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하루에 몇 시간 공부하니 헤르미온느 대사

2018.05.08.

되지도 않을 일을 가지고 미련스럽게 구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뭔가를 시도해서 실패하는 것보다 그런 것 따위에 큰 신경을 쓰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게 항상 더 쉬우니까. 애써 내가 뭔가를 쓴다고 해도 결국 유치함만 전시하는 꼴이 될거라는 생각을 하면 온몸에 털이 쭈뼛 선다. 그것이야말로 내가 가장 피하고 싶은 일이다.

나는 항상 글을 쓰고 싶어하고 동시에 내가 쓰는 글이 미학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별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 정갈한 글을 쓰고 싶지만 언제나 ‘심플하고 무던한 나'를 전시하는데 급급해서 오히려 자의식 과잉인 글을 써대고, 감각적인 글을 쓰고 싶다는 이유로 문장과 문장 간 연결이 헐거워 모호하게 날뛰는 글을 내놓으면서 있는 척하기에 바쁘다. 좋은 글을 쓰려면 뭐든 읽고 들어야 하는데 나는 새로운 뉴스를 하나 클릭해서 읽는데도 너무나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다. 어쩌면 글을 쓴다는 것은 나와 너무나도 먼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하루에도 몇 가지 이야기들이 머릿 속에 떠올랐다 사라진다. 가끔은 꽤 구체적인 문장 하나를 만드는 데 성공하고 여기에 대해서 꼭 뭔가 한 문장이라도 쓰겠다고 다짐을 하긴 하는데 정작 집에 와서 내가 하는 일이라곤 그저 배터질때까지 뭔가를 먹고 후회하고 그 죄책감을 씻기 위해 또 뭔가를 먹는 일 뿐이다. 오늘은 자신의 몸을 사랑하지 못해서, 자신의 몸을 미워하는 스스로를 감당할 수 없어서 끊임없이 먹는 것으로 스스로를 벌하는 여자 이야기를 써볼까 생각했는데 내가 바로 그 존재라서 당연하게도 실패하고 만다.

이쯤되면 정신병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하고자 마음 먹었던 일들을 조금도 하지 않은 채 그대로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가는 스스로를 보면 나는 어쩜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도무지 눈에 띄지 못하고 그냥 일상에 푹 잠겨 퉁퉁 불어 오른 고깃덩어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존재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뛰어나고자 하는 욕망에 비해 내 의지는 너무나도 보잘것 없어서 나는 늘 나를 미워할 수밖에 없다.

이런 의미없는 자기비하를 늘어놓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렇다고 앞으로 이 모든 걸 바꾸기로 했다는 둥 마음에도 없는 이상한 다짐으로 마무리하고 싶지도 않다. 털어놓으면 속이라도 시원할 줄 알았는데 그냥 내가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걸 굳이 구구절절 증명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다. 아까 이미 얘기했듯이 내 글은 미학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별 가치가 없다. 왜 이걸 쓰고 있는지 잘 모르겠는데 결국은 그래도 뭔가 써냈다는 것, 행위의 내용보다는 그 행위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자위하는 일밖에 남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이게 정말 싫다.

Chinese New Year is actually a 12 year long personal project for me, where I create a new illustration of the zodiac animal each year, and see how my illustration style has progressed. These go from oldest to newest.  So 6 down, 6 more to go! 

COLDPLAY 콘서트

(2017.04.17.)

1. 이미 유명한 이야기지만, 어제 콜드플레이 콘서트 때, 아마 두 번째인가 세 번째 곡이었던 Yellow를 중간에 멈추고 크리스 마틴이 이야기했다. 잠깐 얘기하고 싶은 게 세 가지 있는데, 먼저 이렇게 아름다운 도시에서 콘서트를 할 수 있어서 기쁘고, 두 번째로 기독신앙을 가지신 분들과 부활절임을 기념하고 싶고(아마 부활절에 공연하는 건 처음이라고 그랬던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몇 년 전 오늘 한국에서 비극적인 사고가 일어난 것으로 알고 있으니 10초 동안 우리 조용히 이들을 위해 추모를 하자고. 대형 스크린 세 곳에 모두 노란 리본이 떴다. 콜드플레이 콘서트 장에서 노란리본을 보게 될 줄이야. 10초 동안 이 장면을 촬영하는 카메라 소리만 종합경기장을 채웠다. (사실은 제스 캔트의 사전 공연 때도 세월호가 언급됐다. 사람들을 위로해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면서 Dolly라는 노래를 같이 부르자고 제안했다.) 그리고 공연 후반부 쯤 문득 윌 챔피언을 클로즈업 해 준 화면을 봤는데 오른쪽에 노란 뱃지가 반짝이고 있었다. 나는 오히려 이 때 좀 찡했던 것 같다. 나중에 찾아보니 윌 챔피언 뿐 아니라 다들 노란 뱃지/리본을 달고 있었다고 하더라.

2. 콜드플레이 멤버들이 세월호에 대해서 소상히 알고 있었을 가능성은 희박하고, 아마 현대카드 측에서 (콘서트 당일이 참사 당일과 겹치기도 하다 보니) 상황을 설명했을 텐데, 공연 중에 묵념을 하거나 뱃지를 다는 건 누구의 아이디어였는지 모르겠다. 누구의 생각이었든 그걸 제안한 사람, 그걸 받아들인 사람 모두에게 진심으로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이렇게까지 감동으로 다가오는 것은 이제까지 ‘정치적인 메시지는 좀…’이라는 비겁한 변명을 남긴 채 세월호를 외면했던 이들을 너무 많이 봐왔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3. 크리스 마틴이 허리춤에 태극기를 매달고 있었다. 지금 태극기가 누구를 상징하고 있는지 알면 크리스 마틴은 어떤 표정을 지을지 좀 궁금해졌다.

4. 크리스 마틴 독무대로 서울을 생각하면서 만든 노래가 있다며 잠깐 불렀는데 어떤 노래였는지 하나도 기억이 안 난다. 데미안 라이스 콘서트 이후로 콘서트 때 뭔가 특별한 이벤트가 있으면 ‘아 이거 어느 도시든 가서 써먹는 레파토리겠지’라는 의심을 하게 됐는데 그래도 귀엽고 좋았던 것 같다. 으흥으흥.

5. 공연이 끝나고 시계를 보니 10시 2분인가 그랬다. 칼종료… 진정한 프로 콘서트러라고나 할까. 콜드플레이의 연륜이 가장 진하게 느껴졌던 순간이었다ㅋㅋㅋㅋㅋ 앵콜이 없어서 아쉽긴 했는데 2시간 내내 거의 쉼 없이 노래하고 연주한 (그리고 뛰어다닌) 이들에게 앵콜을 부탁하는 게 좀 미안하게 느껴지기도 했던 것 같다. (+공연 중간에 크리스 마틴이 무대에서 막 뒹굴었는데 다음 생에는 콜드플레이 무대 바닥으로 좀 태어나고 싶었다)

6. 전반적으로 공연이 진짜 예뻤다. 아낌없이 뿌리는 꽃가루, 불꽃, 대형 풍선에 자이로밴드까지. 대형스크린 화면도 진짜 예뻐서 콘서트 DVD 나오면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세상 심미주의자들 만세. 키도 작고 앞자리도 못 차지해서 무대를 거의 못 봤는데 이럴 거면 그냥 좌석에 앉아서 이 예쁜 무대를 한 눈에 보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이 잠깐씩 들기도 했다. (물론 땀냄새 때문이다) 그래도 생판 모르는 주변 사람들이랑 같이 뛰면서 노는 게 재밌긴 했는데 중간중간에 몇몇이, 심지어 노래 부르는 와중에 자기 페북/인스타 피드를 확인하는 걸 보고 진심으로 의아했다. 콘서트 장면 촬영해서 올리는 것도 아니고 진짜 그냥 피드를 확인하고 있었다. 아니 이 사람들은 이 돈을 주고 이 숨 막히는 곳에서 왜 버티고 있는 거지?????

7. 공연 시작 전에 무대 위로 세 사람 정도가 케이블을 타고 올라가 길래 조명을 점검하러 올라가는 줄 알았다. 공연 시작 후에는 그 쪽을 볼 겨를이 없어서 잊고 있었는데, 공연 거의 막바지에 문득 그 쪽을 봤더니 그 사람들이 조명을 움직이고 있었다???!!!! 조명 뒤쪽에 있더라도 그거 되게 뜨거울 것 같은데 아니 저 사람들은 그럼 2시간 동안 저 위에서 조명을 움직이고 있었던 건가! 내가 그냥 잘못 본 걸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 높은 곳에서 공연/관객들을 내려다보는 것도 장관이겠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한 번쯤 해보고 싶은 일이랄까.

8. 마지막에 크리스 마틴이 한국에 오는데 17년이나 걸려서 미안하다고 했다. (알긴 아니? 응?) 여기서 매 주말마다 공연 하고 싶다는 건 립서비스로 넘겨줄 테니 대신 곧 다시 오겠다는 약속 지켜라 꼭…

PT 3개월, 소소한 변화에 대하여

 2016년 12월 14일 퇴근길, 집 근처 PT샵에 불쑥 들어가 앞뒤 재보지 않고 ‘저 PT 등록하려고요’라고 선언한지 3개월가량이 지났다. 그 날 이후로 퇴근시간이 불규칙해 도저히 저녁에는 안정적으로 운동을 할 수 없다는 절망적인 현실을 받아들이고 팔자에 없던 아침운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는 건 아직도 힘이 든다. 단언컨대 이건 체력의 문제가 아니다.)

 운동이라는 건 마치 독서와 같아서 이미 운동을 하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에게나 ‘운동을 해야 한다’는 크고 작은 압박이 존재하리라 생각한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할 줄 아는 운동이라고는 걷기와 어설프게 자전거 타기 밖에 없고, 덩치에 비해 힘이 약해 몸을 쓰는 일이라면 그게 운동이든 노동이든 도망가기 바빴다. 걷는 걸 좋아해서 평소에도 1~2시간 정도는 거뜬히 걷는다는 점을 미루어 생각해볼 때, 예나 지금이나 몸을 움직이는 것 자체가 싫었다기보다는 내가 못하는 것을 마주하는 게, 서툴고 우스꽝스러운 몸짓을 남들에게 보여주는 게 싫어서 적극적으로 피해왔던 것 같다. 남자든 여자든 몸 쓰는 일을 곧잘 하는 사람을 보면 부러웠고, 나도 저렇게 기운찬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동시에 그러기엔 이미 너무 많은 시간이 흘러버렸다고 느꼈다. 그날 갑자기 왜 PT에 등록해야겠다고 마음먹었는지는 사실 나도 잘 모른다. 다만 주말 이틀 중 하루 정도는 꼼짝 않고 집에서 잠만 자야 겨우 피로가 풀리는 무기력한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무엇보다도 더 늙기 전에 ‘20대처럼 생기 있는 생활’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3개월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인데 사실 그 사이에 엄청난 변화가 찾아왔다고 얘기하기에는 좀 무리가 있을 것 같다. 다만 소소한 변화들이 생겼다. 신호등이 깜박이거나 멀리서 내가 타야할 버스가 정차했을 때 주저하지 않고 달린다거나 택배상자를 옮길 때 훨씬 더 씩씩하게 옮긴다거나 하는 정도의 변화. 최근에는 건물 앞에 버려져 있던 소파를 번쩍 들어서 집까지 옮겨왔다. 그리 무겁지 않은 소파였음에도 운동을 시작하기 전이었다면 당연히 들 수 없다고 생각해서 입맛만 다시고 말았을 텐데 이번에는 이 정도는 당연히 들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예전에는 누군가의 힘을 빌려야만 할 수 있었던 일을 혼자 힘으로 할 수 있게 되니 관리할 수 있는 집의 영역이 자연스럽게 넓어지기도 했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손 하나 까딱할 힘도 없이 누워서 저작운동이나 하기 바빴는데 이제 가끔씩이나마 퇴근 후에 요리를 하고 뒷정리를 해도 귀찮을 뿐 체력적으로 부담이 된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이런 사소한 것들이 모여서 전반적으로 삶의 질이 향상되는 결과를 낳고 있는 것 같다. 운동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었을 때는 딱히 기대하지도 예상하지도 않았던 효과다.

 무엇보다도 내가 강조하고 싶은 운동의 장점은 나의 신체적 능력을 알게 되었다는 점과 더디더라도 천천히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이전에는 나의 근력이 어느 정도 상태인지 아예 모르고 관심도 없으니까 딱히 개선해야겠다는 생각 또한 할 기회가 없었다. 하지만 나의 팔 근육이 상당히 부실하여 한 팔로 5kg을 드는 것도 힘겹다는 걸 알고 나니 5kg을 좀 더 가뿐하게 들 수 있기를, 10kg을 들 수 있기를 바라게 된다. (PT 시작할 때부터 내 최종목표는 턱걸이였다. 사실 죽기 전에 가능할지 잘 모르겠다.) 지금 당장 내가 얼마만큼의 퍼포먼스를 할 수 있는지와는 별개로 꾸준히 운동을 하다보면 근육이 성장한다는 사실을 직접 몸으로 느낀다는 게 이렇게 큰 기쁨을 주는 것인지 이전에는 미처 몰랐다. 어설프기만 하던 자세가 서서히 몸에 익어가는 과정, 5개를 겨우 채우던 팔굽혀펴기(물론 무릎 대고 한다…)를 15개나 해냈을 때의 기쁨, 로잉 2km를 10분 5초 만에 해냈을 때의 성취감 같은 다소 직선적이고 1차적인 성취감이 주는 행복감이 이렇게 큰 것인지 이제야, 만으로 스물여섯 해를 넘기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사실 내가 거쳐 온 수많은 체육시간들이 원망스러워진다. 바깥에서 천방지축 뛰놀기 보다는 책상 앞에 가만히 앉아 있는 걸 미덕으로 가르쳐 준 사회가 밉다. 내 수준에 맞는 수업을 이제야 찾은 게 아쉽고 또 너무 다행이다.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의 몸에 대해 알아갔으면 좋겠고, 몸을 쓴다는 것의 기쁨을 알았으면 좋겠다. 자신의 신체적 능력에 대한 믿음을 갖고 좀 더 씩씩하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김지운 감독, 《악마를 보았다》

1. 잔인하기로 유명한 영화라서 마음 단단히 먹고 봤는데 생각만큼 잔인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편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장면장면의 잔인성 때문이 아니라, 영화 전반적으로 이 잔인성을 ‘전시’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인 것 같다. 다시 말해, 굳이 이 장면이 왜 묘사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 없이 잔인함을 표현하는 것에만 심취한 영화처럼 보인다는 것. 영화 초반에는 악마를 잡기 위해 직접 나선 인간이 악마가 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영화는 수현(이병헌)의 변화를 보여주기보다는 장경철(최민식)의 잔인성을 전시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굳이 장경철이 여러 피해자에게 가하는 폭력을 하나하나 보여준 이유가 도대체 뭘까? 인간 본성의 탐구라고 우기기에 장경철은 너무 비인간적으로 그려진다. (장경철의 유일한 친구는 인육을 먹는다.) 설마 ‘우리 안의 장경철’을 표현하려고 한 건 아니길 바라지만 왠지 가능성이 높은 것 같다. 장경철이 가장 소름끼쳤던 부분은 흉기를 휘두르고 있을 때가 아니라, “씨발 내가 너 좋아하면 안 되냐?” 혹은 “왜 반말이야”라고 말하는 부분이었으니까. 다만, 이런 장경철의 면모를 활용해 ‘우리 안의 장경철’ 따위로 일말의 공감을 자아내는 것을 명백하게 역겨운 태도다. 우리 안의 장경철이 뭐, 그래서 뭐, 속시원함이라도 느끼라고?

2-1. 이 영화에서 여성이 다뤄지는 방식 또한 상당히 불쾌하다. 이 영화에서 여성은 남성 주인공의 행동을 자아내는 도구로서‘만’ 쓰인다. (장경철이 여성을 해칠 때마다 슈퍼맨처럼 등장하는 수현의 모습이란, 참 딱히 뭐라 할 말이 없다.) 또한 감독은 주인공과 악역을 마주치게 하는 계기가 되는 사건의 피해자로 ‘임산부’, ‘여학생’, ‘간호사’와 같은 클리셰를 골라서 사용하는데 이는 ‘주인공과 악역을 다시 대면시키려면 불쌍한 여자가 필요해’에서 한 발짝도 더 나아가지 못한 사고체계라고 볼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 이보다 더 거슬렸던 점은 장반장(최초 피해자 주연의 아버지이자 수현의 예비 장인)의 ‘강력계 형사라는 인간이 자기 딸 하나 간수 못하고‘라는 발언이었다. 처음부터 싸이코패스로 그려지며 악마를 상징하는 장경철이 여성을 대하는 방식이야 비정상적인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오과장(천호진)과 함께 인간을 상징하는 장반장의 이러한 발언은 피해자 주연을 ’아버지 소유물로서의 딸‘로 그려냄으로써 이 영화가 희생된 여성에게는 아무런 관심이 없고 그저 ‘내 것을 빼앗긴 남성의 복수심’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것을 명명백백히 증명해준다.

2-2. 이 영화가 여성만 성의 없이 다루는 건 아니다. 이 영화는 힘 있는 남성 외 다른 모든 존재를 성의 없이 다룬다. 장경철도 수현도 마지막 복수를 위해 택하는 것이 서로의 ‘가족’이다. (수현의 경우는 악혼녀의 가족이지만 영화 전개 상 어쩔 수 없었던 것 같고, 또 수현과 장반장의 관계를 보아 실제 가족과 같은 친밀감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수현의 가족으로 이해해도 무방할 듯하다.) 전성기 남성을 제외한 나이 든 남성, 어린 남성, 그리고 모든 연령대의 여성을 아주 그냥 막 갖다 쓴 참 어떤 의미로 대단한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토록 ‘전성기 남성’ 중심적이고 가해자 중심적인 영화를 본 적이 있었나, 모르겠다.

3. 잔인한 영화가 줄 수 있는 묘한 쾌감이 있다. 인정한다. 그러나 잔인한 영화가 ‘잔인한’ 영화가 아닌 잔인한 ‘영화’가 되기 위해서는 (다시 말해, 볼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가 되기 위해서는) 단순히 잔인성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거나 밑도 끝도 없이 나열하는 것이 아닌, 그 장면 장면들에 의미를 부여해줘야 한다. 이 영화는 아주 충실한 ‘잔인한’ 영화였다.

+

김지운 감독의 영화를 처음 본 건 ‘달콤한 인생’이었다. 그 영화를 보면서 처음으로 액션씬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구나를 느꼈고 괜찮은 감독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 영화는 왜 이렇게 된 걸까. 별 생각 없이 찍을 거였으면 화면이 예쁘기라도 해야지.

2017.01.02. 엄마가 큰 수술을 받았다.

월요일, 엄마가 큰 수술을 받았다. 대장을 1m 가까이 잘라냈다고 한다. 처음 소식을 들은 건 엄마 수술 직후였는데 이게 얼마나 큰 수술인지 감이 잘 안 왔다. 아빠랑 잠깐 통화를 하고 좀 찾아보고나서야 꽤 큰 수술이라는 걸 알았다.

화요일, 새벽 운동갔다가 오는 길에 문득 처음으로 엄마가 죽으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엄마도 나이가 있고 또 의료사고는 누구에게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니까. 제일 먼저 팀장님에게 연락해서 며칠이나 다녀올 수 있는지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운동 시작한다고 했을 때 엄마가 엄청 좋아했는데 운동 시작하고 한 번도 못 보고 엄마가 죽으면 속상할 것 같다는 생각이 뒤이어 들었다. 그나마 지난번에 엄마가 올라왔을 때 맛있는 파스타도 먹고 프랑스 요리도 먹어보고 또 연극도 봐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너무 좋아했는데, 다음에 올라오면 이번엔 남산에 가보자고 그랬는데 남산 한 번 못 가보고 엄마가 죽으면 나는 남산타워가 보일 때마다 너무 슬퍼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는 이제 아빠는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들었다. 그러게 내가 엄마한테 아빠 집안일 교육 좀 시켜놔야한다고 그랬었는데. 아빠도 나도 직장이 있는데 어떡하지. 명예퇴직 하라고 해야하나, 뭐 그런 생각을 했다.

수요일, 오전에 엄마랑 잠깐 카톡을 했다. 금요일에 겸사겸사 내려간다고 하니 엄마가 몇 번이나 내려오지 말라고 했다. 진짜 안 가도 되는건지 아니면 그럼에도 내려가봐야 하는건지 갸우뚱했다. 오후에 이모에게서 연락이 왔다. 이모는 너무 걱정하지는 말라고 하면서 엄마가 병실에 있는 모습을 나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엄마 의견을 따르는 게 어떻겠냐구. 엄마랑 다시 카톡을 하면서 나는 설에 꼭 내려가기로, 엄마는 얼른 나아서 기운 차리기로 약속했다.

2013.10.07.

생활에 변화를 주기 위해서 일찍 일어나려했다가 그건 실패하고 30분 동안 아침 운동을 했다. 마음이 아직 완전히 동하지 않아서인지 몸을 움직여도 기쁘진 않고 계속해서 불안하고 초조할 뿐이다. 연휴를 지내고 나면 항상 이렇다. 무리하게 계획을 세우고, 그걸 보고는 막막해서 결국 아무것도 안 한다. 그리고 연휴가 끝나면 나 자신이 쓰레기인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어제만이라도 공부/리딩을 좀 해보려고 시도했다가 결국 소설 한 쪽도 제대로 안 읽고 그냥 자버렸다. 그 다음부터는 무한도전이나 몇 편 씩 봤다. 나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면 절대 내 마음을 불안하게 내버려두지 말자고 다짐했었는데, 이게 방금 떠올랐네. 이렇게 다짐에 다짐을 계속하는 것도 다 짜증나고 쓰잘데기 없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나 자신이 뿌듯해질 날도 오겠지. 그래도 오늘은 운동을 했으니 계획한 것 중 최소한 하나는 한 셈이다. 고3이 참 괴로웠지만 그 때만큼 열심히 살았던 적도 없었던 것 같다, 고 얘기하는 것은 이미 지난 일이고, 원하는 대학에 왔기 때문이겠지. 공부하기 싫다는 마음이 드는 그 순간, 딱 그 순간을 참아내는 연습을 해야겠다. 이래가지고는 죽도 밥도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짓눌려 하루하루를 우울감에 보내는 일은 이제 그만해야겠다.

2013.10.10. 새벽 세 시의 반전.

한글날 수업이 없어 시간이 많았다지만, 그래도 오늘은 퀴즈와 리딩과 발표가 한꺼번에 몰려있는, 며칠 전부터 신경 쓰이는 하루였다. 퀴즈 공부는 어찌어찌 했는데 도저히 발표 준비를 할 마음이 들지 않아서 고생했다. 발표 준비를 하다가 너무 하기가 싫어서 (읽고 정리하는 게 싫었다기 보다는 어쩌다보니 계속 된 연휴를 어영부영 단 하루도 만족스럽게 보내지 못했다는 자괴감이 나를 괴롭혔던 것 같다. 어리석게도.) 내일 수업에 가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고 그냥 누워버렸다. 그 때가 새벽 세 시. 뭔가를 포기하고 누우면 드는 온갖 생각들이 몰려왔고 질식이라도 할 것 같은 답답함에 벌떡 일어났다. 영원히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한 채 평생 패배자로 남고 싶지는 않다는 강력한 욕망에 다시 노트북을 켜고 발표 준비를 시작했다. 밤을 꼴딱 샜고 발표 준비도 마쳤고 샤워를 하고 나서도 시간이 조금 남아 퀴즈 공부도 보충했다. 말도 안 되는 피곤함에 어지럽고 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더 중요하게는 스스로를 속이지 않고 할 일을 마쳤다는 게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남이 보면 아주 작은, 자려다가 일어나서 용케도 과제를 한 일일 뿐이겠지만 나에게는 새벽 세 시의 그 결정이 작은 터닝포인트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포기하지 말자. 포기하더라도 나 스스로를 속이지는 말자. 내 직업은 학생이니까, 프로처럼 굴자. 피곤하지만 기분이 좋다. 요 근래 내게 필요한 성취란 이런 종류의 성취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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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에 쓴 일기. 뭔가를 잘 해내고 싶다는 마음을 먹으면 언제나 실패했다. 마음과 달리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그 일은 시작조차하기 어려웠고 겨우 시작하더라도 늘 완성하지 못한 채 포기하고 말았다. 야심차게 시작한 세미나가 그랬고, 매 학기 몇 개씩 써내야하는 보고서가 그랬다. 대학원에 대한 마음을 깨끗이 접은 것도 이 때문이었다. 텍스트를 잘 읽어내려 하면 할수록 한 쪽도 넘기지 못하고 실패하고 마는데 읽고 쓰는 것이 업이 되는 대학원에 가면 나는 패배감만 가득 안은 채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다가 낙오되고 말 것 같았다. 여전히 그렇다. 잘 하고자 마음먹은 일은 잘 해내기는커녕 그냥 그걸 완성하는 것이 힘들다. 어려울 것 같다는 인상이 드는 일을 마주하면 지레 겁을 먹고 주변만 맴돌다가 좌절을 반복한다. 일단 뛰어들어서 하면 되는 건데 나는 뭐가 그렇게 무서워서 아무것도 못한 채 시간만 흘려보내는 걸까.

2016.11.24-28. 엄마가 서울에 왔다.

엄마가 서울에 오기로 했고 나는 며칠 전부터 작심을 하고 식사 스케쥴을 짜고 연극도 예매 했다. 특별한 일이 아니고서는 뭔가를 예매하는 일이 거의 없는 나로서는 엄청난 부지런을 떤 셈이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엄마가 서울까지 와서 근처 마트 구경이나 하고 집에서 맨날 먹던 밥이나 먹다가 내려가 버리니까.

엄마는 우리 집에 오면 매번 교촌치킨이나 먹자고 한다. 물론 치킨은 늘 옳고 맛있지만 엄마가 아는 ‘서울에서 먹을 수 있는 맛있는 음식'의 최고점이 고작 교촌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아서 속상했다. (아 물론 이번에도 시켜 먹었고 교촌은 언제나처럼 맛있었다.) 이번엔 좀 다른 시간을 보내기로 굳게 마음 먹고, 엄마랑 서울에 여행 왔다고 생각하고 알차게 보내야지, 다짐했다.

금요일 저녁에는 엄마랑 연극을 봤다. 이번에 본 연극은 엄마가 태어나서 보는 첫 연극이었다. 코미디극인 ‘라이어’를 예매할까 하다가 그래도 첫 연극인데 좀 전통적인 의미의 연극을 보는 게 좋겠다 싶어서 '날 보러와요'를 예매했다. 혹시 취향에 안 맞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연극은 매우 재밌었고 엄마도 너무 즐거워해서 다행이었다. 소리 내어 웃는 엄마를 보면서 한편으론 짠하기도 했다. 엄마는 이제까지 연극을 본다는 게 뭔지 몰라서 연극을 보는 걸 좋아하지 못했구나, 싶었다. 모으기보다는 버리는 걸 더 좋아하는 엄마가 이번엔 너무 재밌었다면서 팸플릿이랑 티켓을 챙겨갔다.

넌 하루에 몇 시간 공부하니 헤르미온느 대사

이 파스타는 엄마가 태어나서 먹은 첫 번째 2만원 짜리 파스타였다. (근데 2만원 짜리 파스타는 나도 처음이었다.) 상수동 트라토리아 챠오에 무려 예약까지 하고 가서 먹었다. 그냥 점심 대충 먹으면 되지 무슨 예약까지 했냐고 타박을 한 엄마였지만 내심 속으로는 기대를 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엄마는 맨날 치즈오븐스파게티만 먹었다. 모짜렐라 치즈가 늘어지는 게 여전히 신기하고 맛있다면서 다른 파스타가 있어도 맨날 그것만 먹었다. 엄마는 처음으로 치즈오븐스파게티가 아닌 파스타도 이렇게 맛있다는 걸 알았다고 했다. (그리고 이 파스타는 정말 역대급으로 맛있는 파스타였다. 나도 처음 가는 식당이라 걱정했었는데 너무 다행이었다.) 집에 내려가는 길, 엄마는 몇 번이나 이 파스타가 다시 생각날 것 같다고, 너무 맛있었고 고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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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내려가기 전 날 저녁은 앙프랑뜨에서 먹었다. 앙프랑뜨에서 먹은 양고기 정강이 요리와 송어요리는 엄마의 첫 프랑스 음식이었다. 엄마는 개당 2.5만원이 넘는 요리 앞에서 조금 망설였다. 아마 그 날 먹은 음식이 엄마가 살면서 먹은 요리 중 가장 비싼 요리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사실 이 음식은 엄마 입맛에 완전 맞는 눈치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딸이랑 같이 레스토랑에서 낯선 음식으로 저녁식사를 한 다는 것 자체가 엄마에겐 신선하고 색다른 경험이 되는 것 같았다. 역시나 엄마 입맛에는 파스타가 더 맞다고 했다. 다음에 다른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피자랑 뇨끼랑 리조또도 먹어보자고 했더니 엄마가 밝게 웃으며 그러자고 했다.

시사인 ‘살인을 저질렀으나 시체는 없었다’ 기사 피드백

*시사인 게시판에 올린 글 수정.

이제까지 김세정변호사가 쓴 두 건의 살인사건을 소재로 한 기사를 읽었습니다. 지난 번 김변호사가 쓰신 ‘두 소녀가 성인 여성을 '재미로’ 죽였다’ 기사의 경우에는 자극적인 소재를 다뤘음에도 불구하고 '구조화된 가난 속에서 범죄에 노출되는 아이들'이라는 일종의 분석을 엿볼 수 있었기 때문에 살인 사건을 통해 대표적 선진국인 영국의 균열을 보여주는 기사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영국을 대표적인 복지국가라고 설명한 부분은 납득이 힘들었지만요. 여기에 대해서도 설명을 좀 듣고 싶긴 합니다.)

그런데 이번 482호의 기사 '살인은 저질렀으나 시체는 없었다'는 성폭력/살인에 대한 단순한 사건 나열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세정 변호사의 하드보일드'라는 시리즈를 설명하는 파란 박스 안의 '법과 정의에 대한 성찰도 담을 예정이다'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이 기사에서는 딱히 '법과 정의'에 대한 성찰은 찾아볼 수 없네요. 특히 '어떤 시체는 얼굴이 접착테이프로 둘둘 말린 채 코에는 숨을 쉬게 하기 위한 플라스틱 빨대가 꽂혀 있었다’, '엄마와 아빠가 누나를 묶고 때리고 강간한 뒤 누나가 다시는 움직이지 않을 때까지 엄마가 누나의 머리를 거듭해서 발로 내리찍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와 같은 부분에서는 자극성만을 강조하는 가십 기사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기사 내내 충격적인 살인, 성폭력 사건을 나열했음에도 굳이 저런 디테일이 들어가야 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결정적으로 이 사건을 소개하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습니다. 차라리 로즈에 대한 판결이 정말 정당하다고 볼 수 있는 지에 대해 분석해주셨다면 어땠을까요. 로즈는 정황증거만으로 배심원 만장일치 유죄판결을 받아 가석방 없는 종신형에 처했습니다. 로즈가 어떤 사람이든 간에 그에게도 인권이란 것이 존재하고, 공정한 판결을 받을 권리가 있는 법인데 정황증거만으로 종신형을 받은 로즈에 대한 판결 절차는 정말 적합한 것이었나요? 필자는 여기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가지고 쓰신 것인지요? '로즈의 경우 처벌은 제대로 이뤄졌다고 할 수 있다'라고 쓰셨는데, 어쨌든 경악할만한 범죄를 저지른 것 같고 처벌 받았으니 잘 됐다는 입장이신가요? 이것이 김세정변호사께서 변호사로서 성찰해 보신 '법과 정의'입니까?

과거의 살인사건을 다룸으로써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이점은 사건을 조금 더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분석해볼 수 있다는 점이 아닐까요. 특히 당시에는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어 다소 성급하게 처벌이 결정 되어야만 했을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자극적인 사건의 경우에는 크고 작은 오판이 있을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사건을 어느 정도의 '쿨타임'을 거친 후 재조명함으로써 그 과정이 정말 법적으로 타당했으며 정의로웠는지 법리적 검토를 해볼 기회를 가질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이런 검토를 기사로 작성하는 것이 주간지에서 기대되는 수준의 인사이트가 아닐런지요.

김세정변호사의 하드보일드 시리즈의 방향성에 대한 전반적인 재검토를 요청 드립니다.

2016.11.17.

1. 요즘 일상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으로 자주 중단된다. 며칠 전에는 거의 1년 간 꾸준히 써오던 일기장을 보면서 단순히 하루에 있었던 일을 대충 끄적이는 게 도대체 내 인생에 무슨 도움이 되며 시간이 흐른다 한들 도대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약 2주 전에는 작은 방으로 침실을 옮기면서 집을 발칵 뒤집었는데(아직 수습이 안 된 채로 뒤집혀 있다. ‘방금 이사 온 것 같은 집’을 연출하고 있는 중) 책장을 여기에도 뒀다가 저기에도 뒀다가 하며 이리저리 궁리를 하다가 1년 뒤면 이사 준비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보다 좀 더 전에는 한 카페에서 너무 마음에 드는 소파를 발견해서 비슷한 걸 사볼까 하는 생각에 열심히 쇼핑을 하다가 곧 이민을 갈지도 모르고, 이민을 안 가더라도 이사해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그만둬버렸다. 내가 하는 모든 일에 동기 부여를 하는 게 점점 힘들어지고 있고, 억지로 이유를 만들어야만 겨우 움직이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 그나마 출근을 해야 하니 최소한의 것들만 하면서 꾸역꾸역 굴러가는 중. 역시 나는 내 사업을 하면 큰일 날 사람인 것 같다.

2. 요즘 내 감정 상태를 알 수가 없다. 모든 것이 그 의미를 잃고 파사삭 부서지는 요즘이라고 표현했다가, 다른 한편으론 모든 것이 잔잔하고 고요한 요즘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게 양립 가능한 건가? 모르겠다. 그저께 신촌에 머리를 자르러 간 김에 애인의 연구실에 들러 잠깐 얼굴을 봤다. 오늘까지 제출해야하는 과제가 있다고 해서 진짜 얼굴만 보다가 안녕, 하고 집으로 향하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씻으면서 문득 거울을 봤는데 새삼 내가 너무 늙은 게 느껴져서 서글퍼졌다. 주름도 없는데 왜 이렇게 늙어 보이는 건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하루종일 무방비상태로 찬바람에 노출된 것처럼 퍼석퍼석한 몰골이었다. 요 며칠 별 이유 없이 잠을 제대로 못 잤는데 그것 때문이겠거니 생각하면서도 이제 나도 내리막길을 걷는 건가 싶었다. 이 내리막길을 최대한 천천히, 건강하고 유쾌하게 내려가고 싶다가도 다른 한편으론 내리막길이고 나발이고 그냥 절벽에서 뚝 떨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아, 그냥 다 피곤하다.

3. ‘프린세스메이커2’라는 게임을 종종 했었다. 나는 매번 식비나 겨우 벌 수 있는 ‘성당에서 봉사하기’만 시키곤 했다. 성당에서 봉사하기를 주구장창 시키면 도덕심이 999가 되는데, 그러면 어느 날 어떤 마귀가 찾아와서 도덕심을 팔라고 한다. 나는 도덕심을 판 돈으로 겨우 예법 공부를 시키거나 무용을 시키거나 했다. 도덕심을 팔 수 있는 시점에 딸은 이미 꽤 성장한 뒤이므로 무사수행도 다른 많은 이벤트도 제대로 경험할 수 없었다. 이렇게 말도 안 되게 재미없는 플레이를 한 이유는 내가 겁이 무척이나 많기 때문이었다. 성당 일은 체력도 요리실력도 지능도 낮은 딸이 유일하게 실패하지 않는 직업이었고 또 유일하게 아무런 능력치도 깎지 않는 직업이었다. 농장 등의 일을 시켰을 때 매번 실수를 하는 딸을 지켜보는 것도, 기품 등 다른 능력치가 감소하는 걸 보는 것도 너무 고통스러웠고 무서웠던 나는 아예 성장하지 않는 쪽을 택했던 것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프메2 공략 사이트를 발견했고, 그제야 이 게임은 주구장창 성당 일만 시키면서 깨작대는 게임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그 날 속상한 마음에 꽤 오래 울었던 기억이 난다.

4. 나는 겁이 너무 많다. 매일 아침 집 밖으로 나오는 것도 힘들 때가 많은 내가 정말 이민이란 걸 갈 수 있는 걸까 걱정이 된다. 이민도 이민인데 내가 정말 새로운 직장을 구할 수 있을까. 그 직장이 정말 해외에 존재하는 곳일 수 있을까. 나는 스스로에게 실망하는 게 너무 무섭고, 싫다. 동시에 나는 스스로에게 아주 높은 성취 기준을 들이대는 편이라 늘 실망뿐이다. 타인에게는 기대하지 않는 것이 자연스러운데 왜 나 자신에게는 말도 안 되는 기대를 하게 되는지 모르겠다. 가끔 이것도 저것도 그 무엇도 완벽히 해낼 수 없다는 생각이 들 때면 숨 막히는 두려움이 엄습하는 걸 느낀다. 그럴 때는 말 그대로 못 박힌 듯 꼼짝 않고 딱딱하게 굳어 있게 된다. 안정을 되찾으려고 애쓰지만 대게는 완전 정지 상태인 나와는 상관없이 흘러가는 시간에 대한 공포가 더해져 이대로 모든 게 끝났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나도 내가 왜 이렇게까지 뻣뻣하게 구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