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남자들은 대체 왜 그런가요

‘No’가 통하는 남자

한국남자 바라보기-1

이혜원

한국 남자들은 대체 왜 그런가요
| 입력 : 2003/08/18 [00:53]

노르웨이에서였다. 갑자기 떠나게 된 유럽여행의 첫 코스였다. 나는 뭉크 미술관을 찾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 준비도 없이 떨어진 낯선 땅에서 지도 하나만 보고 미술관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그때 한 남자를 발견했다. 길을 물었다. 내가 있던 지점에서는 그곳을 찾아가기가 꽤 까다로운 모양인지 그는 다소 난감한 얼굴로 설명을 해줬다. 여전히 잘 모르겠다는 얼굴로 돌아서는 내게 그는 “정말 알겠느냐”고 물었고 나는 “찾아 보겠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는 나만 괜찮다면 자신이 차로 직접 데려다 주겠다고 했다. 과잉 친절을 베푸는 것 같아 의아했지만 그는 노르웨이에 사는 자신도 제대로 가보지 못한 곳이라고만 덧붙였다.

그는 노르웨이의 택시 운전수였다. 그렇게 해서 나의 노르웨이 여행은 아주 편하고 간단해졌다. 함께 뭉크 미술관을 둘러본 후 그는 일을 하러 갔다. 그리고 그날 저녁 다시 만나 시내에서 맥주를 마셨다. 낯선 땅, 낯선 술집에서 마시는 맥주 맛은 좋았다. 긴장이 풀리면서 유쾌한 대화가 오고 갔다. 새벽 3시까지 술자리는 계속됐다. 제법 취한 나는 숙소로 돌아가려 했지만 너무 늦은 시간이라 시내에서 숙소까지 가는 교통편이 만만치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집이 근처라고 말하면서 자고 가지 않겠냐고 물었다. 난감했지만 별 방법이 없는 것 같았다. 나는 그의 집으로 갔다.

한국 남자들은 대체 왜 그런가요
집에 도착하자 그는 맥주를 한잔 더 권했다. 소파에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그는 내게 입을 맞췄다. 그는 자연스레 다음 단계(?)로 넘어갈 자세를 취하는 듯 했고 술에 취한 나는 얼떨떨한 얼굴로 상황파악을 하다가 퍼뜩 ‘이건 아닌데’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원하지 않았다. 그리고 밀쳐내고 당기고 할 것 없이, 딱 한마디를 외쳤다.

“No!”
그리고?

상황은 간단히 종료됐다. 그는 대번 내 몸에서 손을 떼고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나 역시 원하는 줄 알았다고, 아니었다면 정말 미안하다고. 불쾌하고 뜨악한 얼굴이 아니라 진심으로 미안한 얼굴이었다.

여행을 다녀온 뒤 주변 친구들에게 이 이야기를 하면 대부분의 친구들은 팔짝 뛰며 위험천만한 일을 겪었다고 말한다. 친구들의 논조는 대부분 “그 지경(?)까지 가서 손떼는(?) 남자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친구들은 자신의 사례를 꼼꼼히 들어가며 내가 정말 “운이 좋은 경우”라고 강조했다. 싫다고 하면 안 하는 것이 당연한 예의다. 그런데 왜 내 친구들, 무수한 여성들에겐 당연한 예의가 ‘억세게 운이 좋은 경우’에 해당되는 것일까.

우리사회에서 ‘No가 통하는 남성’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다”라고 말하면 아닌 줄 알아먹는 것이 인간 사이의 당연한 의사소통 법칙이건만 “No는 No다!”라는 말을 여성단체에서 슬로건으로까지 내거는 것은, 한국남성들이 이런 기본적인 법칙도 자연스레 어기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여성의 ‘No’는 ‘Yes’라고 해석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나는 한국 사회에서 성폭력이 발생하고 어떻게 해결되는가를 무수히 많이 봐왔다. 따라서 내 사례가 한국에서, 그것도 강간으로 이어졌을 경우라고 연상해보면 막막하기 그지없다. 남자의 수작이 뻔한데 집까지 따라갔다면 이후 이뤄지는 성 관계가 ‘강간’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한국남자는 그리 많지 않은 것이다. 여성에게 돌아올 반문과 비난은 너무나 뻔하다. “여자가 그 시간까지 왜 술을 마셨느냐” “원해서 따라간 것 아니냐” “정말 원하지 않았느냐” “성 관계 경험이 없냐, 있냐”등등. ‘미친년’ 되기 십상이다.

무수한 성폭력 사건들이 그렇게 남성위주로 해석되고 방치됐다. 막무가내로 그저 ‘남자가 함께 가자는 의도를 몰랐을 리 없다’고 다그친다. 설령 하고 싶어서 함께 갔더라도 막상 그 순간에 하기 싫어지면 안 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 그건 내 자유다. 따라간 의도가 그랬으니까, 상대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상대가 원하기 때문에, 내가 원하지 않는 데도 섹스를 해야 한단 말인가? 싫다고 말했는데 ‘강제로 한 사람’은 문제가 없고 ‘싫다고 한 사람’이 문제라는 소리니, 상식 밖이다.

그 상황에서 여자의 ‘No!’ 소리에 멈출 남자는 없다는 것이 한국 특유의 남성 본성론이다. 오히려 여성의 ‘No’를 액면 그대로 알아듣고 멈추는 남자는 여자 마음도 모르는 ‘쑥맥’이라고 핀잔 주기 일쑤인 남성문화. 이런 문화 속에서 한국남성들은 당연한 이치와 상식을 잊어버린다. 반면 외국에선 남성들 대부분 여성이 ‘No!’라고 했음에도 성관계를 계속 시도한다면 자신이 명확히 ‘강간범’, 즉 범죄자가 된다는 인식이 명확하다고 한다. 폭력적인 남성본위의 추측이나 행동이 사회에 결코 용인되지 않는다는 것을 현실적으로, 경험적으로 인지하고 있는 것이다.

유럽여행을 다녀온 친구들에게 자주 듣게 되는 경험담 중 하나가 외국남성의 인식과 태도에 대한 것이다. 유럽에서 만난 남성들과 대화를 하거나 친구관계를 맺다 보면 한국의 남성들과는 달리 “동등하고 존중 받는 관계”라는 느낌이 든다고 말한다. 남성으로 하여금 여성을 늘 보호하고 감금하게 만드는 한국의 못 말리는 남성우월적 문화를 경험한 여성들에게 이는 매우 색다른 경험으로 각인된다. 여성들이 이런 느낌을 받는 이유는 유럽 남성들이 더 멋지게 생겼거나 우월해서가 아니라 인간 사이에 당연히 지켜져야 할 원칙들을 자연스레 내면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연한 이치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남자, ‘No가 No’인 줄 아는 남자를 만나기 어렵다는 것이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비극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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