞엔 아무것도 없는 거지.

초록 : 그런 거구나.

태규 : 내가 새 걸로 사준다니까. 다른 애기가 쓰던 거 찝찝하지 않아?

빨강 : 괜찮아. 우리 다 그런 거 얻어 쓰면서 살았어.

초록 : 옛날 우리 동네 같으면 그냥 주워 쓰는 건데. 2만원이나 아깝다.

빨강 : 깨끗하게 쓰던 거 샀잖아.

파랑 : 우린 돈 주고 사는 거 별로 없었어요. 옷도 다 얻어다 입고.

태규 : 이제부턴 내가 너희들 그렇게 살지 않게 할 거야.

파랑 : 네? 정말요?

빨강 : 애들한테 쓰잘데기 없는 소리 하지 말고. 우리끼리 간다니까 왜 쫓아 나와선.

태규 : 자기하고 나 사이에 그런 말이 어딨어?

빨강 : 너 계속 까불래?

24. 씬. 식당 (낮)

-강하, 우는 남이 안고 쩔쩔매고 있는.

우유병을 공중에 들어 올리고 털어서 혀에 받아보려고 하지만, 잘 되지 않고. 남이는 더 크게 울고.

강하 : (급해서 어쩔 수 없이, 우유병을 입에 물고 빠는데)

빨강E : 뭐하시는 거예요? 드럽게?

강하 : (놀라서 보는)

빨강 : (다가와 우는 남이 뺏어 안고, 우유병 확 뺏는) 왜 애기 우유병은 빨고 그러세요?

강하 : 너무 뜨거우면 안 된다고 해서....

빨강 : 그럼 손등에 이렇게 하셔야죠.

강하 : 그런 걸 내가 어떻게 압니까? 집안에 사람은 없지, 애는 울지.

빨강 : 주황인 어디 갔는데요?

강하 : 변비라고 뛰어 들어가선 이래라 저래라 명령만 하면서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만 하고. 나 나름으론 한다고 했는데.

태규 : (식당 앞에 보행기 들고 와서 서고, 파랑, 노랑도 쓱 고개 들이밀고) 왜 그래? 삼촌?

강하 : (내가 뭐하는 짓인가 싶고. 그냥 나가버리는)

빨강 : 죄송해요. 애기 우유병을 빨고 계시니까 저도 모르게 소리부터 지르게 된 거예요.

태규 : 우리 삼촌이 애기 우유병을 빨아?

25. 씬. 거실 (낮)

-강하, 계단으로 움직이면. 뒤에서 들려오는.

초록E : 어머, 그런 것도 모르나봐. 변호사면 무지 똑똑할 텐데. 애기 우유병을 빠냐?

파랑E : 몽유병이 나쁠까? 우유병 빠는 게 나쁠까?

초록E : 너 그게 무슨 말이야?

파랑E : 저 아저씨랑 나랑 비슷한 거 같아서.

강하 : (상대하지 말자, 참는 심정으로 계단 올라가는)

26. 씬. 강하의 방 (낮)

-강하, 책상 위에 있는 달력 들고 빨간색 펜으로 날짜 위에다 가위표 그리는.

태규E : 삼촌?

강하 : (돌아보고) 왜?

태규 : 애기 보느라 고생 많았겠다. 빨강이가 진짜 미안하고 고맙고 그렇대.

강하 : 됐으니까 내려가.

태규 : 근데 그게 뭐야? (다가와 강하가 들고 있는 달력 보면서) 삼촌, 이런 것도 체크해? 한 달 동안 이렇게 매일 하려구?

강하 : 나가라니까.

태규 : 삼촌답지 않게 너무 쪼잔한 거 같지 않아?

강하 : 나가라고 했지.

태규 : (문 앞에 가서 서서) 빨강이 때문에 큰 삼촌 카리스마는 물 건너간 거 같다.

강하 : (홱 놀려보면)

태규 : (얼른 도망치는)

27. 씬. 강하의 집 앞 (낮)

-준하의 차 와서 멈추는.

노랑 : (간절하게) 아저씨? 한바퀴만 더 돌아주시면 안돼요? 저 아저씨한테 드릴 말씀이 아직 많이 남았거든요.

준하 : (지친 표정으로) 넌 참 할 말이 많구나.

노랑 : 제가 원래 내성적인데, 할 말은 꼭 하는 스타일이예요. 아저씨, 그러지 마시고 한 바퀴만 더 돌면서.....

준하 : 열 바퀴도 더 돈 거 같은데...... (안되겠다 싶어서) 나 집에 들어가서 할 일이 있거든.

노랑 : 운동 가신다면서요?

28. 씬. 준하의 방 (낮)

-준하, 들어와서 침대에 널부러지는.

준하 : 20킬로를 뛰어도 이렇게 힘들지는 않을 거야.

-노크 소리.

노랑E : 아저씨? 아저씨?

준하 : (베개로 얼굴 덮으면서 몸부림치는)

29. 씬. 강하의 집 전경 (밤)

30. 씬. 지하방 (밤)

-동생들 모두 잠들어 있고, 빨강, 잠든 남이 한손으로 다독이고, 다른 손으론 보험 책자 들고 외우고 있는.

그러다 툭하고 떨어지는 코피.

31. 씬. 거실 (밤)

-빨강, 코를 틀어막고 지하방에서 급하게 나와 욕실 앞으로 가는데. 문 열리고 나오는 준하와 부딪히고.

빨강 : 죄송해요. (하면서 욕실로 뛰어 들어가는)

준하 : 왜 그래요? 코피 나는 거예요?

32. 씬. 욕실 (밤)

-빨강, 물 틀어놓고 고개 뒤로 젖히고 물로 코 닦아내는데.

준하E : 목 뒤로 젖히지 말아요. 피 목으로 넘어가면 안 좋아요.

33. 씬. 식당 (밤)

-빨강, 휴지로 코막고 의자에 앉아 코뼈 있는 델 손으로 꾹 누르고 있고 준하, 빨강의 이마에 얼음주머니를 대주는.

빨강 : 이제 된 거 같아요.

준하 : 그냥 있어요. 우유 한잔 따뜻하게 데워줄 테니까.

-빨강의 앞에 놓이는 우유잔.

빨강 : (감동한 표정으로 우유잔 들면서) 형제분이신데, 어떻게 이렇게 다르실 수 있죠?

준하 : (앞에 앉으며) 그래도 여자들은 다 우리 형만 좋아하던데요.

빨강 : 그거야 다들 눈이 삐어서.

준하 : 그러는 빨강씨도?

빨강 : (보고 피식 웃는)

준하 : (웃고) 많이 고단하죠? 집안일에 회사 일에 남이까지 업고 다니면서. 강철 체력이라도 못 베길 거예요.

빨강 : 근데요, 팀장님?

준하 : 네?

빨강 : 기분 너무 너무 좋은 거 있죠? 저 태어나서, 아, 어렸을 때 동네 애들하고 싸우다 코피 난 적은 있었구나.

         그거 말구요. 정말 태어나서 뭐 열심히 하다가 코피 난 건 오늘이 처음이에요.

준하 : 그 기분 나도 뭔지 조금은 알아요.

빨강 : 아세요?

준하 : 시험공부 죽어라 해놓고 학교 가선 어젯밤에 자느라 공부 하나도 못했다고 뻥치는 기분 뭔지 알죠?

빨강 : 아니요. 그래본 적이 없어서.

준하 : 어쨌든, 말은 그렇게 해놓고 화장실 갔는데 코피 주루룩 흐를 때, 아 나 되게 열심히 했구나 싶어서

         뿌듯해지는 그런 기분이요.

빨강 : 공부 하나도 안했다고 해놓고 100점 맞는 애들이 제일 재수 없었는데.

준하 : (띵한 표정으로 보면)

빨강 : (웃으며) 그것도 비밀로 해드려야겠죠? 쪽팔리실 테니까요.

준하 : (미소 짓는) 빨강씨랑 나 사이에 자꾸 비밀이 늘어가네요.

빨강 : 이러다 우리 비밀 결사대 같은 거 하나 만드는 거 아닌지 모르겠어요.

준하 : (그런 빨강을 조금은 흔들리는 표정으로 보는. 일어서고)

빨강 : (일어서며, 우유컵 치우면서) 안녕히 주무세요. 문 잠궈 놓고 회사 일 하느라 또 밤새지 마시구요.

준하 : (어색하게 미소 지으며) 네, 빨강씨도 잘 자요. (나가는)

빨강 : (개수대에 컵 넣고 씻는)

준하 : (돌아보고. 그런 자신에게 흠칫하는 느낌으로 방으로 돌아서서 걸어가는)

34. 씬. 회사 전경 (아침)

35. 씬. 사무실 (아침)

-팀장, 빨강, 남이 업고 서있는.

팀장 : 아무 것도 하지 마. 보험에 대해선 입도 떼지 말고.

빨강 : 그럼 어떻게 계약을..... (팀장 눈치 보고) 말씀 하세요.

팀장 : 그냥 네가 남이 아니라는 것만 고객에게 인식 시켜. 알았어. 내 말?

빨강 : 네. 알 것도 같고.....

36. 씬. 회사 일각 (아침)

-은말, 진주, 빨강, 남이 업고 서서.

은말 : 오늘은 뭐 들려준 것도 없어? 빈손으로 나가래?

빨강 : 남이 아니라는 걸 인식 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진주 : 말 그대로 그냥 눈도장만 열심히 찍어라 뭐 그런 거 아닐까?

은말 : 니 팀장 갸도 그래. 그냥 알려주려면 시원하고 쉽게 알려주지. 무슨 말을 배배 꽈서 알려주고 그러냐.

         가뜩이나 머리도 안 좋은 애한테.

장수 : (다가오면서) 빨강씨? 빨강씨?

은말 : 아니, 왜 숨넘어가게 불러?

장수 : 제가 인맥을 통해서 좀 알아봤거든요. 빨강씨 새 일자리에 대해서.

은말 : 그래서?

장수 : 제 사촌 형이 이벤트 회사를 하나 하는데, 행사 모델 일이 있다고 하더라구요.

진주 : 행사 모델이요?

은말 : 모델이면 (무대에서 걷는 것처럼) 옷 쫙 빼입고 막 이렇게 걷고 그러는 거 아녀?

장수 : 꼭 그런 건 아니구요. 왜 개업하는 가게 앞에서 댄스도 좀 하고, 전단지도 나눠주고 그러는 거 있잖아요.

은말 : 아, 그거. 그걸 빨강이 얘가 어떻게 해?

장수 : 근데 그게 잘만하면 수입이 꽤 괜찮다네요.

진주 : 그거야 잘만 하면이죠. 빨강이 얘 통나무 아저씨 춤 밖에 못 추는데....

빨강 : 생각해주셔서 고마워요. 근데 저 이 길로 한번 성공해 보려구요.

은말 : 어떤 길?

진주 : 설마 보험 설계사를 말하는 거니?

빨강 : 우리 남이 업고 다니면서도 할 수 있는 일이잖아. 우리 남이한테 우리 누나 굉장해요, 하는 소리 한번 들어봐야지 않겠어?

         그럼 오늘도 열심히 뛰러 갑니다.

진주 : 그래. 잘해서 한 껀이라도 꼭 따와.

은말 : 오늘도 무사히다.

장수 : 그건 택시 기사 아저씨들한테 하는 말 아닌가요?

은말 : (버럭) 그게 어디 법으로 정해져 있는겨?

37. 씬. 병원 장례식장 (낮)

-빨강, 남이를 업고 눈치 보며 서있는.

중년 남자(상주), 조문객들을 배웅하고 있는.

빨강, 엉겁결에 인사하는.

중년 : (지나치려다가) 누구신지?

빨강 : (구십도로 인사하고) 저 JK 생명의 진빨강이라고....

중년 : 아. (반갑지 않은) 그런데 아가씨가 여긴 어떻게?

빨강 : 오랜만에 인사라도 드리려고 가게에 갔더니 상을 당하셨다고 하셔서....

중년 : 아. 그랬구만.

-빨강, 남이 업고 국화꽃 꽂고 돌아서서 중년 남자 등. 상주들과 인사하는.

영정 사진은 70 대 할아버지. 할머니는 한 켠에 넋을 놓고 돌아앉아서 영정 사진만 보며 울고 있는.

중년 : (썩 반갑지 않지만) 이렇게 와주니 고마워요. 가서 식사라도 좀 하고....

빨강 : 당연히 와서 봬야죠. 저 제가 도울 일이라도....

중년 : 도울 일은 무슨 그냥 식사나....

-빨강, 남이 업고 분주하고 조문객들 사이 돌아다니면서 상도 차려주고 음료수도 주고. 상도 치우고 바쁘게 움직이는.

38. 씬. 화장실 (낮)

-빨강, 남이 기저귀 갈아주면서.

빨강 : 사람은 어려울 때 도와야 하는 거야. 이런 게 바로 옆에 있구나 인식 시켜드리는 거거든.

         그러니까 남이 오늘 누나 좀 도와줘. 울지 않고 잘 할 수 있지? 우리 남이만 믿어요, 누나는.

39. 씬. 병실 (낮)

-정회장, 침대에 앉아있고, 환자복 아닌, 일상복으로 갈아입은.

그 앞에 인구, 민경, 의사. 간호사.

의사 : 집에서 간호 하시려면 힘드실 텐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인구 : 그래, 여보. 당신 힘들어서 안 된다니까. 당신이 집에서 노는 사람도 아니고.

민경 : 그래도 병원보단 집에 계신 게 더 마음의 안정을 얻으시지 않겠어요? 아버님? 집으로 가시는 게 나으시겠죠?

정회장 : (멍한 표정으로 민경을 바라보는)

40. 씬. 병원 복도 (낮)

-정회장, 휠체어에 타고 있고, 인구 뒤에서 미는. 비서 가방 들고. 민경 뒤를 따르는.

정회장 : 걸을 수 있는데....

인구 : 아버지, 그냥 걸어서 퇴원하시는 것보단 이게 더 폼이 나시잖아요. 재벌 회장들 병원에 입원하고 퇴원할 때,

         자기 발로 걸어가는 사람 한번이라도 본 적 있으세요? 그게 다....

민경 : (인구 팔 잡으며, 조용히 가자는 표정)

인구 : 아버지. 제가 편안하게 모실 테니까 가만히 계세요.

-엘리베이터 문 열리고, 인구, 민경, 정회장, 비서 타고. 인구, 휠체어를 문 쪽을 향해 돌리는데.

닫히려는 문 앞으로 빨강, 남이를 업고 지나가는.

정회장 : 잠, 잠깐.....

인구 : 왜요? 아버지? 어디 안 좋으세요?

민경 : 어지러우세요?

정회장 : (닫히는 엘리베이터 문을 멍하니 바라보는. 지금 자신이 누구를 봤는지도 깨닫지 못하는 답답한 심정으로)

-엘리베이터 밖, 그 앞을 남이를 업고 지나가는 빨강.

빨강 : (잠, 잠깐이라는 정회장의 소리에 뒤를 돌아보는. 두리번거리는데. 생소한 사람들만 스쳐지나가는.

         갸우뚱하면서 남이 엉덩이 다독이며 걸어가는) 가서 열심히 도와드리자.

41. 씬. 회사 식당 (낮)

-강하, 준하 식사하고 있는.

준하 : 왁자하게 다닥다닥 붙어 앉아서 먹는 것도 재미 있드라구. 우리 솔직히 어려서도 그런 적 없잖아?

         우린 너무 우아했어. 애들 때는 애들다웠어야 하는 건데.

-다가오는 재영.

재영 : 점심들 먹으러 올 거면 나도 좀 찾아서 챙기면 안돼?

준하 : 식당 어디에 있는지 모르냐? 챙기긴 뭘 챙겨.

재영 : (강하 보면서) 내일 어떻게 할 거야?

강하 : (식사만 하는)

준하 : 내일 무슨 날이야?

재영 : 너 형 생각 엄청 하는 척 하는 거, 쇼지?

준하 : 얘가 왜 또 시비지?

재영 : 그런 애가 형 생일도 잊어버리니?

준하 : 아....

재영 : 오빠. 이래서 뭐니뭐니해도 사랑이 최고라는 거야. 형, 형 하는 동생놈 다 소용 없다니까.

준하 : 너 점수 따려고 우리 형한테 하나 밖에 없는 동생놈 너무 깎아내린다.

재영 : 기회는 찬스거든. 내일 퇴근 후 스케줄 나한테 다 주는 거다?

강하 : 재영아?

재영 : 응. 뭐 하고 싶은 거 있어?

강하 : 나 남자거든.

재영 : .....

강하 : 생일 날 여동생하고 시간 보내는 미친놈은 아니라구. (식판 들고 일어서는)

재영 : (참는 느낌으로)

준하 : (식판 들고 일어서서 미소 지으며 재영에게) 머리 많이 써야겠다. 정재영.

42. 씬. 회의실 (낮)

-강하, 박이사, 김이사 앉아있는.

박이사 : 회장님께서 정신이 온전치 못하시다는 소문이 있는 상황이라

            우리가 우선은 합의를 봐야 할 거 같아서 만나자고 한 겁니다.

강하 : 합의라뇨?

김이사 : 회장님께서 돌아가시거나, 아니면 정신적인 문제로 바로 상속 절차가 이뤄질 때를 대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회장님 주식은 당연히 사장님께 상속이 되긴 하겠지만, 상속세를 내면 주식에 변동 사항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 현재는 원변호사님께서 2대 주주시지만, 그땐 최대 주주가 되실 수 있고, 그럼 원변호사님의 의지에 따라

            경영권을 찾으실 수도 있다는 겁니다.

강하 : 찾다뇨? 제가 언제 뺐긴 적 있습니까?

박이사 : 아버님께서 생존해 계셨다고만 하면 지금 경영권 쉽게 회장님께 넘어가지 않았을 거란 건 잘 아시지 않습니까?

            아들이긴 하지만 현재 사장님을 크게 신임하지 못하시는 회장님 아니십니까?

강하 : 그래서요?

김이사 : 아직도 돌아가신 원변호사님 아버님을 보필했던 중역들이 건재해 있는 상황입니다.

            원변호사님만 원하시면 저흰 언제든지....

강하 : (자르며) 그 생각들, 빨리들 버리세요. 절 아버지의 대역으로 생각하신다면 오산들이십니다.

김이사 : 원변호사님.

강하 : 전 JK의 법률팀 변호사일 뿐입니다.

박이사 : 그렇지만 막강한 로펌들의 스카우트 제의를 거절하시면서 까지 JK에 입사하셨을 때에는

            뭔가 큰 뜻이 있으셨을 거 아닙니까?

강하 : 큰 뜻이요? 그런 거 없는데요. 2대 주주니 대충 일해도 쫓겨날 걱정은 없겠다 싶어서 들어온 겁니다.

김이사 : 왜 이러십니까? 얼마나 열심히 일하시는지 저희가 잘 아는데.

강하 : 승률이요? 그거 별거 아닙니다. 싸움꾼 기질 때문이죠. 싸우면 이겨야 한다는 기질만 아버지한테서 물려받았거든요.

박이사 : 그런 기질로 큰 뜻만 품으시면....

강하 : (일어서는) 경영권 같은 거 저 관심 없습니다. 그러니까 제 쪽에 줄을 서시려고들 하지 마세요.

         저 그런 거 아주 귀찮은 놈이니까요. (나가는)

43. 씬. 재즈 바 (밤)

-태규, 기타 치면서 랩도 아니고, 절규도 아닌 이상한 노래를 부르고 있는.

태규 : 넌 빨강이라고 그랬어. 진짜 빨강이라고 그랬어. 그래서 난 그냥 빨강인 줄로만 알았어. 그런데 너 빨갛게 내 가슴에

         (가슴을 치면서) 장미 꽃잎처럼 물들었어.

친구1 : 저걸 계속 들어줘야 하는 거냐?

친구2 : 그래도 여자한테 바칠 노래는 처음이잖아.

친구3 : 저게 노래라고 해도 되는 거니?

태규 : 그리고 주황이. 노랑이. 초록이, 파랑이.....응애 응애 남이. 너는 내가 꿈꾸던 바로 그 사람. 나의 운명. 나의 무지개빛 사랑.

친구1 : 저 노래 듣고 넘어오는 여자면 정신에 문제 있는 거 아니냐?

친구2 : 세상은 다 끼리 끼리 모여 사는 거야. 저 노래에 넘어오면 진짜 운명인 거지 뭐.

태규 : (더 바락바락 소리 지르면서 기타 물어뜯고 주저앉고 난리도 아니다)

44. 씬. 식당 (밤)

-강하, 준하 들어오면. 주황, 국을 푸는. 강하 앞에는 멀건 감자국, 준하 앞에는 벌건 계란국.

주황 : 누나가 일 때문에 늦는다고 전화 와서 저희가 저녁 준비 했어요.

노랑 : 우리 팀장 아저씨 밥은 진밥. (밥을 푸면서)

준하 : 그냥 팀장 아저씨라고 불러도 되는데.

노랑 : (준하 앞에 밥 놓아주며) 제 마음 아시잖아요?

준하 : .....

파랑 : (된 밥을 퍼서 강하 앞에 놓아주며) 제 마음도 아시죠?

강하 : 뭘?

파랑 : (윙크 하는)

강하 : 너 왜 그러냐?

파랑 : 아시면서.

초록 : 우리 태규 오빠는 밥이나 먹으면서 공연하나 모르겠네.

강하 : (밥과 국 먹어보고) 누나보다 니들이 낫구나.

주황 : 드실만 하세요?

준하 : 야. 솜씨들 좋은데.

노랑 : 우리 언니랑 결혼하시면 매일 이런 밥 드실 수 있는데.

준하 : (밥이 목에 걸려 물 마시는)

45. 씬. 거실 (밤)

-태규, 꽃다발 뒤로 숨기고 지하방 문 노크하는.

주황 : (문을 열고) 형?

초록 : (달려 나오며) 오빠? 밥은 먹었어요? 왜 이렇게 늦었어요?

태규 : 어. 어, 그래. 누나는?

주황 : 누나 오늘 많이 늦을 거라고 전화 왔었는데.

태규 : (실망해서) 그랬어?

주황 : 저희 공부할게요.

초록 : 태규 오빠 저녁 챙겨줘야지.

태규 : 아냐, 아냐. 나 저녁 먹었어. 어서들 들어가서 공부해.

초록 : 그래도.....

주황 : (초록 끌고 들어가며 문 닫는)

-태규, 꽃다발 앞으로 돌려들고 내려다보면서.

태규 : 우리 자기 밤늦게까지 너무 힘들겠다.

-준하, 방에서 나오다가, 태규를 보고.

준하 : 너 거기서 뭐하냐?

태규 : 나 할 말 있어, 삼촌.

46. 씬. 강하의 방 (밤)

-강하, 책상 앞에 앉아 모니터 보고 있는데. 태규, 문 벌컥 열고 들어오는. 준하, 따라 들어오면서.

준하 : 너 술 처먹었냐?

태규 : 아냐, 나 맨정신이야.

강하 : (돌아보는, 태규가 들고 있는 꽃다발 보면서) 그건 뭐냐?

준하 : 자식, 너. 큰 삼촌 생일까지 기억하고. 형, 이 자식이 정신줄 놓은 놈처럼 그래도 우리 생각은 끔찍하게 하는 놈이야.

태규 : 이거 빨강이 껀데. 큰삼촌, 작은 삼촌. 나 할 말 있어. 중대 발표야.

강하 : (귀찮아서) 빨리 하고 나가라.

태규 : 나 진빨강하고 결혼 할래.

강하 : .....

준하 : .....

강하 : (보다가) 너 이 자식, 약 끊는다면서?

태규 : 난 진심이야. 그러니까 다들 그렇게 알아줘. 내 마음은 변치 않으니까 우리 사랑을 인정해 달라 그거야.

         그럼 난 발표 다 했으니까 내려간다. (돌아서서 나가는)

준하 : 저 자식 왜 점점 더....

강하 : 네 동정이 불러온 결과가 참담하지 않냐?

준하 : (보다가) 형. 저 자식. 우태규야. 우리 하나 밖에 없는 금쪽같은 조카 놈, 우태규라구. 중구난방 우태규.

47. 씬. 태규의 방 (밤)

-태규, 꽃다발을 꼭 끌어안고, 핸드폰 중.

태규 : 자기 왜 이렇게 늦어? 힘들어서 어떡해?

48. 씬. 장례식장 (밤)

-손님들 사이를 돌아다니면서 열심히 일하면서 핸드폰 중인 빨강, 남이 업혀 있고.

빨강 : 너 쓸데없이 전화질 할래?

태규E : 나 삼촌들한테 얘기했어. 자기랑 결혼하겠다구.

빨강 : 까불지 말고 좀 자라. (전화 끊어버리는) 이 자식 때문에 한달 못 버티고 쫓겨나는 거 아냐?

         우태규, 부탁이다, 제발 가만 좀 있어다오.

-다가오는 상주.

상주 : 늦게까지 미안해서 어쩌나.

빨강 : 아니에요. 손님분들이 정말 많으시네요.

상주 : 그러게. 어떻게들 아시고 다 찾아주시네.

빨강 : 아버님이 자랑스러우시겠어요. 자식이 잘 돼야 문상 오시는 분도 많고 그런 거잖아요?

상주 : 애기까지 업고 힘들 텐데, 그만 가 봐요.

빨강 : 아니에요. 손님분들 계속 오시는데. 좀 더 도와드리구요.

상주 : 이거 미안해서. 그럼 애기라도 내가 좀 데리고 있을게. (자는 남이 안으려고 하는)

빨강 : 그러지 않으셔도 되는데.

상주 : 우리 집 일 때문에 애기까지 고생이네. 미안해서 어쩐다.

-밤, 조문객들 고스톱도 치고, 손님들 계속 한 둘씩 오고.

빨강 : (일을 하다가 어느 순간, 영정 앞에 앉아있는 할머니를 보면. 할머니, 넋이 나간 표정으로 눈물을 흘리고 있는)

49. 씬. 장례식장 (밤)

-할머니만 멍하니 영정을 바라보며 앉아있는. 빨강, 잠든 남이를 업고 다가와 앉는.

빨강 : 다들 주무시는데 눈 좀 붙이세요, 할머니?

할머니 : .....

빨강 : 하루 종일 아무 것도 안 드시는 거 같던데, 그러시면 안 되세요. 제가 뭐라도 좀 가져올 테니까.....(일어서려고 하는데)

할머니 : 평생 웬수였어. 눈만 뜨면 싸우는 게 일이었어.

빨강 : (앉으며) 할아버지랑요?

할머니 : 남들처럼 오순도순 말 한번 정답게 나눈 적이 없어.

빨강 : 왜 그러셨어요? 좀 다정하게 지내시지 않구서요?

할머니 : 그러게 말이야. 왜 그랬나 몰라. 전생의 웬수가 만나 자식 낳고 사나보다고, 이게 무슨 드러운 놈의 팔잔지 모르겠다고,

            허구헌 날 입이 닳도록 그 말만 입에 달고 살았는데. 10년 넘게 자리보전하고 누워서 어찌나 타박이 많은지

            저 인간 죽으면 내 팔자 필거라고, 장사 치루면서 덩실덩실 춤이라도 출 거라고 그랬는데.....

            간지 하루 밖에 안됐는데, 입안이 텁텁해.

빨강 : 왜요? 속 안 좋으세요?

할머니 : 저 웬수같은 인간하고 싸울 일이 없으니까. 입안에 뭐가 낀 것처럼.....

빨강 :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보고 싶은 거구나. 그죠?

할머니 : 보고 싶긴. 성질도 지랄 같고, 온갖 까탈은 다부렸어도.....그래도 노래 하난 참 잘했는데.....

빨강 : 무슨 노래 잘하셨는데요?

할머니 : 그 노래 알아? 연분홍 치마가.....하는? 저 웬수같은 영감탱이가 나 노래 못한다고 얼마나 구박을 했는지....

            그래도 저 영감탱이 노래 하난 참 구성지게 잘했는데. 그 노래 할 줄 알아?

빨강 : 어떡하죠. 옛날 노래라 잘 모르는데...... (할머니 손잡으며) 제가요, 나중에 제대로 배워서 꼭 불러드릴게요,

         약속해요, 할머니.

50. 씬. 지하방 (밤)

-남이 업고 조심스럽게 들어오는 빨강. 동생들 잠들어있고.

빨강 : (남이 내려놓고)

주황 : (눈 뜨고 일어나며) 몇 시야?

빨강 : 2시야. 저녁은 어떻게 했어?

주황 : 우리가 다 잘 알아서 했어. 변호사 아저씨랑, 팀장 아저씨랑 맛있다고 밥 한 그릇씩 다 드셨어.

빨강 : 그래? 수고했어. 어서, 자.

51. 씬. 식당 (밤)

-빨강, 세수하고 들어와 불을 켜는. 쌀이 불려져 있는 그릇 보고.

빨강 : 대견한 것들. 누나가 이 맛에 산다. (하는데, 식탁 위에 즉석 미역국이 다섯 개쯤 놓여있고, 그 위에 메모지.

         메모지 펼쳐보는)

준하E : 내일 아침 형 생일이에요. 늦게 들어와서 준비할 시간이 부족할 거 같아서 사다놓은 거니까

           적당한 위장 전술로 솜씨 발휘한 걸로 해줘요. 비밀 결사대 1호.

빨강 : 5년 동안 팀장님이나 쫓아다녔으면 시간이 아깝지나 않지.

52. 씬. 강하의 집 전경 (아침)

53. 씬. 강하의 방 (아침)

-강하, 일어나는데, 발아래 걸리는.

강하 : (아, 정말 하는 느낌으로 이불 확 젖히면. 쪼그리고 잠든 파랑) 야, 야, 임마?

파랑 : (눈 뜨고) 안녕히 주무셨어요?

강하 : 너 정말 왜 자꾸 내 방에서 자는데?

파랑 : 저 병이거든요. (더 웅크리면서 눈을 감는) 죄송해요.

강하 : (침대에서 내려오며) 죄송하다면서 지들 하고 싶은 건 다하는 남매들이야. (나가려다가 웅크리고 잠든 파랑 보고,

         이불 슬며시 위에 얹어주는)

-문 벌컥 열리고. 주황 뛰어드는.

주황 : 너 이 자식, 진짜 정신 못 차리지?

강하 : 쟤 좀 어떻게 해봐라. 잠은 편히 자게 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

주황 : 죄송해요. (이불 확 걷어내면서) 진파랑 너 아주 죽어볼래.

54. 씬. 2층 거실 (아침)

-강하, 방에서 나오는데.

주황E : 너 이 자식, 왜 자꾸 이 방에 올라와서 자는데?

파랑E : 나도 몰라.

주황E : 긴장을 안 하고 자니까 그렇잖아? 다른 사람 방도 아니고, 저 아저씨 방엔 들어와서 자면 안 되는 것도 몰라?

           누울 자리보고 다리를 뻗으란 말도 몰라.

파랑E : 그게 뭔데?

주황E : 인간성 봐가면서 엉기라는 거야.

강하 : (저 자식 뭐라는 거야. 기분 상하는데)

파랑E : 난 저 아저씨 인간성이 좋아 보인단 말이야.

강하 : (기분 나쁘지 않고)

주황E : 그러니까 네가 사람 보는 눈이 없다는 거야.

강하 : (또 기분 상하고)

준하 : 이상한 애들이지?

강하 : (보면)

준하 : (계단을 올라오면서) 조심조심 하는 척하면서 할 말 다하는 거 보면.

강하 : (화장실로 들어가고)

준하 : 오늘도 아침 운동 좀 해볼까. (하면서 강하의 방으로 들어가는)

-준하가 방으로 들어가기까지 방에선 주황, 파랑 계속 도망치며 싸우고 있는 소리 들려오고.

55. 씬. 식당 (아침)

-강하, 준하, 태규, 자리에 앉고. 주황, 남이 안고 앉아있고, 노랑, 초록 수저 놓고.

파랑, 얼른 물 따라서 강하 앞에 놓아주는.

빨강 : (강하 앞에 미역국 놓아주고) 생신 축하드립니다, 변호사님.

-동생들 일제히, 축하드립니다, 소리 지르고.

강하 : 고맙군요.

빨강 : 그리고 생신을 맞이하신 아침에 특식을 준비했습니다. 잔칫날은 뭐니뭐니해도 잡채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잡채 두 접시를 턱하니 식탁 위에 내려놓는.

태규 : 아니, 자기, 무슨 잡채까지, 도대체 몇 시에 들어온 거야? 아무리 기다려도 안 들어와서.

빨강 : (인상 쓰며) 태규야, 잡채 먹어야지.

준하 : 형 먹어봐. 빨강씨가 특별히 준비한 건데.

강하 : (잡채를 입에 넣는데, 표정 묘해지고)

준하 : (잡채를 먹어보는데, 어이가 없고)

주황 : (눈치가 이상해서 잡채 먹어보고) 누나? 당면 안 불렸어?

빨강 : 어? 불려야 하는 거야?

주황 : 그건 기본 아니야? 누난, 왜 음식 맛을 안 봐? 그럼 이상한 거 알았을 거 아냐?

노랑 : 엄마가 그랬잖아, 음식 못하는 인간은 혀에 문제가 있는 거라구.

파랑 : 아냐. 큰 누나 맛있는 건 귀신같이 잘 알잖아?

초록 : 엄마가 게을러서 맛보는 거 귀찮은 거라고 그랬어.

빨강 : (우거지상이 되면서) 적당히들 좀 하지?

노랑 : 팀장 아저씨, 여자가 꼭 음식을 잘해야 하는 건 아니죠?

초록 : 태규 오빠. 우리 언니가 기본은 안돼 있지만, 그래도 귀엽잖아요?

태규 : 그래, (잡채 먹어보면서) 딱딱한 잡채, 특이하다 뭐.

강하 : (자기 앞에 있는 접시 태규 앞으로 밀면서) 특이하면 너 혼자 많이 먹어라.

56. 씬. 사무실 (아침)

-팀장. 남이 업고 서있는 빨강.

팀장 : 어제 한군데 밖에 안 갔단 말이야?

빨강 : 상을 당하셔서 일을 좀 도와드려야 해서......

팀장 : 네가 뭐 할 줄 아는 건 있니?

빨강 : 왜 이러세요? 팀장님. 제가 그래도 할아버지 돌아가시고 마음 아파하시는 할머니 위로도 해드리고.

팀장 : 장례는 다 끝났어?

빨강 : 아니요. 내일 아침에 발인 한대요.

팀장 : 그럼 오늘도 거기 가봐.

빨강 : ......

팀장 : 왜? 어제 하루 일하고 벌써 꾀 나니?

빨강 : 아니요. 그게 아니라....

팀장 : 그게 아니면 뭐?

빨강 : 그 할머니 뵈는 게......속이 아려서요.

팀장 : 아리면 아린대로 옆에 있는 거야. 그게 네가 할 일이야.

빨강 : .....

57. 씬. 회사 일각 (낮)

-은말, 빨강(남이 업고) 서있는.

빨강 : 빨랑, 빨랑, 은말씨. 나 빨리 가봐야 한단 말이야.

은말 : 가만 있어봐, 그게 처음에....

빨강 : 연분홍 치마가....

은말 : (흠흠. 청소 걸레대 마이크처럼 붙잡고) 목 좀 가다듬고.

빨강 : 지금 공연해? 그냥 대충 가사만 알려달라니까.

은말 : 가만 좀 있어봐, 감정이 잡혀야 노래를 하든 말든 할 거 아냐.

진주 : (다가오면서) 무슨 감정?

은말 : 얘가 갑자기 노래를 가르쳐 달라고 난리 아니냐?

빨강 : 빨랑, 빨랑.

-은말,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노래 구성지게 부르는.

은말 : 자. 해 봐.

빨강 :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은말 : 거기서 좀 더 꺾고.

-은말, 진주, 빨강 뒤에서 백댄스처럼 흐느적거리며 장단 맞추고.

58. 씬. 회사 복도 (낮)

-재영, 준하 걸어오는.

재영 : 그냥 빠져 달라구. 넌 친구라는 게 정말 이렇게 도움 안 줄거니?

준하 : 기회라는 건 스스로 잡는 거야. 누구 도움 받아서 잡는 게 아니라.

         특히 우리 형은 남 도움 받아서 기회 잡는 거 무지 싫어한다.

재영 : (시선 주는데)

준하 : (재영의 시선을 따라가면)

-빨강, 노래하고 있고, 뒤에서 흐느적거리며 손동작까지 맞추고 있는 은말과 진주.

준하 : (왜 또 걸리냐 하는 표정)

-빨강, 흥에 겨워 노래를 하고 있으면.

재영 : 대체 왜 이래요? 진빨강씨?

-빨강, 은말, 진주 놀라서 재영을 보는.

준하 : (난감한 표정으로 재영 뒤에서 바라보고)

재영 : 이영순 팀장님 백으로 억지로 붙어 있게 됐으면, 눈에 거슬리는 행동만이라도 자제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빨강 : 죄송합니다.

재영 : (은말과 진주 보면서) 두 분 근무 시간에 진빨강씨와 너무 자주 붙어 있으시던데....

빨강 : 다 저 때문입니다. 이 두 분은 아무 잘못도 없으세요. 제가 도와달라고 부탁을 해서...

재영 : 그럼 진빨강씨가 회사를 관둬주는 게 이 두 분을 위해서도 바람직하겠군요. (걸어가는)

59. 씬. 회사 복도 (낮)

-재영, 준하 걸어오는.

준하 : 그냥 좀 못 본 척 좀 해주지. 일일이 그렇게 트집을 잡나?

재영 : 내가 괜한 트집 잡은 거야? 애까지 업고 출근이랍시고 해선 노래나 부르고 있는 정신 나간 여자야.

준하 : 뭔가 사연이 있겠지.

재영 : 무슨 사연이 얼마나 있어야 저 꼴이 되는데?

준하 : 저 꼴이라고까지 할 건 뭐 있냐? 애 업고 출근해서도 주눅 안 들고, 밝으니 보기 나쁘지 않구만.

재영 : 그러니까 정신 나간 여자라는 거잖아? 주눅이 들어야 할 때, 미친 여자처럼 헤헤거리면 상대가 더 열 받는 거 몰라?

준하 : 넌 또 무슨, 미친 여자는 좀 심했다.

재영 : 그냥 그런 사람이 있어. 진빨강이라는 저 여자. 볼 때마다 신경을 긁어. 이상하게 거슬린단 말이야, 저 여자.

60. 씬. 정회장 집 서재 (낮)

-정회장, 책상 앞에 앉아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 노크 소리.

정회장 : (화들짝 놀라) 인혁이냐?

-들어오는 민경.

정회장 : (실망하는)

민경 : 왜 여기 계세요? 방에 누워 계시는 게 더 편하실 텐데요.

정회장 : 그....애 맞지?

민경 : .....

정회장 : 우리 인구.....애 가졌다고 찾아왔던.....그 아가씨 맞지?

민경 : ......

정회장 : 김사장이 단골로 드나들던 그 술집에서 일하던....

민경 : 네, 아버님. 맞습니다.

정회장 : 내가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그런데.....약을 먹지 않았던가?

민경 : 네, 아버님. 너 같은 천한 여자를 내 며느리로 들일 수 없으시다고 하셔서 약을 먹었었습니다.

정회장 : 내가 그렇게 모질 게 굴었던가?

민경 : 벌레만도 못한 취급을 하셨었죠.

정회장 : 마음이 많이 상했겠구만.

민경 : 아니요. 그러려니 했습니다. 당연한 일이다, 그랬으니 약을 먹고 죽으려 한 게 아니겠습니까?

정회장 : 모르겠소. 어떤 건 생각이 나고, 어떤 건 아예 까맣고..... 어쨌든 내가 모질 게 한 게 있으면 용서해요.

민경 : 저도 그랬으면 좋겠네요. 기억하고 싶지 않은 건 지워지고, 기억하고 싶은 건..... 아니네요. 재영이 낳기 전까지,

         기억하고 싶은 게 없네요. 재영이 낳기 전의 기억들 지울 수 있는 약이 있으면 좋겠어요. 그럼 네 뱃속의 애가

         정말 내 아들 애냐고 물으시던 아버님 모습도 지울 수 있을 텐데요. 나갔다 오겠습니다. (돌아서는데)

정회장 : 혹시 내가 그걸 묻지는 않았소?

민경 : (돌아보는)

정회장 : 내 아들에 대한 마음이 진심이냐고.....물었던 거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하고....

민경 : (보다가) 물으신 적 없습니다. (나가는)

61. 씬. 장례식장 (낮)

-빨강(남이 업고) 두리번거리는, 할머니가 보이지 않는. 상복을 입고 일하는 여자에게.

빨강 : 할머님 어디 가셨나 봐요? 계속 안보이시던데.

여자 : 아침에 쓰러지셔서 위층 병실에 입원하셨어요.

빨강 : .....

62. 씬. 병실 (낮)

-잠이 들어 있는 할머니, 링거를 맞고 있는. 할머니의 손을 잡아주는 빨강.

63. 씬. PC 방 (낮)

-주황, 주인과 얘기하고 있는.

주인 : 미성년자는 안돼, 임마.

주황 : 저 일 잘해요, 한번만 써봐 주세요, 네? 네? 사장님?

주인 : 안된다니까.

주황 : (냉장고에 음료수 채우는 고교생(남자), 청소하는 고교생(남자) 가리키며) 저 형들도 다 미성년자잖아요?

         써주세요, 사장님, 네? 네?

주인 : 아, 그 놈 참.

64. 씬. 거실+ PC 방 (낮)

-노랑, 초록, 파랑, TV 만화 영화 보고 있는.

노랑 : (전화 중) 뭐? 그게 말이 돼? 오빠가 도서관에서 늦게까지 공부하고 온다구? 오빠가?

-PC 방에서 카운터 청소하며 전화중인 주황.

주황 : 옛날 살던 동네 친구 집 갔다고 해. 방학 숙제 모르는 게 있어서 물어보러 갔다고.

노랑 : 진짜 어딘데?

주황 : 몰라도 돼. 조금 늦을 거 같으니까 밥들 챙겨먹고 있어.

노랑 : 우리 걱정은 말구..... (전화 끊긴) 뭔가 이상해.

파랑 : 왜? 형 어디래?

노랑 : 도서관이랬다, 친구집이랬다, 왔다 갔다 하고.

파랑 : 도서관에 갔다가 친구네 집 갔나보지 뭐.

초록 : 너 도서관이 뭐하는 덴 줄 알아?

파랑 : 아니.

초록 : 책 읽는 데야.

파랑 : 형, 거짓말 하고 어디 간 거야?

65. 씬. 재즈바 (밤)

-강하, 준하, 태규 앉아있고.

준하 : (앞에 앉은 늘씬한 여자1,2,3 소개하면서) 형의 생일을 맞이하여 내가 특별히 섭외한 친구들.

-여자들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인사하고.

준하 : 조촐한 생일 선물, 마음에 들어?

강하 : 노력은 가상하다.

-제일 미모의 여자1, 강하 옆으로 와서 앉으며.

여자1 : 생일 축하해요. 오빠. (강하의 잔에 술을 따라주는)

강하 : 고맙다. (여자의 잔에 술을 따라주고)

태규 : (일어서며) 난 이제 이런 자리에 끼면 안돼.

준하 : (잡으며) 너 왜 그래? 분위기 깰래?

태규 : 난 곧 품절남이 될 사람이잖아. 작은 삼촌?

준하 : 쪽수는 채워야 할 거 아냐? 짜샤.

-시간 경과.

태규, 어느 사이 여자1 옆에 찰싹 붙어 앉아있고. 뭐라고 계속 떠들어 대고.

여자1 : (태규는 귀찮고, 강하에게만 관심을 보이는. 강하의 귀에 대고 뭐라고 속삭이고)

강하 : (무의미하게 끄덕이기도 하고)

준하 : (강하의 귀에 대고) 태규 자식, 진빨강하고 결혼 하는 꼴 보고 싶어?

강하 : (보는)

준하 : (술에 취해 흐느적거리고 있는 태규를 눈으로 가리키며) 저 자식 때문에 특별히 섭외한 애다.

강하 : 나 때문이라면서?

준하 : 자연스러워야 저 자식이 넘어 올 거 아냐? 손발이 맞아야 뭘 해먹지.

강하 : 도둑질 하러 다니냐? 손발 맞추게. (일어서려고 하면)

여자1 : (따라 일어서며, 강하의 팔짱 끼며) 오빠, 어디 가? 우리 춤출까?

강하 : 나 너처럼 엉기는 애 재미없는데 어쩌냐? (걸어가는)

여자1 : 저 오빠 왜 저래?

준하 : 타겟이 저 인간 아니고, 이 인간이라니까. 형, 형, 어디가?

여자1 : 돈 안받으려고 했단 말이야. 저 오빠가 마음에 들어서.

준하 : 저 오빠 밥맛 없잖냐? 약속 한 거에 따블 줄 테니까 잘 좀 해봐라. (강하 따라 가는)

여자1 : (술에 취해 여자2에게 떠들고 있는 태규 어깨 잡고 앉으면서) 태규라고 했지? 너 귀엽다.

태규 : (확 눈 커지면서 여자1에게 기대는) 정말?

66. 씬. 재즈 바 앞. 또는 입구 앞 계단 정도 (밤)

-강하, 걸어 나오면. 준하 따라 나오는.

준하 : 그냥 가려구?

강하 : 놀다 들어와라.

준하 : 같이 들어가자.

-급하게 뛰어 들어오는 재영.

준하 : 야, 넌....

재영 : 미안. 미안. 내가 늦었지. 이름을 잘못 새겼잖아, 그거 다시 새겨 오느라구.

강하 : (두 사람을 번갈아보면)

준하 : (어설프게 웃으며) 재영이가 형 생일 선물에 이름 새겨왔나 보다. 들어가자, 형. 선물 풀어봐야지.

재영 : 들어가.

강하 : 그냥 줘라.

재영 : .....

강하 : 집에 가서 풀어볼게. 뭔진 모르지만 고맙다.

재영 : 정말 이럴 거야?

강하 : 안 받아가도 나는 상관없는데.....

재영 : (참는 느낌으로 가방에서 선물 상자 꺼내 강하의 손 위에 올려놓는)

강하 : (들고 나가는)

재영 : (그런 강하 보면서) 너 오늘 술 먹지 마라.

준하 : (보면)

재영 : 나 취할 거니까 내 차 네가 운전해줘.

67. 씬. 재즈바 (밤)

-태규, 여자1과 춤을 추고 있는.

여자1 요염하게 춤을 추는. 넋이 빠진 태규. 술기운에 몸도 가누지 못하고 흐느적거리며 여자1에게 거의 기대다시피해서.

태규 : 자기.....내 운명이 상대인 거 같은 거 있지.

여자1 : 그러니?

태규 : 자기....나랑 결혼 할래?

여자1 : (저쪽에 서있는 준하 보면서 손가락 세 개 펴 보이고)

준하 : (귀찮은 표정으로 끄덕이고)

여자1 : (태규에게) 그러지 뭐, 결혼. 하자 우리.

준하 : (술을 마시고 있는 재영을 복잡한 심정으로 바라보는)

68. 씬. 정회장 집 서재 (밤)

-정회장, 핸드폰을 놓고 일어서는데. 갑자기 무슨 생각이 스치면서 핸드폰을 잡는.

이것저것 눌러보는데, 수신된 메시지가 있습니다 하는. 확인 버튼을 누르는데....

정회장 : ......

-밖에서 들려오는. 인구, 민경의 소리.

인구E : (술에 취한) 아버지, 아버지. 저 들어왔어요. 아버지.

민경E : 아버님, 서재에 계세요.

인구E : 아버지, 아버지.

정회장 : (핸드폰을 귀에 대는데)

진원장E : 어르신....고향에서....고향에서.....어르신의 핏줄을....아드님께....핏줄이... 우리....우리......

정회장 : (멍한 표정으로 툭하니 떨어지는 핸드폰)

-문 열리면서 들어서는 인구, 민경.

인구 : 아버지, 저 들어왔습니다. 하루 종일 뭐하셨어요? 아버지?

정회장 : (흔들리는 시선으로. 섬에서 진원장의 모습. 소란스럽던 아침에 밥을 얻어먹던 모습. 뛰어내려오는 빨강, 초록의 모습.

            1회에서 인구가 덤벼들던 모습. 등등이 혼란스럽게 스쳐가는)

인구 : (다가서며) 아버지? 아버지?

정회장 : (정신을 잃고 쓰러지는)

인구 : 아버지?

민경 : 아버님?

69. 씬. 지하방 (밤)

-노랑, 초록 잠이 들어있는.

70. 씬. PC 방 (밤)

-컵라면 등을 들고 열심히 뛰어다니고 있는 주황.

71. 씬. 거실 (밤)

-몽롱한 채로 움직이고 있는 파랑.

72. 씬. 강하의 방 (밤)

-파랑, 문 열고 섰다가 몽롱한 표정으로 돌아서는.

73. 씬. 마당 (밤)

-파랑, 걸어 나오는. 창고 앞이나 그런 장소.

파랑 : (쪼그리고 앉아서 뭔가를 보면. 폭죽과 라이터다)

74. 씬. 길 (밤)

-걸어오는 강하.

75. 씬. 마당 (밤)

-파랑, 폭죽에 라이터를 켜서 붙이는. 여전히 잠이 안 깬 몽롱한 표정이다.

여러 번 불을 당기는. 그러다 어느 순간 확 하고 불이 붙는.

파랑 : (놀라서 잠이 깨고, 폭죽을 던져버리는데. 나무 밑에 떨어져 있는 마른 나뭇잎 위로 날아가는 폭죽. 확 하고 불이 붙는.

         겁에 질려서 눈이 커지는. 놀라서 맨손으로 불을 꺼보려고 달려들어 막 두드리는)

-강하, 문을 열고 들어서다가 그 모습을 보고 놀라서 달려오는.

파랑 : (불을 꺼보려고 손으로 막 두드리는데)

강하 : (달려들어서 파랑을 집어 들고 내던지는. 바로 그 순간, 문을 열고 들어서는 빨강. 남이 업고. 땅바닥에 나동그라지는 파랑)

파랑 : (울기 시작하고) 엄마.....엄마.....불....불.....

강하 : (웃옷을 벗어 번지는 불을 두들겨 끄는)

빨강 : (놀라서 우는 파랑을 끌어안고)

파랑 : 불.....불.....

강하 : (힘겹게 불을 끄고, 불씨가 사라지자 한숨을 돌리고. 고개를 돌려 노려보는) 당장 나가. 지금 당장.

파랑 : (울면서 빨강의 품에 숨고)

빨강 : (그러다 파랑의 손과 발이 데인 걸 보고)

강하 : 당장 나가라구. 지금 당장.

빨강 : (일어서서 강하의 뺨을 갈기는)

강하 : (멍하니 보는)

빨강 : 애 덴 건 안보이지?

강하 : 내가 안 들어왔으면 집 다 태워먹었을지도 몰라.

빨강 : 내 동생들도 죽을 뻔 한 거야. 이 독종 새끼야.

-그렇게 맞선 두 사람의 모습에서 엔딩.

빨간 그리고 초록의 주황의 불이 안보이려면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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