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길을 걷겠다고 노숙자가 되자 사람들은 제정신이 아니라고 했다. 시를 쓰고 책을 읽느라 학교는 낙제했다. 국문학을 공부하고 국어 교사가 되는 행운을 얻었으나 포기하고 잡지사에 들어간다. 하지만 반년이 안 돼 퇴사했다. 이후 클래식 음악카페를 열었지만 석 달 만에 문을 닫았다. 출판사에 취직했다가, 바바 하리 다스의 『성자가 된 청소부』 원서를 읽고 그 책을 번역하겠다는 일념으로 회사에 사표를 냈다. 이후 뉴욕으로 떠났다가 인도의 명상 센터에 머물다가 서귀포에서 두 해를 살다 또 서울로 왔다. 지금도 한 해에 서너 번 인도를 여행한다. 류시화는 자신의 삶을 두고 “방황한다고 길을 잃은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인간은 ‘호모 비아토르Homo Viator’ 즉 떠도는 사람, 길 위의 사람이다. 봄이 자꾸 머뭇거리던 3월의 한낮. 류시화 시인과 마주했다. 그는 선택을 앞둔 순간 ‘이 길에 마음이 담겨 있는가?’를 생각한다고 했다. 불확실한 시대에 한 권의 책을 쓰고 남기는 일. 류시화는 “다만 길 위에서 당신과 함께 인생을 이야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20년 만에 펴낸 에세이다. 30대 초반에 쓴 산문집은 바로 절판을 시켰다. 내가 깊이 경험하지 않은 것,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것에 대해 문학적 수사를 동원해 글을 썼다는 자책감이 컸다. 이후 ‘나 자신이 경험한 것만을 쓰자’고 결심했다. 경희대학교 국문학과에 문예장학생으로 입학해 산문을 몇 편 썼는데, 당시 우리를 가르치시던 소설가 황순원 교수께서 이런 말씀을 했다. “시는 젊어서 쓰는 것이고, 산문은 나이 들어서 쓰는 것이다.” 시는 고뇌를, 산문은 인생을 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제 산문을 쓸 만큼 나이가 들었다. 하지만 더 나이가 들어 ‘경전’을 쓰지 않게 되기를 바란다. 나는 언제까지나 그저 시인이고 떠돌이 여행자일 뿐이다. 평소 인터뷰를 안 하기로 유명하다. 독자들을 따로 만나는 행사도 하지 않았다.
시인으로서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고 지금도 받고 있다. 독자의 관심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이 산문집은 골방에서 쓴 글이 아니다. 따라서 거리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여행자로서 만난 사람들이 당신에게는 스승이 아닐까 싶다. 러시아 출신의 게오르기 구르지예프는 20세기 유럽인들의 의식 변화에 큰 영향을 준 신비가이며 영적 스승이다. 그는 서양 문화권이 명상 교사나 스승들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토대를 닦았다. 심오한 사상에도 불구하고 그의 생애가 미스터리였는데, 훗날 어떤 이가 그를 가르친 스승들을 추적해 책을 썼다. 놀랍게도 그의 스승들은 구두 수선공, 향수 판매상, 마을의 숨어 사는 노인 등이었다. 여행지에서 우리는 낯선 여인, 혹은 처음 보는 아이와 눈이 마주친다. 그럴 때 우리는 언어가 달라도 삶에서 똑같은 경이와 슬픔을 느낀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똑같은 행복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 자신도 무너지거나 절망한 적이 많다. 그럴 때 나를 일으켜 세워 준 사람들, 내가 길을 잃었을 때 방향을 가리켜 보인 이들 모두가 나의 스승이다. “인생은 관광이 아니라 여행이다”라고 했다. 주체적인 인생을 살라는 뜻인가?
근작이 2015년에 출간한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이다. 시를 더 많이 발표해야겠다는 생각은 없나?
평소 시를 종이에 쓰지 않고, 입속에서 수없이 중얼거리면서 외워 쓴다. 메모는 전혀 하지 않나?
최근에 암송해서 쓴 시가 있나?
당신과 나 구호와 선동이 난무하는 시대, 시가 더 많이 필요하다
문학은 ‘은유’다. 은유로 말하는 것이 시이며 문학이다. 은유는 그 안에 많은 층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해석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그것이 문학의 은유가 주는 울림과 깊이다. 직설적인 표현과 구호가 지배하는 사회는 획일적이고 공격적이며 깊이가 얕다. 은유가 사라진 사회는 비극이다. 사람들이 은유를 이해할 인내와 상상력을 잃어버릴 때, 그들이 선호하고 열광하는 지도자들은 대개 직설적인 구호를 남발하고 돌직구를 날리는 선동꾼이다. 작가와 시인들은 여기에 동참하지 말아야 한다. 은유는 풀꽃이고, 강의 물결이고, 철쭉의 붉음이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 세계와 영혼의 세계도 은유로 가득 차 있다. 인도 시인 K. 사치다난단의 시에 이런 구절이 있다. ‘당신의 시선은 돌/ 그것이 유리처럼 나를 깨뜨린다’ 최근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나?
“타인이 생각하는 나는 내가 아닐 때가 많다”고 했다. 자신을 잘 아는 것만큼 인생에 큰 도움이 되는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하면 나 자신을 잘 알 수 있을까?
지금까지 50여 권의 명상 서적을 번역했다. 출판사의 의뢰를 받아서 번역한 책이 아니라 직접 선택한 책들이다.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의 표지는 20년 가까이 함께한 디자이너 ‘행복한 물고기’가 맡았다.
최근 ‘엮은 시집’이 많이 출간되고 있다. 1998년에 펴낸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이 시초가 됐는데, 몇 차례 출판사로부터 거절당했던 책으로 알고 있다.
예찬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사람이 가장 가난한 사람 여행 중에는 책을 들고 가지 않는다고 들었다. 대신 여행지에서는 책방을 들른다고.
인상 깊었던 대목이 있나?
지금 어떤 시집을 읽고 있나?
번역가로 당신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들도 많다. 일 년에 적어도 한 권은 번역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것이 이번 생에 내게 주어진 사명이라고 여긴다. 성경의 『시편』과 『아가서』를 번역하고 싶고, 인도의 고대 사상서 『바가바드 기타』를 번역하고 싶고, 소로우의 방대한 일기도 번역하고 싶다. 이 계획들을 10년 전, 아니 20년 전부터 해 오고 있지만, 매번 새로운 책들에 유혹당해 미루고 있다. 지금은 융 심리학자이며 원형 이론 전문가인 캐럴 피어슨이 쓴 『The Hero Within』을 번역하는 중이다. 우리 내면에는 고아, 방랑자, 전사, 이타주의자, 순수주의자, 마법사 등 6가지 심리적 원형들이 있는데, 이 중 어떤 원형이 자신을 지배하고 어떤 원형이 억압되어 있는지 이해함으로써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내용이다. 현실에 색을 입히는 법으로 ‘예찬’을 꼽았다. “덜 움츠리고 덜 비난하고 더 많이 예찬하라”고 했다. 당신은 세월을 보내며, 예찬의 대상이 달라졌나? 또 덜 움츠리게 되었나? 당신이 감동할 때는 어떤 순간인가? 우리는 나쁜 뉴스가 끊임없이 들려오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나쁜 뉴스’란 우리가 그것에 대해 어떻게 할 수도 없이 이미 일어나 버린 나쁜 일들을 의미한다. 세상뿐 아니라 개인의 삶에도 나쁜 뉴스가 계속해서 일어난다. 그 나쁜 뉴스들은 우리에게서 삶과 세상에 대한 ‘예찬’ 능력을 앗아가 버린다. 사실 이것이 우리 자신에게는 훨씬 더 나쁜 뉴스다. 프랑스의 소설가이며 심미가인 미셸 투르니에는 산문집 『예찬』에서 ‘볼바시옹volvation’이라는 단어를 소개한다. 이는 고슴도치가 조금만 위험이 닥쳐도 몸을 둥글게 움츠리는 현상을 의미한다. 고슴도치식의 방어법이다. 인간 역시 세상을 향해 마음을 닫는 반사적인 행동에 길들여진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에 대해 변화를 시도할 수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나쁜 뉴스가 아니다. 어김없이 봄이 오고, 세상의 모든 곳에서 일출과 일몰의 릴레이가 이어지고, 파도가 쉼 없이 춤추는 한 우리는 수많은 예찬할 것들로 둘러싸여 있다. 예찬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사람이 가장 가난한 사람이다. 예찬과 행복은 비례할까? 여기 좋은 일화가 있다. 삶과 세상에 대해 끊임없이 불평을 늘어놓는 제자에게 어느 날 영적 스승이 소금 한 줌을 물에 타서 마시게 한다. 그리고 묻는다. “맛이 어떤가?” 제자가 말한다. “너무 짜서 먹을 수가 없습니다.” 이번에는 스승이 근처 호숫가로 제자를 데리고 가서 호수에 소금 한 줌을 뿌리고는 호수의 물을 한 모금 마셔 보게 한다. 그리고 맛이 어떠냐고 묻자, 제자가 말한다. “시원합니다.” 스승이 “소금 맛이 나느냐?”고 묻자 제자는 “안난다”고 대답한다. 삶과 세상의 문제는 소금과도 같다. 소금의 양은 같지만, 우리가 얼마만 한 넓이의 마음으로 그것을 인식하는가에 따라 불평의 정도가 달라진다. 스승은 제자에게 조언한다. “유리잔이 되지 말고 넓은 호수가 되라.” 아마 책을 좋아하고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당신의 인터뷰를 읽을 것이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시인이기 전에 한 개인으로 바라는 것이 있나?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류시화 저 | 더숲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