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방 자기관리 다들 무슨 관리해

 해파랑길 38 코스는 오독떼기전수간을 출발하여 구정면사무소를 지나면 장현저수지를 만난다. 장현저수지를 돌아서 모산봉을 넘어가면 강릉 시가지로 다가선다. 시가지를 걸어가면 강릉대도호부가 나오고, 유명한 강릉중앙시장을 만나 시장의 분잡한 모습을 구경하며 시장가를 돌아 다시 인적이 드문 길을 걸어가 솔바람다리에 도착하는 17.2km의 길이다. 

38 코스 인증대

이상한 길 안내 표시

잘자라는 배추

 길을 가면 학산교를 지나쳐 학산마을로 들어선다. 학산리(鶴山里)는강릉시 구정면에 속한 7개 법정리가운데 하나로 1, 2, 3리로 나누어져 있다. 마을 뒤에 있는 학바위는 옛날에 마을 처녀가 아기를 낳고 이 바위 밑에 아이를 버리니 학이 나타나 어린아이를 감싸주었다고 하여 생긴 이름이다. 마을 이름이 이 학바위에서 유래되어 학산(鶴山)이라 했고, 또 굴산사가 있어 굴산(掘山)이라 불린다.

 학산리는 도시 근교에 위치한 전원 농촌 마을이며 백두대간의 산줄기인 칠성산(七星山)이 병풍처럼 감싸고 있어 기암괴석과 노송들이 잘 어우러져 절경을 이루고 있으며, 강릉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학산리는 유서 깊은 문화유산 들이 많이 남아있어 강릉전통문화 역사마을로 조성되었다. 학산리에 있는 문화유산으로는 굴산사지, 굴산사지당간지주, 굴산사지 승탑, 정의윤 가옥, 굴산사지 석불 좌상, 조철현 가옥과 강원도 무형 문화재 제5호인 강릉 학산 오독떼기 등이 있다. 마을에서 전승되는 농요인 오독떼기 전승육성을 위해 오독떼기전수회관을 건립하고, 마을에 굴산사지가 있어 매년 범일국사다례제가 개최된다.

학산마을의 표시석

 학산리에 들어서면 작은 개천을 앞에 두고 낮은 구릉을 따라 마을이 있다. 마을에 들어서니 정의윤가옥이라고 표지판이 서 있는 우아한 모습이 고택이 보인다. 

 학산의 정참봉댁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정의윤가옥(鄭義鈗家屋)은 조선 말기의 전통 가옥으로  1894년에 현 소유주인 정의윤의 할아버지가 안채를 먼저 짓고 사랑채는 1915년에 증축하였다. 목재를 다듬은 솜씨가 매우 뛰어나 당시 집을 지은 목수인 최매직, 장덕소의 이름도 함께 전해지고 있다.

 정의윤가옥은 마을에서 첫 번째 집으로, 숲이 울창한 야산을 뒤로하고 있는 영동지방의 전형적인 자형 주택으로, 대문을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사랑채·왼쪽에는 부속채 그리고 맞은편에는 안채가 배치되어 있다. 안채와 사랑채는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의 화려한 팔작지붕 집이다..

 현재 주인이 거주하며 생활하는 있어 유지 보수 상태가 매우 좋으며 전형적인 조선시대 상류 주택의 모습을 보존하고 있어 조선 말기 전통 한옥의 변천 과정과 주택 변화의 흐름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꼽히고 있다.

정의윤가옥의 여러 모습

 다시 길을 따라 가면 제법 큰 저수지가 나온다. 장현저수지다. 장현저수지(長峴貯水地)는 구정면 여찬리, 내곡동, 장현동에 걸쳐 있는데 저수지 주위에는 송파정, 장안성, 왕고개, 장안재, 진재 등이 있다.

저수지 가에 있는 성불사

 저수지를 돌아 모산봉으로 가는 산길로 들어가 제법 긴 산길을 걸었다. 모산봉은 강릉시 강남동을 품고 있는 이 마을 최고봉으로, 높이는 105이다. 강릉시사의 지명유래와 관련된 설화로는 봉의 생김새가 어머니가 어린아이를 업고 있는 모습이기 때문에 모산봉(母山峯)이라 한다.’고 쓰여 있다.

 모산봉은 강릉의 안산으로 불리는 명산이다. 밥그릇을 엎어 놓은 것처럼 생겨 밥봉이라고도 하고, 볏짚을 쌓아 놓은 것 같다는 뜻의 노적봉으로도 불린다. 이 봉 때문에 강릉에 인재가 많이 배출된다고 하여 문필봉(文筆峯)이라고도 하는데, 강릉에 인재가 많이 나자 1508(중종 3)에 강릉 부사 한급(韓汲)이 이를 시기하여 봉을 세자 세치(1미터) 깎아냈다고 한다.

2005년 강남동 향우회 등의 지역단체들이 옛 정기를 되찾고자 꼭대기를 복원하여 높이가 105m가 되었다.

모산봉을 내려오니 바로 경포중학교가 나온다. 이제부터 강릉시내의 중심부로 들어간다.

 시내의 실을 따라 걸어가니 유명한 강릉단오제의 공원이 나온다. 단오공원(端午公園)은강릉시 노암동에 있는 세계 무형 유산 걸작 강릉단오제의 상징 공간으로, 2005년 강릉단오제가 유네스코 세계 무형 유산 걸작으로 선정되면서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인 무형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게 되었다. 이에 강릉시는 강릉단오제의 세계 무형 유산 걸작의 상징성을 담아내고 평소에는 시민들의 여가와 휴식을 위한 녹지 공원으로, 강릉단오제 기간 중에는 축제, 휴게, 놀이, 문화 활동 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해 단오 문화관 앞 구() 노암 공설 운동장 공터를 단오공원으로 조성하였다.

 단오공원은 강릉단오제의 주요 행사 공간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평소 시민들의 휴식과 여가 선용의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특히 다양한 문화 행사들이 수시로 열리는 문화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고 있다.

단오공원의 여러 모습

창포다리

강릉을 가로지르는 남대천

 강릉대도호부로 가는 도중에 나오는 경강로 주변은 현대식 건물이 즐비한 도심에 근대의 모습을 보여 주는 곳이다.  아주 오래된 건물이 아니고 1900년대의 목조건물과 옛 건물들을 관광자원으로 해서 조용하지만 아름다운 거리를 만들었다.

경강로의 여러 모습

 경강로를 지나 큰길로 나가면 맞은편에 강릉대도호부가 보인다. 강릉대도호부 관아(江陵大都護府 官衙)는1994711일 사적 제388호로 지정되었으며, 면적은 8,423이다. 강릉우체국의 후편에 있는 강릉객사문(국보 제51) 북쪽 일대가 당시 강릉대도호부의 관아가 있던 자리이다.

 대도호부 관아는 200610월 복원되었다. 좌측에는 국보 51호인 임영관 삼문이 있으며 중앙의 중대청(中大廳), 그 뒤로 전대청(殿大廳)인 임영관이 있다.

강릉대도호부관아의 모습

 강릉대도호부관아를 구경하고 길을 가면 유명한 강릉중앙시장이 나온다. 강릉 중앙시장은 영동 지방의 유서 깊은 전통시장이다. 옛 시장의 정취가 풍기는 2층 건물로 이루어진 강릉 중앙시장은 수산물을 비롯해 생활에 필요한 여러 물품들을 거래한다.

 오늘날의 강릉 중앙시장은 1956년 일제강점기 때 여러 시장 중에서 제2시장이라고 불리던 곳인데 이름을 바꾸고 크게 번창하기 시작했다. 1979년에 과거의 시장판을 철거하고, 새롭게 신축해 지금까지 강릉 상권을 이끄는 중심 시장 역할을 하고 있다. 강릉 중앙시장 옆에는 수산물을 주로 파는 성남시장과 새벽에 문을 여는 강릉 번개시장이 함께 개설되어 있다.

 강릉 중앙시장 인근에는 열리는 번개시장은 중앙시장 인근의 남대천변에 장이 서는데 주로 새벽에 열리기 때문에 번개시장이라고 불린다. 저번에 안인으로 가는 택시에서 천변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보고 기사에게 물으니 번개시장이라고 말한 기억이 난다.

 중앙시장을 돌아 나가면 마주치는 거리가 월화거리다. 인공적으로 꾸며진 거리지만 많은 사람들이 휴식을 취하고 젊은이들이 사진을 찍기도 하는 곳이다. 남대천을 가로지르는 다리에서 보는 풍경도 아름답다.

강릉 월화거리의 모습

 월화거리를 지나면 자그마한 정자를 마주한다. 바로 월하정이다. 월화정(月花亭)은 강원도 강릉시 노암동에 연화부인(蓮花夫人)과 무월랑(無月郞)의 설화가 깃들어 있는 연못 옛터에 있는 누각이다.

 이 누각에 얽힌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신라 진평왕(眞平王) 때 강릉에서 벼슬을 하던 무월랑은 연화(蓮花)라는 아가씨를 만났다. 두 사람은 보자마자 사랑에 빠졌다. 무월랑이 임기를 마치고 돌아갈 때 연화에게 말하기를 만일 그대와 전생에 인연이 있다면 부부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남대천 부근의 연화의 집 북쪽에는 깊은 연못이 있었다. 연화는 늘 연못에서 물고기에게 먹이를 주곤 하였는데 그중 신통하게 생긴 고기 한 쌍이 물 위에서 놀고 있었다. 이때 연화의 부모는 딸을 다른 곳에 혼인시키고자 마음먹고 있었다. 그러자 연화는 그 물고기에게 편지를 써서 주며 무월랑에게 전해줄 것을 부탁하였다. 물고기는 알아들었다는 듯이 물속으로 들어갔다. 드디어 3일 동안 연못에 나타나지 않던 물고기는 동해를 헤엄쳐 신라 무월랑이 낚시를 하던 곳에 도착하였다. 무월랑이 신기하게 생긴 물고기를 잡자 물고기는 편지를 토해냈다. 무월랑은 즉시 답장을 써서 물고기에게 주었다. 후에 무월랑은 연화 아가씨를 맞아들여 부부의 인연을 맺었다고 한다. 또 말하기를 연화의 본 집은 지금의 남대천 남쪽 별연사(別淵寺)였다고 한다.

 1930년 강릉김씨 종인들이 무월랑과 연화부인의 설화가 깃들어 있는 곳을 기념하기 위해 정자를 신축하였는데, 영동선 철도 부설로 강릉시 성산면 금산리 명주성 내로 이건하였다가 1961년에 철거되었다. 2004년 옛터 인근에 관리사 1동과 함께 월화정을 복원하였다.

월화정

 월화정을 지나 길을 걸어가니 왼쪽에 무언가 고택 같은 것이 눈에 보였다. 호기심에 가까이 가 보니 사유지라는 푯말이 있었다. 하지만 길가라 가까이 가서 보니 보진재(葆眞齋)라는 현판이 붙어 있는 작은 기와집이다. 처음에는 무엇인가 잘 몰랐으나 돌아와서 찾아보니 상당히 중요한 곳이다. 

 보진재(葆眞齋)는 강릉김씨 노암파 종손 김재인(金載仁) 소유로 하늘이 내린 효자로 명성이 자자했던 효자 김담의 제향을 위한 재실이다.

 보진재는 원래 1571년에 김담을 효자로 천거하여 건립한 정려각이었으나 1807년에 불에 타 없어진 뒤 1873년에 후손들이 재건하여 보진재(葆眞齋)라는 현판을 걸고 매년 910일 제향하고 있다.

봉래(蓬萊) 양사언(楊士彦)이 쓴 "서김효자행실(序金孝子行實)",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한 "서강릉김씨사효행후(書江陵金氏四孝行後)", 덕은(德殷) 송근수(宋近洙)가 쓴 "보진재기(葆眞齋記)", 13세 손 김익성(金益成)이 차운한 "보진재낙성운(葆眞齋落成韻)"과 김덕현(金悳顯)이 쓴 "보진재중건기(葆眞齋重建記)" 등의 현판이 걸려 있다.

보진재의 모습

 계속 길을 따라 가니 저 멀리에 해가 떨어지고 있다. 계절이 겨울에 가까워지니 해가 떨어지는 시간이 하루가 다르게 빨라진다. 그래서 시간을 고려해서 길을 걷고 있지만 아직 오늘 목적지는 도착하지 않았는데 하면서 걸음을 재촉했다.

해가 지는 모습

 길을 계속 걸어 남항진해변을 지나니 오늘의 목적지인 솔바람다리가 나타난다.

 남항진과 안목을 잇는 인도교인 솔바람다리는 201049일에 완공되었다. 47억 원을 들여 건설하였으며 총 길이 192m이다. 바다와 강 사이에 놓인 다리 특성상 바람이 많이 불어 피서지로서 인기가 높으며 야간에 조명으로 아름다운 야경을 보여준다.

 강릉 시내를 걸으면서 많은 곳을 구경하였다. 현대와 근대 그리고 옛 모습을 간직한 여러 곳을 지나면서 아름다운 자연도 즐긴 하루였다. 제법 긴 거리였지만 피곤하지는 않았다.

 솔바람다리 근처에서 저녁을 먹고 오늘의 여정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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