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설공주가 사랑한 사과의 원산지는 어느 지역 사과일까요

우주의 기운을 담은 유기농 호박고구마

충남 서천군 마서면 남전리 합전마을에 세계의 중심 아리랜드가 있다. 조개마을(蛤田) 이름 그대로 서해안의 전형적인 바닷가 마을이다.

아리랜드에 들어서면 동백동산 입구 시비(詩碑)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이곳에서 방문객들은 이 땅의 역사(歷史)와 소망(所望)앞에서 마음을 한 번 여미곤 한다.

이 땅이 세계의 중심되게 하소서!
나 이 땅에 한 씨알을 심었네
우리의 생명과 농업을 보전할....

난 기도했네 이 땅이
세계의 중심이 되길...

그리고
난 바라보네
언젠가 이루어질 아름다운 세계를 ....

정순보(1904~1992)

백설공주가 사랑한 사과의 원산지는 어느 지역 사과일까요

지난 1997년 아리랑농장을 처음 방문했다.

동백동산에서 '이 땅이 세계의 중심되게 하소서'라는 자기고백적 선언을 읽고 30대 후반의 나는 한참동안 내면 깊숙이 뜨거운 것이 솟아오름을 느꼈다. 그랬다. 간결하지만 영혼이 담긴 농업적 비전을 처음 만난 것이다.

그날 정의국씨와 첫 대면 인사를 나누자마자 '세계의 중심'은 어떤 의미인가요? 물었고.... 집으로 올라와 여러 생각 끝에 많은 이들과 소통하며 세상의 중심으로 살기로 마음먹었다.

그날 이후 나의 온라인 아이디는 'ecenter'이고 닉네임은 '세상의 중심'이다.
내가 바르게 서야 세상도 바르게 서는 의미도 덧붙여서 좌우명으로 삼았다.

아리랜드는 1948년에 정의국씨의 아버님 정순보 선생이 일군 아리랑농장이 모태다. 1992년 작고한 고(故) 정순보 선생은 육종가로서 십자화과 채소인 배추와 무의 품종을 개발, 채종하여 업적을 남긴 전문가다.

또 선생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튜울립과 히야신스를 노지재배로 서해안에 피게 해 1960년대 초 경제여건이 어렵고 교통이 불편한 시절에도 튜울립을 보러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모여 들었고 전국 종묘상들을 통해 퍼져나갔다.

그때 튜울립과 함께 황무지를 개간하여 가꾼 7~80년된 동백나무 100여 그루와 수선화 10여만송이, 각종 나무와 새들의 노래소리는 아리랜드의 주요한 볼거리이자 '찾아오는 농촌(농촌 어메니티)'의 밑거름이 되었다.

정순보 선생은 아리랑농장을 세우면서 '세계의 중심'이 되는 꿈을 심었다. 힘이나 돈으로 치면 뉴욕의 맨하탄이나 워싱턴같은 미국의 어느 도시나 공간이 중심이겠지만 생태계가 살아있고 올바른 먹거리로 사람을 살리는 곳, 사람들과 소통(疏通)이 이루어지는 곳이야 말로 진정한 '세계의 중심'임을 선언하며 서천에 한 알의 씨앗을 뿌렸다.

정순보 선생의 일생은 교회적인 형식 없이 인생을 헌신했다.
故 함석헌 선생과의 교류로 삶은 충만했고 풀벌레 노래소리 하나하나에 귀를 기울였다.

유기농 호박고구마를 길러내는 바이오다이나믹 농법(Biodynamic Agriculture)

1924년 루돌프 슈타이너(Rudolf Steiner, 1861~1925) 박사에 의하여 독일에서 시작된 농법으로 하늘(우주)의 힘이 땅을 살리고, 작물하고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 살아있는 건강한 농산물을 생산하는 것이므로 이 땅에서 자란 농산물이 인간의 육체와 정신을 살릴 수 있다고 강조하는 농사법이다.

인지학, 정신과학, 교육학, 철학, 예술 등 발전에 큰 업적을 남긴 '루돌프 슈타이너'는 1923년 농민들의 요구에 의한 농업강좌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사람이 어떤 일을 실천에 옮기는 중요한 요소는 사람들이 어떤 것을 먹느냐에 달려 있다. 오늘날 사람이 먹는 것은 생각하는 것을 실제행동으로 옮기는 마음을 내기가 어렵게 만든다. 요즈음 사람들이 먹는 곡식이나 채소(관행 화학농법)에는 사람이 필요로 하는 기운이 들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정신이 사람을 통해 나타나느냐 그렇지 않느냐, 마음먹은 바를 끝까지 지켜내어 이를 수 있느냐 없느냐는 사람이 어떠한 것을 먹느냐에 달려있다."

아리랜드는 매년 행성들의 주기를 파악하여 반영한 바이오다이나믹 농사력(정농회 발간)을 기준으로 농사를 짓는다.

즉 우주의 기운의 변화에 따라 열매의 날, 꽃의 날, 잎의 날 , 뿌리의 날들이 있고 해당 작목별로 날을 가리고 작목을 구분하여 농사짓는 것이다. 농작업에 적합하지 않은 시간 '휴경하는 날'도 있다.

바이오다이나믹 농법으로 농작업을 결정하는 예를 들어본다.

● 밭갈기, 이랑만들기, 묘상준비, 씨뿌리기, 괭이질, 북주기 등의 작업이나 손질 수확 등은 해당작물의 종류에 맞는 시간대를 선택하여

    실시한다.

● 날씨나 흙상태등의 형편에 따라 파종 등에 좋은날을 선택하지 못한 경우에도 이후의 손질을 그 작물에 적합한 시간대에 실시해주면

    많이 개선된다.

● 묘의 정식, 이식, 삽목, 수목의 전정작업 등은 정식 적기중에서 해당작물의 종류에 맞는 시간대를 선택한다.

● 유제품의 가공, 빵 만들기, 저장식품의 가공 등은 '휴경시간'과 '잎의 날' 시간대에는 행하지 않고 '열매의 날', '꽃의 날'시간대가 적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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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5월 농사력(바이오다이나믹 농법)
아리랜드는 정농회(正農會) 초창기 멤버로 참여하여 활동하고 있다.
정농회원들은 1994년부터 바이오다이나믹농법(생명역동농법)을 도입하여 유기농운동을 실천하고 있다.

사단법인 정농회(正農會)는 바른농사, 바른살림, 바른먹거리를 지향하는 크리스찬 농업인조직으로 1976년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유기농업'의 깃발을 세운 사람들이다. 나는 1996년~97년 정농회에서 생산한 농산물을 판매 관리하는 정농생활협동조합 사무국장으로 일을 한 계기로 아리랜드와 인연을 맺었다. 그 무렵 회원농가들을 현장조사차 만나면서 바이오다이나믹 농법과 정농회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에 몰입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작물이나 사람이나 동물이나 저 혼자 살아 가는게 아니구나 싶었고 자연의 순환(循環)고리가 얼마나 분명한 자기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체득할 수 있었다.

물량중심의 이익에 눈멀어 땅으로부터 모든 것을 수탈하는 농업생산방식이 아니라 사람과 땅과 하늘이 조화롭게 운행되어야 한다는 정신은 유기농업을 실천하는 정농회의 정신과 궤를 같이한다.

아리아랑 유기농 호박고구마


독일, 이태리 등 선진유럽에서 최고로 치는 유기농산물 브랜드는 "데메터(Demeter)"다. 이 데메터는 생명역동농법( 바이오다이나믹)을 적용하여 생산된 농산물을 의미하는 것으로 소비자들의 신뢰를 얻고 있다.

아리아랑 유기농 호박고구마는 바이오다이나믹 농법(생명역동농법)에 따라 우주의 기운을 온전하게 받은 것이다. 비닐 멀칭도 하지 않고 햇빛, 달빛, 별빛, 그리고 바람을 골고루 받을 수 있도록 노력했고 오염되지 않은 황토밭에서 잘 자라난 것이다.

맛은 또 어떤가?
경쾌한 단맛이 난다. 뭔가 인위적으로 만들어지고 조정이 된 맛과는 다르다. 깊다. 내 몸 하고 맞아 떨어지는 느낌으로 물리지 않는다. 황토 땅이 천지운행의 기(氣)를 받아서 그런 것일까?


호박고구마 날것을 단면으로 보면 주황빛이 완연하고 하얀 녹말이 흘러나온다. 단맛이 강하고 부드럽다. 각종 비타민과 영양소가 풍부해 아침식사 대용 샐러드나 쥬스 재료로 이용된다. 고구마 밥을 만들어 먹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 호박고구마는 잎과 꽃이 예쁜 보라색을 띈다.
호박고구마 꽃은 여간해서 잘 보기 힘들어서 보게 되면 행운이 온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아리랜드 유기농 호박고구마 밭으로 황토밭의 특성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거기에다 일체의 농약을 치지 않는 농부의 땀방울이 스며있다.
이 밭에서 5월 '뿌리의 날' 파종을 하고 10월 '뿌리의 날'을 골라 수확을 한 것이다.
버릴게 하나 없는 유기농 호박고구마

 

▲ 아리아랑 유기농 호박고구마를 가공하여 만든 유기농 호박고구마 전분
호박고구마는 버릴게 하나 없다.
상품으로 내서 쪄먹고 구워먹고, 튀기고... 생식으로 응용하기도 하고.....

남거나 부러진 녀석들은 전분(녹말가루)으로 가공한다. 가공과정중 중간중간 나오는 액상(液狀)은 액비로 쓰고 나오는 슬러지(찌꺼기)는 제 땅으로 돌아가 거름이 된다.

전 과정을 거치고 나온 가루(전분)는 호박고구마 묵을 쑤어 아이들 이유식으로도 좋고 간식으로 활용하기에 좋다. 각종 밀가루 반죽에 넣어 잃어버린 요리 몇 가지를 살릴 수도 있다. 그에 따라서 여러 가지 이야기도 생겨나기 마련이다. 아이들에게 우리식품의 신기한 진기명기(?)를 보여주니 교육용으로도 손색이 없다.

찾아오는 농촌을 넘어 살고 싶은 농촌을 꿈꾼다.

아버님의 유지를 이어받아 아리랜드는 농촌의 희망은 '찾아오는 농촌'에 있다고 보고 지금까지 열심히 해왔다. 정의국씨 내외는 지금까지의 성과를 바탕으로 또 다른 꿈을 꾼다.

 

▲ 정의국, 최애순 부부
10년, 20년 뒤에는 '찾아오는 농촌'을 넘어서 '살고 싶은 농촌'을 만드는 일이다. 그리하려면 자연환경이 잘 보존되고 지속가능한 경제활동이 이루어지는 마을을 만들어야 하는데 아리랜드는 그 중심역할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2006년 정의국씨는 호주 '크리스탈워터즈'에 연수를 다녀왔다. 크리스탈워터즈는 UN이 정한 세계생태마을중 한 곳으로, 자연적으로 뛰어나고 열대우림 같은 숲을 자랑한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주민들의 마인드가 다양하고 경력 또한 다채롭다. 구성원들은 엔지니어부터 시작해 없는 직종들이 없을 정도다. 그때 본 생태마을 시스템을 도입해 응용할 생각이다.

풀꽃에서부터 각종 수목, 꽃, 새, 작물, 곤충, 동물, 지렁이, 두더지.....
생태계의 모든 것이 도시의 소비자와 어린이에게 향수가 되고 교육의 장이 되는 것이지요.

정의국씨 이야기는 이어진다.

앞으로 남아있는 일은 후손에게 자랑스러운 조상이 되는 일이다. 우리의 후손들이 이 농촌을 지켜간 조상들에 대해 위대한 정신으로 고요히 인내하며 이곳을 지켜내었다고 고백하는 모습을 그리면서 오늘을 걸어간다.

아리랜드는 이렇게 아들의 아들로 이어지며 '살고 싶은 농촌'으로 진화해 가고 있다.
세계의 중심이 되어가는 것이다.

통밀이 살아 숨쉬는 우리밀빵

관절염과 통밀빵
이 둘간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답은 "온도,습도,기압의 바로미터" 이다.

비오거나 날이 짙게 흐릿해지기 하루나 이틀전이면 관절염을 앓는 어르신들 무릎이 시리거나 뭔가 이상 징후가 온다.

마찬가지...
통밀빵도 빵이 작아지며 크게 부풀어 오르지 않는다 싶으면 영락없다. 곧 비가 오거나 흐린다. 인력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그만큼 온도와 습도 기압에 민감하다. 그런거 보면 사람사는 일이나 올바른 먹거리나 자연의 품안에서 순환하는게 맞는 일이지 싶다.

속 모르는 고객들은 왜 그렇게 빵이 작아지냐고 불만을 표시하곤 한다. 빵 중량은 같은데 부풀어 오른 크기가 작아져서 그런 것이련만 ...

그러니 통밀생명빵은 살아있는 생물 같은 느낌이 든다. '기분 좋은 섬짓함'이 묻어난다.

보태는 삶

전북 남원 금지면 옹정리 우리밀빵 토종식품...
길을 찾아 들어서니 외벽에 빨간색으로 '우리밀빵'이 선명하다. 내게는 낯설지 않은 7080 분위기가 난다.

자칫 만남이 뒤로 미루어질뻔 한 상황에서 본 경우라 두분이 영 바쁘면 다음 기회에 만나 이야기를 살필까 하던차였다.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던중
"아이들은 어떻게 두셨나요?"

"아! 예 다섯을 키웁니다. 많지요? ㅎㅎ 위로 아들 녀석들이 셋(대학생,고교생,중학생)이고 아래로 딸아이 둘입니다. 필자와 비슷한 연배라 쉽지 않은 선택이다 싶어 우와! 어떻게 아이 다섯을 낳을 생각을 하셨어요?"

호호호... 안지기가 웃기만 한다.

"예! 은서와 서연이 두딸내미는 입양을 해서 새끼가 되었어요. 입양복지회 같은 곳에서 봉사활동을 하다가 딸아이들을 키우고 싶어서 각각 15개월,17개월 된 녀석들을 데려와서 키우기 시작했어요. 지금 막내가 4살이고 넷째가 7살입니다. 그 녀석들이 얼마나 많은 행복을 주는지... 아이들에게도 입양사실을 공개했고 온 식구가 잘 녹아들어 즐겁게 살아갑니다. 큰딸이 얼마나 말이 많은지 원..."

나는 바싹 다가앉았다. 입양한 사실이 의(義)로워서 궁금한게 아니라 '일상(日常)'으로 받아들이는 그들의 모습에 호감이 가서다. 특별한 일이 아니라 누구나 하는 일상으로 두 아이와 함께하는 엄마 아버지의 담담한 모습에 자못 경외감이 들었다.

"이 애들 잘 키우려면 부지런히 돈을 벌어야 해요. 많이 도와주세요. 안선생님!"

그랬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들 부부의 삶은 '시시각각 세상에 보탬이 됨'이 컨셉이지 싶었다. 식구들의 삶과 이야기가 이어지고 이어져 퍼져가면 갈수록 세상은 그만큼 따뜻하고 정겨워 질테니까.....

▲ 통밀을 발아시켜 생명활동이 가장 왕성할 때 빻아서 만든 빵

▲ 통밀생명빵 모듬

▲ 통밀크래카

아토피환자가 먹어도 좋은 빵, 인간존중의 빵, 생명의 빵

어머님이 편찮으셔서 고향으로 간병차 내려왔다가 1년 반만에 아버님 어머님 두분이 연달아 돌아가셨다. 무너지는 가슴 부여잡고 그길로 남원에 자리를 잡았다.

1997년부터 빵을 구웠다.
빵을 구울때도 토종식품은 세상의 많은 사람들을 향해 마음을 보탠다.

- 우유와 계란을 쓰지 않는다.
- 각종 첨가물을 효모이외에는 사용하지 않는다(무방부제,무표백제,각종 향신료...).
- 우리밀 통밀을 통째로 빻아 만든다.
- 우리밀은 무농약 농산물이다.

요즘은 닭과 젖소도 대부분 항생제가 포함된 사료로 키우므로 우유와 계란 알레르기가 있거나 아토피가 있는 사람들에게 우유와 계란이 들어간 빵도 영향을 끼치기 마련이다.

요즘은 대기업에서도 우리밀 빵을 만든다는 CF가 나오는데 밀가루만 우리밀이지 각종 첨가제는 어떤 것들인지 궁금하다.

노인이나 밀가루 음식을 잘 먹지 않는 분들은 빵을 먹으면 소화가 안되고 속이 쓰린 경험을 하게 되는데 통밀로 만든 토종식품 빵은 그 부담을 현저히 줄여준다.

▲ 단팥빵

만인의 빵 단팥빵

대전에서 중고등학교 시절
하교길 로망중의 하나 여자친구와 빵집 드나들기...
그리고 그 안에서 단팥빵 먹기....

철원 김화에서 군대생활 할 때
내 몸 깊숙한 곳으로부터 요구되던 단맛의 기준은
비로 단팥빵이었다.

토종식품은 안지기가 우리 팥으로 직접 앙금을 만들어 단팥빵 속으로 쓴다. 단맛이 단맛하나로 나타나지 않는다. 덜 달지만 몸에 맞고 깊은 맛은 마음 한켠에서 보너스로 느껴진다.
올리브유도 엑스트라버진을 쓰는데 정제되지 않은 압착유다. 쌀로 치면 현미다.

양광석 사장은 밀가루를 구매하는게 아니라 통밀자체를 구매해 공장에서 직접 빻아서 빵을 굽는다. 이렇게 빵 이야기를 정리하니 인간존중의 빵이고 생명사랑의 빵이며 건강빵일수밖에 없다.

입에는 다소 거칠고 투박하지만 오래 씹으면 씹을수록 구수하다. 우리 몸에 제대로 된 영양소로 작용을 한다.
그렇게 토종식품은 또 다른 측면으로 자신들의 삶을 세상에 보태고 있다.

이런 특징으로 토종식품 통밀빵은 전국적으로 매니아층이 형성되어 있다. 즉 통밀빵의 가치를 아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다는 이야기다. 2003년도에는 SBS를 통해 전국적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 옆지기 양광석 사장, 안지기 서성심 내외

제빵사를 따로 두지 않고 두내외가 직접 빵을 만든다.

원료의 구매와 생산 그리고 교합하고 반죽하는 것은 옆지기 양광석사장의 일이고 성형하여 빵을 굽고 포장하는 것은 안지기 서성심씨의 일이다. 보조 2명이 따라 붙지만 핵심일은 두내외가 관장하는 것이다.

언제가 가장 기쁘냐고 물었다.
"예 자식 키우는 것하고 같아요, 농사짓는 분들하고도 같구요^^ "
"오븐에서 예쁘게 구워져 나오는 빵을 만날 때면 마음으로 환호성을 지릅니다. 소비자들로부터 따뜻한 격려를 받을 때는 세상사는 보람을 느낍니다"

맛있게 통밀빵을 드시는 방법을 일러 달라 부탁했다.
통밀식빵, 통밀새싹식빵(통밀을 발아시켜 만든것)등 식빵이 5가지 나오고 단팥빵,소보루등과 과자류 포함해서 16가지를 생산한다. 오븐에서 갓 구워낸것 보다는 2~3일 지난후 드시는게 더 좋다고 이야기 한다.

이유는 빵을 부풀게하는 이스트가 3일이면 제역할을 다하고 소멸이 된다. 굳이 우리 몸에 해로운 것은 아니지만 온전하게 통밀빵을 즐기시라고 권하는 것이다.

방부제등이 들어있지 않으므로 여름에는 무조건 받자마자 냉동실에 보관하고 드실 때 마다 살짝 찜을 해서 먹으면 제 맛을 즐길 수 있다.

남원에서 올라오는 내내 차안에서 나는 보리건빵(크래커)의 마력에 빠져 연신 오물오물 거리고 있었다.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했다.

양광석씨 내외의 삶도 고소하고 과자도 고소했다.
곱씹으면 씹을수록
물리지 않는 맛이다.


맛을 보면 깜짝 놀란다 무주 양한오 사과

사과하면 떠오르는 유명한 이야기가 여러 가지 있다.

이브와 아담의 사과는 '태초(太初)의 사과'
만유인력 뉴턴의 사과는 '과학(科學)의 사과'다.

화가 세잔느의 정물화 속 사과는 '우정(友情)의 사과'이고
트로이의 황금사과는 '미(美)의 사과'다.

활의 명사수 윌리암텔의 사과는 '자유(自由)의 사과'이며
철학자 스피노자의 사과는 '종말(終末)의 사과'이고
나폴레옹의 사과는 '희망(希望)의 사과'다.

백설공주의 사과는 '미혹(迷惑)의 사과'다

그리고 하나 더 아홉 번째로 우리나라에는 '맛보면 깜짝 놀라는 사과'가 있다.


전북 무주 양한오 '나만의 사과' 그가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무풍사과축제

▲ 감홍, 기꾸, 료마, 미시마, 시나노, 야다까, 양광, 조나골드, 추영, 홍로....

지난 10월말
무주군 '무풍사과축제'에 무주농업기술센터 김영수 소장의 초청을 받았다.
한해 농사를 수확하고 마무리하는 시점이라 대동제 성격도 가미된 잔치였다. 하늘에 감사하고 이웃끼리 정도 나누고...

시골 어르신들이 오순도순 삼삼오오 고단했던 한해 농사의 회포를 푸는 모습이 여기저기서 눈에 띈다. 막걸리 한잔에 정이 듬뿍 듬뿍 날라 다닌다.

입구에 들어서니 사과가 종류별로 진열 전시된 시식코너가 눈에 띈다.
사과 각자의 이름도 다르지만 색택도 다르고 맛도 차이가 난다. 저마다 유전자적 특성을 지니고 있을테니 사람들 제 각각인 것이나 사과 다른 것이나 매한가지이겠다.

열 가지 사과 맛이 궁금해서 시식을 해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사과 맛이 다 사과면 사과지 뭐 별반 다를라구?"

"야! 이거 확연히 다르네..."

그랬다. 시중에서 한가지 골라 먹을 때는 입맛이 간사해서 잘 구분이 안되다가 이렇게 동시에 맛보는 입은 간사함을 넘어선다. 아주 정밀해지는 것이다. 혀의 민감한 미각이 사과 맛의 개체별 차이를 구체적으로 느끼게 한다.

난 추영, 시나노, 야다까를 시식했다 양광과 홍로는 이전에 먹어본 경험치가 있어 다섯 가지를 맛본 셈이다.

껍질두께, 색깔의 차이, 즙액의 차이, 단맛의 구분, 과육이 씹히는 정도 그리고 고유한 향기... 기본적인 상식에 근거하고 말초적이고 단순한 감각으로 나누어 봐도 다 다르다.

음~ 이렇게 골고루 사과를 운영하는 양반은 누구일까? 궁금했다.

저렇게 적지 않은 양의 사과를 종류별로 무료 시식하도록 하여 무풍사과의 우수함을 널리 알리려는 판단은 개인 농장으로서는 쉽지 않은 선택이지 싶어서다.

김영수 소장에게 무주에서 안병권 보부상단의 컨셉에 맞는 이야기가 풍부한 사과농장 한곳을 소개해줄 것을 요청했다. 직원들과 요모조모 숙의를 하더니 농장 한곳을 추천한다.

바로 축제 행사장 입구에 마련된 10여가지 사과 시식코너를 운영하는 주인공 양한오씨였다.

그렇게 조금은 거만한(?) '나만의 사과' 주인공 양한오씨를 만났다.
사과에 관한 한 거침없는 포스가 뿜어져 나온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나만의 사과'란다.

무주사과의 개척자


전북 무주군 무풍면 금평리 대덕산자락에 상은농장이 있다.

대덕산자락의 곁은 대단하다. 노란색테두리 안이 상은농장(14,000평)인데 저 정도만 해도 해발 560여m 고랭지다. 사진 오른쪽으로 보이는 산 덩어리(대덕산)가 웅장함으로 사람을 압도한다. 아주 큰 것을 마주 대할 때 덮어놓고 느끼게 되는 경외감 비슷한 것 포함해서...

사과농장으로는 천혜의 조건을 갖춘 곳이구나 단박에 알아차리겠다. 일교차가 크고 오염원이 적고 일조량이 풍부하고... 오고 가는 바람도, 하늘에서 내려오는 햇볓도 사과농사에 안성맞춤일듯했다.

1990년대 초 이전에는 무풍은 주로 담배, 고랭지 배추, 무 농사가 주류를 이루고 있던 큰 특색이 없는 지역이었다. 이곳에 양한오씨는 사과품종 10여 가지를 들고와 사과시대를 열기 시작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친놈이라며 손가락질 해대기 일쑤였다. 여기서는 사과가 안된다는 게 이유였다.

심지어 지역출신으로 고관대작을 지낸 한 분은 공연한 생각으로 무주사람들을 혹세무민한다며 대놓고 면박을 주었다. 하지만 10년 후 무주 무풍의 주 수입원으로 사과산업이 자리잡고 나서는 그 면박을 주던 분이 '무풍을 살린 개척정신의 소유자'라고 치켜세우기도 했다.

누구나 개척자는 외롭다.

손가락질 받고 때로는 어이없는 이야기로 상처받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양한오씨는 사과의 최고품질을 경신해내며 무주에 반딧불사과의 지평을 새롭게 열고 사과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일이 되어가고 돈을 버는 모습을 보이니 많은 사람들이 따라오기 시작했다.

양한오 '나만의 사과'

▲과수원에서 양한오(62세)

양한오씨의 나만의 사과가 나오는 과정은 드라마틱하다.

나무전정, 접지, 적과
땅심 키우기
12가지 미량원소 관리하기
색상을 자연적으로 만들어 내기
사과나무 부위별로 관리하기
선호도가 높은 사과 만들기
단풍이 제때 들도록 하기
기타 여러 가지...

하나하나 이야기가 아닌 게 없다.

사람들은 당도만 높으면 선호도도 높아진다고 이야기하나 양한오씨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더 중요한 것은 신미(신맛), 아삭거림, 고유의 향 등이 정확하게 발현이 되야 하고 나무의 본성에 얼마만큼 충실하게 다가서느냐에 달려있다고 주장한다.
고객들의 '선호도'에 방점을 찍는 것이다. 사과재배 전 과정을 '시스템'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그 중 몇 가지를 살펴본다

1. 12가지 미량원소 관리

붕소, 아연, 마그네슘, 철, 망간, 황 등 12가지 미량원소중 하나라도 결핍하게 되면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되므로 연중 이 미량원소관리에 신경을 바짝 쓴다.2. 사과는 제때 단풍이 잘 들어야 한다.

사과수확 무렵 사과 잎 단풍이 제때 잘 들도록 관리한다. 영양이 너무 과하거나 생장시스템에 문제가 있으면 잎이 단풍 들기를 주저한다. 그러다 보면 과육의 당도와 품질에 영향을 끼치기 마련이다.

또 단풍이 잘 들어야 그 겨울에 꽃눈(다음해 사과가 달리는 곳)이 얼지 않는다. 사과나무 스스로 살아내려는 몸짓을 최대한으로 도와주는 것이다.

3. 멍텅구리와 뺀질이


살아가는 것들은 다 제각각이다. 제 성질대로 산다. 한 나무에 달린 사과도 마찬가지다.
수확할 시기에 나뭇가지의 가운데 부분에 달리는 사과들이 달고 맛있고 색깔도 좋게 나타난다.

나무 줄기에 가까운 가지 근방에 달리는 녀석들은 알은 크게 달리는데 색깔이 제대로 나지 않는다. 일명 '멍텅구리'라고 부른다

가지 끝 부근에 달리는 녀석들은 알이 작고 왠지 맛이 없어 보이는 느낌을 준다. 하여 양한오씨는 이들을 '뺀질이'라고 부른다.

그렇다고 이들을 무시하거나 천대하지는 말라! 다 나름대로 맛이 있고 수확 후 관리되어 겨울 내내 맛나게 사람들에게 나뉘어져서 제 몫을 다하는 친구들이니까.

수확을 할 때 우선 중앙부위에 달린 녀석들을 먼저 작업한다. 5일 후 멍텅구리 친구들을 작업하고 그 5일 후 뺀질이 친구들을 수확한다. 수확한 순서대로 한곳에 보관하고 순서대로 시장으로 출하한다. 다만 뺀질이는 다른 냉장창고에서 별도 온도, 별도 조건으로 겨우내내 대접을 받는다.이른바 숙성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뺀질이와 멍텅구리 친구들은 한겨울 내내 냉장창고에서 온도습도 관리 받고 숨을 고르게 잘 쉬면서 숙성이 된다. 숙성이 되면서 맛은 한층 깊어간다. 하여 겨울부터 봄이 한창일 때까지 도시민들의 식탁에 올라가기에 손색이 없게 된다.

인생은 범생이 보다 뺀질이와 멍텅구리가 더 잘사는 경우도 비일비재(非一非再)하다는 것 지천명(知天命)을 집고 선 나이에 사과나무에서도 깨우친다.

4. 사과 이력서


사과나 사람이나 근본이 확실해야 좋고 살아온 내력이 정돈되면 앞으로 살아갈 일이 간명해져서 좋은 법이다.

작업장안에 흰색 칠판이 눈에 띈다. 뭐를 저리 정리해놓았나 싶었는데 2006년부터 2009년 금년까지 작물 관리내역을 촘촘히 적어놓았다.

친환경재배(저농약인증)과정을 일목요연하게 기록한 농사력이다. 7번 정도의 농약투여 시기와 의미, 소주, 칼슘 등 사람이 먹어도 괜찮은 원부자재로 병충해를 방제하고 미량원소를 관리하여 사과의 품격을 높이는 노하우를 십분 발휘하고 있었다. 농사짓는 사람의 판단과 어떤 농사를 짓는지가 한눈에 보였다.

양한오씨는 친환경인증을 받기 위하여 이력관리를 한 게 아니라 훨씬 그 이전부터 과수원의 전체를 온전하게 기록하고 관리했던 것이다. 그렇게 쌓이고 쌓인 역사는 양한오만의 사과를 만들어 내는 밑거름이었다.

5. 100% 리콜

작년에 보관상의 작은 실수를 출고 후에 확인하고는 300여 상자에 전면 리콜을 시행하여 100% 신상품으로 다시 보내준 사례는 '나만의 사과'를 지향하는 양한오씨의 배포를 보여준다. 보통 한 상자에 한두개 이상이 있는 정도이겠지만 과감하게 한 상자씩 다시 재배송 함으로써 고객과의 신뢰를 지켜냈고 자신만의 자존심을 세웠던 것이다.

그는 사과에 관한 한 달인이었다.

어떤 사과가 나왔을까?

1.사과의 본성, 사과의 색택이 충만하다


상은농장의 사과 색택은 사과본성의 맛을 내기에 부족함이 없다. 빨간색과 고유의 단맛이 가을 햇살에 최고점을 이루고 있다. 사진 오른쪽 흰 부분이 사과꽃눈이다. 내년에는 저 눈에 탐스러운 사과가 달린다. 달려있는 그 자체로 보기에도 침이 넘어간다. 나는 사과 구매와 산지관리 일을 오랫동안 해왔다. 농장전체의 분위기와 수세(樹勢)를 보면 어느 정도 농부의 내공을 짐작하는 정도는 된다.

저 위에 잘 익지 않은 작은 사과(화살표)는 왜 솎아내지 않는가 물었더니 사진에는 보이지 않지만 그 사과가 달린 가지 끝 꽃눈에 내년에 대과가 달리기 때문이란다. 과(果)가 열린 가지의 새 꽃눈이 다음해에 갖는 의미다.

2.꿀(밀)의 분포도가 넓게 나오도록 재배한다.
▲ 보통 달다고 이야기하는 사과들은 대부분 씨방 주면에만 밀(꿀이라 부르는 것)이 몰려있다.

하지만 양한오씨는 고유의 맛과 향을 내기 위하여 사과 과육에 가급적 골고루 퍼지도록 실력을 발휘한다.


▲ 양한오 사과 그림 같다. 누군가 물었다. 사진 손 본거지? 천만의 말씀이다.
그만큼 꿀의 분포가 넓고 맛과 향이 양한오 사과의 고유함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3.사과의 신기한 생명력(저장성)

11월 중순 두 번째 현장을 방문한 날, 양한오씨가 농장작업장에서 자기 사과는 잘라 놓아도 갈변이 그리 심하지 않으며 심지어는 마냥 놔둬도 상하지 않을 것 같다고 이야기 한다. 긴가 민가 싶어 집에 와서 실험해 보았다 이 사진은 사과조각을 낸지 상온에서 만 20시간이 경과한 상태다.

이전에 내가 경험한 사과의 갈변은 자르자마자 곧 나타나기 시작하여 심하게 나타난다. 그런데 이 사과는 하루가 다되어도 큰 변화가 없을 뿐만 아니라 겉에 사과가 점액질로 된 자기 보호막을 얇게 친 느낌이 든다. 겉이 꾸들거리기는 해도 맛도 생과와 별 차이가 없다.

이는 사과가 스스로를 지켜내는 생명활동이 강하다는 반증이 아닐까?

시중에는 여러 가지 종류의 사과들이 있다. 길거리에서 트럭째 부어놓고 파는 것에서부터 백화점에 앉아 있는 것까지...

다 저마다 이야기가 있겠지만 나는 무풍 양한오 사과를 현장에서 지켜보고 이야기 하고 맛을 보고 나서는 '격이 높은 사과(깜놀사과)'로 인정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과를 재배하는 사람의 마음부터 시작하여 농장의 지리적조건, 풍광, 색다르게 도전하는 재배방식 등등 그리고 단순한 단맛보다는 아삭거림과 약간의 신맛이 가미된 고유한 풍미..... 단단하고 야무져 보이는 색택과 장기저장성...

그런 요소들이 모여 격(格)이 되는 것이다.


지난 30여 년 결혼생활을 함께 한 양한오, 이시순 내외.
사과에 관한 확고한 원칙은 두 사람의 역할에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었다.

10여 가지 품종을 골고루 길러내며 자연에 순응하여 살아가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12월 초순에서 중순으로 넘어갈 무렵은
계절이 소비자들의 입맛을 가르는 시점이고
안방으로 사과를 가지고 들어 가는 시기이다.

한해 농산물이 수확 후 제대로 맛이 익어가기 시작하는 시점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가?
그 무렵에 만나게 될 무주 무풍 양한오씨 '나만의 사과'가 반갑기 그지없다.

우렁이가 키운 옥천 친환경 쌀 공심이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이하 줄임

-정지용-

하루에 수십 번을 마주해도 허기지지 않는 우리들의 로망 고향(故鄕), 그 고향 내음을 한껏 풍겨주는 정지용의 대표적인 시 '향수(鄕愁)'다.

그 향수의 고향 옥천에서 나는 나락 하나를 만났다.


벼(나락)...
반만년 밥심으로 버틴
우리에게 쌀은 '전부(全部')다.
나락은 '혼(魂)'이고
논은 우리의 '몸'이기 때문이다

나락 하나가 땅에 떨어져
분얼(分蘖)이 일어나 17개정도의 줄기가 생겨나고 줄기 하나마다 100~150개정도의 낱알이 달리니 대략 2,000여 개의 새로운 나락들로 이어지는 셈이다.
참으로 경이롭지 않은가?

충북 옥천 산계뜰

역사적으로 옥천은 나제 접경지역이기도 했고 전봉준의 동학운동의 근거지이기도 했다. 옥천군민들의 열정은 각자가 분명한 판단을 하며 살아내야 했던 역사에 기인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 어찌 보면 옥천군민들에게는 예나 지금이나 시대정신(時代精神)이 온전하게 반영된 DNA가 면면이 흐르고 있는 것이다. 또 대전에서 고등학교까지 성장한 내게 낯설지 않은 인연들도 녹녹치 않다. 그런 저런 이유로 난 옥천이 좋다.

충북 옥천군 청성면 산계리에 '산계뜰 영농조합법인'이 있다. 청원상주간 고속도로에서 보은IC로 빠져 나와 영동방면으로 내달리다 산계3거리에서 내수면연구소 이정표를 따른다. 눈앞에 펼쳐지는 친근한 경관은 40년 전이나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느꼈을 고향의 정취 그대로를 보여준다.

잘생긴 냇가, 풍요로운 벌판, 정겨운 산, 작은 정자 하나...


상춘정(常春亭)이 보청천 위에도 떠있고 아래에도 떠있다. 가을에는 갈대숲으로 봄에는 개나리 진달래로 상춘정은 옷을 갈아입는다. 가던 길을 멈추고 훅~ ! 그리움을 빨아들이며 이내 계하리에 도착한다.

상춘정(常春亭)은 '항상 봄 같은 정취를 품은 곳'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다. 산계뜰로 들어가는 입구 보청천 한가운데에 서있다. 좁고 가파른 바위섬에 호롯이 서있는 상춘정의 풍광은 가던 길을 막무가내로 막아 선다. 보청천 큰 내는 보은에서 청성으로 흘러 드는 물길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옛날에 대홍수가 나던 해에 보은 속리산에 있던 상춘정이 이곳 청성으로 떠내려 왔다. 이후 속리산 법주사의 한 스님이 해마다 꼬박꼬박 세금을 받아갔다. 당시에 이곳은 상주 목청산현에 소속했는데 어느 해 지혜로운 현감이 부임하였다. 세금 내는 것이 부당하다 파악한 현감은 우리 고장에는 필요가 없으니 이 상춘정을 그냥 가져가라고 강력하게 주장하여 유야무야 세금을 내지 않게 되었다.

마음을 비워야 순환이 되고 '순환'이 되어야 '채움'이 이루어진다

청성 산계리 계하마을에 한 알의 나락처럼 불모지에서 친환경농업지구를 조성해내고 고집스럽게 친환경농업을 일구어가는 대표농부 이선우가 있다.


산계뜰 대표농부 이선우씨의 어머님 신낙순 여사님이다. 올해 97살이시니 내후년이면 100세다. 한 세기를 사신 어른들을 뵈면 존재 그 자체로 경외감에 빠져들고 만다.

이선우 대표 내외가 서울서 손님 오셨다고 청산의 명물 '생선국수'를 점심으로 대접하겠다 하여 늘 가던 식당에 자리를 잡았다. 맛깔스럽고 푸짐한 생선국수가 나오자 어머님이 양이 너무 많다는 몸짓을 하시며 아들 그릇에 국수를 덜어 놓으려 한다.

며느리가 "아유! 그냥 다 드셔요 다 드실 거면서..." 하며 왜 내숭떠시냐는 말투다. '밉지 않은 툴툴거림'이다. 평소에도 식성이 워낙 좋으신 것 같았다. 국수 한 그릇을 거의 다 드신다. 국수전에 나오는 애피타이저 '민물고기 양념조림'을 며느리가 어른 수저에 하나하나 올려드리니 다 잡수신다. 고부간 주거니 받거니 그냥 다 받아들이고 그냥 다 내주는 모양새다.

이 어른이 낳은 아들 넷 중 막내가 이선우 대표다.
어머님 사진 한 장 찍으시죠~ 애교 섞인 내 제안에 도정공장 앞에서 포즈를 잡아주신다.

"뭔 늙은이를 어따 쓴다고 사진 찍어요?"
"무슨 말씀을...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세요 어머님."

대표농부 이선우씨는 농기계만능박사다. 살아온 내력으로 정비, 전기, 토목, 경영, 관리 등의 업무에 능해 현재 영농조합법인을 이끌어 가는데 큰 힘이 되고 있다. 덕분에 이앙기, 효소살포, 콤바인 등 일체의 농기계를 손수 운전하여 친환경단지 생산과정을 진두지휘한다.

1990년대 중반 3년 정도 토목회사에서 일하면서 잠시 농업을 벗어나 외도를 했었다. 창문너머로 농촌의 자연환경이 밀려오는데 그 자연의 유혹이 제일 견디기 어려웠다고 회고한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크게 배운 것 없는 몸으로 도시에서 고생하는 것보다는 농촌에서 생각을 잘 헤아리면 살길이 있겠다 싶어서 다시 농촌으로 돌아왔고 1998년 하반기에 '무경운, 무비료, 무투입 무농약'을 기본으로 하는 '태평농법'을 접하게 되어 본격적인 농업의 길로 접어들었다.

▲ 마을 입구에서 바라본 계하리 느티나무다. 나무 뒤로 보이는 황금벌판이 산계뜰이다.
3년 전 '푸른울타리 어울림한마당'에 참여했을 때 찍은 사진이다.
오래도록 남은 정경이다. 정말 실개천이 휘돌아 나간다.
▲산계뜰 경작지도.
사진 상단부에 가공장 및 도정공장이 있는 영농조합법인이 있고 마을 계하리가 있다.
하단부 뚝방 길을 따라 보청천이 흐르고 있다. 이 너른 벌에서 옥천의 친환경농업이 발원한 것이다.

2003년도 5농가가 단체명의로 우렁이 농법으로 무농약인증을 받은 것을 계기로 오늘날 101농가 옥천친환경농업지구가 조성된 것이다.

'푸른울타리 2010'프로젝트


'순환'은 이선우씨가 꿈꾸고 만들어가는 출발이자 결과물이다.

공동재배, 공동출하, 공동교육, 지역농업활성화...
자연순환농업을 통하여 지속 가능하게 도시와 농촌이 교류하며 소통하는 시스템이다.

그 동안의 노력으로 산계뜰이 꿈꾸던 일들을 진행 할 수 있는 제반 여건들이 마련된 것이다.

옥천 친환경쌀 생산단지는 5개 단지로 되어있고 옥천관내 101농가가 모여 50ha 경작한다. 경종농업(논농사,밭농사)과 축산을 연계한 자연순환농업을 실천하는 전형적인 지역모델이다.

좌우명이 뭐냐고 물었을 때도 '순환'이란 개념을 좋아한다며 그렇게 살고 싶다고 했다.

쌀 재배과정

▲공동 육묘장에서 전 회원 논에 심어질 추청(아끼바레)벼를 엄선하여 육묘한다.
품종의 통일은 품질의 균일성으로 나타난다. 이후 재배에서 판매까지 전 과정을 법인에서 일괄 관리한다.
▲ 아이들의 모내기 체험하는 손맛이 아주 야무지다. 앙다문 입은 청년일꾼 저리 가라다.
▲ 친환경농사꾼 왕우렁이 방사
▲수확 후 가공
단지 내에 자체 도정 가공장이 있어 외부 일반쌀과 혼입될 가능성이 없다.

쌀 이름을 '공심이'라 붙인 이유를 물었더니 빙그레 웃는다.

"마음을 비워야 순환이 되고 채워 지더이다" 그래서 빌'공'자 마음'심'이고
지역학교 아이들에게 먹이는 쌀이므로 공부하는데 보탬이 되는 마음을 담은 것이다.

하여 포장지 앞뒤면은 김홍도의 농사짓는 모습과 공부하는 서당의 풍경으로 채웠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로 해석이 가능하니 그다운 발상이 엿보인다.

다른 이야기들...

▲ 너른벌 파릇파릇한 논은 청보리를 심은 것이다.
산계뜰 청보리는 첫째 보리를 생산하고 두 번째 소 사료용으로 쓰고
세 번째 작황이 안 좋은 논은 그 자리에서 갈아엎어 녹비료로 쓴다. 버릴게 하나 없는 작물이다.
▲ 농촌 체험단이 산계벌판에서 잡은 메기와 메뚜기 잡는 아이들
기타 - 민속놀이체험, 떡메치기, 감따기 및 곶감 만들기, 천연염색체험, 농작물수확체험, 물고기잡기체험,
고구마 감자 굽기, 우렁이 잡기 체험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가능하다.
▲ 유기축산 한우, 두부생산 급식학교납품, 유기재배고추, 육묘장 운영

이선우씨와 이별인사를 하고 나오다가 들판으로 나가 베어낸 벼 밑둥을 바라보았다.
고향의 흙 냄새와 볏짚 내가 났다. 한두 개의 나락이 뿌려져서 저리 많은 줄기로 자라나 수천 개 이삭을 맺어 온전히 인간에게 알곡을 내어준 희생이 느껴지기도 했다. 한참을 쪼그리고 오랜만에 논의 존재를 아주 가까이서 느껴본다. 참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는 흔적이다.

이선우씨가 도시민들에게 던지는 대표농사꾼의 각오가 귓전에 들린다.

"60 ~70년대에 식량자급을 위한 증산정책과 급속한 산업의 발달, 「녹색혁명」이라는 대대적인 농업의 전환기를 맞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꾸준한 발전을 하여 왔습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무분별한 농약의 살포, 과다한 비료사용, 생활 오폐수 등으로 인하여 토양과 물이 오염되고, 환경이 파괴되어 개구리, 메뚜기, 거미, 무당벌레는 물론 땅 속의 지렁이까지 살 수 없는 땅에서 자란 먹거리를 사람들이 먹고 사는 것이 현실입니다.

또한, 안전성 문제에 논란이 되고 있는 유전자변형 농산물 등이 무분별하게 수입되어 우리식탁에 자리 잡고 우리의 건강은 물론 나아가 나라경제를 멍들게 하고, 우리농촌과 농업을 황폐화시키고 있습니다. 농촌에 살면서도 어릴 적 그때가 「차마, 꿈엔들 잊히리오」 그 잊지 못할 날들이 다시 올 수는 없겠지만, 그때를 그리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농사꾼은 안전한 먹거리를 만들고자 열심히 노력하고 있답니다.

우리의 터전에 유기농업의 꽃이 피고 결실이 이루어지는 날을 위하여,「환경 속의 인간」의 평범한 순리로 살아가는 농사꾼이 되겠습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락 한 알의 의미와 이선우 대표농부의 삶의 의미가 비슷하다고 느꼈다. 그와의 인연으로 공심이를 사랑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공심이'를 아시나요?

내 꿀에 50년 세월과 내 이름을 건다

저녁 무렵 갑자기 배가 살살 아프기 시작이다. 식은땀이 흐르고 속이 메스껍고 뭐가 꼬인듯하다. 어린 손자는 할머니에게 세상에 더없는 표정(?)으로 아픈 배를 호소했다. "할머니 배가 아파요" 할머니는 품으로 잡아들이시고 이마도 짚어보고 가만 가만 살피시더니 벽장 속에 고이 묻어두셨던 꿀병을 꺼내 오신다. 2~3숟가락 떠서 손자 입에 넣어주셨다. 그 달콤한 꿀맛에 아픈 배도 잡시 잊어버리곤 했다.

입술주위를 샅샅히 뒤져서 빨아먹고 할머니 무릎을 베고 누우면 윗옷을 가슴께로 밀어 올리시고는 '낫거라 낫거라 낫거라 낫거라아~" "우리 손주 배는 똥배~ 할머니 손은 약손~~""내 새끼 배는 똥배~ 할머니 손은 약손~~" 조용조용 뇌아리시며 둥글게 둥글게 배꼽주위를 손으로 한참동안 어루만져 주셨다.

꿀맛에 취했나 할머니 무릎이라 편안해서 그랬나 스르르 잠들어 버린다. 얼마후 깨어나면 아프던 아랫배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깨끗했다. 정말로 할머니손은 약손이었다. 간혹간혹 배가 아프고 싶어졌다. 꿀이 먹고 싶어서... ^^

훗날 꿀은 밥알이나 음식을 삭히는 기능이 있어서 얹힌 속을 내리게 하는데 효과도 있고 할머니가 아랫배를 따뜻하게 마사지해주신 덕분이구나 이해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할머니의 손자 사랑하는 마음이 제일 큰 이유였슴을 안다.

▲ 벽장속 깊숙이 넣어 두었던 꿀병(꿀단지).

40년전 그때 그 어린손자는 에덴양봉원 가업을 이어 벌을 치는 사장이 되었고 온라인으로 도시민들과 정감어린 소통을 하며 벌꿀가족 이름으로 '아름다운 관계'를 만들어 가는 사람이 되었다.

에덴양봉원은 강원도 횡성군 횡성읍 추동리에 있다. 영동고속도로 새말IC로 빠져나와 좌회전 받아 직진하다 왼쪽으로 우천면사무소를 두고 지나면 조금 후 오른쪽으로 에덴양봉원이 보인다.

에덴양봉원은 윤사장의 아버님이 먼저 시작한 사업이다. 1962년 편찮으신 어머님(윤상복사장의 할머니)에게 꿀이 좋다고 하는데 너무 비싸 떨어지지 않게 드시게 할 수가 없었다. 해서 직접 꿀을 떠보려고 두통의 벌을 사서 키우게 되었다. 그 효험이었을까? 꾸준하게 꿀을 드시던 할머니가 중하던 병을 털고 일어서시자 마을사람들도 놀라워했다. 그 일을 계기로 아버지는 양봉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할머니는 그후 40여년을 더 계시다가 2006년에 97년간의 역사를 담으시고 4대가 모인 온식구들의 마음을 받으시며 하늘로 가셨다.

하지만 너무도 가난하고 어려웠던 시골이 싫어 대학진학을 포기한 채 18세에 무작정 도시로 나가 5년여를 생활했다. 공장일도 하고 제과회사 납품영업사원, 볼링장 근무도 하다가 자영업에 자신감이 생겨 조그만 건어물가게를 운영하기도 했다. 그러던중 아버지가 수십년간 해오던 농사와 양봉일을 힘겨워 하시고 아들이 내려왔으면 하는 눈치를 보여서 삭막한 도시 생활을 접고 1993년 고향 횡성으로 돌아왔다.

벌 농사도 농사(農事)다.
여느 작물과 같이 많은 고민거리를 안겨주었다. 양봉은 자연과 밀접한 산업이므로 밀원식물은 많은데 벌들이 많은 양의 꿀을 따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어느 해는 풍년이 들어 꿀을 다량으로 준비했는데 미처 다 팔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했다. 별다른 해결책이 없이 4년여를 보냈다. 그 동안은 주로 꿀을 드럼으로 도매업자에게 납품하는 일반적인 방법으로 꾸려나갔다.

그러다가 1997년 벌꿀 수입이 개방된다는 이야기도 들리고 농업여건도 더 어려워질 것 같아 드럼으로 도매 납품 하던 일에서 탈피해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기로 결심한다. 그해에 결혼을 하고 강력한 후원자인 아내(여왕벌 한애정)와 함께 직판을 시작했고 2000년 말에 드디어 에덴양봉원 홈페이지를 구축하기에 이른다.

나를 파는 마케팅

'벌꿀은 부자지간에도 속인다'라는 이상한 속설 때문에 가슴앓이 하는 농가들이 많다. "이 꿀 믿을 수 있어요? 어떻게 믿지요?" 이 질문에 아무리 정성스럽게 답을 해도 돌아오는 메아리는 여전히 같았다. 윤 상복 사장은 이 지점을 뒤집어서 생각하고 고민했다. 말이 필요 없다. 소비자들이 믿게 만들면 된다. 어떻게? 생산과정을 공개 하는 것이 급선무라 판단했다.

양봉인의 애환(이동양봉)을 공개하다

벌은 1년 농사다. 도시민들은 대게 꿀 하면 아카시아꽃이 한창일 때부터 추석이나 설 명절 때만 연상을 하지만 양봉농가는 1년 내내 마음 놓을 날이 없다.

▲ 한겨울 트럭에 벌통을 싣고 있다. 윤사장은 그위에 에덴의 마음을 한켜 더 싣는다.

12월말이면 벌통을 싣고 경남 창원으로 내려가 4월말까지 벌들의 세력을 키운다. '벌을 기르는 것'이다. 양봉(養蜂)의 의미 그 자체다. 여기서 왕성하게 세력을 키워야 이후의 생산과정이 순조롭기 때문에 온 정성을 다해 벌을 보살피는 것이다.

5월 들어서면 경주를 거쳐 여주에서 꿀을 따고 횡성으로 올라온다. 5월말 6월초에는 강원도 철원으로 밀원을 따라 올라가 작업을 한다.

▲ 이동양봉장 양봉텐트안의 풍경이다. '벌을 친다'는 삶의 고단한 실재(實在)가 고스란히 묻어난다.

길어온 물은 한겨울 텐트속에서 얼어버려 그 얼음을 깨서 밥을 지어먹는다. 천막(양봉텐트)안에서의 그 황량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나는 철원 김화에서 군대생활을 했다. 25년이 지난 일이지만 한겨울 동계훈련의 고단함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아무리 두껍게 옷을 껴입어도 자고 일어나면 팔이 뒤틀릴 정도의 추위속에 몸을 웅크리며 밥을 먹어야 했던 서글픔과 웬지 모르는 퀭한 마음...

해서 한겨울 천막안 양봉인들의 애환을 어느 정도는 이해를 한다.

이런 고생 끝에 만드는 벌꿀은 돈을 받고 파는 단순한 물건이 아니다. 윤 상복 사장은 "꿀한병을 팔 때 이 윤상복이도 같이 파는 거예요"라고 이야기한다. 이동양봉을 하면서 겪는 사연들을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리기 시작했고 소비자들은 에덴양봉원 가족들의 벌꿀 생산과정을 생생하게 들여다보면서 에덴양봉원에 대한 신뢰를 쌓아가기 시작했다.

진짜꿀과 가짜꿀을 어떻게 구분해요?
이 꿀 믿을 수 있나요? 라고 물으면 뭐라 대답합니까?

"그 사람을 보라"라고 답을 합니다.
꿀에 대한 설명 아무리 정성들여 해도 진짜가짜 포맷으로 가면 구차해지고 말이 길어지거든요.
"나를 보라" 그거 한방이면 됩니다.

윤사장 내외의 저간의 심정을 들여다 보자.

어느덧 십 여 년을 훌쩍 넘기고
이젠 벌에 어지간히 쏘여도 앗!! 따가워~~정도로 넘어갈 줄 알게 되었고
이젠 쏘여도 붓지도 않으니 어디다가 엄살할 수도 없답니다.
세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되어 그 때는 벌써 아득한 옛 추억이 되었습니다.

해마다 이른 봄이면 주름이 가득한 시부모님께서 대궐(!) 같은 집을 떠나
시린 찬물에 손을 담그시며 추운 텐트 속에서 주무실 것을 생각하니
우리 양봉인들이 수고하며 흘린 땀을 무색케 하는 벌꿀에 대한 속설들과 의문들이 야속하기까지 합니다.

게다가 자연의 변화로 양봉 작황이 수년째 어려움 속에 있다 보니 자주 지치지만 그래도 또 다시 꿈을 꿉니다.
우리를 믿고 찾아 주시는 고객이 있는 한 다시 오뚜기처럼 일어나 보자고.
이렇게 정성으로 생산된 좋은 벌꿀을 넘쳐나는 의혹들 때문에 맘 편히 살수도 팔수도 없는 현실의 벽을 깨기 위해 더욱 노력하자고.

언제나 어김없이 훈훈한 옛정과 아카시아의 향기를 함께 담아 드리기 위해
그 자리에 머물러 있자고...

양봉체험장 한켠에 '오래된 믿음'들이 보인다. 아버님이 양봉을 시작하시면서 구독한 농업관련책들이 여러권 보였다. 축산대사전,농업기술,새농민,토끼치는법... 농업기술과 새농민은 지금도 발간이 되는 잡지다.

▲ 새농민 첫페이지에는 당시 왕겨를 이용하여 양봉작업을 하는 농부의 모습이 보이는데 발행일을 보니 1962년 3월31일자 발행이고 100환의 가격이 매겨져 있었다.

난 한참을 들여다 보았다. 50년이 꽉찬 '색바랜 오래됨'이 주는 여운을 오랜만에 만끽했다.

에덴양봉원에서 발견한 책이 믿음을 주기보다는 벽장속 소주 한되짜리 꿀단지의 추억과 더불어 저 책들을 읽어가며 공부하고 벌을 쳤을 아버지와 그 아들로 이어지는 대를 잇는 양봉가문의 세월의 무게와 무언의 몸짓 마음짓으로 주고받았을 아버지와 아들의 이심전심(以心傳心)이 방문객에게 '오래된 믿음'을 슬며시 전해준다.

적어도 거짓이나 짝퉁으로는 50년을 일관되게 관통하기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 세월을 일관성 있게 끌어간다는 것은 누구나 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는 삶의 보편적인 가치 '믿음'에 근거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 2001년 MBC 아주 특별한 아침에 출연하여 30만마리의 벌갑옷을 입고 있다.

전국적으로 선풍적인 이슈가 되었다.

▲ 아카시아꿀.

지난봄 아카시아가 한창일 때 화성 칠보산행을 자주다녔다. 길섶 안쪽으로 들어가 아카시아꽃을 쭉 훑어서 한입에 털어 넣고 힘차게(?) 씹는다. 약간의 풀냄새가 밴 달콤쌉싸롬한 아카시아꽃은 아주 친숙한 맛이다. 첫맛이 느껴지면 아스라하지만 유년시절 씹던 맛하고 별반 다르지 않다.

내몸에 내재(內在)된 맛이기 때문이다. 5월 아카시아향기는 우리들의 영원한 설레임 더덕향기와 더불어 계절의 고유함을 잘 드러내는 요소이기도 하다.

세계적으로 우리나라 아카시아꿀의 품질과 맛을 따라올 나라가 없다. 유명한 미국의 버몬트산 꿀이나 유럽의 꿀들은 왠지 맛이 간명하지 않고... 하여튼... (뭔가 노린내 비슷한 맛이 난다)

아카시아는 우리나라 꿀생산량의 70~80%를 점유한다. 정말 하늘이 우리에게 베푸는 은혜가 아닐 수 없다.
요즘은 개화시기가 짧아져 한달 정도안에 채밀을 해야 한다.

▲ 밤나무꿀.

밤꽃이 온 산하에 지천으로 깔리면 남자 정액냄새와 흡사한 냄새가 난다. 벌들에게 밤나무는 필요 없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달갑지도 않다. 꿀이 달지 않고 써서 시큰둥 하는 것이다. 벌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먹이를 구하지 못해 아사직전이 되어서야 밤꿀을 물어온다. 물론 근처에 다른 밀원식물이 있으면 거들떠도 안본다.

온도가 높고 습할 때 꿀이 많이 나온다. 장마 전 비가 올듯하면서 습도는 높고 불쾌지수가 한참 올라가 짜증이 나는 때에 밤 꿀은 많이 난다. 나오는 양은 아카시아에 비해 1/3 정도에 불과하다.

밤꿀은 밤 껍질의 색깔처럼 짙은 갈색을 띠거나 검은 색을 띤다. 색깔만큼 맛과 향도 강하고 쓴 맛이 있어 음식보다는 약으로 더 많이 이용된다. 칼륨, 철분 등이 많이 함유되어 있고, 위와 간을 좋게 하는데 효능이 있으며 기침을 가라 앉히는 데도 좋다.

양봉체험관

에덴양봉원 농장에는 양봉체험관이 있다. 교육실습관하고 전시관의 기능이 있다. 방문객들로 하여금 다양한 체험이 가능하도록 준비하였다.

▲ 양봉체험관 내부 전경/ 꿀벌해부모형/야생의 폭군 말벌집/ 벌체험하는 아이들.
▲ 할아버지와 손주 녀석들.

에덴양봉원과 거래하고 있는 사람들은 벌꿀만 주고 받는게 아니다. 젊은 사람들이 표현하는 3~4대가 모여 살아가는 벌꿀가족 이야기에 정감어린 시선을 보낸다. 요즘 같지 않은 풍경이라며 격려해준다.

고객들은 '동생 같은 사람들'이란 표현들을 많이 한다. 왜 내 대신 시골에 계신 부모님을 모시는 동생들을 대하는 형의 마음을 짐작하면 될성부르다.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죄송스럽기도 하고서리...^^

그런 고객들의 격려가 늘 함께하므로 농작물이 태풍에 날아가거나 고단한 상황이 발생해도 마음 한켠이 든든해서 보람을 가지고 살아간다.

윤상복 한애정 내외는 일기를 쓴다. 거의 10년 가까이 홈페이지에 쓰고 있다.

경북 안동 처갓집에 다녀온 이야기를 홈페이지에 올린게 인연이 되서 처갓집에서 나오는 모과, 대추, 잡곡 등을 '처갓집'이란 브랜드를 붙여 절찬리에 판매하도록 고객들이 요구하여 지금은 하나의 어엿한 제철상품군으로 효자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신뢰에 기반한 소비자가 만들어 가는 시장'의 전형을 보여준다.

어느 해인가는 아이들 입히라고 깨끗하게 빨고 다려서 "헌옷이라 미안해요! 아이 입히도록 하세요"라며 정성스럽게 택배로 선물을 보내오는 고객도 있다. 이런게 '오는 정(情)'이다.

상품이 나갈 때 감자라도 서너알 넣어서 보내주기도 하고 강원도 넘어갈 때 양봉원에 들려서 막국수라도 한 그릇 하고 가라고 초청도 한다. 이것은 '가는 정(情)'이다.

에덴양봉원 관계안에서 '고객살이'는 즐겁다.
물론 벌꿀가족의 '농촌살이'는 정겹고... ^^

필자와 윤사장 할머님 생전의 에피소드

지금은 고인이시지만 2003년 10월 그 어른이 94세 되시던해에 출장가서 만나 뵈었고 그후 두 번 인가 더 뵈었다.
어느 날 마당에 내려서니 할머니가 작업에 열중하고 계셨다.

▲ [사진1] 조옥환 할머님(94세)이 도토리 고르기 작업에 열중이시다. 손길이 얼마나 경쾌하신지...
어릴적 세계사 시간에 배운 인도의 '간디'같은 느낌이 들었다^^
[사진2] 사진 한장 찍어도 되냐고 여쭸더니 쑥쓰러우신지 망설이시는 빛이 보인다.
[사진3] 필자가 아양(?)을 떨며 재촉을 했고, 손자 손님인줄 아시더니 머리매무새를 고치신다.
[사진4] 세상에서 제일 예쁘십니다.

난 이 사진과 느낌을 아주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다. 그 어른의 정감어린 모습이 잊혀지지 않아서다. 이 사진을 찍으신 3년후 2006년 97세를 일기로 하늘나라로 가셨다. 지금 계셨으면 100세다.

손주 며느리는 어른 돌아가시고 난 심정을 아래와 같이 기록하고 있다.

어버이 날 사망신고 하다.
97세의 할머니께서 인간에게 주어진 최장의 명을 다하시고 잠드시듯 돌아가셨다.

남들은 돌아가신 할머니의 영정앞에서
"참 복도 많으시다"고 하신다.

무슨 뜻일까? 다 알면서 물어본다.
우리 할머니 돌아가시기 전까지 정신을 놓지 않으신 채
집안 식구 모두를 만나 말씀하시고
떠 넣어 드리는 하루세끼 식사도 잘 하셨다.

다만 아쉬움이 있다면 몸져 누우신후
기저귀 40개중 채 30개도 못 쓰시고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식구들에게 조차도 섬김을 받기 보단
줄곧 남을 위해 한평생 도움주시고 정을 쏟아 오신 정 많으셨던 우리 할머니...

37세에 홀로되신 우리 할머니 모시느라
우리 시어머니 그동안 참 많은 고생을 하신 듯 싶다.

곧 70이 다 돼 오지만 어린아이 살피듯 얼마나 우리 할머니께 잘 해 오셨던지
옆에서 지켜보며 많이 배우고 닮은 것 같다.

9명의 대식구의 외동아들인 애기아빠와 결혼 후 줄곧 10년째 한 집에서 살아왔다.
시할머니와 시어른을 모시며 4代가 한 집에 살기란 그리 쉽지는 않았지만
우리가정 그동안 4代가 참 단란하고 오손~도손 정답게 살아온 듯 싶다.
주위 어른들의 부러움도 한껏 받아왔는데...

지난 5월 8일 어버이 날
읍사무소로 돌아가신 할머니 사망 신고하러 갔던 애기아빠가
한 장의 등본을 내어보인다.
사망 신고후 곧 빠질 할머니까지 포함된
우리가족 4代 8명의 이름이 나란~히 들어있는 마지막 등본인 것이다.

할머니의 정을 유난히 많이 받아왔던 애기아빠였던지라
많이 많이 서운한가 보다.

... 이하 줄임

벌은 인간에게 꿀을 제공하는 존재 이상의 의미가 있다.

우리가 먹는 곡식의 70% 정도를 화분매개 한다. 우리가 재배하거나 야생의 농작물들의 암꽃과 수꽃을 시집장가 보내는 중매쟁이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구 온난화로 인한 이상기온과 농약남용, 전자파, 질병 등 여러 가지를 원인으로 하늘이 내려준 약속 '벌'들이 사라지고 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박사는 "벌이 사라지면 인류는 겨우 4년을 버틸 수 있다."라고 경고했다.

우리가 자연을 잘 헤아리지 못하고 삽질식 막가파로 살면 '하늘이 내려준 벌(蜂)은 정말 '벌(罪)'이 되고 말 것이다.

50년째 대를 이어 벌을 치는 에덴양봉원의 꿀은 위중하신 할머님께 아버님이 정성들여 입에 넣어드리던 '효자(孝子)의 꿀'이고, 소생하신 할머니가 배가 아픈 어린 손주에게 "낫거라 낫거라 상복이배는 똥배 할머니손은 약손..." 측은해 하시며 그 손자에게 먹여주던 '사랑의 꿀'이다.

바로 그 꿀을 에덴양봉원 벌꿀가족들은 지난 50년 동안 소비자들에게 공급해왔고 앞으로도 계속 나누어 드릴 것이다.

죽기 전에 고기 한 점을 먹어야 한다면

이랴 마라소야 너무 끌고 나가지 말고 ~
이랴 ~
우 소리가 나거들랑 마라소야 길고 돌아를 서라
어디아 안소
어디로 끌고 가느냐
이랴 너무 덤성대지를 말고 추근추근 다녀라
이랴 마
어디를 가니
올라서랴

우리몸 깊숙히 각인된 그리움의 대명사 '소모는 소리'다.

밭을 갈 때 소두마리로 가는 것을 '겨리'라 하고 한 마리로 가는 것을 '호리'라고 한다. 호리는 사람이 갈면서 들고 돌아야 하고 겨리는 소가 끌면서 돌기 때문에 겨리가 힘이 덜 든다. 겨리를 할 때에는 '안소'가 '마라소'보다 힘이 좋아야 한다. 안소는 왼쪽에 있는 소고 '마라소'는 오른쪽에 있는 소다.

우리에게 소는 어떤 존재일까?

난 고향이 경기도 양평으로 일가(一家)들이 모여 살던 강상면 송학리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당숙 어른댁에서 소하고 놀았던 기억들이 너무나 생생하다. 당숙은 최근 몇 년전까지도 소를 먹이셨다.

강도 있고 밭도 있고 논도 많은 동네다. 당연히 소도 이집 저집에서 많이 키웠다. '고향'을 떠올리다보면 가장 많이 생각나는 이미지는 우리 소 '누렁이'다. 뚝방에 매어있거나 강가에 매어져 풀을 뜯는다. 논밭에서 일하는 모습은 '친숙한 일상'이었다.

외양간에서 한겨울 하얀 입김을 쏟아내며 큰 눈망울을 이리저리 굴리던 누렁이는 '착함' 그 자체였다. 소가 나쁜 마음 먹는다는 것은 상상이 안된다. 가끔 소가 골을 부리기는 하지만 그건 사람 탓이 더 컸다. 고향을 떠난지 40여년이지만 여전히 고향에는 우리소가 있다. 내 마음속에도 있고.

소가 빠지면 고향이미지는 제 맛이 안난다. 30대 이상의 우리나라 사람들은 적어도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소와 관련된 눈물겨운 에피소드 하나쯤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아픈 송아지 안고 자기방에서 자던 일, 누렁이가 팔려 나가던 날 앞마당에서 뒹글며 엉엉 울던 일, 소팔아 대학가던 시절 이야기 등 전통사회에서 소는 집안의 일꾼이자 대들보였다. 자식 다음가는 소중한 식구였다. 아니 어쩌면 평상시에는 자식보다 더 가까운 존재였으리라. 그러니 오죽 이야기가 많았을까?

그 당시의 소가 있던 풍경도 그랬지만 지금도 여전히 어쩌면 저렇게 우리네 농촌풍경과 잘 어울리는지.

▲ 소등선인데 참 순하다는 생각이 든다. 들판이기도 하고 땅이기도 하다. 마음의 놀이터이기도 하다.
만져보면 탄탄하기 이를데 없다. 아무리 무거운것이라도 다 싣고 태운다.

소등선을 비롯 머리선 등 몸 전체의 윤곽은 어느 곳 하나 다른 것과 견줄 때 모나는게 없다. 산에 비추어도 들판에 비추어도 냇가에 대비해도 누워서 하늘에 끝선을 맞추어도 소가 지닌 윤곽은 주변과 하나가 된다.

사물은 관계된 대상(對象)과 조화를 이룰 때 하나가 되는 것이다. 소와 주인의 관계를 보면 이해가 된다. 닮아간다. 그래서 소를 생각하면 '평화롭다'라는 느낌이 드는가 보다.

강원도 횡성

▲ 횡성군 로고와 횡성한우 마스코트 한우리

횡성은 우리나라 중부내륙지방의 중심에 위치한 관계로 한우가 한반도에 정착하여 제주도로 전차되는 경로의 중요한 거점이었으니 적어도 3천년 이상의 사육역사를 지니고 있다.

높은 일교차와 섬강 발원지의 깨끗한 물, 그리고 청정한 환경은 한우 사육의 최적지로 꼽힌다. 동쪽으로는 치악산(1,288m), 남쪽으로는 백운산(1,087m)을 중심으로 서북쪽은 남한강과 섬강이 감싸 안고 흐르는 분지형 지형으로 전형적인 내륙기후의 특징이며, 한반도의 중심으로 낮과 밤의 일교차가 뚜렷하여 횡성한우 고유의 맛을 생성한다.

해발 100~1,200m까지 표고차가 골고루 분포하고 목초 및 산야초가 풍부하고 볏짚 구입이 용이하다. 공기 및 수질 오염원이 거의 없는 사육환경도 큰 특징이고 중부지역에서 제일 큰 우시장이 열린다. 또 횡성한우 전용 사료를 급여하는 것도 중요한 포인트다.

또 횡성군에서는 지난 10월 21일자로 횡성한우 보호육성에 관한 기본 조례를 공표하였다. 이는 상표에 대한 조례를 넘어서 한우의 생산과정을 포함하여 혈통관리, 생산기반 등의 사항을 지자체 조례로 하는 국내 첫 번째 케이스다.

우시장거리(음하리), 송아지고개(생운리), 쇠장골(초원리), 소구용골(소사2리), 소막골(안흥3리), 우항리(우천면), 구용골(양적리, 우항2리) 쇠목(우천면) 등이 소와 관련된 지명으로 횡성에 많이 남아있다. 갑천면에는 메기가 송아지를 물고 들어간 이야기가 전해지는 캐캐소(沼)가 있다.

사진으로 만나는 횡성한우

▲ 어미소와 아기소

아기소의 표정이 압권이다. 엄마의 사랑앞에 무어라 표현하기는 힘들지만 기분은 짱이다. 세상에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이 아기소는 이날의 이 느낌을 평생 잊지 않고 고단한 삶을 살아내는 에너지로 가져갈 것이다.

엄마소의 지극정성 사랑이 눈에 보인다. 소가 새끼를 낳을 때 송아지가 나오면 어미소는 혓바닥으로 새끼소가 쓰고 나온 보를 핥아서 먹는다. 소의 커다란 혀는 최상의 애정을 표현하는 '상징'이자 '행동'이다.

▲또 다른 워낭소리

할아버지의 표정과 소를 잡고 있는 마음, 제법 나이 먹어 보이는(?) 소와 할아버지의 교감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한참의 세월을 같이 하지 않으면 안나올 컨셉이다.

▲꽉찬 여운_아가야 따라오너라!

다리위의 아주머니, 소를 몰고 가는 농부(두사람은 부부인 듯)와 어미소 아기소 그리고 자연 이 다섯가지 요소가 다 주인공이다. 여유롭지만 빈틈없이 세상을 꾸미고 채우고 있다. 전형적인 우리네 고향의 모습이다.

▲사람과 우리소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딱 저만큼의 거리, 딱 저만큼의 자세, 딱 저만큼의 믿음이 소와 사람사이에 존재하는게 아닌가 싶다. 냇가 풀밭, 저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는 소와 사람의 인연이 보는이로 하여금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횡성한우 세시풍속

"나는 굶어도 소는 굶기지 않는다"는 마음으로 소를 키운 횡성농부님들의 마음이 드러나는 세시풍속도 각양각색이다.

소밥주기(정월대보름)
대보름날 아침에 집에서 장만한 음식을 모두 키에 놓고 이것을 소에게 준다. 소가 나물을 먼저 먹으면 그해 흉년이 들고, 밥을 먼저 먹으면 그해 풍년이 든다.

외양간에 복숭아가지 달기
소의 전염병이 돌때에 외진 곳에 자라고 있는 복숭아나무가지를 베어 끝을 뾰족하게 만들어 거기에 빨간 흙을 칠해서 왼새끼로 꼰 금줄로 외양간에 걸어둔다. 뾰족한 끝이 소등에 닿을 정도로 달아두는데 소가 드나들면서 복숭아 가지에 닿음으로써 전염병이 예방된다고 믿었다.

외양간에 돌 걸어 주기
개울가에 자연적으로 구멍이 뚫린 돌을 발견하면 외양간에 바로 걸어준다. 소가 새끼도 많이 낳고 병치레도 안한다고 믿는 풍속이다.

좀생이 떡 빚어먹고 좀생이 별점보기
2월 1일에 나이 떡을 먹지 않은 사람은 2월 6일에 좀생이 떡을 먹는다. 좀생이 떡은 나이떡과 마찬가지로 송편인데 먼저 외양간의 소죽통(구역)에 좀생이점 떡을 소의 나이수대로 먼저 먹인 후 사람들이 먹는다. 소가 농사에서 큰 일꾼이기 때문에 한해농사를 잘 지을수 있도록 건강하라는 의미이다.

가축의 부적

맨 우측의 부적은 '가축의 모든 병을 고치는 부적'이다. 이 부적을 백지에 먹으로 써서 가축의 목에 걸어주거나 축사에 붙여 놓으면 모든 질병을 물리칠 수 있다.

누가 키웠는지, 무엇을 먹여 키웠는지 아는 소

예로부터 횡성에는 마을에 기쁜 날이나 잔칫날이 돌아오면 소한마리를 잡아 공동체구성원들이 필요한 내용대로 나누어 먹고 이야기도 나누고 한해의 삶의 고단함과 애환을 풀어내기도 했다.

그렇게 누가 키웠는지 아는 소, 무엇을 먹여 키웠는지 아는 소를 한 마리 잡아서 마을사람들은 정성껏 나누어 먹었다. 병이 중한 할머니가 계신 영숙이네는 사골뼈와 우족으로 가져갔고 개똥이네는 잔치상에 올려 질 것들을 가져갔다. 사돈댁에 보낼 선물용으로 구이용 몇덩어리를 들고 가는 사람도 있었다. 그대로 마을사람들의 보양으로 영양으로 또는 여러 가지 뜻으로 소고기는 소용(所用)이 있었다.

횡성의 독특한 자연과 품질과학이 어우러져 생산된 한우는 단단한듯 하면서 육질이 부드럽고 육색이 뛰어나다.

안병권의 고향보따리는 한우를 평범한 먹을거리 이미지를 탈피하여 우리 모두가 계승발전시켜야 할 자랑스런 식문화 콘텐츠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첫 번째 시도로 '횡성한우 소한마리 공동구매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이 일은 횡성관내 6개 농협 연합으로 조직된 횡성농축산물 유통사업단(단장 임영식)과 함께 한다.

수입소 100마리 뼈를 고아도 우리소 1마리 뼈를 곤것만 못하다. 원래 젖을 짜 먹으려고 길렀던 수입소는 맡기 거북한 누린내가 난다. 볏짚을 먹이고 키운 우리 소는 맛이 다르다. 우리네 DNA에는 한우의 맛과 문화가 녹아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 한우의 DNA에는 우리 선조들의 '혼과 손길'이 담겨있으리라.

정갈하고 단정하게 디자인된 팩은 손잡이가 달려있지 않다. 놓여진 상태 그대로 들고나가야 한다. 고기가 한쪽으로 쏠리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아이스박스를 열면 깔끔한 냉동 충진재가 횡성한우로고를 선보이며 놓여있다. 냉장 신선육상태로 상품의 신선도를 유지하는데 손색이 없다.

각 부위별로 이런 상태로 상품이 들어 앉아있다. 출고시 상태는 겉 비닐팩이 벗겨지 있지 않고 밀봉된 상태(탑실링)로 고객에게 전달이 된다. 핏물이 흐르거나 외부 오염원으로부터의 오염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위우혼문(尉牛魂文)_소를 대하는 횡성사람들의 애틋한 마음가짐

횡성은 예로부터 산수가 수려하여 산짐승 및 가축들이 자라기에 알맞은 곳입니다. 날씨도 우순풍조하고, 기온도 따뜻하여 만물의 성장이 순조롭습니다. 그중에 한우는 아주 오랜 옛날부터 사람들과 함께 살아왔습니다. 우차를 끌며 짐을 날랐고, 비탈 밭과 질퍽한 논을 갈며 땀을 흘렸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내색 한번 하지 않으면서 묵묵히 사람들의 부림을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순수한 충성심을 이야기할 때는 늘 우공(牛公)을 첫손에 꼽습니다. 혈육에 대한 정도 남달라 제 새끼에 대한 애끓는 사랑과 따스한 보살핌은 다른 짐승들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죽어서는 고기와 뼈와 가죽을 한 점 남김없이 사람들에게 주고 갑니다. 한우야 말로 사람들을 위해서 살다가 사람들을 위해서 죽습니다.

이에 오늘 우리는 횡성한우의 혼령을 위로하기 위한 작은 제를 마련했습니다. 미안하고 죄스러운 마음도 제상에 함께 올립니다. 부디 내생에는 축생(畜生)으로 태어나지 말기를 바랍니다.

횡성한우의 혼령들이여! 고이 잠드소서.

[후기]횡성한우에 대한 정보와 사진자료를 기꺼이 제공해준 횡성군청(축산과)에 감사말씀 드린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수제 치즈가 있었구나!

느릿 느릿 '기다림'으로 만들어요숙성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훅~ 하고 폐부 깊숙이 빨려 들어오는 독특한 분위기와 냄새에 먼저 취한다. 광이나 헛간처럼 메주가 많이 매달려 있는 곳에 들어가면 풍기던 퀴퀴눅눅한 냄새, 뭔가 썩어가는 것 같지만 그렇다고 기분 나쁘지는 않은 그 중간의 경계쯤에서 뿜어 나오던 강렬한 냄새를 잊을 수가 없는데 그것과 흡사하다. 살아있는 곰팡이류들의 대합창인 것이다. 처음에는 맡기 조금 거북하지만 조금 후면 익숙해지는 우리 몸이 아는 냄새다.

하지만 잠시후 한눈에 들어오는 노란빛깔, 하얀빛깔 원통형 숙성치즈, 우리나라에서 보기 힘든 자연숙성치즈의 애틋한 이야기와 앉아있는 자태에 감동을 받는다. 살아서 숨쉬는 먹거리의 전형을 보여준다.


하먼치즈 이선자씨는 매일 오후 3~4시 이 숙성실에서 수십수명의 자식들을 보듬는다. 숙성치즈 겉에 피어나는 파란곰팡이들을 하나하나 마른수건으로 닦고 염짓물(소금물)로 씻어내는 것이다. 하루라도 거르면 마음이 불편해서 견딜 수가 없다. 치즈가 나름의 성질대로 익어가는 최적의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숙성치즈 하나하나 그 일을 5개월이고 6개월이고 지치지 않고 진행한다. 치즈가 다 팔려나가는 순간까지.

아이들이 막 걸음을 시작하여 마당에서 뛰어놀때쯤 되면 저녁 무렵 아이의 몰골은 가히 볼만하다. 온갖 때국물로 땀이 젖어 범벅이 되어 엄마보고 히~ 하고 웃어대는 모습은 미워 할 수도 이뻐할 수도 없는 지경으로 내몬다.

하지만 엄마는 대야에 물받아 놓고 얼른 아이를 허리춤에 안아 얼굴이며 목덜미를 뽀드득 소리나게 닦는다. 징징대는 자식새끼 아랑곳하지 않고 부지런히 닦고 흥~ 코를 풀게하고 머리를 감긴다. 매일매일 그 사랑을 받아 아이는 성숙해지고 온전한 한사람으로 성장해간다.

이선자씨의 이야기다.
"자식 키우는 것과 같구요, 숙성실 문을 열면 아이들이 방긋방긋 웃는게 보여요"
"송아지 키우면서는 애들 눈망울에 푹 빠져들어가고 숙성치즈를 보살피면서는 속정이 들어갑니다"

2009년 10월 어느날 나는 그렇게 하먼치즈를 만났다.

대학때부터인가 어느 때인지 모르지만 동료들끼리 사진을 직을 때 으레 '자~ 치즈~~ 하세요' 하고는 한컷한컷 셔터를 누르던 기억이 난다. 웃는 얼굴이 된다는 이유다. 하여튼 치즈를 즐겼던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치즈는 내곁에 가끔씩 오가곤했다.

치즈 (Cheese) 이야기

치즈가 처음에 어떻게 만들어졌는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확언하기는 힘드나 인류가 야생 동물을 가축화해, 그 젖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 지금으로부터 6천-1만여 년 전의 일로 선사시대의 인간이 동물을 사육해 그 젖을 마시게 되고, 생명의 물이라 일컬어지는 귀중한 젖을 보존하려는 시행착오 끝에 만들어지게 된 것이 요구르트와 치즈라고 생각할 수 있다.

기원전 3,500년 경의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 젖소와 양을 사육, 착유 및 우유를 가공하는 장면을 나타낸 석판화가 있고 고대 이집트의 벽화에도 치즈, 요구르트, 버터가 기원전 4,000년 경부터 만들어진 모습이 그려져 있어 치즈의 제조 역사는 수천년전 이전에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치즈 발견의 전설을 보면 약 4,000년전 카나나(Kanana)라 불리는 고대 아라비아의 행상이 먼 길을 떠나면서 우유를 양의 위로 만든 주머니에 채웠는데, 우유를 먹으려고 열어보니 여행을 하는 동안 태양열로 따뜻해진 우유가 흰 덩어리와 맑은 액으로 분리되어 변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즉 양의 위에 있는 응유효소(천연응고제)가 작용하여 우유를 응고시킨 것이다. 못 먹게 되었다고 바위 위에 버렸는데 돌아오는 길에 보니까 하얀 덩어리가 꼬들꼬들하게 건조되어 있었다. 이를 먹어보니 씹을수록 감칠맛이 있어서 다음부터 일부러 그렇게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또 다른 이야기다.
양을 치는 사람들이 양떼를 몰고 산위로 올라가 봄여름내내 양을 치다가 겨울이면 내려온다. 우유를 끓여 여러 가지 음식을 만들어 먹다가 나머지는 가지고 내려오기가 뭐해서 동굴속에 버려두고 내려 왔다. 이듬해 봄에 다시 올라가 자기가 우유를 버려둔 자리에 꾸들꾸들 굳어있는 것을 발견하고 먹어보니 구수하고 맛이 있었다. 동굴속의 일정한 온도 조건하에 겨우 내내 자연발효에 의한 숙성이 이루어져 전혀 다른 먹을거리가 생겨난 것이다.

이런 치즈의 역사는 더 많은 이야기와 기록이 있지만 그 중에서 일부분을 소개하였다. 치즈의 유래와 역사는 무척 오래되었다는 것은 발효식품이 우리에게 얼마만큼이나 유용하게 쓰였는지를 이야기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발효식품으로는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있는 김치를 대표로 꼽을 수 있다. '서양의 치즈, 우리나라의 김치'는 대표적인 발효식품이라 할 수 있다.

치즈는 지금까지 알려진 종류가 2천가지에 달하고 세계적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것만도 500여가지에 육박한다.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전파된 치즈는 그리스와 로마시대를 거치면서 제조법이 완성되었다.

BC900년경의 작품인 호메로스의 '오딧세이아'에 이미 치즈의 제조와 관련된 묘사가 나온다. 율리시스가 양치기인 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모스의 까브(cave)안에서 발견한 젖담는 통들, 뿌옇게 흐르는 훼이(유청), 거르는 체와 쌓인 치즈들은 당시의 양젖치즈 제조법을 짐작하게 해준다.

또 아리스토텔레스, 히포크라테스 등이 치즈만드는 젖과 치즈의 영양등에 대해 언급한 기록들도 있다.

그리스로마시대에 치즈는 황제와 귀족의 연회에 오르는 단골메뉴였다. 특히 경질치즈는 로마보병군단의 필수 휴대품이었는데 이는 경질치즈가 각지로 전파되는 것을 도왔다.

유명한 치즈들

스위스의 에멘탈(Emmental)
스위스의 대표적인 경질치즈로 스위스 에메강 계곡에서 만들기 시작했다. 탄력있는 조직을 가지고 있으며 호두처럼 고소한 맛이 난다.영국의 체다치즈(Cheddar)
영국체더가 원산지이며 원통형이나 직육면체 치즈로 만들어진다. 숙성기간은 3~6개월로 부드러운 신맛이다.네덜란드의 고다치즈(Gouda)
네델란드가 원산지로 세계 최고의 치즈 중 하나. 부드러운 풍미와 잘녹는 성질때문에 마일드한 맛의 치즈를 선호하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다. 조직이 단단한 경질치즈로 노란크림색이 나며 부드러운 견과 맛이 난다. 시간이 지날수록 숙성이 진행되는데, 숙성된 고다치즈는 향이 강해지면서 단단했던 조직이 부드러워진다.이탈리아의 파르메산치즈(Parmesan)
이탈리아 파르마시가 원산인 매우 딱딱한 치즈로 분말치즈로 만들어 사용한다. 원통형이며 숙성기간은 3~4년이다.프랑스의 카망베르(Camembert)
프랑스 카망베르지방이 원산지다. 풍미가 진하고 버섯향이 감도는 부드러운 향미가 숙성되면서 점차 자극적인 쏘는 맛으로 변한다. 흰곰팡이를 이용하여 숙성시킨 연질치즈다. 숙성기간은 3주다. 치즈표면에는 흰곰팡이가 펠트모양으로 생육한다. 단백질 분해가 비교적 빠른 것이 특징이다.

우리나라에는 '하먼치즈가' 있다.

▲ 노란빛이 체다치즈이고 하얀빛이 고다치즈다.

하먼치즈(Hameon Cheese)

전북 남원시 사매면 월평리 최명희의 혼불문학관이 있는 동네에 하먼목장이 있다.
'하먼'이란 브랜드는 유가공상표로 고민하던 황사장에게 어느날 한 할머니가 대화도중에 전라도 말로 '하먼' 이라고 대답한데서 착안했다. 하먼은 "그럼 그렇고 말고, 물론이지"와 같은 뜻이다.

처음 들었을때는 어디 스위스나 네덜란드의 고풍스런 지명에서 따온줄 알았다.
우리말의 함축적인 의미뿐만 아니라 부르는 소리로도 이렇게 쓰일수 있구나 싶어서 혼자 피식 웃었다.

이름이나 품질로나 이야기로도 세계의 명품들과 견주어 손색이 없다. 오히려 우리땅에서 자란 풀을 먹고 큰 젖소가 생산한 무항생제원유로 만들어졌으니 우리몸에 맞기로는 안성맞춤이겠다.

전남 광양이 고향인 황형연씨는 어릴 때 젖소키우는게 꿈이었다. 젖소의 커다란 눈망울에 매료된 그는 탄탄하게 직업이 보장되는 농협사무원으로 일하다 20년전 젖소 5마리로 목장 아닌 목장을 시작한다.

▲황형연씨로 하여금 농사의 길로 접어들게 만든 젖소의 순하디 순한 착한눈망을

지금은 젖소 130여마리를 키우고 일정물량 우유는 쿼터제로 유가공업체에 납품하고 남는 물량으로 발효요구르트와 수제치즈를 생산하여 국내에 고급수제치즈 시장을 열어가고 있다.
▲ 하먼목장 사료작물 재배현장(2만여평)과 생산공장 전경이다.
호밀, 수단글라스 등 생초사료의 의미는 좋은 우유를 생산해내는 제1관건이다.

원유도 건국대학교 산학협력단으로부터 무항생제 품질인증을 받았다. 조만간 HACCP인증도 받을 예정이다. 돈 되는 상품만을 빠르게 빠르게 쫒아가지 않고 느리지만 제대로 된 먹거리를 생산하는 길만이 작은 목장형 유가공농가가 살아남는 최선의 길이라는 것을 실천한 결과다.

유제품의 경우 외국의 다국적낙농과의 경쟁에서 비교우위를 가져갈 수 있는 부분은 '신선하고 깨끗한 원유'의 장점을 충분히 살리는 것이다.

좋은 치즈를 만들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우리의 발효음식 김치가 그러하듯 원재료 우유의 품질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무항생제 1등급원유를 기반으로 기본첨가물 이외에 일체의 화학첨가제를 투입하지 않고 오직 농부의 정성과 느리게 느리게 세월을 집어넣어 고급수제치즈를 만들어 낸다.

하먼치즈상품들_군더더기를 뺀 치즈본연의 맛

▲ 숙성실 입구에 붙어있는 숙성치즈 현황표다. 3월 11일 제조한 것부터 필자가 방문하기 직전 10월 14일까지 만든 것까지 시간의 흐름, 기다림의 철학이 보인다.

하먼치즈는 '수제 자연숙성치즈'다. 최소 5~6개월 이상 숙성실에서 지극정성으로 보살핌을 받아 스스로 발효되고 익어간다.
▲ 모짜렐라(왼쪽), 체다치즈(오른쪽)

원통형으로 숙성보관중인 체다치즈를 200g단위로 나누어 진공포장을 한다.
독특한 맛과 향이 있어 빵요리에 어울린다. 입안에서 살살녹는 질감과 부드럽게 퍼지는 치즈의 향이 있다.

모짜렐라는 신선한 젓내속에 가벼운 단맛과 신맛이 나며 숙성치즈의 특유한 냄새가 없어 치즈 초심자들도 부담없이 즐길수 있다. 토마토, 바질(basil)과 함께 샐러드용으로 잘 쓰인다. 특히 가벼운 레드와인이나 상큼한 화이트와인과 같이 곁들여도 좋다.

이외에 고다치즈와 에멘탈치즈, 발효요구르트를 생산한다.

치즈는 '유럽의 김치' 이고 '유제품의 왕'이다.

치즈는 한국의 김치와 같이 식탁에서 빠지면 안되는 요리이기도 하지만 발효식품으로서 건강에도 좋다.

우유, 요구르트, 치즈는 수분의 함량에 따라 형태는 다르지만 본질적으로는 같다고 할 수 있다. 우유 1000㎖는 치즈 100g, 요구르트 900g 정도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도 된다. 물론 수분 함량이 많은 후레쉬 치즈의 경우 그 양은 더 늘어날 것이다. 따라서 우유 200㎖ 한 팩은 슬라이스 치즈 20g 1장과 그 영양적 가치가 같다고 생각해도 무방할 것이다.

치즈는 우유 한 컵(200㎖)이 치즈 20g(10분의1)으로 농축되는 우수한 영양식으로 섭취하는 주요 영양성분은 단백질, 지방, 칼슘, 비타민A, 비타민 B2이다. 이외에도 무기질로는 철(Fe)과 인(P)의 좋은 공급원이다. 그래서 치즈는 '유제품의 왕'이라고도 불리어 진다.

우유나 치즈 요구르트는 칼슘의 공급원으로서도 중요한 식품이다. 칼슘 함유량으로 친다면 멸치나 파래 등이 유제품보다 함유량은 훨씬 많다. 그러나 칼슘의 흡수율을 본다면 유제품을 따라갈 식품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칼슘의 경우는 여타의 공급원과 비교해서 흡수율이 높아 우리의 치아나 뼈에서 자연적으로 감소되는 칼슘을 보충해 주며 칼슘 부족으로 생길 수 있는 골다공증을 예방할 수 있다.

치즈의 단백질은 제조공정 중 첨가된 유산균 및 렌넷효소에 의해 숙성중에 치즈 단백질을 아미노산으로 분해하여 치즈 고유의 맛을 형성한다. 섭취시에는 소화 부담을 덜어주어 흡수, 재흡수, 또는 조직이동이 용이하게 된다. 치즈 단백질은 필수아미노산 함량이 다른 단백질 식품보다 많기 때문에 양질의 단백질 공급원이라 할 수 있다.

치즈내에는 유산균에 의해 유당이 거의 없어 유당불내증(유당소화장애)이 있는 사람들도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다. 따라서 우유를 마셔야 하나 속이 거북해서 꺼려지는 경우 우유를 대신해 요구르트나 치즈로 섭취를 대신해도 된다.

살아서 숨쉬는 먹거리를 위한 노력

▲ 황형연 이선자씨와 아들 황인원군

하먼의 고급수제 숙성치즈가 나오게 된 과정은 그냥 나온게 아니다.

황형연 이선자 부부가 원유생산목장을 넘어서 유가공 브랜드 육성을 목장의 미래로 삼은데는 안지기 이선자씨의 노력이 컸다. 이 부부는 2004년~2005년도 순천대학교 목장형 유가공과정에 등록해 차례로 치즈교육을 받았다. 부부가 최초로 치즈제조기술자 자격증을 획득한 것이다. 이후에 이선자씨는 국립축산과학원, 농업기술센터, 낙농육유협회강의 등 치즈관련 교육이란 교육은 빼놓지 않고 수강했다. 15개 과정을 거쳐왔다.

또 큰아들 황인원씨도 한국농업대학을 졸업했다. 축산과 재학시 미국 네브래스카주의 한 낙농목장(500두 규모)에서 낙농의 기본을 확실하게 다지고 돌아와 부모님과 함께 낙농업의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있다.

이들의 손으로 우리나라에도 또 하나의 독특한 먹거리 고급 수제치즈가 태어났다. 덕분에 우리는 우리의 혼으로 만든 고급 수제숙성치즈를 맛보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

숙성치즈는 시간과의 싸움입니다.
제가 만든 치즈를 숙성실에 넣을때마다
그렇게 기분이 좋을수가 없습니다.

치즈가 뒤집고 트고 갈라지는 것을 막기위해
염짓물로 닦다보면
자식을 기르는것 만큼이나
정이갑니다.

그 아이들은 시간이 갈수록 숙성치즈의 모습을
갖춰갑니다.

그것을 보는게 즐겁습니다.

이선자씨의 마음을 헤아리며 하먼치즈의 발전을 기원한다.

하늘을 받들어 만든 상주 박명의 곶감

씨앗은 해마다 그 안에 경험했던 정보를 다 축적한다. 오랫동안 겪어온 일상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씨앗은 여러 곡절과 계절의 변화를 간직하고 있다. 씨앗은 다 알고 있다. 사람들도 병들었던 경험이나 어려웠던 경험들이 다 기억이 나는 것처럼 씨앗도 마찬가지다. 좋은 기운으로 건강한 땅에서 맺은 종자는 그만큼 건강한 전통을 그 안에다 쌓는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해마다 자신이 겪은 생명짓중에서 자신이 잘못하고 부족한 부분들은 잘 헤아리고 가장 잘하고 즐거워했던 일들은 어떤 방식이든지 후대(後代)에 전하려고 애를 썼을 것이고 그 다음대로 또 그다음대로 이어졌을 것이 분명하다. 자신의 종족(생명)을 유지하려는 본능의 발현이기도 하고 자연의 섭리이기도 하다.

그렇게 씨앗을 들여다보니 하루 삼시세끼 내 밥상에 올라오는 먹을거리의 근본을 생각하고 궁금해 하는 버릇이 생겼다. 배추, 파, 콩, 쌀, 잡곡... 모두가 다 씨앗으로부터 출발한 것들이니 새삼스럽다. 고기도 생선도 다 씨앗(정자, 난자)에서 출발하는 거다.

사람도 대(代)를 잇듯 내가 먹은 저 씨앗 또한 지난해 심은 것에서 나온 것이니 알곡 하나하나마다 그 안에 아로 새겨진 역사 하나하나를 온전하게 얹어 먹는 것이나 진배없다.

▲ 박명의씨 지붕밑 처마.

수수(몽달수수, 비수수, 까치수수) 등 각종 토종씨앗들 저마다의 이야기가 상서롭고
홑줄에 매달린 곶감이 초가을부터 깊은 겨울까지 세월을 빨아들이며 익어가고 있다.
'잘 사세요' 외부 전기등도 정겹기 그지없다.

우토롱골 박대장금 박명의 아줌마

경북 상주 화북면 입석1리에 박명의, 김희수씨 내외가 산다. 귀농 12년차로 한빈이와 해인이 남매를 키우며 농촌에서 토종종자 150여 가지를 품고 살아간다. 일상적인 시선으로 보면 돈 안되는 토종씨앗을 저리 애지중지 하는게 이해가 안되지만 그니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이해하고 나서는 고개를 끄덕거릴 수밖에 없었다.

박명의 여사의 집은 '씨앗오쟁이'와 마찬가지다. 대(代)를 이어가는 씨앗의 명가(名家) 150개가 들어있는 작은 '우주보따리'다. 작은 구슬 같은 곳에 또 다른 우주가 들어있던 영화 '맨인블랙'의 한 장면이 생각 난다.

▲ 박명의님과 김희수님 내외의 정겨운 모습.
상주 화북에서 괴산 청주방면으로 가는 길 왼편으로 회룡골 표지석이 선명하다.

상주시 화북 입석리는 필자가 2004~2006년 사이 3년 정도 오가며 '참발효퇴비농사업'을 진행했던 사무실이 있던 마을이다. 내 사무실은 입석2리였고 박명의 여사가 사는 곳은 입석1리다.

입석1리는 '회룡골'이라 불린다. 높은데서 바라보면 마치 용이 휘돌아가는 형상이라 하여 옛날부터 내려오는 이름이다. 윗동네와 아랫동네로 나뉘어 '위회룡골' '아래회룡골'로 부르는데 어른들 입에 달라 붙다보니 윗동네를 '우회룡골' → '우토롱골'로 소리나는대로 부른다.

▲ 우토롱골에는 묘하게 자라난 오래된 소나무가 있고 그 밑에 동신제(洞神祭)를 지내는 작은 사당(?)이 있다.
지금도 우토롱골 사람들은 정월 초이튿날(설 다음날) 마을사람들이 다모여서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는 동신제를 지낸다. 사당에 걸어놓은 새끼금줄은 마을의 나쁜 기운을 막아내며 마을을 지켜준다.

그래서 산촌 유학하는 아이들은 박명의님을 부를 때 '우토롱골 아줌마'로 부른다. 산촌유학은 도시학교 학생들이 전학을 하지 않고도 일정기간을 시골에 거주하며 시골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마련된 제도다.

"왜 귀농을 하셨어요?"
"가장 간단하게 살고 싶어서요" 참 무심(?)한 듯한 대답이 툭 나온다. 뭔가 사연 있는 이야기가 나올 줄 알았는데 아니다. 간명했다. 쉽지 않은 이야기를 한줄로 녹여낸 것이다.

대학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박명의님은 결혼하기 전 90년대 중반까지 도시에서 그림을 그렸다. 문득 문득 시골에 가서 그림도 그리고 농사도 지으면서 살아보자, 돈이 필요하면 품이라도 팔아서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2000년도 38살 되던 해 푸른누리공동체 심성수련 프로그램에서 신랑 김희수씨를 만나 데이트 4번 만에 결혼을 했다. 초등학교 3학년짜리 아들 한빈이와 막 학교에 입학한 딸내미 해인이를 두고 있다.

두 사람에게 도시생활은 웬지 짐을 잔뜩 가지고 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쓰레기만이라도 싸놓지 않는 삶'을 살아보자. '온전하게 순환하는 삶'은 아니더라도 '가장 간단하게 사는 방향'으로 가자고 마음먹었다.

해서 결혼하자마자 승주를 거쳐 덕유산자락의 품 거창에다 살림을 꾸리고 농촌생활을 시작했고 4년을 살고 2006년 이곳 상주 화북으로 이사를 했다.

우토롱골 아줌마는 재주가 많다. 황토염색도 하고 장구도 치고, 그림도 잘 그리고 옷도 맵시있게 잘 만든다. 신랑 김희수씨는 나무를 다루는 목수다. 전국 각지를 다니면서 많은 사람들의 전통가옥을 짓는다. 집을 지어주고 덕(德)을 쌓는다. 그러다보니 우토롱골 집과 농사는 거의 대부분을 박명의씨가 지킨다. 그래도 두 사람은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채 살아간다. 서로의 일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협력한다.

박명의씨는 어릴 때부터 농사일이 재미있고 익숙했다. 심은 씨앗이 땅에서 움터 올라 올때면 납작 업드려 눈 가까이 파릇파릇 표현하기 어려운 신비로움을 느꼈고, 허리춤까지 올라오고 키만큼 자라나면 그만큼 꼬맹이 박명의의 신명도 커갔다.

그래서였나.
귀농 12년차의 삶은 풍성하다는 느낌을 준다. 문화적 다양성이 보이고 이야기가 풍부하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40대 후반 그 또래 도시가정에서의 삶의 이야기보다 훨씬 재미있고 풍요롭다는 생각이 든다. 네온사인 번화가도 아니고 아파트도 아니고, 물질도 풍족하지는 않지만 '자연의 품' '대지의 향기' '이웃과의 어울림' 같은 맛깔스런 컨텐츠(이야기)가 풍부해서 그런 것이지 싶다.

지치지 않고 농사를, 그것도 돈 되는 종자들만 골라 올인하는 다른 이들에 비해 오롯이 토종종자의 생명짓을 잇기 위한 농사를 짓는 고단함이야 묻어나지만 씨앗을 심고 거둘 때마다 드는 든든함으로 한세상 살아가는 것이다.

씨앗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주고, 그들의 미묘한 차이를 구분하는 것, 그 조그만 생명체들이 천배만배로 커져 '세상에 자기를 드러내는 과정'을 들여다 볼 때마다 언제든지 다시 일할기운이 샘솟는다.

볕이 좋은 날은 씨앗들을 꺼내 '볕 마중'을 한다. 아이들과 박명의씨에게는 씨앗들은 단순한 대상이 아니다. 살아가는 '근거'이고 '길동무' 같은 존재다. 아이들의 두손 모은 표정을 보면 순환되는 기(氣)가 보인다. 하늘에서 땅으로 땅에서 알곡으로 알곡에서 아이들에게로... 그리고 아이들의 싱그런 기운은 다시 자연의 품으로 올라간다.

집 마루에 눈에 띄는 앙증맞고 예쁜 녀석들이 있었다. 토종옥수수들인데 색깔이 얼마나 야물고 영롱한지 보는 이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알갱이 하나하나 같은게 없다. 다 제각각이다. 노란 두 녀석은 팝콘 만드는 옥수수란다. 단단하기는 강철 알구슬과 진배없다.

박명의씨는 토종종자를 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아낌없이 종자를 나누어준다. 나누어야 널리 퍼지고 종자가 보존되기 때문이다. 옥천 산계뜰영농조합법인 이선우대표가 '선비잡이콩'을 물어봐달라 요청해서 물었더니 있단다. 또 종자로 그냥 나누어 드리겠다고 선뜻 그분 휴대폰전화 달라고 한다. 그렇게 선비잡이콩은 상주 박명의님 품을 떠나 옥천에서도 자신을 드러내게 된다.

우토롱골 박대장금 곶감을 만나다.

▲ 자연의 품안에서 감들은 저마다 각각 다 다른 모습으로 성장하며 곶감이 되어간다.
같은 장소지만 각자가 달려있는 위치에 따라 다르다. 1월10일경 곶감의 모습인데 시간이 더 가면서 수분은 자연스레 더 말라갈것이고 곶감은 정점을 향해 익어갈것이다.

필자가 11월 초 박명의씨 댁에 다니러갔을때다. 남편 김희수씨가 인상 좋은 동네청년과 감을 깎고 있었다. 손과 작은 기계를 이용하여 깎았다. 11월 첫서리가 내릴 무렵 추위가 오기전 상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연스러운 풍경이다.

사랑방에서 따끈한 차한잔 나누면서 곶감이야기가 따라 붙었다.

곶감 이야기에는 빠짐없이 호랑이가 등장한다. "떡하나 주면 안잡아먹지~" 으레 호랑이놈이 떡장수에게 던지는 멘트다. 먹이의 간을 보는것이다. 소금장수도 그랬고 소장수에게도 그랬다. 세상에 호랑이를 당할 존재는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호랑이가 물어간다고 해도 무시하고 앙앙 우는 어린손자를 달래기 위해 "곶감하나 줄까?" 할머니가 던진 한마디에 울음을 뚝 그치는 아이를 보고 '곶감'이 자기보다 더 무서운 놈인줄 알고 도망갔다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은근히 통쾌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호랑이도 밉지는 않았다. 어딘가 한구석은 어리버리하게 보이는 호랑이는 친근한 상상속에서 내 곁으로 다가섰으니까.

곶감은 우리네 생활속에서 단맛의 정수(精髓)였다. 오죽 달고 입맛에 맞았으면 단맛과 관련된 속담이다 싶으면 곶감이 단연 으뜸으로 많을까.

- '곶감 꼬치에서 곶감 빼 먹듯'(알뜰히 모아 둔 것을 힘들이지 않고 하나씩 빼어 먹어 없앤 다는 뜻)
- '곶감 죽을 먹고 엿목판에 엎드러졌다'(연달아 좋은 수가 생겼다는 뜻)
- '곶감 죽을 쑤어 먹었나'(왜 웃느냐고 핀잔주는 말)
- '당장 먹기엔 곶감이 달다'(뒷일 생각 않고 자기에게 이득이 되는 것만 한다는 뜻)

사랑방 좌담에서 나는 박명의씨 내외에게 곶감을 조금만 더 만들어 달라고 요청을 했다. 안병권고향보따리의 이야기로 깊은 겨울(동지섣달과 정월달)에 안성맞춤이지 싶어서였다.

토종씨앗은 팔기 위해서 농사짓는게 아니라 종자보존을 위한 농사이므로 이것저것 손은 많이 가지만 생활비에 큰 보탬이 되지 않는다. 해서 감이라도 일부 깎아 곶감으로 만들어 생활비에 보태기 위한 방편이기도 하고, 가족들의 겨울간식용 이었는데 내가 조금 더 부탁을 했다.

우토롱골 아줌마는 옛날방식으로 자연스러운 환경에서 말리고 손질하고 정성을 쏟는다. 보기 좋은 빨간색으로의 착색이나 탄닌 성분의 산화방지를 위하여 유황가스를 피워 대량으로 생산하는 곶감과는 컨셉이 다르다. 이유야 어찌하든 유황이 타면서 나오는 황(S)성분이 우리 몸에 좋을 리는 없다.

왼쪽 사진에 보기에도 좋고 맛나게 보이는 녀석은 정상적으로 익어가는 친구고 유황을 피우지 않고 재래방식으로 말리므로 오른쪽 사진처럼 검푸른 곰팡이들이 달라붙는 녀석들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곶감들도 다 똑같은 조건하에서 출발하지만 시간이 흘러가면서 낙오자가 생기게 마련이다. 그 친구들의 운명이라 하겠다.

정상적인 친구들은 고객들에게 나누어 드릴 것이고 상처받은 친구들은 별도로 모아서 겨우내 박명의씨네 겨울간식으로 요것조것 손질해서 먹는다. 대량으로 생산하는 시스템에서는 유황을 피워(훈증) 이와 같은 상품의 변질을 인위적으로 막아내는 것이다.

감을 깎아서 걸고 난 초기의 날씨가 좌우한다. 올해는 늦가을부터 초겨울까지 습기가 많고 우중충한 날씨가 많아 낙오하는 녀석들이 많이 생겨나 박명의씨 마음을 조바심나게 했다.

▲ 곶감은 정말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른다.
우토롱골 아줌마와 둘이서 맛을 보는데 아무 생각이 안난다. 그저 맛나다는 생각밖에...

간혹 왼쪽사진처럼 꼭지 근처 속 과육이 검은색을 띄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상한게 아니다. 일교차가 극심한 상태에서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게 되면서 검은속내를 보이는 경우가 더러 있다고 한다. 맛은 더 좋다. 이 상태에서 시간이 더 경과하면 할수록 수분이 증발하면서 내부의 단맛이 세상 구경을 위해 밖으로 나오게 된다. 하얗게 피는 분(粉)은 바로 '감의 단맛이 현신(現身)한 것'이다.

예전 우리 어머님들이 만드셨던 방식 그대로 지붕 처마밑이나 마당에 한켠에 만든 사방이 개방된 가공실에서 걸어두고 말렸다. 그러다보니 지난 두달여간 우여곡절도 많았다. 한동안 날이 개운치가 않아서 곶감이 익어가는 과정이 순탄치 못해서 차일피일 미루어지기 일쑤였다. 날이 잘 안받쳐준다고 우토롱골 아줌마는 걱정을 하곤 했다. 그래도 고르고 골라내면 1월 중순 이후에는 맛을 볼 수 있다고 하니 여간 다행한일이 아니다.

내가 한눈에 반한 이유는 토종씨앗을 품고 땅의 성질을 잘 헤아리는 박명의씨 식구들의 마음과 정성으로 만든 곶감이면 세상 어디에 내놓아도 마땅하지 싶어서다. 양은 많지 않지만 그를 만드느라 들어간 정성은 하늘만큼임을 알기 때문이다.

인위적으로 가공한 곶감들은 상온에서 보관하면 금방 거뭇거뭇해지므로 냉장고에 보관해야 한다. 하지만 재래방식으로 건조하는 곶감은 예전에 그랬듯이 뽀얗게 분이나면서 시간만큼 내력도 쌓여가며 두고두고 여러 곳에 쓰인다.

우토롱골 곶감은 150가지의 토종씨앗을 받아들여 150개 저마다의 대(代)를 잇는 '생명살이'를 마주하고 품었던 사람이 만든 '보석'이다. 인위적인 물리력이나 화학적인 강제력은 배제되고 곶감 본래의 성질과 우토롱골아줌마 식구들의 정성으로 이루어진 합작품이다.

'우리집 작은 곡식'들은 저마다 꿈을 꾸고 있다.
푸른하늘 아래 고운 싹 틔울 날을...

우토롱골 아줌마의 독백이다.

햇님, 물님, 바람님, 구름님, 땅님, 똥님 고맙습니다.

우토롱골 곶감은 단순한 먹을거리가 아니다. 모진풍파 이겨내고 저마다 이유있는 이야기로 구구절절 보석이 된것이다.

지리산 깊은 산 속 꽃들의 향기와 맛

갯버들, 꽃다지, 회양목, 매실, 양지꽃이 긴 겨울 꿀맛 같은 대지의 휴식을 뒤로하고 3월에 고개를 내민다. 개살구, 사과나무, 복숭아, 앵두, 산버들, 진달래, 자운영이 4월을 딛고 물푸레, 산딸기, 애기똥풀, 소나무, 인동넝쿨, 배추, 탱자, 토끼풀이 5월을 품는다.

머위, 복분자, 옷나무, 가시엉겅퀴, 하고초, 대추, 빗싸리, 튜울립, 호박은 녹음의 절정 6월을 즐기고 밤, 광대싸리, 개머루, 싸리, 참깨 피나무, 헛개나무가 7월을 관통한다. 8월에는 봉선화, 연꽃, 익모초, 과꽃, 배초향, 사위질빵, 참싸리, 옻나무, 두릅이 주인공이다.

해바라기, 향유, 며느리밑씨개, 여뀌바늘, 물봉선, 개미취, 참취가 9월에 가을을 손짓하고 개여뀌, 큰비단분취, 산국, 코스모스, 털머위가 10월을 재촉한다.

▲ 갯버들위에서 꽃가루를 묻힌채 열심히 일하는 토종벌

꽃을 피우지 않는 식물은 없다.

꽃은 식물의 몸체에서 맺어져 그 진액이 담겨진다. 그 식물의 주요 구성성분을 담고 있다. 진액은 그 식물이 자연에 내주는 것과 요구하는 것을 머금는다. 그가 살아야 할 존재가치가 담겨지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농업(農業)은 '모든 생물의 존재가치를 드러내고 아우르는 일'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들이 존재하는 동안 시간, 계절, 기후, 먹이, 사랑의 요소들은 똑같은 모습으로 진행 되지 않고 온갖 우여곡절로 삶의 컨텐츠를 채운다. 하나하나 대응하는 과정에서 문제를 풀어내며 터득한 삶의 지혜를 자신의 몸속에 저장하고 기억하는 것이다.

그렇게 봄, 여름, 가을은

벼 나락에서
콩 꼬투리에서

몽당수수, 옥수수, 차조같은
알곡 하나하나에서

열매로
땅속줄기에서

하나가 되고
'완성(完成)'이 된다.

그 '완성'은 봄, 여름, 가을 내내 지난한 몸짓으로 화분(꽃가루)을 매개한 토종벌로 인하여 '정점'에 이르고, 벌들이 만든 온갖 인연은 '토종꿀'에 담겨져 또 다른 '완성(完成)'이 된다.

각자의 유기체가 스스로 살아낸 노하우를 모아 담은 물리적인 총량에다 오묘한 자연의 가치가 보태진 결과다.

토종벌 에피소드


태조 이성계가 무학을 불러 점을 치니 이성계하고 사주팔자가 정확히 일치하는 사람이 또 한사람 있는게 아닌가? "세상에 왕이 될 팔자가 둘이라니..." 고려왕조를 무너뜨리고 역성혁명으로 왕이 된 자신이고 보니 이는 분명 둘 중의 하나는 죽어 마땅한 상황이었다. 전국에 영을 내려 또 다른 '왕이 될 사주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잡아 들였다. 알고 보니 그는 벌을 치는 사람이었다.

"대왕께서는 수백만 백성을 다스리는 왕이시고 저는 수백만 벌을 칩니다. 대왕께서는 백성을 긍휼히 여기고 자애롭게 대하여 풍족하게 살수 있도록 노심초사하십니다. 저 또한 벌들을 그리 대하옵니다. 그러니 이치와 도리가 대왕과 같사옵니다" 이 같이 대답하니 이성계는 껄껄 웃으며 후한 상을 내렸다.

▲ 소장처 : 삼성미술관 Leeum

조선 후기의 화가 김득신(1754~1822)의 작품 '사계풍속도'중 겨울채비하는 풍경이다. 풍속화 이외에 도석인물(道釋人物)을 비롯하여 산수·영모(翎毛) 등도 잘 그렸다. 김홍도(金弘道)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특히 풍속화는 그 경향이 두드러진다. 이 그림에는 4개의 벌통이 나온다. 사람들이 사는 저잣거리에서 토종벌을 친 것이다. 요즘에도 도시근교 농가에서 몇통 정도 키우기도 하고 심지어는 도심에서 토종벌을 키우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으니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농가월령가 4월령에 나오는 벌치는 이야기도 있다.

한 잠 자고 일어난 누에 하루도 열두 밥을 밤낮을 쉬지 말고 부지런히 먹이리라.
뽕 따는 아이들아 뒷 날을 생각하여 오랜 가지 찍어 내고 햇잎은 두고 따소.
찔레꽃 만발하니 적은 가뭄 없을소냐 이때를 이용하여 나 할 일 생각하소.
도랑 쳐 물길 내고 새는 지붕 손질하여 장마를 방비하면 둣 근심 더 없나니
봄에 매는 필무명도 이때에 널어 말리고 베 모시 형편대로 여름옷 지어 두소.

벌통에 새끼 나니 새 통에 받으리라. 천만이 하나같이 여왕을 받들으니
꿀 먹기도 하려니와 군신 도리 깨닫도다.

우리네 고향, 역사, 살아온 살림살이를 생각해보면 '일소'처럼 '토종벌'도 아주 잘 어울리는 정겨움중의 하나 였고, 실재(實在)였다. '벌을 치는 일'은 다른 이야기들을 담은 의미 있는 일로, 살아가는 방편으로 이어져 내려온 것이다.

▲ 전남 구례 김정환씨의 용방 벌방에서 바라본 지리산 노고단(사진 오른쪽 뾰족한 부분)과 만복대(사진중간 평평한 정상) 전경이다. 지리산 덩어리의 크기에 압도된다. 25년전 철원 김화에서 군대생활 할 때 GOP근무를 했다. 민들레 벌판 북한군 지역에 서있던 오성산 덩어리가 크다고 생각했는데 노고단 저 덩어리에 비하면 아주 작은 편이다.

지리산에는 1,300여종 이상의 식물이 서식한다. 이는 한라산 다음으로 종의 다양성이 이루어지는 생태계의 보고(寶庫)다. 그중 충매화가 70%정도다. 지리산 자락에서 토종벌이 잘되는 이유이기도 하고 결과이기도 하다. 소설 태백산맥의 주무대이자 한국 근현대사의 애환이 온전하게 녹아있는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추위가 한참이던 1월 중순 전남 구례 용방면 용정리 상용마을 깊은 골짜기 따라 산속으로 산속으로 올라갔다. 자동차 길이 다되어 내려서도 한참을 더 걸어 올라가니 한겨울 풍취가 가득한 벌방이 시야에 들어온다.

올라가는 중간쯤에 오래된 녹슨 홀태(벼나락 터는 기계)가 수풀에 묻혀 있는 걸로 보아 이곳에서도 예전에는 벼농사를 짓거나 밭농사를 지었던 모양이다.

잠깐 돌아 나오면 맞은편으로 지리산 노고단과 만복대가 웅장함으로 다가서는 해발 600고지에 있는 토종벌농장(벌방)이 있다. 400여군 정도가 겨울을 나고 있는데 큰 군단(軍團)을 이룬다. 벌통안에서는 월동하는 토종벌들의 생명짓이 한창이다. 고요하고 적막한 겨울 지리산, 그곳에서 수많은 생명들이 다음을 준비하고 있었다.

벌 한 통당 수밀기 한창일 때는 2만에서 3만마리 정도의 기세로 살아 움직이는 병력이니 400여군이면 천만대군이나 마찬가지다.


벌방 중간 중간 벌통이 놓여있지 않은 자리들이 보이길래 이 자리에는 왜 벌통이 없냐고 물었더니 안주인 조말순 여사가 대답을 한다. 이런 곳은 아무리 좋은 벌통을 옮겨 놓아도 벌이 안되는 자리라는 것이다. 근처 사방도 열려있고 밀원도 근처에 있고 잘되는 벌통들과도 불과 몇m도 안떨어진 곳인데 어째서 그럴까? 벌을 치는 사람들도 이해하기 어렵다고 한다.

사람 사는 집터도 그런 현상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수맥(水脈) 때문이기도 하고 뭔가 다른 기(氣)때문이라고도 하고... 아무튼 자연의 조화(造化)속은 헤아리기 어렵다.

신기한 일은 '자리'뿐만이 아니고 '사람'도 벌이 안 되는 사람은 죽어도 안된다고 한다. 사양관리 기술이나 조건때문만이 아니고 사람에 따라서도 다르다고한다. 혹자는 벌치는 것은 사주팔자에 벌이 들어있어야 되며, 벌 사주가 있는 사람은 CEO의 기질이 다분히 있다고도 이야기한다.

토종벌(oriental honeybee)

토종벌은 양봉의 서양종벌과는 종(種)이 다르다. 종이 다르면 교미가 이루어지질 않는다. 학명으로 토종벌은 'Apis cerana'이고 서양종벌은'Apis mellifera'이다.

▲ 토종벌몸에 화분(꽃가루)이 잔뜩 묻어있는 모습

▲토종벌의 눈이다. 아주 예쁘죠?

토종벌은 고대로부터 우리나라에 자생해온 꿀벌이다. 우리나라의 기후와 생태에 가장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진화 해온 존재다. 토종벌은 체구가 작고 이른 봄부터 늦은 가을까지 추운날씨에도 활동할 수가 있고 꽃병이 긴 어떤 꽃이라도 꽃의 밀샘 깊숙이 파고들어 꿀을 물어올수가 있다.

토종벌은 작은 체구로 코박고 꿀을 따기도 하지만 꽃이 시들 무렵 꽃주위에서 온갖 '오도방정'을 다 떨며 부산하게 움직이면 긴 꽃병이 떨어진다. 그때 꿀을 딴다. 귀엽고 지혜로운 녀석이다.

토종벌들은 처음 벌통 근처에 가면 쏘지만 그 다음부터는 잘 안쏘는 경향이 있다. 또 벌들이 내는 경계음도 재미있다. 낯선 사람이 다가서면 서로간의 텔레파시 신호음으로 "쏴~쏴!쏴!" 강렬한 음을 내며 긴장하며 경계하지만 주인이 오면 "싸방 싸방, 나 여기 있어요" 한결 부드러운 소리를 낸다.

▲ 토종여왕벌과 일벌들

여왕벌은 평생에 한번 교미를 한다.
여왕벌이 그 한번의 교미를 위해 날아오르면 10~20m정도를 비상한다. 근처 벌통 숫벌들이 50여마리 이상 따라 오른다. 여왕벌은 한 마리의 숫벌과 교미하는 것이 아니고 여러 마리와 교미한다. 많게는 15마리 정도의 숫벌과도 교미한다.

이는 여왕벌의 정낭(精囊)이 채워져야 하고 다양한 유전자를 많이 받아야 건강한 후손들이 태어나게 되고 조직이 유지되기 때문이다. 교미를 마친 숫벌은 생식기가 떨어져 나가 죽는다. 그러고 보면 생태계 내에서 수컷의 팔자가 좋은 놈은 그리 많지 않은듯하다. 우리네 사람들 '수컷(남자)'의 팔자는 어떤가?

토종벌의 생태적 가치

토종벌은 지역 고착형이므로 벌방이 있는 지역의 기후와 생태, 서식하는 식물등 제반요소를 오랫동안 경험하고 대응해온 방법들을 유전적 요인으로 내재(內在) 시켜왔다. 식물의 수분을 매개하는 매개충중에서 토종벌의 위치는 경이로운 존재가 아닐수 없다.

지리산 계곡에 매실꽃이 피기 시작하면 이미 그곳에 매실이 존재하고 있음을 몸으로 알고 있던 토종벌이 날아드는 것이다. 한겨울을 딛고 갯버들이 움을 틀때면 "음~ 반가운 친구네 " 벌나비도 움직일 채비를 한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박사는 "벌이 사라지면 인류는 겨우 4년을 버틸 수 있다."라고 경고했다. 그 의미가 새삼스럽다.

또한 토종벌은 초봄부터 늦가을까지 활동 가능하다. 토종벌은 꽃에서만 먹이를 물어 오는게 아니다. 더 높은 가치평가를 한다면 각종 나무의 수액과 식물성 물질, 진흙 등 다양한 물질들이 혼입된다는 것이다.

봄, 여름, 가을 밀원을 다 담아야 토종꿀이다.

▲ 토종벌통의 내부구조

(사)한국토봉협회가 정한 토종꿀의 정의다.

토종벌이 대한민국영토내에서 이른봄부터 늦가을까지의 밀원으로부터 수밀하고 화분과 각종나무의 수액 등 벌의 먹이로 수집된 것을 일년중 한번(10월경) 채밀하여 숙성시킨 것.

토종꽃꿀 고유의 특성

●온도에 민감하여 늦가을 기온이 낮아지면 가는 모래알처럼 굳어지거나 해동이 되면 결정체가 녹으면서 효소활동이 나타난다. (효소활동 : 부글부글 괴면서 토종꿀이 용기로부터 흘러넘치는 현상)
●토종꿀은 장기간에 걸쳐 봄, 여름, 가을꽃의 정수(精髓)를 벌집에 저장된 것을 통째로 분쇄하여 채밀하기 때문에 농도가 진하고 유기산과 각종 나무의 진액이 저장되어 독특한 맛과 향을 가지며 색상은 주로 진한갈색을 나타낸다.
●토종벌이 수집한 각종 화분과 식이섬유소가 그대로 토종꿀속에 존재하여 일정기간 지나면 윗부분으로 떠올라 진녹색의 띠를 형성하고 비릿한 냄새가 나게 되는데 이는 지극히 당연한 현상으로 다시 잘 저어 먹으면 된다.
●토종꿀은 반드시 숙성(熟成)되어야 한다. 벌집에 저장된 벌 먹이, 이것을 우리는 꿀이라고 하는데, 벌집에 있을때까지는 벌먹이이기 때문에 인간에게 유익하게 하기 위해서는 벌집을 부수고 그 액을 숙성시켜야 비로소 꿀이된다. (완전 숙성되었다는 것은 자당성분이 7%이하로 되었다는 뜻이다)

전남 구례 한솔농장 벌군단 총사령관 김정환, 조말순

▲ 전남 구례 한솔농장 김정환,조말순내외는 56살 동갑내기다.

이야기로 농업농촌을 풀어가는 안병권보부상단에서는 토종꿀 산업도 중요한 농산업의 한 분야이므로 자료를 모으고 이야기를 시작하기로 기획했다. 하지만 꿀 산업은 여전히 진짜가짜 논란부터 생산자 내부간의 갈등(양봉과 한봉/한봉과 한봉 생산자간의 견해차이), 소비자의 부정적인 선입견 등등 풀어야 할 숙제가 많은 분야여서 여러 가지 고민되는 지점은 분명해 보였다.

해서 사단법인 한국토봉협회(회장 김종천)에게 꿀 이야기를 함께 나눌 수 있는 신뢰가 가는 생산농가를 추천해줄 것을 요청했고 전남 구례 한솔농장을 소개 받았다. 양봉꿀 에덴양봉원 윤상복사장의 선언처럼 '꿀을 알려면 그 사람을 보라'는 명제를 생각해서였다.

▲ 용방벌방에서 안지기 조말순여사,토봉협회 김태윤사무국장,안병권보부상단 단장

구례로 내려 오기전 대전에서 결혼 생활하는 동안 김정환씨의 퍼주는(?)성격으로 인해 가족들은 고생을 많이 했다. 지인들 빚보증을 여러차례 서주다가 집안이 풍비박산 나서 조말순씨가 미싱으로 품을 팔아 아이들을 먹여 살렸다.

이것저것 하는 일이 잘 안되자 고향으로 내려오기는 해야겠는데 친구들이며 아는 사람들 얼굴 보기가 세상에 죽기보다 힘들었다. 내려오는 길이 거의 죽으러 내려오는 것만 같았다. 아들 둘은 비염이 걸려 고생이 심하던 무렵이다.

하지만 23년전 벌을 치기 시작하면서 아이들 병도 다 낫고 건강도 좋아지고 살림살이도 좋아지기 시작했다. 지난 세월 돌아보면 주변 사람들은 한결같이 김정환이는 '벌 덕에 인생이 폈고 각시덕에 산다'고 이야기한다.

'곧이 곧대로'
두내외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드는 느낌이다.
뭐 달리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있는 그대로 생각하고 마음을 다잡는다. 고지식하다. 김정환씨의 남에게 베풀기를 좋아하는 버릇은 여전해서 이것저것 나누고 받는 모양이다. 하지만 옛날처럼 사고는 치지 않는다며 안주인이 웃는다. 말보다는 행동으로 그저 묵묵히 '벌치는 사람들'이었다.
천상 거짓말을 하라고 자리를 펴놔도 '금방 표가 나는 사람들'이었다.

진짜꿀 가짜꿀 이야기가 나올 때 심정이 어떠냐고 물었다.
"속상하지요, 있는 그대로 그냥 벌치고 살아가면 되는데 왜들 그리하는지 모르겠고 피해가 고스란히 전해오지만 뭐 달리 대응할 방법도 없어 그냥 우리식대로 농사만 열심히 짓지요. 그랬더니 고객분들이 품질로 알아 주세요. 그 맛에 살아요."

토종벌집(자연벌집)


토종벌집은 토종벌이 벌집속에 꿀과 화분등을 저장한 것으로 가공하지 아니한 자연상태의 것이다. 당액(설탕)사양으로 주변밀원 50~80%의 보조를 받아 생산하는 것이다.

꿀벌은 알과 애벌레 육아와 먹이 저장을 위해 육각형 벌집을 만든다. 자연벌집꿀이 생산되는 과정은 "꿀벌들이 5개월이라는 긴 겨울을 나야되며, 봄이 오면 분가(分家)라는 살림을 2~3차례 나야 한다. 뜨거운 여름철 장마와 습기와 더위를 이겨내야하고 천적과 해충과 싸워 이겨야 비로서 토종벌집에 꿀을 저장하기 시작한다.

자연벌집에는 천연꽃꿀과 장마&무밀기(밀원식물이 없는 시기)에 꿀벌의 생존을 위하여 설탕사양(설탕과 물을 1:1로 섞어 벌에게 먹인다) 된 벌집꿀이 들어있다.

꽃의 밀샘에서 분비되는 당액의 주성분은 이당류(二糖類)인 자당(蔗糖), 즉 설탕과 같다. 그래서 무밀기 먹이부족현상이 나타나 설탕물로 대신하는것은 잘못이 아니다. 벌꿀은 벌이 먹어 뱉어낼 때 첨가된 타액에서 나오는 발효효소에 의하여 자당성분이 분해되어 전화당이 되는것으로 꽃의 밀샘에서 분비된 자당성분은 수분포함 98%이상이다. 이 역시 발효숙성되어 자당성분이 7%이하로 규격기준에 적합하면 문제될게 없다.

과도한 당액사양은 식품규격기준에 위반되고 원가부담과 토종벌의 건강에도 위해요소가 되기때문에 무밀기 이외에 상습적으로 급여하는것은 오히려 더 손해가 된다.

토종벌집은 받은지 한달 이내에 액상꿀로 짜고 상온에서 30일 이상을 숙성(熟成)시켜야 비로소 토종꿀이 된다. 현재 식품공전상 토종벌집은 '꿀'이 아니라 '자연식품'이다.

토종벌집은 각종 영양소의 보고이다.
벌꿀은 탄수화물중 이당류와 단당류가 수분을 포함 99%다.
토종벌집은 새끼벌의 몸에서 자연 분비되는 자연밀납과 각종 나무의 수액, 각종 식물성물질 화분등이 30%이상 존재하며 수분을 포함 탄수화물은 70%에지나지 않는다. 또 인체에 가장 중요한 효소가 그대로 살아있다.

토종벌집은 액상의 꿀외에 더 좋은 살아있는 효소, 비타민 아미노산과 화분 그리고 밀주를 만들어 먹을수 있는 벌집을 부산물로 얻을 수 있다.

토종꿀 생산의 현실

당액사양을 하지 않은 토종꽃꿀은 그 가치와 풍미로 인해 높은 가격을 받을수 있으나 판로가 불안하고 기후의 변화와 환경오염 등으로 인하여 생산여건이 점점더 어려워지고 있다.

반면에 무밀기 설탕사양을 하는 경우 벌은 건강하게 잘자라고 도태가 안된다. 면역력도 강화되어 병도 잘 안걸리고 강군이 되어 일정량의 생산량이 보장 된다. 또 가격은 천연꽃꿀에 비하여 1/5정도에 불과하지만 많은 소비자들이 일상에서 다양한 요리소재로 사용하므로 소비량이 많다. 따라서 생산농가들은 사양토종꿀을 더 선호하는편이다.

하지만 천연꽃꿀은 우리가 세계에 자랑할만한 문화유산이고 역사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지혜롭게 중지를 모으고 토종벌의 '생태적 가치'를 재발견하고 재미있게 컨텐츠를 만들어 간다면 지금의 기술력으로 얼마든지 생산이 가능하다. 사회적으로 토종벌의 의미가 공유되는 시점에서는 가격도 현실적으로 조정이 가능하다는게 토종벌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한결 같은 이야기다.


용방벌방에서 내려오는 계곡따라 벌써 버들강아지가 피어나기 시작했다 엄동설한에서도 이렇게 자연은 순연하고 있었다. 벌들이 아주 좋아하는 밀원중의 하나다. 곧 벌들이 본격적으로 활동을 개시할 날도 머지 않은 것이다.아스라한 기억 저편
벽장속 할아버지의 '꿀단지'

그 달콤함의 유혹을 기억하시나요?
그 추억을 당신에게 전해드립니다.

산넘고 물건너 깊은산속
봄부터 여름, 가을

꽃들의 향기와 맛을
자연그대로 전해드립니다.

토종벌 이야기에 도움을 주신분들에게 감사드린다.

전북농업기술원 화훼자원연구소 최선우 박사
마천농협 토종꿀 가공사업소 김병진 소장
(사)한국토봉협회 김종천 회장과 김태윤 사무국장
네이버 까페 토비,회원 인디카

작고 소박한 것들을 발효보석으로

그리운 이여
나는 당신을 금낭화라 부르겠습니다.

깊은 숲
산길옆에 혼자 숨어서
이봄에도 어여쁜 복주머니를
조롱조롱 달고 있는 그대

나는 당신의 꽃볼을 만지작거리며
뺨에 언제나 발그레 홍조를 띤
그대를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이여
나는 당신을 금낭화라라는 말보다
더욱 어여쁜 이름이 이 세상에 있다면 나는
그 말로 당신을 부르고자 합니다.
대체 그것은 무엇입니까

-이동순 시집 '가시연꽃'-

지금은 제 아내가 된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녀의 볼은 항상 발그레 홍조를 띄고 있었는데 나는 그 모습이 금낭화 같다고 생각해서 금낭화 한 뿌리를 화분에 심어들고 그녀에게로 무작정 내려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런 나의 노력(?)이 결실이 되어 얼굴 발그레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 한 송이를 나의 것으로 만들 수 있었습니다.

내가 그녀에게 주었던 그때의 금낭화 역시 그녀를 따라 올라와 지금 우리농장 한 켠에서 잘크고 있습니다.

[야생화 키워드가이드 유상준의 글 '금낭화' 일부]

나는 어렸을때부터 조금만 햇볕을 받아도 얼굴이 쉽게 빨개지곤 한다. 그래서 엄마가 학교갈 때마다 수건에다 얼음을 적셔서 주시곤 했고 너무 더울 땐 나무그늘에서 해가 좀 빠지기를 기다렸다 집으로 돌아오곤 했던 기억이 있다.

남편이랑 연애할 때 우리는 참 멀리(서울과 마산)도 떨어져 있어서 다섯 시간을 차를 타고가야 만날 수 있었다. 어느 날은 직장에서 일을 마칠 시간이 다 되서 시계를 쳐다보고 있는데 한통의 전화가 와서 받았더니 남편이었다. 창밖에 있는 회사앞 공중전화에서 조그만 '금낭화' 화분을 들고.....

그때 나는 처음 금낭화를 알았었다.

남편은 늘 발그레한 내 얼굴이 '금낭화'같다고 하여 그 화분을 들고 먼길을 달려 나를 만나러 온 것이었다.

바알가니 참 아름다운 꽃인데 나를 그런 꽃에 비유해주어 얼마나 고마웠던지...^^

[ 안지기 박소영의 일기중에서....]

'특별함'을 녹여 '평범함'을 만든 사람들

1등만을 외쳐대고 성과, 실적, 발전, 개발, 경쟁을 전면에 내세우는 사회는 정신문화적으로 아주 미개(未開)한 시스템이다. 모든 것을 돈과 물질만으로 가늠하는 세상은 뭔가 자신이 없다는 또 다른 표현이다. '인간다운 삶'과 '지속가능한 사회'에 대한 죄악이다.

자연을 이해하고 서로의 가치를 받아들이며 다른 이들과 행복하게 정을 나누며 살아가는 사회가 문명(文明)이다.

"마음을 따뜻하게, 너를 따뜻하게, 그래야 내가 따뜻해져요. 우리 함께 살아요"
그렇게 '특별함'을 녹여 '평범함'을 만든 사람들이 있다.

8월 어느 날, 내 쪽지함으로 짤막한 글이 하나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저는 키워드가이드에서 '야생화' 글을 연재하고 있는 유상준씨의 안사람입니다. ^^ 우연찮게 들어간 프레시안에서 선생님의 '사과 한 개에도 이야기가 있다'는 글을 보고 감동을 받아 키워드 가이드를 알게 되었고 남편의 글을 신청해봤다가 되어서 요즘 몇 개의 글을 올리고 있습니다."

퇴촌에서 양평으로 가다 바탕골 예술관이 나오기 직전 3거리에서 수청리 방향으로 좌회전 받는다. 강변길의 우아함을 즐기며 4km정도 가면 다리 건너기 전 왼쪽에 '수청1리 큰청탄'이라고 쓰인 돌로 된 표지석이 보인다. 그 동네다.

농원을 찾아가면서 길을 묻기 위해 야생화 키워드가이드 유상준군 번호로 핸드폰을 넣었더니 클립이 열려 연결은 되었는데 가타부타 말이 없다.
"......."

잠시 후 그의 아내 소영씨가 전화를 받더니 "아! 선생님께 말씀 안드렸구나 ! 제 남편이 약간의 뇌성마비 증세가 있어서요, 낯선 전화를 갑작스럽게 받으면 말문이 막힙니다. 제가 대신 받을께요..."

상준씨의 장애를 전혀 알지 못했던 나는 의아해 했고 그녀는 전혀 거리낌이 없다.
그렇게 나는 그니들과 첫 만남을 가졌다.

사랑하는 사람보다 존경하는 사람과 결혼하게 되서 기쁘다.

마침 필자 내외가 농장을 방문한 날은 소영씨의 친정 부모님이 마산에서 올라와 사돈댁 농장 일을 거들어 주느라 한참 바쁜터였다. 양가 어른들이 8월 뙤약볕에 서로 일을 거들며 땀에 흠뻑 젖은 비주얼은 또 다른 신선함이었다.

내 앞에 친정어머님이 계시고 그 오른쪽에 상준씨가 앉았다.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는데 어머님이 나에게 한 말씀하신다.

"아! 글쎄 딸년을 대학 공부시켜 제대로 일하겠다 싶어 기대했더니 어느 날 시집간다며 이 친구를 데려 오더이다.(오른쪽 상준군을 가리키며) 처음에는 상준군의 장애가 눈에 걸려 마음이 상해 몹시 견디기 어려웠는데 딸아이가 '자기는 사랑하는 사람보다 존경하는 사람과 결혼하게 되서 기쁘다'며 워낙 똑 부러지게 자기주장을 하는터라 고심 끝에 어렵사리 승낙했지요."

"지금은 서로 잘 맞추어 잘살고 있으니 다행입니다. 안 선생님이 많이 도와 주세요."

남 앞에 쉽지 않은 속내를 보이는 장모나 듣고 있는 사위나 전혀 어색해하지 않았다. 장모와 사위는 이미 삶의 소중한 일부분으로 서로를 나누고 보듬고 있음이 분명했다.

모두 얼마나 마음고생이 깊었을까 내심 짚어보지만 장뜰농원 식구들의 일상에는 이미 '서로 다름'를 인정하고 각자가 지닌 '삶의 가치'를 품는 마음들이 진득하게 깔려있었다. 그 모습이 두 번째의 신선함이었다.

농장지기 유상준군의 장애

▲ 상준군을 낳고 키우시며 집안을 일군 아버님과 어머님. 두분다 책을 워낙 좋아하셔서 상준군네 식구들은 집집마다 책이 가득가득........^^

필자는 고향이 양평 강상면이다. 장뜰농원과 아주 가깝다. 선산벌초를 마치고 올라오는 길에 다시 들렀다.

상준군 아버님과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당신께서는 혈액형이 RH-O형이라 자식대에서 사고가 날 확률이 컸다. 위로 딸넷까지는 아무 이상 없이 태어났는데 막내 상준이는 '혈액이 충돌하여 문제가 되었다. 태어난지 사흘만에 항체(抗體)를 가지고 있지 않은 'RH+형' 혈액으로 전체 교환수혈을 해야 했다. 막 태어난 핏덩이를 수술대에 올리고는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그 과정에서 미약하지만 뇌성마비증세가 남게 되었다.
보통의 경우에는 대부분 엄마 뱃속에서 사망하거나 태어나도 아주 심각한 중증 후유장애로 남는다.

"안 선생님! 아마 저 아이를 살려내고 키우면서 들어간 것을 돈으로 치면 5만원짜리로 족히 한 사람키 만큼은 됩니다.ㅎㅎ"

어디 돈뿐이겠는가? 당신의 모든 것을 건 것이다. 옆에 있던 상준군이 자꾸 지난 이야기 한다면서 볼멘 표정을 짓는다. 난 두 사람의 저간의 심정이 짐작이 가 빙그레 웃었다.

구사일생(九死一生)으로 새 생명의 끈을 얻은 상준군은 부모님의 헌신적인 노력과 자신의 의지로 건국대학에서 역사를 공부했고 대학원과정도 수료했다.

안지기 소영씨와의 만남은 2002년 효순미선양 촛불집회에서 셋째 누나의 소개로 이루어졌다. 처음 상준군과 소영씨가 만나고 연애하고 맺어지기까지의 애틋한 이야기는 구구절절(句句節節) 감미롭기 그지없다. 셋째 누나는 다른 사람 만나기에 위축이 되어있던 상준군에게 소개팅 자리라 하면 거절할게 분명해서 집회에서 자연스럽게 만나도록 다리를 놓았다.

서울과 마산을 오가며 나눈 그들의 서로에 대한 이야기는 두고두고 음미해도 감칠 맛이 난다. 그리 길지 않은 연애기간 각자 100여 통이 넘는 편지를 주고받은 그 행간(行間)이 궁금하다. 거기다 야생화에 대한 조예가 깊은 상준군이 소영씨에게 '금낭화'로 포맷을 잡아 세레나데를 불렀으니 안 넘어갈 사람 누가 있으랴! ^^

이렇게 장뜰농원 식구들은 하나하나 각자의 영역에서 각자의 시선으로 다른 이들을 품었고 한사람이 안고 있는 아픔을 각자의 역할로 쪼개고 나누었다. 그래서 다가올 미래를 희망으로 일구고 있다.

지금은 아들딸 남매(승표,지인)까지 둔 결혼 5년차 젊은 부부의 삶을 인상 깊게 바라본다. 절대음감을 자랑하는 소영씨는 그 어렵다는 그랜드 피아노1급 조율사 자격증도 있다. 드럼도 치고 다양한 악기도 다룰 줄 알고...
그리고 자기의 생각을 맛깔나게 글로 표현하는 다재다능한 사람이다.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손잡고 가는 세상

결혼이라는 것이 내 삶의 새로운 전환점이 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지난 시간동안 남편과 함께 살며 더불어 남편의 장애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었고 또 익숙해졌던 시간들이었다. 결혼할 당시만 해도 나는 남편의 장애를 깊이 이해하지 못해 서로 마찰을 빚으며 작은 일로 토닥토닥 싸우기도 했던 것 같다.

어느 부부에게나 마찬가지이겠지만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시간들이 필요했다.

남편은 미약한 뇌성마비장애가 있는데, 뇌성마비장애의 특징이 자기가 긴장을 한다는 생각조차 하기 전에 뇌가 미리 알아서 호흡을 차단해버린다.
그래서 말이 막히고 잘 안 나오는데...
그걸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서 속상한 말을 하기도 했던 것을 생각하면 참 미안하다.

TV속 장애인의 모습을 보면 항상 '극복'이란 단어가 따라다닌다.
하지만 극복하지 않고 그냥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장애인들이 훨씬 많다. 언론매체를 통해 사회가 끊임없이 '극복'을 강조하고 그런 모습들을 부각시킨다면 어떤 개인에게 직접 말하지 않더라도 사회적 차원에서의 '강요'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불굴의 의지로 장애를 극복하는 사람들의 삶도 물론 아름답지만 자기 주어진 환경을 받아들이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평범한 장애인들이 훨씬 많으며 그런 그들의 삶도 아름다움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남편도 자신의 장애를 극복하려했지만 그건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고 삶의 일부분으로 스스로 받아들이고 살아가고 있다. 결혼할 당시만 해도 그에 대한 자격지심이 많이 있었던 남편인데 요즘 남편을 보면 말이 잘 안 나온다고 아예 입 닫고 있는게 아니라 그래도 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장애를 극복하려하기보다는 아마도 한가정의 가장으로 성장하고 노력하고 있는 것이리라.

처음 남편을 만났을 때 남편의 장애가 눈에 보였지만 이제 내 눈에는 아무리 쳐다봐도 남편의 장애가 보이지 않는다.

함께 살며 남편의 장애를 바라보는 내 시각이 바뀌었듯 TV에서 끝없이 장애인의 극복에 대해 다루며 또 다른 차별과 강요를 행하지 말고, '서로 다름'에 대해 어떤 잣대를 들이대며 편 가르고 구분하기 전에 어려서부터 함께 사회속에서 어울려 살아야 할 것이다.

사람대 사람으로 만나는 세상.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함께 손잡고 나아가는 사회를 꿈꾸어 본다.

[박소영의 일기중에서.......]

장뜰농원은 상준씨 어머님의 손맛으로 출발했고 상준씨의 '풀꽃 이야기'들이 소재가 되어 다양한 먹거리들을 생산한다.

된장, 고추장, 간장, 식초, 효소... 모두가 발효로 만들어 지는 것들이다. 원재료는 농장을 품은 해협산 자락에서 사시사철 나는 야생풀꽃들로 채워지고 어머니의 속 깊은 노하우로 장들은 익어간다.

1년짜리 2년짜리... 5년짜리...

▲ 5년묵은 겹간장 뚜겅을 여니 까만 간장에 늦여름 하늘이 너플거린다.
어릴적 추억이 간장항아리에서 활개를 친다. 향기로..... 눈으로...... 오랫만이다.
▲ 온갖 산야초(山野草)가 익어가는 효소(酵素) 항아리

엿기름대신 다양한 과일 효소를 촉매제로 써서 만드는 효소고추장
약처럼 쓰는 약(藥)간장
약처럼 소중한 약(藥)된장...

수청리 해협산의 정기를 받는 양지바르고 바람이 좋은 곳에서 장뜰의 작품들은 하루하루 익어가며 한해 두해 세해... 세월을 담는다.

행복은 먼 데 있지 않다.

상준씨 부부의 꿈은 농원에 야생화카페, 야생화찻집을 만드는 일이다. 사시사철 꽃이 피게 꾸밀 수 있다. 또 어머님의 장류사업을 이어받고 농장에 작은 도서관을 하나 꾸미는 일도 있다.

"저희 안에서 행복을 발견하고, 작고 소박한 것의 아름다움을 느낄 줄 아는,
그런 사람으로 앞으로도 살며 사랑하려 합니다."

유상준, 박소영부부는 살가운 농촌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아니 주인공이라기 보다 너무나 보편적인 일상(日常)이어서 오히려 '특별한 시선'으로 보려했던 내가 머쓱해진다.

굳이 꾸미려하지 않아도 꾸며지고
굳이 드러내지 않아도 드러나는...
세월이 가면 갈수록 보석이 되는... 뭐 그런거.... 장뜰농원 사람들이다.

슬며시 그들 옆에서 인연을 또 다른 인연으로 바느질하며 행복바이러스에 감염되는 느낌이다. 그들의 또 다른 이야기가 기대되기 때문이다.

농사는 사람이 하는 일이다.

소영씨 내외와 두 아이들 , 친정 부모님, 시댁 부모님, 4명의 시누이 가족이 버무려 내는 지난 30여년의 결과, 오늘의 장뜰농원이다.

그 농사, 그 사람들이 하는 일이니 장맛이야 오죽하겠는가?
적어도 세상을 담고 사람을 품을 줄 아는 사람들이 만든 맛이니 보나마나 우리 몸에, 우리 마음에 맞는 맛일게다.

아버님의 뜨거운 눈시울

아들내외와 손주손녀 4식구가 노닥거리는 모습을 보던 아버님의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결혼하고 왔을 때 시아버지가 며느리 소영씨에게 한 이야기다.

"기왕지사 네가 선택한 사람이니 잘 보살펴 활개치고 살 수 있도록 함께해다오. 고맙구나! 네가 정말 고맙구나... 저 아이 부족한게 많겠지만 서로 채워가며 살아다오..."

"안선생님! 저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답니다. 저애들이 저렇게 사는 모습을 보았으니 말입니다."

평생 자신의 업으로 자식을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인 부모님
겉으로 드러나는 일부분은 불편하지만 내면은 한없이 넓고 깊은 사람, 야생화 키워드가이드 유상준군,
남편의 장애라는 '특별함'을 '평범함'으로 발효(醱酵)시켜버린 그의 아내 박소영,
아들 승표와 딸내미 지인이가 만들어 내는 웃음보따리...
소영씨를 기꺼이 올바른 세상으로 내어준 친정 부모님...
그리고 시누이 4가족...

▲ 이심전심으로 아버지와 과채효소를 만들고 있는 농장지기


사람 사는 맛이 씨줄 날줄로 촘촘하다.
그들이 사는 이야기 그 자체 '장뜰농원'이다.
해협산 기운을 한 껏 품은 산야초효소 한잔 목 넘기며 젊은 부부가 농촌에서 살아갈 좋은 모습을 기대하며 그 기대치만큼의 인연에 고마워했다.
그는 비가 오면 꽃과 나무들이 웃는게 보인다고 말하는, 그런 시선과 마음을 가진 순수한 사람.

야생화 키워드가이드, 장뜰농원 농장지기 유상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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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이 내린 선물 - 정영환 산나물

보릿고개 길고 긴 날
하염없이 괴롭기만 해...
아이들은 배고파 울고, 먹일 양식은 없고
그렇다고 구걸은 못하겠고...
이른 봄, 산과 들에 파릇파릇 나물이 돋기 시작하면 동네 아낙들은 아침 일찍 산에 올라 산나물을 뜯어다가 잘 고르고 다듬어 커다란 광주리에 이고는 마을의 부잣집으로 간다. 그댁 마당에 나물광주리를 살며시 내려놓고는 안주인을 찾는다. 밝은 얼굴 부잣집 마나님이 큰바가지에 알곡식을 가득 담아와서 내려 놓고는 "어머! 벌써 봄나물이 한창이네!" 반색을 하며 나물 광주리를 들고 들어간다.

서로서로 안부와 덕담은 덤이었을터.
덕분에 보릿고개 가난한 서민들은 자존심 상하지 않고 양식을 얻을 수 있었고, 부잣집에서는 이웃을 도와주고 값을 치룬 맛있는 산나물을 제때 먹을수 있었다. 이 일련의 과정을 '나물서리'라 부르는데 사람과 사람을 연결시키는 아름다운 우리 풍속중의 하나다.

우리나라는 남북으로 길게 뻗은 지리적 특성에다 사계절이 뚜렷하고 기후가 온난한 편이라 다양한 식물이 자란다. 산자락의 주름을 다 펴서 펼치면 중국땅의 1/6정도로 넓어질 정도로 산이 많다. 도라지타령, 고사리타령, 미나리요, 나물노래 등 사연도 많고 구구절절 이야기 보따리도 많다.

'나물서리'는 해마다 요맘때 봄기운이 땅밑을 맴돌 무렵이면 생각나는 지혜와 인정이 담긴 삶의 메뉴얼중의 하나다.

지리산 뱀사골

산에는 독점독식(獨占獨食)이 없다. 욕심이 있기는 하되 그저 제 유전자를 잘 갈무리해서 다음대로 넘기려는 본질에 근접한 욕심이 다다. 더도 필요 없고 덜도 아니다. 필요한만큼만 쓰고 나머지는 다 내놓는다.

2004년, 경북 상주 화북에서 '미생물발효퇴비'를 만들 때 일이다. 우드칩 등 퇴비의 재료가 쌓여있고 대기가 위 아래로 잘 순환되도록 설계된 퇴비장에서의 이야기다. 산소를 좋아하는 호기성미생물들이 왕성하게 활동해야 발효(發效)가 잘된다 하기에 누군가 물었다. "그럼 인위적으로 산소를 저 퇴비안으로 더 많이 주입해주면 안되나? 그러면 더 빨리 효과적으로 퇴비가 되지 않나? 언제 5~6개월을 기다리나?"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었다. 인간이 할 일은 그저 공기의 길만 열어주면 되는 일이었다. 작은 미생물들은 자기가 필요한 만큼만 산소를 당겨쓰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연은 항상성(恒常性)을 유지하는 것이다. 오히려 욕심을 내어 산소를 강제 투입하면 문제가 발생하여 부패가 일어났다.

뱀사골 계곡을 들여다 봐도
뱀사골 사람들을 만나봐도
우거진 나무 숲에도
바위돌 크고 작은것들도 다 마음을 비운듯 보인다.
나무들은 종류와 크기에 구애받지 않고 오롯이 제 모습을 지킨다.
그러면서도 다른이들을 침해하지 않는다.

서로가 서로에게 곁을 내어준다.
숲에서는 '서로다름'이 제 대접을 받는다.

그러고 보면 세상사 사람만큼 제 욕심 한정없이 채우려는 악다구니는 없는듯하다.

산사람


2010년 2월 초, 지리산 뱀사골 덕동마을에서 산사람 정영환을 만났다. 입춘한파가 몰아치던 시점이라 나나 그니나 옷차림이 예사롭지 않다. 겨울 뱀사골과 고로쇠나무를 보여 달라는 필자의 요청에 주섬주섬 옷과 장비(?)를 챙기더니 앞을 나선다. 저만치 앞서가는데 어디서 많이 본 비주얼이다. 소설 태백산맥에 나오는 1950년 전후 지리산 산사람(빨치산)의 모습도 아마 저랬으리라. 큼지막한 망태기 자루, 배낭을 매고 벙거지를 뒤집어 쓴 어느 정도 빛바랜 두툼한 신발...

무엇보다 느린듯하면서도 날래기 그지없는 발걸음(산에 올라가면 더 빠르다)을 보면 영락없다.

필자는 등산복차림으로 단단히 무장을 했지만 산을 따라 오르는데 바위들을 하나둘 골라가며 밟는다. 그니는 턱턱턱 평지 걷듯 한다. 산사람과 바깥사람, 산타기 고수와 하수의 내공차이를 확연히 알겠다.

60년전 산사람은 엄중한 생사의 문제였고 고난의 의미이고 역사적인 존재였다. 2010년 내 앞의 저니는 친근하기 그지없는 '지리산지킴이'고 '이웃집 아저씨'이다.

뱀사골엔 정씨가 집성촌을 이룬다. 200여년전에 정씨 일가가 이곳에 터를 잡았고 정영환씨의 고조할아버지가 이곳에 자리를 잡아 5대째 가업을 이어왔다. 곧 아들들이 이어 6대를 내려갈 태세다.

"뱀사골 생활이 지겹거나 지루하지 않았어요? 혹 밖으로 빠져 나가고픈 유혹을 받은 적은 없는지?"
"아유! 없어요. 그냥 이렇게 사는 거지요!"
"아버지는 어떠셨어요?"
"아버지는 고생을 많이 하셨지요."
"......"

격동의 세월을 온몸으로 견뎌냈을 아버지를 회상하는 듯했다. 그 시절 지리산골짜기에서 살아내야 했던 사람들의 삶은 전후좌우 가릴 것 없이 고단 했을 터...

"매년 요맘때 겨울산이 기지개를 켜면 고로쇠물 따면 되고, 봄가지에 물 오르면 산나물 캐면 되고, 한여름 민박시즌에는 손님들 모시고 지리산 것들로 음식 만들어 내면 되고, 여름 늦더위 물러갈 즈음에는 머루 다래 따면되고 가을 깊어 가면 송이버섯 따고 눈 내리기 전까지는 약초 캐면 되구요."

말 그대로 '생각대로' 하면 된다. 아니 '산이 부르는 대로 살면 되는 삶'이다.

앞으로의 꿈이 있다면?
"하하! 뭐 꿈이랄게 있어요. 자식둘(아들) 다 장가보내고 대전에 있는 수양딸(여고생) 공부 잘하게 뒷바라지 부지런히 해주어 걔네들이 제 역할 다하면서 살게끔 해주는게 꿈이라면 꿈이죠."

이 모습이 지리산 산중 생활을 하는, 공기와 물이 맑고, 토질이 좋고, 일교차가 큰 해발 600~ 1,700m 고지대인 지리산 뱀사골사람들의 일상이다. 이곳은 봄철 고로쇠나무 군락지로 고로쇠약수의 원산지로 손꼽는다.

▲ 뱀사골 덕동 환영가든(민박, 산채정식, 산나물, 고로쇠수액) 정영환, 주경례부부(뱀사골아줌마)
정영환씨 키가 워낙 커서 뱀사골아줌마가 겨우 어깨에 닿는다.
나무(Tree)

영혼이 깃든 존재라는 느낌이 들어 나무는 하나같이 신령스럽다. 생물학적으로 수백수천년을 사는 존재이기도 하고 우리의 삶속에서 정서적으로 유무형의 영향을 주고받기 때문이다. 길을 지나다가도 '오래된 나무의 존재감'은 아주 빠른 감응으로 다가온다. 일상의 다른 사물들과는 달리 금새 내 마음속으로 달려들어 가던 길을 멈추게 한다. 충북 보은 미로면 송현리 450년된 느티나무, 옥천 산계뜰 고목, 섬진강가에 보이던 오래된 나무들,울진 왕피리의 적송들...

최근에 나무의 실재감(實在感)이 두드러지는 영화 2편을 보았다.

▲ 내가 좋아하는 영화중에 휴잭맨이 주연한 '천년을 흐르는 사랑'이 있다. 3가지 시공간으로 이어지는 서사인데 이곳의 한 장면이다. 검으로 찔린 나무의 구멍에서 생명의 수액(하얀색)이 나온다. 이 수액을 칼로 베인 상처에 바르니 바로 아무는 기적이 일어난다. 나무와 사람이 감응하는 장면이라 인상이 깊었다.
▲영화 아바타에 나오는 에이와 나무 '대지의 여신'이다. '나비족과 에이와 나무와의 교감'이 인상 깊었다. 'I see you' '당신을 봅니다' '당신의 껍데기가 아니라 당신의 본질을 봅니다'

뱀사골 고로쇠 나무 (painted maple)

나무의 생체 속에 들어있는 물인 수액(樹液)은 그 생명체에 가장 이로운 물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이나 캐나다에서는 사탕단풍나무(메이플 트리)의 수액을 받아 천천히 졸여서 '단풍 꿀'을 만든다. 흔히 '메이플시럽'이라고 하는 꿀은 갈색의 시럽으로 맛과 향기가 좋아서 여러 가지 음식에 넣어서 먹는다.

우리나라에는 수액을 받아서 마실 수 있는 나무가 많은 편이다. 박달나무, 층층나무, 헛깨나무, 노각나무, 으름덩굴, 자작나무, 단풍나무, 서나무, 피나무, 참나무, 대나무 등에서 맛 좋고 영양이 풍부한 수액을 얻을 수 있다. 그중에서 고로쇠수액은 맛이나 나오는 양으로 보나 으뜸으로 대접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우리나라의 고로쇠나무는 키가 20m이상까지 자란다. 이른 봄에 나무줄기에 상처를 내면 상처틈을 타고 약수(藥水) 또는 '풍당'이라는 수액이 흘러나오는데 한방에서는 이를 체질개선에 쓰거나 각종 성인병환자들에게 마시게 한다. 또 뼈를 튼튼하게 해주기 때문에 '골리수(骨利水)'라고 부른다. 거의 색깔이 없으며 약간의 단맛(2%)이 도는 수액이라 거부감이 없다.

통일신라시대 유명한 승려 도선국사(827~898)가 백운산에서 오랫동안 좌선을 하다가 도(道)를 깨우쳐 일어서려는데 무릎이 펴지지 않았다. 놀란 도선국사가 다급한 마음에 주변에 있던 나뭇가지를 잡고 일어나려는데 가지가 부러지고 말았다. 그런데 그 부러진 가지에서 물방울(수액)이 떨어지는게 아닌가? 목이 마르던 도선이 그물을 받아 목을 축였더니 관절이 부드러워지면서 무릎을 펴게 되었다. 도선은 떠오르는게 있어 이를 '골리수(骨利水)'라 불렀다. '뼈에 이로운 물'이란 뜻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골리수가 고로쇠로 변해 정착되었다는 설도 있다.

나무지름이 30cm이상 된 나무에서 수액을 얻기가 좋고 상처가 난 부위는 여름이 되면 저절로 아문다. 고로쇠 수액은 아무리 많이 마셔도 배탈이 나지 않으며 많이 마실수록 맛이 당기는 것이 특징이다.

고로쇠수액에는 칼슘, 칼륨, 망간, 마그네슘이 풍부하며 이외에도 철, 황산, 염소, 당분과 10여종의 미네랄이 함유되어있다. 보통 식수와 비교했을 때 칼슘이 40배,마그네슘이 30배정도 많이 들어있다.

▲ 고로쇠나무 꽃과 잎 [출 처 : 위키미디어]

▲단풍나무과에 속하는 뱀사골 고로쇠 나무를 가까이서 들여다 보았다. 범접하기 어려운 느낌이 아니고 친근하고 격조있는 질감이다.

▲ 수령이 30년~50년은 넘어 보이는 고로쇠나무를 위로 쳐다 보았다. 겨울과 봄에는 고로쇠 생명수를 나누어 주고 한여름에는 짙푸른 나뭇잎으로 제 역할을 다하고 목재는 가구, 악기, 조그만 장식품 등의 재료로 쓰인다. 사람에게 아낌없이 내어주는 고로쇠의 자애로움에 경의를 표했다.
고로쇠 수액을 채취하다
▲ 예전(20여년전)에는 나무에 도끼나 톱으로 상처를 크게 내야 했으나 지금은 지름 6mm정도의 드릴로 구멍을 1~3cm정도 뚫고(천공법) 상수도용으로 쓰이는 가는 관을 삽입하여 채취한다. 이 상처는 여름이면 자연스럽게 아문다.

산나물 파티
▲ 맑음이네 식구들하고 환영가든에서 산채나물 밥을 먹었다. 9가지 나물무침이 입맛을 돌게한다

산나물은 산에 자생으로 나서 자라는 풀이어서 약초나 다름없다. 야생동물들이 병에 걸리거나 상처를 입으면 특정한 풀을 뜯어 먹거나 잎사귀에 몸을 문지르는 등 자가처방으로 건강을 회복하거나 상처를 아물게 하는 것도 이와 연관이 있다.

일찌감치 산나물의 효능을 알아차린 우리 조상들은 산나물을 생으로 쌈을 싸먹고 갖은 양념으로 무치거나, 데치고 말려서 묵나물(진채)로도 먹었다. 아흔 아홉가지 나물 노래를 부를 줄 알면 삼년 가뭄도 이겨낸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산나물은 귀한 구황식이었다.

▲비비추(생나물)

▲ 비비추(마른나물)

지리산 산나물은 5월초부터 6월말이 제철이다.

정영환씨는 이 기간 동안 지리산 날다람쥐로 온 산을 타고 넘어 다니며 산나물을 뜯는다. 보통 올라가는데 2~3시간 걸리는 높은 지대에 서식하는 친구들이라 처남하고 2인1조가 된다. 보통 혼자는 안다닌다. 위험하기 때문이다. 한사람당 30~40kg정도의 생나물을 뜯어와 한 번 삶아서 자연햇볕으로 하루이틀 말린다. 이 과정을 거치면 무게는 1/10로 준다. 생나물 10kg을 말리면 마른나물 1kg이 되는 것이다.

이 시기에 산나물은 잘 말리고 갈무리되어 1년내내 밥상의 주요 이슈로 등장하고 대보름의 진채식으로 대접받는다.

필자의 매제(妹弟)는 독일인이다. 랄프(계명대학 교수)에게 "한국에 들어와 살 때 무엇이 제일 인상 깊으냐?"고 물은 적이 있다. 단번에 한국과 유럽의차이는 '어디 가나 아름다운 산으로 둘러 쌓여 있는 자연환경'이라고 이야기한다. 산이 많다는 이야기는 많은 먹을거리들을 품어준다는 의미도 된다.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식물은 대략 4,200여종이고 이 가운데 식용식물이 2,500여종 약용이 1,200여종이다. 여기서 산나물로 분류할 수 있는게 300여종이고 실제로 식탁에 올릴 수 있는 것은 120여종이다. 우리가 매일 먹는 야채도 처음에는 산에서 자라던 식물이었다.

▲ 산꽃나물무침(고추나무순),조선간장과 들기름의 물리지 않는 고소함이 속을 편하게 만든다. ⓒ프레시안

정월 대보름

농가월령가 정월령에는 "움파와 미나리를 무엄에 곁들이면 보기에 싱싱하여 오신채를 부러하랴. 묵은 산나물삶아내니 고기맛에 비길소냐"는 소리가 있다. 우리조상들은 묵은 산나물의 맛은 맛난 고기와도 안바꾼다고 헤아린 것이다.

우리네 살면서 제일 좋은 상태중의 하나를 일컬을 때 "아! 속편하다"라고 한다.
일이 잘 풀리거나 청량감으로 가득한 숲을 들어가거나 갈증이 날 때 시원한 생수 한잔 마시면 느껴지는 경지 "속 시원해"다.

온몸의 오장육부가 제대로 맞아 들어가고 거리낌 없는 잔잔한 흥분의 상태를 일컫는다고 보면 되는데 그야말로 내 몸을 스스로가 느끼지 못하는 경지 바로 그 지점이 되겠다. 현대인들의 삶은 기름진 음식들로 가득하다.

물론 조상들의 지혜로움으로 부족한 기름기와 단백질로 몸을 보하는 의미가 있겠으나 어쨌든 며칠 과식하고 나고 그 후로도 한동안 남은 음식대하다 보면 속이 영 거북한게 아니다. 굶자니 그렇고 안 굶자니 느글거리는 기운이고...

그때 그 문제를 일거에 해소하는 방편이 있으니 바로 대보름 오곡밥과 온갖 나물과 부럼들이다. 취나물, 고사리, 무나물, 도라지, 시금치등의 나물에다 호박오가리가 품격을 더하니 좋고 그들과 어울리는 들깨며, 들기름 같은 천연향신료들이 내뿜는 은근한 맛내음이 코를 자극한다. 이들에게는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 기특함이 고스란히 묻어있으니 우리들의 내장은 제대로 기름청소를 하는 셈이 된다. 오곡밥의 의미도 나무랄데 없고 이웃간에 나누어 먹으며 '더위'를 파는 '삶의 공유'또한 어릴적이지만 즐거운 행보중의 하나로 보였다.

그 상대방이 누구이던지 정말 잘되기를 빌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하여 대보름은 정말로 몸과 마음이 더 이상 편할 수 없는 최적의 시공간이었다.

설도 좋고 추석도 좋고 단오도 좋고 처한 환경과 조건에 따라 다르게 마음 가고 정이 가겠지만 난 절묘한 시점과 먹을거리로 봐서 정월 대보름을 곁에 둔다. 한겨울 동장군의 맹렬함을 입춘과 우수로 내치고는 만물의 근본인 땅의 기운이 슬슬 움직이기 시작할 무렵에 맞이하는 대보름은 우선 볼거리가 많다.

"어디어디 떴나 쟁반같이 둥근달" 저녁 밤하늘을 환상으로 맞이하던 달도 일품이고 동네어귀 들판 개울가에서 콧구멍이 새까매지도록 '개불이 깡통'을 돌려대던 아이들의 왁자지껄과 불꽃이 자작거리는 꽤 여러개의 불깡통이 그려내는 아이들의 꿈만큼 컸던 환한 아우성은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다. 거기다가 마지막에 각자의 소원을 담아 돌리던 불깡통을 보름달을 향해 하늘높이 던지면 그로 인해 나타나는 불꽃놀이는 지금의 폭죽이 비할 바가 아니었다.

사실 전날 아침부터 대못 구해야지요, 적당한 깡통도 구해야하고 철사도 튼튼한 걸로 구해야하지요. 하여튼 당시는 그런 것들이 그리 흔하지 않았던터라 아버지한테도 삼촌한테도 이런저런 명령(?)을 하기도 했고 준비가 되면 내내 친구들과 구멍 뚫고 난리가 난다. 어떤 해에는 엄동설한이 너무나 깊었지만 손등이 갈라지도록 놀았던 기억이 새롭다.

시금치 나물과 뽀빠이

▲ 뽀빠이와 올리브

나물이야기를 구상하다보니 시금치 먹는 뽀빠이 생각이 났다.

나는 유년시절 무협지와 만화를 거의 광적으로 좋아했다. 어떤날에는 식음을 전폐하고 몰입되기도 했다. 요즘아이들 게임에 빠지듯말이다.

"뽀빠이~ 살려줘요!" 악당 부르터스에게 괴롭힘을 당할때마다 여자친구 올리브가 다급하게 소리치면 나타나서 얕잡아 보는 악당앞에서 '시금치통조림'을 한통 입에 털어 넣는다. 팔뚝이 엄청나게 커지고 힘은 슈퍼맨이 되면서 부루터스를 물리치는 캐릭터였다.

시금치가 등장하는 이 뽀빠이 만화는 미국 어린이들에게 시금치를 많이 먹게 하기 위해 만든 홍보 영화라는데 여하튼 재미있는 것은 뽀빠이가 전 세계 어린이들의 식생활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이다.

나도 파란색 시금치나물을 먹고 조무래기 알통을 불뚝거리며 뽀빠이 처럼 힘이 세지기를 기대했다.
"나는 힘이 세지. 시금치만 먹으면 마지막까지 힘이 샘솟지. 나는 뽀빠이, 나는 뱃사람"이라는 만화 주제가가 아직도 아스라한 추억저편에서 생생하게 서성거린다.

내가 능력만 되면 '우리나물 뽀빠이, 산나물 뽀빠이'를 만들고픈 욕망이 있다.

우리가 그 절기에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은

내 몸을 추스르고 마음을 다잡고 입맛을 돌게 하기 위함이다.

더 나아가 조금은 번거롭지만 우리 아이들의 마음을 자라게 하고 우리 문화를 자연스럽게 아이들에게 전해주는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 젊은 엄마들은 나물요리를 잊어버리고 살고 있다. 조금만 신경쓰면 풍부한 이야기가 산나물의 다채로운 맛과 멋을 도와서 밥상의 격을 몇단계 업그레이드 해줄텐데 아쉬운 마음 가득하다.

산나물은 보관도 용이하고 종류도 다양하고 맛과 향기가 개체별로 다양하여 나무랄데가 없다. 1년내내 손님상에 내놓으면 내놓을때마다 그 자체로 이야기가 된다.

잘 활용하면
멋쟁이 엄마가 되고
세련된 요리사가 되고
센스있는 이웃이 되고
식구들의 건강지킴이가 되고
아이들의 미래를 풍부하게 만들어준다.

고사리 하나에, 비비추 하나로 밥상위에 올려진 산나물무침의 향기가 입안을 개운하게 하고 우리들의 입가를 빙그레하게 만든다.

끝으로 오랜동안 인연을 맺어온 뱀사골아줌마를 추천하고 이야기 구성 자료를 기꺼이 제공해준 함양 창원마을에서 산촌유학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햇살이모(김일복님)에게 감사인사 드린다.

Tip. 나물의 종류

산나물

도라지,고사리,두릅,고비,취나물,더덕,삽주,어아리,관중,버섯,비짜루,얼레지,삿갓나물,애기나리,윤판나물,솜대,둥글레,죽대,돌나물,수영,청가시덩쿨,개대황,왕별꽃,쇠무릎,대나물,장대나물,기린초,돌부채손,돌단풍,조팝나무,뱀무,나비나물,개시호,참반디,참나물,기름나물,당귀,궁궁이,강활,묏미나리,큰참나물,어수리,매화오리,큰앵초,벌깨덩굴,단풍취,미역취,광대수염,층층이꽃,산박하,오리방풀,송이풀,영아자,잔대,솜다리,곤달비,어리병풍,병품쌈,박쥐나물,껄껄이풀,분취,산비장이,피나물,원추리,닭의 장풀,비비추,독활,멸가치,엉겅퀴,까치발,가막사리,도깨비바늘,천문동,청미래덩굴,좀깨잎나물,거북꼬리,조밥나물, 쇠채,해홍나물,솔장다리,수송나물,번행초,개별꽃,바디나물,잔잎바디,배초향,쉽사리,속단,모시대,솜나물,등골나물,개미취,쑥부쟁이,솜방망이,우산나물,톱풀

들나물

고들빼기,씀바귀,냉이,소루장이,물쑥,달래,쑥,무릇,제비꽃,순채,벼룩나물,미나리아재비,꿩의다리,속속이풀,꽃다지,가락지나물,양지꽃,딱지꽃,개소시랑개비,짚신나물,갈퀴나물,깨풀,벌완두,며느리밑씻개,마디풀,명아주,자리공,벼룩이자리,점나도나물,쇠별꽃,선밀나물,사상자,파드득나물,까치수영,메꽃,꽃마리,광대나물,구기자,까마종이,주름잎,질경이,솔나물,갈퀴덩굴,마타리,뚝갈,떡쑥,담배풀,옹굿나물,망초,뽀리뱅이,방가지똥,민들레,조뱅이,뻐꾹채,지칭개,비름,말,소귀나물,칠면초,나문재

재배나물

오이,아욱,가지,토란,고구마잎,상추,부추,호박,풋고추,박,무,고춧잎,콩나물,숙주나물,시금치,미나리,깻잎,근대,갓,고수,쑥갓,천궁,황금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