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4_0533_b_01L종경록 제100권 연수 지음 동국(東國)의 의상(義相)법사가 화엄경을 해석하면서 이르되, “알아야 한다. 이 1부 화엄경이 비록 7처(處)와 9회(會)라 하더라도 10지품(地品)에 있을 뿐이니, 왜냐 하면, 근본으로 법을 모두 포함하기 때문이다. 비록 10지는 같지 않다 하더라도 초지(初地)에 있을 뿐이니, 왜냐 하면, 하나의 지(地)에서 일어나지 않고도 온갖 지의 공덕을 두루 포섭했기 때문이다. 한 지 안에서도 비록 많이 나뉘어서 같지 않기는 하나 한 생각에 있을 뿐이다. 왜냐 하면, 3세(世)와 9세(世)가 곧 한 생각이
때문이다. 온갖 것이 곧 하나이기 때문에 한 생각과 여러 생각은 같으며, 역시 그와 같아서 하나 그것이 곧 온갖 것이요 한 생각이 곧 여러 생각이다. 넓은 광명으로 처음 도를 배우매 홍연(弘沇)선사가 이르되, “만일 사람이 중생의 마음 밖에 따로 무정(無情)이 있고 불성은 두루하지 않다고 고집한다면, 모두가 여래장(如來藏)이 법계에 두루하다는 이치에 어긋난다”고 했다. 때로는 반연할 바[所緣]에서 제6식(識)같은 것은 현재를 반연하는 마음이나 한 찰나 뿐이거늘 무엇이 능소(能所)가 되겠는가. 설령 3세(世)를 반연한다 해도 역시 현재의 마음인데 망녕되이 능소를 나누는 것이다. 만일 이런 뜻을 얻으면, 3계가 마음일 뿐이요 법계가 한 모양이거늘 또한 무엇이 마땅하지 않겠는가”고 했다. 다른 것을 따르지 않은 줄 스스로 알면 이는 뭇 현성이 나아갈 바요 뭇 이치가 같이 돌아가므로 모두가 한 마음이라는 진실한 길을 지적한 것이다. 얻고 얻지 못한 것 하늘 악마의 얻음이요 백 척의 긴 장대에서 손을 쾌히 놓고서 뒤를 보거나 앞을 살펴볼 필요가 없다. 지금에 다만 비슷한 형상과 말의 자취만으로 문채(紋綵)가 생길 때면 모두 이는 방편문을 고집하고 진실한 도에 헷갈린 것이니, 다 같이 이는 저 노란 잎을 잘못 알고 돈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다. 비록 큰 바다와 대지도론(大智度論)에서 이르되, “받아 지닌 반야의 공덕을 교량한다면 이 지니는 편에서 바르게 기억하는 것이 가장 훌륭하다. 이제 모든 부처님이 중생을 가엾이 여겨 그 뜻을 해설하여 알기 쉽게 함은 훌륭하게 스스로가 행하고 바르게 기억을 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이때에
부처님은 복덕을 널리 분별하기 위하여 말씀하시되, ‘만일 어떤 사람이 목숨이 다하도록 10방 부처님들께 공양하여도, 다른 이들을 위하여 반야의 뜻을 해설함보다는 못하나니, 이 안에서는 훌륭한 인연을 말씀하셨으므로 3세의 모든 부처님이 반야를 배워서 위없는 도를 이룬 것이다. 여래의 청정한 장[淸淨藏]은 모든 부처님은 환히 아시므로 청정한 장이 되고 중생들은 집착하므로 아뢰야식이 된다. 마치 순금은 세공장이와 용광로의 연(緣)을 따라 가락지라는 다른 이름으로 되며 둥글고 작고 하는 요술 모양을 짓되 금 자체는
동요하지 않고 이름과 모양만이 망녕되이 늘어서는 것처럼, 참 마음은 중생의 물듦과 깨끗함의 연을 따라 범부와 성인이란 다른 이름으로도 되고 오르락내리락 하는 요술 모양을 나타내되 심성은 동요하지 않고 이름과 모양은 본래 ≺공≻하다. 수미산을 움직여 땅에 넘어뜨리고 가령 10방 중생의 마음을 같이하고 대지와 허공이 혼돈(渾沌)을 이루고 이런 성실(誠實)로써 두루 전하고 지녀야 하리니, 그 공덕은 그지없어서 말로나 생각으로는 미치지 못한다. 이
유식론을 짓게 된 것은 여기서 논한 대지(大旨)는 정식(情識)과 알음알이[知解]로 헤아릴 바 아니요 이야말로 부처님[大覺]의 불가사의하고 절대 미묘한 경계이니, 이로써 불가사의한 그지없는 복을 널리 드날리어 법계의 한량없는 중생에게 두루 베풀면 다같이 이 종(宗)에 들어가고 나란히 부처지위에 오르리라. 서원하노니, 이 원융하고 걸림없는 이 착한 뿌리 등의 법 성품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