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내가 어떻게 운전했지 가장 궁금한 것을

‘나는, 배우인 내가 너무 좋아.’

배우 박성연

김정_연출가

정 어! 나 이 얘기 예전에 들었는데, 연희단거리패(이하 연희단)에서 도망쳐 나온 이야기! 거기서부터 시작해보자.(웃음)
성연 ‘여기 있겠단 죽겠구나.’ 싶어서 도망쳐 나왔지.(웃음) 내가 대학교 3학년 때 쯤 ‘나는 나중에 극단에 들어가면 우리나라 최고의 극단을 들어가야지.’ 했거든.(웃음) 그 때 목화 아니면 연희단 생...

정 어! 나 이 얘기 예전에 들었는데, 연희단거리패(이하 연희단)에서 도망쳐 나온 이야기! 거기서부터 시작해보자.(웃음)성연‘여기 있겠단 죽겠구나.’ 싶어서 도망쳐 나왔지.(웃음) 내가 대학교 3학년 때 쯤 ‘나는 나중에 극단에 들어가면 우리나라 최고의 극단을 들어가야지.’ 했거든.(웃음) 그 때 목화 아니면 연희단 생각하고 있었는데. 목화는... 이 얘기 쓰면 안 되는데... (조심스럽게) 서울예대 텃세가 심하데. 하하. 무서운 거야.(웃음) 어떡하지 고민만 하다가... 96년도에, 나 대학교 3학년 때... 지금은 제목이 잘 기억이 안 나는데 목화 공연을 봤는데 정말 끝내주더라고,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연희단에서 <햄릿>을 했거든. 그것도 장난이 아닌 거야. 연희단도 끝내주고 목화도 끝내주는데. 목화는 에너지가 거대한 원 같은 에너지가 요렇게 (큰 원을 그리며 장풍을 쏘듯) 쫙 하는 에너지라면, 연희단의 에너지는 막 (팔을 휘휘 저으며) 화려한 불 쇼 같은 이런 느낌. 화려한 불꽃놀이에 불쇼까지 합쳐진 요런 느낌. 뭔가 거칠지만 자유로워 보이는 이미지.(웃음) 그리고 그 때 연희단 <햄릿>을 너무 잘 봤어. 정말 뻑 갔어. 정그때 누가 햄릿이었어? 성연경익선배님이 햄릿이었고...정헉, 진짜? 지금의 선배님은 뭔가 둥글둥글 푸근한 아저씨 같은 느낌이라.(웃음)성연어우야. 그때는 얼마나 샤프하고 멋있었는데.(웃음) 근데 내가 제일 충격 받았던 건, 윤주선배의 오필리어였어. 정말 너무 멋있었어. 연기가 되게 거칠면서도 정갈하고 멋있었어. 그걸 보고 ‘아! 여기다. 연희단이다!’ 이랬지. 근데 바로 극단에 들어간 건 아니었고. 진로를 정할 시기였으니까. 두세 가지 갈림길이 있었지. 누군가 술자리에서 나한테 목소리가 너무 좋다고 성우시험을 보라는 거야. 나는 어릴 때부터 무대가 너무 좋은 사람이라 생각을 깊게 안하고 있었지. 근데 막상 졸업하고 돈도 못 벌고 이러다보니까(웃음) 뭐라도 하자 싶어서 성우시험을 보게 된 거야. 다른 사람들은 학원도 열심히 다니고 준비도 많이 해서 들어가는데 나는 그냥 무작정 간 거야. 당연히 떨어졌지.(웃음) 그리고 그때 쯤 영화 <박하사탕> 공개오디션이 있었어. 내가 졸업하기 전에 찍었던 단편영화를 감독님이 보셨더라고. 11명 정도가 쭉 서서 오디션을 보는데...정이창동 감독님이?성연응.정와, 진짜 좋았겠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감독님인데!성연내가 짧게 연기 보여드리고 인사드렸더니. 단편영화 너무 잘 봤다고 하시더라고. 그래서... ‘아싸! 되겠구나!’ 했는데... 떨어졌어. 하하. 최종에서.(웃음) 이제 나에겐 연극 밖에 없는 거야.(웃음) 그러고... 연희단 시험을 봤지. 그때는 극단에 들어가면 교육비를 좀 냈어야 했는데... 딱 1명. 신입단원 오디션에서 1등을 하면 그게 면제가 된데. 돈도 없고 그래서 ‘아! 1등을 해야겠구나.’ 하고 준비를 했지. 그때는 무서울 게 없을 때라... 1등을 했지.(웃음)정잘했네!성연근데... 내가 6기로 들어가던 그 시기에 극단이 밀양에 터를 잡게 된 거야. 황폐한 폐교에 내려가서 돌 줍고 시멘트 바르고. 내 최대 약점은 체력인데 연희단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체력이 아니더라고.(웃음) 숙소생활도 힘들었고. 내성적인 편이기도 하고 적응을 못했지. 정그래서, 얼마 만에 도망 친 거야? 왜 나는 야반도주 한 느낌으로 기억이 나지?(웃음)성연10개월 정도? 나는 잠을 잘 못자는 편이라... 남들 다 잠든 이후에 잠들었으니까. 4시간도 못자고 일어나서 식사당번하고 연습하고... 내가 연희단 들어갈 때 ‘이곳에 뼈를 묻으리!’ 각오하고 들어갔는데... 지금 당장 이곳에 뼈를 묻겠더라고. 하하. 상태가 장난 아니었지. 나랑 정말 친한 영화감독 오빠가 있는데, 극단 들어가고 나서는 연락도 제대로 못하다가 6개월 만에 만난거야. 오빠가 내 몰골을 보더니 깜짝 놀라면서 당장 나오라고 하더라고. 사람의 얼굴이 아니라고.(웃음) 갑자기 서러워서 펑펑 울었지. 울면서 ‘그래도, 하던 거는 마치고 나가야지. 엉엉’ 그때 내가 선생님 조연출을 하고 있었는데 선생님께는 도저히 말 못 하겠고 선배님들 몇 분께만 ‘이 공연만 마치고 그만 두겠습니다.’ 얘기를 했지. 공연이 끝나고 조연출 일지를 남미정 선배님께 건네 드리고 짐을 싸서 도망쳤지.(웃음)정예전에 이 이야기 들었을 때는, 탈영병이 철책 넘어서 도망가는 그런 느낌으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그 정도는 아니었구나.(웃음) 누나는 연극을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거야?성연초등학교 때 혼자 1인극을 만들어서 선생님한테 보여드린 적이 있었어. 그때 우리 집이 세탁소를 했었는데 선생님께서 우연히 들렀다가 우리 아빠한테 성연이가 재주가 있는 것 같으니 나중에 연예인을 시켜보라고 하셨데. 선생님 가시고 나서 아빠가 엄마한테 ‘어디 선생이 애한테 딴따라나 하라고 그러냐.’며 노발대발 하셨다고.(웃음) 그런 집이였어. 우리 집이. 난 그냥 공부 열심히 했지. 중학교도 반에서 상위권에 들고, 전교에서도 상위권이었고. 그러다가 공연을 봤는데... 중1때.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정그게 공연으로도 했었어?성연그 때 굉장히 이슈였어. 지금은 없어진, 신촌에 ‘홍익 소극장’이라고 있어. 거기서 공연을 봤는데. 뻑이 간 거야. 뻑이 간 정도가 아니라. 완전 (넋이 나간 얼굴) 이러고 봤어. 그걸 열한 번을 봤어.(웃음) 내 눈 앞에서 판타지가 열리는 거야. 그런 느낌이 청소년기에, 그 예민한 감성에 얼마나 강렬했겠어. 그 이후로 잠을 못 잤어. 몸에서 열이 나서. 밤마다 그게 눈앞에서 펼쳐지는 거야. 또 찾아갔지. 공연이 항상 만석이라 친구랑 둘이 그 많은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앉아서 11번을 이러고(넋을 놓은 채) 봤지. 도저히 안 되겠는 거야. 잠을 못 자겠고. 몸에서 계속 열이 나고, 그 생각만 나고 그래서. 그때부터 친구랑 잡지를 막 뒤졌어. 근데 중학생을 받아주는 극단이 없지. 그러다가 몇 달을 뒤져서 (우리를 받아줄) 아동극단 하나를 찾아냈어. 그길로 대학로에 있는 그 극단을 찾아갔고 거기서 아동극을 처음 시작했지. 내가 <헨젤과 그레텔>로 데뷔를 한 사람이야. 하하. 맨날 나와서 연습하고 주말마다 공연을 다녔어. 정부모님한테 안 들켰어?성연들켰지. 그때만 해도 통금시간이 있었는데. 맨날 맞았어. 왜냐하면 연습 끝나고 혜화동에서 개봉동 집까지 가면 10시가 넘으니까. 맨날 두들겨 맞았지. 연극 시작하고 나서 성당도 안 나가지, 성적은 뚝뚝 떨어지지 이러니까 난리가 났지. 근데 아무리 두들겨 패도 얘가 계속하는 거지. (웃음) (부모님 생각에) 헛바람 들어서 그러다 말겠지 했는데 얘가 계속하는 거야. 그렇게 중3때 까지 계속 맞으면서 공연을 하러 다녔는데 극단에 같이 들어간 내 친구가 어느 날 ‘난 예고 갈 거야.’ 이러는 거야. 나랑 같이 시작했는데 걔는 예고가서 그 길로 쭉 갈 것만 같고. 나는 인문계를 가야 했으니까... 부러워 미치겠더라고. 친구네 집에서 외박도 못하는 처지에 가출은 못하겠고. 그러다 수학여행을 가게 되었는데 이때다 싶은 거야. 수학여행 가기 전에 편지를 썼지. 4장. 막 울면서. 일부러 편지지에 눈물 막 떨어뜨리고.(웃음) 그렇게 4장을 썼는데 직접은 못 전해드리고 오빠한테 대신 전해달라고 부탁했지. (울면서) ‘꼭 내가 집에서 나가고 나면 엄마한테 드려.’ 그러고 집을 나왔는데... 우리엄마도 삶이 팍팍하다 보니까. ‘내가 딸을 이해해야 한다.’ 이런 건 생각도 못하셨겠지. 그리고 우리 엄마 꿈이 내가 약사가 되는 거였거든.(웃음) 근데 얘가 그렇게 맞아도 그만 안두고 눈물의 편지까지 써놓고 간 거지.(웃음) 엄마가 편지를 읽고 ‘아, 얘가 지금 장난이 아니구나,’ 라는 걸 느끼셨나봐. 수학여행 갔다 온 나를 엄마가 붙잡으셨어. 꿇어앉았지. ‘내가 너 허풍 들어서 그러는 줄 알았더니... 너 딴따라가 얼마나 힘든 건 줄 아니? 얼마나 가난한지 아냐고. 그리고 우리는 너를 밀어줄 형편이 안 된다.’ 하시더라고. 그러고 나서 ‘근데 니 맘을 보니... 내가 너를 믿지는 못하겠는데... 양보는 할게.’ 하시더라고. 그러고 나서 ‘너 정말 이거 하고 싶으냐, 이 길이 얼마나 험한 길인 줄 아냐.’고 다시 물어보셨는데(울면서) ‘내가.. 흑... 연극을...흑... 안하면 ..흑흑.. 눈을..흑... 못..흑... 감고..흑.. 구천을...흑흑... 떠돌 것..흑.. 같아...흑.’(웃음) 그때부터 우리 엄마가 아빠를 몇 달 동안 설득을 한 거야. 나는 무서워서 도저히 아빠한테 말을 못하고. 우리 아빠가 엄마 말을 잘 들어주는 그런 분이 아니란 말이야. 그런데도 엄마가 그런 아빠를 몇 달 동안 설득을 한 거야. 딸이 눈을 못 감고 구천을 떠돈다는데 어쩌겠어.(웃음) 엄마가 아빠의 모진 말들을 다 감당해 주신거지. 그렇게 허락이 겨우 떨어졌어. 정아이고... 성연그렇게 겨우 예고에 들어갔지.

정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누나의 힘이겠다. 뭔가 정석적이야. 어릴 때 연극에 미쳐서 그것만 보고 돌진했고 집에서 거센 반대도 있고. (웃음)성연근데, 나는 그로인해서 결핍이 엄청 많아. 부모님한테 사랑이나 믿음을 많이 받고 자라지 못했단 말이야. 아버지께서 화가 많으시고 너무 무서우셨어. 나처럼 이렇게 예민한 감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한테는 그 방식이 맞지가 안잖아. 어릴 때부터 엄청 혼나면서 자라서 그거에 대한 트라우마가 남아있는 것 같애. 내가 겁도 많고 깜짝깜짝 놀라고 그런 것들이 거기서 기인하는 거 아닌가 싶어. 그런 억압된 환경 속에서 여리게 자라왔기 때문에 성격도 내성적이 되고, 남 앞에서면 얼굴이 빨개지고. 이런 것들이 있지 않았나... 그리고 내가 그걸 이기려고 얼마나 발버둥 치면서 살았겠어. 그러다보니 내가 어렸을 때 성격이 되게 어두웠던 것 같아. 사람들하고 관계를 많이 맺지 못하고. 내가 아는 사람들 앞에서는 내 모든 걸 다 보여주는데.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는 그러지 못했어. 그래서 사람들이 날 차갑게 보는 것 같기도 해. 정이건 좀 다른 얘기지만. 나는 무대에서 누나를 보면 ‘저렇게 쪼끄만 사람에게서 어떻게 저런 강하고 돌출되는 에너지가 나올까?’하는 생각을 많이 했거든. 나랑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 작업할 때도 느낀 거지만 강한 에너지로 팍 깨는 느낌이 아니라, 뭔가 공간을 확 잡아당긴 달까? 분명 요만한 사람이었는데 도대체 그 힘이 어디서 나오는 걸까. 궁금했었거든.성연내가 그 에너지가 있다는 건. 어렸을 때부터 알았어.(웃음) 정그래? 어렸을 때부터 그 에너지 썼으면 애들 많이 울렸을 것 같은데. 하하.성연내가 고등학교 때나 대학교 때 섬세한 역할이나 상대배우와 교감을 나누는 그런 역할을 거의 안 해봤어. 되게 튀는 역할, 주인공이 아니어도 거의 주인공을 잡아먹는.(웃음) 그런 역할들. 독립적인역할. 그런 역할을 많이 했던 것 같아. 워낙 내성적인 아이이다 보니 그걸 연기로 푸는 거지. 가만히 웅크리고 있다가 뿜어내는 에너지가 얼마나 셌겠어. 그런 역할을 주로 했었어. 근데 나는 ‘빡’하는 에너지는 있지만 이렇게 ‘툭툭 푸는’ 에너지는 없었던 것 같애. 왜냐하면 너무 무서운 아버지 밑에서 너무 힘들게...(웃음) 얼굴도 잘 빨개지고, 소심하고, 어릴 때는 발표도 못했어. 나 저거 아는데 발표하고 싶어도 발표하는 상상 만해도 얼굴이 빨개졌어. 그 정도로 내성적이었는데 그런 애가 연극을 하겠다니... 사실 낯선 사람, 낯선 기운, 낯선 모임에 가면 아직도 얼굴이 빨개져.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이 내 첫인상에 대해서 오해...가 아닐 수도 있긴 한데.(웃음) 내가 경계심이 있으니까. 나는 긴장해 있으니까. 정차갑게 보는구나?성연응. 차갑게. 무섭게 보고. 학교 때도 가만히 있는 편이었고, 담배나 뻑뻑 피고 ‘예술은 무엇일까. 어떻게 하면 연기를 잘할 수 있을까.’ 만 생각하는 아이였는데... 후배들을 한 번도 혼 낸 적도 없는데도 애들이 날 무서워하더라고.(웃음) 어렸을 때는 실수도 많이 했지. 왜냐하면 (커오면서) 독하게 말하는 걸 배웠으니까. 성질내는 걸 배웠으니까... 참다 참다 한 번씩 눈 돌아가면 다 뒤집어엎고 그랬지.(웃음) 그리고 나는 연극을 신봉하니까. 대충 대충하는 사람들을 못 견디는 거야. 그런 사람을 보면 나도 모르게 쎈 게 나가는 거지. 남들한테 상처도 많이 준 것 같아. 나는 그만큼 지독하게 살았으니까. 그 기준을 남들한테도 적용하는 거야. 어렸을 때는 한 치의 의심도 없었어. 나는 죽을 만큼 하는데 왜 너희는 그따위로 해? 나한테 무대가 얼마나 신성한 곳인데 무대에서 그렇게 장난을 치고 떠들어? 이런 엑스엑스.(웃음) 근데 나이를 먹다보니 그게 아닌 것 같더라고. 살다보니, 연극을 하다 보니, 좋은 동료와 작업자들을 만나게 됐고. 사회에 관심을 갖다 보니까 그게 다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리고 극단에 있을 때는 어떤 책임감을 가지고 후배들을 대할 수밖에 없었고 내가 뭔가 다독이고 끌고 가야하고 서포트 해줘야 한다는 생각을 하다보니까, 그 책임감 때문에 나라는 인간이 없어지고 책임만 남더라고. 솔직한 대화들을 하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도 들었고. 그러다보니 인간이 안 되더라고. 극단을 나와서 좀 편해진 것도 있고. 정긴 시간 연극을 해오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은 어떤 거야?성연배우로서의 내 연극인생은 신기루만화경에서 동이향이랑 작업했던 <어느 날 문득 네 개의 문> 이전과 이후로 나뉘는 것 같애. 정누나한테 정말 중요한 작품인거네

성연응. 맞어. 에피소드가 4개로 이뤄져있는데. 그 중에 <분실> 이라는 에피소드가 있어.
그 에피소드에서 할아버지랑 함께 사는 11살짜리 꼬마 애 역할을 했는데. 그 당시에 시골에서 기르던 도사견한테 아이가 물려죽은 실제 사건이 있었어. 동이향이 그 기사를 보고 그때부터 자료 찾아보고 그 이야기로 희곡을 쓰기 시작했다고 하더라고. 네 개의 에피소드 중에서 그 에피소드를 제일 먼저. 아이는 자기가 죽은 줄 모르고 계속 할아버지를 찾아오는데 개가 무서워서 거기 못 들어가는 거야. 그러다가 계속 물려 죽고. 그게 계속 반복 되는 거지. 나는 그전에는 ‘성연아, 너는 재현을 참 잘하는 배우야.’라는 말을 많이 들었던 것 같아. 어떤 인물을 재현하는 것에 능숙한, 그런 나한테 새로운 방식이었어. 그전에 나는 나를 위해서 연기를 했던 것 같애. 당시에는 몰랐는데. ‘나의 만족. 내가 연기를 얼마나 잘할 수 있는지. 그 역할에 얼마나 가까워 질 수 있는지.’ 그것만 생각했어. 근데 그 작업을 하면서 이향이가 연습 중에 그런 얘길 했었어. ‘성연아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그리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재능이라는 게 딱히 이것밖에는 없는데 이 아이를 위해서...’
어른들 때문에 방치된 그 아이. 부모님도 도망가고 할아버지 혼자서 애를 키웠어. 할아버지가 남의 농사 도와주고 받아온 품삯으로 근근이 먹고 살아. 비닐하우스에서. 할아버지가 집을 비운 사이 개가 밥을 못 먹어서. (아이를 보고) 미친 거지. 되게 끔찍하게 물려죽었어. 그전까지는 좋은 대본을 잘 따라가기만 하면 됐다면 이향이와의 그 작업은 나한테 어떤 충격으로 다가왔어. 내 만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 역할을 잘해내야 한다는 목표가 아니라...‘11년 동안 방치된 채 살다가 불쌍하게 죽은 아이를 위해서... 성연아, 우리가 굿을 해주자.’ 이향이가 이러더라고. 나는 누군가를 위해서 연기한 적이 없었어. 하지만 난 늘 최선을 다해서 진정성을 다해서 연기를 하려고 노력했었지. 근데 뭔가 달라지는 거야. 폭이 달라진다고 해야 되나. 내가 나만을 위해서 무대에 설 때랑 내가 누군가를 위해서 무대에 설 때 마음이 다르더라고. 그러면서 내 목표도 조금씩 달라지고. 사실 제일 힘들었던 공연이기도해. 지금까지 가장 힘든 공연을 꼽자면 이 작품을 꼽을 것 같아. 연습하면서 쓰러지기고 하고... 너무 힘드니까. 근데 (그 시간들을 통해) 내가 이렇게 좁게만 살다가 사회를 보게 되고, 나 말고 다른 사람을 보게 되고. 사회구성원들, 타인을 보게 되고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해서 공부를 하게 된 것 같애. 그 전에는 희곡만 읽고 맨날 연극만 보러 다니고 영화 보러 다니고 ‘저 사람은 어떻게 저렇게 연기를 잘할까. 저 사람은 어떻게 저렇게 연기할 수 있을까.’ 이런 것만 궁금했지 이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해서는 궁금해 하지 않았던 것 같아. 극장 안에서만 살았던 거지. 연습실과 극장 안에서의 삶만을 살았어. 근데 그 작품 할 때는... 맨날 기도 했어. 실제 그 아이의 사진이 있어. 애기가 죽은 다음에 발견된 애기 신발이랑 그 아이가 살았던 집 사진. 이름이 주영이었는데 극중 인물 이름도 주영이었어. 그 사진을 극장 등퇴장로 벽에다가 붙여놓고 그 사진위에 손을 대고 ‘주영아, 내가... 이모가... 거짓말하지 않게 도와줘.’ 이러고 나갔어. 계속. 왜냐하면 실제 일어난 사건이나 일에 대해서 요만큼이라도 거짓말을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사진 붙여 놓고 그들에게 기도하며 공연했던 경험이 그 때가 아마 처음이었던 것 같아. 내가 남들 앞에서 잘 안 우는데 그 작품 끝나고는 집에 가서 대성통곡 했어. 사람들 앞에서는 잘 못 우니까. 내가 조금이라도 무너지면 주영이를 잘 못 보내줄 것 같아서 꾹꾹 눌러왔던 것들이 한꺼번에 쏟아진 거였나 봐. 그게 제일 기억에 남아. 앞으로도 계속 나에게 최고의 작품이 아닐까 싶어. <어느 날 문득 네 개의 문>. 내가 내 개인보다 사회인, 배우가 아닌 사회구성원으로 느껴진 작품. 그 작품전에는 청소년이었고. 그 작품이후에 성인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뭐 지금도 철딱서니는 없지만. 히히. 그게 나한테 성년식이었던 것 같애. 정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 사람한테 관심이 있어야 연극을 할 수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결국엔. 어떤 공연을 봤을 때 그게 느껴지는 경우가 있어. 분명히. ‘사람에 대해 깊게 생각 하고 있구나.’ 하고 느껴지는 공연들. ‘이들이 누군가에 대해 생각하고 있구나.’ 하는 공연들. 반면에 아무리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어도 뭔가 그 메시지에 멈춰있는 듯한 공연들도 있는 것 같고.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애. 사람에 대한 관심.성연물론 나도 여전히 갇혀있어.(웃음) 나는 나를 대학로 촌년이라고 부르는데. 여전히 대학로 촌년이지 뭐.(웃음) 정누나의 요즘 공연을 봐도 그렇고. 이렇게 만나 보니까 더 느껴지는 게... 뭔가 편해 진 것 같아.(웃음) 성연내가 얼마 전에 많이 아팠었잖아. 지금은 많이 괜찮아졌는데. 그 이후로 많이 바뀐 것 같아. 예전에 사람들이 나한테 너는 돈을 많이 벌어서 운전기사를 고용하라고 했단 말이야. 겁이 많아서 운전 절대 못한다고. 기계치이기도 하고.(웃음) 근데 그걸 겪고 나서 다시 걸을 수 있게 되고. 건강하게 하루하루를 산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건지 알게 됐지. 그러고 나서 인생이 긍정적으로 바뀐 거야. 오히려. 몸도 아팠었고 나이도 들면서 오히려 현실적(?)이 되는 것 같아. ‘남들 다 하는데 내가 못할게 뭐 있어?’ 내가 좀 모자라긴 하지만. 하하. 남들이 보기에는 깍쟁이처럼 보여도 난 모자라지만... ‘못 할게 뭐 있어. 한번 해 보자.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할 건 해보고 살자.’ 하는 생각이 드는 거야. 나는 원래 문제집만 봐도 머리가 아팠는데. 뭔 말 인지 하나도 모르겠고. 근데 이번에 면허시험이 어렵긴 했는데 금방 땄어.(웃음) 그러고 나서 돈 벌어서 차를 사야지 했는데. 엄마가 사줬어. 어머니께서 식겁하신거지. ‘딸 하나 있는데, 얘를 나보다 먼저 보내겠구나.’싶으셨던 거지.(웃음) 아무튼 그러고 나서 두려움이 좀 없어진 것 같아. 아니, 여전히 두려움은 많지만. 그전에는 내가 두려움에 졌다면. 이제 다섯 번 중에 한번은 내가 이기는 것 같아. ‘뭐 어때 해보자! 흥!’ 이러면서. 하하. 정누나 그래도 운전 좀 조심해서 해. 페이스북 보니까 맨날 어디 박았다고...(웃음)성연얼마 전에 친한 언니가 대상포진에 걸렸는데... 나는 그 언니한테 받은 게 너무 많거든. 그래서 크리스마스이브에 산타 노릇 한 번 해보려고 몰래 그 언니 집에 홍삼을 걸어놓고 나오다가 그 집 주차장 벽에 다가 차를 박았어. 찌그러졌어.(웃음) 근데 차가 찌그러졌는데도 계속 웃음이 나오더라고. 나는 그 언니한테 늘 받기만 한다고 생각했거든... 근데 내가 뭔가 해줄게 있다는 게 (좋았나봐)... 선물보고 ‘누가 걸어놨지?’ 하면서 어떤 표정 지을 지 상상 하는 게 너무 재미있고. 그러고 나서 페이스북에 올렸잖아. ‘산타 노릇하기 너무 힘들다. (대신 진짜 산타할아버지) 저에게 일도 많이 하게 해주시고, 남자도 하나 주세요.’ 했더니 갑자기 일이 쏟아지더라고.(웃음) 일복만 너무 많이 주셨어.

정좋네! 누나는 앞으로 어떤 작업들을 하고 싶어? 어떤 역할?성연예전에는 있었거든. 근데 지금은... 근데 여전히 변하지 않는 건 하나있어! 예전에 <에이미>를 보는데 무대 위에 윤소정선생님 모습이 너무 멋진 거야. 그래서 다짐을 했지. ‘나도 꼭 할머니가 될 때 까지 배우를 하리라.’(웃음) 그리고 나중에, 나중에 더 많이 늙었을 때. 80이 넘은 나이에 그런 역할을 해보고 싶어. 대극장에서 대사 한 마디도 없고 그냥 내 나이 그대로 분장도 안하고 가만히 앉아 있는 역할. 내가 그때까지 살수 있다면. 정음... 아름다울 것 같아. 좋을 것 같아. 성연예전에는 ‘어떤 역할을 하고 싶다.’ 이런 역할, 저런 역할이 선명하게 있었는데. 지금은 그쪽으로 선명하진 않고 ‘나이 많이 먹어서도 배우하고 싶다. 할머니가 되어서도 배우하고 싶다.’고 생각해. 지금은... 즐거웠으면 좋겠어. 행복했으면 좋겠어. 심각하거나 힘든 내용이라고 해서 꼭 안 행복한 건 아니잖아. 연극하면서 즐겁고 행복하고 싶어. 예전에는 오로지 연기밖에 재미있는 게 없었는데. 요즘엔 연기도 좋아. 뭔가 넓어졌나봐. 그래서 요즘은 나이 먹는 게 너무 좋은 거야. 물론 가는 젊음은 아쉽지만. 그래도 나는 젊어 봤잖아.(웃음) 음... 결혼 못한 게 좀... 씁쓸하지만. 개차반 같은 것들도 시집, 장가 잘만 가던데.(하하) 나는 왜? 나는 뭐가 모자란 걸까?(웃음) 정모자라서가 아니라 너무 충만해서 그런 거 아닐까? 누나가 누나의 일을 너무 사랑하니까.성연근데 예전만큼 집요하진 않아.(웃음) 예전엔 정말 연기에 대해서 집요했었거든. 맨날 연기 생각만 했지. 대본은 잘 안보면서. 하하. 희한하게 게을러. 지금은 연기가 내 인생에 포함된 것이란 생각이 들어. 나는 연기만을 위해, 그렇게 살아봤잖아. 근데 그러다 보니 공연이 만족스럽지 않다거나. 다른 일들로 공연하는 게 힘들어지면 내 인생에 타격이 너무 크게 오더라고. 근데 ‘이것은 나한테 중요한 일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게 되니까 그렇게 크게 타격이 오진 않는 것 같아. 그리고 (타격이 오더라도 그 부분을) 메꿀 수 있게 되더라고. 그게 나이 인 것 같애. 이제 나는 30대가 된 느낌이야. 동이향과 <어느 날 문득 네 개의 문>을 하면서 20대 성인이 됐다면. 나는 이제 30대가 된 것 같애. 십년과 철딱서니를 빼면 그게 딱 지금의 내 나이인 것 같애. 얼굴은 늙어 가는데.(웃음)
(2012년 <그을린 사랑>을 함께 했던) 돌아가신 연규선배님께서 2012년에 연기상을 타셨는데 수상소감 말씀하실 때 ‘나는 배우인 내가 너무 좋습니다.’ 라고 하셨던 게 생각 나. 선배님 돌아가셨을 때쯤 나는 <애국가> 공연을 하고 있었는데. 돌아가신 다음날 마지막 장면에서 ‘배우인 내가 너무 좋습니다. 라고 말씀하셨던 연규선배님 같이 할 수 있어서 너무 영광이였고 이제 하늘에서 편히 쉬세요.’ 라고 했어. 마지막 공연 때는 ‘연규선배님, 동현선배님 같이 할 수 있어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이젠 하늘에서 편히 쉬세요.’했었고. 근데 사실 그때 연규 선배님께서 수상소감에서 그 말씀 하셨을 당시에는 내가 좀 힘들 때였었는지 나는 내가 배우인 게 그렇게 좋진 않았었거든.(웃음) 근데 지금은... 내가 배우라는 게 참 좋아. 헤헤. 정누나한테 연극이란 뭐야?성연음... 연극은 길. 나한테 길이 되어줬던 것 같아. 내가 사람과 사회를 이해하는 방식이기도 하고. 연극을 통해서 내가 몰랐던 것들에 대해 읽게 되고 또 알게 되고. 연극을 하면서 계속 성장하는 것 같아. 물론 머물러 있을 때도 있고 퇴보할 때도 있겠지만. 연극이 인간 만들었지. 여전히 결핍이 많고 여전히 미완이지만...(웃음)
어쨌든 나는 내가 배우라는 게 너무 좋아.

[사진: 김지성 ]

박성연(배우)
대표작
<말뫼의 눈물> <2017애국가> <만리향> <연옥> <베르나르다알바의 집> <어느 날 문득 네 개의 문>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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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 연출가 '프로젝트 내친김에' 연출

주요작품 <광장의 왕>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 <꿈> <손님들>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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