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 은 어느 나라 음식

일본여행에서 목격한 김밥만들기 행사!!

이것을 보고 김밥이 한국음식인지, 일본음식인지 헷깔리게 되었어요

그리고 이웃님의 유튜브 영상을 보던 중,

다시 의문점이 생겨서 한번 한국민족문화대백과를 검색했습니다.

김밥 유래를 보며 어디 음식일지 결정짓겠습니다.

김밥 은 어느 나라 음식

그대로 배낀내용이지만 그래도 검색한사람과 저는 궁금해할것을 예상으로

적어봅니다!!!

김밥 : 밥에 여러가지 속을 넣고 김으로 말아 싼 음식

김의 등장(두둥)

전라남도 광양군 태인도의 토산품으로 등장하여 조선시대에 반찬이 될 만한 음식을 싸서 먹는 문화가 존재히였고,

조선시대 이후, 김을 활용해서 만든 다양한 음식을 존재하였다

김밥을이 탄생한것은 근대에 들어와 음식문화가 발달하며 나타났다

그렇군요! 이렇게 두둥 나타낫군요

일본에서 발을 돌돌 만든 일본 김초밥에서 유래되었다는 주장도 있지만, 몇가지 이유로 이 근거를 의심한다고 합니다.

1. 김밥은 발을 이용하여 말기도 하지만 손으로 직접 말아 만들기도 한다.

2. 김밥의 재료는 다양하다.

3. 김밥은 초밥형태보다 맨밥형태가 일번적이며 맨밥의 경우 식초없이 그 자체로 먹을수 있는 완전한 음식이다.

이런 이유를 고려해볼때 일본음식에대한 유래설보다 한국음식이라는 고유설을이 더 설득력있다고합니다

(난 우리나라 음식이라고 믿겠어)

김밥 유래는 보시다시피

김 발달 - 김을 반찬으로 싸먹기 시작 - 김밥

김밥은 초밥을 만들어 싸는 방법 / 맨밥을 싸는 방법 두가지

저희 엄마는 초보다는 설탕 조금과 소금, 그리고 참기름을 썪어서 만들어주십니다.

속은 시금치, 계란, 맛살, 어묵, 당근, 단무지 등등

이밖에도 연근, 참치, 김치, 고기, 스팸 안들어가는거 없이 골고루 들어가게 만드는 것이 포인트!

잡다해도 김과 밥에 넣어 돌돌말게 되면 김밥이 된다는 것이 신기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단무지를 제외한 한가지재료로 만들어진 꼬마김밥도 인기가 좋아요

이렇게 김밥글을 쓰다보니,

내일 점심은 김밥으로 정해봅니다

이상 김밥유래 끝! 한국음식 임!

. 우리고유음식 - ‘김밥'

우선 우리가 먹는 김밥의 역사를 거슬러 보기 전에 우리 나라의 ‘김’의 역사를 알아보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김에 관한 가장 최초의 문헌은 고려 충렬왕 때 일연 스님이 편찬한 ‘삼국유사’를 보면 신라시대부터 ‘김’을 먹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또한 명나라 때 편찬된 박물사전인 ‘본초강목’을 보면 신라의 깊은 바다 속에서 채취하는데 허리에 새끼줄을 묶고 깊은 바다 속에 들어가 따온다.
4월 이후로는 ”대어가 나타나 해치기에 채취할 수가 없다" 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삼국 유사’에서 신라시대부터 ‘김’을 먹었다고 전해지고 있기는 하나, ‘김’이 문헌상에 나타난 것은 ‘경상지리지’가 처음인데 이미 조선시대 초기인 1420년경에 경남 하동 지방의 토산품으로 해의(海衣: ‘김’의 또다른 이름)가 전해지고 있으며, ‘동국여지승람’에서는 전라도 광양군 태인도의 토산품으로 김이 기록된 것으로 보아 400년 전 이전부터 양식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경상도 하동 지방의 구전에 의하면 지금으로부터 약 280년 전에 한 할머니가 섬진강 어구에서 조개를 채취하고 있던 중에 김을 먹어 보았더니 의외로 맛이 좋아 그 후 대나무를 물 속에 박아 세워 인공으로 김을 착생시킨데서 김 양식이 시작되었다는 이야기가 있고 또 다른 구전에 의하면 약 360년 전에 관찰사가 지방을 순시할 때 그 수행원 중의 한 사람이 김의 양식 법을 가르쳐 주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또 인조18년(1640년경) 병자호란 때 의병장이었던 전남 광양 태인도의 김여익이 해변에 표류해온 참나무 가지에 김이 붙은 것을 보고 양식하기 시작하여 그 양식 법을 널리 보급하였다하여 그의 성(姓)을 좇아 ‘김’이라 명명하였다고 합니다.
또 정문기(鄭文基)는 <조선의 수산>이란 책에서 조선의 ‘김’ 역사는 이백년 전 전남 완도에서 방렴(防廉)이란 어구에 김이 착생한 것을 발견하고는 편발을 만들어 양식한데서 비롯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기록에 의해 ‘김’양식 방법의 발전형태를 보면 1600년대에는 대나무와 참나무 가지를 간석지에 세워 김을 가지에 달라붙어 자라게 하는 ‘섶 양식’이 시작되었고 1800년대에는 대나무 쪽으로 발을 엮어 한쪽은 바닥에 고정시키고 다른 한 쪽은 물에 뜨도록 한 ‘떼발 양식’이 개발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1920년대에 떼발 양식을 개량한 ‘뜬발 양식’이 시작되었는데 이 방법은 김을 날마다 일정기간 동안만 햇빛을 받을 수 있도록 조절하는 것으로 요즘도 이 방식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들로 미루어 우리나라는 길게는 신라시대 때부터 김을 먹어왔음을 알 수 있고, 짧게 잡아도 조선시대 초기(1400년도경)부터 양식생산하여 식탁에 올렸음을 알 수 있습니다.
‘김’은 재료의 특성상 단독으로 먹기보다는 밥과 함께 ‘싸먹는’ 형태의 음식문화로 발전시켜 왔으며 대대로 내려오는 우리 세시풍속에도 정월 대보름에 밥(오곡밥)을 김에 싸서 묵은 나물과 같이 먹으면 눈이 밝아진다는 풍습이 있는데, 이는 김에 ‘비타민 A’가 많이 함유된 사실로 보아 충분히 타당성이 있다고 봅니다.

2. 우리나라의 김밥의 역사
인접해있는 나라끼리 가지고 있는 무형문화가 어디서 유래됐는가를 밝히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비슷하게 인접해 있는 나라끼리는 비슷한 문화적 특성을 가지고 있고 특히 ‘음식’과 같이 유형문화가 아닌 어떠한 형태를 가지고 보존하기 힘든 ‘무형문화’는 구전과 기록에 의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원조가 어디라고 하는 논쟁을 쉽게 결론할 수 없는 것입니다.

특히 우리 나라는 예로부터 이러한 무형문화의 형태에 대해 구전과는 별도의 학술적 기록이 많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더 더욱이 쉽지 않은 논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오후사쓰요이’박사의 <바다채소>라는 책에서 일본은 에도시대(도꾸가와시대) 교호 초기부터 김을 먹었다는 기록이 전해지는 것으로 보아 18세기 초,중반 이후부터 김을 취급한 것으로 보여 우리보다 훨씬 나중에 김을 이용하여 음식을 만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일본의 경우 1800년도 경부터 ‘김’을 취급했다는 기록이 있고 우리는 훨씬 이전부터인 신라시대 또는 최소한 조선초기인 1400년경부터 취급해 왔으니 우리가 일본에 비해 ‘김’식단문화는 훨씬 앞서 있다는 결론을 쉽게 단정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김’의 특성상 밥을 싸먹는 형태로 취급될 수밖에 없으니 당연히 김밥의 역사도 우리가 일본보다 더 앞서 있을 수 있다는 결론 또한 쉽게 유추해 볼 수 있겠습니다.
현재 우리 종로김밥에서 취급하고 있는 김밥이나 어릴 적 소풍갈 때 싸 가지고 다니던 김밥을 보아도 우리의 김밥은 일본의 김밥과는 사 뭇 다릅니다.
우리의 김밥은 촛물이 들어있지 않은 맨밥의 형태로 참기름과 소금으로 간을 하여 고소한 맛을 강조하였고 썰었을 때의 미적(美的) 외형보다 푸짐하고 탐스러운 맛을 강조한 실용적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깔끔한 맛을 강조하여 무순, 생선, 계란말이 등으로 간단히 구성하거나 아예 복잡하게 몇 번을 말아 튤립 형태, 물고기 형태 등을 표현하여 생선초밥을 장식하는 ‘장식김밥’의 형태로 발전한 일본의 김밥과 비교하여도 현재의 우리의 김밥은 다분히 한국적이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와 같은 이유로 지금 먹고 있는 우리의 김밥이 일본음식 ‘김 초밥’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오히려 우리의 김밥이 일본으로 전달되어 그들의 습성이나 식생활에 맞게 ‘김 초밥’으로 발전시켜지고 우리보다 기록을 좋아하고 역사왜곡을 밥먹듯이 하는 그들에 의해 역으로 알려진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게됩니다.
그 단순한 증거로서 김밥이 일제시대 말에 우리 나라로 건너왔다고 주장하는데 우리는 이미 훨씬 이전부터 ‘김’이 우리 식탁 위에 올려졌었고 정월대보름에는 비록 단순한 형태지만 김밥이 우리민족이 즐겼던 풍속음식이라는 것을 보면 그 주장은 터무니없는 주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3. 우리나라 김밥의 ‘일본유래 설’
일본에서 유래된 초밥의 원조가 관서 지방인 것과 달리 우리의 김밥과 비슷한 김 초밥(노리마끼)은 관동지방(동경)이 원조입니다. 김 초밥은 물론 속 재료도 중요하겠지만 <미스터 초밥 왕>이라는 만화책을 보면 자연산 김을 찾기 위해 김의 명인을 찾아 나서는 장면이 나올 만큼 김을 중요시합니다.
특히 모양이 총을 닮았다고 하여서 ‘대포마끼’라고도 부르는 ‘호소마끼’(細卷:김 한 장을 반으로 잘라 밥의 가운데에 박 속을 넣어만든 것:아주 일반적임)나 ‘데까마끼’(鐵火券:생선말이김밥)는 에도(동경)지방에서 창안한 것입니다.
우리 나라의 김밥과 매우 비슷한 ‘데까마끼’는 속에 참치가 들어간 김밥의 일종으로 에도시대 말부터 메이지 시대 초기 사이에 동경의 한 ‘스시야’에서 고안되었다고 합니다.
도박장에서 놀던 사람들이 색다른 김밥을 부탁하여 ‘박 속’대신에 참치를 넣고 와사비를 첨가해 먹기 편하게 작게 싼 데서 유래되었으며 ‘호소마끼’의 반대인 ‘후또마끼’(太券:‘오오마끼’라고도 합니다)는 ‘호소마끼’와 달리 김을 자르지 않고 그대로 쌉니다.

이와 같은 일본의 에도 시대 ‘김 초밥’이 1940년대에 이르러 아주 간단한 형태의 모양을 보이기도 합니다.
당시 태평양전쟁과 진주만 공격 등의 많은 전쟁을 치르던 일본군들은 밥 먹을 틈을 만들기 위해 조금 더 간단한 김 초밥을 준비하였고 그 모양은 아마도 당시엔 재료가 많이 부실할 수밖에 없어 대략 대표재료 1-2가지와 밥, 김을 말아놓은 음식에 변질을 방지하기 위해 촛물로 양념한 형태인 요즈음 김 초밥의 모습을 갖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모양이 현재 우리가 먹는 김밥과 다소 흡사하다고 해서 우리 나라 김밥의 원조라 하기에는 일본의 ‘김 초밥’과 한국의 ‘김밥’이 너무 많은 차이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차이점이 일본의 김밥은 김 초밥의 형태처럼 항상 촛물(식초)로 양념을 한다는 것과 우리 나라처럼 속이 푸짐하지 않고 야채와 생선, 계란말이 등이 들어있는 단순한 형태를 가지면서 와사비가 들어있고 꼭 간장에 찍어 먹는다는 점이 우리와 매우 생소한 점입니다.
또한 일본의 김밥은 푸짐한 맛을 강조하는 우리 김밥과 달리 외형적인 모양에 많은 치중을 두어 장식초밥 ( 飾り卷:‘카자리마끼’)에 물고기 모양, 튤립 모양 등으로 김밥을 말아 초밥을 예쁘게 꾸밀 때 자주 이용하는 형태로 발전했다는 점입니다.

4. 근대의 우리 나라 김밥의 발전

우리가 지금 먹고 있는 일반적인 김밥은 이러한 우리의 생활 속에서 탄생되어 간단한 형태의 반찬으로 활용되거나 세시풍속으로 대보름에 밥에 싸먹는 형태(복쌈)로 이어지다가 1950년대에 이르러 야외로 나가게 됩니다.
한국전쟁 이후 높아진 교육열로 못사는 형편이지만 학교에 꼬박꼬박 보내시던 우리의 어머니들이 아이들의 소풍을 맞이하여 야외에서 밥을 먹는 번거로움을 김밥을 통해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밥과 국, 반찬으로 구성된 우리의 전통적인 식탁을 전부 야외로 옮기기에는 매우 번거로울 뿐더러 사는 형편 또한 넉넉지 못하여 간단한 방법으로 아이들이 맛있게 밥 먹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생겨난 것입니다.
초기의 김밥은 매우 단순한 형태의 주먹밥으로부터 참기름과 소금으로 양념한 밥에 시금치나 단무지 등을 김에 단순히 싸는 형태로 출발하였습니다.
그러다 점점 어머니들의 자식 사랑이 더 해저서 계란지단, 어묵 등이 첨가되었고 1970년대에 들어서는 소시지, 오이, 참깨 등이 첨가된 아주 다양하면서도 각 가정의 개성이 살아있는 형태의 야외용 도시락으로 특화 되었고 현재도 나들이나 소풍갈 때마다 꼭 싸 가지고 가는 음식의 한가지로 우리에게 친숙하게 다가와 있습니다.
1980년대에서는 우엉조림, 유부볶음 등이 첨가되어 다양한 형태의 김밥이 되었지만 그 내용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단순히 우리의 생활 속에 들어있는 야채나 채소 위주로만 구성되었습니다.
그러다가 1990년도에 들어 ‘즉석김밥전문점’이라는 형태의 외식산업이 등장하면서 참치, 소고기, 김치, 치즈 등의 재료가 김밥에 첨가되어 김밥의 특성을 좌우하는 특화된 메뉴의 형태로 발전하게 되어 현재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5. 최근의 김밥들

우리 나라의 김밥은 그야말로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서 수십 가지의 이름과 특성을 가지게 됩니다.
단순히 종로김밥이 취급하는 야채김밥, 김치김밥, 소고기김밥, 참치김밥, 치즈김밥, 치킨김밥, 피클김밥 외에도 고추김밥, 버섯김밥, 샐러드김밥, 멸치김밥, 유부김밥 등과 같이 속 재료에 의해 구분될 뿐만 아니라 싸는 방법에 의해서도 누드김밥이니, 폭탄김밥이니 못난이김밥 등으로 불리고 지방의 특산품으로 되어있는 충무김밥 등도 있고 최근에는 치장을 새롭게 하여 캘리포니아 김밥, 금가루김밥, 황제김밥, 1000원 김밥(옛날김밥) 등으로 불리며 다양한 형태로 고객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ⅰ) 브랜드김밥의 출현과 발전

우리 나라는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을 준비하면서 세계적 브랜드 회사를 가진 선진국으로부터 개방압력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또 세계화의 역사적 흐름을 따를 수밖에 없는 대내외적 환경에 의해 그 동안의 소극적인 개방에서 적극적 경제개방 기조를 펼치게 되었습니다.
그의 흐름은 1980년대 중반에서 거세게 밀려들어 1990년 초반에는 세계 모든 유수 브랜드의 프렌차이즈들이 전부 우리나라에 상륙해 외식산업, 소비재산업, 서비스산업을 서서히 장악하였으며 모두 선진 프렌차이즈 시스템을 가지고 소비자를 유혹하는데 성공하였고 아울러 불모지와 다름없는 우리 나라의 프렌차이즈 산업을 일약 국제수준으로 도약시키는 호(好)작용을 보이기도 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산업화, 프랜차이즈화의 물결을 타면서 ‘김밥’이라는 상품에 새로운 아이디어와 SYSTEM을 접목하면서 ‘김밥전문점’이라는 형태의 업종을 분식, 식당업에서 분리, 독립시키게 이르렀습니다.
이전 우리의 ‘김밥’은 어머니께서 싸주시거나 개인적으로 시도된 김밥판매점 및 분식점에서 취급을 하였습니다.
그러다 시대적 요구가 세분화 되고 신세대의 구미는 더욱 다양함을 찾게 되었으며 또한 선진외식문화를 경험한 젊은이들은 더욱 깨끗하고 위생적이며 신선하고 친절한 식당, 다양한 종류의 식당을 요구하면서 업계는 그 흐름에 발맞춰 선진화된 ‘즉석김밥전문점’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종로김밥’과 ‘쌍둥이김밥등 수 개의 김밥전문점이 ’즉석김밥전문점‘의 형태를 취하여 전면유리를 일체 개방하고 김밥 토핑기를 창가로 끌어내 깨끗한 환경에서 신선한 재료로 김밥을 제조하는 과정을 고객에게 공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당시 고객의 반응은 폭발적이었습니다.
‘김밥’이라는 전통음식은 항상 숨겨진 주방 안에서나 지하 슈퍼마켓의 한 귀퉁이에서 제조하는 걸로 인식되었는데 밝은 대낮의 큰길 창가에서 직접 고객에게 완전히 노출되어진 김밥의 위생적 제조과정은 호기심을 떠나 거의 충격에 가까운 반응을 고객에게 주었습니다.

이에 발맞추어 1994년 초에 종로2가 대로변에서 시작한 ‘종로김밥’이 고객의 NEED를 미리 읽어내어 그들의 폭넓은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본격적인 프렌차이즈 시스템을 도입, 우리나라 최초의 ‘즉석김밥전문점’ 프랜차이즈 브랜드인 “종로김밥”을 출범시켰습니다.

프랜차이즈 사업은 단연 성공적이었습니다.
‘즉석김밥전문점’이라는 새로운 업종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고 단숨에 구전(口傳)만으로도 첫해인 1994년에 약40여 개의 가맹점을 모집하였으며 그 성공을 모방한 다른 프랜차이즈들이 우후죽순 격으로 생겨 하나의 새로운 유행을 창조하기에 이르렀습니다.
1996년3월에는 ‘김가네김밥’이 체인화를 시작하였고 1997년 4월에 ‘압구정김밥’이 김밥전문점의 유행을 좇아 인기개그맨을 캐릭터로 하여 체인사업을 시작하였고, 이전부터 지역특산품으로만 소비자에게 어필되던 ‘충무김밥’이 체인사업으로의 사업이 시도되었습니다.

그 외 유명해진 김밥전문점의 이름을 유사하게 사용하여 ‘명동김밥’, ‘충무로김밥’, ‘박가네“, ’함가네’등이 범람하기도 하였고 또한 약 30여 개의 ‘즉석김밥전문점’ 체인본사가 난립하여 ‘즉석김밥전문점’의 춘추전국시대를 가져왔습니다.
많은 회사가 난립하여 경쟁이 심화되던 업계는 1998년도 IMF를 겪으면서 우량회사를 제외한 나머지 회사들이 시장경쟁에 밀려 스스로 정리가 되기 시작하였습니다.
IMF를 거치면서 시스템을 재정립하고 신 경영전략을 표방한 수 개의 ‘즉석김밥전문점’은 이후 순탄한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김밥은 한국의 고유의음식으로 지금까지 사랑을받고있음니다

그리고 김밥의 원조는 충무김밥에서 종로김밥으로 바뀌었다합니다

여타 김밥과는 달리 속에 반찬을 넣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대신 참기름을 바르지 않은 김으로 손가락 만하게 싼 밥에 깍두기와 오징어무침을 곁들여낸다.

충무김밥이 통영의 명물로 등장한 것은 80년대 초부터이다. 통영이 충무라고 불리던 시기, ‘국풍 81(1981년 5월 28일부터 6월 1일까지 5일간 여의도 광장에서 개최한 문화행사. 쿠데타로 집권한 신군부가 정권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무마하기 위해 계획한 눈가리개용 행사였다는 평가를 받음.)’에서 어두이() 할머니가 판 김밥이 매스컴의 주목을 받으면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충무김밥의 유래에 관한 이야기 중 하나는 해방 이후 남해안의 충무(현 통영)항에서 고기잡이를 나가는 남편이 고기 잡느라 식사를 거르고, 술로 끼니를 대신하는 모습을 본 아내가 남편이 안쓰러워 김밥을 만들어준 것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처음에 아내가 싸준 김밥은 잘 쉬어서 못 먹게 되는 일이 많았고, 그래서 밥과 속(반쯤 삭힌 꼴뚜기무침과 무김치)을 따로 담아 주었는데 그 후에 다른 어부들도 점심 및 간식을 밥과 속을 따로 담은 김밥으로 해결하게 된 데에서 유래된 향토 음식이다.

또 하나의 이야기는 통영은 해상 뱃길의 중심지였기 때문에 지금의 문화마당 자리에 있던 구 통영여객선터미널(‘뱃머리’라고도 불림)에는 많은 사람들의 왕래가 있었고, 이 사람들을 상대로 팔기 시작한 것이 충무김밥이라는 것이다. 뱃머리 근처에는 배를 타는 사람들을 상대로 주전부리를 파는 행상들이 많았는데 따뜻한 남쪽의 날씨에 상하기 쉬운 김밥은 밥과 반찬을 분리해서 팔았다. 당시 멸치어장에서 잡히던 주꾸미와 호리기 그리고 홍합과 무김치를 대나무 꼬치에 끼워서 김밥과 함께 종이에 싸서 팔았는데 배도 채울 수 있고 맛도 좋아서 인기가 좋았다. 이후 주꾸미는 구하기 쉽고 도시 사람 입맛에 맞는 오징어로 대체되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조선 김밥과 현대 김밥 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생김새와 속에 넣는 고명의 차이가 가장 크다. 요즘 김밥에는 기본적으로 단무지, 달걀, 시금치, 소시지가 들어간다. 단무지는 일제강점기부터 들어갔고 소시지는 1960년대 이후다 김을 종잇장 형태로 만들었다는 기록은 조선중기 실학자 이익(1681~1763)의 성호사설에 나온다. 해의라는 것이 있는데 바닷가 바위에서 자라는 이끼를 따서 종잇조각처럼 만든다고 했다.
조선 김밥은 주로 주먹밥 형태이지만 역시 다양한 고명을 넣었다. 이규경이 묘사한 김가루 주먹밥은 제함반법(製함飯法), 그러니까 고명을 넣은 주먹밥 만드는 법에 보이는데 고명으론 채소부터 생선알, 홍합까지 다양한 재료를 넣는다고 했다. 그러니 지금 김밥과 비교하면 생김새와 재료 내용만 다를 뿐이다. 모양이 주먹밥에서 원통형으로 바뀐 것은 일제강점기 때 김초밥의 영향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렇다고 김밥의 원조를 김초밥이라고 보는 것은 무리다. 일본에서 김초밥인 노리마키(海苔卷き)가 등장한 시기는 1829년이다. 조선에서는 순조 때로, 이 무렵 조선에는 이미 다양한 김밥이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