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의 우화 중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물고기들이 한번은 사람들의 대화를 엿들었는데 물고기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물이라는 이야기였습니다. 물고기들은 그토록 중요하다는 물이 도대체 무엇인가 궁금해 하면서 늙은 물고기를 찾아가 물이 무엇인지 질문을 하였습니다. 늙은 물고기는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톨스토이는 하나님의 사랑을 설명하려는 의도에서 이 글을 썼습니다. 인간이 날마다 호흡을 하면서 공기의 소중함을 모르듯 생명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을 모를 때가 많음을 깨우치는 우화입니다. 어디서 삶의 참 평안을 찾기를 원 하십니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평강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을 의뢰하는 사람,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사람에게 하늘의 기쁨과 평강을 주십니다. 어려움 많고 사고, 질병 많은 세상에서 하나님의 지켜주심을 힘입는 사람들이 평강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거룩하고 성결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평강의 복이 임합니다. 말씀의 정도를 걸어가는 사람들에게 평강의 복이 임합니다. - 아멘 - 톨스토이가 쓴 단편 가운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글이 있다. 처자식을 거느린 양화공이 얼마간의 돈을 가지고 아내의 새 외투를 만들 양가죽을 사기 위하여 시장에 갔다. 가는 길에 외상값도 받을 양으로 몇 곳을 들렸으나 돈도 받지 못하고 이미 깔려있는 외상 때문에 가죽도 구하지 못한채 술 한 잔에 언 몸을 녹이며 집으로 몸을 돌이켰다. 주인공
세몬이 집으로 가는 길에 교회 벽에 기대어 앉은 알몸의 젊은이를 발견했다. 그는 자기의 누더기를 벗어 젊은이에게 입힌 채 집으로 돌아 왔다. 아내는 사오라는 외투는 없이 낯모르는 손님을 데리고 온 남편을 질타하다가 남편 세몬이 데려온 이 젊은이가 가여운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세몬의 온갖 질문에 아무 말을 하지 않던 이 젊은이가 싱끗 웃었다. 얼마 후 건장한 사람이 와서 가죽 한더미를 내 놓더니 멋진 장화를 만들어 달라는 주문을 하였다. 젊은이 미하일은 입가에 웃음을 지으며 장화대신 슬리퍼를 만들었다. 세몬은 몹시 노했으나 잠시 후 건장한 사람과 함께 왔던 사람이 숨을 몰아쉬며 들어와 이제 장화는 필요 없게 되었소 대신 죽은 자를 위한 슬리퍼를 만들어 주시오라고 부탁하는 말에 깜짝 놀랐다. 톨스토이의 유명한 작품 [부활]을 읽어 보신 분들은 아실
것입니다. 카츄사라는 한 여성의 기구한 일생을 그린 작품이기도 합니다. 카츄사는 귀족 네흘류도프의 집에 하녀로 있으면서, 네흘류도프의 의하여 더럽혀지고 타락하게 됩니다. 나중에는 유형 수가되어 시베리아로 갔습니다. 눈으로 덮인 시베리아 들판에서 부활절을 알리는 종소리를 듣고, 자기의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찾아온 네흘류도프와 함께 복음서가 말해 주는 진리의 부활의 길을 찾아낸다는 것이 그 작품의 내용입니다. 톨스토이는 그의 참회록에서 어리석은 인간에 대하여 이런 동양의 우화로 풍자하고 있습니다. 한 나그네가 광야 길을 걷다가 갑자기 맹수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맹수를 피하여 도망치던 그 나그네는 살 길을 찾아 두리번거리다가 마침 한 우물이 있어서 우물 구덩이로 뛰어들어갔습니다. 그가 살려고
우물 속으로 들어가서 우물 밑바닥을 보았을 때 큰 용이 나그네를 삼키려고 입을 벌리고 있었습니다. 이 나그네는 질겁을 했습니다. 위를 쳐다보니 맹수가 자기를 집어삼킬 듯 노리고 있고 밑은 큰 용이 입을 벌리고 있는 아슬아슬한 죽음의 위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나그네가 '이제 나는 죽었다.' 하고 체념하려는 순간 눈을 들어 옆을 보니까 마침 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그 가지가 우물 있는 데까지 뻗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나그네는 나무 가지를 든든히 붙들었습니다. 그는 나무 가지를 의지하고 살아보려고 발버둥을 쳤으나 힘은 자꾸만 빠져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것은 쥐가 나무 밑둥을 갉아먹는 소리였는데 흰 쥐와 검은 쥐 두 마리가 갉아먹고 있었습니다. 그는 나무 가지가 끊어지면 용의 밥이 된다고 생각하니 두려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쥐들이 나무 밑둥을 갉아먹는 날 나는 떨어져 죽는다.' 이런 아슬아슬한 위기 속에서 눈을 들고 나뭇잎을 봤을 때 벌이 꿀을
만들어 놓은 것이 보였습니다. 그 순간 그는 자신이 위기에 처한 것도 잊은채 꿀을 혀로 핥아먹고 있었습니다. 흰 쥐와 검은 쥐는 계속해서 나무 밑둥을 갉아먹고 있었습니다. 이 나그네는 자기가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거기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단 꿀만 빨아먹고 있었습니다. 톨스토이는 이런 우화를 인용하면서 그런 말을 했습니다.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가 어느 날 한가하게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남루한 옷을 입은 사람 하나가 모름지기 문둥병 환자 같은 그런 분이 말입니다 마주 서서 적선을 원하고 있었습니다. 뭘 좀 도와 달라고……. 그 때에 그는 자기 호주머니를 뒤져보았는데 공교롭게도 한 푼의 돈도 없는 그런 시간이었습니다. 그는 진정으로 미안한 마음이 있어서 미안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부활이라는 작품을 쓴 「톨스토이」는
‘그대 영혼의 빈자리에’라는 작품에서 “사람이 외부적인 세계를 이해하는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지극히 거칠고 확실하지 못한 오관에 의하는 인식이 있다. 그 인식의 방법에 의해 우리 내부에 형성되는 것은 우리들의 앎이 의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여러 가지로 다른 감각을 주는 혼돈이다. 1828년 러시아에 아주 못생긴 소년이 태어났습니다. 소년은 자신의 넓적한 코, 두터운 입술, 작은 회색 눈, 큰 팔과 다리를 보면서 몹시 비관하였습니다. 어느 부분을 보아도 남들과 비슷한 부분도 없었습니다. 그는 "나는 너무 못 생겨서 도저히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입버릇처럼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 소년은 자라면서 자신의 약점을 다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인생의 행복은 외모에 있지 않고 내면의 풍요로움에 있다고 믿기 시작하였습니다. 또한 진정으로 아름다운 인생은 사랑에서 나온다고 믿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사랑의 생활을 하며 인생을 아름답게 지냈습니다. 이 승화된 사랑을 주제로 글을 썼습니다. 그 작품이 바로 "부활"이고 그가 바로 러시아의 대 문호 톨스토이입니다. “하나님께서 기적을 베풀어주소서. 외모를 아름답게 변화시켜주시면 나의 모든 것을 바쳐 기쁘게 해드리겠습니다”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가 만년에 그의 사상과 행복론을 요약하여 쓴 단편 소설 “세 가지의 의문”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이 글에서 톨스토이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질문을 제기하였습니다. 이 물음에 대한 현인의 대답은 첫째는 현재요, 둘째는 현재 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이요, 셋째는 내가 만나고 있는 그 사람에게 선을 베푸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톨스토이의 우화 중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물고기들이 한번은 사람들의 대화를 엿들었는데 물고기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물이라는 이야기였습니다. 물고기들은 그토록 중요하다는 물이 도대체 무엇인가 궁금해 하면서 늙은 물고기를 찾아가 물이 무엇인지 질문을 하였습니다. 늙은 물고기는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톨스토이는 하나님의 사랑을 설명하려는 의도에서 이 글을 썼습니다. 인간이 날마다 호흡을 하면서 공기의 소중함을 모르듯 생명의 주인되시는 하나님을 모를 때가 많음을 깨우치는 우화입니다. 러시아의 소설가 레오
N. 톨스토이(1828~1910)는 “다른 사람에게 선을 행한다는 것은 행복을 얻기 위한 유일한 수단이다.”고 했습니다. 뉴욕 과학 협회 회장을 역임했던 크레시 모리슨의 간증기 속엔 알래스카의 연어 한 마리가 등장한다. 이 연어의 여행이야말로 완전한 귀향, 완전한 안식, 숙명적 귀향, 숙명적 안식인 것이다. 톨스토이의 단편소설 중에 바보 이반이 있다.이 소설의 줄거리는 매우 소박하면서도 우리의 현실을 그대로 비추는 생활의 거울과도 같다. 옛날 부유한 농부가 살았는데 그에겐 아들 셋이 있었다.그들의 이름은 세미욘, 타라스 그리고 이반이었다.그 외에 마리니야라는 청각장애인 딸이 하나 있었다.세미욘은 군인으로 성공을 했고 타라스도 돈을 벌어 출세를 했는데 이반은 장애인인 누이와 함께 집에 남아서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이후 세미욘은 귀족의 딸과 결혼을 했고 타라스 역시 그 부유함으로 남들의 부러움을 샀다.그러나 이반은 형들처럼 돈도 명예도 없이 누이동생을 데리고 순박하게 살았다.사람들은 그렇게 사는 이반을 바보라고 불렀다.그래서 톨스토이는 그 소설의 제목을 바보 이반이라 붙인 것이다. 이 소설은 오늘의 세태를 그대로 말해준다.모두가 다 지배하고 주장하려고 한다.또 남을 짓밟고 돈에만 눈이 어둡다.묵묵히 살아가고 있는 바보 이반 식의 삶.비록 바보 같지만 남을 배려하는 그 마음이 그리워진다. 불행한 가정생활 세계적인 문호 톨스토이와 미국의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은 불행한 가정 생활을 했다. 그러므로 톨스토이의 부인은 남편이 죽은 후에야 비로소 자기의 허물을 깨닫고 자기가 남편의 죽음의 원인이 되었던 것을 그 자식들 앞에서 자인하고 자기의 행한 일들이 미친 사람의 행동이었다는 것을 비통하게 고백하였다. 또 아브라함 링컨은 난폭하고 무례한 자기 부인에게 어쩔 수가 없어서 가정을 점점 멀리하고 여관에서 외박할 수밖에 없는 불행한 생활을 계속하였다는 사실이 전해지고 있다. 톨스토이와 거지 우리는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를 잘 안다. 톨스토이는 어느 날 정거장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서 구걸하는 거지를 만났다. 그 거지는 톨스토이에게 무엇 얻기를 바라서 구걸하나 때마침 톨스토이에겐 돈 한 푼 없어서 주지 못하게 되자 너무 민망하여 손을 내밀어 악수를 해 주었다. 그랬더니 그 거지는 돈을 받은 것보다 더 좋아하였다 한다. 이것은 톨스토이의 사랑의 힘이다. 자의식 육체에 대한 자의식은, 발열이나 신경과민, 피로, 권태감 등을 느끼지 않을 때에 느끼는 것처럼, 어떤 사람 또는 어떤 시대 전체의 정신적인 건강상태도 지나치게 관능적이거나 그 밖에 흥분성이 있는 것, 기이한 것을 혐오할 때에 찾아볼 수 있다. 게으름이란 죄악 6세기 말에 그레고리 교황은 사람이 범하는 죄를 일곱 가지로 분류했다. 교만, 분노, 시기, 질투, 음란, 탐욕 그리고 게으름이다. 「노인과 바다」의 작가 헤밍웨이는 부지런함을 가장 좋은 덕목으로 꼽았으며, 독일의 문호 괴테는 부지런함만이 인생을 영원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인생을 성공적으로 산 사람들은 한결같이 게으름과 거리가 멀다. 톨스토이는 “게으른 자의 머리 속은 악마가 집을 짓기에 알맞은 장소”라고 했으며, 영국의 종교가 테일러는 “게으른 자는 산 송장이나 마찬가지”라고 게으른 사람을 꾸짖었다. 최후의 날의 경고 러시아 최후의 날이 어떠한지 아는가? 톨스토이나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을 보면 문학이나 언어나 의식이나 러시아의 토기나 건물이나 교육 가운데 기독교인의 것이 아닌 게 없었다. 그런데 코카사스의 기병대가 모스크바를 향해서 쳐들어 오고 있을 때에 사제들은 모여서, 축도를 할 때 손가락을 어떻게 펼 것이며, 성직자의 가운의 색깔은 어떻게 할 것인가를 가지고
싸움을 했다. 아버지의 마음 「그리스도와 반(反)그리스도」나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 등의 작품에 의해 기독교적인 신비주의의 입장에서 현대 정신의 위상에 의문을 던진 러시아의 작가 메레제고프스키(1865-1941)가 아직 소년 시절에 「죄와 벌」, 「카라마조프의 형제들」로 유명한 대작가 도스토예프스키(1821-81) 앞에서 자작시를 읽은 적이 있었다. 끝까지 참고 들은 그는 가엾은 듯이 소년을 향해 말했다. “미숙하구나. 앞으로 좋은 작품을 많이 쓰려면 고생을 많이 해야 한단다”라고 말했다. 소년의 옆에서 함께 이 말을 들은 메레제고프스키의 아버지는 기가 죽은 아들에게 “얘야. 말도 안된다. 좋은 작품을 쓰지 않아도 좋으니 고생 같은 건 절대로 하지 말라”고 위로했다.(교수, 김성호) 톨스토이의 규칙 러시아의 작가 톨스토이는 날마다의 생활에서 지켜야 할 규칙을 손수 만들어 위반했을 경우에는 그 날의 일기에 그것을 정직하게 기입하여 반성했다. 그 규칙 속에는 점을 쳐서는 안된다거나, 한꺼번에 여러 가지 일에 손을 대어서는 안된다는 것 등이 있었는데 그가 그 규칙 중에서 가장 지키기 어려웠던 것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이었다. 규칙 위반 얼마 전 나는 우연히 브로비스키 케이트(모스크바에 있는)를 지나게 되었는데 그 문 앞에 한 늙고 지친 거지가 머리를 누더기 조각으로 감싼 채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돈을 좀 주려고 지갑을 꺼냈다. 그러나 그 순간 명주로 된 제복을 입은 깔끔하고 붉으레하게 생긴 젊은 청년이 크렘린쪽으로부터 뛰어 내려왔다. 거지는 그를 보자 놀라서,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빠른 걸음으로 절룩거리며 알렉산더 공원쪽으로 뛰어 내려갔다. 청년은 그를 쫓았으나 끝내 잡지 못하고 멈춰 서서 문 앞에 앉는 것은 규칙 위반이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나는 그를 기다렸고 그가 오자 글을 읽을 줄 아느냐고 물었다. “예, 그렇습니다. 그런데 왜 그러시죠?” “그럼 성경을 읽어 보셨습니까?” “예.” “그렇다면 이와 같은 내용을 읽어 보셨습니까? ‘그리고 굶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주는 사람’ …. ” 나는 이 말을 인용하였다. 그는 이 말을 알고 있었고, 나의 말을 들어 주었다. 그리고 나는 그가 당황해하는 것을 알았다. 어리석은 자 모스크바의 한 출판사에 헙수룩한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의 원고를 책으로 내어 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출판사 주인은 그 사람에게 말하기를 그런 원고는 얼마든지 굴러 다니고 있고 비록 그 사람이 출판 비용을 다 부담한다 해도 맡을 수 없다고 했다. 그러자 그 헙수룩한 사람은 원고 뭉치를 품에 넣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상스러운 말에 놀란 출판사 주인이 "당신의 이름이 무엇이요?"라고 묻자 그는 "내 이름은 톨스토이입니다. "라고 했다. 이 말에 기절할 듯이 의자에서 뛰어 일어 난 주인은 급히 사과를 하며 원고를 부탁했으나 톨스토이는 그냥 발걸음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볼품없다고 거절하는 사람이 없기를 바란다. 세 가지 의문 세기의 문호 톨스토이의 작품에 “세 가지 의문“이라는 단편이 있다. 줄거리는 한 임금이 인생에서 풀지 못한 세 가지 의문의 답을 구하는 것이다. 첫째 의문은 모든 일에서 가장 적절한 시기는 언제일까? 둘째 의문은 어떤 인물이 가장 중요한 존재일까? 세째 의문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일까? 왕은 국사를 행할 때 항상 이 세 가지 일로 결정을 내리는데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많은 학자들과 신하들이 별의별 해답을 제시하였으나 임금의 마음을 흡족케 할 대답은 없었다. 급기야 임금은 성인으로 잘 알려진 산골의 은자를 찾아갔다. 그러나 은자는 아무 대답없이 밭만 갈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숲속에서 한 청년이 피투성이의 몸으로 달려 나왔다. 임금은 자기의 옷을 찢어서 청년의 상처를 싸매주고 정성껏 간호를 해주었다. 알고보니 그 청년은 임금에게 원한을 품고 있던 젊은 신하였다. 비로소 그 청년은 임금의 간호에 감격하여 원한의 감정을
풀고 더 충성스런 신하가 되겠다고 맹세했다.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때는 바로 지금입니다. 사람이 지배하고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은 바로 지금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존재는 자신이 지금 대하고 있는 바로 그 사람이지요. 마지막으로 제일 중요한 일은 지금 대하고 있는 바로 그 사람에게 정성을 다하여 사랑을 베푸는 것입니다” 잊어서는 안 될 죄(罪)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의 작품인 ‘돌과 두 여인’이란 책을 보면 죄를 많이 지은 사람들일수록 자기의 죄를 깨닫지 못하고 더욱 깊은 죄악의 자리에 빠지게 된다는 내용인데 그 내용을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어느 두 여인이 노인인 스승 앞에 가르침을 받기 위해 나왔다. 이때에 노인은 두 연이게 말하기를 현재 마음 속에 무거운 짐이 되고 있는 죄의 문제가 있으면 말하라고 하였더니, 한 여인은 대답하기를 자기가 젊었을 때 남편을 한 번 바꾼 일이 있었는데 그것이 너무도 큰 죄로 생각되어 지금도 마음이 괴로와 견딜 수 없다고 고백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또 한 여자는 대답하기를 자기는 지금가지 도덕적으로 살아 왔기 때문에 아무 죄도 벌한 일이 없다고 스스로 만족해 하는 것이었다. 이때에 노인은 처음 여인에게 말했다. “신의 뜻을 따라 지시하는 것이니 너는 지금 당장 밖에 나가 큰 돌 하나를 가져오되 가능한 한 네가 들 수 있는 큰 것으로 가져 오라.”고 했다. 그리고 둘째번 여자에게는 “너는 가능한 한 작은 돌들을 가져오되 네가 들 수 있을 만큼 가지고 오라.”고 하고는 자루 하나를 주었다. 두 여인은 노인이 시키는 대로 즉시 밖으로 나가서는 큰 돌과 작은 돌들을 가지고 돌아왔다. 이때에 노인은 다시 말하기를 이번에는 그 돌들을 있던 자리에 다시 갖다 놓고 오라고 했다. 그랬더니 큰 돌을 갖고 온 여인은 있던 자리를 알고 있었기에 그대로 그 돌을 제 자리에 갔다 놓을 수 있었으나 작은 돌을 한 자루 담아온 여인은 그대로 그 돌들을 제 자리에 갔다 놓을 수가 없어 그대로 들고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노인은 말했다. “죄라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란다. 큰 죄는 언제나 기억이 되기 때문에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사람들 앞에서 겸손해질 수가 있지만 작은 죄는 속히 잊어 버리기에 자기는 죄가 없는 줄 알고 다른 사람들을 비방하기 때문에 더 큰 죄에 빠지게 되는 것이라.”고 교훈하는 내용이다.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잠28:13)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행31:9)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사55:7) 진정한 행복
약속은 지킴으로 고귀하고
빈 병 이야기(희생, 사랑)
톨스토이의 ꡐ인생론ꡑ은 삶을 운명에 맡기고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개척하며 살아가는 법을 가르친다. 그는 제정 러시아의 명문 귀족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중년에 접어들면서 번민과 죄의 절망에 깊이 빠졌다.그래서 삶의 의미를 얻기 위해 몸부림 쳤으나 해답을 얻지 못했다.주위 사람들을 찾아 의논도 해봤지만 허사였다. 그러다가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당시 귀족들이 멸시하는 투박스럽고 빈궁한 농노들을 찾아갔다.그들은 가진 것 없지만 소탈하고 단순한 생활을 하면서도 기쁨에 찬 삶을 누리고 있음을 본 것이다.톨스토이는 마침내 그 이유를 알아냈다.어려운 운명을 뚫고 나가는 그들의 힘은 바로 그리스도를 믿는 참된 신앙에서 왔던 것이다. 우리 주위에도 운명에 붙들려 꼼짝 못하고 주저앉는 사람들이 허다하다.연초엔 더욱 그러하고 어수선할 때일수록 그렇다.어떤 위기에서도 바른 인생관으로 운명을 개척해가는 위대한 힘이 필요하다. 꿈 톨스토이의 이야기 가운데 이런 것이 있다. 어느 제화공인 할아버지가 있었는데, 그는 늘 예수님을 만나보고 싶어 했다. 어느 날 꿈속에 예수님이 나타나 내일 네 집에 가겠다고 하셨다. 구두장이 할아버지는 대단히 기뻐하며 음식을 차려놓고 예수님을 기다렸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시지 않고 한번은 거지가 오고 또 한
번은 청소부 영감이 오고 저녁때는 사과장수 아주머니가 왔다. 그 사람들은 모두 가난하고 추위에 떨고 있었다. 구두방 할아버지는 불쌍하게 생각하며 예수님을 위해 준비했던 음식을 그들에게 먹였다. 그 날 밤 꿈속에 다시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톨스토이 - 인간은 좋은 생활을 할수록 죽음을 겁내지 않는다. 연탄 도둑의 회개 어느 집사님의 간증이다. 어느 추운 겨울날 저녁 연탄을 피 워놓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밤중에 너무 추워 나가 보았더니 그토록 잘 피던 연탄이 없어졌다. 그 다음날도 마찬가지였다 이는 분명 세든 사람의 소행이라 생각 했지만 교회 다니는 집사가 싸울 수도 없고 하여 참았다. 다음날 저녁 잠을 자는 척하고 나가보니 건넌방 부인이 연탄을
빼가는 것이 보였다. 뛰어나가 잡을까 했으나 큰 싸움이 벌어질 것 같아 간신히 참았다. 이런 일이 두 주일간이나 계속되었다. 어느 날 부인 이 찾아와 "제가 연탄을 가져간 줄
천국 가는 여권은 예수님의 피로 날인된 여권이다. 화장은 지워진다.
톨스토이와 거지 우리는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를 잘 안다. 톨스토이는 어느 날 정거장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서 구걸하는 거지를 만났다. 그 거지는 톨스토이에게 무엇 얻기를 바라서 구걸하나 때마침 톨스토이에겐 돈 한 푼 없어서 주지 못하게 되자 너무 민망하여 손을 내밀어 악수를 해 주었다. 그랬더니 그 거지는 돈을 받은 것보다 더 좋아하였다 한다. 이것은 톨스토이의 사랑의 힘이다.
6세기 말에 그레고리 교황은 사람이 범하는 죄를 일곱 가지로 분류했다. 교만, 분노, 시기, 질투, 음란, 탐욕 그리고 게으름이다. 「노인과 바다」의 작가 헤밍웨이는 부지런함을 가장 좋은 덕목으로 꼽았으며, 독일의 문호 괴테는 부지런함만이 인생을 영원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인생을 성공적으로 산 사람들은 한결같이 게으름과 거리가 멀다. 톨스토이는 “게으른 자의 머리 속은 악마가 집을 짓기에 알맞은 장소”라고 했으며, 영국의 종교가 테일러는 “게으른 자는 산송장이나 마찬가지”라고 게으른 사람을 꾸짖었다. 세계이해의 두 방법 사람이 외부적인 세계를 이해하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성공적인 삶
오직 뉘우친 행동을 완전히 고쳤을 때 회개는 비로소 실천되는 것이다. - 톨스토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