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 것인가 서평

이 책은 2013년 봄에 출간되었다. 그 해 가을, 아는 분이 열었던 Private Seminar에 유시민 작가가 초대되었다. 세미나에 참석해서 책에 사인도 받고 1시간 특강도 들었다. (특강 때 적었던 글들과 사진은 여기에...) 물론 그때사인받고는 책꽂이에 꽂아놓고 들춰보지 않았었다. 유명한 분이 자기 살아온 이야기를 적었겠지 하는 생각이었다. 그러다가 이번에 읽게 되었다.

책을 읽어보니 이 책이 과연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책인가, "죽음"에 대한 책인가 의문이 들었다.작가는 책 제목을 "어떻게 살 것인가"라고 지어놓고 줄곧 죽음에 대한이야기를 한다. 왜 이렇게 죽음을 이야기할까? 작가는 죽음에 대한 질문들(만약 내일 죽는다면 오늘 무엇을 해야할까? 잘 죽으려면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에 어떻게 대답하느냐에 따라 남은 삶이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죽음은 단순히 삶의 끝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삶의 완성(p71)이라는 생각에서 죽음을 깊게 생각하는 것 같다.

죽음을 생각하면 당연히 뒤따르는질문이 '과연 내가 몇 살까지 더 살 수 있을까?'이다. 그래서 찾아봤다. 내가앞으로 몇 년을 더 살 수 있는지.

기대여명이라는 것이 있다. 영어로는 Life expectancy. 특정 연령의 사람이 앞으로생존할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생존연수를 말한다. 2019년 현재 모든 나이대별로 기대여명이 있을 것이다. 그 중 0세의 기대여명을 기대수명(Lifeexpectancy at birth)라고 부른다. 즉 올해 태어나는 아이가 앞으로 몇 년살 것인가를 말한다.

통계청 홈페이지(//kosis.kr/statHtml/statHtml.do?orgId=101&tblId=DT_1B42)에서 모든 연령대의 기대여명을 알수 있다. 2018 12월에 발표한 <2017년 생명표(완전생명표,기대여명표)>에 따르면, 2017년에 태어난아이는 남자가 79.7, 여자가 85.7년을 살 것으로 기대된다고 한다. 평균으로는 82.7년이다. 나의 기대여명을 찾아봤다. ... 34.2년이다.즉 난 앞으로 평균잡아 34년을 더 살 수 있다는 말이다. 중간에 병이 걸리거나 사고를 당하지 않는다는 조건 하에서 80세조금 넘어서까지 살 수 있다는 말이다. (건강수명이라는 것도 있다. 아프지않고 건강하게 살 수 있는 나이를 말한다. 어디선가 본 기억이 있는데 대체로 기대여명에서 7~8년 뺀다고 한다역으로 말하면, 7~8년 아프다가 죽는다는 뜻이다)

이렇게 앞으로 살 수 있는 햇수를 따지다 보니 정말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죽음은 삶을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 있나 보다.

작가가 책을 통해 지속적으로 강조하는몇 가지가 있다. 자유의지, 자기결정권, 존엄, 품위를 많이 강조한다. 젊어서그렇게 살려 노력했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려고 하는 것 같다. 특히 노후에 자기결정권을 확보하려면 돈, 건강, 삶의 의미에 대한 확신, 놀이가 중요하다는 대목에서 많이 공감이 되었다.나도 잘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떻게 살 것인가

첫 줄 서평 - 우리가 사는 이유는, 그 이유를 찾는 과정에 있다.

책의 내용을 짚어보자.

이 책은 앞서 소개했던 역사의 역사와는 결이 다르다. 특별한 정보나 지식을 전달하는 교양서가 아니다.

유시민 작가의 소개와 그의 기억, 그리고 그가 삶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기술한 책이다.

난 이 책을 열 번 정도 완독 했다. 남이 살아온 이야기가 뭐가 그렇게 재밌을까?

굳이 이유를 하나 뽑자면, 이 책은 나에게 위로를 준다.

앞서간 이들이 '길'을 냈다. 그럼 나는 이 길로 가야할까? 간다면 어떻게 가야할까? 그게 아니면 다른 길이 있을까?

이렇게 살아온 유시민 작가라는 사람이 있구나. 그렇구나.

그럼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떤 직업을 선택하고, 어떤 사람이 돼야 하는지 어느 정도의 확신을 준다.

1. 어떻게 살 것인가

마음 가는 대로 살자

故박원순 서울시장은 워커홀릭이었다. 보고서를 읽다가 궁금한 것이 있으면 새벽 두 시에도 불쑥 전화를 해서 사람들을 미치게 만들었다고 한다. 물론 모든 사람이 박원순 같지는 않다.

그리고 누구나 일을 한다.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돈 그 자체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일 뿐이다.

왜 돈은 수단일 뿐일까? 여유를 느끼고 재밌게 노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우리 인생의 목적은 돈이 아니라, 여유를 느끼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재밌게 놀기 위해서

내 인생은 나의 것

사람마다 인생을 다르게 산다. 역사 기록에 목숨을 바치는 사람, 평생 공부만 하는 사람, 돈을 버는 데 골몰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권력을 좇는 사람이 있다. 어느 것이 더 훌륭한지 가늠하는 객관적 기준은 그 어디에도 없다. 스스로 설계하고 선택한 것이라면 어떤 삶이든 훌륭할 수 있다.

아직은 기회가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려면 무엇인가 바꿔야 한다. 가장 먼저 바꿔야 할 것은 삶을 대하는 태도가 아닌가 싶다.

위로가 힘이 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답은 ‘No’.

자기의 삶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치열하게 고민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타인의 위로가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또한 삶의 의미는 사회나 국가가 찾아주지 않는다. 찾아 줄 수도 없고, 찾아주어서도 안 된다. 각자 알아서 찾아야 한다.

오해는 마시길. 삶의 의미를 찾은 사람만이 타인의 아픔을 위로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 누구나 다치면서 살아간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세상의 그 어떤 날카로운 모서리에 부딪쳐도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정신적, 정서적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비바람을 맞지 않고 피지 않는 꽃이 어디 있으랴, 그렇기 때문에 그 비바람을 맞서기 위한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그럼 그 능력은 어떻게 기르는가? 사는 방법을 스스로 찾으려는 의지에서 나온다. 그렇게 자신의 인격적 존엄을 지켜나가려고 분투하는 사람만이 타인의 위로를 받아 상처를 치유할 수 있으며 타인의 아픔을 위로할 수 있다.

2. 어떻게 죽을 것인가

죽음이라는 운명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라는 광고 카피가 유행했다. 그러나 예외가 있다. 죽음이다. 죽음은 피할 수도 즐길 수도 없다.

소설도, 영화도, 연극도 모두 마지막이 있다. 마지막 장면을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스토리가 크게 달라진다.

어떤 죽음을 준비하느냐에 따라 삶의 내용과 의미, 그리고 품격이 달라진다는 뜻이다.

죽음을 모르거나 오해하면 삶을 망칠 수 있다.

나도 죽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1981년 새해 첫날은 서울 서빙고동에 있던 국군보안사 대공분실에서 맞았다. 철책선 초소에서 대공 근무를 서다가 영문도 모른 채 그곳으로 끌려갔다. 지하실에서 맞고 밟히면서, 죽어버리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그때 내 손등은 눈밭 얼차려를 받다가 난 상처가 동상으로 번져 진물이 흘렀다. 발도 동상과 무좀으로 엉망이었고, 몸에는 옴이 잔뜩 올라 있었다.

마치 더러운 물건 대하듯 멀찍이 떨어진 곳에 의자를 놓고 앉아 심문했다. 그들은 나를 ‘자생적 마르크스-레닌 주의자’로 판정했다. 그러나 간첩은 아니라고 선심 베풀듯 말했다. 나는 병영으로 되돌아갔다.

왜 사나 싶었다.

10대 청소년의 자살 충동은 대부분 성적과 진학 문제로 인한 열등감에서 비롯된다. 많은 아이들이 공부 때문에 차라리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20~50대 청장년의 자살 충동은 대부분 가난이다. 가난은 그저 돈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실직, 고금리 사채, 일하고 또 일해도 벗어나지 못하는 가난… 이런 것들은 때로 마지막 자존감을 무너뜨린다.

성적 스트레스를 받으며 학창 시절을 보내고 나니, 그보다 혹독한 은행빚이 나를 괴롭혔다. 막막한 현실을 마주했다.

그렇다면 개인이 할 수 있는 스트레스 대처법은 무엇이 있을까? 답은 ‘거리감’이다. 세상에 대해서, 본인에 대해서, 타인에 대해서, 일에 대해서 어느 정도 거리감을 두는 것이다.

나는 좋은 세상을 원하지만 그 소망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세상을 저주하지는 않는다. 내 생각이 옳다고 확신하는 경우에도 모두가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삶이 사랑과 환희와 성취감으로 채워져야 마땅하다고 생각하지만 좌절과 슬픔, 상실과 이별 역시 피할 수 없는 삶의 한 요소임을 받아들인다.

3. 놀고 일하고 사랑하고 연대하라

쓸모 있는 사람 되기

남들에게, 사회에 폐를 끼치지 않고 살려면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본은 ‘쓸모 있는 사람’이다. 그래야 스스로 밥벌이를 한다.

생계를 타인의 자비심에 의존하면 존엄한 삶을 살기 어렵기 때문이다. 

훌륭함과 존엄이란 자신의 내면에 있는 가치이고 쓸모는 시장에서 이뤄지는 타인의 상대적 가치 평가이다.

즐거운 일을 잘하는 것

그렇다면 어떤 직업이 좋은 직업일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일 그 자체가 즐겁게 느껴지는 직업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성공하는 인생을 살고 싶다면 그렇게 하는 게 맞다.

컴퓨터를 사용하는 일이든, 컴퓨터를 만드는 일이든. 내가 행복하고, 굶어죽지 않을 정도의 돈만 벌면 되는 거죠, 뭐.

인생의 성공은 멀리 있지 않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그 것을 남들만큼 잘하고, 그 일을 해서 밥을 먹고살면 최소한 절반은 성공한 인생이다. 꼭 즐겁지 않더라도 최소한 괴롭지 않은 일을 직업으로 삼아야 한다.

재능 없는 열정의 비극

천부적 재능이란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런데 재미를 느끼고 집중한다고 해서 다 성공하는 건 아니다. 취향과 재능이 반드시 함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열정과 재능의 불일치가 빚어내는 인생의 비극을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춤을 춘다고 모두가 BTS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축구를 한다고 반드시 메시처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 점을 쿨하게 인정하자.

열정과 재능의 불일치는 회피하기 어려운 삶의 부조리이다. 재능이 있는 일에 열정을 느낀다면 좋겠지만.

그러나 열정을 쏟을 수 있는 일이라면, 재능이 조금 부족해도 되는 만큼 하면서 살면 된다. 경쟁은 전쟁이 아니다. 져도 안죽는다. 이겨서 꼭 행복한 것도 아니고.

떳떳하게 놀기

당신은 어떤 놀이를 즐기며 사는가? 놀이는 단순한 스트레스 해소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행복한 삶의 핵심 요소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렇게 놀아도 되나?’라는 도덕적 부담감이 든다. 안타깝지만 해결법은 없다.

그러니 이왕 놀 때는 떳떳하게 놀자. 도덕적 부담감은 노는 시간과 방법을 스스로 제한하는 데 도움이 된다. 놀고 싶어서 가족과 사회에 대한 도덕적 책임을 더 적극적으로 감당하도록 자극한다.

삶에는 선악이나 옳고 그름을 명확하게 재단할 수 없는 것이 많다. 그러니 놀 땐, 놀자.

사랑은 싹이 난 감자맛

내가 탄 비행기가 고장을 일으켰다고 상상한다. 운이 아주 좋으면 살아남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십 분이나 이십 분 후에 죽을 것이다. 만약 그대가 그런 상황에 빠졌다면 마지막으로 허락된 짧은 시간 동안 무엇을 하겠는가?

추락하기 10분 전이라면, 그리고 살 방법이 없다면. 가족과 당신에게 전화를 하겠다. 너무 미안했다고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하며 산다. 만약 영원히 헤어진다고 해도 가슴을 아리게 만드는 사람이 없다면 그대는 잘못 산 것이다.

사랑하지 못하고 사랑받지 못하며 산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야 하고, 사랑받을 준비를 해야 한다.

아이들을 옳게 사랑하는 방법

사랑하면 주고 싶다. 깊이 사랑하면 무엇이든 줄 수 있다. 사람이 무엇이든 아낌없이 주는 사랑의 대상은 자식이다.

자식을 사랑하는 데 좋은 방법이 있다.

첫째는 행복을 느끼는 능력, 둘째는 원하는 것을 성취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행복을 느끼는 능력을 가지려면 삶을 스스로 설계하고 자신이 원하는 삶의 방식을 찾아야 한다. 자녀가 스스로 이것을 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시행착오를 경험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삶의 중요한 문제를 스스로 선택하지 못하는 사람은 행복을 누리는 능력을 기를 수 없다.

원하는 것을 성취할 수 있는 아이의 능력과 관련해서는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이 제법 많다. 따지고 드는 아이를 존중해야 한다.

공정성에 대한 인식이 일찍 발달하는 아이일수록 지적 재능이 있는 가능성이 크다. 사회성은 가장 높이 발달한 생물학적 재능이다. 그리고 제대로 된 언어로 대화를 하는 것이다. 아이를 씻길 때도 지금 목욕할 것인지, 아니면 조금 더 놀다가 할 것인지를 물어보는 게 좋다. 그리고 아이의 선택을 존중해주어야 한다.

품격 있게 나이를 먹는 비결

나는 늙어가고 있다. 그러나 나이를 먹어도 삶은 똑같이 귀한 것이다. 여기서도 중요한 것은 자기 결정권이다.

이 자기 결정권을 지키려면 세 가지가 필요하다. 돈, 건강, 그리고 삶의 의미다.

돈과 건강은 우리가 나이를 먹을수록 더 중요해진다.

늙으면 일을 하기가 어려워진다. 근력뿐만 아니라 일반 지능과 판단력이 떨어진다. 따라서 은퇴하기 전에 노년기에 소비 생활을 감당하는 데 필요한 돈을 확보해두어야 한다.

되도록 건강해야 한다. 노년기에 건강하지 않으면 활동적으로 살 수 없다. 건강을 좌우하는 요소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결정적인 것은 생활 습관이다.

다양한 사람들과 깊은 정서적 교감을 나눌 수 있다면 외로움을 느낄 겨를이 없다.

마지막으로 삶의 의미에 대한 확신이다. 젊을 때와 마찬가지로 일, 놀이, 그리고 연대를 계속해야 한다. 정서적 교감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없으면 외로움이 찾아온다. 외로움은 노년기 삶의 가장 무서운 적이다. 시민단체, 동호회, 정치단체의 회원으로 활동하는 것을 권장할 만하다. 특히 이런 곳에서는 젊은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다.

아름답게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곧 아름답게 살아가는 것이다.

4. 삶을 망치는 헛된 생각들

신념의 도구가 되는 것

인생에서 가장 ‘달콤 살벌한’ 것은 신념이 아닌가 싶다. 나름의 신념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삶의 목표와 방법을 설정하고 살아가는 데 필요한 행위의 준칙을 세울 수 있다. 그런데 신념의 역할은 인생의 철학적 토대를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신념은 때로 삶 그 자체가 된다. 사람은 신념을 위해 살기도 하며 신념을 위해서 죽기도 한다.

훌륭한 신념에는 조건이 있다. 다른 신념에 대한 관용을 갖추는 것이다. 그럴 때에만 신념은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래야 사람이 이념의 도구나 노예가 아니라 주인이 되는 것이다. 빛나야 할 것은 신앙이나 이념이 아니다. 정말 빛나야 할 것은 자연이 준 본성과 욕망을 긍정적으로 표출하고 실현하면서 영위하는 기쁜 삶이다.

나는 영생이 싫다

삶에는 끝이 있다. 지금 존재하는 것은 머지않아 모두 스러지고 망각된다.

하지만 의미 있는 인생을 살고 싶다면 무엇보다 먼저 삶의 유한성과 관련한 허무 의식을 이겨내야 한다.

인생은 언젠가 끝이 나고, 유한성이 있다는 점을 인지하자.

인류 역사를 통틀어 삶의 유한성에 가장 격렬하게 맞섰던 인물은 중국 진나라 시황제가 아닐까 싶다. 시황제가 불로장생의 비방을 구한다는 소식이 퍼지자 천하의 날고 기는 사기꾼들이 몰려들었다. 일설에는 사기꾼들이 명약이라고 권한 것 중에는 수은 같은 중금속이 함유된 것도 있었다고 한다. 시황제는 지방을 순시하던 중 병으로 죽었다. 약물중독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가정을 해보자. 진시황이 운명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지금 여기’에서의 행복을 추구했다면 어땠을까?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사람들 사이에 정의를 수립하고, 학문과 교육을 진흥하고 산업을 양성하여 민중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었을 것이다.

영생에 대한 욕망은 자신의 삶을 황무지로 만들고, 타인의 삶을 파괴한다.

이름 남기기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이름 남기기 그 자체를 인생 목표로 설정할 경우 삶을 왜곡하게 된다.

죽어서 이름을 남기는 그 자체는 인생의 목표가 될 수 없다.

소크라테스, 반 고흐, 공자, 맹자, 석가모니,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떠올려보자.

이름을 남겨서 훌륭한 게 아니다. 훌륭해서 이름이 남은 것이다.

이름이 남았기에 그들의 삶이 훌륭한 것일까? 아니다. 그 역이 진실이다. 그들은 자신의 삶에 충실했을 뿐이다.

위에 언급한 그 누구도 이름을 남길 목적으로 살지 않았다. 모두 스스로 설계한 삶을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살다 죽었을 뿐이다.

훌륭한 삶을 살면 이름이 남는다. 그러나 이름을 남겼다고 해서 다 훌륭하게 산 것은 아니다.

이름이 길이 남지 않음을 애석하게 여길 필요는 없다. 그것은 행복한 삶의 본질적 요소가 아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

끝 줄 서평 - 우리는 어떤 것을 성취하기 위해 오랜 시간 준비한다.

회사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를 위해 소비 구매 패턴과 시장 조사를 할 수도 있고, 논문 집필을 위해 기나긴 연구를 한다. 그리고,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위해 12년을 공부한다.

수능이 끝나고 나면 홀가분한 마음과 허무한 마음이 동시에 찾아든다. 하지만 결과에 따라 두 마음 중 어느 한 마음이 급격히 커지기 시작한다. 나는 허무한 마음이 더 컸다.

"이젠 어떻게 해야하지? 엄마한텐 뭐라 말하지? 바로 군대를 갈까, 삼수를 할까? 하 정말 열심히 했는데 난 왜 이 것 밖에 안되지? 일단 점수에 맞춰서라도 아무 대학에 들어갈까? 그리고 편입을 준비할까?..." 등등.

정말 수많은 질문과 고민이 나를 괴롭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이런 생각은 나만 했던게 아니었다.

누구는 죽을 만큼 힘들었고, 또 누구는 실제로 죽을 생각을 했었단다. 지금은? 잘 먹고 잘 산다. 물론 나도.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간단하다.

당신도 똑같이 고민해라. 고민할 만큼 고민하고 힘들어할 만큼 충분히 힘들어해라. 그리고 방법을 찾아라.

방법이 없다면 적당히 현실과 타협을 해라. 최고의 선택을 아니지만, 또 그렇다고 그게 최악의 선택도 아니다.

다만, 우리는 언젠가 반드시 행복해진다는 사실을 잊지마라. 그거면 됐다.

"어떻게 살아야할까? 난 뭘까? 이젠 진짜 어떻게 해야할까?" 라는 질문이 마음을 어지럽힌다면,

나는 이 책을 추천한다. 꼭 위로가 되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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