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를 떠나는 것은 내가 사랑한 사람들 뿐

왜 나를 떠나는 것은 내가 사랑한 사람들 뿐

여행이란 세계와 ‘나’를 이어주는 방법이다. 세계 곳곳에서 만난 인간과 동물을 통해 지구가 얼마나 아름다운 행성인지를 깨닫게 된다. 때로는 그들의 삶을 방해할 위험도 있어 조심스럽다. 사진은 탄자니아 마운트 메루의 초원에서 만난 기린.

손 안에 전 재산이 놓여 있었다. 이렇게 큰돈을 만져보기는 처음이었다. 배낭과 노트북, 카메라 같은 장비를 사고 남은 돈 2000만원을 은행에 넣었다. 몇 권의 책과 옷가지, 호신용 호루라기 같은 것이 든 새 배낭을 메고 인천으로 향했다. 1월의 항구는 을씨년스러웠고 거센 바람이 불고 있었다. 등산 점퍼 안에 몇 겹의 옷을 껴입은 나는 앞뒤로 배낭을 메고 배에 올랐다. 서해를 가로질러 중국 칭다오로 향하는 배였다. 막 서른세 살이 되던 해였고, 6년을 다닌 회사에 사표를 쓴 직후였다. 설렘만큼이나 두려움이 컸다. 내가 마주할 세계에 대한 기대 못지않게 앞으로 겪게 될 사건사고에 가슴이 조여왔다. 세계일주를 하겠다고 사표를 쓰고, 방을 빼는 일을 아직 신기하게 보던 시절이었다. 그로부터 15년이 흘렀다. 나는 여전히 집 바깥이 더 익숙한 삶을 살고 있다. 다만 여행의 방식이 바뀌었다. 여행사를 찾아가지 않고 클릭 몇 번으로 가격을 비교해 항공권을 구매하고, 역시 클릭만으로 리뷰와 평점을 보며 숙소를 예약한다. 구글맵 덕분에 더 이상 길에서 헤매는 시간도 없고, 각종 앱 덕분에 가이드북을 들고 다닐 일도 없다. 모든 게 간단해지고 편리해졌다. 여행의 변수는 테러나 기상이변 정도를 제외하고는 통제 가능해졌다. 세계일주를 하는 사람도 가을날 대로변에 뒹구는 은행만큼이나 흔해졌다. 세계를 한 바퀴 도는 데 필요한 각오의 무게도 예전보다는 훨씬 가벼워졌다.

왜 나를 떠나는 것은 내가 사랑한 사람들 뿐

내가 쥘 베른의 <80일간의 세계일주>를 여태까지 읽지 않았던 이유는 몇 가지 선입견 때문이었다. 여행을 하면 할수록 세계가 무한 확장되는 것 같은데 80일 만이라니, 주마간산식일 게 분명해. 자고 나면 세상이 달라지는데 출간연도가 1873년이라니, 구석기 시대만큼이나 아득하잖아. 거기에 더해 쥘 베른의 책은 어린 시절에 아동용으로 꽤 읽어서 다 아는 것 같은 느낌까지 들었다. 지난 1년간 책을 통해 세계를 여행한 연재의 마지막회를 맞으니 이 책이 맞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 필리어스 포그는 매일 정해진 일정을 준수하며 시계추 같은 삶을 사는 미중년. 집과 클럽만을 오가던 그가 하인 파스파르투와 함께 세계일주에 나서게 된 이유는 내기 때문이었다. 80일 만에 세계일주가 가능하다고 주장하다가 전 재산의 절반을 걸고 그날 밤 세계일주를 떠난다. 엄청난 결단력에, 셔츠 두 벌과 양말 세 켤레만 챙겨 넣는 등 짐을 싸는 능력도 발군이다. 그들의 여정은 이렇다. 철도로 이탈리아의 브린디시까지 가서 증기선으로 지중해를 건너 수에즈 운하로 항해한다(7일). 다시 증기선으로 홍해와 인도양을 가로질러 뭄바이로 이동(13일). 인도 서쪽의 뭄바이에서 동쪽 콜카타까지는 철도로 횡단(3일), 그 후 남중국해를 건너 홍콩에 들어선다(13일). 증기선으로 요코하마에 도착하면(6일) 다른 배로 태평양을 가로질러 샌프란시스코에 내린다(22일). 동쪽의 뉴욕까지 철도로 횡단한 후(7일) 증기선으로 대서양을 건너 리버풀로 이동(9일), 기차로 런던에 돌아오는 일정이다. 하루라도 어긋나면 80일간의 세계일주는 실패다.

그들은 모든 운송수단을 동원한다. 여객선과 기차와 마차, 요트와 무역선, 썰매와 코끼리까지. 당연하게도 돌발적인 상황이 계속 일어난다. 포그는 죽은 남편과 함께 매장당할 위기에 빠진 인도 여인 아우다를 구출하거나 선량하지만 끝없이 말썽을 피우는 하인 파스파르투를 구하기 위해 뛰어들기도 한다. 이런 예상치 못한 난관을 해결해가는 동안 모험이나 타인의 삶에는 관심 없던 그가 조금씩 변해간다. 이 와중에 포그를 은행 절도범으로 오인한 픽스 형사의 추적이 따라붙는다. 끝없이 이어지는 모험에 숨이 가쁠 지경이다. 포그는 쉽게 좌절하거나 낙관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지성과 타인의 도움으로 고난을 뚫고 나간다. 물론 소설은 시대적 한계에서 자유롭지 못해 아메리카 원주민 수우족을 강도떼나 다름없이 묘사한 부분에서는 제국주의적 시선이 엿보이기도 한다. 등장인물 중 유일한 여성인 아우다 부인도 지극히 수동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그런 단점들이 크게 거슬리지 않을 정도로 이 책은 흡입력이 뛰어나 하룻밤에 다 읽고 말았다.

쥘 베른은 자료 조사만으로 이 소설을 썼다. 파리의 카페에 앉아 신문을 읽다가 80일 만에 세계일주가 가능하다는 기사에 영감을 받아서. 잡지에 연재된 소설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소설을 실제 상황이라고 믿은 독자들끼리 내기를 하거나 선박회사와 철도회사가 쥘 베른의 글에 자신들이 언급되도록 로비를 하기도 했다. 쥘 베른이 살았던 19세기 후반은 과학적 발명의 시대였다. 철도와 증기선의 발명으로 모험의 공간이 급속히 확대되었다. 그가 이 소설을 발표할 무렵인 1869~1870년 사이에 수에즈 운하와 미국 대륙횡단철도와 인도 대륙횡단철도가 개통되었다. 이제 세계일주는 콩코드 비행기를 이용한다면 44시간6분에도 가능해졌다.

<80일간의 세계일주>의 주인공처럼 엄청난 부자만이 가능했던 여행에 민주화가 이루어졌다. 경제적인 수준이 높아지고, 과학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여행은 모두의 것이 되었다. 더 싸고, 더 편해지고, 더 안전해졌다. 여성 혼자 하는 여행은 여전히 수많은 위험에서 자유롭지 못하지만 스마트폰 덕분에 약간의 안전망 정도는 설계할 수 있게 되었다. 스마트폰은 우리를 여행지에 완전히 몰입하지 못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새로운 방식의 유대를 가능하게도 했다. SNS나 인터넷 전화를 통해 소통하고 만남을 지속해가는 식으로. 물론 잃어버린 것도 있다. 모두가 여행을 다니는 시대가 된 후 세계에 오지는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아 인생을 바꾸는 모험이 불가능해졌다. 평생 우정을 나눌 벗을 사귀게 될 기회도 적어졌다. 인류는 달나라까지 다녀왔지만 이웃을 만나기는 더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고 달라이 라마가 이야기했듯이. 하지만 여행이 매혹적인 이유는 여행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마치 인생이 그러하듯. 낯선 곳에서 어떤 만남을 통해 얼마나 변화하게 될지 모르는 채로 우리는 여행을 떠난다.

15년 전, 중국으로 향하던 배에 오를 때 나는 알지 못했다. 내가 여행으로 밥을 버는 삶을 살게 되리라고는! 여행을 계속하는 한 내 세계는 여전히 확장되어 간다. 단순하고 평면적이었던 내 시선이 여행이 길어질수록 복잡하고 입체적이 되어갔다. 세계의 빛나는 아름다움을 하나 알게 되면 어두운 추악함이 슬며시 드러났다. 탄자니아의 대초원에서 기린을 지켜보며 다양한 생명이 더불어 존재하는 지구가 얼마나 아름다운 행성인지를 사무치게 깨달은 다음이면 예루살렘에서 인간이 신의 이름으로 얼마나 잔혹한 학살과 차별을 저지를 수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내 발걸음이 그곳에 사는 이에게는 불쾌한 흔적에 불과할 수도 있고,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망가뜨리는 길이 되기도 함을 알게 되니 몸가짐이 조심스러워졌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이 세계와 타인이라는 존재가 어떤 의미인지를 내 몸에 새겼다. 덕분에 세계와 타인에 대한 내 선입견을 끝없이 수정해올 수 있었다. 흑인에 대한, 동성애자에 대한, 이슬람에 대한, 더운 나라 사람들에 대한 수많은 편견들이 깨어져 나갔다. 여행을 할 때면 나는 내내 타인의 친절에 기대어 살았다. 온 세계가 나를 향해 연대의 손을 내미는 것 같았다. 길 위에서 나는 조금 더 용감했고, 더 착했다. 타인의 고통을 나눌 줄 알게 되었고, 잠시 빌려 쓰는 지구의 환경을 고민하게 되었고, 육체적인 불편함을 견디는 힘이 극도로 늘어났다. 집이 아니면 공중 화장실도 가기 싫어하던 내가 대자연의 지형지물을 기꺼이 사용할 줄 알게 되었다. 낯선 사람과는 인사를 나누는 일조차 꺼리던 내가 처음 만난 여행자에게 밥 먹으러 같이 가겠냐고 능숙한 작업(?)을 걸게 되었다. 개미도 싫어하던 내 눈에 거미조차 사랑스럽게 다가왔다. 내가 지닌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늘 여행에서 발현되었다. 여행을 다닌 덕분에 내가 속한 이 세계를 진심을 다해, 있는 힘껏 끌어안게 되었다.

이제 여행은 어디로 가느냐는 장소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가 되었다. 세월이 흘러도 여행은 여전히 살아남을 것이다. 백 년 후에는 내가 한 방식의 여행도 쥘 베른의 모험처럼 여겨질지도 모른다. 80일간의 세계일주가 끝난 후 주인공 포그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두 번 다시 바다를 건너지 못했다 해도 그는 아쉬워하지 않았을 것 같다.

스포일을 우려하면서도 이야기하자면 이 책의 마지막은 이렇다(다 알고 가도 재밌는 게 여행이듯이 내용을 다 알고 읽어도 재밌는 책이 여행기다). “이 여행에서 얻어온 것은 무엇일까? 아무것도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아무것도 없다고 치자. 하지만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은 일이 일어났다. 매력적인 여인이 그를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남자로 만들었다는 것! 사실, 사람들은 이보다 더 하찮은 이유로도 세계일주를 하지 않을까?”

<시리즈 끝>

강아지들 덕분에 꼭 해야 하는 일과 중에 아침 산책이 있다. 녀석들이 자연의 리듬에 맞게 여름에는 새벽 다섯 시부터, 겨울에는 조금 봐줘서 일곱 시면 어김없이 내 방 앞에 와서 나가자고 아우성을 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친구들이 조금 ‘관종’ 기질이 있어서 산책을 하면서 만나는 다른 개 보호자들에게 꼭 먼저 다가가서 아는 체를 한다. 그러면 사람들이 한마디씩 한다. “어머 너무 예쁘다!” 등등. 그때마다 기분이 한껏 좋아진 녀석들의 발걸음이 통통 튄다. 반면에 어쩌다 아무도 만나지 못하고 오는 날에는 힘이 하나도 없다. 그 모습을 보면서 관심과 칭찬이야말로 마음 에너지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하물며 강아지가 저런데 인간이야 말해 무엇 하랴 싶기도 하다.

왜 나를 떠나는 것은 내가 사랑한 사람들 뿐

우리에게 관심과 칭찬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나의 자존감을 구성하는 뼈대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을 신뢰하는 일이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모든 것들, 즉 인간관계, 일, 사랑의 기본은 바로 나 자신과의 관계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나는 내 눈과 귀를 통해 세상을 보고 듣고 느낀다. 장자에 보면 “하늘과 땅이 나와 함께 생겨났다”는 말이 있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도 하늘은 있고 내가 죽은 다음에도 땅은 있다고 하지만 내가 태어나서 그 하늘을 보고 그 땅을 디디고 난 후에야 비로소 그것은 나에게 의미를 갖는다. 그래서 맹자 또한 한 말씀 했다. “만물이 내 안에 깃들어 있다”고. 따라서 내가 ‘좋은 삶, 편안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나와의 관계가 건강하게 형성되어야 한다. 다른 말로 하면 내가 나를 사랑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에 약간이라도 사랑이 있을 때는 최소한 여유가 생겨난다. 덕분에 대체로 주변의 모든 것이 사랑스러워 보인다. 그러나 누군가를 미워하면 나를 화나게 한 상대보다는 내 마음이 먼저 탄다. 누군가를 미워하고 싫어할수록 그 사람 생각이 내 마음을 점령해서 그야말로 다른 것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내가 미워하고 싫어하는 사람이 자리 잡는 곳도 결국은 내 마음속이다. 그리고 대개의 경우 내가 싫어하고 미워하는 그 사람은 나에 대해 생각조차 하지 않을 때가 더 많다. 결국 마음속에서 그를 지우지 못하고 있어 봤자 나만 손해다. 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더욱이 나는 죽는 날까지 떠나보낼 수 없는 존재이다. 나 자신을 내가 미워하고 학대해 봤자 나만 손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니 마음을 바꾸어 나를 사랑하기로 결심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인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신의학과 상담에서 자기를 알아가는 것은 곧 자기를 사랑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해서 그의 모든 것을 다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모든 것이 만점이어서 그를 사랑하는 것도 아니다. 내 부모나 내 자식이나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다. 친구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우리에게 소중한 존재이다. 그러니 나에 대한 사랑을 포함해서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보다는 사랑하는 것이 내 마음의 에너지 보전 법칙에도 더 들어맞는다. 솔로몬은 ‘인생에서 필요한 피난처는 돈과 지혜’라고 했다. 많은 심리학자들도 경제적 어려움에 처했을 때 가장 무력감을 느낀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대로 지갑이 두둑하면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 마음의 에너지 통장도 마찬가지다.

사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받는 스트레스 중 하나는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하는 자기 의구심이 원인인 경우가 많다. 즉 자기 불신이 스트레스의 한 원인인 것이다. 그러니 내 마음 에너지 통장에 스스로에 대한 신뢰감이 가득 차 있으면 세상에 무서운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내 마음의 곳간에 나에 대한 이해, 수용, 칭찬, 격려, 믿음이라는 곡식을 채워 넣어야 한다. 그래야만 외부의 비바람이 불 때 내가 흔들리지 않고, 설령 흔들린다고 해도 바로 오뚝이처럼 일어설 수 있다. 그 원천은 바로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한다. 그러니 미워하기보다 사랑해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