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엘리트 매스 커뮤니케이션 몇 장

돈과 권력과 명성은 왜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집중되는 것일까?

1956년에 발표된 책이라서 글 속에서 논의되는 인물이나 사건들이 조금은 생소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가벼이 볼 책은 아니다. 지금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견해가 분명히 들어 있기 때문이다. 라이트 밀스가 주장하는 바와 사회문제에 대한 접근법은 지금도 그리 퇴색되지 않았다. 이 책이 고전으로 불리며 미국에서 사회학 서적으로 드물게 지금도 많이 읽히고 있는 이유가 아닐까? 라이트 밀스가 말하는 파워 엘리트는 군부와 경제와 정치의 지휘부를 차지하고 있는 소수의 사람들이다. 이들에게로 권력이 집중되고 있고, 이들이 계급의식이나 이해관계의 일치를 통해 무의식적으로나 의식적으로 권력을 더욱 강화하고 영구화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에 반해 일반 국민들은 자신들이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은 결정에 휘둘리며 조종당하고 있다는 것이 밀스의 주장이다. 굳이 지휘부를 차지한 사람만을 파워 엘리트라고 볼 필요도 없다. 그 기준을 크게 낮추면 불평등이 심화되는 우리 사회에 유익한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1920년대만 해도 미국은 지역사회 중심으로 돌아갔다. 경제는 소도시 중심으로 또 소기업가 중심으로 돌아갔고, 정치에서는 의원들이 의회에서 목소리를 높이며 민의를 반영할 수 있었다. 이때는 작은 단위들 사이에 권력이 분산되었으며, 권력의 균형이 어느 정도 이뤄졌다. 권력 집중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매스 커뮤니케이션 기술을 비롯하여 많은 분야에서 변화가 크게 일어나면서 1950년대 들어서는 모든 것이 확 바뀌었다. 권력이 중앙으로 집중되는 권력의 ‘전국화’ 현상이 나타났다. 지방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기업들 대신에 전국 중심의 대기업이 시장을 독점했다. 군부에도 그 못지않은 변화가 일어났다. 제2차 세계대전에 이어 냉전이 끝없이 전개될 듯 보이면서 경제를 포함한 모든 것이 전쟁 체제로 돌아갔다. 그 결과 군부가 파워 엘리트의 맏형이 될 기세를 보이게 되었다. 정치 쪽에서도 의회의 권력이 크게 약해지고 행정부의 권력이 막강해졌다. 국방부 장관 같은 중요한 자리를 기업 출신이 차지하는 일도 다반사로 일어났다.

밀스가 이 책에서 던지는 물음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미국의 현실이 이론에서만큼 실제로 민주적인 국가가 맞느냐는 것이다. 밀스에 따르면, 당시 미국의 권력은 경제와 정치와 군사 영역에 있었다. 한때 중요했던 종교와 교육과 가족제도는 국가권력의 핵심에 서기는커녕 변방으로 밀려나면서 경제와 군사와 정치 영역의 영향을 강하게 받게 되었다. 다시 말해 정부와 군대와 기업이 현대생활의 형태를 형성해 나가면, 가족과 교회와 학교가 그 형태에 적응해가는 형국이었다. 더 나아가 3개의 중요 영역들 사이에 상호단결이 이뤄지면서 권력 집중이 더욱 가속화되었다. 여기에는 그들만의 계급의식도 작용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부와 권력과 명성이 대물림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여기서 우리의 현실을 보도록 하자. 밀스의 책이 출간되고 6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났지만 지금 한국의 상황에도 밀스의 주장이 어느 정도 적용될 것 같다. 고전의 힘이 느껴진다.

지금 한국은 이론적으로 보면 민주국가이다. 정당이 존재하고 삼권분립이 유지되고 자유선거가 치러지고 거기서 국민을 대표하는 의원들이 선출되고 있다. 그렇다면 현실 속에서도 국민이 실제로 주인노릇을 하고 있는가? 국민이 주인 노릇을 하는 것은 맞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일부 계층은 다른 세계의 사람들인 양 경제적 구속을 전혀 받지 않고 사는데 반해 대다수가 생활고로 힘들어 한다면 그 주인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정부가 바뀔 때마다 청문회가 열려 국민들의 속을 뒤집어 놓는다. 적어도 청문회의 대상이 된 인물들을 기준으로 볼 때는 비리나 부적절한 행태의 도가 갈수록 더 심해진다는 기분을 지울 수 없다. 또 국민들 대부분이 불황으로 신음하고 젊은이들이 취업난에 허덕이는데도 유독 공직자들만은 재산을 불리고 있다. 현실이 이렇다면 많은 국민들이 경제적으로 힘들어하는 것을 그들의 개인의 문제로 볼 것이 아니라 사회 구조의 문제로 보고 그것을 바로잡으려는 노력이 전개되어야 한다. 물론 돈이 모든 것의 척도가 되는 지금과 같은 세상을 계속 이어가겠다면야 자본주의 사회에서 법을 어기지 않는 한 도를 넘은 축재도 나무랄 수 없다. 그러나 누구 할 것 없이 국민을 앞세우고 사회정의를 구현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또 새로운 정치를 하겠다고 나서고 있지 않는가. 그렇게 정의를 외치면서도 부의 분배 등에 나타나는 이런 극단적인 불평등을 바로잡겠다고 행동으로 나서는 사람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지식인들도 침묵하고 정치인들도 침묵하고 있다. 어쩌면 그들도 라이트 밀스가 말하는 파워 엘리트에 속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엘리트들이 공공심과 의무감을 앞세울 것 같지만, 불행하게도 그런 미덕에 앞서서 이기심과 그 사람의 몸에 밴 습성이 먼저 작용하게 되어 있다. 어지간한 사명감으로 노력하지 않고는 심리적으론 당연히 그렇게 된다. 밀스가 책을 발표할 당시 미국 상하원의 의원들 거의 전부가 상류층 출신이었다. 아마 그런 현상은 지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다시 말해 그들이 국민들의 이익을 진정으로 대변하기 힘든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우리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 대목에서 일반 국민들은 정말 난감해진다. 무엇인가를 하려 해도 어찌해볼 방법이 없다. 밀스의 표현을 빌리면, 일반 국민은 ‘정치인에 아첨하는 행위’인 선거가 열릴 때에만 주권자로 떠받들어지지만 평상시에는 엘리트들에게 조종만 당할 뿐이다. 그런데도 국민들 사이에 공중(公衆)이 대중(大衆)으로 바뀌는 현상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라이트 밀스는 사회의 불평등을 그나마 어느 정도 누그러뜨리기 위해서는 먼저 사회가 제시하는 기회의 구조에 주목할 것을 주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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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 엘리트     

The power elite   C.라이트 밀스 / 정명진 / 부글북스 / 1956-2013 / 512p / 23,000원   

 돈과 권력과 명성은 왜 소수의 사람에게로 집중되는 것일까? 사회 불평등을 누그러뜨리기 위해서는 먼저 사회가 제시하는 기회의 구조에 주목해야 한다.

 C.라이트 밀스(1916~1962).  텍사스大. 위스콘신大 박사. 메릴랜드大/컬럼비아大 사회학 교수. 저서『The Sociological Imagination』『New Men of Power』『White Collar』등.

 정명진.  한국외대. 중앙일보 기자. 전문번역가. 역서부채 그 첫 5000년』『정의의 역사』『상식의 역사등.

 옮긴이의 글 - 대중이여 공중이 되어라.

 파워 엘리트는 군부,경제,정치 영역의 지휘부를 차지하고 있는 소수의 사람들을 뜻한다.

 이들에게 권력이 집중되어 있고, 이들이 계급의식이나 이해관계의 일치를 통해 의식적/무의식적으로 권력을 더욱 강하고 영구화하려고 한다.

 대중스스로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은 결정에 휘둘리며 조종당하고 있다.

 지역사회 중심으로 움직였던 미국이 1950년대 들어서는 권력이 중앙으로 집중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지방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기업들 대신 전국 규모의 대기업이 시장을 독점했다.

 일부 계층은 경제적으로 아무런 구속을 받지 않고 사는데 반해 대다수가 생활고로 힘들어 한다면 국민이 주인이란 주장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지금 한국은 대부분의 국민이 불황으로 신음하고 젊은이들이 취업난에 허덕이는데도 유독 공직자들만은 재산을 불리고 있다.

 현실이 이렇다면 개인의 문제로 볼 것이 아니라 사회구조의 문제로 보고 이를 바로잡으려는 노력이 전개되어야 한다.

 그렇게 정의를 외치면서도 부의 분배에 나타나는 이런 극단적인 불평등을 바로잡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지식인들도 침묵하고 있고 정치인들도 침묵하고 있다. 어쩌면 이들도 파워 엘리트에 속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의원들은 거의 상류층 아니면 중산층 출신이다. 다시 말해 국민을 대표하는 의원들마저도 국민들의 이익을 진정으로 대변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국민은 선거기간에만 주권자로 떠받들어질 뿐 평상시에는 엘리트들에게 조종만 당한다.

 그런데도 국민들 사이에 公衆이 大衆으로 바뀌는 현상은 갈수록 더 심화되고 있다.

 민주적 중산층이 부상하면서 생긴 公衆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토론의 자유이다.

 公衆의 토론을 통해 형성되는 여론은 곧 公衆이 행동으로 보여 주겠다는 결심이다.

 반면 대중사회는 말하는 한 사람이 수백만 명을 상대로 자신의 뜻을 전하기만 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그 사람의 의견에 반박할 기회도 거의 없다.

 미국이 점점 대중사회로 나아가고 있다. 저자는 당시 미국 지식인들 사이에 팽배했던 자유주의를 강하게 비판한다.

 기업의 자유 활동을 바탕으로 한 시장경제를 앞세우는 자유주의는 극단적으로 말하면 상류층이 기득권을 유지하는 장치에 지나지 않는다.

 60개의 화려한 가문인 유산계급이 아주 높은 연봉을 받는 계층과 함께 특권과 기득권을 누리는 새로운 기업지배의 세계로 재조직된 것이다.

 1장. 상류계층
 파워 엘리트는 대기업, 정치기구, 군의 조직 등 현대사회의 중요한 계급조직들을 지휘하고 있다. 그들은 사회의 전략적 지휘부를 차지하고 있다.

 오늘날 미국 사회에서 중요한 국가권력은 경제적,정치적,군사적 영역에 있다. 다른 조직들은 빅3 영역에 종속되고 있다.

 종교,교육,가족제도는 국가권력의 자율적인 핵심이 되지 못하고 있다.

 매우 부유한 가문들은 예외 없이 법적으로나 경영적으로나 거대한 기업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현대의 기업은 부의 주요 원천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자본주의에서는 정치기구들도 부에 이르는 길을 열고 닫는다.

 부유한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보다 권력을 더 쉽게 발견한다. 지위가 높은 사람들은 지위가 낮은 사람들보다 부의 기회를 더 쉽게 잡는다.

 유명해지고 부유해지고 권력을 얻으려면 주요 조직에 들어가야 한다. 사람들이 조직에서 차지하는 지위가 이런 소중한 경험을 하거나 지킬 기회를 거의 결정하기 때문이다. ☞ 그런 측면에서 보면 투자는 제3의 길이다.

 미국이 봉건시대를 거친 적이 없다는 사실은 미국사회 뿐만 아니라 미국 엘리트 계층의 본질에도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부르주아 계급의 등장에 강하게 맞설 기존 귀족이나 상류계급이 전혀 없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는 미국에서는 부르주아 계급이 부 뿐만 아니라 명성과 권력까지도 독점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의 엘리트 계층은 사실상 그 어떤 반대에도 봉착하지 않은 부르주아 계급으로 현대사의 무대에 올라섰다.

 이전이나 이후 그 어떤 나라의 부르주아 계급도 그런 기회와 이점을 누리지 못했다.

 주변의 군사위협이 될 국가가 없었기에 미국의 엘리트 계층은 풍부한 천연자원과 노동력을 갖춘 대륙을 쉽게 차지할 수 있었다.

 권력 구조와 그것을 정당화할 이데올로기는 이미 마련되어 있었다. 중상주의적 속박에 맞서 그들은 자유방임주의 원칙을 채택했다.

 자본주의의 전반적인 전개 속도 때문에 세습 귀족제도가 미국에서 발달하여 정착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자본가들이 지배계급에 종속되었던 독일과 일본과는 달리 미국에서는 상업과 산업의 역사적 발흥이 억제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산업화에 따른 폭력이 역사를 좌우하게 되었을 때에도 미국에서는 그런 지배계층이 상업과 산업을 억압하는 사태가 벌어지지 않았다.

 만일 국가적 이슈를 결정할 권력이 절대적으로 평등하게 공유된다면, 거기에는 파워 엘리트란 것이 전혀 없을 것이다.

 반면 이슈를 결정할 권력이 하나의 작은 집단에 의해 절대적으로 독점되는 곳에도 권력의 계단 같은 것은 없을 것이다.

 오늘날 미국사회가 이런 극단적 형태를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이런 극단적 형태에 대한 지식이 유익할 수 있다.

 그 지식을 통해서 미국의 권력구조와 그 안에서 파워 엘리트가 차지하는 위치의 문제를 보다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류 역사의 대부분 동안에 역사적 변화는 사람들에게, 심지어 그것을 주도한 사람들에게조차 잘 드러나지 않았다.

 예컨대 고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는 400세대가 넘는 기간 동안 이어졌지만 기본적인 구조에는 약간의 변화 밖에 일어나지 않았다.

 이만한 기간이면 겨우 60세대를 지배해 온 기독교 시대의 6.5배에 해당하고, 미국이 존재한 5세대에 비하면 80배나 긴 세월이다.

 그러나 지금은 변화의 템포가 매우 빠르고 관찰의 수단이 잘 발달되어 있다.

 오늘날엔 주의 깊게 살피고 적절한 관점만 갖는다면, 사건과 결정의 상호작용이 종종 역사적으로 상당히 눈에 잘 보이는 것 같다.

 결정집단이 작아지고 결정수단이 집중되고 결정영향이 커짐에 따라, 주요 사건들의 전개가 종종 결정권을 쥔 집단의 결정에 좌우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눈앞의 위기나 코앞으로 다가올 위기 그 너머까지는 좀처럼 보지 않는다.

 우리 모두가 역사를 만드는 사람인 척 꾸미는 것은 정치적으로 무책임하다.

 이는 권력의 수단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들의 중대한 결정에 대한 책임소재를 밝히려는 시도를 흐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목적이 단지 희망에 그칠 때가 종종 있다. 그러나 수단은 일부 사람들의 통제력 안에 있는 것이 엄연한 사실이다.

 모든 것이 그저 벌어지고 있다는 관점은 대개 운명론자가 자기 자신의 무력감을 반영한 짐작에 지나지 않는다.

 역사의 모든 것이 쉽게 눈에 띄는 악한들의 음모에 따른 것이라는 관점도 또한 사회의 다양한 엘리트들의 힘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든다.

 파워 엘리트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통합되고 막강하며, 맨 아래는 훨씬 더 파편화되어 있고 사실상 무기력하다.

 2장. 지역사회
 계급의식은 미국 사회의 모든 계층에서 똑같이 나타나지 않는다. 상류층 사회에서 특히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상류층은 숫자가 적기 때문에 서로에 대해 쉽게 알 수 있고, 공통의 전통을 더 잘 지키게 되며, 자신이 속한 계층에 대해 더 잘 의식하다.

 3장. 메트로폴리탄 400
 남북전쟁 전에 부자가 되어 옛 가문이 된 가족들은 남북전쟁 후 부자가 된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계급을 열어 주지 않으려 애썼으나 결국 실패했다.

 새로운 부가 옛날의 부에 비해 엄청나게 컸던 탓에 그 부에 저항하기가 도저히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부와 권력은 처음에는 가문의 형태였으나 이제는 기업의 형태로 전국적 규모와 범위로 커졌다.

 특히 혈통이 증명되지 않은 가문들이 금융회사들을 차지한 뒤로는 구상류층이 그렇게 하기가 더욱 어렵게 되었다.

 여하튼 미국 역사는 6~7세대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명문가문에는 누군가 가문을 일으킨 한 시기가 있었지만, 그렇다고 역사가 깊은 것은 아니다.

 따라서 미국에서는 스스로 조상이 되는 것도 조상을 갖는 것만큼이나 위대한 일이다.

 돈, 더없이 속물적인 돈이 약간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그 소유자들에게 어느 곳에서나 미국의 상류사회로 들어가는 것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이는 또한 미국의 상류층은 주장하는 바야 어떻든 단순히 부유해진 부르주아 계급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계급구조가 견고하고 안정되어 있을 때는 혈통이 명성의 견고한 바탕이 된다.

 그러나 경제적 변화가 빠르고 기동성이 활발할 때는 돈을 가진 계층이 자신의 권리를 분명히 주장하고 나설 것이다.

 또한 신분에 따른 겉치레가 붕괴할 것이고, 뿌리깊은 편견들도 사라질 것이다.

 다음 세대, 또 그 다음 세대로 내려가면 自手成家한 가문도 혈통 있는 가문의 상류층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동부의 도시들과 그에 이은 전국 도시들의 진정한 신사는 대체로 형편이 좋은 은행가나 변호사이다.

 큰 재산을 가진 사람들이 그것을 지켜 나가기 위해 신뢰할 만한 똑똑한 사람들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그 신사들은 주요 은행의 간부나 사장이며, 도시의 주요 법률회사의 수석 파트너나 투자 카운슬러를 맡고 있다.

 사회적으로 부유한 사람과 그저 부유하기만 한 사람을 구분하는 깊은 경험 하나가 바로 그 사람의 학교교육이다.

 구상류층의 자녀는 필립스 엑시터 등의 기숙하교를 거쳐 프린스턴,하버드,예일,다트머스로 갈 것이다.

 혈통에 근거한 신분의 주장을 현실로 실현하기가 점점 어려워짐에 따라, 사회적 중요성에 있어 명문학교가 가문의 혈통을 능가하게 되었다.

 신상류층과 구상류층 사이의 긴장이 해소되는 것은 사립학교의 차세대에 이르러서이다.

 인간은 중요한 집단에 속한 사람에게 등을 쉽게 돌리지 못하는 법이다. 미국 전역에 걸쳐 그 사람은 인사이더이며, 그의 등장은 그 자리의 사회적 지위를 증명하는 역할을 하며, 그의 목소리와 매너는 훌륭한 교육의 상징이며, 그의 동료란 사실은 곧 그 조직에 받아들여진다는 증명이다.

 4장. 유명인사들
 경제가 통합되고 군부가 득세하고 국가의 중앙집중화가 더욱 강화됨에 따라, 전국적인 엘리트 계층이 탄생했다.

 名士란 더 이상의 신원 확인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이다. 직업적인 명사란 경쟁을 맹목적으로 숭배하는 사회의 스타 시스템의 결과물이다.

 미국에서는 어떠한 분야에서든 경쟁에서 다른 사람들을 물리치는 한 누구든 유명인사가 된다.

 1920~1930년대 메트로폴리탄 400을 주도한 인물은 데뷔탕트(처음으로 사교계 무대에 서는 여자)였다.

 전통적으로 사교무대 데뷔는 명문가의 젊은 소녀를 상류층 결혼시장에 소개하고, 상류층 가문들을 폐쇄적 집단으로 영구화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1938년의 경우 그런 데뷔가 1,000건 가량 이루어졌다. 행사 경비는 평균 8,000달러였다.

 그러나 그들은 화려함에서 할리우드와 경쟁할 수 없었다. 이후 상류층 사교무대에 데뷔하는 소녀의 숫자는 줄어들었다.

 대중매체의 직업적 명사들에겐 안정적인 권력은 전혀 없다. 그들은 사실 하루살이 같은 인물들이다.

 엘리트에겐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명성을 가진 조직을 바라는 욕구가 있다.

 이는 부를 갖춘 엘리트와 권력 엘리트가 꽤 의식적으로 깊이 느끼는 욕구이다.

 경제 엘리트가 경제 권력으로 부상하면서, 가계 혈통으로 신분을 유지하려던 시도가 완전히 무산되었다.

 지난 30년 동안에 경제,정치,군사 엘리트 사이에 신분의 통합이 이뤄지려는 조짐들이 나타났다.

 5장. 대부호들
 "모든 부의 뒤에는 범죄가 있다." - 발자크.

 남북전쟁 후의 거물들을 의미하는 표현이 된 악덕자본가들은 국가의 자원을 착취하고, 자기들끼리 경제전쟁을 벌이고, 서로 결합하고, 공적 영역에서 사적 자본을 끌어내고,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그들은 철도회사의 리베이트에 대해 주기적으로 합의를 보았다. 신문사들을 매입하고 편집자들을 매수했다.

 자신의 회사와 경쟁하던 독립적인 기업을 망하게 만들고, 자신들의 권리를 지키고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 노련한 변호사와 유명 정치인을 매수했다.

 정직하지 않은 방법을 동원하고도 그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정작 본인은 아무런 허물을 덮어쓰지 않으려 했다.

 10곳의 은행에 가서 총구를 들이대고 10만 달러씩 빼앗는 것보다, 기업을 내세워 주민 1천만 명으로부터 10센트씩 착취하는 것이 훨씬 안전하다.

 조지프 슘페터는 이들을 혁신의 중심에 선 사람들로 여겼다.

 그들은 예리한 통찰력과 불굴의 노력으로 기업들을 세우고 통합하며 그 안에서 새로운 기술과 금융기법을 구현하고 있다.

 그들이 취한 기술과 사회적 형태들이 자본주의 발전의 원동력이며, 그것들을 창조하고 지휘하는 인물들은 자본주의의 페이스메이커이다.

 이런 식으로 슘페터는 기업가들의 창조적 파괴를 설명하고 찬양하기 위해 자본주의 발전의 이론과 사회계층화 이론을 결합시켰다.

 우리는 악덕자본가 또는 혁신가들의 개인적 특성 뿐만 아니라 기회들의 객관적인 구조까지 이해해야 한다.

 기회를 이용한 개인적 특성도 중요하지만, 기회들의 객관적 구조도 중요하다.

 부두의 갱들 사이에서 보스로 올라가는 데 필요한 개인적 자질들은 양순한 목동들의 성공에 필요한 자질들과는 다르다.

 미국 자본주의에서 1870년에 성공을 거둔 사람들에게 요구된 자질은 1950년에 성공을 거둔 사람들에게 요구된 자질과는 달랐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개성과 독특한 습관에서 부호들을 분석할 열쇠를 찾는 것은 다소 엉뚱해 보인다.

 돈이 중요한 가치로 통하는 사회에선 능력은 돈을 버는 것으로 측정될 것이다. "그렇게 똑똑한데 당신은 왜 부자가 아닌가?"라는 식으로 말이다.

 앤드류 카네기의 청년기의 경제적 현실이 그가 실천적인 어머니를 두었다는 사실보다 그의 성공에 훨씬 더 중요했다.

 코모도어 밴터빌트가 아무리 냉혹했더라도 당시 정치 시스템이 심각하게 부패하지 않았다면 그는 철도의 독점을 꾀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해럴드슨 헌트의 심리적 특성보다 석유의 지리적 분포와 세제의 구조를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존 D.록펠러의 어린 시절보다 미국 자본주의의 틀과 그 안의 행위자의 부패 가능성을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헨리 포드의 무한한 에너지보다 자본주의 메커니즘의 기술적 진보를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F.W.울워스의 근검절약보다 전국적 배달체계와 대중시장의 부상을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J.P.모건이 1890년대 인도의 농촌마을에서 살고 있었다면 그의 특질은 성공과 아무런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대부호들을 진정으로 이해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먼저 그들이 대부호가 된 국가의 경제적,정치적 구조를 이해해야 한다.

 미국의 거대한 부는 미국이라는 특정 국가에서 이뤄진 어떤 구체적인 종류의 산업화의 결과물이다.

 개인기업들이 관여한 산업화 덕분에 어떤 사람들이 인간의 눈부신 생계수단을 지배할 수 있는 전략적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 가능했고, 또 과학의 힘과 노동을 연결시키는 것이 가능했으며,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지배하고 거기서 수백만 달러를 버는 것이 가능했다.

 아직 산업화되지 않은 국가들에서도 이런 과정을 쉽게 예측할 수 있고, 다른 산업화의 길을 걸은 국가들에 대한 관찰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개인기업들과 그에 따른 수백만 달러의 축적은 한 국가를 산업화하는 한 방법일 뿐이다.

 그리고 그 방법은 부를 축적한 사람들이 재계에서의 활동과정에 자신의 부를 더 많이 챙기도록 허용해왔다.

 대부호들은 기존의 법을 이용하고 회피하고 위반하는 한편, 자신의 직접적 이익에 유리한 쪽으로 법이 마련되고 집행되도록 했다.

 국가는 사유재산권을 보장했다. 사유재산권은 기업의 존재를 합법화했다.

 더 나아가 법의 해석과 법 집행의 부실로 인해 기업의 존재가 더욱 복잡하게 바뀌어 갔다.

 따라서 대부호는 많은 위험들을 피함과 동시에 다른 사람의 돈으로 투기를 하기 위해 기업이라는 장치를 이용할 수 있었다.

 기업합병이 불법화되었을 때, 지주회사법이 마련되어 한 기업이 다른 기업의 주식을 소유하는 것을 다른 방법으로 합법화했다.

 곧 지주회사의 구성과 금융이 미국 역사상 부를 합법적으로 가장 쉽게 획득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세율이 보다 높았던 훗날에는, 세금공제와 자본이득이 부의 개인적 축적을 도왔다.

 연방과 지방의 정부들은 중요한 우편수송을 위해 철도부지를 무료로 내놓고 선박건조 비용을 대주었다.

 작고 독립적인 농가보다 사업가에게 무료의 땅이 훨씬 더 많이 주어졌다.

 석탄과 철에 대해서는 정부가 빌려 준 토지에 대한 채굴권을 정부가 갖는다는 조항을 적용하지 않도록 법적으로 정해졌다.

 정부는 높은 관세를 유지함으로써 민간기업들을 지원했다.

 미국의 납세자들이 포장도로 비용을 부담하지 않았더라면 헨리 포드가 아무리 근검했더라도 자동차산업으로 억만장자가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산업발달을 논하는 현대의 많은 이론들이 기술발달을 강조한다.

 그러나 대부호들 중에서 발명가가 차지하는 비중이 아주 낮기 때문에 설득력이 다소 떨어진다.

 사실은 대부호가 되는 사람은 먼 날을 내다보는 투자자도 아니고 산업계의 지도자도 아니며, 금융의 대가이다.

 혁신의 광풍이라는 슘페터의 생각이 잘못된 점도 바로 여기에 있다. 슘페터는 기술적 발전과 금융적 조작을 체계적으로 혼동하고 있는 것이다.

 필요한 것은 전문적인 지식이 아니라, 수백만 명의 사람들과 큰 금융기관의 투자파트를 지배할 수 있는 능력과 설득력을 겸비한 판매수완이며, 기업체의 예리한 변호사들과 증권시장 운영자들의 일을 훤히 꿰뚫는 능력 또한 중요하다.

 1799년 53만 달러의 부동산을 남긴 조지 워싱턴은 당대 가장 부유한 미국인 중 한 사람으로 여겨졌다.

 남북전쟁 전에는 에스터 가와 밴더빌트 가 같은 극소수의 부자들만이 억만장자라 할만 했다.

 진정으로 거대한 미국의 부는 전쟁기간 동안의 경제적 변화기에, 그리고 미국의 모든 전쟁의 한 부분을 이룬 심각한 부패를 통해 형성되었다.

 관세, 1863년 연방은행법, 법인혁명을 정당화한 1868년 수정헌법 14조 등의 법적 틀 안에서 상업적이던 자본주의가 산업자본주의로 변했다.

 남북전쟁과 제1차 세계대전 사이에 거대한 부의 주인공들이 급속도로 두각을 나타냈다.

 1900년 대부호 1세대의 맨 꼭대기에는 수십억 달러를 가진 존 D.록펠러가 우뚝 서 있다.

 1925년 대부호 2세대의 집단에는 헨리 포드가 있고, 1950년 대부호 3세대 집단에는 H.L.헌트가 있다.

 분명한 현실이자 추세인 것은 상류층이 최고 부자들의 반열에 더 많이 올라간다는 것이다.

 부는 스스로 영속화하는 경향을 보일 뿐만 아니라, 거대한 부를 얻을 새로운 기회를 독점하는 경향까지 보인다.

 1950년에는 그 이전 세대보다 지위와 권력을 자식들에게 물려주기가 몇 가지 측면에서 더 쉬웠다.

 자유로운 민간기업들이 누리는 축적의 메커니즘 속에서 자식들에게 중요한 자리를 넘겨줄 길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대부호의 반열에 오르기 위해선 두 가지 특징, 즉 대도약과 이익의 축적이 가능한 경제적 경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단순히 임금에서 남는 것을 저축하여 미국 대부호의 반열에 오른 사람은 지금까지 한 사람도 없었다.

 대부호가 된 사람들은 큰돈을 모을 기회를 안겨 줄, 전략적으로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다.

 또 대체로 큰 부를 일굴 종자돈을 어느 정도 확보하고 있어야 했다. 일을 하면서 서서히 대도약에 필요한 돈을 모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시점에 이르러서는 자신이 찾고 있는 중요한 기회를 포착할 수 있는 위치에 서 있어야 한다.

 20~30만 달러의 연봉으로 구두쇠처럼 산다 해도 미국의 대부호 반열에 오를 금액을 저축하는 것은 수학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대도약을 이루고 또 중요한 기회를 포착하면, 지금까지 승승장구하던 사람은 이익의 축적이 일어난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가진 것이 많을수록 저렴한 신용에 더욱 가깝게 접근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의 돈을 이용할 기회가 더 많아진다는 뜻이다. 따라서 더 많은 부를 축적할수록 그가 지는 위험은 더욱 낮아진다. ☞ 소규모 사업일수록 경쟁이 치열한 법이다. 가진 것이 많을수록 경쟁이 배제된 기회에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이익의 축적이 이뤄지다 보면 실제로 위험은 전혀 위험이 아니고 정부의 세금 수입처럼 너무나 확실한 것이 되는 시기가 온다.

 맨 꼭대기에서 일어나는 이익의 선순환 축적은 맨 아래의 빈곤의 악순환과 비슷하다.

 이익의 선순환에는 객관적인 기회 뿐만 아니라 심리적 상태까지 작용하기 때문이다.

 하류층의 한계와 신분이 관심의 부족과 자신감 결여로 이어지는 것처럼, 계층과 신분에 따르는 기회들이 향상에 대한 관심과 자신감을 낳는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면 당연히 가질 수 있다는 자신감이 기회에서 생겨나고, 그 자신감은 다시 기회를 키우는 경향이 있다.

 생생한 영감은 연속적인 성공을 통해 자라고, 사소한 실패의 연속은 성공에 대한 의지력을 끊어 버린다.

 상류층 출신은 대도약의 지위를 물려받으며, 특히 소수의 사람들은 이익의 축적이 가능한 역량까지 물려받는다.

 J.P.모건의 아버지는 그에게 500만 달러를 남겼을 뿐만 아니라 그를 미국과 유럽에 기반한 금융회사의 동업자 지위에 앉혔다. 이는 대도약이다.

 금융업자로서 능력을 발휘하면서 기업들의 주식과 채권의 발행 수수료, 합병 커미션 등으로 새로운 기업을 지배했다. 이익의 축적이다.

 미국의 대부호 반열에 오른 사람들 중에서 회사의 계급조직을 차례로 밟고 올라가 큰 부를 이룬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리고 그들이 대부호가 되도록 만드는 것은 산업이 아니고 금융이며, 또한 경영이 아니고 투기라는 것은 사실이다.

 대부호의 반열에 오른 사람들은 재계의 정치인들이며 이익의 축적을 개인적 용도로 쓸 수 있도록 할 위치에 있는 중요한 파벌의 일원들이다.

 꾸준한 승진이 엄청난 결과물을 낳으려면 그것이 이익의 축적으로 이어져야만 한다.

 기업합병이 꾸준한 승진을 이익의 축적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고전적인 이미지의 기업가는 위험을 감수하게 되어 있다. 자신의 돈만 아니라 경력의 위험까지 받아들였다.

 그러나 회사를 차린 사람이 대도약을 이루면, 대체로 부를 추가로 챙길 수 있는 이익의 축적을 누림에 따라 심각한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다.

 만일 거기에 어떤 위험이라도 있다면, 보통 다른 누군가가 그 위험을 감수한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에 그 다른 누군가는 바로 미국 정부였다.

 만일 중산층 사업가가 5만 달러의 부채를 지고 있다면 그 사람은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그러나 누군가 200만 달러의 빚을 지게 된다면, 채권자들은 그가 돈을 상환하도록 기회를 창출해 주는 것이 더 편하다는 사실을 깨달을 것이다.

 19세기 악덕자본가들은 보통 자신을 대부호의 반열에 올려 준 재정적 축적의 발판이 된 기업을 설립하거나 조직했다.

 그러나 2,3세대 대부호들은 기업합병을 통해 이익의 축적이 일어나도록 했다.

 그런 방식으로 성공하기 위해선 증권의 조작과 법적 기교가 열쇠이다. 그래야 이익의 축적이 가능한 지위를 얻기 때문이다.

 대부호의 중요한 경제적 사실은 이익의 축적이다. 즉 큰 부를 확보한 사람은 그 부가 더 많은 부를 낳도록 하는 다양한 전략적 위치에 서 있다.

 오늘날 대부호들은 기업과 다양하게 연결되어 있다. 기업은 부의 원천이며 또한 부가 지속적으로 권력과 특권을 누리게 하는 바탕이다.

 재산이 많은 가문이 기업경제로 들어감에 따라, 재산 시스템이 재조직되면서 거대기업의 간부 계층에 의해 보완되었다.

 이 간부 계층은 기업 부자들의 공통적인 이해관계를 위해 열정적으로 일한다.

 6장. 대기업의 고위 간부들
 법인혁명을 통해 재산이 노동을 통제하고 그 노동에서 이익을 끌어내는 정교한 수단으로 바뀌었다.

 대부호들과 대기업의 고위 간부들 사이에 소유권이 분산되어 있다는 사실이 유산계급의 단결을 촉진시킨다.

 1952년에 상장기업 주식을 소유했던 650만 명은 전체 성인의 7%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치이다.

 전체 근로자들 중 98.6%는 주식을 하나도 갖고 있지 않다.

 경제적 소유권이 광범위하게 분산되어 있다는 생각은 그럴듯한 착각에 지나지 않는다.

 기업 세계의 통합은 겸임이사라는 정교한 네트워크가 있다는 사실로 뒷받침된다. 겸임이사는 절대로 간단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경제생활의 한 특징을 보여 주며, 또한 이해를 같이하는 공동체 안에서 사회적 닻의 역할을 하며, 유산계급의 견해와 통합을 끌어낸다.

 기업들이 봉건제도를 닮은 사유재산과 생산을 위해 내리는 사적 결정이 국가경제의 규모와 형태, 고용수준, 소비자 구매력, 가격과 투자를 결정한다.

 고위 간부들은 법인인 기업이 만든 존재로서 자제할 줄 아는 양심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

 오늘날 기업의 성공은 세금부담을 최소화하고, 합병을 통한 투기적 거래를 최대화하고, 규제기관을 통제하고, 정부에 영향력을 행사하느냐에 크게 좌우된다. 따라서 변호사가 거대기업의 핵심적 인물이 되고 있다.

 관료적인 유형의 간부들과 전문가들은 기업에서 맨 꼭대기 바로 아래에 위치한다. 넘버 투 계급, 즉 참모이다.

 현명한 장교라면 누구나 책임을 지지 않고 결정을 내리려면 참모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라인에서 직접 일하는 전문가는 승진의 기회를 좀처럼 잡지 못할 것이다. 오직 시야가 넓은 직원만이 승진할 것이다.

 시야가 넓은 사람은 자신의 일의 종류와는 상관없이 단기적으로나 장기적으로 회사를 위해 이익을 극대화할 길을 명확히 볼 수 있는 사람이다.

 그 사람은 회사의 목표를 실현했다는 평가를 받기 때문에 회사 안에서 승진한다.

 금융상의 이익이 기업 결정의 중요한 한 요소이며, 대체로 직위가 높을수록 현재 일의 금융적 측면에 관심을 더 많이 쏟는다.

 간부의 표본은 일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 경영기법을 아는 사람, 참여적인 의견을 끌어내고 문제해결 모임을 주도하는 방법을 아는 사람이다.

 7장. 기업 부자들
 지금 부자들이 기업에서 차지하고 있는 지위들은 사유재산제도에 고유한 모든 권력과 특권을 그대로 누리고 있다.

 법적 소유권을 통해서든 경영통제를 통해서든 부자들의 종국적 권력이 바로 기업을 통해 자본가 계층 안에 단단히 닻을 내리고 있다.

 유산계급은 기업이 법인화되면서 더욱 강화된 계급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자신들보다 더 행정적이고 정치적인 자세를 취하는 사람들을 끌어들였다.

 그들은 미국 사회에서 가장 안정적인 사적 조직들 안에서 자신들의 특권과 기득권을 지켰다.

 사실 오늘날 미국에선 어느 누구도 기업의 세계에 발을 담그지 않고는 계속 부자로 남거나 부유해질 수 없다.

 1950년의 세법은 스톡옵션을 자본이득으로 정해, 상장기업 6개 중 하나 꼴로 간부들에게 스톡옵션을 주고 있다.

 자유는 기본적으로 당신이 원하는 것을 당신이 원하는 때 당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할 파워를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유는 돈을 요구한다. 돈이 권력을 낳고, 권력이 자유를 낳는다.

 "부에는 위대한 특권들이 따른다. 그 특권들 중에서 가장 부러운 것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최대한 실천할 수 있는 힘이다." - 발자크.

 부자들이 행복하지 않다면, 그것은 우리 중 누구도 행복하지 않다는 것과 같다. 더욱이 그들이 불행하다고 믿는 것은 미국인답지 않은 생각이다.

 만일 사회 전체가 추구하는 게임에서 승리한 사람이 행복하지 않다면, 게임에서 진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란 말인가?

 인간사회의 모든 가능한 가치들 중에서, 미국에서는 오직 한 가지, 돈만이 진정으로 최고이고, 진정으로 보편적이고, 진정으로 건전한 목표이다.

 그 돈을 놓고 패자들이 신포도라며 초연한 척 굴어서는 안 된다.

 헌법은 미국에서 가장 중요한 정치적 계약서이다. 1866년 미국 헌법은 수정헌법 14조를 통해 기업에 자연인과 같은 법적 지위를 부여했다.

 지금 기업들은 기업 부자들을 배출하는 원천이며 또한 기업 부자들에 의해 관리되고 있다.

 국가의 정치적 틀 안에서, 기업 엘리트 계층은 하나의 지배집단을, 말하자면 경제적 상하계층에 의해 생겨나고 운영되는 계급조직을 이루고 있다.

 기업 세계는 정치적 주권이 미치는 국가의 영역 안에서 경제적 주권을 행사하는 하나의 세계이다.

 고위 간부들에게 경제적 이니셔티브가 주어졌으며, 그들도 그것을 잘 알고 있고 또 그것을 자신의 기득권으로 생각하고 있다.

 산업 장원제도의 우두머리로서, 그들은 하층민의 복지를 위한 연방정부의 사회적 책임을 마지못해 받아들이고 있다.

 그들은 기업 시스템 안의 근로자,유통업자,공급자들을 종속적 구성원으로 보고, 자신들은 정상에 오른 존재로 여긴다.

 국방장관 찰스 윌슨이 미국과 GM의 이해관계를 동일시하는 상황에서 행정부가 기업과 산업을 대표하기 위해 있는 것임을 의심할 필요가 있을까?

 대체로 기업 부자의 구성원으로서 간부들의 이데올로기는 아무런 이데올로기가 없는 보수주의다.

 그들에게 이데올로기가 없다고 하는 이유는 그들이 스스로를 실용적인 사람이라고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문제들을 생각해내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제시된 대안들에 반응한다.

 그러므로 그들의 이데올로기는 그들의 반응을 바탕으로 추론해내야 한다.

 8장. 군사 지도자
 인류역사의 상당기간 동안 사람들은 사실 총칼 아래에서 살았다. 인간사에서 심각한 장애요소가 생기면 사회는 군사통치로 돌아가는 경향을 보인다.

 모든 정치는 권력투쟁이다. 그리고 권력의 종국적 형태는 폭력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군부독재가 정상이 아닌 이유는 무엇인가?

 18~19세기 동안에 문민 통치 아래 꽃을 피운 가치들을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비록 종국적 형태의 권력이 폭력에 의한 강압이라 할지라도, 그 가치들을 지키려는 권력다툼은 그 지경까지 이르지는 않았다.

 우리의 통치이론들은 군대의 권력을 최소화해야 하고 아울러 군대권력을 문민 지배 하에서 견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 헌법은 그 주장을 뒷받침할 제도들을 만들었다.

 현대 서구의 오랜 평화 기간에 역사는 군 장성보다는 정치인과 부자와 변호사들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았다.

 평화는 민족국가가 폭력을 중앙으로 집중시키고 독점한 결과이다.

 민족국가가 탄생하기 전까지는 폭력을 가진 자들이 지방에서 자주 폭력에 의존할 수 있었고 또 그렇게 했다.

 동양 뿐만 아니라 유럽의 봉건주의는  여러 모로 볼 때 폭력을 가진 사람들의 지방통치였다.

 군대가 문민의 지배를 받을 때, 거기에는 몇 가지 공개적인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오늘날 상비군 안에서 폭력을 소유한 사람들이 종종 원하는 것은 일자리의 안전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만족은 엄격한 신사도에 따르는 삶의 무한한 영광이다.

 명예의 수준에까지 이른 명성과 거기에 딸린 모든 것들은 군대가 정치권력을 포기한 데 대한 보상이었다.

 이 포기는 상당할 정도로 이뤄졌다. 그것이 군대의 신사도에 포함될 정도로 깊이 이뤄진 것이다.

 그리고 미국은 전쟁 세력들이 쉽게 닿지 못하고, 전쟁의 참화를 쉽게 입지 않을 곳에서 탄생했다.

 초창기 미국은 지리적 위치와 시대적 배경 때문에 문민정부를 세워 유지하고, 군사적 야망을 잘 다스려 종속시킬 수 있는 입장이었다.

 인디언과 같은 허약한 이웃과 대양으로 둘러싸인 광대한 땅인 미국은 19세기 몇 십 년 동안 대규모의 군사력을 부담할 필요가 없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도 파산한 유럽 국가들의 채권자가 된 미국에게 나치가 부상할 때까지는 두려워해야 할 군사적 위협이 없었다.

 이 모든 것은 육군보다는 해군이 역사적으로 가장 중요한 군사적 도구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해군은 육군에 비해 국가의 사회적 구조에 영향을 덜 미치게 되어 있다.

 해군이 민중 반란을 진압하는 수단으로는 그다지 효율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국민들이 개인적 부의 획득에 전념하는 나라에서는 경제적으로 기생하는 조직이나 마찬가지인 군대를 위해 돈을 쓰는 것을 달가워 하지 않는다.

 중산층이 자유와 개인의 독창력을 높이 평가하는 나라에서는 자유의 폭을 줄이려는 훈련된 군인들을 그다지 존경하지 않는다.

 명예의 영역에서 군인보다 경제인이 월등히 높이 부상한 것은 남북전쟁과 제1차 세계대전을 거치는 동안에 징병에 대리인을 대신 보내는 것이 경멸할 일로 여겨지지 않으면서였다. 따라서 군인들은 미국의 상류층에 진입하지 못하게 되었다.

 미국의 역사에서 기이한 점은, 미국은 군국주의 국가가 한 번도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역사적으로 미국의 민주주의는 소총이 주요 무기였던 시대에 무장 시민들의 민병제도라는 든든한 버팀목에 의해 지켜졌다.

 시민 한 사람은 곧 한 표일 뿐만 아니라 한 자루의 소총을 의미했다.

 다른 국가들은 국민들을 마지못해 무장시켰다. 유럽에서 징병으로 구성된 최초의 군대들은 혁명 군대였다.

 프러시아는 자국의 직업군인들이 패배한 뒤에야 집단 징집을 채택했다.

 차르는 그림전쟁 뒤에, 오스트리아는 프란츠 조셉 군대가 비스마르크의 군대에게 패배한 뒤에야 집단 징집을 시작했다.

 프러시아에서, 그리고 훗날 독일에서 징병군인에 대한 권리 확장은 상당히 계획적인 정책이었다.

 징병제도가 정착함에 따라, 농노신분이 폐지되고 사회보장계획이 개발되었다.

 어떻게 보면 일반 국민들에게 무기를 소지할 권리를 확장할 경우 다른 권리 또한 확장하게 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미국에선 무기를 소지할 권리가 무장계층에서부터 비무장 인구로 확대된 것이 아니었다. 미국인들은 처음부터 무기를 소지하고 있었다.

 장교들은 종속적 계급에서 너무 오랜 세월을 보내기 때문에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 오늘날 대령이 되는 데 보통 25년 가량 걸린다.

 대체로 지휘관 자리에 아주 늦게 오른다. 그래서 그들은 지휘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젊음과 야망을 잃고 복종하는 방법을 배운다.

 군대가 권력을 강화할 때에는 그들 사이에 긴장을 유발하는 파벌들이 더 많이 나올 것이다.

 군대가 파워 엘리트 계층의 지배적인 구성원이 되면 결속이 생존의 문제가 아니라 확장의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군대는 생존을 위해 싸워야 하는 힘없는 집단일 때, 서로 결속할 확률이 더 높다.

 9장. 군부의 부상

 역사적으로 군사지도자들은 미국 엘리트 계층 안에서 다른 분야의 엘리트들과 불편한 관계를 맺어 왔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다른 분야 엘리트들의 사촌이 되었고, 조금 있으면 맏형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군인들은 종종 유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들이 행정기술을 배웠으면서도 사적 이해관계를 공개적으로 내세우지 않는 인재들이기 때문이다.

 1952년 선거에서는 맥아더 장군이 미육군 규정 600-10을 정면으로 위반하면서 공개연설을 통해 합법하게 선출된 행정부의 정책을 공격하고,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자신이 대통령 후보로 출마할 뜻이 있음을 밝혔다.

 아이젠하워는 현역에서 물러나지 않은 가운데 이런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해냈다.

 미국 헌법에 따르면, 의회는 국가의 무장세력을 지원하는 한편으로 제어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의원들은 맨해튼 프로젝트 같은 항목들이 군 예산에 포함되어 있는지조차 모르는 상황에서 그런 것들을 승인했다.

 한 세대 동안에 미국은 세계를 선도하는 산업사회가 되었으며 동시에 주요 군사국가 중 하나가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 과학연구의 전반적인 방향은 군사적인 문제를 고려하여 정해졌다.

 세계 각국이 군비경쟁 뿐 아니라 과학경쟁의 시대로 돌입하고 있다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과학의 군사화로 나아가던 전반적인 경향은 평화의 시대에도 계속되었다.


 10장. 정치 간부회의
 1901년까지는 정치 엘리트의 2/3 이상이 선출을 통해 올라왔다.

 얼마 전부터 행정의 시대를 맞으면서 소수의 지명을 받음으로써 하루아침에 정치적 거물이 될 수 있게 되었다.

 1933~1953년 사이의 고위 정치인들 중에서 선출을 통해 그 자리까지 오른 사람의 비율은 28%에 지나지 않았다.

 아이젠하워 행정부는 사실상 행정부 요직을 차지한 정치 아웃사이더들의 이너 서클이나 다름없었다.

 이들의 대부분은 기업계, 금융계와 상당히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모든 정치 간부들의 반 이상을 구성하고 있다.

 미국에서 정책결정의 3대 자리로 꼽히는 국무장관,재무장관,국방장관은 모건 가 및 록펠러 가와 이해관계가 있는 인사들이 차지하고 있다.

 11장. 균형이론
 "권력의 균형을 채택하지 않는 국가는 전제정치를 채택해야 한다. 다른 대안은 절대로 없다." - 존 애덤스.

 견제와 균형은 18세기에 개발된 이후 경제적 자유와 정치적 자유를 보장하고 주권국가에 전제정치가 나타나지 못하게 막는 메커니즘이 되었다.

 미국의 사회과학이 경험주의로 기울게 된 결과 다양한 원인들을 단순히 나열하는 것이 현대사회를 이해하는 과학적인 방법으로 인식되었다.

 물론 사회과학은 그런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분석의 진짜 임무를 피하려는 절충주의일 뿐이다.

 사회분석의 임무는 어떤 사회현상을 일으키는 모든 요소들을 단순히 나열하는 수준을 넘어서 각 요소들이 서로 어떻게 결합하는지, 또 그것들이 현실의 모델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파악할 수 있도록 모든 요소들을 두로 비교 검토하는 것이다.

 세력을 키우는 집단들은 기회가 날 때마다 세력균형이 공평하게 이뤄지고 있고 이해관계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고 선언하려 한다.

 그런 집단들은 자신들의 지배가 깨어지지 않고 평화롭게 이어지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영자들은 노조 지도자들을 평화의 훼방꾼이라고, 경영과 노동의 보편적 이해관계를 깨뜨리는 존재라고 비난한다.

 마찬가지로 특권을 누리는 국가들은 무력으로 얻은 것을 도덕적인 개념으로 옹호하면서 국제주의라는 이름으로 약소국들을 비난한다.

 "이해관계자들의 조화라는 원칙은 특권 집단들이 지배적인 지위를 정당화하고 유지하기 위해 발동시키는 정교한 도덕장치가 된다." - E.H.카.

 균형이론에 초점을 맞추는 대표적인 곳이 의원들이다. 96명의 상원의원들과 435명의 하원의원들은 시민들을 대표하지 못한다.

 그들은 특권을 누리는 자들이며, 지방사회의 신구 상류층에 속하거나 그 계층 출신이다.

 "규제기관들은 약간의 예외가 있긴 하지만, 규제대상이 된 산업의 팔이 되거나 노예가 된다." -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

 정치적 결정의 모델로서 견제와 균형 이론의 뒤에는 아리스토텔레스 이후로 건국의 아버지들에게 받아들여진 계급이론이 자리잡고 있다.

 국가가 견제와 균형의 제도이어야 하는 이유는 사회가 계급들의 균형이기 때문이며, 또 사회가 계급들의 균형인 것은 사회의 중추이자 안전장치 역할을 하는 것이 강력하고 독립적인 중산층이기 때문이라는 이론이다.

 19세기의 미국은 중산층 사회였다. 小기업가들이 중심을 이루는 경제가 있었고, 권력의 형식적 분할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정책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소수의 중앙 집중적인 기업들이 경제를 지배하고, 행정부가 권력을 독점하는 정치로 이뤄져 있다.

 입법부는 권력의 중간계층으로 추락하고, 사법부는 스스로 발의하지 않은 정책의 흐름에 내맡겨지고 있다.

 제퍼슨의 이상이었던 낭만적인 다원주의는 자유로운 백인인구 4/5 가량이 독립적인 소유주였던 사회에서 꽃을 피웠다.

 그러나 남북전쟁에 뒤이은 시대에 더욱 커진 경제 단위들이 활동의 폭을 넓혀 감에 따라 옛 중산층이 쇠퇴하기 시작했다.

 이후 진보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농부와 小기업가로 이뤄진 독립적인 중산층은 정치적 투쟁을 벌였으나, 결정적 역할을 할 마지막 기회를 잃었다.

 독립적인 옛 중산층 옆에 기업사회 안에서 화이트칼라 직원들로 구성된 새로운 의존적인 중산층이 생겨났다.

 신중산층의 일자리 세계에서는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다. 화이트칼라 중산층은 독립적인 권력기반을 형성하지 못한다.

 옛 중산층과 신중산층 옆에 새로운 정치세력이 1930년대에 나타났다. 조직화된 노동세력이었다.

 18세기 정치이론가들은 권력의 단위로 개별시민을 염두에 두었으며, 고전 경제학자들은 소기업을 염두에 두었다.

 이후 권력의 단위들과 그 단위들 사이의 관계도 바뀌었으며 따라서 견제와 균형의 의미도 변했다.

 권력체계가 곧 하나의 균형사회라는 인식은 또한 균형을 이루는 단위들이 서로 독립되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만일 경영과 노동 또는 경영과 정부가 서로 독립되어 있지 않다면, 그것들이 자유롭고 열린 균형의 요소로 여겨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종종 이익을 증진하기 위해 서로 경쟁하기보다는 많은 점에서 일치를 보이며 정부의 우산 속으로 함께 들어간다.

 그 단위들은 더 나아가 서로 이해관계의 일치를 보이며 서로 동맹을 맺는다.

 오늘날 지휘부를 차지하고 있는 기업인들과 군인들의 연합에 맞설 세력은 전혀 없다.

 지금 미국에서 진짜 권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꽤 구체적인 국익과 정책들을 현실로 실현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최고 집단의 자리들은 기업에서 온 인사들과 군부가 확실히 차지하고 있다.

 균형사회도 쇠퇴하고 지역성을 강조하는 정당 정치인들은 국가권력의 중간층으로 추락했다.

 지금 우리 시대가 물질적 번영을 누리는 시대라는 사실이 이런 사실들을 가리고 있을 뿐이다.

 12장. 파워 엘리트
 미국의 파워 엘리트는 시기적으로 4단계를 거쳤으며 지금은 5단계로 접어들었다.

 1) 독립전쟁부터 존 애덤스 행정부까지의 시기에는 사회적,경제적,정치적,군사적 기관들이 다소 통합되어 있었다.

 사회는 유서 깊은 가문들을 바탕으로 했다. 그들은 몃 세대 동안 공동체의 교육과 신분을 대표했다.

 2) 19세기 초반에는 제퍼슨의 정치철학을 따르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엔 해밀턴의 경제원칙을 따랐다.

 이때는 경제적,정치적,군사적 영역이 서로 느슨하게 결합하고 있었으며, 경제영역이 사회적 신분과 정치권력 위로 높이 부상하고 있었다.

 제퍼슨에서부터 링컨까지 엘리트가 느슨한 연합을 이루던 이 시기는 남북전쟁으로 종말을 고하게 되었다.

 3) 기업의 경제적 우위기 시작되었으며, 수정헌법 14조가 법인까지 보호한다고 한 1886년 연방대법원의 결정으로 더욱 강화되었다.

 이 기간에 발의권의 중심이 정부에서 기업으로 넘어갔다. 남북전쟁부터 제1차 세계대전까지는 경제 엘리트가 정부를 공격한 시대였다.

 또한 상원의원과 판사들이 쉽게 매수된 부패의 시대이기도 했다. 군사영역은 정치영역에, 정치영역은 경제영역에 종속되어 있었다.

 트러스트는 정부조직을 기업들에 유리한 쪽으로 이용했다. 주정부와 연방정부가 규제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었다.

 정부들의 권력은 산재해 있었던 반면, 산업과 금융회사들은 집중되어 있고 또 서로 맞물려 있었다.

 모건 가의 이해관계만 보더라도 112개 회사에 이사가 341명이나 되었다.

 많은 州들보다 더 많은 수입과 종업원 수를 자랑하는 기업들은 정당을 통제하고, 법을 사고, 의원들을 관리했다.

 사적인 경제 권력이 공적인 정치권력을 무력화시켰듯이, 경제 엘리트가 정치 엘리트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4) 뉴딜은 기업 세계 뿐만 아니라 정치의 영역 안에서도 기업 간부들의 권력 중심과 경쟁할 권력 중심을 창조해냈다.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사회적 입법과 하류층의 이슈가 개혁운동의 중요한 특징이 되었다.

 루즈벨트 행정부의 초기와 중기는 실업을 축소할 방법과 수단을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찾으려는 절망적인 몸부림으로 보면 잘 이해할 수 있다.

 물론 루즈벨트가 취한 균형의 행위는 경제의 한 형태로서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제도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정책을 통해서 그는 파산한 자본주의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보조금을 지불했고, 구제금융을 통해서 경제권력의 체면을 손상시켰다.

 그런 균형을 떠받치고 또 보조금을 지급하기 위해 탄생한 복지국가는 자유방임 국가와는 달랐다.

 5)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역사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이다."라는 말이 있다.

 파워 엘리트의 역사는 이 말이 옳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 주는 예이다. ☞ 파워 엘리트의 역사를 알아야 이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 권력구조의 장기적 추세가 속도를 얻었으며, 새로운 추세들이 파워 엘리트의 형태를 결정했다.

 파워 엘리트의 등장과 더불어 권력이 집중되었고, 공적 토론의 장으로서 정치의 기능이 쇠퇴했다.

 지금 미국은 민주적인 사회구조라기보다는 민주주의를 형식적으로 취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심지어 형식적인 정치 구조마저도 아주 취약하다.

 이제 재계와 정부는 서로 명백히 구분되는 세계로 보일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기업의 수장들은 전쟁 수행 중에 경제분야를 주도한 데 이어 전후 시대에는 경제를 전적으로 이끌고 있다.

 또한 군사적 위협이 영원할 것처럼 보임에 따라 군부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거의 모든 정치적,경제적 행위들에 대한 판단이 지금 군부의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이뤄지고 있다.

 지금 미국 자본주의는 상당부분 군사 자본주의이고, 대기업과 국가를 연결하는 가장 중요한 관계는 군부와 기업 사이의 이해관계의 일치에 있다.

 이러한 구조적 추세들이 서로 만나는 지점에서 오늘날 파워 엘리트의 형태와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직업 정치인들이 쇠퇴하는 가운데, 기업 수장들과 군사 지도자들이 정치적 통제력까지 확보하면서 파워 엘리트의 형태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19세기의 긴 평화 기간에는 군부와 경제인들은 정치 간부회의에 속하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군부와 기업인이 최고의 위치에 있다.

 파워 엘리트는 귀족사회가 아니다. 즉 세습되는 고귀한 신분에 바탕을 둔 정치적 지배집단이 아니다.

 하지만 파워 엘리트에게 그런 배경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곧 이 계층의 구성원들이 미국사회 전체 계층에서 나온다는 뜻은 아니다.

 파워 엘리트의 구성원들 중 상당수가 신구 상류층 출신이다.

 출신 가문과 경력을 볼 때 맨 꼭대기에 있는 사람들은 누구 혹은 무엇을 대표할까?

 선출된 정치인이라면 자신을 뽑아 준 사람들을 대표하게 되어 있다. 임명된 사람이라면 자신을 임명해 준 사람을 간접적으로 대표하게 되어 있다.

 성공한 사람들의 친목회에는 일종의 상호 끌림이 있다. 그 끌림이 약할 땐 서로 칭송하는 수준이 될 것이며, 강할 땐 결혼으로까지 발전한다.

 그 양 극단 사이에서 온갖 형태의 연결이 일어난다. 파벌,클럽,교회,학연 등을 통해 서로 중첩되는 관계가 틀림없이 일어난다.

 미국 어디에도 엘리트 계층만큼 계급의식이 강한 곳은 없다. 또 파워 엘리트만큼 효율적으로 조직되어 있는 곳도 없다.

 파워 엘리트 계층의 고위 집단 안에는 파벌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더 강력한 것은 파워 엘리트를 하나로 묶는 이해관계로서의 공동체다.

 파워 엘리트들도 명예로운 사람들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명예란 어떤 사람이 스스로 명예롭다고 믿는 규범에 따라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세상에는 모든 사람이 다 동의하는 그런 규범은 없다. 문명화된 우리가 자신과 뜻을 같이하지 않는 사람을 없앨 수 없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문제는 그 사람들의 명예의 규범이 그들만의 의견을 존중하는 그들만의 규범이라는 것이다.

 달리 어떤 대답이 있겠는가? 정직이란 것은 비난의 대상이 될 수는 있어도 증명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적응성이란 일생 동안 일과 경험을 통해 얻은 행동규범을 초월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그들에게 초월을 기대한다는 것은 곧 그들을 정말 이상하고 정략적인 존재라고 전제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예컨대 찰스 윌슨이 재계가 아닌 다른 분야의 사람이나 이해관계를 진지하게 대표한다고 믿을 수 있겠는가?

 윌슨이 정직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반대로 그가 대단히 정직해서 그럴 수 있는 것이다.

 그는 미국에 이로운 것이면 GM에도 이롭고, GM에 이로운 것이면 미국에도 이롭다는 자신의 말을 진정으로 믿고 있다.

 주식의 처분은 단지 하나의 정화 의식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특정 회사에 대한 금융적 또는 개인적 이해관계가 아니고 재계와의 동일시이다.

 그에게 갑자기 이런 이해관계와 감정을 벗어 던지라고 요구하는 것은 남자에게 여자가 되라고 요구하는 것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다.

 그들의 애국심과 국익에 대한 견해도 명예의 규범처럼 명확한 사실들이 아니고 다양한 의견이 존재할 수 있다.

 더욱이 애국에 관한 의견들 역시 그 사람이 살며 기준을 삼아 온 덕목들에 뿌리를 내리고 있고 또 그것들에 의해 떠받쳐지고 있다.

 애국심은 사회적 조건들에 의해 기계적으로 재단될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파워 엘리트의 핵심은 또한 대형 법률회사와 투자회사 출신들을 포함한다.

 기업변호사는 재계,군부,정계를 연결하는 중요한 고리이며, 투자은행가는 재계의 중요한 조직자이자 통합자이며 동시에 정부지출에 정통하다.

 파워 엘리트의 부상으로 공중의 이익을 저버리거나 심지어 의회조차 거치지 않고 중대한 결정이 이뤄지는 공식적인 비밀이 점점 더 많아졌다.

 맨 꼭대기는 유례없이 막강하고, 중간계층은 점점 더 궁지로 몰리고 있으며, 맨 아래층은 대중사회로 변화하고 있다.

 13장. 대중사회
 "세상의 여왕인 여론은 왕들의 권력에 종속되지 않는다. 왕들 자신이 여론의 첫 번째 노예들이다." - 루소.

 민주적인 중산층의 부상이 야기한 공중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토론의 자유이다.

 민주적인 제도들을 통해 어떤 주장에 대해 반박하고 여론기관을 자율적으로 조직하고 의견을 현실로 실현할 가능성이 열렸다.

 공중의 토론을 통해 형성되는 여론은 공중이 행동으로 보여 주겠다는 결심으로 이해된다.

 여론(public opinion)이라는 표현 속에 담긴 공중(public)의 18세기 개념은 자유경제 안에서의 시장 개념과 비슷하다.

 자유롭게 경쟁하는 기업가들로 구성된 시장이 있다면, 다양한 의견의 토론집단으로 구성된 공중이 있다.

 가격이 익명의 개인들이 똑같은 자격으로 협상을 벌인 결과이듯, 여론도 각자가 생각해낸 것을 바탕으로 위대한 합창에 목소리를 보탠 결과이다.

 여론을 민주주의를 정당화하는 요소로 보는 인식에는 토론의 자율성이 중요한 조건이다.

 공중들 사이에 형성된 여론은 권력 조직들 안에서 적극적으로 현실화된다.

 공중이 자신들의 요구를 실현하는 데 실패하게 되면, 그 구성원들은 구체적인 정책을 비판하는 선에서 만족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들은 합법적 권력의 정당화 그 자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이는 제퍼슨이 "간헐적으로 혁명이 필요하다."고 말한 의미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은 이러한 묘사가 동화에서 끌어낸 이미지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공중과 여론에 대한 생각은 사실을 묘사한 것이 아니고 어떤 이상에 대한 단언이며 사실로 위장한 어떤 합법화에 대한 단언이다.

 예전에 여론을 형성하던 공중이 지금은 훨씬 못한 무엇인가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공중들의 고전적인 공동체가 대중들의 사회로 변모하고 있다.

 사실 공중에서 대중으로의 변모는 현대 미국의 삶의 사회적 및 심리적 의미를 밝히는 열쇠 중 하나이다.

 공중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존 로크가 강조한 바와 같이 개인의 양심이 판단의 종국적 바탕이자 최고 법원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처음으로 대중 민주주의의 문제에 봉착했을 때 이 원칙이 도전을 받았다.

 지금은 매우 중요한 결정들이 공중이 알지도 못하는 가운데 이뤄지고 있으며, 공중은 결정이 내려진 한참 뒤에야 알게 되기도 한다.

 공중에서 대중으로의 변모는 현대사회의 주요 경향임과 동시에 19세기 지적 분위기를 좌우했던 자유주의적 낙천주의의 붕괴를 부른 중요한 요인이다.

 공중과 대중이라는 표현은 극단적인 형태에 붙여진 이름일 뿐이다. 그것들은 현실의 어떤 특징들을 가리킨다.

 그러나 그 표현들 자체는 구성개념이다. 사회적 현실은 언제나 이 두 가지가 혼합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럼에도 먼저 극단적인 유형들을 명백히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 유형들이 우리의 상황에 어느 정도 녹아 있는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게 된다.

 공중과 대중의 차이를 정확히 이해하려면 적어도 4가지의 차원을 살펴야 한다.

 1) 민주주의 단계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이 비율의 변화이다. 커뮤니케이션 규모의 한쪽 극단에는 두 사람이 개인적으로 만나 대화를 나눈다. 반대쪽 극단에는 대변인 한 사람이 네트워크를 이용해 수백만 명의 청취자와 시청자들에게 일방적으로 말을 한다.

 2) 보복 없이 어떤 의견에 반박할 수 있는 가능성이다. 커뮤니케이션 수단의 기술적 조건들이 청취자 대비 화자의 비율을 크게 낮추면서 자유롭게 반박할 가능성을 배제할 것이다.

 3) 의견의 형성과 그 의견을 사회적 행동으로 실현하는 것 사이의 관계가 얼마나 쉽게 이어지는지에 대해서도 고려해야 한다.

 4) 제도적 권력이 제재나 통제를 통해 공중을 침투한 정도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한다. 문제는 공중이 제도화된 권력으로부터 순수한 자율성을 어느 정도 확보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한쪽 극단에는 가해자가 없으나, 다른 쪽 극단에는 나치의 거리 봉쇄, 소련 공산당의 세포조직 등이 있다.

 우리 시대의 많은 측면들을 보면 공중들의 공동체보다는 대중사회의 특성을 더 강하게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 분명히 확인된다.

 널리 산재한 작은 권력들로부터 중앙 집중적인 권력들로의 이동이 있고, 강력한 중심들을 독점적으로 지배하려는 시도가 일어나고 있다.

 부분적으로 숨겨져 있는 이 강력한 중심들은 권력의 중심일 뿐만 아니라 조작의 중심이기도 하다.

 이웃들을 보살피던 작은 가게가 익명성을 지닌 전국적 기업으로 대체되고 있다.

 대중광고가 상인과 고객 사이에 오가던 개인적 의견의 영향을 대체하고 있다.

 정치지도자는 전국 네트워크에서 연설을 내보내고, 자신이 한 번도 보지 않았고 또 미래에도 결코 보지 않을 수백만 사람들에게 말을 한다.

 구조적 변모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중의 순수한 도구로서의 자발적 단체들이 쇠퇴한 것이다.

 미디어는 세상의 정보와 소식을 많이 제공하지만, 사람들이 일상적 삶을 보다 더 큰 현실과 진정으로 연결시킬 수 있도록 돕지는 않는다.

 또한 미디어는 개인의 긴장이나 사회적 긴장에 대해 이성적으로 통찰할 수 있는 능력을 높여 주지도 않는다.

 반면 미디어는 개인의 주의를 주로 폭력,섹스,유머로 집중시켜 개인을 산만하게 만들고 스스로 자신이나 세상을 이해할 기회를 박탈한다.

 요약하면 대중의 입장에서 볼 때 매스 미디어를 통해 해결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

 미디어에는 거의 언제나 시청자의 주의를 흩뜨리고 일촉즉발의 흥분을 유도하는 분위기가 넘친다.

 미디어가 시청자의 주의를 산만하게 만드는 주요 긴장은 멋진 상품이나 섹시한 여자에 대한 욕망과 그것들의 부재 사이의 간극 때문에 생긴다.

 미디어는 부와 권력을 갖춘 엘리트들이 지금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는 권력의 수단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조작 수단이다.

 권위는 겉으로 명백히 드러나고 또 다수 자발적으로 따르게 되는 권력이다.

 반면 조작은 영향을 받는 사람에게 알려지지 않은 가운데 권력을 비밀리에 행사하게 된다.

 권위는 형식상 국민에게 있다. 그러나 발의의 권한은 사실상 작은 집단들에게 있다.

 조작의 표준적인 전략이 큰 집단의 사람들이 스스로 결정을 내리는 것처럼 보이도록 꾸미는 것인 이유도 거기에 있다.

 권위가 있는 상황에서조차 그 권위를 행사할 수 있는 사람들이 보다 은밀한 조작을 선호하는 이유도 또한 거기에 있다.

 대중교육도 여러 면에서 또 다른 대중매체가 되고 있다. 오늘날 대중교육의 임무는 직업훈련을 시키고,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고전적인 공중과 가장 관계가 깊은 것은 분별력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

 교육에는 사람이 자신에 대해 명확히 알도록 하는, 고대적 의미의 어떤 치유 같은 것도 포함된다.

 또 자신과 논쟁을 벌이는 기술인 사고력과, 타인과 논쟁을 벌이는 기술인 토론능력도 거기에 포함된다.

 그런 자유주의적 감수성 교육의 최종적 산물이 바로 스스로를 교육시킬 줄 알고 성숙시킬 줄 아는 남녀들이다.

 순수한 공중 속의 총명한 개인은 자신의 개인적 곤경을 사회적 이슈로 바꾸고, 자신의 곤경과 공동체 사이의 관련성을 볼 줄 안다.

 그는 자신의 곤경이 실은 자신의 문제임과 동시에 다른 사람의 문제이며, 그렇기 때문에 공동체의 문제로 바꾸고 해결할 수 있는 것임을 이해한다.

 대중 속의 개인은 자신의 문제들에 갇혀 옴짝달싹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 문제들의 진정한 의미와 원인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한다.

 공중 속의 개인들은 이슈를 직면하며 그 이슈의 본질을 알고 있다. 곤경을 이슈로 바꾸고, 또 그 이슈가 개인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끊임없이 모색하는 것은 자유주의적 조직의 임무이자 교육을 받은 사람의 임무이다.

 공중들의 공동체에서는 자유주의 교육의 임무는 다음과 같이 요약될 것이다. 공중을 세상사에 압도당하지 않도록 지켜 주고, 절대로 꺾이지 않을 기개 넘치는 정신을 길러 주고, 대중적인 삶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을 대담하고 분별력 있는 개인을 개발하도록 돕는 것이다.

 그러나 20세기의 교육은 곤경에 처한 사람의 인간적 필요나 시민의 사회적 관행과 직접적 관계가 없는 지식을 주입하고 있다.

 지금 자신의 편향들과 좌절감의 뿌리를 보지도 못하고 자신의 존재에 대해 명쾌하게 생각하지도 못한다.

 그에 따라 사상과 지성이 좌절되고 있다는 것을 보지 못하고 있으며, 지금 이성적인 시민에게 요구되는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고 있다.

 대도시의 발달은 남녀들을 좁은 일상과 환경 속에서 서로 분리시키면서 그들이 하나의 공중으로서 느꼈던 일체감을 상실하게 만든다.

 작은 공동체 안에서 공중의 구성원들은 서로를 훤히 안다. 그들이 일상적인 삶의 몇몇 국면에서 서로 만나기 때문이다.

 대도시 사회의 대중들의 구성원들은 서로를 전문화된 영역 안의 한 부분으로만 알고 있다. 그래서 예단과 고정관념이 난무한다.

 대도시의 사회에서 사람들은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무신경한 태도를 익힌다. 의견충돌은 무례한 짓으로 여긴다.

 일상에 매몰되어 지내는 사람들은 다소 편협하기 마련인 삶을 토론을 통해서라도 초월하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하물며 행동으로 초월하는 것에 대해서는 두말 할 필요도 없지 않겠는가?

 군대에선 개인의 역할이 엄격히 제한되어, 오직 지휘부만이 전체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지휘부가 파악한 내용은 공식적 비밀로 보호된다.

 근로자들은 자신의 노동의 산물과 도구로부터 소외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생산구조와 공정에 대한 이해로부터도 소외되어 있다.

 정치에서 중하층 사람들은 전체는 물론 꼭대기도 보지 못한다. 전체 조직을 좌우하는 이슈들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자기개발이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잡은 도시의 광기 속에서 대중의 라이프스타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멍청한 사람들은 자신감이 넘쳐 보인다.

 그런데 그는 도대체 무슨 기준으로 자신과 노력을 평가하는 것일까? 그에게 진짜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대중사회 개념은 파워 엘리트의 존재를 암시한다. 공중이라는 개념은 파워 엘리트가 없거나 있더라도 결정적 권력을 갖지 않은 전통을 암시한다.

 만일 순수한 공중이 주권자라면 거기에는 지배자가 있을 필요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중은 투표의 순간에만 주권자가 된다.

 현대 미국사회의 맨 꼭대기는 갈수록 통합되고 있으며, 거기서 파워 엘리트 계층이 출현했다.

 중간층은 궁지로 몰리고 있으며, 바닥 층과 꼭대기 층을 연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 사회의 바닥은 정치적으로 파편화되어 있으며 점점 더 무력해지고 있다. 그 바닥에서 지금 대중사회가 생겨나고 있다.

 14장. 보수적 분위기
 민주주의는 결정의 결과를 안을 사람들이 의사결정자에게 책임을 지울 권한을 가져야 하고, 책임을 지우는 데 필요한 지식까지 갖춰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들이 제공하는 지식에 의존한다.

 어느 누구도 직접적 경험을 통해서는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세계의 극히 작은 부분 이상을 결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경험의 대부분은 간접적이며, 상당한 왜곡에 노출되고 있다.

 대중사회는 19세기 미국에 팽배했던 서구 인본주의의 핵심적인 목표를 포기하도록 만든다.

 그 목표란 바로 이성이 사람의 운명을 지배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미국에는 자본주의 이전의 엘리트가 기억조차 없다. 미국에서는 건국 초부터 부르주아 계급이 계급과 지위와 권력을 지배해왔기 때문이다.

 유럽과 달리 미국에는 봉건주의 유산과 자본주의 사이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천박성을 대조시킬 길이 없다.

 미국에선 고전적인 형태의 보수적인 이데올로기기 한 번도 없었고 또 있을 수도 없었다.

 고전적 보수주의의 섭리는 자유주의가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을 일반화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자유주의라는 용어는 하나의 공통적인 수사(修辭) 어휘가 되어버렸다. 서로 아주 다른 입장들까지도 똑같은 자유주의로 선언되고 있다.

 이 수사적 승리 때문에, 역설적이게도 자유주의는 이슈를 정의하고 정책을 언급하는 방법으로는 더 이상 쓸모가 없게 되어버렸다.

 미국 엘리트의 이데올로기적 원천은 호레이셔 엘저이다. 노력은 성공의 어머니라는 원칙이 위대한 약탈 게임에서 부르주아지를 떠받쳐 주었다.

 자본주의의 엘리트는 언제나 꼭대기까지 철저히 개인적인 성취로 올라가기 위해 전통을 깨뜨리는 自手成家한 사람들로 (일정부분) 구성되어야 한다.

 15장. 고위층의 부도덕
 우리 시대에는 공적 삶이 부패한 것을 보아도 도덕적 분개가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미국에는 지금 그 옛날 중산층의 도덕성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고위층의 부도덕이 차지했다.

 우리 시대 고위층의 진짜 부도덕성은 권력자들의 생각없음에 있다.

 권력자들의 이런 태도로 인해 오늘날 미국의 기업권력 체계의 가장 중요한 특징인 조직적 무책임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기업의 시대에 경제적 관계는 비개인적인 관계가 되고, 간부는 자신의 행위에 대해 개인적 책임을 덜 느끼게 된다.

 재계,군부,정계 안에서 개인의 양심이 약해지고 고위층의 부도덕이 제도화되었다.

 미국인들은 믿음을 고백하면서도 실제로 믿지는 않는다.

 미국은 무신론적인 적의 유물론을 비판하면서 자신의 유물론에 대해서는 영광스럽게 여기고 있다.

 경제적,정치적 조직에서 기업 부자들은 엄청난 권력을 행사하고 있지만, 도덕적 동의를 한 번도 얻을 필요가 없었다.

 사실 고위층 부도덕의 한 가지 기본적인 특징이 바로 위기의 부재이다.

 그들이 자신들의 정책과 행동을 가리기 위해 들먹이는 위기가 아닌 진짜 위기 말이다.

 정말 위기 상황인 경우 주민들에게 대안이 제시되고, 그 대안의 도덕적 의미를 놓고 공개적인 토론이 벌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들에도 불구하고, 아직 크게 쇠퇴하지 않은 옛날의 가치가 하나 있다. 돈과 그것으로 구입할 수 있는 사물들의 가치가 그것이다.

 "나는 부자도 되어 보았고 가난하게도 살아 보았다. 그러니 내 말을 믿어라. 당연히 부자가 최고다." - 소피 터커. 러시아生 미국 가수이자 코미디언.

 부자들의 삶의 기준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백만 달러면 많은 죄를 덮을 수 있다. 사람들을 평가하는 기준 자체가 돈과 관련되어 있다.

 돈을 많이 버는 사람에 맞설 심각한 상대가 없는 사회에서는 상식,실용적이라는 단어는 금전적으로 앞서 나가는 분별력이라는 뜻이 된다.

 미국의 부패 중 상당 부분은 단지 부자가 되고 또 더 큰 부자가 되려는 역사 깊은 노력에 따른 것이다.

 정치 조직과 경제적 기회가 중앙으로 집중됨과 동시에 상호 연결된 상황에서는 공적인 지위가 사적인 이익에 이용될 수 있다.

 미국처럼 기업 마인드가 아주 넓게 침투한 나라에서는 재계의 규칙이 정부 쪽으로 흘러가게 되어 있다.

 매우 많은 기업인들이 정부로 들어간 상황에서는 그런 현상이 특히 더 심해진다.

 지식은 선하지도 않고 악하지도 않으며, 지식의 사용 또한 선하지도 않고 악하지도 않다.

 "나쁜 사람도 선한 사람만큼 빨리 지식을 쌓는다. 그리고 과학과 예술, 감수성과 문학은 좋은 목적 뿐만 아니라 나쁜 목적에도 쓰인다." - 존 애덤스.

 이런 글이 나온 것이 1790년이었다. 오늘날에도 역시 그렇다고 믿어야 할 이유가 있다.

 지적 수준이 드러나는 것은, 스스로가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 순간에 감당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이다.

 원자탄의 생산과 이용에 관한 결정들은 공적 토론이 전혀 없이 이뤄졌으며, 사실들은 공식적으로 숨겨지고 왜곡되었으며 거짓말까지 난무했다.

 정보의 출처는 차단되고 결정과 관련된 사실들은 공식 비밀이라는 이유로 정보 채널로부터 차단되었다.

 상투적인 의견이 정신을 대체하고 있다.

 고위층 집단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지배하는 제도적 영역들의 권력을 통해 이득을 챙긴다.

 파워 엘리트들은 자신의 사회 안에 널리 퍼져 있는 권력의 수단과 부의 원천, 명성의 역학에 의해 선택되고 다듬어진다.

 인간 역사에 유례가 없는 권력의 지휘관들인 그들은 조직적 무책임이 팽배한 미국의 시스템 안에서 성공을 거둔 사람들이다.

'130926木 安晋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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