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지구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타노스

-이 글에는 게임 '매스 이펙트' 시리즈의 최종 엔딩과 영화 '어벤져스:인피티니 워'의 스토리에 관한 주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읽으실 때 주의를 권합니다.-

[게임의 법칙-134]

◆'어벤져스:엔드게임'과 '매스 이펙트' 시리즈

영화 '어벤져스:엔드게임'의 개봉으로 인피니티 사가라고 불리는 10여 년의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모양이다. 한국에서도 상당한 인기를 모은 인피니티 사가의 중심 이야기에는 타노스라는 빌런의 계획이 자리하고 있었다. 우주의 힘을 담은 인피니티 스톤을 모아 타노스가 벌이고자 했던 일은 우주 전체 생명체의 절반을 소멸시키는 일이었다. 악당으로서 타노스는 그저 단순하게 '지구 정복' '생명체 말살'과 같은 목적을 제시하지는 않았다. 한정된 자원 안에서 무한하게 증식한 생명체의 문제는 어느 행성에서나 비슷하게 벌어지고 있었고, 이 모든 것을 과도한 생명체 증가로 판단한 타노스는 나름 진심을 담아 생명체의 절반을 없앰으로써 우주의 균형을 가져오고자 했다. '왜 우주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와 같은 '짤방'이 나돌 정도로 기존 우주의 악당들과는 사뭇 다른 측면을 타노스는 보여준 바 있었다.

왜 지구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타노스

'어벤저스' 시리즈의 타노스가 가진 생각을 위트있게 요약한 '짤방'. 실존하는 책을 패러디했다.

인피니티 사가의 최종장을 지켜보면서 떠오른 게임이 하나 있었다. 이 게임에서도 우주 생명의 종말을 획책하는 존재가 있고, 그 거대한 존재에 맞서 싸우는 주인공과 동료 집단이 등장한다. 비슷한 듯 다른 면으로 또 하나의 우주 종말에 대한 이야기를 펼친 게임의 이름은 '매스 이펙트' 시리즈다.

◆'매스 이펙트'의 리퍼, 유기체 문명의 멸망을 획책하다

미래의 인류는 점차 발달한 기술을 통해 태양계 곳곳을 탐사해내기 시작하고, 그 와중에 명왕성의 위성 카론이 매우 독특한 구조라는 사실을 밝혀낸다. 알고 보니 이는 그냥 위성이 아니라 얼음 속에 갇혀버린 어딘가로 이어지는 일종의 포털 같은 구조였던 것. 인류는 이 릴레이 포인트를 '매스 릴레이'라고 부르며, 매스 릴레이를 재작동시키자 은하계 중심에 자리하는 은하 연합의 수도인 시타델이라는 인공도시로 갈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외우주 시대의 개막을 맞이한 것이다.

은하 곳곳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기술을 보유한 문명들이 매스 릴레이를 찾아내 시타델에 모이고 있었다. 고대의 종족 프로디언이 만들어둔 것으로 추정되는 매스 릴레이는 은하 전체의 생명체들을 하나로 이어주며 새로운 시대를 열었지만, 게임 후반부에 이 매스 릴레이의 정체는 새롭게 밝혀진다. 이는 리퍼라는 종족이 생명체들을 흡수하기 위해 만든 일종의 덫이었다.

일차적으로 밝혀진 리퍼의 목적은 일정 수준에 도달한 종족을 수확하는 것이었다. 기계와 유기체의 합성으로 이루어진 종족 리퍼는 자신들의 재생산을 번식이 아닌 기계 제작의 방식으로 수행하는데, 여기에는 단순 금속재료뿐 아니라 유기체의 유전자 또한 재료로 들어간다. 이를 수급하기 위해 리퍼는 우주 곳곳의 유기체 문명들을 사냥해야 하는 상황이다.

왜 지구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타노스

'매스 이펙트'의 리퍼는 거대한 기계-유기체 혼종으로, 유기체를 멸망시키고 그 유전자와 정수로 자신을 재생산하는 존재다. 주인공은 거대한 리퍼에 맞서 싸우면서 이야기를 밀고나간다.

아주 낮은 수준의 기술 진보에 머무르는 종족을 일일이 흡수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리퍼는 우주 곳곳에 매스 릴레이를 만들어두고, 이를 응용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한 종족들이 스스로 시타델에 모일 수 있도록 준비했다. 적당한 수의 종족이 모이면 리퍼는 행동을 개시해 이들 문명을 모두 말살하고 그들의 기술과 유전자를 흡수해 자신을 강화하고 리퍼 종족의 후손을 만드는 데 사용한다. 리퍼가 자신의 종족을 이어가기 위해 만든 것이 매스 릴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인류와 여러 외계 종족은 이제 리퍼의 위협에 맞서기 위해 지구 출신의 주인공인 셰퍼드 소령과 그의 기함 노르망디호를 중심으로 거대한 우주 수호 서사시를 써 내려나간다.

◆반전:멸망이 곧 보존인가

그러나 게임 최후반부에 이르면 리퍼라는 존재의 목적은 다시 한번 뒤집힌다. 3부작의 최후반부에서 리퍼의 존재 이유가 새롭게 밝혀지는데, 리퍼는 카탈리스트라는 인공지능이 유기체의 절멸을 막기 위해 생각해낸 일종의 최후 수단과도 같은 것이었다.

선대 우주종족 레비아탄은 여러 유기체 문명들을 지배하며 조공으로 먹고사는 종족이었는데, 이들은 각 종족이 일정 기술 수준에 이르면 인공지능을 개발해 생산의 향상을 도모하는 것을 공통적으로 목격한다. 그런데 이 인공지능의 수준에 이르면 모든 문명들이 결국 발전해버린 인공지능에 의해 멸절하는 것을 수차례 반복해서 보게 된다. 유기체 문명이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 결국 인공지능을 만들고 그 인공지능에 의해 스스로 몰락하는 것을 본 레비아탄은 이런 유기체 문명을 지켜낼 방법을 찾기 위해 카탈리스트라는 이름의 인공지능을 만들어 해법을 탐사하는데, 카탈리스트가 찾아낸 최종 해법이 바로 매스 릴레이와 리퍼였다.

인공지능을 만들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한 문명은 매스 릴레이를 찾고 운용할 수 있는 수준에도 도달한다. 매스 릴레이를 통해 시타델에 도착한 문명들을 대상으로 카탈리스트는 리퍼라는 반유기체 종족을 통해 공격, 그들의 유전자와 문화의 정수를 흡수해 리퍼 안에 보존하는 방식을 취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해당 문명이 만들어낸 인공지능의 공격이 있더라도 유기체 문명이 이룩한 결과물은 온전하게 리퍼 안에 보존되어 일종의 영생을 얻는다는 것이 카탈리스트의 결론이었고, 그 결과가 게임 '매스 이펙트' 시리즈의 이야기였다.

왜 지구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타노스

매스 릴레이는 먼 과거의 우주종족이 만들어낸 일종의 포털과 같은 장치로, 태양계에는 명왕성의 위성 카론 얼음 밑에 묻혀 있었다.

◆타노스와 카탈리스트:멸망을 통해 유지한다

'어벤져스'의 인피티니 사가를 생각하다가 '매스 이펙트' 시리즈의 줄거리가 떠오른 건 둘 모두 멸망에 대한 공포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빌런이라는 공통점에서였을 것이다. '어벤져스'의 타노스는 일종의 맬서스 트랩과도 같은 방식의 사고로 모든 생명체가 멸망할 것이라는 연역적 결론에 도달한다. 한정된 자원 이상으로 폭증하는 유기생명체의 숫자는 결국 파멸을 부를 것이며, 이를 나름의 공정한 방식인 완전 임의의 방식으로 절반을 없앤다는 포부를 품으며 인피니티 사가가 시작된다.

같은 맥락은 '매스 이펙트'의 리퍼, 혹은 카탈리스트에게도 나타난다. 모든 유기생명체는 원시적인 초창기로부터 점차 발전해오고 어느 수준에 이르면 인공지능을 개발해 스스로의 생산력을 드높이고자 하나, 결국 그 인공지능이 유기체 이상의 행동력과 사고력을 보임으로써 멸망하는 루트에 도달하고 만다는 결론을 귀납적으로 내린다. 카탈리스트는 이러한 멸종을 막기 위해 해당 유기생명체의 정수를 직접 수확해 보관하는 방식으로 우주의 연대기를 이어나가고자 하고, 이것이 '매스 이펙트'의 중심 줄거리다.

두 개의 서사가 공동으로 디디고 있는 지점은 자연의 순환을 인공적으로 통제하고자 한다는 점에 있다. 생명이 태어나 성장하다 죽고, 그 죽은 양분을 토대로 또 다른 생명이 나타나는 것이 생태계의 순환이다. 우주의 별도 작은 먼지들이 뭉치며 중력을 키우고 거대한 별이 되어 빛과 열의 반응을 일으키다가 종국에는 소멸하는 순환의 주기를 거친다. 성장과 멸망의 반복적 순환으로 이루어지는 거대한 주기의 사이사이에는 개별 주기에 종속되어 있는 이들이 갖게 되는 멸망의 공포가 자리한다. 언젠가 태양이 폭발하건 힘을 잃건 지구에 사는 인류문명은 소멸할 것이다(그 이전에 전쟁으로 자멸할 우려도 높다). 빈 지구에 또 다른 생명체가 자리 잡고 문명을 건설할 가능성이 있겠지만, 그런 거대 주기에서의 순환을 느낄 만큼 인류의 삶이라는 건 무한하지 않다.

개별 자아의 인식 범주에서는 도저히 순환이라고 여겨지지 않을 만큼 거대한 탄생과 멸망의 주기를 두 서사 모두는 자신이 볼 수 있는 범주 안에서의 순환으로 통제하고자 한다. 타노스가 굳이 우주 생명체의 절반을 없애지 않아도 제한된 자원이라는 한계는 결국 모든 생명이 멸망한 빈자리에 새로운 무언가를 일으키는 토양이기도 하다는 점은 고려되지 않는다. 굳이 리퍼가 개입해 유기체의 정수를 보관하고자 하지 않아도 그러거나 말거나 우주는 우주의 순환을 유지할 예정이었을 것이다.

◆영생:개별 개체의, 혹은 집단 전체로서의

그런 면에서 '매스 이펙트'와 인피니티 사가의 주제는 좀 더 큰 의미에서의 영생에 잡힌다. 개별 개체의 영생이 아니라 종족, 혹은 생명군 단위의 영생이다. 물론 이 영생이라는 것은 결국 영생을 사고하고 추진하는 이가 인지할 수 있는 범주 안에서 유의미하다. 타노스가 굳이 핑거스냅을 날리지 않아도 어떤 식으로든 유기체는 생명과 문명을 만들어나갔을 것이겠지만 그런 것보다 중요한 건 타노스가 인지하는 범위 안에서 생명체가 살아서 삶을 일구는 것이었다. 영생이라는 개념이 얼마나 자기중심적인 개념인지를 역설적으로 알려주는 지점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렇게 거시적 개념으로서의 영생을 추구하는 이들이 두 콘텐츠 모두에서 빌런의 역할을 차지하며 악의 축으로 플레이어, 혹은 시청자와 대립한다는 점이다. 자신의 관점에서 소화 가능한 보다 작은 순환체계를 강제로 만들어낼 수 있는 권력을 가진 타노스와 카탈리스트는 그로 인해 생사여탈의 주체적 권리를 빼앗긴 입장에 서는 플레이어와 시청자와 대척점에 선다. 영화에서는 이를 극복하기 위한 영웅들의 활약을 보여줌으로써 해소하고자 하지만, '매스 이펙트'는 최종 챕터에서 플레이어에게 세 가지 선택을 제시한다. 플레이어는 카탈리스트의 이야기를 듣고 지금 카탈리스트가 만들어둔 리퍼에 의한 수확의 순환을 유지할 수도 있고, 아니면 리퍼와 같은 인공지능류를 모두 파괴하는 선택을 할 수도 있다. 아니면 아예 본인이 인공지능의 최종 통제자가 되어 둘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겠다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리치왕과 같은 선택도 가능하다. 무슨 선택을 하더라도 이른바 '진엔딩'이기는 어려워 보인다.

수많은 별들이 새롭게 태어나고 소멸하며, 수많은 생명이 새롭게 태어나고 소멸한다. 소멸의 빈자리에 다시 일어나는 존재, 그리고 그 존재가 소멸을 향함으로써 우주의 순환이라는 표현이 나타난다. 그러나 그 순환을 인지하는 개별 주체들이 모두 유한한 존재이며 자신의 인식 범주 안에서 자신을 포함하는 멸망을 목격하기에 끝없이 절멸의 공포에 시달림으로써 우리는 절멸에 맞서는 새로운 서사들을 경험한다.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기대해서가 아니라, 이런 상정을 통해 우리 스스로가 무엇으로부터 공포를 느끼며 그 극복을 위한 방안으로 무엇이 유의미하고 무엇이 문제일지를 돌이켜보는 일 또한 일종의 유희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어벤져스:엔드게임'의 이야기가 전작 '인피티니 워'의 핑거스냅 이후를 어떻게 다루는지 나는 아직 보지 못했지만, 결론을 보게 된다면 인피니티 사가의 결말을 '매스 이펙트'의 결말과 비교해보면서 순환과 종말의 서사가 갖는 공통점을 생각해보는 것도 흥미로울 듯하다.

[이경혁 게임칼럼니스트]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