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왜 사는 걸까 책

너는 왜 사는 걸까 책

너는 왜 사는 걸까 책

  • 정   가 : 13,000원
  • 판매가 : 11,700원(10%)
  • 적립금 : 650원(5%)
  • 출판일 : 2016년 08월 01일
  • ISBN-10 : 1155784243
  • ISBN-13 : 9791155784242
  • 면     수 : 220쪽
  • 판     형 : 6신
  • 판     수 : 1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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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취업 준비부터 취업 이후의 삶, 그리고 더 나은 삶에 대한 고민까지 소주 한 잔 앞에 두고 털어대던 우리들의 씁쓸한 이야기가 한 웹툰 작가의 손을 통해 세상에 왁자지껄 나왔다. 책 제목인 *어떻게든 되겠지*는 취업, 일, 사람관계, 연애 등에서 많은 스트레스를 받으며 지쳐가는 우리들에게 작가가 전하는 응원의 메시지이다.

오늘은 잠깐이나마 참으로 오랜만에 햇살을 구경할 수 있었다. 긴 긴 장마 끝에서 살짝 내비치는 태양은 이제 곧 더위가 시작될 것임을 통보하고 있었다. 그에 맞추어 16년을 좀 넘게 잠잤을 매미 몇 마리는 조금 일찍 깨어나 힘없이 울고 있었다.

 방 안의 기온이 조금씩 올라가면서, 자연스레 추운 곳이 그리워질 때면 떠오르는 새하얀 설경이나 살얼음들. 그런 북쪽 나라들의 환상적인 풍경이 그려질 때, 캐나다까지 생각이 미치면 나는 한 친구를 생각하게 된다.

 세상 살아가는 사람 치고, 오랜 친구하나 없는 사람 드물겠지만, 그들 하나하나에겐 모두 둘도 없이 소중한 존재일 것이다.

 나에게도 역시 그러한 친구가 있다. 하마터먼 ‘있었다’ 로 될 뻔 했지만.

처음 만난 게 초등학교 3학년 때였으니, 지금으로 6년된 사이라 생각하면 그리 길지는 않아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연륜에 관계없이 그때의 나와 그는 성격이 거의 정반대였지만 괜찮은 친구였다.

지금처럼 호리호리하고 말랐던 내가 과천 청계초등학교 모서리 미끄럼틀에서 놀 때, 그는 보통 키에 안경을 쓰고 어딘가에서 책을 읽고 있는 장면이 나의 머릿속 필름에 담겨있는 기억이다.

 바로 그 시절에, 아직까지도 나와 내 가족들 머릿속에 다이아몬드처럼 박혀있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그 친구, 이름은 이 모군이라 하자. 그때 이군과 나는 처음으로 같이 바깥에서 놀았었다.

그 나이에 바깥에서 할 수 있는 일이야 물론 놀이터에서 이름모를 조무래기들과 함께 그냥 ‘얼음땡’ 이나 ‘탈출놀이(술래는 눈을 감고 돌아다니며 나머지 아이들을 찾고, 나머지 아이들은 술래를 피해 지정된 장소로 탈출하는 놀이)’를 하는 것밖에 없었다.

 그땐 놀이터에 아이들이 참 많았었다. 가끔씩 지나치는 황량한 놀이터를 보며 과연 이 놀이터가 언제적에 붐볐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데 말이다.

 아무튼, 놀이의 내용 같은 건 그저 한 추억의 스냅사진에 불과할 뿐이다.

지치게 놀고난 뒤의 나와 이군은 편의점에 들어가 컵라면 한 개를 사가지고 나와서 중앙공원 등나무 밑 벤치에 앉았다.

 조용히 먹고 있던 둘 중, 이군이 어색함을 깨려 했는지 입을 떼었다.

물론 의도와는 다르게, 그 질문이 참 걸작이었다.

“유석아, 너는 왜 산다고 생각하니?”

 만약 누군가 나보고 지금 옆에 있는 친구를 붙잡고 이 질문을 하라면 나는 그럴 용기가 없다.

이군이 그 말을 책에서 보았는지, 아니면 자신의 머릿속에서 보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확실한 것은, 기껏해야 9년 반 쯤 살았던 나로서는 대답하기가 매우 난처했던 모양이다.

나는 그때 애매하게 얼버무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것만큼 애매한 거야”

초등학생이라 그답게 “나는 먹기 위해서 살아” 나 “게임하려고 살아” 같은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았지만 나는 벌써부터 세상의 체면이라는 것에 물들었나 보다.

 그때는 그저 참 당황했었네 하고 기억의 서랍장 안에 담아만 놓았다. 가족들도 그저 것 참 재미있는 녀석일세 하고 웃고 넘겼다.

나중에는 그것이 시간이 갈수록 어지러워지는 서랍장처럼 머릿속도 복잡해지면서 잊을락말락한 기억이 되었다.

 어쨌든 그렇게, 나는 심각하고 철학적인 친구를 한 명 얻었다.

이후로 우리는 자주 어울려 놀며, 계속 친해져 갔다.

4학년이 되어서도 나는 여전히 꾸중이나 듣는 안 착한 어린이였고 이군은 모범적인 부반장이셨다. 4학년 말이 되었을 때는 이제 나의 베스트 프렌드였던 김모군과 대등한 위치에 서 있는 이군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5학년, 6학년, 중학교 1학년…. 이렇게 함께할 수 있을 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하지만, 이군은 왠일인지 캐나다로 유학을 간다고 했다. 친구도 많이 없었던 나에겐 의자의 다리 하나가 빠져버린 느낌이었다.

몇 주 동안 이군의 책상을 바라보았던 나는 그때부터 조금 조용한 아이가 되었다.

그리고 겨울방학이 되었다. 

겨울비가 주룩주룩, 정말로 드라마속 이별의 장면에서처럼 오던 날, 수원에서 나는 이군과 작별인사를 해야 했다.

 ‘10년 쯤 뒤’ 에 온다며 이메일 주소를 적어주던 모습. 나는 그 뒷모습을 다시 볼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다.

 물론 앞에 썼듯이 ‘있었다’ 가 아니라 ‘있다’ 이므로 다시 볼 수 있었다.

인터넷이란 것이 태평양 건너까지 1초도 안되어 편지를 전해주는 것이다.

 5학년 말 겨울에, ‘기러기 아빠’ 이셨던 이군의 ‘아버지(그는 부친을 항상 ‘아버지’라고 불렀다)’가 가족을 보실 수 있게 됨과 동시에 나도 이군을 잠시 볼 수 있었다.

 그 뒤론 만나지 못한 기간이 좀 길었다. 그간 나는 이메일로 참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나는 주로 한국 교육의 실태와, 내 신세 한탄과 너는 참 좋겠다 등의 이야기를 담았고, 그는 응 그러니, 하는 편지들과 안부를 전했다.

말로 했으면 못했던 이야기들, 그런 것들을 문자는 담아낼 수 있다. 오, 거룩하신 문자여.

그렇기 때문인지 아니면 귀찮아서인지 우리는 통화는 자주 하지 못했다.

뭐, 귀차니스트인 나는 그게 오히려 낫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렇게 또 나이를 먹어갔다.

 그러다 작년에 또 어렵게 만났던 레슬링부, 밴드부, 오케스트라라던 이군을 배웅한 뒤 나는 그가 언급한 적이 없던 옛 일을 떠올리게 되었다.

 “넌 왜 산다고 생각하니”

6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보아도 그 질문, 그리 간단한 질문이 아니었다.

6년쯤 더 살았으면 대답하기 쉬울 줄 알았는데 쉬워지기는커녕 실뭉치처럼 더 복잡해지기만 했다. 그나마 한 가지 뚜렷해진 것이라면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이랄까.

 생각해보면 심각한 그도 짓궂다. 오랫동안 나를 끊임없이 괴롭힐 질문을 내어놓고 갔으니 말이다. 하지만, 세상을 살아가면서 그런 질문을 한번쯤 자신에게 던져봐야 할 일이다.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훨씬 나은 삶을 살 수 있으리란 것을 그는 알았던 것일까?
이런 심오한 이야기를 하기엔 아직도 얼굴이 두껍지 못한 나는 편지로도 물어보지 못했다.

하지만 내 자신에게는 계속 물을 수 있겠지, 하고 나의 교재를 물끄러미 바라보면 결국은 이것은 내가 살아가는 이유가 아닌 것이다.

 한창 학교에서도 진로 지도니 뭐니 하며 부산을 떠는 모습과 나에게 살아가는 이유가 뭔지 묻던 이군의 모습이 겹쳐서 머리가 혼란해질 따름이다.

 머리가 좀 더 커져야겠다, 나이를 좀 더 먹어야겠다 하는 생각이 든다.

나와 비슷한 햇수를 살았을 매미의 울음소리를 들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