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왜 인간으로 낳아서 내 능력 바

♣2012년 6월 24일  성령강림 후 네 번째
  성경 ; 삼하5:1-5,9-10, 고후12:2-10, 막6:1-13
  제목 ; 내 능력은 약한 자에게 가장 잘 나타난다!
  물맷돌자료실 : //cafe.daum.net/moolmatdol

   ‘여자는 약하나 엄마는 강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를
신체적으로 비교할 때, 일반적으로 여자가 약한 편입니다. 하지만,
여자가 아기를 낳아 엄마가 되면, 여자는 어떠한 시련과 아픔도 능
히 극복할 수 있는 초인적인 힘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특히, 한국
의 엄마는 다른 어떤 나라의 엄마들보다 더 씩씩하고 강인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지만, 여자는 원래 약한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몇몇 특별
히 힘센 여자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여자는 남자보다 약한 편입니
다. 그런데, 그런 약한 여자에게 강력한 무기가 하나 있습니다. 여러
분은 그것이 무엇인지 아시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눈물’입니다. 아
무리 강하고 억센 남자라도, 눈물을 흘리는 여자 앞에서는 굳게 쥐
었던 주먹을 풀게 마련입니다. 왜냐하면, 남자에게는 원래 약자를 보
호하려는 보호본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남자는, 여
자가 연약해보일 때, 그를 보호해주고 싶은 마음을 갖게 마련입니다.
그런고로, 만일 연약한 여자에게 폭력을 사용하는 남자가 있다면, 그
런 남자는 결코 제대로 된 남자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혹시라도 부부싸움을 하게 될 경우, 여자는 남자의 보호본능을 이
용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남자와 맞서 싸우려고 하기보다는, 뒤로
물러서서 눈물을 보이면 됩니다. 괜스레 남자와 맞서 싸웠다가는 얻
어맞기만 할 것입니다. 그런고로, 남자의 보호본능을 적절히 잘 이용
할 줄 아는 사람이 지혜로운 여자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보낸 두 번째 편지에서 말하기를 ‘나는
나의 약한 것만을 자랑하기로 했다.’고 했습니다. 아니, 세상에 자랑
할 것이 아무리 없어도 그렇지, 왜 하필이면 자신의 약한 것을 자랑
하겠다고 했을까요? 모든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장점을 내세워
자기자랑을 하고 싶어 합니다. 그렇지만, 자신의 약점을 자랑하고 싶
어 하는 사람은 찾아보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어째서
자신의 연약함을 자랑하겠다고 했을까요?
    물론, 바울에게도 세상적으로 자랑할 것이 아주 많았습니다. 아니,
그 누구보다도, 사도 바울에게는 자랑할 것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그
러나 예수를 알고 난 이후, 사도 바울은 자신의 그 모든 것들을 다
무가치한 것으로 여기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물론,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는 그런 것이 일시적으로 필요하겠지만, 그러나 그런 것들이
영원한 가치를 지닌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를 믿고 난 이후, 신앙적으로도 아주 놀라운 경험을
갖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바울은 비몽사몽(非夢似夢)간에 삼층천
(三層天)까지 올라갔다 오는 경험을 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
곳에서 인간의 능력으로나 말로는 도저히 그려 낼 수 없는 아주 놀
라운 사실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신앙인의 입장에서 볼 때
에 그런 경험은 정말 큰 자랑이 될 수도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런 것조차 자랑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고백했습니다. ‘그 일이야말로, 내게는
크나큰 자랑거리다. 하지만, 내놓고 떠벌리면서 다닐 마음은 없다.
다만, 내가 자랑하고 싶은 것은, 내가 참으로 나약한 인간이라는 것
과, 이처럼 부족한 나를 당신의 영광을 위해서 불러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야말로 얼마나 위대한 분인가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세상
에서는 아무리 자랑할 것이 많아도, 하나님 앞에서 우리 인간은 참
으로 연약한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하나님
앞에서 인간은 나약하고 허물이 많은 죄인입니다. 세상에서 큰소리
땅땅 치던 사람도, 하나님께서 ‘오라’ 하시면 꼼짝없이 가야만 하는
것이, 우리 인간의 운명이요, 한계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이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겸손입니다. 겉으로만 겸손한
척하는 거짓된 겸손이 아닙니다. 진실하고 솔직한 마음으로 ‘하나님
없이는 난 살 수 없습니다.’라고 고백한 다음, 주님 앞에 온전히 바
짝 엎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도우심을 요청해야 합니다.
    회당장 ‘야이로’가, 그의 사랑하는 딸이 죽을 지경에 이르렀을 때
에, 그는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내 딸을 살려달라’고 간절한 마음
으로 빌었던 것처럼, 우리 또한, 주님 앞에 진실한 마음으로 무릎을
꿇고 “주여, 저를 살려주십시오. 죄에서 완전히 벗어나 참으로 사람
답게 살고 싶습니다.”라고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내가 비록 여러 가지 자랑을 하더라도, 그
것은 모두 사실이니, 내가 어리석은 자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하면서, 그러나 내 본래 실제의 모습보다 그 이상으로 과장이 될까
염려가 되어서, 아예 자랑을 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바울
은, 오히려 자신이 교만에 빠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질병의 고통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 질병은
사단의 심부름꾼이 되어서, 바울로 하여금 교만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그를 괴롭히면서 고통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교만은 우리를 넘어지게 하는 원수 중의 원
수입니다. 그런데, 누구나 다 할 것 없이, 우리 마음속에는 그 교만
의 세력이 자리 잡고 있으면서 그 주인인 우리를 넘어뜨릴 기회를
엿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교만의 세력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반항하면서 불순종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지금이라도 하나님께서 ‘오라’ 하시면,
우리는 꼼짝없이 이 세상을 하직해야 하는, 연약한 피조물입니다. 그
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조금 안다고 해서, 아니면 조금 잘살게 되
었다고 해서, 아니면 세상 권력을 가졌다고 해서, 하나님께 불순종하
고 거역하기를 밥 먹듯이 합니다. 하나님은, 바울이 이처럼 교만해질
까봐, 그 몸에 가시로 찌르는 것과 같은 병을 주셨던 것입니다. 바울
은 너무 괴롭고 고통스러워서 세 번이나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하나님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해진다.”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찔리는 가시와 같은 질병’을 주
신 것은, 바울이 교만에 빠지지 않도록 하려고, 그래서 하나님 앞에
서 언제나 겸손한 태도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살게 하려고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요, 선물이었던 셈입니다.

    요즘, 교회 주변에서 돌아다니고 있는 유행어가 하나 있는데, 그
것은 교회 안에 ‘원불교 교인’이 많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불교의
일종인 원불교(圓佛敎)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원망하고 불평하고
교만한 교인’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원망과 불평과 교만한 교인의 특
징은, 화를 잘 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화를 내면, ‘하나님의
의(義)를 이루지 못하게 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사탄을 이롭게 해
준다.’고, 야고보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1:20). 그리고 분노를 멈추
지 못할 경우, 마지막에는 살인까지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에서 지낼 때, 그들은 수없이
원망하고 불평하면서 교만하게 굴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가나안 땅
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특히, 60만 명이 넘는 백성들 중, 20세 이
상의 어른들은 한 사람도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다 죽
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허무한 일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가나안 땅
에 들어가려는 간절한 마음에서 그 험한 여정을 마다하지 않고 애굽
에서 나왔는데, 교만한 마음 때문에 젖과 꿀이 흐른다는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었으니, 얼마나 억울한 일입니까?
    사무엘하 22장 28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겸손한 사람을 구하
시고, 교만한 자를 낮추신다.’고 했습니다. 역대하 32장 25절에도
‘히스기야는 교만해져서 자비를 베풀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지 않
았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히스기야와 유다와 예루살렘 백성에게 진
노하셨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잠언 14장 3절에서는, ‘어리석은 사
람은 스스로 잘난 체하여 매 하나라도 더 맞고, 지혜로운 사람은 그
입술로 자신을 지킨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교만은 자기 자신을 망하게 할 뿐만 아니라,
그의 가족과 그가 속한 공동체까지도 다 망하게 합니다. 그러나 겸
손은, 자기 자신을 지켜주게 되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듬뿍 받
을 수 있도록 해줍니다. 그런데 그 겸손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에, 우리 인간이 얼마나 부족하고 연약한 존재인지 깊이 깨닫게
됨으로써 갖게 되는 아름다운 덕목이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미국의 16대 대통령이었던 링컨은, 지금도 미국 사람들이 역대
대통령 중에서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으로 꼽고 있습니다.
그 링컨이 대통령으로 재직 중이던 어느 날, 링컨은 백악관에서
구두를 닦고 있었습니다. 이때, 그 옆을 지나가던 대통령의 비서가,
구두를 닦고 있는 사람이 다름 아닌 대통령이라는 것을 알고서는,
너무나 당황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각하, 이게 무슨 일입니까?”
    그러자, 링컨은 “무슨 일이라니?”하고 되물었습니다.
비서가 다시 한 번 “한 나라의 대통령님께서 직접 구두를 닦으시
다니요? 그것도 미국의 대통령께서….”하면서 더 이상 말을 잇지 못
했습니다.
    이에, 링컨은 말하기를 “이것 보게. 자기 구두를 자기가 닦아 신
는 것이 왜 이상한가? 구두 닦는 일을 천한 일로 생각한다면, 자네
생각이 잘못된 것이야. 대통령도 하나님 앞에서는 그저 똑같이 죄인
이요, 동시에 사랑받는 자녀들 중의 한 사람일 뿐이라네.”
링컨의 비서는, 더 이상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우두
커니 서 있다가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그러니까, 시골뜨기 청년에 불과했던 링컨이 미국의 위대한 대통
령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진실로 겸손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겸손한 사람을 선택하여 사역자로
삼으십니다. 사도 베드로는 그가 쓴 베드로전서 5장 6절에서 ‘하나
님의 전능하신 손아래 자신을 낮추라.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때가 이
를 때에 너희를 높이실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그의 아버지 이새가 낳은 아들 8형제 중에서 막내였습니
다. 사무엘 선지자가, 사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왕이 될 사람을
선택하려고 이새의 집을 찾아갔을 때, 다윗은 아예 젖혀놓고 있었습
니다. 왜냐하면, 다윗의 형이 일곱이나 있었으니, 그들 중에서 하나
가 선택이 될 줄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무엘 선지자는
굳이 다윗을 데려오도록 해서 그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았던 것
입니다. 그때, 다윗은 아버지의 지시에 따라 들에서 양을 돌보고 있
었습니다. 하건만, 하나님께서는, 사무엘 선지자로 하여금, 그를 불
러들여 그 머리에 기름을 붓고 왕으로 삼도록 섭리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새의 아들들 중에서 가장 작은 자, 그래서 아버지 이
새가 아예 처음부터 제외시켜놨던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왕으로 선택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가장 부족하고 가장 작
은 자를 선택하신 다음, 그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훈련시켜서 당신의
사람으로 삼으시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 중, 하나님께서 특별히 선택하여
뽑아 쓰신 사람들은, 이와 같이 작고 부족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겸손하게 머리 숙이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한 사람들입니다.
아니면, 아예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도움을 구한 사람들입니다. 하
나님은 이런 사람들에게 직접 찾아오시고, 또한 그런 사람들을 통하
여 당신의 뜻을 이루어가시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이 이스라엘을 통일할 수 있었던 것도, 그가 겸손한 사람이었
기 때문입니다. 지난 시간에 살펴봤던 ‘활의 노래’를 보면, 그 사실
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은 사울과의 전쟁에서 최후의 승리를 거
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고로, 얼마든지 승리의 기쁨을 맛보면서 즐
거워할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전쟁에서 이겼다고 해서 자
랑하거나 뽐내지 않았습니다. 잔치를 베풀고 즐거워하는 시간을 갖
기보다는, 전쟁에서 죽은 사울과 요나단을 위해서 애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알다시피, 사울은 다윗을 계속 쫓아다니면서 죽이려고
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을 위해서 애도의 기간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애가(哀歌)까지 지어서 불렀던 것입니다.
    다윗의 이런 모습을 지켜보던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 사람들이 다
윗을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다윗을 이스라엘의 유일한 왕으로 삼겠
다고 했습니다. 다윗의 태도를 보아 한 나라의 왕이 될 만한 사람이
라고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울과 함께 했던 사람들이 모두
다 다윗에게로 돌아오게 되었고, 비로소 이스라엘나라는 명실공히
통일국가를 이룰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 당시에 있어서는 가장 화려하고 강력한 지위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를 믿은 이후에는, 그 모든 것을 쓰레기처
럼 여겨서 다 버렸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몸에 가시로 찌르
는 것과 같은 질병이 있었으나, 그것 때문에 하나님께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다윗은 그 고통을 하나님의 은혜로 알
고 고맙게 받아들였습니다. 요컨대, 그 자신이 교만하여 넘어지는 일
이 없도록 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오랜 세월에 걸친 사울과의 전쟁에서 드디어 승리했건만,
결코 그는 승리에 도취해서 자만하거나 교만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전쟁에서 패배한 사람들의 입장을 이해하면서,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일에 힘썼습니다.
    이처럼,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들은 겸손했습니다. 스스로 자
신을 낮추고 겸손한 태도를 취함으로써,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 그리
고 그 능력을 힘입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은혜 안에서
성공적인 인생을 살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더욱 겸손한 사람이 되기 위해
서 더 노력하고 힘쓰도록 합시다. 하나님의 능력은 약한 자에게서
가장 잘 나타난다고 했으니, 우리는 항상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
추어 겸손한 모습을 보여야 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겸손한 자와 함께 하시는 주님의 능력을 힘입
어서, 어디를 가든지 겸손한 자세로 주님의 일에 힘쓰시는, 참으로
복된 성도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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