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이 보고 싶으면 편지를 쓰거나 전화를 해요 왜 이

잠을 깨운 이는 역무원이었다. 가방에서 주섬주섬 열차표를 꺼내어 건넨 뒤 나는 창밖으로 무심히 시선을 던졌다. 커다란 적란운이 하늘의 왼편에 걸려 있었다. 켜켜이 수직으로 쌓인 거대한 흰 구름. 그 아래 끝도 없이 펼쳐진 밭은 연녹색이었다. 밀밭일까. 아침 여덟 시 반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사방이 환했다. 새파란 하늘, 투명하리만치 하얀 구름, 옅은 초록색의 지평선. 의사는 '색'이란 빛을 흡수하고 반사하는 정도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영원히 녹지 않는 설산을 닮은 구름을 다시 한번 쳐다보았다. 그러나 저것은 설산이 아니라 응결된 거대한 수증기 덩어리일 뿐이고, 이내 사라질 것이다. 적란운은 곧 비가 올 거라는 신호였지만 아직까지는 빗방울이 떨어지지 않았다.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구름이 기차만큼이나 빠르게 반대 방향으로 흘러갔다. 기차는 일정한 리듬으로 덜컹거리며 북서쪽으로 달렸다. 한 시간 반만 더.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기차 안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객실 안 어딘가에 갓난아이가 탔는지 울음소리만 간간이 울렸다. 짙푸른 너도밤나무 숲이 차창 밖을 몇 번 더 스쳤다. 기차가 함부르크에 도착한 것은 아침 열 시였다.

 

기차역은 혼잡했다. 어디선가 향신료 섞인 기름 냄새가 풍겨 왔다. 나는 기차역을 가로질러 갔다. 마중 나온 이 하나 없는 낯선 기차역을 관통해 역사 안에 있는 관광안내소를 찾았다. 사방에는 오래전에 겨우 읽는 법만 배운 외국어뿐. 나는 안내소의 직원에게서 함부르크 시내의 지도를 한 장 얻고, 약속 장소인 함부르크 시청까지 찾아가는 길을 안내 받았다. 그곳을 약속 장소로 정한 이는 레나라는 독일 여성이었다. 며칠 전 보냈던 나의 메일에 회신하면서, 그녀는 함부르크가 초행인 나를 고려해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을 약속 장소로 정했다. 사흘밖에 되지 않는 베를린 출장 중 무리해서 당일치기 함부르크행을 결정한 거였다. 길을 잃거나 서로 엇갈려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는 않았다. 장거리 비행의 여파와 시차 탓에 몸이 너무 피로했다. 나는 역 앞의 작은 카페에서 커피를 한 잔 사 들고 거리로 나섰다.

   

사실 아버지가 입원하지만 않았더라면 내가 무리해서 함부르크까지 올 이유는 없었다. 여행을 좋아하는 편도, 함부르크에 아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갑자기 병원에 입원하게 된 것은 육 개월 전이었다. 화장실에서 나오다가 미끄러져서 엉치뼈가 부러지는 바람에 거동이 불가능해진 까닭이었다. 엉치뼈를 다치기 이전부터 아버지의 입원을 권유했던 누나들이 적극적으로 입원 수속을 밟았다. 아버지의 시력이 급격히 나빠지면서 누나들은 어머니와 아버지 단 두 분이서 생활하는 것이 더 이상 불가능하지 않겠냐고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어머니 혼자 아버지를 돌보는 것은 무리라는 거였다. 누나들이 그렇게 말할 때마다 두 분을 모시고 살라는 뜻인가 하는 생각에 마음이 불편했던 나로서는 그에 동조하지도, 반대하지도 못한 채 우유부단한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걱정이 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아버지의 시력은 점점 더 나빠지고 있었다. 의사는 머지않아 아버지가 실명할 것이라고 말했다. 어머니 혼자 눈이 보이지 않는 아버지의 수발을 드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아직 얼마든지 혼자 생활할 수 있다며 멋대로 돌아다닐 아버지의 성격을 알기 때문에 어머니의 고생은 빤히 예상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아버지를 모시고 살겠다는 말은 좀처럼 쉽게 나오지가 않았다. 누나들 중 누구도 선뜻 나서지 못하는 이유도 나와 같은 게 아니겠냐고, 밤마다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죄책감을 조금이나마 덜려고 애썼다.

 

아버지가 환한 대낮, 화장실에서 나오다가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었다는 연락을 해온 것은 어머니였다. 사 남매 중의 막내, 그것도 누나들과 나이 차이가 많이 지는 막내 중의 막내임에도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어머니는 나에게 의지했다. 나는 어려서부터 그것이 부담스럽고 끔찍했다. 어머니가 나에게 부재하는 남편의 역할을 기대한다는 것을 눈치챈 열두 살 때쯤 나는 집 앞 골목에 쭈그리고 앉아 노란 위액을 토해냈다. 늘 집에 없던 아버지도, 내게 너무 많은 기대를 걸던 어머니도, 눈에 보이는 어머니의 차별에 나를 시기하던 누나들도 다 견딜 수가 없었다. 그 밤, 환자복으로 갈아입은 아버지가 아이 같은 얼굴로, 아무것도,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아, 하면서 울었던 그 밤, 나는 오랫동안 뒤척이다가 침대를 빠져나와 조금 울었다. 베란다에 선 채로. 앞 건물의 불빛 탓에 유리창 위로 누군가의 모습이 어른거렸다. 아버지처럼 어깨가 둥글게 굽은 그 사내가 누구인지 나는 알았다. 구부정한 자세로 창가에 기대어 있는 나의 곁으로, 잠에서 깬 아내가 다가왔다. 왜 울고 있어. 아내가 나의 어깨를 감싸며 물었다. 아버지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어서. 내가 답했다.

   

정말이지 나는 아버지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 없었다. 물론 대부분의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그렇단 것은 알고 있었다. 우리의 관계가 유난히 나쁜 편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돈독한 것도 아니었다. 아버지를 생각하면 언제나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바다 냄새였다. 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배를 탔다. 부둣가에서 일하는 하역부였으니까 배를 탈 이유는 없었는데도, 아버지는 종종 배를 타고 멀리 갔다가 바닷바람 냄새를 풍기며 아주 가끔 집에 들어왔다. 기억 속의 어머니는 자주 울었다. 어머니는, 어머니 말에 따르면, 과부나 다름없는 삶을 살았다. 그런 것 치고는 애를 넷이나 낳았잖아요. 나는 어머니의 푸념을 듣기 싫어 그렇게 말했지만 남편이 늘 바깥으로만 나도는데 네 명이나 되는 아이를 홀로 키우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수려한 외모에 반해 반대를 무릅쓰고, 여덟 살이나 차이가 나는, 나이 많은 사내와 결혼을 한 대가라면 대가였다. 나와 열 살 차이가 나는 큰누나는 곧잘 어머니의 편을 들어줬지만 나는 남자라는 자각을 한 이후부터 아버지와 같은 편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그렇지만 아버지는 같은 편을 하기에 문제가 많은 사람이었다. 아버지가 술 냄새와 바다 냄새를 동시에 풍기며 어쩌다가 집에 들어올 때마다 누나들과 나는 방에서 숨을 죽였다. 나이를 먹으면서 아버지와 같은 편이 되겠다는 생각은 깨끗이 사라졌다. 친구들의 아버지에 비해 나의 아버지는 훨씬 늙고 추레했다. 무역이 줄어들고, 공장들이 문을 닫아 더 이상 일거리가 없어질 때까지 오랜 시간 동안 아버지는 유령처럼 그 부둣가를 맴돌았다.

   

청록색 지붕과 화려한 벽면 장식이 인상적인 함부르크 시 청사의 모습이 멀리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자 조금씩 긴장이 되었다. 약속 시간까지는 삼십 분 정도가 남았다. 함부르크는 처음이니 주변 명소들을 관광하며 기다릴 수도 있었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내가 이 도시에 온 목적은 관광이 아니었으니까. 게다가 너무 피곤했다. 나는 그냥 시청 앞 광장의 벤치에 자리를 잡았다. 사람들은 하루를 시작하느라 분주해 보였다. 음식물 따위를 팔기 위한 간이 스탠드를 세우는 사람들. 아무것도 없던 허공 위로 소시지나 음료 따위의 메뉴가 적힌 작은 스탠드의 골격이 천천히 형태를 잡아갔다. 레나는 동양인의 외모를 지닌 나를 비교적 쉽게 알아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함부르크 역에 내린 이후로 동양인을 도통 본 적이 없으니 어쩌면 레나의 말처럼 내가 쉽게 눈에 띌 지도 모르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나는 레나가 어떻게 생겼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광장의 한쪽 끝에서는 누군가가 쭈그리고 앉아 트럼프 카드로 집을 짓고 있었다. 다른 한쪽에서는 두 명의 사내들이 팬터마임을 시작했다. 금발의 여성이 두 차례 내 쪽으로 오기에 레나인 줄 알고 다가갔지만 그들 중 누구도 레나는 아니었다. 약속 시간이 십오 분이나 지나자 혹시 장소를 착각한 것은 아닐까 나는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지난 메일 속에는 분명히 시청 앞이라고 쓰여 있었다. 관광 안내소의 청년이 건네준 지도를 가방에서 다시 꺼내려고 하는데 누군가가 내 앞에 다가와 섰다. 어두운 색의 머리에 갈색 눈을 가진 그녀의 얼굴은 어딘지 기묘했다. 스스로를 레나라고 소개한 여자는 독일어 악센트가 강한 한국어로 나의 이름을 확인했다. 그제야 나는 이름만 듣고 무심코 금발의 여자를 상상하고 있었지만, 나와 만나기로 되어 있던 사람이 게르만족의 얼굴을 하고 있을 리가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기다리던 사람은 나처럼 동양인의 얼굴을 하고 있거나 그렇지 않으면 혼혈인의 얼굴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어야만 했다. 레나는 심순옥의 딸일 테니까. 악수를 하자며 레나가 나를 향해 내미는 손을 맞잡았다. 레나의 손은 조금 뜨거웠다. 긴장 탓에 나의 손이 차가웠던 것이거나. 날은 맑았지만 바람이 불었다. 커피라도 마실까요? 레나가 나에게 물었다. 우리는 시청 앞 광장을 통과했다. 운하 옆 회랑에 늘어선 테라스는 사람들로 붐볐다. 레나와 나는 테라스의 한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아 각자 맥주를 시켰다. 맥주가 몸속에 들어가자 비로소 긴장이 조금 풀렸다.

   

함부르크라는 도시에 대해 처음 언급한 것은 아내였다. 베를린 출장이 결정되었다는 소식을 전한 직후였다. 아버지가 입원을 하고 내가 조금 울었던 날이 지난 뒤 몇 번째 주말이었던가. 아버지의 병문안을 갔다 오던 차 안에서 아내는 심순옥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여보, 혹시 아버님의 첫사랑 알아?”

 

백화점 세일 기간 탓에 차들이 도로 위에 정체되어 있었다. 유니폼을 갖춰 입은 백화점 주차 요원이 호루라기를 요란하게 불면서 주차장으로 진입해야 하는 차량과 직진할 차량들의 움직임을 통제했다. 괜히 이 길에 들어섰다는 생각에 짜증이 나기 시작하던 참이었다. 아버지의 첫사랑이라는 말은 주말 한낮, 정체된 도로 위의 상황을 생각하면 너무나 아득하고 비현실적이었다. 아버지에게도 첫사랑이 있었을 수 있지만 그런 것 따위를 나는 단 한 번도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아버지가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라니.

 

“작년 봄에 말이야, 아버님이 우리 집에 며칠 다니러 오셨을 때 내가 한번 여쭤본 적이 있었거든?”

 

나는 아버지가 우리 집에 일주일 동안 머물다 갔던 지난봄을 떠올렸다. 어머니와 싸우고 갑작스럽게 집에 들이닥친 거였다. 이렇게 불쑥 오시면 어떻게 해요? 나는 아내의 연락에 너무 놀라 무리해서 정시에 퇴근했다. 아버지는 당신의 집인 양 소파 위에 모로 누운 채 뉴스를 보며 술에 취한 사람처럼 큰 소리로 욕을 해대고 있었다. 아내에게 창피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해서 나는 아버지에게 평소보다 더 심하게 화를 냈다. 아버지가 머물던 일주일 동안 나는 새벽마다 잠에서 깨었다. 아버지가 새벽 일찍 깨어나 화장실을 가고, 냉장고를 뒤지다가 무엇인가를 떨어뜨리거나 쏟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아예 나의 집에 눌러앉고 싶어하는 기색이었다. 아내도 나도 출근하고 나면 어차피 비어 있는 집인데 뭐가 그렇게 짐이 되느냐는 식의 논리였다. 그렇지만 나의 아버지는 내가 아내와 집을 얻었을 때, 단 한 푼도 보태주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아니, 그것은커녕 내가 대학을 다니고, 취업을 준비할 때 용돈 한 번 준 적도 없었다. 나는 아버지의 뻔뻔함에 불같이 화를 내며 거의 쫓아내다시피 아버지의 등을 떠밀었다. 그렇게 끔찍하기만 했던 일주일이었는데 대체 아내는 어느 틈에 아버지에게 첫사랑을 다 물어봤을까. 아버지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며 아내 앞에서 눈물을 보인 이후, 아내는 아버지에 관해 알고 있는 것들이 생각날 때마다 나에게 이야기하기로 결심한 모양이었다. 아버님이 된장에 무친 비름나물을 좋아하셨던 것 알지? 아버님의 귀 모양이 당신 귀랑 똑같이 생긴 것도 알지? 뭐, 이런 식으로.

 

차들이 경적을 울렸다. 수신호를 주기 위해 움직이는 주차 요원의 베이지색 소매가 허공에서 맥없이 흔들렸다. 나는 앞차의 움직임을 따라 브레이크를 떼었다 밟았다가만 지루하게 반복하면서,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말인가 생각했다. 아버지의 첫사랑이라니.

   

테라스 옆 운하에는 백조 두 마리가 물 위에 떠 있었다. 병든 것처럼 보이는 백조들은 더럽고 목이 지나치게 짧았다. 후드 점퍼를 입은 아이들이 백조를 향해 빵 조각을 떼어 주고 있었다. 한여름인데도 바람은 한국의 가을처럼 차가웠다. 어디서부터 말을 꺼내는 것이 좋을지 몰라 나는 잠시 망설였다. 이렇게 만나 주어 고마워요, 라고 말하자 레나가 웃었다. 엄마의 첫사랑에 대해서 들을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니잖아요? 라고 덧붙이면서. 나는 레나의 얼굴을 보며 심순옥의 얼굴을 떠올려 보려 했다.

 

나의 추측이 맞는다면 오래전, 나는 레나도, 심순옥도 본 적이 있었다. 딱 한 번. 그날따라 아버지는 구두를 신었다. 갈색의, 아버지 걸음걸이대로 밑창이 닳은 구두. 아버지가 앞서 걷고 어린 나는 아버지의 그림자가 닿지 않는 거리에서 뛰는 듯이 걸었다.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 나는 몰랐다. 아버지는 언제나 그렇듯 말이 없었다. 화교가 하는 중국집 앞에 다다랐을 때 진동하던 자장면의 냄새에 입안 가득 침이 고였다. 식탁을 차지하고서도 아버지는 오랫동안 아무것도 시키지 않았다. 중국인의 식당에는 금전적 풍요를 기원하는 부적이 벽 여기저기 붙어 있었지만 나는 한자 읽는 법을 몰랐다. 해독할 수 없는 글자들을 눈으로 따라가는 일이 지루해졌을 즈음, 중국집의 문이 열리고 한 여자와 소녀가 들어왔다. 아버지의 상기되었던 표정. 아버지는 끝내 그녀가 누구인지 내게 말해 주지 않았지만, 기억 속 아버지의 표정으로 미루어 보면, 그녀가 심순옥이고, 그 옆에 따라 들어오던 커다란 눈의, 비쩍 말랐던 여자아이가 레나이지 않았을까.

 

“뭔가 오해가 있었나 봐요. 우리 엄마의 이름은 심순옥이 아니에요. 엄마 이름은 김찬숙이에요.”

 

레나가 유리잔을 테이블 위로 내려놓으며 당황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내 얼굴 근육이 눈앞의 얼굴만큼이나 당혹감으로 굳어가는 것을 느꼈다.

 

“그럴 리가요. 내가 함부르크 한인 교회 목사님께 구해 주실 수 있나 여쭤 봤던 것은 틀림없이 심순옥 씨나 심순옥 씨의 가족 분 연락처였는데요.” “뭔가 잘못된 게 틀림없어요.”

 

레나가 여전히 당혹스러운 목소리로 다시 한번 말했다.

 

“나도 목사님에게서 엄마와 관련해 꼭 만나고 싶어한다는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지만 우리 엄마의 이름은 김찬숙인 걸요.”

 

레나는 가방에서 휴대전화를 꺼내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가 없었다. 레나는 한참을 기다리더니 독일어로 조그맣게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고는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받지 않네요. 어쩌죠. 엄마 친구나, 내가 아는 교회 분들 중에도 심순옥이라는 이름의 사람은 없는 것 같은데……”

 

레나가 난감해할수록 나는 더욱더 당황스러워졌다. 일단 눈앞의 사람에게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심순옥을 만날 수 없게 되었다는 실감이 나자, 그다음에는 대체 무엇을 하러 이렇게 피곤해 죽겠는데 잠도 못 자가며 이 도시까지 온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나는 말도 안 되는 실수를 한 목사에게 화가 났다가, 애초에 아버지의 첫사랑 얘기를 꺼낸 아내에게 화가 났다가, 이내 아버지의 첫사랑을 만나 보고 싶다는 생각을 충동적으로 한 내 자신이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제 와서, 아버지의 첫사랑 따위를 만난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내가 아무런 말이 없자 레나는 미안한지 다시 여기저기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며칠 동안 함부르크에 머무는 거면, 함부르크 병원에라도 전화를 해서 심순옥 씨를 찾아봐 줄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오늘 밤에 돌아간다고 했죠?”

 

레나가 안타깝다는 목소리로 물었다.

 

“신경 쓰지 마세요. 오늘 여섯 시 기차로 다시 베를린에 돌아가요. 내일 낮에 베를린에서 비행기를 타고 귀국하거든요.”

 

내 목소리는 내가 듣기에도 비참할 정도로 서글프게 들렸다. 우리는 말없이 잠시 앉아 있었다. 심순옥의 딸이 아니라면, 더 이상 물을 것도, 들을 것도 없으니 가셔도 좋다고 말해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지만, 그녀가 가 버리면 무엇하며 이 낯선 도시에서 남은 시간을 때울 수 있을지 막막했다. 모든 게 엉망진창이었다. 온몸은 무겁고 머릿속은 하얘졌다. 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정리해야 하지, 한참을 궁리하고 있는데 레나가 말했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점심 같이 할까요? 어차피 오늘 하루 종일 일정을 비워 두었어요.”

 

당황해하는 날 배려한 말이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아침부터 아직까지 먹은 게 하나도 없었다. 우리는 맥주 값을 계산하고 같이 일어섰다. 그사이 더 많은 스탠드가 세워진 광장을 우리는 지나갔다. 레나는 나만큼이나 키가 컸다. 어쩌면 독일인의 유전자 탓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심순옥이 독일인과 결혼하기는 했던 걸까? 나는 갑자기, 훔쳐 읽었던 심순옥의 편지 내용이 헷갈렸다.

 

“어쩌면 함부르크에서 일하신 게 아니지 않을까요?”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레나가 물었다. 레나가 나를 데리고 간 곳은 관광객보다는 그 지역의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는 독일 음식점이었다. 나는 레나가 권해준 민물고기와 감자 요리를 시켰다. 식당 안은 사람들로 붐볐다. 어디에도 유색 인종은 없었다.

 

“틀림없이 봉투에 함부르크라고 쓰여 있었어요.”

 

‘틀림없이’라고? 그렇게 말하기는 했지만 나는 이제 내가 보았던 편지 봉투 겉면에 함부르크라는 글씨가 적혀 있었는지 아닌지조차 헷갈리기 시작했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이란 말인가. “하긴, 함부르크 시립병원에서 일했다고 서로 다 아는 것은 아닐 테니까요. 시기가 엇갈렸을 수도 있고. 잠시 일하다가 다른 데로 갔을 수도 있고. 그렇죠?”

 

레나가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맥주를 들이켰다.

 

“혹시, 귀찮게 해드려 죄송하지만, 어머니께 한번 여쭤 봐주실 수 있나요? 심순옥 씨라는 분을 아시는지.”

 

심순옥을 만나야겠다는 생각은 시들해진 지 오래였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조금은, 여기까지 온 나의 수고가 아까운 기분이 들었다. 심순옥을 만나지는 못하더라도 그녀에 대해 뭐든, 사소한 것 하나라도 들어야 내가 이 도시까지 굳이 찾아온 보람이 있을 것만 같았다. 레나가 쥐고 있던 포크와 나이프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테이블 위의 탄산수 병을 집어 들고 잔에 따르더니 한 모금 마셨다.

 

“그랬으면 좋겠는데, 엄마가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어서요.”

 

레나가 아주 작게 미소를 지었다. 우리는 눈이 잠깐 마주쳤다. 그리고 각자 시선을 서로 다른 곳으로 옮겼다. 한 사내의 눈이 멀고, 한 여자의 기억이 사라지는 데 필요한 세월의, 가늠할 수 없는 두께.

 

“그래서, 당신이 찾는, 심순옥 씨가 당신 아버지의 첫사랑이라는 거지요?”

 

레나가 화제를 전환하기 위해서인 듯, 조금은 밝는 톤으로 물었다.

 

“네, 제가 알기로는요.”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구분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테이블 위, 유리병 안에는 색색의 꽃. 노란색, 보라색, 빨간색의 꽃. 그리고 언젠가는 시들어 버릴 분홍색의 꽃.

 

“그런데 아버지의 첫사랑은 찾아서 뭐하게요?”

 

그녀가 물었다.

 

“그러게요.”

 

내가 답했다.

 

편지들은 아버지의 물건들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아버지의 입원이 몇 달 안에 끝날 수 없다는 판단이 내려지면서 어머니는 살던 집을 정리하겠다고 나섰다. 말하지는 않았지만 우리 집에서 함께 살고 싶어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나는 어머니의 의중을 짐짓 모른 척했다. 내가 선뜻 어머니와 같이 살겠다고 말을 하지 않자 어머니는 그 모든 것을 아내의 탓으로 돌렸다. 언제나 내게 의사처럼 전쟁 통에도 사라지지 않을 기술을 지녀야 한다고 말하던 어머니는 내가 보잘것없는 회사에 입사했을 때 한번 실망했고 어머니의 기준에서 나보다 더 평범한 아내와 결혼했을 때 또 한번 실망했다. 어머니는 대개의 시어머니들이 그렇듯 모든 불행의 근원을 아내의 탓으로 돌리기 시작했다. 어머니와 나의 갈등을 지켜보던 아내는 우리 집 근처에 작은 아파트를 얻도록 하면 어떻겠느냐는 절충안을 제시했다.

 

편지 뭉치는 이사 전날 정리했던 아버지의 옷장 가장 깊숙한 곳에서 나왔다. 아버지의 사적인 편지니 내게 읽을 권리가 없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호기심이 양심의 가책보다 더 강했다. 편지 봉투에 적혀 있던 “Sun-Ok Shim”이라는 이름과 “Hamburg”라는 지명 탓이었다.

 

“아버님의 첫사랑은 심순옥이라는 분이셨대.”

 

아내는 그날, 혼잡했던 백화점 앞길에서 나에게 말했다. 나는 정체된 도로 탓에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아내는 나의 기분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밝은 어조로 말했다. 심순옥은 아버지와 같은 동네에 살았던 친구의 막내 여동생이었다고 했다. "두 분은 서로 많이 사랑하셨나 봐. 그렇지만 심순옥 씨가 파독 간호사로 지원하면서 헤어지셨대. 원래는 일 년만 갔다 오기로 했는데 심순옥 씨가 더 오래 독일에 머물게 되면서 결국에는 소원해질 수밖에 없었다나 봐." 나는 아버지의 사랑 이야기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아버지가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도 상상이 가지 않았지만 사랑했다 한들 나와는 무관한 일이었다. 나는 환자복을 입은 채 처량하게 누워 있는 아버지를 생각했다. 그렇게 힘없이 누워 있을 거라면, 전적으로 나를 의지하는 얼굴로, “아무것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라고 울먹이며 말할 거였다면, 젊고 혈기가 왕성했던 시절 나에게 조금 더 다정했으면 좋지 않았겠냐는 생각. 기분 탓인지 핸들을 잡고 있는 내 눈앞의 사물들이 휘어진 것처럼 보였다. 아직은 그럴 리가 없었다. 나는 눈을 깜박였다. 의사는 증상이 나타나는 것은 대체로 오륙십 대라고 말했다.

 

그날, 내가 찾은 편지는 모두 열한 통이었다. 한 달에 한 번꼴로 온 편지들을 모아 두었나 했는데 편지는 꽤 오랜 세월의 간격을 두고 쓰인 것들이었다. 아버지가 편지를 소중하게 간직했다는 것이 내겐 너무 낯설었다. 아버지가 무엇인가를 소중하게 다룰 수 있는 사람이었다니. 나는 충동적으로 아버지의 편지들을 훔쳐 왔다. 심순옥은 아버지를 범주 씨라고 불렀다. 범주 씨. 나는 심순옥의 첫사랑이었던 아버지가 궁금해졌다.

 

주문했던 음식이 차례로 나왔다. 우리는 맥주를 한 잔씩 더 시켰다. 나는 술을 많이 마시지 말라는 의사의 조언을 떠올리며 알코올이 들어가지 않은 맥주를 시켰는데, 알코올이 빠진 맥주는 맛이 형편없었다. 레나는 함부르크에 처음 온 나를 위해 도시와 주문한 음식에 대해 이것저것을 설명해 주었다. 연노란색 머스터드 소스가 끼얹어진 생선 요리는 예전부터 항구 노동자들이 즐겨 먹었던 향토 음식이라 했다. 레나는 친절하고 상냥했지만 우리의 대화는 자꾸 끊겼다. 레나가 한 대학의 동아시아언어학과에서 한국어를 연구하고 있다는 것이나, 내가 고등학교 때 독일어를 배웠지만 인사말밖에는 할 줄 모른다는 이야기들을 주고받았지만 대화는 잘 진행되지 않고 겉돌았다. 괜히 시간을 뺏는 것 같아 나는 레나에게 조금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든 이야기를 이어 갈 구실이 필요했다.

 

“레나 씨 어머니도 파독 간호사셨던 거죠?”

 

나는 가까스로 이야깃거리를 찾아내었다. 어차피 우리를 연결해 주는 것이라고는 그것밖에는 없었다.

 

“엄마는 75년에 독일로 건너왔어요.” 레나가 답했다.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던 차에 우연히 신문에서 파독 간호사 모집 공고를 봤대요. 그래서 용기를 내서 떠났는데 선원 사고가 잦은 항구 도시의 시립 병원에 배치된 거죠."

 

레나가 칼로 생선을 썰면서 말을 이었다. 레나의 어깨에는 푸른색의 문신이 작지만 선명히 그려져 있었다. 레나의 머리카락은 밝은 갈색, 눈동자도 회색에 가까운 갈색. 그녀가 입은 하늘색의 민소매 블라우스가 몸이 흔들릴 때마다 조금씩 움직였다. 물결처럼. 어딘가로 흘러가는 물의 결처럼.

 

“어머니는 오랫동안 그 병원에 근무하셨나요?”

 

내가 물었다.

 

“아뇨, 그렇게 오래 일하지는 않았어요.”

 

레나가 장난스럽게 눈을 반짝였다.

 

“엄마는 화가가 되었거든요.”

 

“화가요?”

 

나는 놀라 칼질을 멈추고 레나를 쳐다보았다. 레나가 웃었다. 레나는 그녀의 어머니가 간호사 시절, 타지 생활이 외로워 취미로 그림을 그렸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미술 도구를 살 돈이 없어 그냥 아무 종이에나 연필로 그렸다는데 다정히 대해 주던 독일인 간호사들에게 선물로 초상화를 그려 준 것이 계기가 되어 미술 관계자의 눈에 띄게 되었단다.

 

“그런데 확실히 엄마한테 재능이 있긴 했나 봐요. 그러다가 미술을 정식으로 배울 기회까지 얻게 됐으니까요. 이렇게만 들으면 동화 같은 얘기죠?”

 

정말 그랬다. 가난을 벗어나려고 이국에 간호사가 되겠다고 왔다가 미대생이 된 여자의 삶에 대해서는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엄마는 운이 좋은 케이스였어요. 그렇지만 그 당시 일이 얼마나 힘들었는지에 관한 얘기는 자주했어요. 쉬는 날에 다른 병원에서도 일을 했다거나, 야근을 일부러 했다는 얘기는 엄마 같은 파독 간호사들을 만나면 늘 듣는 얘기예요.”

 

그런 얘기라면 나도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소중히 간직했던 심순옥의 편지 속에도 그런 내용이 적혀 있었다. 밤새 신생아 병동에서 아기의 기저귀를 갈고 목욕을 시켰다는 이야기. 독일 간호사들은 한 달에 칠백 마르크를 버는데 그녀는 다른 병원 야간 근무까지 해서 수당을 그 두 배 가까이 번다고도 썼다. 사람들이 나를 보며 돈 욕심이 많다고 수군대는 것 같지만, 상관없어요. 편지의 끝에는 언제나 보고 싶다는 말이 쓰여 있었다. 누가? 나의 아버지가? 정말, 나의 아버지가?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 지쳐서 꽃잎은 빨갛게 멍이 들었어요.* 언젠가 우리 다시 만나면, 그때는 두 번 다시 헤어지지 말아요. "이미자, <동백 아가씨> 가사 중에서"

 

“어머니가 그리신 그림들을 언젠가는 한번 보고 싶군요.”

 

식사가 끝나갈 무렵, 내가 말했다. 웨이터가 계산서를 갖고 오고, 식사비를 계산하려는 레나를 만류해 내가 값을 지불했다. 레스토랑 앞에서 우리는 작별의 인사를 나누었다. 기차 시간까지는 아직 네 시간이나 남아 있었다. 이제는 마음을 비우고 기차 시간이나 바꿀 수 있는지 알아보기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돌아서 걷는데, 레나가 나를 불렀다. 뒤돌아보니, 레나는 도로의 끝에 위태롭게 서 있었다.

 

“정말 엄마의 그림을 보고 싶으면 우리 집에 같이 가지 않겠어요?”

 

기억 속의 레나는, 아니, 그녀의 이름은 레나가 아닐 테지만 그냥 계속 레나라고 부른다면, 한국인이 아닌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물론 그 당시 어렸던 내게는 혼혈인이니 외국인이니 하는 개념도 제대로 없었다. 머리가 까맣고 눈도 까맸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았지만, 아이들에게는 그런 게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내 기억 속에서 그녀의 엄마와 나의 아버지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우리는 허겁지겁 자장면을 먹어 치우고 식당 옆 구멍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사 먹었다. 식당 앞 화단에 쭈그리고 앉아서. 색소 탓에 우리의 혓바닥은 진보라색으로 물들었다. 우리가 서로 말도 없이 뜨거운 햇살 탓에 녹아내리는 아이스크림을 혓바닥으로 핥아먹고 있던 사이, 그녀의 엄마와 나의 아버지는 손이라도 잡을 수 있었을까. 그날 있었던 다른 기억은 전혀 나지 않았다. 대체 그날따라 내가 왜 아버지와 함께 시내에 나갔는지, 어머니는 그때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다만 그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목욕탕에 들러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버지와 목욕을 같이 했던 것은 생각난다. 목욕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처음으로 내게도 아버지가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엄마한테는 목욕 갔다 왔다고만 그래라.”라고 아버지가 말했던 것도 같지만 아닐 수도 있었다. 진위 여부를 판단하기에는 너무 오래전의 일들이었다. 어쩌면 본능적으로 알았을 수도 있었다. 그날의 외출과, 녹아서 끈적이던 아이스크림에 대해서 어머니에게 말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아니면, 내가 어머니에게 사실을 털어놓는 바람에 어머니와 아버지가 싸웠는데 내가 그 기억을 까맣게 잊어버린 것일지도.

 

레나의 집은 시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있었다. 우리는 버스를 타고 그녀의 집까지 갔다. 창밖으로 비가 흩뿌렸다. 한산한 거리에는 ‘세일’이라는 글자가 도처에서 보였다. 도로변 건물의 처마 밑마다 사람들이 가득했다. 우산을 쓰거나 쓰지 않은 사람들이 버스에 올라탔다. 제이차세계대전 때 무자비한 폭격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다던 도시는 더 이상 그 비극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자전거 안장 위에 앉아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는 백발노인의 뒷모습. 잎사귀의 색이 저마다 다른 거대한 가로수는 하늘을 가릴 듯 높이 솟아 있었다.

 

레나는 골목 안쪽에 위치한 건물의 삼 층에 살았다. 레나를 따라 계단을 걸어 올라가며 처음 보는 여자의 집에까지 이렇게 찾아가도 되나 조금 걱정이 되었다. 그렇지만 어색하고 불편한 나와 달리 레나는 아무렇지도 않은지 스스럼없이 현관문을 열었다. 커다란 개 한 마리가 레나를 향해 달려왔다. 걱정 말아요, 물지 않아요. 레나가 말했다. 커다랗고 충직해 보이는 개는 코가 검었다. 나는 신발을 벗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현관 앞에서 잠시 망설였다. 집은 큰 창 때문에 환하고, 천장이 높았다. 집안 곳곳의 한국어 책들이 눈에 띄었다. 우리는 커피를 한 잔씩 마셨다. 김찬숙 씨가 그렸다는 그림은 응접실 복도에 걸려 있었다.

 

“이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엄마의 그림이에요.”

 

우리는 커피를 마신 뒤, 커다란 그림 앞에 섰다. 그새 비가 그쳤는지 햇살이 들어오기 시작했지만 실내가 여전히 어두워 우리는 등을 켰다. 그림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그것이 목판화인 줄 알았다. 그러나 불빛에 모습을 드러낸 그것은 목판의 질감이 연상되도록 표면을 촘촘히 칠한 유화였다. 그 위에는 비슷한 듯 서로 다른 무늬들이 수도 없이 그려져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그것은 그냥 무늬가 아니라 글자였다. 수많은 한글 자음과 모음들의 조합. 간혹 글자를 이루는 것들도 있었지만 대개는 글자를 이루지 못한 기호들의 나열.

 

“작품이 멋지네요. 이 작품을 가장 좋아하는 이유라도 있어요?”

 

오랫동안 그림을 바라보다가 내가 물었다. 레나는 잠시 답이 없었다.

 

“오래전, 엄마와 처음 한국에 갔을 때예요.”

 

레나의 목소리는 작고 나직했다. 혹시 그때가 이십칠 년 전은 아니었나요. 나는 묻고 싶었다. 이십칠 년 전, 항구가 있는 도시는 아니었어요?

 

“아마도, 여름방학 동안이었으니까 두 달 정도 머물렀을까? 날씨가 무척 무덥고, 견딜 수 없이 땀이 났어요. 사람들은 쉽게 소리를 지르고 밀치고 지나다녔죠. 한국은 요새도 그렇죠?”

 

레나가 조그맣게 웃었다.

 

“아무튼 그곳은 이곳과 너무 달랐어요. 한번은 엄마가 친구를 만나는 동안 내가 식당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는데, 어떤 노인이 개를 발로 막 차는 거예요. 털이 까맣고 눈이 갈색인 작은 개였는데, 개가 죽을 것처럼 울든 말든 노인은 술에 취해 발로 개를 차요. 나는 너무 놀라서 입을 틀어막은 채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엄마가 친구와 헤어지고 나를 데리러 오기만을 기다렸어요. 전깃줄과 빨랫줄이 아무렇게나 뒤엉켜 있는 골목에서는 쓰레기 냄새가 났어요. 마침내 엄마가 식당에서 나왔어요. 엄마가 내 손을 잡고 골목을 걸어요. 해가 벌써 뉘엿뉘엿 지고 있는 시간이었는데, 공사를 하는지 흙모래가 파헤쳐져 있는 좁은 비탈 골목을 걷고 있다 보니 갑자기 설움이 복받치는 거예요. 내가 막 울면서 말했어요. 나는 엄마, 여기가, 한국이 싫어. 다시 독일로 데려가 줘. 그런데 내 손을 붙잡고 걷던 엄마가 갑자기 우뚝 서서 나를 똑바로 보고 이렇게 말하지 않았겠어요? 그래, 이렇게 낯선 나라에서 지내는 건 힘들지? 그런데 넌 독일에서 엄마가 어떨지 생각이나 해봤니?”

 

레나는 내 쪽을 보지 않고 있었다. 그림만을 응시한 레나의 옆얼굴을 나는 바라보았다. 그녀의 광대뼈와 움푹한 눈. 서양인의 특징과 동양인의 특징이 적절히 섞인 그녀의 얼굴을 말이다.

 

“엄마는 발음도 문법도 틀린 독일어로 나에게 말했어요. 평상시에는 한국말을 섞어서 말했는데, 그 말만은 처음부터 끝까지 독일어로요. 나는 그때까지, 내가 어렸던 탓도 있었겠지만 엄마의 삶이 얼마나 외로웠을지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그 순간…… 글쎄요. 어떻게 말해야 할까. 깨달았다고 하면 너무 거창할까요? 그렇지만 깨달았다고 하는 게 그나마 가장 정확할 것 같아요. 엄마와 나는 완전히 별개의 사람이라는 것을. 우리는 영원히 겹쳐질 수 없는 서로 다른 무늬의 결정이었다는 것을요. 국적이나, 문화나, 고향의 문제는 아니었어요. 그래요, 정작 엄마는 잊어버렸겠지만 그 여름, 엄마가 내 손을 꽉 붙잡고, 나를 똑바로 내려다보면서 했던 그 말이 나는 지금까지 잊히지 않아요. 석양이 지고 있었고, 집집마다 붉은 고추를 말리던 골목은 지저분했고, 지린내가 진동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너무 젊었던 엄마의 얼굴. 그리고 내가 태어나 처음으로 느꼈던, 그러나 그 후로 문득문득, 밥을 먹다가, 잠을 자다가, 사람들과 파티를 하고 혼자 집에 올 때마다 나를 사로잡던 그 서늘한 감정. 나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엄마의 고독한 옆얼굴을 볼 때마다 그날 엄마가 내게 했던 말들을 생각했어요. 바람에 날리는 고추 씨앗처럼 떨어져 내리던 엄마의 말의 조각들. 내 안으로 영원히 침투하지 못하고 미끄러져 어딘가로 흩어져 내리던, 그러나 내가 한없이 붙잡고 싶던 그 말의 조각들을 말이에요.”

 

레나가 잠시 말을 멈추었다. 몇 초의 정적이 흐른 뒤, 그림에서 시선을 거두고 내 쪽을 바라보았다. ‘마치, 이것으로 답이 되었나요?’ 하고 묻듯이.

 

“여기 잠시만 앉았다 갈래요?”

 

레나가 물었다. 기차역으로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항구를 보고 싶다는 나의 말에 레나가 나를 항구까지 데리고 온 것이었다.

 

“이렇게 바람을 쐬는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어요.”

 

바람이 불어, 레나의 짧은 머리카락이 아무렇게나 흩날렸다. 체크무늬 스커트가 물결쳤다. 나 역시 이렇게 한가롭게 항구를 거닐었던 적이 있긴 했던가 하는 생각을 하던 참이었다. 연인처럼 보이는 남녀들이 입을 맞추고 우리의 곁을 지나갔다. 날은 뜨겁고, 수면은 반짝였다. ‘참 변덕스러운 날씨구나’ 하고 나는 생각했다. 도대체 그곳에 왜 있는 것인지 영문을 알 수 없는 조잡한 인디언 모형을 지나, 우리는 항구 초입으로 보이는 지점에 이르렀다. 선글라스를 낀 관광객들이 계단에 앉아 하염없이 수평선을 보고 있었다. 우리 역시 비가 마른 자리를 찾아 계단 위에 걸터앉았다. 물에는 요트처럼 보이는 작은 배들이 정박되어 있었다. 더 커다란 배들은 수평선 가까이에…

 

“더 멀리 가면 좀 더 큰 항구가 나오겠죠?”

 

나의 말에 레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까지 가볼래요?”

 

나는 잠시 망설였다.

 

“아뇨, 그냥 여기에 조금 더 앉아 있죠.”

 

스테인드글라스처럼 무수한 빛깔로 부서져 내리는 수면을 내려다보며 나는 다리를 앞으로 쭉 뻗고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관광안내소의 직원은 꼭 찾아가 봐야 할 여행지 중 하나로 이민박물관을 표시해주면서, 함부르크가 1850년과 1939년 사이 신세계를 향해 떠나간 오백만 유럽 이민자들의 관문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들은 대체 무엇을 기대하고 국경을 넘었을까.

 

“아름답지 않아요?”

 

레나가 한참 만에 다시 입을 열었다. 수많은 선박들을 바라보는 레나의 얼굴은 황홀한 표정이었다. 무수한 빈 돛대들이 상형문자처럼 푸른 하늘 위에 얽혀 있었다. 바로 옆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는 레나의 얼굴은 세월에 씻겨 나간 흔적은 있었지만 잘 관리되어 있었고 은근한 꽃향기가 났다. 그 중국집 앞, 비쩍 말랐던 소녀도 이만큼 나이를 먹었을 테지. 마지막으로 심순옥의 행방을 찾기 위해 여기저기에 다시 전화를 걸어 주었던 레나는 그녀의 집을 나서기 전, 샌들을 고쳐 신으며 내게 지금 그녀와 동료들은 정부의 지원을 받아 한국의 한 대학 연구팀과 함께 한-독 사전을 새롭게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남한어와 북한어, 서독어와 동독어가 모두 포함되어 있는 사전이라고. 그러면서 이렇게도 말했다.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뒤, 엄마는 독일어를 전부 잊어버렸는지 한국말만 해요. 근데요, 그토록 오랫동안 한국어를 학교에서 배웠는데도 여전히 엄마가 하는 한국어 중에는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이 참 많아요." 그리고 약간의 사이를 두고 그녀는 들릴락 말락 한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의 첫사랑은,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아이로 돌아가 버린 그녀의 어머니에게 남아 있는 말은 대체 어떤 것들일까.

 

나는 레나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일렁이는 수면을 보았다. 아버지가 입원한 이후, 의사는 나 역시 아버지처럼 언젠가 시력을 잃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사물의 가장자리가 흐릿하고 휘어져 보이면 증상이 시작되는 것이라고 했다. 이 모든 것이 어쩔 수 없는 유전의 법칙이라고도 말했다. 아무것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아버지는 그 시절 왜 그토록 배를 탔을까. 배를 타고 가고 싶었던 곳은 어디였을까.

 

어머니가 하도 울어, 허탕을 칠 줄 알면서도 아버지를 찾아 이미 먼 옛날 쇠락해 버린 부두에 나가던 날들을 기억했다. 아버지처럼, 오래전 전쟁 통에 부모도 없이 낯선 곳으로 흘러들어 온 소년이 새로 정착한 도시에서 할 수 있었던 일은, 그저 부둣가의 하역노동뿐이었을 것이다. 과거, 온갖 말린 생선을 파는 좌판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는 골목을 지나면, 바다 저 멀리 목재와 철강 따위를 실어 나르던 시커먼 배들. 갯벌 탓에 뭍으로 가까이 다가오지 못한 채 공장 폐수처럼 검은 물 위에 떠 있던 그 배들. 고깃배들로 가득했다던 부두는 어린 내 눈에도 이미 몰락하고 있는 중이었다. 회색 공장 건물이 시야를 가리는 항구의 초입에 폐허처럼 남은 선술집들. 서로 바특하게 붙어 있던 원색 함석 슬레이트 지붕들과 간신히 루핑만 얹었던 더 허름한 지붕들. 담벼락 앞, 줄 세워진 갈색 고무 대야는 크기들이 제각각이었고 텅 빈 화분들에는 꽃 대신 하얀 소라 껍데기가 박혀 있었다. 어스름이 깔리면, 바다에서는 선한 귀를 가진, 지친 짐승의 느리고 완만한 들숨과 날숨 소리가 들려왔다. 바닷바람 탓에 얼굴에서 소금기가 느껴졌다. 심순옥도 아버지처럼 월경越境했던, 그 도시의 수많은 이주민들 중 하나였을까. 아니면 그런 이가 낳은 딸? 만약 그렇다면 그녀는 무엇을 꿈꾸며 국경을 넘어 또 다시 이주를 감행했던 걸까.

 

"우리가 마지막으로 만났던 날을 언제나 기억할 거예요." 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심순옥의 마지막 편지는 이렇게 시작했다. 그리고 그 편지는 이렇게 끝났다. 당신은 내가 알고 있는 가장 고독하고, 가장 따뜻하고,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에요. 아직 청년인 아버지와 그보다 더 젊은 심순옥이 이별했을 항구 도시의, 이제는 사라져 버린 누추한 골목을 머릿속으로 그렸다. 야생 고양이들이 밤 뒤에 몸을 숨기고 가로등마저 깨진, 비좁은 골목에서 그들이 나눴을 입맞춤. 서로의 눈에는 세상에서 가장 빛났을 청춘의 남녀. 어디선가 요란한 기적 소리가 울렸다. 아주 먼 시간의 지층을 관통해 올라오는 듯한 소리. 커다란 화물선의 굴뚝 위에서 연기가 양감과 질감을 지닌 물체처럼 치솟았다. 아니, 영롱하게 빛나는 거대한 거품처럼. 수면이 서로 다른 빛깔의 비늘을 지닌 물고기처럼 팔딱였다. 나의 머릿속에는, 다른 여자를 평생 마음에 품은 남편 대신 아들에게만 집착하는 늙은 어머니도, 침대 위에서 보잘것없이 메말라 가는 눈먼 아버지의 얼굴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 무엇도 침범할 수 없을 것 같은 순간의 아름다움만이 오로지 나를 사로잡았다. 정말 아름다워요. 내가 탄식을 내뱉듯 속삭였다. 우리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끝>

   

* 위 소설의 저작권은 백수린 작가에게, 사용권은 〈쉼표, 마침표.〉에 있으므로 무단 전재와 재배포를 금지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