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게 된 어느 순간부터는

커피숍의 소음이 최적의 집중력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연구들이 속속들이 발표되기 이전부터 커피숍의 공간이 주는 묘한 긴장감과 활력을 즐기는 편이었습니다. 웅성거리는 소음이나 은근한 분주함이 꽤나 자극이 되니까요. 다만 테이블 간격이 너무 좁은 경우 바로 곁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감정을 쿡쿡 찌르는 경우라면 마음은 쉽게 혼돈의 카오스로. 

'실수도 실력이야'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이는 만 4,5세 즈음 되는 나이였고 보호자는 아이에게 문제풀이 학습지를 주고는 몇 장을 과제로 내 준 모양이었습니다. 나이에 비해 다소 어려워 보이는 문제들이었는데 그 중 하나를 틀린 아이에게 굳이 '왜 그랬어? 실수했어?' 하더니 '실수도 실력이야' 라고 연달아 이야기를 하는 보호자.

왜 그랬어? 라는 질문은 아이가 변명하는 습관을 갖게 합니다. 그러게요.. 왜 그랬을까요.. 그냥 그렇게 된 거죠... 이 답정너 스러운 질문으로 보호자는 아이들을 자꾸 시험에 들게 합니다. 왜? 왜그랬어? 말 좀 해봐? (물론 아이들이 보호자를 시험에 들게 하는 경우도 많지만 좀처럼 이 질문의 악독함을 넘어서는 시험을 아이들이 고안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특히 행동의 원인과 결과를 연결짓는 것이 어려운 연령의 아이들은 보호자의 '왜 그랬어?'가 무슨 뜻을 내포하는지 모릅니다. 그 미묘한 부정적 뉘앙스에 아이는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변명이나 거짓말을 허겁지겁 찾기 시작하고요.

아이가 실수를 했을 때에는 '이 물컵이 네게 안 보이는 곳에 있어 네가 물을 팔꿈치로 쳤구나' 혹은 '네가 여러 문제를 잘 풀다가 이 문제는 잘못 풀었구나'처럼 보호자가 파악한 그대로 기술하고 상황을 정리하는 것이 좋습니다. 아이에게 일부러 변명의 탈출구를 슬쩍 보여주고 변명을 유도하지 마세요. 있는 그대로 상황을 담백하게 받아들이는 방법을 익힐 기회를 빼앗지 마세요.

무엇보다 실수도 실력이라는 이야기는 더 괴로웠는데, 사실 어릴 때부터 실수가 도대체 왜 실력인지 저도 계속해서 궁금했습니다.. (부주의하여 시험 문제 마지막 몇 개를 안 풀기도 했던 사람은.. 나..)

실수만큼 자의적으로 해석되는 단어가 또 있을까요? 부주의하여 잘못함,이라는 뜻의 실수는 어느 순간 나의 수준이 되고 능력이 되고 나의 실패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실수'라는 단어가 사람이었다면 그 억울감이 상당했을 것 같습니다. '나는 그냥 실수야! 실수라고!'

만 4,5세 때부터 듣는 메시지가 '실수하면 안된다' 혹은 '실수도 실력이야'였던 친구와 '실수를 했군. 그럴 수도 있지. 실수는 너의 실패는 아니야'를 반복적으로 들은 친구의 회복탄력성은 십수년 후에 어떻게 달라질까요?

아주 짧은 시간동안 아이에게 연달아 주어진 미묘한 메시지들에 아이는 아무 말도 않고 멋쩍게 웃기만 했습니다. 보호자는 마지막으로 '이건 너한테 너무 쉬웠다, 그치?'를 남기고 자리를 떴습니다.

왠지 곁에서 함께 야단맞은 제 멘탈도 잠시 함께 출입문을 빠져나갔다 찬 바람에 다시 쏙 들어와 다시 앉아있습니다. mind

※ 추신: 처음으로 말해보지만, 실수가 실력은 아닐.. 아닐 거예요..  과거의 나와 같았던 아이의 뒷모습에 조용히 말한 이 단어들이 아이의 점퍼 뒷편 어딘가에 실수인 듯 어설프게라도 들러붙어 있기를 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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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지원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임상심리 Ph.D.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이자 임상심리전문가. 한국임상심리학회 홍보이사, 한국인지행동치료학회 홍보이사, 대한뇌기능매핑학회 대의원 및 학술위원. 정신병리 및 심리치료의 효과를 임상과학 및 뇌신경학적 수준에서 규명하고자 연구를 지속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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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게 된 어느 순간부터는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미나리>윤여정님이 ‘여우조연상’을 수상했습니다. ‘윤며들다’라는 신조어가 등장할 정도로 그녀의 인기는 상당한데요. 왜일까요? 진솔함, 그럼에도 촌철살인과 같은 직설적인 화법 그리고 70이 넘은 나이에도 당당한 인터뷰가 모든 이에게 새로운 동기를 부여해 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윤여정님은 과거 스페인의 ‘윤식당’, ‘윤스테이’에서 주인으로서 보여진 어른의 포용과 따뜻함, 지혜로움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어떻게 늙어갈 것인가’ 라는 원초적인 질문에 적지 않은 답을 찾을 수 있기도 했습니다.

“연륜이란 사물의 핵심에 가장 빠르게 도달하는 길의 이름이다” 라는 말이 있는데, 노년이라는 단어에 참 어울리는 구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은퇴자는 실업자, 무직자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존경하고 감사해야 할 대상이다” 라는 말을 가끔 합니다. 허나, ‘나이들어간다’고 감사와 존경이 저절로 오는 것은 아닙니다. 노년에 존경과 감사의 대상이 되기 위해 ‘윤며드는것처럼’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첫째, ‘나이가 들수록 입은 닫고, 귀는 열어라’ 라는 말이 있습니다. 
영화<인턴>에서 로보트 드니로는 사무실 젊은 직원들과 소통하며, 고민을 잘 들어주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잘 듣는 것, 경청하는 것만으로도 노년에 큰 돈들이지 않고도, 존경받고, 아름다운 품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많은 경험과 지식들에 대한 의견과 강요가 오히려 젊은이들과 관계 단절로 이어질 수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둘째, ‘옷을 깔끔하게 입자’ 입니다. 
깨끗하게 옷을 잘 입는 것도 경쟁력입니다. 돈을 주고 이미지컨설팅을 받을 필요까진 없지만, 유튜브에 멋진 패션니스타들이 시니어 중년들의 옷 잘 입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으니 한 번쯤은 시청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큰 돈 안들이고 ‘Dress and Clean Up’이 될 수 있는 방법은 주변에 많습니다. 참 괜찮은 중년, 시니어가 되는 것, 어렵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가능한 시간이 나는 대로 ‘읽자’ 입니다. 
요즘은 물론 영상의 시대입니다. 많은 정보를 요즘 유튜브 통해서 얻곤 하는데, 하지만 영상매체에서 얻을 수 없는 ‘읽기’ 만의 매력이 있습니다.


누군가가 말했습니다.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는 “내가 어제보다는 좀더 확장된, 그리고 인생의 부피를 넓혀, 개선되고 진보된 삶을 형성해 가는 것이다”, 라고. 사람은 성장하는 동안은 늙지 않는다고 합니다. 노력하는 사람은 대략 75세까지는 성장이 가능하다고, <100세를 살아보니> 저자 김형석 교수가 이야기 하시길, 나이듦, 성장, 두 단어를 더 풍성하며, 윤며들게 하는 것은 읽는 습관이라고 합니다.  

오스카 남우주연상 수상작, 영화 <더 파더>


올해 오스카 남우주연상은 <더파더>의 안소니 홉킨스가 수상했습니다. 이 영화는 그냥 배우 이름만으로도 볼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나이가 들게 된 어느 순간부터는

사라져가는 기억을 붙잡으며, 점점 낯선 기억들로 무기력해지는 인간의 서글픔을 보여주는 영화, 하지만 자신의 기억과 외롭게 싸우는 한 노인의 이야기인데요. 영화는 치매에 걸린 안소니(아버지)의 입장에서 전개됩니다. 어떤 것이 진실인지, 영화를 보는 사람조차도 혼란에 빠질 정도입니다. 보는 입장에서는 영화 속의 안소니가 된 것처럼 생각하고, 판단하게 되기 때문에, 그래서 더 혼란스럽습니다. 안소니는 자신의 딸 ‘앤’에 대한 기억이 어느 순간부터 헷갈리기 시작하고 자신의 딸인 ‘앤’이기도 하고 어쩔 땐 프랑스에 갔던 ‘앤’, 자신도 모르는 그냥 ‘앤’이 되어 나타납니다. 치매에 걸린 노인, 매일매일 낯선 상황들이 자신을 괴롭히지만, 안소니는 이 현실을 그냥 받아들입니다. 내 모든 기억들이 낯설어지는 상황, “남아있는 낙엽(leaves)들을 다 잃어버린 것 같다” 고 말하며 영화는 끝이 납니다.  

우리는 보통 노년에 가장 무서운 질병을 얘기할 때 이구동성으로 ‘치매’를 꼽습니다. 사실, 치매는 우리나라에서 10대 사망원인에 들지 않는다고 하는데요. 그럼에도 왜 우리는 치매를 두려운 질병으로 인식할까요? 그것은 치매는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병’ 이기 때문이지 않을까요? 소위, ‘영혼을 갉아먹는 질병’. 우리나라 치매환자는 대략 75만명 특히, 65세이상 어르신의 10%는 치매환자라는 통계가 있습니다. 2025년즈음에는 약 100만명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돌보는 가족까지 합하면 거의 300~400만명이 직간접적으로 치매와 관련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예전에 치매관련 학회에 참석한적이 있습니다. 참석자들 중에는 치매가족이 있는 경우를 종종 접하게 되는데, 이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면 처음에는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던 치매가 막상, 내가족, 부모에게 닥치다 보니 간병의 부담은 말할 것도 없고, “나도 치매에 걸릴 수 있겠다” 라는 두려움이 더 크다고 합니다. 이처럼 치매는 사실 본인뿐만아니라 가족 모두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무서운 질병입니다. 심지어 일본에서는 ‘간병이직’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할 정도라고 합니다. 

전문의들은 치매는 조기에 발견하면 발병속도를 늦출 수 있다고 합니다. 치매는 일반적으로 신경노화의 원인 물질인 ‘베타아밀로이드’라는 악성단백질이 뇌에 쌓이고 십수년이 지나면 발병하게 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평소에 치매를 암시하는 징후 그러니까 내버려두면 치매가 될 수 있는 ‘건망증’을 구분하고 조기에 발견하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이미 언급한 것처럼 노년에 읽는 습관(읽자)도 어쩌면 치매를 사전에 예방하는 방법 중 하나일 것입니다.

오스카 감독상과 여우주연상 수상작, 영화 <노매드랜드>


오스카시상식에서 감독상과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노매드랜드>, 노매드의 사전적 의미는 유목민이라는 뜻인데요.  

나이가 들게 된 어느 순간부터는

유목민처럼 자유롭게 이동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란 뜻으로, 미국에서 일정한 주거지 없이 차를 타고 생활하다가 단기노동으로 생활비를 벌며 이동을 반복하는 어느 노년여성의 삶을 조명한 영화입니다. 

원작자이자 저널리스트 제시카 브루더는 실제로 캠핑카에서 생활하는 유랑족들을 취재했고, 자신도 캠핑카에서 살며, 정확히는 3년동안 2만4140키로를 함께 여행하면서 그들의 삶을 기록했다고 합니다.

영화에서 등장한 노매드는 평생 쉬지 않고 일을 했지만, 결국, 집한채 가질 수 없었던 상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높은 학위, 전문분야에서 성실하게 일해온 사람들이 어떻게 해서 60,70대 나이에 집과 직장, 그리고 모아둔 저축을 잃고 물류센터, 놀이공원 등에서 불안정한 임시직이나 저임금으로 하루하루 이어가고 있는지, 그리고 자신의 존재가 어떻게 하면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을까 하며 걱정하는 노매드들의 삶, 물론 이들은 대부분 2008년 금융위기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사람들인데요. 이들은 대부분 중산층의 삶을 살았고 열심히 일을 하면 자신의 노후와 미래가 편안할 거라 믿었던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영화는 노매드를 불행한 것으로만 그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주어진 상황에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기존 소비문화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연을 벗삼아 자유를 존재로 표현합니다. 


다가오는 은퇴나 노후의 삶이 어쩌면 이처럼 노매드 같은 삶 일수 있지 않을까요? 열심히 일했지만 생각보다 부족한 은퇴준비, 기껏해야 집한채 마련한 것 외에는 준비 된 것이 없는데, 가끔은 텅 빈 지갑을 보면 가슴이 ‘쿵’ 내려 앉기도 합니다. 

“언제 노후라는 단어가 생긴 거냐, 언제부터 노후준비가 필요하다고 얘기 한 건지”, “난 그냥 열심히 일만 했을 뿐인데”, 라고 하소연하고 싶을 때가 오지 않을까요? 노년이라는 삶이 그저 돈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라면, 역설적으로 노후준비는 단순화라고 생각합니다. 긴 노후는 그간의 삶의 방식과 앞으로 살아가고 싶은 나만의 가치와 철학이 녹여지는 현실일 것입니다.  그래서 때론 주어진 현실을 인정하고, 새로운 목표와 소비 계획을 통해, 돈이 아닌 삶의 가치관점에서 자유, 행복이라는 열정의 마음으로 노년의 외로움, 지루함, 불안이라는 굴레를 벗어버리면 어떨까요? 마치 노매드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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