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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02 <비빔국수를 먹으며>

Nov 02 2022 2 mins  

동대문 시장 옷가게와 꽃가게 사이 비좁은 분식집에서 비빔국수를 먹는다 혼자 먹는 것이 쑥스러워 비빔국수만 쳐다보고 먹는데 푸른빛 상추, 채질된 당근 시큼한 김치와 고추장에 버물려진 국수가 맛깔스럽다 버스, 자가용, 퀵서비스 오토바이가 뒤엉킨 거리 옷감 파는 사람과 박음질하는 사람 단추, 고무줄, 장식품을 파는 크고 작은 상점이 빼곡한 곳 가난과 부유가 버물려져 사는 동대문 시장 가족과 동료, 시댁과 친정 세월의 수레바퀴 속에 나와 버물려져 사는 사람들 새콤하고 달콤하고 맵고 눈물 나고 웃음 나고 화나고 삐지고 아프고 그렇게 버물려진 시간들 울컥 목구멍에 걸린다 목필균 밥을 먹다가도, 아이들을 봐도 울컥, 단풍을 봐도, 낙엽 길을 걷다가도 울컥하지만, 그래도 살아가야지요. 좋든 싫든, 생각이 같든 다르든 서로 맞물려 버무려지는 것이 우리네 삶이니까. 섭섭함에 등지지 말고 마주 보고선 미운 정 고운 정 차곡차곡 쌓아가며 말예요.















2022/10/26 <초등학교 친구들과의 환갑여행>

Oct 26 2022 3 mins  

초등학교를 졸업한지 50년이 다되어가는 시점에 친구들과 속초와 주문진으로의 ‘환갑여행’을 떠났습니다. 이른 아침, 오랜 세월의 주름과, 탈모로, 서로를 알아보지 못해 쭈뼛쭈뼛. 이름은 들어 본 듯 한 데 얼굴은 기억이 없고, 얼굴은 기억이 나는 것 같은데 이름이 기억이 안 나고... 그렇게 어색함을 뒤로하며 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오랜 만에 타보는 관광버스, 정숙이가 나눠준 김밥 한 줄과 비닐봉지에 담은 족발 한 조각을 받아 놓고, 바라보는 창밖의 풍경은, 곱고 예쁘게 물들은 단풍들이 산허리를 감싸고 있었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어린 시절 고향을 떠난 친구들이 저마다 다른 곳에서 삶의 터전을 일구었지만, 고향은 쉽게 가보지 못하는 곳이 되었습니다. 부모님이 떠나가시면서 어린 시절 함께했던 집이 팔리다 보니, 갈 기회가 없어지게 되고, 친구들과의 교류도 데면데면 해졌습니다. 하지만 ‘환갑여행’은 나에게 어린 시절 친구들의 품으로 안길 수 있는 기회를 주었습니다. 반갑다며 건네는 한잔으로 얼굴이 발그레해진 모습을 보며, 마이크를 잡고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감정을 잡는 모습을 보며 ‘그래. 너! 이 모습. 이제 기억이 난다’ 사진 찍는 준이와 간식 준비를 위해 모자를 벗어 찬조금을 독려하는 숙이, 한껏 폼 잡고 마이크를 잡았으나 박자와 음정이 틀려 당황한 훈이를 코러스로 커버해주는 친구들의 모습, 너무나 따뜻했습니다. 어둠이 내려 앉아 헤어짐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기에 떼 창을 부르며 목이 쉬기도 했지만 그것도 추억의 탑에 보탬이 되기에 행복했습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대학교와 30여년의 직장 생활동안 만나고 헤어지는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50년 만에 마주하는 친구와 격이 없이 마음을 나눌 수 있어 너무 좋았습니다. 장암 역에서 막차로 이어지는 전철과 버스를 환승해가며 새벽 1시가 되어서야 집에 도착했습니다. 한껏 피곤했지만 단 톡 방에 '마침내 good night‘ 메시지와 함께 인증 샷을 남겼습니다. 전곡 초 21회 친구들! 지금 이대로의 마음으로 칠순여행도 함께 하자.













































2022/10/08 <좀 늦으면 어때.. 좀 더디면 어때..>

Oct 08 2022 3 mins  

정말이지 저 계획 형 인간으로 거듭나리라. 다짐을 했습니다. 나이가 들고, 늙어 가는 걸 개탄하기보다 더 당당해 지고 싶었습니다. 초라해지고 나약해지기 싫어 더 많은 걸 배우고, 더 많은 것들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암 것도 해 놓은 게 없습니다. "나름 열심히 살고 일하느라고 그랬다고.. 힘들었다고.." 아무리 내 자신에게 변명을 늘어놓고, 위로해 보려 해도 시간은 손가락 사이로 흩어져 버린 모래알 같았습니다.가을도 되고, 베란다 화분에 심어놓은 토마토들을 정리하고 했습니다. 올봄에 딸아이가 씨앗을 사다가 심었던 토마토! 이미 다른 집 토마토 모종들은 꽃을 피우고 열매가 나고 화분에 다른 화초들로 바뀌어 있었는데... 우리 집 토마토는 느려도 너무도 느리게 컸습니다. "아니 아침마다 물도 잘 주고, 영양제도 주었는데, 근데, 너희들 너무 한거 아냐...“ 애꿎은 토마토 잎들을 만지며 막 뽑아 버리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꽃잎이 말라 진자리에 아주 작은, 너무도 작은 토마토 하나가 열린 겁니다. "와우~~"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토마토도 무던 애를 쓰고 있었겠구나 싶었습니다. 열매를 맺기 위한 보이지 않는 노력을 했을 토마토에게 미안했습니다. 그리고는 내 마음을 알았던지 작은 열매들을 하루가 다르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 토마토야~~좀, 늦으면 어때... 최선을 다하는 게 중요한 거지.~~ 고맙고 감사해!‘ 토마토는 그렇게 커져가고 있습니다. 화분이 비좁을 정도로..토마토도 느리고 나도...느리고 더디게..그렇게 커져가고 있습니다.






2022/10/06 <내 삶의 길목에서>

Oct 06 2022 3 mins  

지난 주말에 외할머니 생신이라 오랜만에 친척들이 모였습니다. 사촌 언니 오빠들이 거의 결혼을 해서, 다 모이기가 쉽지 않았는데 가족구성원이 모두 모이고 보니 저희 외가도 정말 대가족 이었습니다. 그 중 저는 미취학 조카 여섯 명을 돌보는 일을 맡게 되었습니다. 하루 종일 웃고, 뛰고, 그러다 넘어져 울고...얌전하다 싶으면...뭔가 엎지르고 있고...그리고는 또 10초가 멀다하고 "이건 뭐야??" 라고 묻는 질문 공세에 저는 거의 체력이 고갈되었습니다. 잠시 쉬고 있는데 네 살 배기 정우가 다가와 진지하게 묻습니다. 손으로 저의 어깨를 가리키며, "이거... 엄마야?" 시집도 안간 아가씨에게 엄마가 왠 말인가 싶어 "정우야~ 엄마 아니고 이모야 이모." 그런데 요 녀석 또 똑같은 또 합니다. 정우는 엄마를 묻고 저는 이모를 대답하는 문답이 여러 번 오고 간 후...갑자기 요 꼬맹이 한숨을 푹~ 쉬더니 방을 나가 사촌언니의 손을 끌고 들어옵니다. 전 언니에게 정우가 자꾸 나한테 엄마라고 묻는데 이모라고 대답을 해도 계속 똑같이 묻는다 했더니 언니는 웃으며 말합니다. 정우가 최근 어린이집에서 가격 개념에 대해 배워왔는데 이건 얼만지...저건 얼만지...알고 보니 정우의 질문은 엄마가 아니라 얼마였던 거였습니다. 정우는 또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열심히 하는데 그런데 신기하게도 저희 사촌언니는 그 말을 다 알아듣고는 저에게 설명을 해 줍니다. "정우가 네 옷이 예뻐 보였나봐. 나더러 엄마도 저런 옷 입고 어린이집에 오라고 그런다. 예쁜 게 좋은가봐~나도 신경 좀 써야겠다.“ 처음엔 언니도 정우의 얘기가 어려웠대요. 그런데 어느 순간 아이의 목소리가 들리고, 마음이 보이고, 하고 싶은 얘기가 들리더라고...반짝반짝 눈을 빛내며 말하는 언니를 보며, 아가씨 때는 그렇게 멋쟁이였던 언니가, 한 아이의 엄마가 되면서 화장기 없이 수수한 옷차림으로 변하는 모습이 속상했던 제가 참 경솔했구나, 언닌 겉으로 보이는 아름다움이 아닌, 사랑을 채우며, 책임감을 완성하는 아름다운 옷을 입어가고 있었구나 싶었습니다. 세상 모든 엄마들이 엄마라는 이유만으로도 아름다울 수 있는 이유는 이런 것 때문인 것 같습니다.




2022/10/05 <행복한 만남>

Oct 05 2022 2 mins  

지난 주말엔 코로나 발생 이후 3년 만에 친정 성묘를 다녀왔습니다. 성묘 계획이 몇 번 있었으나 이 집 저 집 코로나 확진 자가 생기는 바람에 늦어졌지요. 선산에 도착하자마자 태어나서 처음으로 만난 셋째언니네 3살 된 눈이 커다란 예쁜 손녀는, 많은 친척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자 어쩔 줄 몰라 하며 낯가림에 울락 말락 두려운 얼굴이 역력했습니다. 저는 빨리 분위기를 바꿔보고자 준비해 간 비눗방울 놀이, 미니선풍기, 스티커, 책 등 선물 꾸러미를 손에 들려주니, 어느 새 얼굴에 미소를 짓기 시작합니다. 성묘 후엔 멀리 미국에 있는 둘째 언니가 참석을 못하는 대신 특별히 점심 값을 보낸다고 하여, 맛있는 점심을 먹으며 3년간 못다 한 이야기꽃을 피웠네요. 코로나 해에 초등학교에 입학한 큰언니네 손자는 의젓한 3학년이 되어 멋지게 영어스피치도 해내고, 셋째언니네 3살 된 손녀는 그 새 친해졌다고 조잘조잘 말도 잘하고, 젓가락질도 어찌나 잘하는지 모두들 놀라워 박수를 쳤지요. 힘들게 다 같이 모인 귀한 시간이라, 저는 한 순간이라도 놓칠 새라 연신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고, 집에 돌아와서는 사진 찍은 것들을 모아 배경음악을 깔고 동영상을 만들어서 친정식구 단체 톡 방에 보내주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그동안 단절되었던 답답함을 오래 만에 해소한 정말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2022/10/04 <내 삶의 길목에서>

Oct 04 2022 3 mins  

얼마 전 친정아버지를 모시고 치매검사를 받게 해드렸습니다. 식구들이 대화를 하는 데, 화낼 일이 아닌데 아버지가 소리를 버럭 지르기도 하고..또 말씀 중에 갑자기 단어가 생각이 안 난다고 답답해하시고 뭣보다...하루도 거르지 않고 술을 드시다보니 혹시 알콜성 치매에 대한 걱정이 컸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에 갔습니다. 검사대기를 하는데 아버지가 제 손을 잡더니 ‘혹시 내가 치매라고하면, 엄마 고생시키면 안 된다. 나 때문에 한평생 허리 펼 날 없이 일만했어. 그리고 내 자식들, 해준 것도 없는데 나까지 책임져달라고 못해. 나 그냥 요양병원에 가게 해줘. 꼭이다. 알겠지?‘ ’아빠, 아직 검사 시작도 안했고, 치매라는 결과도 안 들었는데 왜 벌써부터 그런 소릴 하세요? 그냥 건강검진 한다 생각하고 편하게 생각하세요.‘ 수많은 검사를 반나절 이상 하고 난 뒤 의사선생님에게 결과를 듣는 시간. ’일단, 뇌 씨티는 아주 깨끗합니다. 또 인지능력도 괜찮으시고요. 다만, 당뇨관리를 본격적으로 하셔야합니다. 동맥경화도 진행 중이라 약 드시면서 1년에 한 번씩 추적검사도 하셔야하고요.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이제부턴 술을 드시면 절대로 안 됩니다. 뇌세포에 치명적입니다. 술 못 끊으시면 옆에 계신 따님도 못 알아보실 수 있습니다. 단호하신 의사선생님의 말씀에 아버지는 ‘죄송합니다. 술 끊겠습니다.’ 다행이었습니다. 검사를 통해 건강한부분도 확인하고, 관리가필요한 부분은 치료시기를 놓치지 않을 수 있고,...아버지도 긴장이 조금 누그러드셨는지 ‘딸, 아부지 단골 집 가서 국밥 먹을까?’ 그제 서야 아버지가 웃으십니다. ‘아빠, 운동도하고, 식사관리도 하고, 약 잘 드시면 되요.’ ‘그럼~~니 엄마생각해서라도, 내 자식들 생각해서라도 건강하게 살아야지. 근데 오늘 병원비 얼마 나왔냐? 그 와중에도 자식 돈 나가는 걸 미안해하시는 아버지. ’아빠, 아빠가 저를 애지중지 지켜 주셨 듯 이젠 제가 최선을 다해서 아빠 지켜드릴 거예요. 사랑합니다. 우리아버지..


















2022/09/27 <현재의 시간>

Sep 27 2022 3 mins  

요즘 참 많이 바빴습니다. 핸드폰 메모장에 할 일들을 빼곡히 적고, 시간을 분배하여 진행해 나가야 할 정도로 바쁘다보니 머릿속 엔 항상 해야 할 일들에 대한 생각과 의무감이 가득했습니다. 근데, 아무리 바빠도 직업적인 일 외에 해야 할 일들이 또 있잖아요? 그 중 하나가 반려 견 산책시키는 일인데 꼭 하루에 한 번은 산책시키자는 마음으로 일정한 시간을 정해서 나가곤 하는데 반려견도 매우 좋아해서 세상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어쩔 줄 몰라 합니다. 며칠 전에는 햇빛 쨍한 가을빛을 만끽하며 산책로를 걷는데 여전히 제 머리 속엔 일들에 대한 생각이 가득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이렇게 앞으로 하게 될 일들만 열심히 생각하며 지금 현재를 보내면......이게 과연 맞는 건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재라는 시간이 주는 다양한 선물들을 느끼지 못하고 계속 다가오는 미래의 일들만 생각한다는 건 어떤 의미에선 참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 겁니다. 물론 필요하죠. 미래에 대한 계획을 하고, 그래야 효율적인 실천이 가능하니까요. 하지만 그렇게 집중하여 계획하고 구상하는 시간과, 뭔가를 해내며 실천하고 있는 현재라는 시간을 잘 지혜롭게 잘 병행하며 살아가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그러면 계획을 구상하는 일도 더 잘하려고 할 것이고, 계획된 일을 실천중이라면 그 또한 더 잘해내려고 노력할 것이고, 반려 견과 산책중이라면 그 산책의 느낌을 충분히 만끽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 생각을 하며 산책로를 걷다보니 공기는 더 신선했고, 초목들은 더 멋져 보였습니다. 일 할 땐 최대한 집중하여 효율적으로 하고, 쉴 땐 머릿속 세포 하나하나 에도 안식을 주듯 최대한 편안하게 충전을 해주다보면 어느덧 자연스러운 선순환이 생기지 않을까 싶습니다. 현재를 충실히 살아가야, 시간이 지나 과거의 시간이 되어 있을 때도 아름답고 뿌듯하게 추억이 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주어진 현재라는 귀한 시간을 더 잘 보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2022/09/17 <혼잣말>

Sep 17 2022 3 mins  

엄마랑 TV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그래 그래 알았다 알았어 간다구" 하면서 일어나십니다. "엄마 누구한테 그러는 거예요?" "응 세탁기가 빨래 다했다고 노래 부르잖니" 빨래를 널면서도 혼자 중얼중얼 하십니다. "엄마 뭐라고 하셨어요?" "모처럼 쉬는 날인데 점심에 뭘 해줄까 그 생각 했어." "엄마는 무슨 생각을 말로 해?" "몰라. 내가 그랬니?" 저는 소파에 누워서 TV를 보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전자렌지에서 삐삐 소리가 나자 엄마가 또 "그래 그래 떡 해동 다했다구?" 하십니다. 그러고 보니 요즘 들어 엄마의 혼잣말이 부쩍 는 것 같습니다. 집에만 계셔서 기계들이랑 대화를 하는 건가? 걱정스러웠지만, 우리 엄마가 친구들이 얼마나 많으신데, 아마 습관적으로 한 단어 두 번씩 반복하고 혼잣말 하시는 거겠지 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저녁을 먹으면서 엄마 친구 분들 안부를 물었습니다. "엄마 순영이 이모랑, 천안에 사시는 그 이모랑, 또 다른 친구 분들도 다 잘 지내시지?" "순영이 간지가 언젠데, 그러고 보니 친구들 얼굴 본지도 오래 됐네. 다 잘 지내겠지." “맞다 엄마랑 제일 친한 순영이 이모 돌아가셨지. 엄마, 여자는 나이 들수록 딸, 친구, 건강이 최고라는데, 엄마는 딸도 있고, 친구도 많고, 건강하시고 얼마나 다행이야" 하니 엄마가 피식 웃으십니다. "엄마 휴대폰 게임 하는 거 알려 드릴까요?” "게임은 됐고, 전화나 제대로 받아! 나중에 한다고 하고 떼어먹지 말고" 하루 종일 전화기를 옆에 두고 있으면서, 엄마한테 먼저 전화를 하기는커녕, 걸려온 전화에도 바쁘다고 한 적이 많았습니다. 엄마의 혼잣말이 내 탓인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혼잣말을 하시면서 외로움을 달래시는 건 아닌지.. 아니면 혼잣말을 하며 당신 목소리를 들으며 위로를 받으시는 지도 모르겠다 싶습니다. 엄마한테 먼저 전화하기, 저녁에는 엄마의 하루는 어땠는지 대화하기. 내 일과표에 넣고 이 두 가지를 잘 지키려고 합니다.






















2022/09/08 <아버지와 나>

Sep 08 2022 3 mins  

20여 년 전 대학을 졸업할 즈음, 아버지는 경기도의 한 농촌지역으로 이사를 하셨습니다. 농촌 출신으로 수십 년간 서울에서 사실 때에도 항상 집 주변의 빈 터를 찾아 텃밭을 하셨던 아버지는 이사 후 본격적으로 수백 평이 넘는 큰 밭을 일구셨습니다. 주말에 집에 가면 열심히 일하시는 아버지를 거들고는 했는데, 근데 아버지는 정말 끝없이 일을 시키셨고, 완전히 캄캄해져야 멈추셨습니다. 가끔 주말에 중학생, 초등학생 아이들을 데려가, 1시간을 훨씬 넘겨 일을 하다 보니 아이들이 텃밭에 가는 것을 즐거워하지 않습니다. 얼마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7년 전 암 수술을 하신 후 건강을 회복하시어 밭일도 다시 하셨지만 후유증으로 자주 병원에 가셨지요. 의식을 잃어 119 구급차로 병원 가는 주기가 점점 짧아졌습니다. 그러다 거친 호흡을 멈추시고 긴 안식에 들어가셨습니다. 간호하는 어머니를 생각하면 진즉에 아버지를 요양병원으로 모셔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면회가 불허된 코로나 상황에 가족이 없는 요양 병원에서 아버지가 잘 계실지, 아예 삶의 끈을 놓으시는 것은 아닌지 라는 염려에 가족 누구도 선뜻 결정을 못했습니다. 아버지와 저의 관계는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습니다. 거칠고 힘들었던 시대를 사셨던 그 세대 분들이 그러시듯 권위적이고 투박하셨습니다. 아마 아버지와의 관계가 가장 좋았던 시기는 해외에서 유학생활을 하며 긴 기간, 떨어져 지내던 시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정신없이 장례를 마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니 비로소 아버지와의 이런 저런 기억들이 떠오릅니다. 어렸을 적 아버지 팔에 철봉처럼 매달렸던 기억, 대학 합격 소식을 듣고 흐뭇해 하셨던 기억, 7년 전 수술 후 밤새 고통스러워하셨던 기억들, 당분간은 그런 기억의 조각들을 떠올리며 아버지와의 지난 시간을 정리하고, 지금의 저의 모습을 돌아보게 될 것 같습니다. 이제는 부르고 싶어도 부를 수 없는 아버지. 힘들었던 기억 다 잊으시고 편안히 쉬세요. 아버지 사랑합니다.


















2022/09/01 <나를 신의 손이라 불러주는 어르신들>

Sep 01 2022 3 mins  

저는 임대주택에서 입주매니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사 오시는 입주민들과 함께 세대에 올라가 내부의 시설물들을 알려드리고 확인하는 일을 하고 있지요. 현관의 초인종, 도어 락, 전등, 세면대, 양변기 등, 아파트 내부에 설치되어 있는 시설물들이 제대로 있고 제대로 작동이 되는지 유무를 확인 후 입주하는 분께 확인을 받는 일이 주된 업무입니다. 한번은 연세가 80이 넘으신 어머님과 시설물 체크를 하러 올라갔습니다. "어머님, 여기는 주방이고요. 여긴 화장실인데, 세면대랑 양변기 잘 갖추어져 있고 물도 잘 나오지요? 그리고 발코니로 모시고 갔습니다. "어머니, 여기에다 세탁기 설치를 하시면 되고요. 이쪽으로 오시면 실외기실이 있어요. 여기에는 실외기만 놓을 수 있고 아무것도 놓으시면 안 돼요." 설명을 드리니 "아파트라서 좋네. 나는 단독에서만 80년 살다보니깐 추울 때는 쓰레기 버리는 것도 싫어 몇날 며칠 모았다가 버렸는데. 쓰레기 실도 따로 있고 좋네." 하시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어머니, 여기는 쓰레기를 버리는 곳이 아니라 실외기실이에요. 에어컨 설치할 때 밖에 내놓는 거 아시죠? 그걸 여기에다 두는 곳이에요. 그제 서야 어머니는 "아, 쓰레기 실이 아니라 실 외기 실...큰 일 날 뻔했네.“ 하십니다. 어르신들은 공동현관 비밀번호가 잘 안 열려도, 텔레비젼이 갑자기 나오지 않아도 가스 경보음이 울려도 저에게 도움을 요청하십니다. 멀리 사는 자식들보다 더 낫다며 저를 반겨주시니 감사할 분이뿐이죠. 작은 임대 아파트지만 그래도 나만의 보금자리가 생겨서 좋다 하시며, 시루떡을 해서는 사무실에 들러서 칭찬도 해 주십니다. 이런 저런 사연들이 많으시지만 이곳에서 지내는 동안 행복한 일만 가득하시길 그리고 건강하시기를 바라봅니다. 그리고 저도 이 곳에서 일하는 동안 어르신들의 민원사항을 잘 해결해 드리고 마음 편히 지내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2022/08/27 <서울구경>

Aug 27 2022 3 mins  

서울 근교에 30여년을 살면서, 서울 구경을 제대로 못해본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작정을 하고, 서울투어 버스를 예약했습니다. 종로에 있는 호텔도 예약하고, 중앙국립박물관의 전시회도 예매를 해두었습니다 아침 일찍 대중교통을 이용해 용산 역에 도착 한 뒤 환승버스를 타고 10시쯤 중앙박물관에 내렸습니다. 메고 간 배낭을 보관소에 맡겨두고 들어갔습니다. 고대 잉카문명과 관련된 전시회였는데 고대문명이 활발하던 그 시기의 모든 것들을 보고 느껴보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간 김에 우리 문화도 다시 되짚어보고 싶어, 한글박물관까지 관람을 마쳤더니, 배가 고프길 레, 근처 식당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서 다시 버스와 전철을 갈아타고 호텔에 체크인을 했습니다. 휴식을 취한 후에, 나오니 바로 길 건너편이 인사동거리였습니다. 갤러리에 들어서 아름다운 그림들도 감상 하고 추억이 서린 피마 골 골목도 탐방하고 숙소로 돌아와 하룻밤을 잤습니다. 다음날 새벽에 근처에 있는 조계사 경내를 거닐며 명상에 잠겨도 보고 호텔에서 조식을 먹은 뒤 광화문에서 서울시티투어 버스를 타고 남산한옥 마을에도 들르고 이어서 경복궁에 들러서, 아름다운 우리 궁과 후원과 역사의 발자취들을 되돌아보았습니다. 도심에 이렇게 아름다운 우리 역사가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에 자부심이 느껴졌습니다. 아이들 어릴 적에 현장학습을 하러 와보고선, 이렇게 혼자서 구석구석 다니며 우리 문화와 역사를 되새겨보는 시간이 너무 좋았습니다. 2층 버스를 타고서 달리니, 서울 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이고, 남산전망대까지 오를 수 있으니, 신기했습니다. 1박2일 동안 박물관, 전시회, 인사 동 거리, 서울구경 한번 잘했네요. 또 기회가 닿으면 문화나들이를 해볼까 생각 중입니다.


















2022/08/20 <할아버지>

Aug 20 2022 3 mins  

저의 어머님은 제가 태어난 지 육 개월 만에 늑막염으로 돌아 가셨습니다. 그 때 아버지는 하는 일마다 실패를 하고 떠돌아다니느라 어머님은 병원에 한번 가보지 못하고 저 세상으로 가셨고, 저는 홀로 계신 할아버지와 살았습니다. 아버지는 얼 마 후 재혼을 하셨고 두 분 사이에 제 동생이 태어났지만 저는 함께 살수가 없었습니다. 새 어머님이 원치 않으셔서.. 할아버지는 저를 위해 아침마다 도시락을 두 개씩 싸주셨고, 빨래도 손수 하셨습니다. 고모가 가져다주는 반찬과 음식도 있었지만 언제가 부터는 할아버지는 손수 김치도 담그셨습니다. 밥도 하고, 식혜도 만들고.. 할아버지는 환갑이 넘으신 연세에 그것도 평생 교사로 점잖게 살아오신 분이 저 하나 때문에 한 번도 해 보지 않으신 부엌일에 도전 하신 겁니다. 저는 할아버지의 사랑으로 사춘기도 힘들지 않게 보낼 수 있었고, 좋은 대학에도 들어 갈수가 있었습니다. 제가 군대 갔을 때도 할아버지는 그 먼 강원도속초까지 면회를 오시기도 했죠. 졸업 후 들어간 회사에서 저는 사랑하는 여인을 만났고, 할아버지를 모시고 살아야 하는 조건임에도 제 아내가 되어 주었습니다. 그 후 할아버지와 함께 십년을 행복 하게 살다 할아버지는 노환으로 세상으로 떠나셨습니다. 저는 아들, 딸 낳고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런데...일 년 전 아내에게 큰 병이 찾아 왔습니다. 유방암 말기. 저는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고 아내를 살리기 위해 혼신을 다했습니다. 수술 후에도 그녀를 위해 먹는 것, 운동 하는 것, 몸에 좋은 것 찾아 먹이는 등 최선을 다했습니다. 제가 제일 겁나는 건 제 자식들에게 저와 같은 삶을 되풀이 하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저의 마음을 아내도 알았는지, 살기 위해 무진장 노력했습니다. 지금은 많이 나아져서 함께 산에도 다니고, 소소한 일거리는 해 냅니다. 아내가 저와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저는 너무 행복합니다. 병이 완쾌 되는 그 날까지 아내가 잘 이겨 내주길 간절히 바랍니다.
































2022/08/07 <내 삶의 길목에서>

Aug 08 2022 3 mins  

안부 전화를 드리면, 여든이 넘은 노모는 “언제 내려와?, 쌀도 있고 맛있는 자두도 있고 얼른 와서 가져가” 하십니다. 부천에서 순천까지 차로 5시간 거리인데.. 쉽게 오라고 하십니다. 방학이라 여유가 있는 큰 손녀와도 매일 통화를 하면서 얼른 내려오라고, 언제 내려 올 거냐고 재촉을 하십니다. 나도 남편도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업무로 엄마를 뵈러 가는 게 상당한 부담이었습니다. 그런데 부모님 뵈러 가는 건 절대 미루지 말라는 친구의 조언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아 큰 맘 먹고 새벽 5시에 나섰습니다. 10시 정도에 도착해 엄마가 해 준 정성스런 밥으로 늦은 아침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이야, 이렇게 아침밥이 맛이 있을 수가..’ 먹어도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았습니다. 특히 울 엄마 표 가지나물은 어디에서도 맛 볼 수 없 최고의 맛입니다. 엄마에게 우스개 소리로, 가지고 갈 게 그리 많냐고, 뭐가 있는데 그러냐고 했더니 없다고 하십니다. 근데 왜 바쁜 사람 내려오라고 했냐고 하니 그럼 뭐가 있나 한 번 챙겨봐야겠다며 이리 저리 둘러보시는 모습이 귀여우십니다. 요즘 경로당은 자주 다니시는 지, 친구들은 만나시는 지 여쭤보니, 사진 한 장을 갖고 오시는데 2010년에 7명의 친구 분들과 나들이를 떠나면서 한껏 멋을 낸, 엄마의 모습이었습니다. 그 중에 두 분을 가리키며 세상을 떠났다고 쓸쓸 해 하십니다. 나에게는 그냥, 언제나 나를 챙겨주시는 엄마였기에 엄마가 나이를 드시는 줄 잊고 살았는데 엄마가 늙어가는 모습이 그제 서야 보였습니다. 엄마 곁에서는 바쁘게 지냈던 나의 시간들이 아무것도 아닌 냥 정말 평안하고 고요한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어쩌면 엄마는 이런 위로와 평안을 주고자 그렇게 내려오라고 했나 싶습니다. 엄마가 싸주신 정성과 사랑을 가득 담고 새벽 5시 출발,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엄마와 보낸 시간이 비타민이 되어 한동안은 또 살맛이 날 것 같습니다. ‘엄마, 영원히 제 곁에 계셔주세요.’








































2022/07/22 <우이천 연가>

Jul 22 2022 3 mins  

감사하게도 집 가까이에 사철 맑은 물이 졸졸 흐르는 우이천이 있는데요, 라디오를 들으며 산책하는 재미가 아주 쏠쏠합니다. 북한산에서 내려오는 맑은 물엔 오리, 백로, 왜가리도 모여드는데 사람이 가까이 가도 피하지 않고 물 텀벙 자맥질하며 노는 모습이 참 정겹습니다. 유년시절 고향 앞을 흐르는 강에 나가 멱도 감고, 물고기도 잡고, 목이 마르면 그 강물에 입을 대고 쭈~욱 그냥 물을 마셨습니다. 얼굴이 능금처럼 익도록 놀았던 그 강은, 제 뼈와 살을 여물게 해주었던 강이지요. 그런 동심의 추억이 있어 그런지, 동네 하천을 거닐면 고향의 강처럼 행복하고 기분이 좋습니다. 느릿느릿 걷다가 앙증맞게 고개를 내민 들꽃들에게 고개 숙여 눈길을 주면 방긋 방긋 미소를 보내주는 모습이 어찌나 예뻐서 또 기분이 좋습니다. 삭막한 도시의 허파역할을 해주는 하천의 혜택을 누리기만 하기 미안해서 가끔 쓰레기를 줍고, 청소도 하는데, 허리운동도 되고 마음의 수양을 함께 느낄 수 있어 행복하답니다. 그런데 가끔 은 쓰레기를 그냥 두고 가는 사람, 강아지를 풀어 놓는 사람, 큰소리로 떠들거나 통화 하는 사람, 드물지만 심지어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여긴 금연구역 입니다. 강아지 목줄을 매어주세요. 쓰레기는 가져가 주세요. 불가피 버리려면 보이는 곳에 버려주세요’ 등 염치불구하고 쓴 소리를 하기도 합니다. 심신을 편안하고 행복하게 해주는 고마운 하천이 쾌적한 휴식공간이 될 수 있도록 다함께 깨끗하게, 더 아끼고, 솔선수범 자연보호에 앞장서야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오늘도 우리 동네 명소 우이 천을 거닐며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느껴봅니다. 이게 바로 소 확 행 아닌가요?





























































2022/06/27 <내겐 너무 아름다운 64세의 그녀>

Jun 27 2022 3 mins  

그녀의 아침은 매일 새벽 5시에 시작됩니다. 구루뿌를 잔뜩 말고서는, 압력솥에 밥을 지어 아이들 학교 보내고 또 본인은 출근해서 열심히 일하고 퇴근해 집에 와서 또 새 밥을 지어 저녁을 차려주셨습니다. 저는 삼 남매의 장녀로, 서른 중반에 결혼해 아들을 낳아 키우며 그녀의 사랑을 새록새록 느끼고 있는 중입니다. 제 어린 기억 속에 나보다 10살 어린 늦둥이 남동생의 면 기저귀를 빨아 삶고, 햇볕에 바짝 마른 기저귀를 차곡차곡 개키시는 그녀의 모습이 선한데 지금의 나는 아기 옷은 아기 세탁기로, 분유는 분유 제조기로, 기저귀는 일회용 기저귀, 청소는 로봇청소기로 밥은 매일 시켜 먹으며 그녀의 반의반도 안 되는 가사노동을 하면서도 매일 힘들어 쩔쩔 매는 초보 육아 엄마입니다. 지금도 일을 하고 계시는 나의 그녀는 우리 아들 100일 전까지 퇴근 후 매일 우리 집으로 와 밤새워 나와 아기를 돌봐주셨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다시 출근을 하면서도 늘 감사하다고 하셨습니다. 올 가을은 여동생의 아기도 태어납니다. 올 봄은 나와 내 아기를 위해, 다가오는 가을은 둘째와 아기를 위한 또 다른 가을을 준비하고 계시는 나의 그녀. 내 눈에는 그런 그녀의 삶이 안쓰러울 때도 있지만 '난 외로울 틈이 없는 행복한 사람' 이라고 늘 긍정적으로 말씀하십니다. 두 딸을 다 키우신 어느 여름 10살 터울의 늦둥이 아들을 키우느라 빈 둥지 증후군은 남의 이야기라며 갱년기 우울증도 없이 바쁘게 지나간 그녀의 삶에, 막내아들도 다 자라서 휴식이 올 무렵, 선물처럼 찾아온 나의 아기를 돌보아 주시며 손주 육아에 또 다른 행복과 재미를 느낀다 하십니다. 늦둥이 아들(25살) 덕에 요즘 음악도, 요즘 메이커들도, 심지어 휴대폰 게임도 섭렵한 MZ 세대의 삶을 살아가는 중이라는 그녀를 보며, 나도 항상 그녀같이 밝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야지 다짐합니다. 그녀는 바로 나의 사랑하는 엄마입니다.













2022/06/22 <산에서 뵌 어르신>

Jun 22 2022 3 mins  

주말이면 종종 남편과 집 근처의 소래 산을 찾습니다. 너무 험하지도 않고, 적당한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는...가벼운 마음으로 다녀오기 좋은 곳입니다. 그날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코스를 짧게, 혹은 길게 조절할 수 있는 여러 등산코스가 있어서 더 좋습니다. 남편이랑 둘이 과일 몇 조각, 얼음 물, 시원한 커피를 보 냉병에 담아 갑니다.어느 정도 오르다 보면 나지막하고, 나무 그늘이 있는 평평한 쉼터 공간이 있습니다. 배낭에서 물과 커피를 꺼내고 과일을 꺼내며 땀을 닦습니다. 그 순간에 마시는 물과 얼음이 채 녹지 않은 커피는 또 어찌나 맛있는지 온몸이 상쾌해지는 느낌입니다. 그렇게 목을 축이는데 저만큼 떨어진 벤치에 세 분의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다들 7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데 두 분은 일행인 듯 하고, 한 분은 혼자 오신 듯해 보였습니다. 두 분의 어르신은 종이컵과 막걸리를 꺼내어 한잔씩 드시는 듯합니다. 그리곤 그옆에 홀로 계시는 어르신. 그분도 배낭에서 무언가를 꺼냅니다. 수건으로 땀을 닦고, 물 한잔을 시원하게 드시더니 배낭에서 무언가를 꺼내시는데 그리 두껍지 않은 책이엇습니다. 어르신은 한 손엔 커피를 들고, 한 손엔 책을 들고 잠시 동안 책에서 눈을 떼지 않습니다. 그 모습이 어찌나 평화로워 보이던 지요. 진심으로 멋져 보였습니다. 우리 부부 다시 산을 오르며 얘기를 했습니다. “우리도, 저 어르신처럼 멋지게 나이를 먹자. 건강 생각해서 야트막한 산에라도 오를 줄 알고, 커피 한 잔의 여유와 가방에 책 한 권, 나무 그늘 아래에서 평화로운 독서의 시간. 그렇게 나이를 하나, 둘, 더해 가자.” 책을 가까이 하려 늘 노력을 하지만.. 왠지 그날 이후로 책에 더 손이 가는 요즘입니다.








2022/06/19 <사랑이란?>

Jun 19 2022 3 mins  

결혼을 하고 처음 배운 건, 밥하는 것도, 빨래하는 것도, 반찬 만드는 것도 아닌 머리 염색을 하는 거였습니다. 결혼하고 25년이 넘은 시간동안 쭉 남편 염색을 해주고 있습니다. "얼굴에 묻히지 말아." "바닥에 흘리지 말아." "염색약 골고루 잘 바른 거지?" 말이 많지만 못들은 척 꾹 참고 염색을 해주고 있습니다. 남편은 염색을 안 하면 완전 백발입니다. 머리가 짧아서 이주에 한번 늦으면 삼주에 한 번 염색을 해야 하는데, 한 달을 넘긴 어느 날 지나가는 꼬마아이에게 할아버지라는 소리를 듣고 오더니 충격이 컸는지 염색을 해 달라고 합니다. 큰아이 아직 결혼도 안했는데 할아버지 소리는 너무한 거 아니냐고! 혼자 성질을 내는 모습에 한참을 웃었습니다. 나도 나이가 드니, 흰머리가 생겼습니다. 한두 개 생기는 건 뽑았는데, 어느 날부터 보는 사람마다 염색해야겠다하는 말에 2년 전부터 염색을 시작했습니다. 파마를 하면서 염색을 하기도 하고, 머리를 자르면서 염색을 했는데, 몇 만원하는 염색 값이 아까워 남편에게 넌지시 “여보야, 미장원에서 염색하는 게 너무 비싸서, 염색약 사다 놓은 거 있으니 당신이 염색 해 줄래? 딸 있는 친구는 딸이 염색해준다는데, 우리는 아들만 둘이니, 어째.” “알았어. 내가 해줄게” 예상외로 남편은 쉽게 승낙을 합니다. 남편은 흰머리 나온 부분만 내가 염색을 해주고 그리고 남은 염색약으로 남편이 내 머리를 염색해줍니다. 머리를 뒤집어쓰고 남편과 나란히 TV를 보고 있는데 느즈막이 일어난 큰아이가 웃고 난리입니다. “이건 또 무슨 개그예요?” “개그 아녀, 노년의 일상이여.” 남편과 연애를 할 때 love is 란 게 유행을 했었습니다. 사랑에 대해 정의를 내리는 건데, 사랑이란 물음에 난 꽃다발이라 얘기했습니다. 나를 생각하면서 고른 선물이라 다정하다란 대답을 했었다. 50대가 된 지금 누가 나에게 love is? 하고 물으면 사랑은? 염색약 나눠서 하고 옆에 앉아서 TV보는 것! 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2022/06/11 <때와 장소에 맞는 매무새>

Jun 11 2022 3 mins  

긴 머리를 핑크 빛 고무줄로 가지런히 묶고 빨간색 주름치마를 입은 귀여운 아이가 엄마 손을 잡고 학교 현관을 들어옵니다. 학교 수업 시작한지는 한참이 지났고, 화장실이라도 급한가? 가끔 근처 공원에 있던 어르신들이나 놀이터에서 놀던 어린 꼬마들이 화장실이 급해서 학교에 오기도 하거든요. “어떻게 오셨어요?” 물으니 아이 엄마는 A4용지를 들어 보이며 “아이, 학교 전학서류 때문에요.” 전학 관련 상담은 2층 교무실로 가시면 된다고 안내를 하고 저는 아이의 엄마 뒷모습을 유심히 봤습니다. 아이들이 집 앞 편의점에나 갈 때 주로 입는...바지 옆 라인에 흰 색 줄이 있는 트레이닝복에, 맨발에, 삼선 슬리퍼. 정말이지 딱 놀이터에서 아이랑 놀다가 화장실 급해 온 듯한 바로 그 복장입니다. '너무 일이 바빠 옷 갈아입을 시간이 없었나? 아니면 요즘의 젊은 엄마들 트렌드 인가?'.. 우리 때는 아이들 학교에 한 번 가려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신경이 쓰여 있는 옷, 없는 옷 다 꺼내 입어보고, 머리도 묶었다 풀었다 하곤 했는데... 더군다나 선생님까지 봬야 하는 상황에는 상상도 못할 패션이라 한동안 어리둥절하기 까지 했습니다. 저녁 식사를 하면서 나는 우리 아들, 딸에게 꼰대(?) 라는 핀잔을 들을 각오를 하고 그날의 느낌을 얘기했습니다. 이제 20대 초반, 20대 중반이 지난 우리 아이들은 학교 선생님을 뵙는데 그런 복장은 좀 너무한 거 같다고...합니다. 세상이 정신없이 빠르게 변화하고, 사람들의 생각도 많이 바뀌고 있지만 그래도 우리가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예의라는 게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날 이후로 저도 조금 바뀌고 있습니다. 출근을 할 때 ’옷이 너무 튀지 않나? 속옷이 너무 비치나? 스커트가 너무 짧나? 머리가 덥수룩해 보이나? 화장이 짙은가?‘ 동네 마트에 갈 때도 트레이닝복에 운동화 신고 가는데 요즘은 있는 옷 아껴서 뭐하냐 싶어 살짝 옷도 좀 갈아입고.. 너무 과하지 않게, 때와 장소에 맞는 매무새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2022/06/10 <내게 용기를 주는 사람>

Jun 10 2022 3 mins  

신랑이 수시로 지방에 가는 일이 많은 주말부부입니다. 작년 11월, 아기가 태어났고, 사실상 독박육아를 하게 되었지요. 너무나 기다렸던 아기였지만 홀로 키우는 것은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출산 후 아직 몸도 회복되지 않았는데 밤낮없이 아기를 돌보는 일이 힘에 부쳤습니다. 결국, 신랑과 상의 끝에 1월 중순, 짐을 싸 친정으로 들어왔습니다. 솔직히, 남들 다 하는 육아, 저도 평범하게 혼자서도 잘 키우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결국은 엄마에게 S.O.S.를 요청하게 되었습니다. 엄마와 함께 지내면서 저는 밥도 제 때 먹게 되고, 육아도 배우게 되었습니다. 몸과 마음의 휴식시간이 생기니, 아기 울음에 쫓겨 허둥대던 과거와 달리 비로소 느껴지더라구요. 이 작은 존재가 얼마나 사랑스럽고 경이로운지를. 목을 가누지 못해 안기도 조심스러웠던 신생아가 이젠 자유자재로 뒤집으며 호기심 가득한 움직임을 보입니다. 가느다란 팔을 옷에 어찌 넣어야 할지 몰라 옷 갈아입히는 것만으로도 진땀을 빼던 초보엄마는 어느덧 혼자 목욕도 시킬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함께 먹이고 재우고, 옹알이하는 모습에 웃고, 유모차로 산책도 하며 도란도란 일상을 나누었던, 아기의 수많은 성장의 순간들을 엄마와 공유했던 4개월 반의 동거를 마치고, 이제 홀로서기를 위해 신랑이 있는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합니다. 제가 자신감을 갖게 해준 우리 엄마. 여러 가지로 참 많이 힘 드셨을 텐데, 엄마는 행복하다고 하십니다. 아침에 눈뜨면 사랑하는 딸과 손자를 볼 수 있어 매일이 소풍가듯 설레 인다고 하십니다. ‘엄마와 같이 아기 키우던 이 시기가 훗날 돌아보면 제 인생 가장 아름다웠던 시간들로 기억될 거예요. 엄마 딸답게, 저도 제 아이를 뜨겁게 사랑하고 존중하는 멋진 엄마가 될게요. 엄마라서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2022/05/26 <내 삶의 길목에서>

May 26 2022 3 mins  

며칠 전, 재택을 하게 되었다. 다행히 딸이 수업이 없어 노트북을 사용하게 되었는데, 바탕화면에 “엄마의 공간” 이라는 폴더가 있습니다. “나의 공간? 뭐지?” 클릭하고 들어가 보니, 지난 날, 나의 역사들이 그 곳에 고스란히 들어 있었습니다. 늦은 나이지만, 2년 전 가족들의 응원과 회사의 지원으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파워 포인트를 딸들에게 배워가며 발표 자료도 만들고 과목별 레포트도 만들었습니다. 힘들었지만 졸업과 동시에 그 시절을 잊어버렸습니다. 파일을 하나씩 열어보았습니다. ‘맞아, 이때 정말 이랬어. 이 자료 만드느라고 눈도 잘 안보였는데 정말 애썼지.’ 폴더에 담겨진 지난날의 흔적들을 보며 궁금해졌습니다. 내가 폴더를 만들었나? 그냥 저장하고 나왔던 것 같은데….딸에게 “혹시 엄마의 공간이라고 네가 만들었어? ” 물으니, ‘엄마가 내 노트북 쓰고 저장해 놓은 파일들이 그냥 있길 래 폴더 안에 저장해 놓으면 좋겠다 싶어서요.” 컴퓨터 업무는 직장에서 다하기 때문에 집에는 제 컴퓨터가 없습니다. 부득이하게 사용할 일이 있으면 큰 딸의 노트북을 잠시 빌리는데 내 파일들까지 이렇게 깔끔하게 정리해주니 딸에게 사뭇 고마웠습니다. 사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세상살이에 갈수록 자신이 없어졌습니다. 설거지 할 때도 잘 보이지 않아 ‘감’으로 설거지를 했는데 나중에 보면 깨끗하게 씻겨 지지 않아 민망한 적이 여러 번 있었고, 은행 이체 할 때도 무슨 생각을 가지고 했는지 다른 사람에게 이체를 해 놀란 적도 한, 두 번이 아닙니다. 그리고 뭔가를 자꾸 잊어버리다 보니 내 자신을 믿지 못하게 되었는데 딸이 아무 일 아니라는 듯, 뒤처리를 해주었습니다. 나이 먹어가면서 딸은 정말 친구가 되는 거 같습니다. 오늘 나는 나의 베스트 프렌드를 위해 정성스런 김밥을 만듭니다. 이 친구는 내 김밥만 먹으면 행복해진다고 하거든요.








































2022/05/10 <고향의 봄>

May 10 2022 3 mins  

새벽바람을 가르며 고향으로 달렸습니다. 농장 입구부터 수선화가 양쪽으로 나란히 줄 맞추어 반깁니다. 청순한 수선화의 웃음에 환한 미소로 답하며 먼저 숲속 정원으로 헐떡이며 올라갑니다. 해당화와 명자나무에 꽃망울이 어쩜 이리도 예쁜지. 작년 초겨울에 꽃밭을 정리하지 않아서 마른 가지와 덤불로 뒤엉켜 있습니다. 게으름을 자책하며 꽃밭을 정리하다 보니, 신기하게도 달맞이꽃 새싹이 작년보다 아주 많은 가족을 거느리고 파릇파릇하게 얼굴을 내밉니다. 군락을 이룬 달맞이꽃이 꽃 피우면 얼마나 화려할지... 작년에는 이른 봄에 꽃피우더니, 그곳에 코스모스가 제 자리인 양 활개를 쳐서 그런지, 달맞이꽃은 흔적조차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새싹이 나오는 것을 보며 양보와 기다림까지 갖춘 달맞이꽃이 더 새롭게 보입니다. 꽃밭 식구들이 나에게 그동안 어떻게 지냈느냐고 묻는 것 같은데 작은 바람에도 불평하던 어리석음이 떠올라 부끄럽기만 합니다. 꽃과 새싹이, 저기 보이는 산과 들이, 나의 스승이 되어 나를 꾸짖는 것만 같습니다. 깔끔하게 정리된 꽃밭에 문인께서 주신 접시꽃 씨를 심었습니다. 작년에도 꽃씨를 뿌렸었는데, 풀과의 전쟁에서 지고 말았죠. 올해는 꼭 예쁜 접시꽃을 피울 수 있도록 거름도 주고 피도 뽑아주며 정성을 쏟을 작정입니다. 농사의 시작을 알리는 농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합니다. 마른 땅을 포실 포실하게 갈아서 두둑까지 시원스레 만들었습니다. 비닐을 씌우고 감자 토란 완두콩을 심었더니, 텃밭에 온기가 돕니다. 작년에는 참외 모종 4포기를 심었는데, 100여 개의 맛있는 참외가 열렸습니다. 요번에는 수박도 정성껏 키워보려고 하는데, 하늘이 도와주시려나 모르겠네요. 밭둑에 머위와 달래도 앞 다투어 고개를 내밉니다. 한 소쿠리 가지고 와서 조물조물 무쳤더니, 입속에 봄이 한가득하고 힘이 납니다. 마냥 좋은 선물 같은 봄날이다.








2022/05/07 <아버지의 사랑>

May 07 2022 3 mins  

제가 7살 되던 해에, 앞니가 흔들거렸습니다. 밥을 먹을 때도, 간식을 먹을 때도 이가 흔들려서 매우 불편 했습니다. 이를 빼기엔 무서움이 앞섰기에, 부모님께 말씀도 못 드리고 혼자 끙끙 앓았는데 아버지는 저에게 어디가 아프냐고 물어보셨습니다. 저는 앞니가 흔들거린다고 말씀 드렸고 무서워서 울고 말았습니다. ‘울지 마라. 아빠가 안 아프게 빼줄게!’ ‘아빠 진짜 안 아프게 빼야 되요.’ 아버지는 제 앞니에 실을 묶고 나머지 한쪽 실은 방문에 묶었습니다. 그리고는 방문을 활짝 열면서 동시에 제 이마를 세게 한 대 쳤습니다. 저는 울음을 터트렸고 아버지, 어머니는 저를 보며 웃으셨습니다. 부모님 고향은 천안 병천 산골이었습니다. 저도 그곳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어느 가을날, 아버지와 마당에 있는 감나무의 감을 따는데 아버지는 감을 다 따지 않고 남겨 두셨습니다. "아빠 감을 왜 다 따지 않아요?" 하고 여쭤보니 ‘겨울이라 까치가 먹을 게 없단다. 그래서 까치 먹으라고 남겨 놓은 거야. 세상은 나누며 살면 더 행복해지고 기쁨이 배가 된단다. 그래서 함께 같이 사는 게 소중한 거야. 아빠, 엄마, 너, 그리고 동생이 함께 살아야 행복한 것처럼 말이야.’ 그땐 아버지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지금은 알 것 같습니다. 저는 아버지 등이 좋았습니다. 아버지의 등에 매달리면 아버지는 저를 업어주셨지요. 아버지 등에 업혀 있으면 정말 든든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30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저도 아이들의 아빠가 되었고, 육아를 하면서 아버지가 더 생각나고 그립습니다. 아버지의 한결같은 사랑과 품어주신 은혜...아버지 사랑합니다...



2022/05/06 <우리 집 대청소 날>

May 06 2022 3 mins  

점심은 아이들과 비빔밥으로 했습니다. 냉장고에 조금씩 남아 있는 나물이며 몇 가지 반찬들을 죄다 양푼에 넣고 달걀프라이 몇 개에 참기름, 고추장을 넣어 쓱쓱 비벼먹었지요. 계절을 어찌 그리 잘 알고 춘곤증은 또 어찌나 눈꺼풀을 무겁게 하던 지요? 잠깐 잠이 들었나 싶었는데 울려오는 휴대전화 벨소리. 시누이였습니다. 열무김치 담궜는데 지금 먹기 딱 좋게 맛 들었다며 내일 갖다 주겠노라 합니다. 엄마도 바람 쐴 겸 함께 가겠다고. 어버이날도 다가오고 해서, 그때 가서 가져오면 될 거 같다 하니 “맛 들어서 지금이 딱 이야. 너무 익어도 맛없잖아. 막내, 열무국수도 좀 말아주고, 열무 비빔밥도 해 먹고 그래” “아, 네...” 전화를 끊자마자 에구, 뭐부터 해야 하나? 우리 큰 시누는 완전 깔끔 대장인데...어머님 식사는 또 뭘 로 해야 하나? 머리가 복잡해 집니다. 소파 밑의 굵은 먼지들, TV 거실장의 두터운 먼지들,.화장실은 더 심각하구요. 며칠 전부터 ‘해야지!’ ‘해야지!’ 했지만 끝내 미루고 있던 눈에 거슬리는 물때며 타일과 사이의 회색빛 얼룩들. 다 쓰고 난 샴푸 통은 왜 안 버리지 두었는지..주방도 만만치가 않고 냉장고 속 또한 심란합니다. 두 팔 걷어붙이고 열심히 쓸고 닦고, 한참이나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데 아들이 묻습니다. “엄마! 오늘, 할머니 오세요?” “어? 어떻게 알았어? 오늘은 아니고 내일 오신대. 큰고모랑 같이.” 그랬더니 우리 아들이 그럽니다. “엄마 원래, 할머니나 고모 오시는 날은 집안 완전 대 청소 하잖아요?!” “내가 그랬나?” 잠시 멍해 있는데 아들이 또 한 마디 합니다. “할머니나 고모...종종 오시면 더 좋을 것 같아요. 온 집안이 반짝반짝 빛이 나네!” 우리 집에 오셔서, 한 번도 이러니저러니 말씀하신 적 없는데도 제가 늘 긴장하고 그랬네요. 앞으로는 진짜, 평소에 좀 깔끔하게 치우며 살아야겠습니다.






























2022/04/25 <혼자 떠나는 여행>

Apr 25 2022 3 mins  

남편은 직장관계로 연차를 못 낸다기에 저 혼자서 1박 2일의 여행을 떠났습니다. 예전엔 항상 승용차를 운전 해 다녔는데 나이가 들고 보니, 장거리여행은 엄두를 못 내겠고 해서 항공편을 이용해서 짧은 시간에 도착을 하고, 렌터카를 대여해 김해에서 거제로 들어갔습니다. 장승포항에 도착해 외도 행 유람선 티켓을 구입한 후, 근처 식당에 들어가 장어탕을 먹는 둥 마는 둥 서둘러서 배를 탔지요. 다행히도 날씨가 맑아 유람선 2층에 앉아서 바라보는 남해 바다가 너무 멋졌습니다. 50분 정도 지나니, 기암괴석들이 장관인 해금강에 도착해 푸른 바다위에 펼쳐지는 사자바위, 선녀바위 등 안내인의 해설을 들으면서 감상하고, 외도 항에 도착을 했습니다. 천국의 정원을 가꾸어 놓은 듯, 아름다운 정원들을 구경하면서 1시간여를 돌고, 정상에 자리한 경치 좋은 카페에 앉아서 바다를 바라보며, 커피 한잔도 마셨습니다. 어느새 잃어버렸던 지난 어둠의 터널에서 벗어나, 밝은 세상으로 나온 듯 했습니다. 우리 모두 지나치는 사람들을 두려워하고, 서로의 눈동자만을 바라보았던 지난 시간들이 너무 답답했잖아요. 바람의 언덕을 지나, 통영에서 하룻밤을 자고, 다음날은 이 순신공원, 동피랑 마을, 통영케이블카도 타고.. 통영시장에 들러 가족들을 위해 해산물과 건어물을 구입해 택배로 보내고 김해 수로왕릉에 들러서 마지막 일정을 마무리했습니다. "새로운 길을 걸어라. 그러면 마음이 즐거워진다." 누군가의 이 한마디를 새겨듣고 떠나게 된 혼자만의 여행. 가끔씩 이렇게 혼자서 훌쩍 떠나보는 것도 참 괜찮다는 생각이 듭니다.








2022/04/22 <내 삶의 길목에서>

Apr 24 2022 3 mins  

은행에 볼일이 있어 큰아이와 은행엘 갔습니다. 주머니마다 주섬주섬 챙겨서 온 것에 불만이 많은지 "엄마! 모바일 뱅킹으로 하면 집에서도 간단하게 할 수가 있는데요." "엄만 옛날 사람이라 은행에 직접 와서 하는 게 익숙해서 좋아." "엄마도...참, 요즘 친구 엄마들도 다 모바일 뱅킹도 하고 핸드폰 하나로 결제하고, 다들 편하게들 사시는데, 엄만 아직도 불편하게 그러잖아요." "미안해! 엄마도 요즘생활에 맞게 배워야 하는데, 그게 그렇게 쉽지가 않더라고...매번 너희들이 해줘서 편하긴 한데, 너희들도 시집가 버리면 혼자 어떻게 할까? 걱정이 되긴 하다."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데, 저만치 80대쯤의 할아버지와 60대로 보이는 요양보호사가 은행 업무를 보고 있었습니다. "영감님! 통장 비밀번호가 뭐라고 그랬지요?" "뭬라고??“ "통장 비밀번호요!" 요양보호사는 크게 소리쳤다. "응..비밀번호.." "영감님! 여기에다가 싸인 해야 된데요~" "싸인??" 요양보호사는 할아버지 손을 서류에 가져다 대고 "영감님! 이름을 여기에 적으셔요." 그렇게 하나하나 힘겹게 은행 업무를 보고 계시는 할아버지를 보노라니 남의일 같지가 않았습니다. "인자 일도 다 봤는디 집에 가서 빵 먹어도 되는겨??" "그래요, 영감님! 좋아하시는 빵 많이 사다 놓았어요." 만족한 듯 할아버진 요양보호사의 부축을 받아 은행 문을 나섰습니다. 그리고 바로 옆 창구에 나보다 서 너 살 쯤 더 보이는 반백 머리의 중년 여성이 무언가를 망설이고 있었습니다. "고객님! 도와 드릴까요?" 직원의 말에 그녀는 "제가..통장을 만들려고 하는데, 도와주던 자식들도 없고 혼자 와서 어떻게 할지...." 그녀는 직원의 도움을 받는 내내 미안해서 어찌할 바를 몰라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은행에 직원도 몇 명 없고, 젊은 사람들도 없었습니다. 언젠가 내 앞에 펼쳐질 일을 생각해 보면 마음은 한없이 바빠지는데, 더디고 더딘 몸이 야속하고 속상하기만 합니다.




2022/04/21 <글씨...>

Apr 21 2022 3 mins  

어린 시절, 시골마을에서 같이 살았던 당숙은 박식하고 학문적 소양이 깊으셨던 분이라 마을에선 김 박사님으로 통했습니다. 객지에 사는 자녀에게서, 혹은 군대 간 아들에게서, 편지를 받은 마을 어르신들은 당연히 저희 당숙 집으로 달려오곤 하셨죠. 평범한 한두 장의 편지는 당숙의 목소리를 통해 때론 시가 되고, 때론 드라마가 되기도 했습니다. 한번은, 서울로 돈 벌러 간 딸이 세달 째 소식이 없어서 안달복달하던 서산 댁 아주머니에게 딸 영숙이 편지가 드디어 도착했습니다. 한 걸음에 당숙에게 달려와 “여말이시, 한수! 드디어 영숙이 고년이 편지를 보내왔지 뭔가! 애미 속이 시커멓게 타는 줄도 모르고 무심하던 것이 이제야 연락을 해왔다네. 뭐라고 써 있는가 후딱 좀 읽어주게나.!” 아주머니는 길지 않은 몇 줄의 편지에도 감탄사를 연발하며, “이제야 내가 두발 뻗고 자겄네. 10년 묵은 체증이 확 내려간 것만 같구먼~” “이 애미 걱정 말고 지 일이나 착실하게 잘 허라고 좀 써 주게나. 곧 내려 온단디, 절대 뭐 사들고 올 생각 말고, 지 앞가림이나 잘 허라고 써 줘~” 깔끔하게 내용을 정리해 답장 대필까지 해주셨던 당숙은 마을 사람들에겐 절대 없어서는 안 될 존재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명절 즈음. 당숙 집에서 가족들이 하룻밤을 보낸 적이 있었는데 손 때 묻은 두꺼운 노트가 있어 펼쳐봤더니 아주 또박또박한 글씨이긴 하나 틀린 맞춤법이 눈에 띄는 글들이 너무도 정성스럽게 쓰여 있었습니다. 객지에 사는 아들 딸 들에게 자신이 직접 편지를 써주고 싶어 글 연습을 하며 당숙께 틈틈이 코칭을 받은 거였습니다. 지금처럼 이메일로 주고받는 시대에선 쉽게 공감할 수 없는 얘기겠지만 예전 우리네 시골마을에서 흔한 정경이랍니다. 갑자기, 펜으로 꾹꾹 눌러쓴 편지를 주고받은 게 언제였나 싶으니 좀 씁쓸해지네요.




















2022/04/13 <우리 집 베란다>

Apr 14 2022 3 mins  

지난 주말 아이들의 호들갑 소리에 기분 좋게 자던 낮잠에서 깨야 했습니다. 아이들이 비명을 지른 이유는 3월 1일에 뿌린 방울토마토 씨앗이 드디어 싹을 틔어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빠, 엄마 여기 봐요. 싹이 올라왔어요." 햇볕 잘 드는 베란다에 두고, 배양토가 마르지 않도록 때 맞춰 물만 잘 뿌려주면 알아서 쑥쑥 싹이 올라오는 줄 알았건만 우리 방울토마토 씨앗은 무려 4주 만에 세상 구경을 시작한 겁니다. 2주가 지나도 싹이 올라오지 않자, 씨앗이 불량이라는 둥, 제가 씨앗을 잘 못 뿌렸다는 둥 온갖 억측에 시달려야만 했는데...그동안 제 애간장을 태운 방울토마토를 마주하고 보니 이제 살았다 싶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벌써 1년이 지났습니다. 세상이 여전히 코로나로 시끌벅적 했을 그 때, 구청에서 베란다텃밭 사업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아내의 부지런함 덕분에 운 좋게 선정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우리 집 베란다에 텃밭이 생긴 겁니다. 첫해는 상추를 심어 꽤 괜찮은 수확을 했었고, 그 경험을 살려 올해는 늦둥이 막내의 적극적인 요구로 방울토마토 농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작물을 가꾸는 재미도 있고 덤으로 수확의 기쁨을 누릴 수 있어 좋은 것 같습니다. 방울토마토가 잎과 줄기를 키우고, 꽃을 피워 열매가 주렁주렁 맺힐 때까지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할 테지만 초보 농부인 우리 가족은 벌써부터 기대에 가득 차 있습니다. 코로나 추이가 완만한 감소세에 보이고 있다하니 이제 긴 터널의 끝자락을 지나고 있다고 믿고 싶지만, 아직은 걱정 반, 기대 반 입니다. 한참 클 아이들이 가고 싶은 대로, 또 하고 싶은 대로 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올 봄, 우리 방울토마토가 채워주었으면 좋겠습니다.







































































2022/03/15 <섞박지와 코로나>

Mar 15 2022 3 mins  

며칠 전 초등학교 때 친구 순이가 코로나인 것 같다고 검사를 받았다고 문자가 왔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양성이라네요. 전에는 주위에 확진된 사람이 거의 안보였는데 요즘은 한 집 건너 한 명씩 걸려서 마음이 불안하고 염려스럽습니다. 친구는 나에게 조심하라며, 목이 찢기듯 아프고 다음날은 근육통도 심하고 머리도 아프고 여러 가지 증상이 심하다며 격리하느라 너무 답답하다고 호소합니다. 저는 양천구지만 그 친구는 명일 동 쪽이라 멀기도 하고 가지도 못하여 안타까웠습니다.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이상하지? 아프긴 한데 식욕은 있어." "그럼 내가 보내줄게 말해봐" "응 ....네가 해준 섞박지가 먹고 싶어." 비가 부슬부슬 오는 날이지만 친구가 먹고 싶다는데, 이거 먹으면 나을 것 같다고 한 말에 마스크 챙겨 주머니에 만 원짜리 하나 넣고 집에서 10분 거리 재래시장으로 걸어갔습니다. 실하게 생긴 제주 무 세 개와 쪽파를 골라 놓고 계산을 하려고 호주머니에 손을 넣는데 돈이 안 잡힙니다. '어랏,, 바지에 넣었나?' 여기저기 호주머니 다 뒤져도 만 원짜리가 보이지 않습니다. 다시 무를 제자리에 놓고 정신을 가다듬었습니다. '분명히 오른쪽 오주머니에 넣었는데,,,오다가 주머니에서 떨어져 흘렀나?' 싶어 오던 길을 다시 걸어가 봤습니다. 그런데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교시간이라 학생들도 적지 않고 흘렸다면 누군가의 눈에 띄어 가져갔나 봅니다. 아휴,,, 맥이 빠졌습니다. 내일 퇴근길에 들려서 사와도 되는데 친구한테 빨리 보내 줄려고 서두르다 보니 어딘가에 흘린 모양입니다. 이렇게 나이 먹으니 자꾸 잊어버리고 흘리고 그러네요. 저녁을 먹고 친구에게 전화를 해 오늘 얘기를 해주니 친구가 미안해하며 괜찮다고 하는데 그 말에 맥이 빠져있던 마음이 다시 살아났습니다. 낼은 꼭 섞박지를 맛있게 담아서 아파하는 친구에게 보내줘야겠습니다. "친구야 맛있게 먹고 빨리 이겨내라... "

















2022/03/08 <안나- 희망의 끈을 놓지 마.>

Mar 09 2022 3 mins  

6년 전, 우크라이나 고3 학생인 안나가 저희 집에서 홈스테이하고 돌아간 적이 있습니다. 얼마 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안나 생각이 나서 이메일을 보냈는데 답장이 없습니다. 안나에게 혹은 가족들이 좋지 않은 상황에 처한 것은 아닌 지 걱정이 됩니다. 보통 대학생들이 국비장학생으로 어학연수를 와서 저희 집에서 머물다 돌아가는데 안나는 특이한 경우였습니다. 한류 바람이 유럽을 강타할 때 우크라이나에서 한국 걸 그룹 콘서트가 있었고 이어서 한국 댄스 경연 대회가 있었는데 우승하면 한국 어학연수를 보내준다는 것이었습니다. 안나는 그렇게 한국에 오게 되었습니다. 안나가 저희 집에 오겠다고 했을 때 무척 설레고 궁금했습니다. 어떤 학생일까, 무엇을 잘 먹을까. 어떻게 생겼을까 등등.. 학교 가기 이틀 전, 집채만 한 가방 두 개 가지고 왔는데 맙소사 피부가 하얗고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키가 커서 모델이 온 줄 알았습니다. 어쩜, 인형처럼 그렇게 예쁜 지...지내는 동안 한식은 고루 잘 먹는데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느라 그러는지 많이 먹지는 않았습니다. 한국어 공부를 열심히 하며 우리 가족과 윷놀이도 하고 한복을 입고 사진을 찍으며 부모, 형제들에게 전송을 하며, 폰에 있는 사진을 보여 주는데 가족들이 모두 영화배우 같았습니다. 수업의 연장선에서 다른 나라에서 온 대학생들과 함께 경주, 전주, 제주도, 서울에서 관광 하고 쇼핑하며 재미있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는데 빼어난 미모와 붙임성 있는 성격으로 대학생 언니, 오빠들에게 인기가 많았습니다. 그렇게 6주 마치고 돌아갔습니다. 방명록에 전화번호, 이메일 주소를 남기고 가서 한 때 연락하며 즐거운 시간 공유했는데 지금은 상황이 그래서 그런지 메일을 보내도 소식이 없습니다. 제발 전쟁이 하루속히 종식되어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행복한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기원합니다.










































2022/02/19 <내 삶의 길목에서>

Feb 20 2022 3 mins  

재작년인가, 머리를 빗다가 흰머리를 발견했습니다. 좌, 우 옆에 한 두 개씩 보이기 시작했고 그때마다 누가 볼세라 얼른 뽑아버렸습니다. 그런데 친한 후배를 만났는데 “언니! 정수리에 흰머리 있는데 뽑아줄까?” 하는 겁니다. 당황스러움에 “어, 어” 말끝을 흐렸더니 후배는 흰머리를 숨기고픈 내 기분은 아는지 모르는지 정수리에 있는 흰머리를 쏙 뽑아 나에게 건네주며 “흰색이 아니라 반짝반짝 은색 같아, 언니.” 합니다. 집에 돌아와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니 흰머리가 나는 순서가 일단 옆머리, 그다음은 정수리, 그다음은 뒷머리 순, 그 후엔 눈썹까지.. 한숨이 저절로 나왔습니다. 이렇게 눈에 보이는 노화가 시작되는구나. 그 후로 나는 거울을 볼 때마다 머리를 뒤적거리며 흰머리가 있는지 살폈고 발견 즉시 뽑아 버리며 날카로워졌습니다. 그리고 몇 달 전 아기를 낳은 후배에게서 영상통화가 걸려왔습니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아기를 직접 볼 수 는 없고 영상으로 보며 “벌써 이렇게 컸어?” “응, 언니. 언니 근데 우리 아가가 벌써 뒤집기 한다? 한번 볼래?” 아기는 아등바등 하며 열심히 한쪽 팔과 다리를 휘젓더니 드디어 뒤집기를 성공했습니다. 나도 모르게 박수를 쳤습니다. “와, 네 딸 진짜 천재 아니야?” “천재는 무슨, 아기들이면 다 하는 거지. 난 그냥 감사해 언니. 목 가누고 이젠 뒤집고, 얼마 후면 서서 걷는 날도 오겠지.” 전화를 끊고 나니 뭔가 뜨거운 것이 가슴에 울컥 하고 올라옵니다. 아가가 목을 가누고, 뒤집기를 성공하고, 혼자서 앉게 되는 그 순서가 마치 나의 흰머리가 옆에서 나고 정수리에서 나고 뒤에서 나고 그 순서인 것처럼 오버랩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역시도 감사해야 할 일이 아닐까. 청춘이 끝났다고 슬퍼할 문제가 아니라 나의 삶 또한 순서대로 잘 진행되고 있다는 거니까.. 그런 생각에 미치자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그리고 결심했다. 앞으로는 나는 흰머리를 그냥 놔둬야겠다고.











2022/02/15 <불조심>

Feb 15 2022 3 mins  

유년시절 시골에서 자란 저는 항상 “불조심” 이 세뇌가 되어 있었고 부모님과 동네 어른들은 우리만 보면 ‘불조심해라.‘ 귀가 아플 정도로 잔소리를 하셨습니다. 당시 전기가 들어오지 않던 시골에서 불은 생활과 밀접해서 불을 때서 밥 짓고, 소여물을 쑤고, 화롯불도 방안에 있었고 호롱불, 남포등을 켜고 살았지요. 초가집 아궁이 옆엔 짚과 나무가 가득 쟁여져 있고, 행랑채 헛간에도 왕겨, 솔가리가 쌓여 있어서 남녀노소 누구나 불조심은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할 생활수칙 제1호였습니다. 그래서 불조심 표어도 학교, 정미소, 점방, 주막, 사랑방, 마을회관 뿐만 아니라 집집마다 몇 장씩 붙어 있었습니다. 호롱불에 성냥개비를 태워 자고 있는 동생 얼굴에 수염을 그려 도깨비 형상을 만들며 참새처럼 떠들면 아버지는 불조심하라고 큰소리로 호통을 치셨습니다. 불놀이는 위험성도 따르지만 재미났습니다. 정월 대보름이 오기를 목이 빠지게 기다리다 드디어 두둥실 달이 떠오르면 동네 조무래기들은 깡통에 관솔불을 지펴 빙빙 돌리며 동산, 들길을 누비고 다녔습니다. 불꽃은 쉭~쉭~ 소리를 내며 활활 타는데 빙글 빙글 원을 그리며 돌리다 수많은 불빛들과 하늘에 휘 리릭~던지면 우수수 쏟아지던 불꽃들은 그야말로 가슴 뛸 만큼 볼만한 풍경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조심한다고 해도 잠깐 방심한 틈을 타 곳곳에서 불이 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밤 깊은 줄도 모르고 논두렁, 밭두렁에서 쥐불놀이를 하다가 짚더미를 태우기도 하고 머리카락과 눈썹을 태워먹기도 했습니다. “자나 깨나 불조심! 꺼진 불도 다시 보자” 란 표어는 세월이 흘러 세상이 변한 지금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죠. 우리 모두 불조심 합시다.













2022/02/10 <내 삶의 길목에서>

Feb 10 2022 3 mins  

남들은 살면서 몇 번은 해봤을 이사를 저는 처음으로 했습니다. 42년만의 이사, 새로 온 집의 잠자리가 적응이 안 되는지 아직 밤에 잠이 들어도 2시간 간격으로 깨곤 합니다. 마음을 푹 놓고 잠을 자본 게 언제인가 싶을 정도입니다. 그렇게, 밤사이 푹 못잔 탓에 점심을 먹고 나면 꾸벅꾸벅 조는 습관도 생겼습니다. 친구들은 42년 동안 같은 집에 살았다고 하면 정말 이해가 안 된다고 합니다. 어떻게 한 곳에서 태어나 계속 살 수가 있냐고... 이사를 해본 적이 없었기에 이사를 하기 전에는 그 감정을 상상하기 힘들고 그저 들뜨고 기대되었습니다. ‘시원하겠다. 이 집 정말 좁고 지겨웠는데, 새집 가면 얼마나 좋을까?’ 라고 생각하며 다가올 이삿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설레어했습니다. 이사 당일, 아침 8시부터 시작된 이사가 예상보다 오래 걸려 짐 싸는데 4시간이나 걸렸습니다. 부피가 커 과연 실어질까 걱정했던 높은 피아노와 양문형 냉장고가 이삿짐 트럭에 올랐습니다. 바닥 여기저기 흩어진 주먹만 한 먼지들을 빗자루로 모아 쓰레기봉투에 담으며 혹여 남겨진 것들이 있나 마지막 점검도 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예상치 못했던 속상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짐을 빼고 나니, 그리 좁고 어두웠다 싶었던 집 안으로 햇살이 비추는데 내가 살던 그곳이 맞나 싶게 넓고 환해보였습니다. 그러자 그 속에서 울고 웃었던 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뒤엉켜 복잡 미묘한 생각들로 마음이 울컥했습니다. 동생과 나의 탄생, 입학과 졸업, 아빠의 교통사고, 엄마의 수술 뒤 마음과 몸의 휴식처가 되어 주었던 우리 가족들의 집. 밖에서 왜 이렇게 늦냐며 곧 이삿짐 트럭 출발하니 빨리 타라 는 부모님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나는 눈물이 날 것 같아 애써 씩씩한 목소리로, “네, 남은 짐 이제 하나도 없어요. 출발해요.” 라고 말하며, 마지막으로 집 열쇠를 꺼내 현관문을 잠갔습니다. 듣고 있다면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 집에게. 그동안 미워하고 원망했지만 고마웠다고...








2022/02/07 <내 삶의 길목에서>

Feb 07 2022 3 mins  

언니 손을 이끌고 간 곳은 동네 사거리에 자리 한 '샛별금은방'입니다. 이곳에 왜 왔는지 언니는 영문도 모른 채 동생 손에 끌려 온 것입니다. 언니 손을 앞으로 쭉 내밀면서 손가락 사이즈를 재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무슨 일이냐는 듯 언니는 나를 봅니다. “16호' 사이즈가 맞겠는데요.” 반지는 헐렁거리거나 빠지면 안 되니까 마디만 통과해서 딱 맞추는 게 제일이라고 하네요. 금반지 한 돈과 결혼한 언니의 딸이자 내겐 조카에게 줄 금반지 한 돈까지 맞추고는 반지 값을 모두 치렀습니다. 며칠 전에 언니는 딸 결혼식을 치렀습니다. 두 딸 중에 첫 혼사를 치른 겁니다. 딸의 혼사를 앞두고 신경이 많이 쓰이는 눈치였습니다.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까, 엄마 아빠는 아무 것도 신경 쓰지 마세요." 야무진 둘째 딸은 다 계획이 있다며 모든 일정과 물건 구입 등을 온전히 자신들이 알아서 해 나갔습니다. 청첩장, 드레스, 살림집에 결혼식 순서까지...그래도 언니는 마음이 편치 않은 거 같았습니다. '그래도 신혼 그릇이라도 딸 손잡고 가서 사줘야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무조건 알아서 한다는 딸의 뜻을 그냥 따라주기로 했다고 합니다. 결혼식 당일 새벽부터 미장원에서 머리와 화장을 하고 한복까지 갖춰 입고 예식장에 도착하니 그때서야 딸이 시집가는 것이 실감이 나더라고 합니다. 신부 또한 화려한 드레스에 아버지의 팔짱을 끼고 들어서는 모습이 그저 한 폭의 그림 같았다고... 신부 아버지의 성혼선언문과 신랑아버지의 축사 그리고 신부어머니의 축사로 이어지는 내내 하객들의 박수소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내겐 언니가 엄마와 다름없습니다. 늘 언니에게 은혜를 갚아야겠다고 다짐 했었는데,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다 보니 남편과 아이들, 시댁 일에 그저 마음뿐이었습니다. 일 년 동안 모아왔던 비상금이 있어, 딸을 결혼 시키는 언니에게 ‘수고했다, 고맙다, 멋지다’ 고 기념될 표식을 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언니의 손가락에 금반지 한 돈이 자리를 잡은 것입니다. ‘언니 축하하고, 고마워요.’











2022/02/03 <내 삶의 길목>

Feb 03 2022 3 mins  

제가 소개팅을 해서 결혼을 후배한테서 전화가 왔습니다. 부부싸움을 하면 저에게 하소연을 해서, 이번에도 그런 전화인가 하고, 별로 달갑지 않게 받았습니다. "뭐야 너희 아직도 싸우니?" "아니! 우리 그 사람 이번에 승진해서 자랑하려고! 동기 중에 꼴찌지만, 나 기분 너무 좋아!" "축하해 잘됐다! 이제 중매 턱 톡톡히 받을 거야" "호호호 그럼! 그때 언니한테 우리 남편 소개시켜 달라고 하길 진짜 잘한 것 같아! 나이 들수록 점점 더 멋있어 지고 있어" 일 없이 괜히 우리 부서에 자주 오던 후배가 어느 날 "언니 나 정 대리 소개시켜줘 너무 멋있어" 하며 소개 시켜달라고 했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조용조용하고 꼼꼼한 정 대리랑, 활발하고 씩씩한 후배랑 잘 어울릴 것 같아 소개를 시켜주었는데, 둘이 얼마나 티 나게 사내연애를 하는지, 금방 소문이 났고, 결혼까지 일사천리로 했습니다. 결혼 후 후배는 퇴사를 했는데, 어느 날 전화를 해서는 "언니 그 사람 잔소리 쟁인 거 몰랐죠?" 를 시작으로 부부싸움을 할 때마다 전화를 합니다. 처음 한두 번은 "그래, 연애랑 결혼은 다르지! 사람이 변한 게 아니라, 가족이니까 편해서 그랬겠지" 하며 달랬는데, 점점 후배의 전화를 받는 게 부담스러웠습니다. "그래서 헤어질 거야?" "아니 누가 이혼한대? 속상해서 그렇지! 친정에는 자존심 상해서 말하기 싫고! 언니한테는 이런 얘기해도 창피하지 않으니까, 그리고 언니가 항상 내 편을 들어주니까.." "정 대리 같은 사람도 없어! 내가 그러니까 중매를 했지! 너희 두 사람이 얼마나 잘 어울리는데.. 앞으로는 좋은 일 있을 때만 전화해!" 그 후로 정말 부부싸움을 안하는 건지 연락이 없었고, 저도 퇴사를 해서 연락이 뜸했는데, 오랜만에 받은 후배의 전화로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습니다. 여전히 신랑이 그렇게 멋있다고 하는걸 보면, 저에게 천생연분을 알아보는 소질이 있는 것 같습니다.








2022/01/31 <예방접종 한 후 확인한 엄마의 사랑>

Feb 02 2022 3 mins  

두어 달 전, 백신을 2차 맞고 이틀 동안 휴가를 쓴 뒤 다시 출근을 했더니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점심도 거른 채 일을 하고 있는데 친정 엄마한테서 전화가 왔습니다. "나, 여기 은행에 왔는데, 엄마가 너한테 돈 좀 넣으려고 그러는데 계좌번호인가 그거를 알아야 한단다. 내가 여기 선생님 바꿔 줄게." 하면서 은행 직원을 바꿔 줍니다. 마음 같아서는 뜬금없이 무슨 나한테 돈을 보내나 싶었지만 일이 너무 바빠서 퇴근길에 엄마께 전화를 했습니다. "엄마, 다리도 아프신 양반이 뭣 하러 시내까지 가서 나한테 돈을 보내고 그래요. 난 보이스피싱 그런 건 줄 알고 놀랬잖아요." 그러자 엄마가 "나, 이번에 너 백신 맞고 큰 일 나는 줄 알았잖아." 하면서 훌쩍훌쩍 우십니다. 제가 백신 2차 접종을 하고 근육통에 열도 심해서 3일 동안 끙끙 앓아누웠지요. 마침 그때 친정 엄마 전화가 왔고 기운 없이 전화를 받았더니 엄마가 며칠 동안 걱정을 하신 모양이었습니다. "엄마는 그동안 많이 반성했다. 틈만 나면 너 불러 대서 은행가자, 병원가자 엄마 볼일 보자고 하고, 너를 부려 먹어서 네가 스트레스 받아서 그렇게 아픈 게 아닌가 싶더라." 저희 엄마 연세 올해로 78세이십니다. 초등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못한 분이신지라 병원, 특히 은행가서 입출금을 하는 이런 일들을 많이 두려워하십니다. 그래서 저를 앞세우고 다니셨지요. 그때마다 저는 툴툴거리시면서 "엄마 때문에 내가 못살아. 이런 것도 엄마가 하는 노력을 해야지. 요즘은 90 되신 어르신들도 혼자 병원이고 은행 볼일도 잘 보시던데, 엄마는 나만 부려 먹어." ’너도 나이 먹어봐라. 숫자도 다 그게 그거로 보이고 글씨는 작어서 뭔 소리인지도 모르고, 그래서 부탁하는 건데 그렇게 생색을 내냐. 더럽고 치사해서 다음부턴 너 안 부른다." 하시곤 가까이 살다보니 엄마의 잔심부름에서부터 은행 볼일 등을 도맡아 하게 됩니다 그래도 생전 처음 엄마가 은행에 가서 서툰 솜씨로 계좌번호를 적고 당신의 이름을 꾹꾹 눌러서 보내주신 그 용돈은 절대로 허투루 쓰지 않겠다고 다짐을 한 아주 값진 날이기도 했답니다.















2022/01/25 <내 삶의 길목에서>

Jan 25 2022 4 mins  

오랜만에 친정집엘 갔습니다. 신발을 벗기도 전에 ‘들어오기 전에 이거 차에다 실어놔.’ 참기름, 들기름, 호박고구마, 조청, 그리고 갓김치까지 언제 싸놓으셨는지 짐 보따리가 바리바리 현관 앞에 있습니다. ‘엄마, 이따 집에 갈 때 챙기면 되지. 꼭 오자마자 짐을 실으라고 그래요.’ 괜히 미안하고 고마워서 볼멘소리를 하면 ‘얘, 내가 니들처럼 기억이 쌩쌩하면 안 그러지. 우리 딸 챙겨줘야지 그랬다가도 니들 가고나면 아이고 또 깜빡했네. 그러니 생각났을 때 챙겨줘야지.’ 그렇게 양손가득 엄마 표 먹 거리를 차에 옮겨 싣고 그제 서야 손 씻고, 밥을 먹으려는데 아빠가 평소와 달리 계속 누워만 계십니다. ‘아빠..어디 아프세요? 저번보다 얼굴색도 안 좋으신 거 같고..’ ‘어지러워서 그랴..날이 추워져 그런 가 자꾸 어지럽다.’ 우리가 가면 사위랑 약주를 주거니 받거니 하시던 분이 술은 입에도 대지 않으시고, 특히 겨울이면 손수 만드신 연을 꺼내 손녀딸과 연날리기를 하던 분이신데 그것 또한 어지럽다며 하지 않으셨습니다. 무슨 큰 병이라도 있으신 게 아닐까 걱정을 하는데, ‘요 며칠 비닐하우스 만든다고 일을 해서 몸살인가보다. 약 먹었으니 낫 겄지.’ 하시는 아빠. 그로부터 일주일 뒤..엄마의 전화를 받고 부랴부랴 친정엘 갔습니다. 아빠가 가만히 서있는 것도 힘들어 하신다는 말에 큰 병원에 모시고 갔습니다. 녹내장이었습니다. ‘평소 많이 어지러우셨을텐데..눈도 많이 불편하셨을 테고.. 모르셨어요?’ 생각해보니 몇 달 전 생신 때도 눈이 침침하다고 안약을 수시로 넣으셨고, 운전대도 못 잡겠다. 라는 말씀도 자주 하셨던 게 기억이 났습니다. 다행히 초기라 약 잘 먹고, 정기검진으로 꼭 진행상황을 체크하기로 했습니다. 아빠모시고 오는 길 소고기도 넉넉히 사고 아빠 잘 드시는 귤도 세 박스 넉넉히 사두었고 눈에 좋다는 영양제도 사왔습니다. ‘아빠, 다음번 예약날짜 맞춰서 저랑 꼭 가야해요. 엄마, 아빠 약 잘 챙겨드리고..’ 집으로 돌아오니 딸아이가 할머니 댁 가면 드린다고 숨은그림찾기, 틀린 그림 찾기, 책을 가져왔습니다. ‘이게 기억력을 좋게 해준데요. 할머니, 할아버지 아프면 안 되잖아.’ 코끝이 찡했습니다. 나를 부족함 없이 키워 주셨 듯 나 또한 부모님의 노년의 삶에 꽃길이 되 드리고 싶습니다.








2022/01/22 <땅콩호박>

Jan 23 2022 4 mins  

땅콩호박씨를 작은 바구니에 받아서 통 유리창 앞에 올려놨는데, 둘째 손녀가 우리 집에 왔습니다. 영어유치원에서 배웠다며 혀 고부라진 발음으로 노래하며 집안을 돌아다니다 호박씨를 보고는 “할머니, 왜 이렇게 호박씨가 많아요? 제가 집에 갈 때 호박씨 3개만 갖고 가고 싶어요.” 손녀가 제집으로 간 뒤 청소를 하다 보니, 재봉틀 옆에 호박씨 3개가 가지런히 놓여 있습니다. 피식 웃음이 번집니다. 내년 봄, 농장에 가서 심어보라고 해야겠다 싶습니다. 자신이 심은 씨앗에서 싹이 트고 잎사귀가 나와 꽃피고 열매 맺는 것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나는 초보 농사꾼입니다. 어느 날부터인가 경험이 많은 분이 유튜브에서 농사가 잘되게 하는 노하우를 공유하길 레 그분을 찾아갔습니다. 커다란 비닐하우스에 각종 모종이 싱그럽게 자라고 있었습니다. 농장에 심을 갖가지 모종을 고르는데, 땅콩호박은 무 농약으로 키울 수 있고 풀과의 전쟁에서도 잘 자란다며 심어보라고 합니다. 산비탈에 퇴비를 듬뿍 넣고 땅콩호박 모종 3개를 심었습니다. 기온이 올라가면서 줄기가 쭉쭉 뻗어 나가더니, 솜털이 보송한 땅콩 모양의 예쁜 호박이 일주일 사이에 여기저기서 달렸습니다. 이런 저런 반찬을 만들고 정월대보름 때 나물하려고 말려도 놓았습니다. 서리가 내린 뒤, 풀들이 고개를 숙이고 나니, 숨어있던 늙은 호박이 꽤 많이 나타났습니다. 지인들께 나눔하고도 현관 앞에 수북이 쌓였습니다. 토종 맷돌호박과 동이호박은 너무 커서 껍질을 벗기고 추스르기가 힘이 많이 드는데 땅콩호박은 크기가 작아서 한번 먹기에도 적당하고, 죽을 끓여도 맛있습니다. 문득 신품종인 땅콩호박의 원산지가 어디인지 궁금하여 검색해 보니 땅콩 모양을 닮아서 붙여진 이름이고, 미국이 원산지로 국내에서는 2013년 전남 무안군에서 첫 재배에 성공했다고 하는데, 요즈음 대형마트에 가면 가끔 눈에 띕니다. 날씨가 스산해서 그런지 마음이 허허로워 땅콩호박에 찹쌀가루와 밤을 넣고 끓이다가 달콤한 홍시를 넣었더니, 별미입니다. 받아놓은 씨앗을 잘 보관했다가 고향에 가서 나눔도 해야겠습니다.





















2022/01/14 <사랑한다고 말해요>

Jan 16 2022 3 mins  

얼마 전 새벽에 갑자기 응급실에 가게 됐습니다. 위에 갑작스런 출혈로 쇼크가 일어나 순식간에 의식이 흐려지며 벌어진 상황이었습니다. 각종 검사와 필요한 처치를 받는 동안 응급실에서의 시간. 순식간에 몸에 각종 장비와 링거, 수혈에 필요한 줄들이 달렸고 몸조차 쉽게 가눌 수 없는 처지가 되고 7시간 뒤, 입원실로 옮겨지는데 아내는 병실 안으로는 동행이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그로부터 며칠간은 식사는 물론 물도 마실 수 없는 상황에 여전히 많은 링거를 몸에 달고 있어야 했고 30분마다 체온과 혈압 혈당 측정이 이뤄지는 탓에 잠도 제대로 이룰 수 없었습니다. 옆 침대에 계신 분은 가벼운 증상에 병원에 왔다가 졸지에 3기 암 진단을 받았다고 하고, 삶이 다 한 것 같다며 한탄하시는 할아버지의 좌절도 들어야 했고, 어린 학생이 갑작스런 발병으로 들어와 시험을 걱정하기도 했습니다. 미뤄뒀던 일에 대한 아쉬움들, 가족들과 미처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 게으름에 만나보지 못했던 사람들에 대한 미련과 후회들에 생각이 많아진 시간이었습니다. 다행히 지금은 상태가 많이 호전되어 집에 와 있는데 퇴원한 저를 보며 아내는 아무렇지 않은 듯 웃고 있지만, 병원에 오던 날, 119에 전화를 거는 아내의 손이 떨리는 것을 보았고, 딸들 역시 무뚝뚝해도 밤 12시가 넘어 귀여운 이모티콘과 함께 보내온 안부 문자를 기억합니다. 흘러가는 시간과 들어가는 나이와 약해지는 몸이야 어쩔 수 없다지만 그 시간들을 어떻게 채워갈지는 얼마든지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 질수 있다는 것도 생각해 본 시간이었습니다.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과 나누는 밥 한 그릇, 차 한 잔, 전화 한통, 문자 한 줄, 그리고 대화 몇 마디가 정말 소중한 것임을 깨닫는 시간이었습니다. 애쓰신 일산 백병원 내과병동 간호사님들께 감사드리며 화이팅 하세요!!


































2021/12/31 <타인에게 미움 받는 일곱 가지 유형>

Jan 02 2022 3 mins  

직장에서 민망한 일이 있었습니다. 연속 5일 조퇴를 결재하는 과정에서 상사와 직원 간에 갈등이 생긴 겁니다. 규정상 쓸 수 있는 권리를 왜 못하게 하냐고 항의하는 직원과 업무상 하루 이틀이라도 줄이라는 상사의 의견이 충돌한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언성을 높이다 보니 민망했습니다. 아무 말 없이 결재를 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보다는 같은 말을 해도 좀 더 겸양의 미덕을 갖고 설득 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결국 마음대로 하라는 상사 말씀에 직원은 조퇴를 했고, 그리고는 부서 단 톡 방에 의기양양하게 자신이 상사에게 굴하지 않고 조퇴를 강행한 사연을 구구절절이 올렸습니다. 아무도 댓글을 달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그 과정을 지켜본 동료들의 마음이 한 가지였나 봅니다. 이런 상황을 보면서 최근 책에서 본 글귀가 떠올랐습니다. 논어 양화 편에는 타인에게 미움 받는 일곱 가지 유형을 소개하고 있는데.. 타인의 나쁜 점을 들춰내는 사람, 낮은 자리에 있으면서 윗사람을 비방하는 사람, 용감하지만 무례한 사람, 과감하지만 융통성이 없는 사람, 자기의 편견을 내세우며 지혜롭다고 여기는 사람, 불손한 짓을 가지고 용감하다고 여기는 사람, 혹독한 말로 남을 공격하는 사람, 사람들은 이런 사람을 미워한다는 것입니다. 저 역시 몇 가지 해당되는 점이 있었습니다. 저의 편견을 지혜라고 여기고, 윗사람을 비방하고, 타인의 나쁜 점을 들춰냈던 기억들이 떠올라 부끄러웠습니다. 동료는 불손한 것을 용감하다고 여기는 듯 했습니다. 규정에 있으니까, 자신은 정당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람과 사람의 일이 꼭 그렇지만은 않은 걸 우리는 잘 알고 있지요. 타인에게 미움 받지 않고 내가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일류라는 생각이 듭니다. 타인의 오점을 보며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는 자세가 필요함을 배운 하루였습니다.








2021/12/28 <반가운 연하장 >

Dec 28 2021 3 mins  

외출했다 들어오는데 우편함에 두툼한 우편물이 꽂혀 있습니다. 역시나 였습니다. 94세 되신 시이모님께서 보낸 연하장이었습니다. 요즘 연하장은 SNS로 주고받아 실제로 받기는 쉽지 않은데 저는 해마다 받는 반가운 선물입니다. 화선지를 잘라서 이모님 표 연하장을 만들어 글과 그림을 그리고 우리 가족 수 대로 만든 봉투에 이름을 썼습니다. 그리고 화선지 여러 장에 사군자 그림을 그려 동봉했습니다. 8년 째 연하장과 그림을 거실 장식장 서랍에 차곡차곡 모아 두고 있는데, 10년 모아지면 이모님께 보여 드리려고 합니다. 이모부와 사별하고 70세 때 서예와 그림을 배우셨는데 24년을 쉬지 않고 쓰고 그리면서 건강하게 지내십니다. 평소 돈 십 원을 아끼는 분이시라 화선지를 연하장 크기로 자르고, 봉투는 색이 다른 화선지를 잘라 만드는데 한결같이 이모님만이 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謹賀新年. 새해에는 건강하고 하는 일 잘 되기 바란다. 謹賀新年. 가족 건강 책임지는 집안 의사 많이 웃기 바란다. 謹賀新年. 직장 일로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말고 명상을 자주 하기 바란다. 謹賀新年. 학업 성취하면서 놀기도 하면서 즐거운 일이 많기 바란다.’ 일일이 식구들에게 덕담으로 한 글자씩 정성을 들여 붓글씨로 유창하게 쓰셨습니다. 우리에게만 보내는 게 아니라 친정 조카들에게도 다 보냅니다. 여름철에는 부채를 사서 글과 그림을 그려 주위에 나눠 주시는데 뒷방 노인네가 세상에 진 빚이 많아 빚을 갚는 일이라고 하십니다. 산전수전 세균전까지 겪으며 이렇게 오래 살 줄 몰랐다는 시이모님. 일제치하, 해방, 6,25, 피난, 1,4,후퇴, 4,19. 5,16까지 많은 일들을 겪으신 시이모님. 뿌리가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고 하는데 90이 넘은 연세에 세상일 다 잊고 당신의 본분에 충실하게 전념하며 지내시는 모습은 저희들에게 귀감이 됩니다. 시이모님, 내년 설에 찾아뵙겠습니다. 항상 건강하십시오. 감사합니다.











2021/12/24 <초등학교 크리스마스의 추억>

Dec 26 2021 3 mins  

1970년대, 80년대엔 서울의 주택가라고 하면 거의 단독주택들이었죠. 단독주택 대문엔 커다란 새 집 같은 우편함이 하나씩 달려있었는데, 크리스마스 직전에 볼 수 있는 특별한 풍경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평소에 친했던 학교 친구들이나, 동네친구들에게 직접 만든 100% 수제 크리스마스카드와 간단한 선물들을 만들어 친구들 집 우체통에 몰래 꽂아놓고 가는 것이었습니다. 타이밍이 중요했는데, 저는 주로 평일 저녁식사 시간을 이용했습니다. 지금은 맡기 힘든 냄새지만, 그 당시 저녁시간에 주택가 골목길에만 나오면, 온 동네에서 김치찌개, 된장찌개, 두부간장조림 냄새 같은 맛있는 음식냄새가 진동을 했습니다. 간혹 같은 반 여학생들이 저희 집 우체통에 크리스마스카드를 꽂아놓고 가는 일이 있었는데, 그럴 때면 마구 마음이 들뜨고 설렜죠. 남자친구들이 그냥 의무적으로 성의 없이 '안녕, **야 메리크리스마스' 이렇게 한줄 간단히 쓰고 만든 카드가 대부분이었다면 여자 친구들이 만든 카드는 뭔가 특별한 감상적인 시 구절 같은 글귀와 산타할아버지와 썰매 끄는 그림들을 일일이 붓으로 그려 넣었던 기억이 납니다. 한눈에 봐도 뭐랄까.. 수준차이가 많이 났습니다. 심지어 같은 반 어느 여자 친구가 저희 집 우체통에 넣고 간 카드엔 비누향기 같은 좋은 향기도 배어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런 특별한 크리스마스카드들은 예쁜 향기냄새 까지 그대로 보존하기위해 비닐봉투와 테잎으로 밀봉해 보물단지 같은 박스에 소중히 보관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당시 겨울엔 함박눈도 많이 내려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는 적도 심심찮게 있었고, 심지어 서울의 주택가 골목길에서도 나무판자로 썰매를 만들어 타기도할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함박눈이 내리던 저녁에 남대문 시장에서 사온 크리스마스트리 전구에 불을 켜고, 크리스마스 캐롤을 전축에 레코드로 들으면 그렇게 환상적이고 좋았습니다. 그때의 크리스마스의 추억을 아직까지 하나도 잊지 않고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있는걸 보면 순수하고 예뻤던 어린 시절의 추억이었기 때문이겠죠.













2021/12/19 <내 삶의 길목에서 >

Dec 20 2021 3 mins  

우리 집에 와서 좀 쉬고 가시라 해도 여든의 촌로가 뭐가 그리 바쁘신 지 미루고 미루다 드디어 올라오셨습니다. 집에 오셔도 딸, 사위 그리고 손녀들이 좋아하는 음식 해 주기 바쁘십니다. 하지만 이번은 달랐습니다. 대학생 딸들이 할머니랑 전화로 대화를 하면서 할머니가 좋아하시는 것을 알았다고 합니다. “엄마, 할머니 예쁜 카페에서 맛난 커피 마시고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에서 식사하시는 거 좋아하신대요. 친구들이랑 카페 가시면 3시간 이상도 앉아계실 수 있다 네요.” 딸들의 말에, “무슨 시골 할 매가 카페를 가셔. 주문 할 줄도 모르실 텐데” 했습니다. 그리곤, 딸들에게 할머니를 책임지게끔 하고 출근을 했습니다. 점심시간이 지나자 몇 장의 사진과 함께 카톡이 왔습니다. 보라색 방울이 달린 모자를 쓴 엄마가 환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딸들이 사드리려 하는데 괜찮은지 물어보았습니다. 할머니 비슷한 모자 있어서 사지 말라 했더니 할머니 왈, ‘그것은 오래돼서 못쓴다.’ 엄마의 한마디에 빵 터졌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날아 온 사진 한 장, 아까 산 모자를 쓰고 커피를 마시는 엄마의 모습이었습니다. 엄마의 사진을 확대해 얼굴을 찬찬히 보았습니다. 가난했던 시절, 모든 세상 풍파 다 이겨내신 삶의 흔적이 주름 하나하나에 새겨져 있었습니다. 아! 그동안 몰라봤네요. 환하게 웃는 엄마의 모습 속에서 연세를 드셔도 예쁜 것을 좋아하는 어쩔 수 없는 여인의 모습을.. 엄마가 마음 편히 예쁜 카페를 즐기고 맛난 커피를 즐기시는 모습을 보면서 참 좋았습니다. 그리고 딸들에게 고마웠습니다. 퇴근 하고 돌아가니 딸들이 말합니다. “엄마, 할머니 이야기 하는 거 정말 좋아하세요. 얼마나 재미있던지, 정말 친구 분들이랑 3시간은 너끈히 앉아 계시겠더라구요. 그리고 동네 할머니랑 올라오시기 전에 말다툼하셨는데 그 분 아니면 친구가 없어서 내려가시면 화해하실 거래요. 할머니 너무 귀여우셔요.” 저녁, 엄마의 얼굴에 마스크 팩을 해 드리며 오늘, 엄마는 아마도 청춘의 손녀들과 엄마의 청춘의 시간을 보내시지 않으셨을까 싶습니다.






2021/12/17 <내 삶의 길목에서..>

Dec 20 2021 3 mins  

직장을 잃고, 시골로 내려갔습니다. "너는 실패 했어." 라고, 말하는 도시의 생활은, 수많은 생각에 잠기게 할 것 같아서, 무작정 시골 할머니 댁으로 내려갔습니다. 할머니가 계신 시골은 분주해서 다행이었습니다. 오전엔 탐스럽게 잘 익은 석류를 따서 석류 청을 만들고, 오후엔 알 타리 무를 뽑아 김치를 담그니, 둥근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니 그림 같아 아~ 하고 탄식하자, 할머니는 "우리손녀, 해 지는 것만 봐도 울컥하는 겨? 시골 풍경은 눈에 걸리는 게 하나도 없이 다 흡수되었다가, 마음에서 탁~하고 걸려 버리는 디...,그때마다 울컥울컥하면 큰일이네.." 다음 날은 할머니와 고구마 밭에 가서, 열심히 호미질을 했습니다. 열심히 땅을 파면, 고구마가 고운 자태를 내보였습니다. 소쿠리에 담아 와서, 아궁이에 던져 넣으면, 새참거리 군고구마가 되죠. 나쁜 생각을 할 틈이 없을 정도로, 시골은 바빴습니다. 구멍 난 창호지를 뜯어내고, 새로운 창호지를 바르고 뽁뽁 이도 붙였습니다. 백구집도 헌 담요 버리고, 따스한 담요를 바닥에 깔아줬습니다. 아궁이에 넣을 장작을 패서, 부엌 한쪽에 가지런히 쌓고... 까치밥 할 감을 몇 개 남겨두고, 감을 예쁘게 깎아 처마에 대롱대롱 매달아 놓으니, 눈이 호강입니다. 산골에서의 겨울나기가 두렵기도 하지만, 긴긴 겨울, 이 시기가 내 인생에서, 맘 놓고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일 것 같아, 중고 책도 잔뜩 사들였습니다. 할머니는 "시방 여기에 서점 차렸어? 나도 여기서 커피 한 잔 하면서 책 읽어도 되는 겨?" 하십니다. 다음 날, 할머니는, 내 몫의 털신을 사 오셔서 툇마루에 올려놓으며 "이왕 여기서 겨울을 보낼 거....나랑 추억이나 만들어 보자 구! 고생은 100% 장담하는데, 그래도 살아가는데 힘이 되고 추억이 될 껴...." 벽에선 한기가 흘러나오고, 화장실은 저 멀리 밖에 있으니...현실상황은 꽝일지 몰라도...그 불편함을 겪어내고 내년 봄이 되면, 나는 더 단단해지고, 더 슬기로워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2021/11/30 <연극을 보고난 후..>

Nov 30 2021 3 mins  

매년 연말이면 우리 부부가 연극을 보러 갔었는데 코로나로 인해, 2년간의 비대면 공연으로, 연말 분위기를 제대로 낼 수가 없었지요. 그래도 요즘 위드코로나 라 그런지 가까운 공연장에서 마침 연극을 공연하길 래 결혼기념일 선물로 같이 가기로 햇습니다. 주말에 오래 만에 잔뜩 멋을 부리고, 남편이랑 외출을 했습니다. 집에서 10분 거리라, 가까워서 좋더라구요. 예전엔 전철을 타고 1시간을 넘게 걸려서 공연장으로 외출을 했었는데 말이죠. 오래 만에 하는 공연이라 그런지, 공연장 입구는 연극을 보러온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체온측정과 QR체크를 하고, 극장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관객석은 거리두기가 철저하게 지켜져서, 좌석은 두 자리씩 띄어 앉았습니다. 노년의 나이임에도 배우 두 분의 열정이 무대 위를 가득 채웠습니다. 2시간의 기나긴 시간동안, 그 긴 대사를 젊은 배우 못지않게 전달하는 두 분의 열정을 보면서,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학창시절에 만나서, 평생을 함께해 온 부부가 이제 늙어서, 남편은 치매에 걸려 가족모두를 아무도 못 알아보게 됩니다. 그렇게 사랑하는 아내조차도 알아보지 못해, 가족들이 아버지를 위해서 연극을 하게 됩니다. 말기 암에 걸린 아내까지 함께 남편이 운영하는 슈퍼 옆에 꽃집을 차려놓고 매일 남편과 마주하면서, 새로운 만남을 가져가게 됩니다. 그렇게 슬픈 이야기가 전개되는 연극을 보고난 후, 저도 남편의 눈가도 어느새 촉촉이 젖어왔습니다. 평생을 자식들을 위해 헌신해왔는데...나이가 들어, 치매와 암에 걸려서 말년을 슬프게 마무리하게 되다니...모든 중년의 부부들이 공감하게 되는 이야기. 어쩌면 미래의 우리 부부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 하루였습니다.




















2021/11/22 <풍성한 가을>

Nov 22 2021 4 mins  

황금빛으로 물들인 들녘에서 콤바인이 벼를 쓱쓱 베자마자 알곡이 순식간에 큰 마대 에 담깁니다. 27년 전, 서유럽 여행할 때, 기계로 밀을 수확하는 장면을 보면서 우리나라는 언제 저런 기계로 농사를 지을까 부러웠는데 그게 현실이 되어 작은 농촌에서도 기계로 추수하는 모습을 보니, 어린 시절, 벼 타작하는 날이 생각 납니다. 이른 새벽부터 가마솥에 푹 고은 해장국 냄새가 코를 자극하고, 나무통에 담긴 막걸리가 배달됩니다. 일꾼들은 아침 식사를 마치자마자 타작하는 큰 마당에 모이고 탈곡기 여러 대가 ‘와룽와룽’ 돌아가면 볏단을 나르는 사람, 페달을 밟는 사람. 볏단을 탈곡기에 들이대는 사람. 벼를 가마니에 담아 창고로 나르는 사람, 박자가 척척 맞았지요. 큰 가마솥에 한가득 잔치국수, 마른오징어 넣은 뭇국, 숭덩숭덩 무를 넣은 생태찌개, 시원한 동치미에 맛깔스러운 배추겉절이···. 그리고 큰 가마솥에 지은 따끈한 햅쌀밥.’ 마당에 멍석 깔아놓고 동네 남녀노소 어찌나 맛있게 먹었는지요.. 미국의 원조를 받은 강냉이 가루로 허기를 채우던 시절, 늘 궁핍했고 곤고했던 시절이었지만, 마음만은 그 어느 때 보다 따뜻했다 싶습니다. 여러 날에 걸쳐 탈곡을 끝내면 일꾼들에게 품삯을 줍니다. 아버지는 행정서사를 했기 때문에 농사와 무관했고, 그 많은 일을 관리하고 일꾼들 식사 손수 해 대느라 엄마가 늘 동동걸음쳤습니다. 그때는 엄마들이 다 그렇게 사는 줄 알았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겨울에는 손등이 트고 농번기에는 손톱이 자랄 사이 없이 일에 매달렸던 것 같아 가슴이 먹먹합니다. 임금은 점점 올라가고 젊은이들이 도시로 떠나고, 농사를 짓는 재미도 보람도 없다하시는데 농토라도 좀 팔아서 부모님이 노후를 여유 있게 사셨으면 좋으련만, 땅은 절대로 팔 수 없다며 목숨 같이 여기십니다. 오랜만에 가을 들녘을 걸어보았습니다. 누런 황금 들녘이 바라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뿌듯해집니다.


















2021/11/15 <일병 아들을 기다리며>

Nov 15 2021 3 mins  

초밥, 삼겹살, 묵은 지 김치 찜, 조기구이, 진미 채 볶음, 계란말이, 어묵볶음, 소고기장조림, 부대찌개, 미역국, 돈가스, 로제파스타, 또 뭐가 있지? 열심히 메모하고 있는 데 남편이 한소리 합니다. “참 꿈도 야무지세요. 이걸 다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하루 저녁 같이 먹으면 잘 먹을 걸.” 지난 5월 해병대 입대한 작은아이가 오늘 휴가 나옵니다. 11박 12일. 얼마나 기다리던 휴가인지 벌써부터 마음이 두근두근했습니다. 눈물 글썽이며 입대하던 아이가, 어떻게 변해있을지...휴가 나오면 쓰라고 예쁜 모자도 하나 사다 놓고, 아이가 덮을 가을 이불도 하나 사서 빨아 놓고, 아이 방을 청소하고, 옷장을 정리하는데 그렇게 한 계절이 훌쩍 지났다 생각하니 눈물이 나더라고요. 21살 아이가 스스로 해병대 입대를 결정하고, 그렇게 힘들다는 해병대 훈련도 잘 견디고, 건강하게 수료식을 하고, 실무배치를 받았습니다. 코로나로 수료식에 참석 못하고 국방부 유튜브로 봤는데, 옷을 똑같이 입고 마스크를 써서 그런지 우리 아들은 찾지 못했지만, 모두 내 아들 같은 마음에 또 울컥 눈물이 났습니다. 훈련소에 있는 동안 손 편지도 6통이나 쓰고, 걱정할까봐 이틀에 한 번 전화해 주는 아들, 요즘 군 생활이 편해졌다고 해도 힘든 일 많을 텐데, 선임들이 다 잘해준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합니다. 군에서 토익도 공부하고 중장비 가격증도 접수했다고 합니다. 엄마 아프지 말고 걷기 운동하라고 하네요. 남편은 학벌 나이 빈부차이 없이 모두 한 식판에서 밥 먹을 수 있는 건 군대뿐이라고, 당연한 거에 의미두지 말라고 하는데, 전 21살 아이가 자랑스럽고 고맙기만 합니다. 입대하기 전에 마늘을 두 접이나 까주고 갔는데, 그 마늘장아찌가 아삭아삭 맛있어서, 아이 주려고 마늘장아찌도 해 놓았습니다. 일병 김경민, 휴가 환영한다. 필승!





2021/11/13 <신사복>

Nov 15 2021 3 mins  

옷장 속에서 주인을 잃은 듯한 정장 옷들이 축 늘어져있습니다. 나란히 줄 맞추어 캄캄한 곳에 갇혀있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남편의 활기 넘치던 젊은 시절이 생각납니다. 한 주 동안 입을 바지를 칼날 세우듯 다림질하고, 양복 윗도리와 와이셔츠도 주름 없이 쫙 펴고, 손수건도 각을 맞추어 다려 놓았죠. 이른 아침, 남편이 그 옷을 입고 출근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곤 했습니다. 대부분 감색 계통의 양복을 입었기에 와이셔츠의 색상이 한정되어 있었는데 어느 날, 백화점에서 청색 바탕에 흰 줄무늬가 있는 셔츠를 사 왔습니다. 어색한지 안 입겠다고 하는데 이런 저런 말로 하니 다행히 그 셔츠를 입고 출근했습니다. 그런데 세련되고 예쁘다며 여비서가 엄지 척 했답니다. 그리곤 그 셔츠만 줄 창 입고 다니더니, 목 부분이 날름날름해졌습니다. 넥타이도 많습니다. 그중에 자주 매고 다니던 넥타이가 목이 닿은 곳이 퇴색되어 있데 젊은 날에 왜 더 멋진 양복과 넥타이를 사서 입히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스러움도 밀려옵니다. 만약에 또다시 어딘가에 출근하게 된다면 누구 못지않게 옷을 잘 갖추어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런데 이젠 기회가 없을 것으로 판단하고 정장 몇 벌만 남기고 옷을 정리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혹시나 하고 차일피일 미루었죠. 퇴직 후, 자연과 더불어 흙에서 살고 싶다며 허름한 옷만 입고 도시와 농촌에 왔다 갔다 하는데 시골 생활에 적응이 잘 안 되는 기색입니다. 집에서 종일 속옷 차림으로 인터넷 바둑을 두며 시간을 보내는데, 취미를 찾아 활동했으면 좋으련만 아무것도 하기 싫다고 하네요. 초췌한 몰골을 옆에서 지켜보는 나도 답답하지만, 대놓고 눈치를 줄 수도 없었습니다. 그럭저럭 퇴직 후 3년. 엊그제, 모임에 나갔던 남편이 돌아오더니, 뜬금없이 “나는 계속 놀고 싶은데, 나를 내버려 두질 않네. 주 2회 출근해서 재능 기부하기로 했어. 양복 챙겨 놔.” 옷장을 활짝 열고 양복을 말끔히 손질하는데, 늙지도 젊지도 않은 나이, 딱 10년만 젊은 시절로 되돌릴 수는 없을까.’ 싶습니다. 오랜만에 정장 입고 출근하는 남편이 유난히 멋져 보였습니다.




2021/11/12 <고구마 수확>

Nov 15 2021 3 mins  

고향으로 고구마 수확하러 나섰습니다. 5월 초 고구마 줄기를 안산황토밭에 심은 후, 알맞게 비가 내려 뿌리가 잘 내렸는데 삼복더위 때는 가물어서 고구마 줄기가 누렇게 타들어 가고, 잡풀만 무성히 자라 밭 상태가 자연에 가까웠습니다. 가끔 가서 물을 주고 풀도 뽑아주면 좋겠지만, 그럴만한 형편이 안 되었습니다. 다행히도 9월 초부터 늦장마가 와서 잎사귀가 푸르스름해졌습니다. 덩굴을 걷어내고 비닐을 벗겼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호미질을 해봐도, 고구마가 안 보입니다.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하나도 없지는 않을 텐데 하고는 뿌리 끝까지 파 들어가 보았습니다. “고구마가 있었습니다.” 땅속 깊숙한 곳에 고구마가 옹골지게 달려 있었습니다. 오두막 아궁이에 구웠더니 맛도 일품입니다. 온종일 고구마 구출 작전을 펼친 탓인지, 저녁에는 몸이 제대로 말을 듣지 않았지만 다행히도 하룻저녁 정신없이 자고 나니 몸이 부드러워졌습니다. 하늘의 기운, 땅의 기운, 사람의 노력이 합해져야 좋은 결실이 있기 마련인가 봅니다. 어린 시절, 우리 바위배기산속에 고구마 농사를 짓던 생각이 떠오릅니다. 소 쟁기질을 해놓고 비가 오고 나면, 고구마 줄기를 심었죠. 그리고 가물으면 엄마가 주전자에 물을 받아서 산을 오르내리며, 고구마 뿌리가 자리 잡을 때까지 정성을 들이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온도에 민감한 고구마는 큰 드럼통을 여러 개 방안에 놓고서 보관했습니다. 고구마엿도 만들고 간식거리로도 제격이었죠. 요즘 은 먹을거리가 다양하지만, 지금도 훌륭한 간식거리임은 틀림없지요. 돌아가신지 세월이 많이 흘렀건만, 여태껏 친척과 지인들이 고구마 하면, 손끝이 야문 우리 엄마가 기른 고구마가 제일 맛있었다고들 합니다. 내가 요번에 수확한 고구마는 같은 환경인데도 천차만별입니다. ‘땅속 일을 알 수가 있나. 고구마 덩굴만 무성하게 키우면 되는 줄 알았는데 겉치레만 하고는 채울 수 없다는 사실이 사람의 일과 무엇이 다를까 싶습니다. 온갖 정성을 들여야 농사일도 사람의 일도 좋은 결과가 있는 가 봅니다.



2021/11/11 <가을 길..그리고..>

Nov 11 2021 3 mins  

저녁을 먹고 나니 더딘 몸이 자꾸만 아래로 아래로 쳐지고, 안되겠다 싶어 큰아이와 아파트 앞, 산책로로 나갔습니다. 제법 날씨가 차갑게 느껴지고, 언제 피었는지 모를 코스모스도 듬성듬성 벌써 지고 있었습니다. "어머~ 코스모스가 벌써 지고 있네. 조금 일찍 나와 볼걸...이쁘다~~" "그러게 운동 같이 나오자고 했잖아요.." 나의 게으름이 후회가 될 정도로 하늘거리는 코스모스가 나의 발걸음을 붙듭니다. "엄마!! 저것 보세요. 노을이 정말 예뻐요~~" 멀리 산등성이에 걸린 노을이 온통 주변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습니다. 산책로 옆에 흐르는 시냇물위에 세상에서 가장 멋진 자연의 물 그림이 그려지고, 냇가 옆에는 솜사탕 같은 억세 풀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아~~가을아!! 정말 이래도 되는 거니..이렇게 아름다우면 어쩌란 거니.." 나도 모르게 탄성이 나오고, 딸아이는 어느 사이 저만의 사진 찍기에 몰두합니다. 저만치에 백발의 할아버지 한분이 노을을 한참이나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그 옆을 지나치는데 몸을 돌려 나를 보시더니 "안녕하세요?" 하십니다. 나는 뒤를 돌아다보았습니다. 누가 있나? 하고, 처음보는데...예전 같았으면..고개라도 갸우뚱 했을 텐데..나도 모르게 "아, 네 안녕 하세요~" 할아버지를 지나치니 허리가 굽은 할머니 한분이 귀여운 푸들을 데리고 걸어오고 계셨습니다. 땅만 보며 무표정한 할머니께 이번엔 내가 먼저 "안녕하세요~어머나!!! 강아지가 너무 귀여운데요.." 그제 서야 할머님 얼굴에 스마일이 그려지며 "고마워요~~ 낯선 사람한텐 가끔 짖기도 하는데..오늘은 안 그래서 다니기가 쉽구랴~~" 할머니와 강아지와 헤어지고 나니 딸아이가 뛰어와서 "엄마! 아시는 분이세요??" 합니다. "아니..오늘 처음 보는 분들인데.." "그런데, 그렇게 반갑게 인사를 하고, 오래 얘기를 나누세요?" "이젠 나이가 들고 보니, 다들 네, 할아버지..할머니 같이 느껴지고 좋더라..." 큰아이가 다가와 내 빈손에 자신의 손을 포개어 깍지를 끼며 어깨에 기대며 웃네요. 가을 길.... 바스락..낙엽 밟는 소리도 가을이 속삭이듯 들려주는 동화 같았고, 그 가을 속에서 가슴 따뜻한 사람들의 보석 같은 미소를 본 하루였습니다.
















2021/11/05 <아들의 여자친구>

Nov 07 2021 3 mins  

저희 집 큰아이는 올 해 27입니다. 취업을 해서 직장 근처 방을 얻어 주고, 집으로 오는 작년 아내는 차 안에서 한참을 울더라고요. 밥을 잘 먹을지, 빨래는 잘 할지, 혼자서 어찌 사냐고, 한동안은 잠을 잘 못 잤습니다. 다행히도 큰아이는 그런 아내 마음을 하는지, 시간이 나면 톡하고 전화하고, 점심에 뭐 먹었는지, 저녁에 도시락 사와서 먹은 거나 친구가 놀러 와서 한 잔 하고 있는 사진을 보내주곤 해서, 아내의 걱정은 줄어 들에 되었습니다. 주말에는 꼭 집에 와서 시간을 보내고, 아내가 해 준 반찬들을 챙겨서 가곤 했는데, 지난봄부터는 한 주를 쉬는 날이 생겼습니다. 전 아이에게 여자 친구가 생겼구나 생각을 했는데, 아내는 아이가 피곤하다는 말을 그대로 믿었는지, 홍삼을 주문했습니다. 집에 와서 홍삼에 고기반찬에 영양제를 챙겨 주는 아내에게 큰아이는 여자 친구 생겼다고 얘기를 합니다. 아내는 잠시 멍했고, 전 그런 아내를 보면서 "그럼 여자 친구도 사귀고 그래야지." 했습니다. 큰아이는 아내와 참 비슷합니다. 좋아하는 드라마나 음악 취향도 같고, 식성도 비슷하고,. 아내가 좋아하는 것도 알아서 월급 받았다고 아내 신발도 사주고, 스카프도 사주고 아내와 전시회도 같이 가는 저보다 훨씬 다정한 아들입니다. 지난 토요일 전 회사에 출근을 하게 되었는데, 큰아이가 여자 친구와 집 가까운 곳에 놀러 온다고 하니 아내는 점심 먹으러 집으로 오라고 불렀나봅니다. 그렇게 큰아이는 여자 친구와 점심을 먹고 갔습니다. 퇴근하니, 아내가 쪼르르 따라와서 보고를 합니다. "여보, 26살이라는데 애기 같애. 어머니 어머니, 하고 부르는데, 난 왜 이렇게 가슴이 벅차지? 근데 넘 예쁘더라, 웃는 것도 예쁘고 말하는 것도 예쁘고, 좋은 인연으로 잘 만나라고 했더니 ‘예,’ 하더라고." 아내는 큰아이의 여자 친구가 쏙 마음에 드는 모양입니다. "당신도 26살 때 예뻤어." 하니, 아내가 "맞아, 나도 예뻤는데, 그렇게 얘기해주니 고맙네. 보쌈 많이 남았어. 보쌈 데워서 밥 먹자." 아내는 이제 큰아이를 완전한 성인으로 놓아주는 연습을 해야 할 겁니다.















2021/10/30 <반가운 선물>

Oct 31 2021 3 mins  

올해도 친구 어머니께 고추 가루를 주문하려고 전화를 했습니다. "어머니 스무 근씩 세 묶음으로 포장해서 보내주세요! 그리고 제발 너무 많이 주시지 마세요. 자꾸 그러시면 저 죄송해서 어머니한테 고추 가루 보내달라는 말 못해요" "웬 걸 그렇게 많이 사니? 우리 거 팔아주려고 일부러 그러는 거야?" "언니들이 어머니 고추 가루가 좋다고 꼭 사달라고 부탁을 했어요." "그래그래 고맙다! 고추씨도 따로 보낼게! 장아찌 담글 때 필요하잖아! 참, 봄에 따다 말린 고사리도 네 몫으로 챙겨 놓은 거 있는데 보내줄게" 친구 엄마와 제가 이렇게 각별한 사이가 된 건 오래전에 친구 집에 고추를 따러 가면서 부터였습니다. 고추농사를 지으시던 친구 아버지가 고추 수확을 앞두고 입원을 하셔서, 친구들과 도와 드리러 간적이 있습니다. 각자 한 고랑씩 맡아서 고추를 따면서, 고추나무마다 주렁주렁 빨갛게 열린 고추가 무슨 보석 같다는 둥, 우리가 익은 고추를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따야 엄마가 좀 수월하실 거라며 참 열심히 고추를 땄습니다. 쪼그리고 앉아서 고추를 따는데 정말 힘들어서, 나중엔 고추밭 고랑에 눕기도 엎드리기도 하면서, 빨갛게 열린 보석들을 푸 대에 가득가득 담았습니다. 그게 인연이 되서, 두 분이 적적히 지내시는 시골집으로 휴가를 가기도 했습니다. 일을 도와드린다고는 했지만, 그저 딸 친구들이 우르르 가서 시끌시끌한 게, 사람 사는 것 같다며 좋아하셨죠. 친구들 하나 둘 결혼을 하고, 시골집에 내려가는 횟수도 점차 줄었는데 그러다가 어느 날, 어머니는 딸을, 저는 친구를 먼저 보내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몇 년 전에 저희 집으로 택배를 보내셨는데 빨간 고추 가루를 보고는 왈칵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제가 고추가 보석같이 주렁주렁 열렸다고 했던 말이 참 예뻤다고, 그래서 뭐든 주고 싶다고 하셨지만, 엄마가 일찍 돌아가신 저에게 그렇게 사랑을 나누어 주셨던 것 같습니다. ‘어머니 저 앞으로도 어머니 고추 가루 오십년은 더 먹을 거예요 그러니 오래오래 건강하셔야 돼요.’



2021/10/29 <어머님 괜찮으세요?>

Oct 31 2021 3 mins  

팔순을 넘긴 시부모님께선 초코라고 강아지와 함께 집에서만 지내시는데 평소에 아는 분이 집을 방문해서 같이 고스톱도 치셨나봅니다. 그런데 그중 한분이 코로나에 감염이 되어서 두 분 다 검사를 받았는데, 아버님은 확진이 되어 음압병상으로 입원을 하셨고, 어머님은 다행히 음성이라 집에서 혼자 자가 격리 중이었습니다. 연락을 하니, 아버님 증상은 경증이라 걱정하지 말라 하시고, 어머님은 배달음식만 드시다보니, 입맛이 없으시다 고 콩나물이며, 나물을 좀 사다주라고 하십니다. 어머님 댁 근처 마트를 검색해 전화로 필요한 식료품을 주문을 하고 계좌로 입금을 했더니, 얼마 안 있어 배달이 갔다고 합니다. 가 뵙지는 못하고 전화로만 안부를 물으면서 필요한 게 있으면 주문을 해드렸습니다. 집에만 계셔서,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데 친구 분들의 방문으로 인해 감염이 된다는 게 너무도 놀랐습니다. 다행히 이주간의 격리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가신다는 연락을 받고, 시장을 봐다가 이것저것 밑반찬을 만들었습니다. 어머님이 드시는 약이 있어 평소에 다니던 병원에 남편이 가서 약을 타다가 드리고 갔다 온다 하길 레 과일이며 밑반찬을 보냈습니다. 뉴스나, 문자로 안내받던 확진 자 소식이 남의 일 인 줄 알았는데...연로하신 시부모님께서 그런 일을 겪고 보니, 더욱 조심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항상 외출 시 마스크착용하고, 불필요한 외출삼가고, 타인과의 거리두기 등 나름대로 신경을 쓰면서 지냈는데, 남의일이 아닌 우리 가족의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걸 명심해야겠습니다. 이제 위드 코로나가 시행된다는데 그래도 조심, 또 조심해야겠습니다.






2021/10/27 <입원하여 배우는 어떤 교훈>

Oct 27 2021 3 mins  

어느 날 일터에서의 실수로 발가락 골절상을 입었습니다. 몸 끝에 있는 엄지발가락 하나가 뭐 그리 대단한 가 싶었지만, 결론은 수술실까지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4일간의 입원 시간을 가졌고, 퇴원 후에도 한동안 목발을 집고서 생활을 해야만 했고, 통원 치료를 통해 빠른 회복을 위해 집중했습니다. 병원에 있던 그 시간, 생각하면 짧은 시간이었지만 순간 많은 것을 생각하고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 중 가족의 의미가 더 크고 더 민감하게 느껴졌는데, 미혼 시절엔 몸이 다쳐도 뭐 그리 큰 부담감이 없었는데, 결혼하여 제가 부양해야할 처자식 생긴 상황에서는 제 생각과 마음이 이전과는 달랐습니다. 지금은 전업주부인 아내, 아직은 어리기만 한 딸...혹시나 수술이 잘못되어 입원기간이 길어지면 아내와 딸은 어떡하지? 그런 걱정이 계속 저의 마음에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깨달은 게, 어린 시절, 기억 중 가장 우선은 아버지였습니다. 아버지가 먼저 수저를 들어야 따라서 식사를 하게 되고, 아버지가 가장 좋고 맛있는 음식을 먼저 드셔야 했고, 아버지가 가장 좋은 자리에 앉으시고 누우시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배웠습니다. 당시 어린 마음에 그게 불만이었습니다. 그래서 미래에 내가 남편이 되고 아빠가 되면 나는 모든 것을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 양보하겠다는 결심으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입원 중 생각하니 저의 어린 시절 제 가족들은 왜 그런 선택으로 살아야만 했는지 이해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가장인 남편, 아버지가 무너지면 남은 가족 모두 무너지는 것이 당연한 결과였으니, 가장이 우선이 되어 살아가는 것이 결국 온 가족을 지키는 방법이었던 겁니다. 앞으로 나 자신부터 나를 존중하고 위하면서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합니다. 그게 결국 무엇보다 소중한 내 가족을 지키는 길임을 깨달았거든요.













2021/10/22 <내 삶의 길목에서>

Oct 25 2021 3 mins  

아토피로 밤에도 잠 못 이루는 아이를 위해 언니부부는 과감히 시골로 내려왔습니다. 적응 못하면 어쩌나? 도시생활을 마냥 그리워하면 어쩌나? 걱정 했는데, 조카는, 어느새 자연인이 되어 있습니다. 하루는 조카 손을 잡고 5일장에 가서 "신발 하나 골라봐! 이모가 사줄게!" 하니 이 녀석, 한참을 둘러보더니 하얀 고무신을 골라옵니다. "너 이거 진짜 신을 수 있겠어?" "응, 고무신에서, 순백의 미가 느껴지지 않아? 이모도 하나 사라..우리 커플 고무신 신자" 합니다. 조카의 애교에 넘어가, 난데없이 나도 하얀 고무신을 신게 되었네요. 하얀 고무신이 너무 적적해서, 나는 붓을 들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동백꽃들을 그려 넣으니, 명품신발이 울고 갈 것 같습니다. 조카 녀석 역시 엄지 척을 해줍니다. 요즘 조카는, 지역 사투리가 재미있는지, 온종일 어설픈 사투리로 대화를 시도합니다. 오후에 가을볕을 맞으며 책을 읽다가, 심심했는지, 꾸벅꾸벅 졸고 있는 황구에게 다가가 "니캉 내캉...오늘부러 친구다! 베스트 프렌드! 알긋나? 손 줘봐라! 도장 찍으라! 그리고 스캔하고!" 하는데 순딩이 황구의 표정이 애처롭습니다. 조카는, 가을볕 아래에서 황구에게 책을 읽어줍니다. 그 모습이 너무 정겹습니다. 하루는 조카가 밤을 이리저리 살피며 밤을 상자에 담아 우체국에 가자합니다.. “밤을 가지고, 와 우체국에 가는데?" 하니 "도시 사는 친구들에게 밤 좀 줄라고 안 하나? 나만 좋은 거 먹으면 안 되지!" 합니다. 내 어깨를 주물러가며 온갖 애교를 부리더니 혀 짧은 목소리로 "이모 이모! 나 좀 보이소~~~내 친구 두 명에게도, 명품 고무신 선물해주고 싶은데, 예쁘게 그려주면 안될까?" 합니다. 늘 '내 것'을 먼저 챙기고, '내'가 먼저였던 나는, 조카의 친구들을 향한 베 품에, 작은 녀석이, 어쩜 마음은 나보다 마음이 그리 넓고 깊은지..새삼 놀랍니다. 택배로 보내어진 귀여운 밤, 그리고 5일장에서 산 하얀 고무신, 이 모든 것들이, 조카와 조카 친구들에게 귀한 추억이고, 살아가는데 따듯한 기억, 작은 힘이라도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내일은 대추를 수확하러 갈 건데...나의 고마운 지인들에게 좀 보내야겠습니다. 가을에만 누릴 수 있는 호사니깐...이 호사를 내 조카가 그러했듯이, 나도 나의 지인들과 함께 누려야겠습니다.




















2021/10/14 <선풍기를 챙겨 넣다가.>

Oct 14 2021 4 mins  

지난여름 그리도 덥더니 어느덧 가을 옷으로 갈아입는 계절이 됐습니다. 햇살 좋은 날. 선풍기들을 한자리에 모았습니다. 요긴하게 잘 썼고 내년에나 다시 꺼낼 것들이니 잘 손질해서 챙겨둬야겠다 싶었습니다. 더구나 올해는 ‘거리두기’ 로 집 안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져서 더 수고한 것들이지요. 하나씩 분해하여 물에 씻고, 말려서 조립하고...그런데 가장 낡은 선풍기를 만지다가 사달이 나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비눗물에 씻어도 세월의 흔적이 누렇게 찌들었을 뿐 아니라 나사 풀고 죄는 것이 쉽질 않더니, 결국 연결부분이 망가지고 만 것입니다. 결혼한 첫 여름에 구입해서, 사글세 단칸방에 들어선 손님들 앞에 가장 먼저 내놓았지요. 무더위 땀띠로 보채는 갓난아기를 단잠 들게 해주고, 돌 지나서 애가 보호망 틈새에다 손가락 들이미는 광경에 놀라 며칠간 치워놓은 적도 있었지만, 한여름 내내 큰 몫을 하는 물건이니 곧바로 방 한가운데를 차지하였지요. 끔찍한 열대야가 비켜가지 않던 여름밤에도 묵묵히 제 구실을 다해왔으며, 열심히 바람을 만들어내느라 정작 제 몸통은 뜨끈뜨끈한 걸 보면서 마치 자식들 부채질해주느라 땀범벅이던 어머니 옛날모습을 회상하곤 했지요. 하지만 세상에 대세가 있는지라 성능이 좋은 선풍기한테 자리를 빼앗겨 물러나 앉은 데다, 조절스위치가 헐거워졌고 손닿는 부분은 아예 문드러져 버린 상태, 본체 모서리는 도색 부분이 벗겨져 나가 더 고물 티를 내는 데다, 갈수록 소음이 심해 갔지요. 눈시울과 콧날이 동시에 싸해집니다. 사람으로 치자면 고령의 병든 몸을 이끌고 지난 세월 우리 가족을 위해 헌신했고, 마지막 순간까지도 최선을 다하려 몸 바쳤을, 마치 한 생명체의 임종을 눈앞에서 지켜보듯 착잡했습니다. 선풍기를 조립해서 한쪽에 치워놓았습니다. 폐기물로 내다 놓으려다가 마음을 바꿨습니다. 실제 생활에서 쓸 수는 없으나, 인생 과정의 골동품 삼아 챙겨두기로 했습니다. 잘 버리는 것도 살림 잘하는 비결이라지만, 제 소임을 다한 공로를 너무 쉽게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오랜 잔정을 뗄 수 있을 그때까지 만이라도 같이 있으려구요.






















































2021/09/22 <아빠 우린 언제 소풍 갈 수 있을까?>

Sep 22 2021 4 mins  

코로나19가 우리 삶으로 들어온 지 벌써 2년 다되어 가네요. 처음에는 이렇게 무서운 존재일지도, 이렇게 오래 갈지도 상상조차 못했는데 참 야속하고 질긴 적이 되어버렸습니다. 마스크가 필수품이 되었고, 여행, 공연, 모임은 멀리하게 되고 집 콕 생활이 익숙해져가고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을 무조건 피하게 되는 불편한 진실. 참 많이 답답하고 힘들고.. 평범했던 일상이 너무도 그립습니다. 특히나 추석 명절이 되어 가족 친지들 모여서 맛있는 음식 나눠먹고 오순도순 이야기하고 윷놀이 하던 추억들이 이젠 정말 꿈처럼 느껴지기만 합니다. 두 가족 이상 모이기도 힘들고 동창회도 2년째 못하고 있고.. 코로나19가 바꿔놓은 일상은 비단 어른들만이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참 많이 힘든가 봅니다. 매일 학교 가서 친구들과 뛰어놓고 하던 대신 집에서 컴퓨터 앞에 앉아 영상 수업을 해야 하고 특히나 학교에 자주 못가니 친구들도 사귀기 어렵고 선생님과의 추억 친구들과의 추억도 없고... 하루는 딸아이가 그러더라구요. “아빠. 우린 언제 운동회나 소풍 가서 친구들하고 김밥 먹을 수 있나?” 옆에 있던 아내도 “그러네, 우리 딸 김밥이랑 맛있는 과자 사서 소풍 보낸 지도 오래됐다.” 저도 초등학교 때 운동회 하고 소풍 가고 수학여행 갔던 추억들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 있는데...아이들에게 가장 소중한 추억이 되어야 할 것들이 2년 동안 하지 못하고 있고 또 언제 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도 없으니 이러다 운동회, 소풍이란 단어가 사라지진 않을지...올해 6학년인 조카는 졸업앨범을 찍는데 수행여행, 운동회를 못했으니 사진이 없어서 단체사진, 그룹사진, 개인 사진만으로 졸업앨범을 만든다고 합니다. 이런 모습들을 보면서 더 열심히 방역 수칙 잘 지켜서 코로나19를 전멸시키고 싶단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에게 2년 동안 누리지 못했던 운동회, 소풍의 행복을 선물해주고 싶습니다. “아빠 오늘 소풍 가서 친구들이랑 김밥 먹고 진짜 재미있게 놀다 왔다.” 라는 딸아이의 말을 듣는 날이 어서 오길 기대해 봅니다.




2021/09/21 <두 여인>

Sep 22 2021 4 mins  

약속이 있어 잠시 밖에 나갔다 들어오는데 아내가 집 전화기를 들고 있습니다. 휴대전화가 있어 잘 사용하지 않는 전화인데 누구랑 통화하는 건지 흐느끼고 있었습니다. "거기, 우리 엄마 좀 바꿔주세요. 우리 엄마 이름은요 김자 정자 숙자입니다. 키는 154cm이고요. 바싹 마른 체구에 뽀글이 파마를 하고 있고요. 엄마, 그곳에서는 아프지 않아. 지상의 딸은 엄마 없이 맞이하는 첫 가을이 너무 쓸쓸해. 엄마, 내가 노래 한 곡 들려줄게. 잘 듣고 있어.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면 겨울에 기나긴 밤 어머니하고 둘이 앉아.." 부모 노래가 끝나자 아내는 "엄마, 잘 있어." 하고는 조용히 전화를 끊습니다. 일하는 도중에도 순간순간 그리움에 울고, 물건 하나만 보아도 장모님과 함께했던 기억이 소환이 되는지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모습에서 오래전 내 어머니의 모습이 소환되었습니다. 허물어져 가는 종갓집으로 시집 와, 한량이신 아버님을 대신해 홀로 팔 남매를 키우며 등이 휘는 줄도 모르고 평생을 일만 하다 가신 내 어머니! 두 살 아래의 아버님은 가정 살림은 아랑곳하지 않으셨습니다. TV, 카메라, 전축, 경운기, 청진기, 등등. 갖고 싶은 물건, 신기한 제품이 있으면 곳간에 있는 쌀가마니를 팔아서라도 사 들였습니다. 우리 동네 처음으로 전화가 가설되던 날. 아버진 친척 어르신들에게 "급한 일 있으시면 이 번호로 전화 하이소!" 자랑하기 바빴습니다. 그날 저녁, 모두가 잠든 사이 어머니가 조용히 대청마루로 나와 수화기를 들었습니다. 그저 빈 수화기를 들고 어머니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어무이, 거기 생활은 어떤교? 아픈 데는 없고? 강 서방은 늘 그렇지 뭐. 어무이, 큰딸은 하동으로 시집가서 과수원도 장만하고 이제 그럭저럭 밥은 굶지 않고 살아요. 전기 기술을 배우고 있는 작은 아들은 부산에서 아가씨를 데리고 온다고 하니 형보다 먼저 결혼을 시켜야 할 것 같아. 어무이, 내 얘기 듣고 있는교? 다른 곳은 다 번호가 있는디 우째 거기만은 번호가 없는교." 그 밤, 수화기를 내려놓으시던 어머닌 끝내 흐느껴 우셨습니다. 오십여 년 전, 흐느끼셨던 내 어머니와 같이 아내가 전화기 앞에서 그렇게 울고 있었습니다. 명절이 되니 두 어머님이 너무도 보고 싶습니다. 어머니, 장모님 천국에서 잘 계시죠.




















2021/09/13 <주방을 정리정돈 하다가>

Sep 13 2021 4 mins  

곧 추석인데, 주방정리정돈을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주방 수납장을 열어보니 그릇이 차곡차곡 쌓여있습니다. 얼마 전만 해도 다 사용하던 그릇인데, 23년 동안 모시던 시아버님이 떠나신 뒤부터는 큰상을 여러 개 차릴 일이 줄어들어, 그릇도 많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몇 년째 사용하지 않은 그릇들을 모두 꺼내 닦고 주방 정리를 시작했습니다. 오래된 그릇, 예쁜 그릇, 명품 그릇, 사용하기 편한 그릇, 그중에 눈길이 머무는 그릇이 있습니다. 주방 수납장 깊숙이 있던 시어머님이 쓰셨던 옛날 큰 사기 밥그릇. 얼마나 큰지 다섯 명분의 밥을 담을 수 있을 정도죠. 노란색 큰 양은밥통도 있습니다. 화려한 문양이 있고 ‘선광’이란 상표도 새겨져 있습니다. 가벼워서 채소를 씻고 보관까지 좋아 요즘도 잘 쓰고 있습니다. 막내 시누이가 친정 올 때마다 하는 말이 있습니다. “어! 우리 엄마가 사용하던 밥통 여태 쓰시네요.” 친정엄마의 체취가 담겨있을 것 같은지, 만져보며 그리움을 삭이는 것 같습니다. 3중바닥 스테인리스 냄비가 유행할 때, 그릇 욕심이 많으신 시 어머님이 벼르다가 사셨다고 합니다. 그러고는 아버님께 야단맞을까 봐, 숨겨놨다가 잠시 분가했던 나에게 갖고 가라고 하셨는데 내가 갖고 오면 또 사고 싶으실 것 같아 갖고 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정작 어머님은 그 냄비를 아끼다가 사용도 못 하시고, 뇌졸중으로 회갑 전날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우리 친정어머니가 늦둥이 막내딸인 나의 혼수로 마련해준 그릇 중에 식기 2벌이 남아 있습니다. 길쭉한 신랑 식기에는 한자로 복자가, 납작한 각시 식기에는, 부귀영화를 상징하는 모란 꽃문양이 새겨져 있습니다. 어머니가 그 그릇에 찹쌀과 붉은팥을 넣어주며 딸아이의 행복을 기원하셨겠죠. 딸아이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엄마가 죽으면 이 많은 그릇 다 어떻게 하지?” “명품만 제가 쓸게요.” 이 많은 그릇이 쓸모가 없어져 살아질 거로 생각하니, 가슴 한편이 휑합니다. 사연이 있고 추억이 담긴 그릇들도 이젠 미련 없이 하나둘, 이별 준비를 해야겠습니다.



























2021/09/02 <위층 공사>

Sep 05 2021 3 mins  

“드드드드,” 갑작스런 소음에 깜짝 놀라 거실로 나갔습니다. “여보, 이게 무슨 소리야?” “아, 내가 깜빡하고 당신한테 말을 안 했네요. 얼마 전에 윗집에 새로 이사 올 사람이 인테리어 공사를 한댔어요.” TV를 크게 틀어놔도, 책을 볼 때도 “드드드드” 소리가 온 집안에 울려 퍼졌습니다. 그렇게 하루가 가고 이틀째. 역시 “드드드드.” “아니, 도대체 철거를 며칠씩이나 하는 거야? 이거 원 시끄러워서 살 수가 없네.” 저는 위층으로 뛰어올라 갔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려다 잠시 망설였습니다. 문 앞에는 폐기물과 함께 빈 물병들이 한 가득 있었습니다. 저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왔습니다. 아파트 1층 공동현관 앞에는 폐기물을 잔뜩 담은 트럭이 있었습니다. 그 옆 벤치에 잠시 앉아 있으니 위층에서 공사하던 사람들이 폐기물을 잔뜩 싣고 내려옵니다. 땀으로 옷은 흠뻑 젖어 있었고, 마스크도 땀에 젖어 묵직해 보였습니다. “아들, 힘들지? 원래 이 일이 이렇게 힘든 거야.” “더운 거랑 마스크만 빼면 할 만해요. 그런데 인테리어 맡긴 손님은 처음대로 하지 않고, 왜 지금에서야 설계변경을 한대요?” “그거야 나도 모르지. 그것 때문에 하루면 될 걸, 이틀이나 철거를 하게 됐네. 우린 고객이 하자는 데로 하는 거니까 어쩔 수가 없지만 여기 위, 아래층 사람들한테 미안해서 그렇지. 얼마나 시끄럽겠냐?” 사람들은 다시 일 하러 올라갔고, 저는 슈퍼에 들려 시원한 물과 하드를 사서 다시 위층으로 올라갔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일하던 사람들이 깜짝 놀라 쳐다봅니다. “저는 여기 아래층에 사는 사람입니다.” 제 말에 “아휴, 죄송합니다. 너무 시끄럽지요? 오늘까지만 철거하고 그 다음부턴 조용할 겁니다.” “그게 아니라 이것 좀 드시고 하시라구요. 일하다 보면 여름이 제일 힘듭디다. 이거 드시고 힘내서 빨리 끝내달라고 부탁하는 거예요.” 안 받겠다는 걸 뒤로 한 채 저는 서둘러 내려왔습니다. 그 덕분인지 소음은 두시간만에 끝났고 그 후론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아무리 화가 나고 짜증이 나도, 현장에서 땀 흘리며 일하는 사람들을 보면 머리끝까지 치솟던 화도 가라앉게 됩니다. 더위가 한 순간에 가라앉듯 말입니다.












2021/08/28 <너는 어떻게 사니?>

Aug 29 2021 2 mins  

인생, 그거 거창한 거 아냐. 어쩌면 편안한 의자에 앉아 커피 한 잔 마시는 것, 그게 인생의 전부일지도 몰라. 사랑, 그거 위대한 거 아냐. 어쩌면 콧노래를 부르며 미소를 짓은 것 그게 사랑의 전부일지도 몰라. 생활, 그거 복잡한 거 아냐. 아침에 일어나고 저녁에는 자고 배고프면 밥 먹는 것, 그게 생활의 전부일 지도 몰라. 너는 어떻게 사니? 네가 사는 이 시간, 이 일상, 그게 전부인거야. 잘 살고 있는 거야. 김이율 작가의 ‘인생 뭐 있냐? 그냥 사는 거지. 태어났으니까 사는 거고.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마!’ 친구에겐 이럼서 정작 자신은 살아가는 게 버거운 우리. 눈치 보지 말고, 비교하지 말고, 내 느낌대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오늘을 살자구요. 누가 우리 인생 대신 살아주는 거 아니니까. 그리고 지금 충분히 잘 살고 있으니까.































2021/08/16 <내 삶의 길목에서>

Aug 16 2021 4 mins  

시골에 혼자 사시는 엄마 집에 거의 1년 만에 갔습니다. 그 사이 엄마는 흰머리도 많이 생기고, 주름도 더 깊어졌지만, 미소만큼은 한없이 여유로우셨습니다. 내가 꼬꼬마시절 사별하신 엄마는 주위의 끊임없는 재혼권유에도 불구하고, 홀로 세 자식을 키우셨습니다. 그날 밤, 엄마는 연필을 깎아 노트에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습니다. "엄마! 아직도 가계부 써요?" 물으니 “가계부 아니야! 연애편지 써!” 하십니다. “에이 무슨 연애편지? 나한테 쓰는 거예요?” “딸! 이제 엄마 연애해도 되지? 엄마 진짜로 연애편지 쓰고 있어!” 순간 머리가 멍했습니다. 엄마가 이제 연애를 해도 될법한데, 나는 이기적이게도 연애편지라는 말에 서운함이 밀려와서 불쑥 "안 돼! 연애는 반칙이에요! 나만 바라보기로 했잖아요!" 엄마는 조곤조곤 말씀하셨습니다. “엄마 어렸을 때 같은 동네 살던 오빠가 있었거든! 그 오빠랑 어찌어찌 연락이 닿아 2년 전부터 편지를 주고받았는데...얼마 전에 프로포즈를 해왔어. 근데 생각이 너무 많네! 어쩌지? 그만둘까?”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오빠도 결혼하고, 언니도 결혼하고 나도 이제 곧 결혼해서 엄마 곁을 떠날 건데....엄마 곁을 지켜주실 슈퍼맨이 있으면 좋죠! 난 대찬성!” 하니 엄마는 “그런데 왜 얼굴엔 결사반대라고 적혀있지?” 하십니다. “그건, 엄마가 나보다 그 아저씨 더 좋아하게 될까봐, 순간 질투 난거에요! 엄마! 그 아저씨한테 가더라도 엄마 1번은 막내인 나 맞죠?” 하니 “그럼, 눈감는 날까지 내 1번은 너야” 하며 나를 꼭 안아주십니다. 엄마가 아저씨를 내게 소개시켜주는 날, 나는 아침부터 엄마 머리도 해주고, 화장도 해드렸는데 볼터치까지 하고 나니 정말 수줍은 새색시 같았습니다. 어느새 고와진 엄마모습에 울컥해서 “우리엄마가 이렇게 예뻤어? 선녀가 따로 없잖아! 아까워서 그 아저씨한테 못 보내겠네!!” "엄마가 행복하게 지내야, 너희들이 걱정 없이, 행복하게 살 수 있잖아! 이제는 엄마 꿈이 바뀌었어! 좋은 엄마에서 좋은 할머니가 되고 싶어...예쁘게 늙어가는 모습, 우리 딸이 꼭 지켜봐줘" 하는데 눈물이 왈칵 났습니다. 그간 고생만 하신 엄마, 이젠 꽃길만 걸으시길 바랍니다.



2021/08/15 <매실은 사랑을 싣고>

Aug 16 2021 3 mins  

어릴 적, 저는 유난히 몸이 약하고 자주 아팠습니다. 특히, 식중독이 기승을 부리는 여름이면 병원을 가는 일이 더 많았습니다. 여름에 바다에 놀러가서 회 먹고 난 다음날이면 영락없이 병원에 가고, 시험 끝나고 해물짬뽕 먹고 나선 온몸에 두드러기 나 병원에 가고, 식중독에 장염에 여름이면 저는 너무도 힘이 듭니다. 이런 나를 알고 우리 큰 이모는 항상 여름이면 매실엑기스를 담아서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이모는, 면역이 약해서 식중독에 잘 걸리잖아. 밥 먹으면서 자주 마시면 돼. 이제 이모 늙어서 힘드니 직접 담궈 먹어라.’ 하면서 농담으로 건네는 무뚝뚝한 말투에 나를 생각해주는 따스함과 살가움이 느껴집니다. 지난번 집에 가니 베란다에 큰 이모가 보내주신 메실 엑기스와 엄마가 직접 담근 된장 냄새가 코를 찌릅니다. 그리고 베란다 한편에 깻잎들도 무성히 자라고 있었습니다. 여름에 밖의 음식 탈난다고 이모와 엄마는 손수 음식을 다 만들어서 주십니다. 감자 한 박스, 된장 한통, 조선간장 한통, 매실엑기스 3L, 깻잎장아찌 한통, 오이지 한통, 더운 여름에도 사먹으면 편할 텐데 나를 위해서 굳이 이렇게 만들어 주십니다. 덕분에 요즘엔 배앓이 한번 식중독 한 번 안 걸렸습니다. 자식을 생각하는 엄마의 사랑과 조카를 생각하는 이모의 사랑으로 저는 너무도 행복합니다. 이제 저도 열심히 배워서 엄마와 이모에게 드려야겠습니다. 사랑은 받은 만큼 베푸는 것이니까요.
















2021/08/09 <우리들의 여름>

Aug 09 2021 3 mins  

짧은 여름휴가, 어떻게 하면 후회가 없을까?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사무실 동료는 부부 동반으로 제주 올레 길을 간다고...매 해 여름마다 코스별로 올레 길을 완주했다고 하는데...나는 왜 그런 생각을 미리 하지 못했는지.. 하지만 그것도 잠시! 예기치 못하게 코로나 백신 접종이 앞당겨지면서, 휴가 중에 백신을 맞게 되었습니다. 접종을 끝낸 분들께 물으니, 때를 잘 맞춰 약도 먹고 얼음찜질도 좀 하고, 휴식을 취하면 별 문제가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백신을 맞은 후에 시댁에서 묵기로 했습니다. 몇 달 전에 이사를 하고 허전해하시는 어머님을 위로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접종 당일, 백신을 맞고 얼음주머니를 어깨에 척~하니 올려놓고 남편과 함께 장을 봤습니다. 아버님이 좋아하시는 수박, 낙지, 목삼겹도 사고, 어머님이 좋아하시는 복숭아, 오징어, 쑥이 넉넉히 들어간 절편도 챙겼습니다. 기분 좋게 트렁크를 채우고, 40분을 달려 시댁에 도착했습니다. 어머님은 백신 맞았으면 집에서 쉴 것이지, 뭣 하러 왔냐고 하시면서도, 온갖 약재를 넣은 백숙을 끓이고 계십니다. 그리고는 저를 주방에 못 들어가게 하십니다. 어머님이 만들어주신 음식들로 말 그대로 신선놀음 같은 3박 4일을 보냈습니다. 별식이 있어도 둘만 있을 때는 식욕이 없었는데, 자식들과 함께 하니 입맛이 돈다는 말씀에는 덩달아 뿌듯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 짐을 싸고 있는데 어머님이 한마디 하십니다. ‘자식도 손님인 갑다. 때맞춰 밥 끓이기 힘들더라.’ 그런데도 집에 도착해 남편이 전화를 드렸더니 “날도 더운데, 에어컨도 없이 어떻게 견디냐. 얼른 여기로 다시 와라.” 떠나보낸 지 하루 만에 당신 고통은 싹 다 잊으시고, 자식들 더운 날씨에 고생할까 걱정하십니다. ‘정순덕 여사님~!여름 다 가기 전에 한 번 더 찾아뵐게요. 올 여름 편안한 휴식처가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해요.’



2021/08/08 <건강하세요.>

Aug 08 2021 3 mins  

공원에서 운동을 하는 시간대가 같아서 인지 매일 만나게 되는 언니가 있습니다. 저는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는 게 좋은데, 언니는 얘기하면서 쉬엄쉬엄 걷자고 합니다. 뭐 그냥 사람 사는 얘기가 아니라, 언니의 이야기는 시작과 끝이 항상 건강식품 얘기뿐이라 그날은 제가 바쁜 척 했습니다. "언니 나 빨리 운동하고 집안일 해야 돼! 반찬도 만들어야 되고, 할일이 많아" "매일 하는 집안일 뭐 하루 안한다고 무슨 일 나니? 우리 집에 차 마시러 가자" 매번 언니의 호의를 거절하기도 그래서 언니네 집에 갔습니다. 정수기에서 물을 따라 마시려는데 "잠깐, 운동효과를 높여야 하니까 새싹보리가루나 시서스가루 타서 먹는 게 좋아. 땀 흘렸으니까 물을 많이 먹어야 돼! 살도 빠지고, 몸에도 좋다니까" 하면서 주더니 또 이내 밥상을 차리기 시작합니다. "우리 집에 온 사람 밥 안 먹여서 보낸 적 없어" 합니다. 밥을 먹는 내내 저에게 "나물무침은 위에도 좋고, 특히 섬유질 많은 거 알지? 이 샐러드 소스는 들깨가루로 만든 거야! 들깨에 오메가3가 많다 잖아." 솜씨 좋은 언니의 밥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아 배부르다 언니 잘 먹었어! 이제 커피 마시자" "너 과식했으니 커피 말고 매실차 먹어! 우리 집에 삼년 묵은 매실 청 있거든" 하길래 조심스럽게 언니의 과한 건강 염려증을 걱정했더니 "내가 힘든 수술을 두 번이나 했잖아. 그래서 그런지 매사가 조심스럽고 다 걱정이야! 그동안 건강 챙길 틈도 없이, 바쁘게 살아온 결과가 이런 건가 싶기도 하고, 제일 슬픈 건, 주위에 친구가 없더라고" 친구가 필요해서 저에게 다가왔었던 거였는데, 귀찮아했던 게 미안했습니다. 이제 언니 얘기를 많이 들어줘야 겠다는 생각을 하고 나오려는데 언니가 말합니다. "내일은 내가 헛개나무 차 끓여서 가져갈게! 피로회복에 좋대."






2021/08/06 <에너지 충전 중입니다.>

Aug 08 2021 3 mins  

아버지가 보내 주신 감자 5개를 찜기에 올려놓습니다. 아점을 감자와 사과 한 개로 하려구요. 감자를 기다리며 세수를 하고 나왔더니 친구에게 부재중 전화가 들어와 있습니다. 전화를 받자마자 웃음 섞인 핀잔이 들립니다. “백수라 아직도 자냐?” “아니, 세수하고 이 닦았어.” “백수가 뭔 세수를 해, 그냥 대충 있는 거지.” 친구는 저를 걱정합니다. 늘 바쁘게 지내다가 집에 있는 내 시간들을, 갱년기에 우울증 걸리는 거 아니냐고. 작년에 12년 다닌 회사가 문을 닫았습니다. 참 마음이 복잡했는데 어수선한 마음들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집에는 취업 준비로 바쁜 큰아이가 있고, 온라인 수업하는 작은아이가 있지요. 아이들 밥 챙기고 청소하고 빨래하면 바로 저녁시간, 평일에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처음에서 생소했지만, 바로 적응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아르바이트 자리가 나와서 올 1월부터 6개월간 아르바이트를 하는 동안에 큰아이는 원하던 곳에 취업이 되서 회사 근처에 원룸 얻어 나가고, 작은아이는 휴학을 하고 지난 6월 입대를 했습니다. 두 식구 사니 빨래도 별로 없고, 반찬투정 안하는 남편이니 밥 챙겨 주기도 편하고, 오이지 100개 담고 마늘장아찌 반접 담고, 아이들 앨범 정리하고, 낮잠도 자고, 책도 읽고, 드라마도 보고, 친구와 점심에 콩국수도 먹고 오고, 아울렛 가서 샌들도 하나 사고, 작은아이에게 손 편지도 하루에 한통 쓰고, 해병대 가족 모임 카페에서 훈련 소식도 듣고 있습니다. 아침에 출근하던 남편이 집에만 있지 말고, 걷기라도 하라고 합니다. 전 그냥 걷는 건 싫어서, 20분 거리 재래시장을 걸어서 갔다 오려구요. 오징어 두 마리 사서 매콤하게 오징어 볶음 만들어야겠어요. 오는 길에 중고서점에 들려서 책 두 권도 사고... 저 집에서 그냥 노는 거 아니고, 에너지 충전하고 있답니다. 가득 충전된 에너지로 취업 되면 열심히 일하려구요.













2021/08/01 <멋진 우리 회장님>

Aug 01 2021 3 mins  

회사에서 정년퇴직을 한 뒤, 40년 동안이나 맘 편히 제대로 쉬지 못했으니 실컷 놀아야겠다 마음먹었습니다. 그러나 노는 것도 놀 줄 아는 사람이나 놀지, 저처럼 반복적인 생활만 했던 사람은 노는 것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습니다. 노인복지센터에 이력서도 내보고, 주유소에도 문의도 해봤습니다. 그러나 노인복지센터는 기왕이면 젊은 사람을 원한다 하고, 주유소는 몸이 약하면 힘들다 했습니다. 어느새 제가 힘없는 노인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저보다 7년 먼저 퇴직하신 선배님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요새 무슨 일 하고 계셔? 나 있는 회사, 한 달에 150정도 주는데 일해보실 의향 없어? 와서 인력관리 같은 거 하면 돼. 혹시 생각 있으면 내일 9시까지 이력서 한 통 써갖고 나오셔." 합니다. 이력서를 들고 선배님을 찾아 갔죠. 사무실에 앉아 있으니, 젊은 신사 한 분이 들어오시는데 첫 인상이 무척 친절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분이 그룹의 회장님이셨습니다. 나이만 40대이지 저보다 몇 배는 더 세상을 사신 듯 인생을 달관하고 계셨고, 만고풍상을 다 겪으신 분이셨습니다. 법대를 졸업하였으니 법관이 되기를 바라는 부모님의 기대를 뒤로 하고, 고물상을 운영하기도 했고, 주유소를 운영하기도 했고, 건설 회사를 운영하면서는 거액의 사기를 당해 도산위기에 처한 회사를 살려 내셨다합니다. 그리고 회사 사원의 3분의 1을 시니어로 채용하겠다 하십니다. 시간에 쫓기지 말고 여유 있게, 즐거운 마음으로 일하라 하십니다. 이 얼마나 멋지고 아름다운 일입니까. 정년퇴직을 했어도 아직은 충분히 일할 수 있는데, 나이가 많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일할 수 없는 현실에서, 시니어들에게 기회의 장을 열어주신 회장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또한 저에게 함께 일하자고 전화 주셨던 선배님께도 너무 감사드립니다.






2021/07/30 <불편한 나의 리틀 포레스트>

Aug 01 2021 3 mins  

38년간 공직생활을 퇴직하고 처음 시골에서 여름을 보내고 있습니다. 홀가분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급하게 도시를 떠나왔건만 매일 뜨거운 폭염은 기후위기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실감케 합니다. 그래도 위로가 되는 시골 생활은 사방 어디를 보아도 초록색을 실컷 볼 수 있다는 것과, 텃밭에서 나오는 나만의 ‘화려한’ 식생활이 주는 감동입니다. 아침에는 지난 주 후배가 사 온 식빵을 프라이팬에 살짝 굽고 오디 잼을 발랐습니다. 울타리에 뽕나무가 두 그루 있는데 거기서 딴 오디로 잼을 만들었거든요. 그리고 남편이 막 따 온 올망졸망 토마토와 텃밭의 블루베리 한 줌을 넣고 믹서 기로 드르륵 갈아 주스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야채샐러드. 상추, 치커리, 깻잎, 쑥갓 등 온갖 야채와 방울토마토, 빨강, 노랑색 파프리카, 단 호박 찐 것에 올리브오일과 발사믹 식초를 살짝 뿌렸습니다. 어제는 밭에서 딴 완두콩과 감자, 그리고 밭에서 지난겨울을 난 양파를 넣어 스프를 만들기도 했지요. 점심에는 텃밭에 숨어 있던 애호박과 감자, 양파를 썰고 대파를 뽑아 흰색 부분만 잘라 된장찌개를 만들었습니다. 어찌 보면 지극히 소박하고 자극적이지 않은 식탁 풍경이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한 폭의 그림입니다. ‘그렇다고 나의 리틀 포레스트는 누군가가 막연하게 그리는 슬로우 라이프는 아닙니다. 시골은 감동만큼 감수해야 할 불편함도 많으니까요. 그러나 저는 이제부터는 그 불편함을 즐기려 합니다. 그동안 편리함을 많이 누리면서 무시했던 일상 속의 불편함과 만나겠습니다. 그래서 에어컨은 없어도 가끔씩 살랑살랑 불어오는 여름 바람에, 초록 잎들이 흔들리는 흐름 속에 저 자신을 맡깁니다. 내 몸과 마음이 온통 초록일 때, 우리 집 식탁이 자연의 화려함으로 가득 찰 때 그 속에서 나의 어린 시절도 만나고 어쩌면 비로소 나의 제2의 인생과 마주하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2021/07/28 <내 삶의 길목에서>

Jul 28 2021 3 mins  

어렸을 적, 제 별명은 못난이였습니다. 언니들은 내 이름 대신, "못난아~"라고 불렀고 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내 별명은 더 세분화 되었습니다. 눈이 작다고 “자니?” 라는 별명과 동시에 “보이니?” 라는 별명을 얻었고 살짝 들린 코 때문에 “꿀꿀이”라는 별명도 얻었습니다. 얼마 전, 참 오래 만에 조카가 놀러왔습니다. 조카는 나를 보자마자 "참 예쁜 이모! 안녕하세요?" 라고 합니다. ‘참 예쁘다.’ 라고 해주니, 신선하면서도 얼떨떨했습니다. 그날 오후, 조카는 내게 "이모! 우리 화장놀이 해요! 제가 화장 해 드릴게요." 합니다. 외모 컴플렉스가 많은 나이기에, 마음으론 '싫어~‘ 했지만, ’그럴까?‘하며 바닥에 누웠습니다. 조카는 제 얼굴에 꼼꼼하게 스킨, 로션을 바른 후 "고객님! 피부가 너무 좋으세요! 아기 피부 같으세요!“ 라는 폭풍 칭찬을 한 후 “이제 눈 화장 해드릴게요!" 하며 본격적인 화장에 들어갑니다. 나는 "원장님! 제 눈이 많이 작죠? 눈을 크게 보이는 화장 부탁드려요!" 하니 조카는 "어머! 고객님! 무슨 말씀이세요? 고객님 눈은 엄청 크고, 밤하늘의 별처럼 빛나는 걸요! 고객님 개미 눈 보셨어요? 고객님의 눈은 개미 눈 보다 100배 더 큰 걸요! 자신감을 가지세요! 충분히 아름다우세요.” 합니다. 터져 나오는 웃음을 애써 참고 있으려니 조카는 "이번에는 코 화장입니다!” 라고 순서를 알렸고 나는 “원장님! 제 코가 많이 못생겼으니, 코에 신경 좀 많이 써주세요!" 하니 조카는 "무슨 말씀이세요? 고객님 코는 이리 봐도 예쁘고 저리 봐도 예쁜 걸요!“ 그렇게 얼떨결에 화장이 끝났습니다. 조카는 ’9번만 더 오시면, 1회 무료쿠폰 서비스로 해 드릴게요!” 라며 내손에 쿠폰까지 쥐어줍니다. 나는 오랜 기간 외모 콤플렉스가 있었습니다. 알게 모르게 사람들 사이에서 위축되곤 했는데, 조카의 입에서 쏟아져 나온 청량하면서도, 조금은 웃기긴 했지만 칭찬들에 외모도, 삶도, 생각하기 나름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조카 참 예쁜 이모'라 불러주고.... 참 예쁜 이모'로 봐주어 고마워...‘





2021/07/26 <'맴맴 축제' 무대에서>

Jul 26 2021 3 mins  

땡볕 쏟아 붓는 한여름 석양 무렵. 코로나 탓에 집안의 우렁 각시 노릇 하다가 모처럼 발걸음한 동네 숲길에서 올해 첫 매미 소리를 들었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나무쪽으로 다가가자 뚝 멈추었고, 멀찍이 물러서니 아쉬웠다는 듯 다시 울어댑니다. 온통 천적들로 가득한 세상에서 더 목청 높여야 하는 매미들은 알에서 유충으로, 매미로 저렇듯 생애 마지막까지 소리를 낼 수 있는 확률은 얼마나 될까요. 시대 물결에 따라 우리네 인심도 많이 변했습니다. 매미소리를 소음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늘어갑니다. 벌레마저도 인간이 살아가는 방편에다 판단기준을 두고서 익충, 해충 구분 짓습니다. 임금의 익선관 뒷부분 장식을 매미 날개로 본뜬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옛 선조들은 남의 것을 탐내지 않는 청빈의 상징으로 매미를 꼽았다는 글을 읽은 적 있습니다. 어두운 땅속에서 수년간 내공을 쌓은 다음, 마침내 세상에 나와 허물을 벗으며, 짧은 생애 동안 자기 소명을 다하고 때를 맞춰 가는 매미. 다른 곤충과 달리 자기 집을 만들지도 않고, 불필요한 것도 모아두지 않거니와, 제 영역을 갖지 않은 채 살다가 조용히 자연의 일부로 되돌아가는 매미. 누군가는 그것을 마치 게으름의 상징이라 할지도 모르고, 나 또한 매미를 그 이상으로 미화할 생각까진 없지만 낭만이야 잃었을망정 공존은 가능하지 않겠나, 혼자의 속마음이 그렇습니다. 어느덧 굼벵이 허물을 벗어버리고 ‘도시 매미’가 되어 살아가는 내 성장기 추억을 가장 가까운 공원 숲에 옮겨다 놓은 저 생명들. 허무할 만큼 짧게 주어진 삶의 행복을 맘껏 누릴 수 있도록, 그들만의 축제를 실컷 즐기게끔 우리가 좀 참아야 하지 않을까요. 인간의 탐욕에 야금야금 갉아 먹히는 자투리 숲을 여름 잠깐 빌려서 펼칠 생명들의 축제마당 무대에, 살아오는 동안 매미보다 더 많은 변신을 거듭한 나도 해마다 훼방꾼 아닌 방청객이 되어보아야겠습니다.






2021/07/24 <오늘도 하루 지우기 성공>

Jul 25 2021 3 mins  

어려서 세상 물정을 모를 때는 나이 오십이 지나면 돈벌이를 안 해도 취미생활을 즐기며 살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나이 오십이 지난 지금도 새로운 곳에 면접을 보러 다니며 이직을 하고, 새로운 업무에 익숙해지느라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3월에 새로 들어간 직장은 출퇴근만 왕복 4시간이 걸리는 곳이어서 도저히 힘들어 그만두려고 했는데, 대표님이 재택으로 돌려주어 4월부터 재택근무중입니다. 옛날부터 "은둔 형 외톨이" 를 입에 달고 살았는데 정말 은둔 형 외톨이로 살고 있습니다. 재택근무를 하기 전에는 마냥 좋기만 할 줄 알았는데, 일의 특성상 동료들과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해야 하는 일을, 혼자서 종일 처리하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고, 예상치 못한 우울증까지 생기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다시 사무실로 출퇴근을 하는 일은 엄두도 나지 않고, 아직은 새로운 일을 찾기도 힘들어, 다른 방법을 찾는다고 한 것이 걷기입니다. 출퇴근을 할 때는 8시가 지나야 집에 오니 씻고 밥 먹고 쉬기 바빴는데, 재택근무를 하면서는 시간적 여유가 생겨, 저녁 일찍 먹고 설거지까지 마치고나면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나가 걷는데, 이 더위에 마스크까지 쓰고 걷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시간 적 여유가 생겨 끼니도 정성껏 챙기고, 걷기도 시작했지만, 생활공간과 작업 공간 분리를 위해 작은방에서 업무를 하다 보니, 이 가마솥더위에 에어컨도 없이 선풍기 하나로 버티려니 온몸이 뜨끈뜨끈하고 땀이 줄줄 흐릅니다. 집 구조상 거실 에어컨 바람이 작은방으로 전달되지 않습니다. 지인들은 그냥 거실에서 하라고 하지만, 저는 생활공간과 작업 공간은 분리가 되어야 일에 능률이 오르니 오늘도 찜통더위를 견디며 하루를 보냅니다. '길어야 한 달이다. 한 달만 버티면 돼.'를 되 뇌이며 오늘도 달력에 하루를 지웁니다. 하루하루 달력에 지우기를 하다보면 또 금방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이 오겠지요. 나이 들어 좋은 건 시간이 겁나게 빨리 지난다는 거니까요.




2021/07/23 <마음 편히 놀 수 있도록>

Jul 25 2021 3 mins  

갑자기 쏟아진 비에 아파트 앞에 차를 세우곤 빗물을 닦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옆집에 사는 초등학생 꼬마가 보입니다. 친구 세 명과 같이 있었는데 분위기가 심각해 보였습니다. “엄마가 이렇게 일찍 집에 올 줄 몰랐어. 엄마까지 있으면 우리 다 같이 들어갈 수 없어. 한집에 4명까지 밖에 못 들어가.” “그럼, 어떡해? 한명은 그냥 집에 가야 해. 아, 우리 집에 아이스크림이랑 젤리도 있는데...” “그럼, 할 수 없다. 가위 바위보 로 정하자.” 결국 세 명은 ‘가위바위보’를 해서 세 아이는 이겼고, 진 아이는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습니다.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어느 날, 옆집에 지은이란 내 또래의 아이가 이사 왔고, 나는 그 애와 친하게 지냈습니다. 변변한 자기 방이 없었던 지은이와 내가 마당이나 마루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있으면 지은이네 엄마는 장바구니를 챙겨들고 나가셨습니다. 그러면서 “아줌마, 시장 갔다 올 테니까 너네, 밖에서 속닥거리지 말고, 안방에 들어가서 놀아. 알았지?” 그렇게 지은이네 엄마는 시장에 갔다 오시거나 마당에 앉아 한참 동안 나물을 다듬으시거나, 책을 읽기도 하셨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나와 지은이가 마음 편히 놀도록 배려해 주신 것 같습니다. 나는 꼬마들에게 다가가 아는 척을 했습니다. “너, 아줌마 알지? 옆집 사는 아줌마!” “네. 안녕하세요?” “그래, 혹시 엄마한테 전화 좀 걸 수 있니? 아줌마가 엄마한테 전해줄게 있는데....” 옆집 꼬마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서 나를 바꿔 주었습니다. “아, 안녕하세요? 옆집이에요.” “어머, 안녕하세요? 그런데 무슨 일로? 우리 애한테 무슨 일 생겼나요?” “아니요. 그게 아니라, 사실은요.” 나는 옆집 꼬마의 상황을 이야기 하고는 “저희 집에 오셔서 차 한 잔 하시는 거 어떨까요?” 라고 하니 “아휴, 안 그러셔도 되는데....그럼, 체면 불구하고 폐 좀 끼칠게요.” 그렇게 꼬마의 엄마는 우리 집에 와서 차를 마시게 되었고, 꼬마와 친구들은 2시간 동안 누구 하나 마음 상하지 않고 잘 놀다 집에 가게 되었답니다.



2021/07/22 <내 삶의 길목에서>

Jul 22 2021 3 mins  

며칠 전 대구에 사는 형님과 통화를 하면서 걱정스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주버님이 갑자기 몸의 이상을 느껴 병원 가서 심전도 검사를 받았는데, 빨리 큰 병원으로 가라고..그래서 대학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기로 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래서 남편에게 아주버님에게 전화 한 번 해보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아주버님과 한참동안 통화를 하는 남편은 결국은 스트레스 때문일지도 모르니, 가급적이면 걱정거리가 줄어들었으면 좋겠다며, 마음을 좀 편히 갖으시라고, 이번 참에 종합검진을 한 번 받아보시라며 전화통화를 끝냈습니다. 형님은 대학병원 가서 검사를 했는데, 뇌나 심장에는 특별한 이상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그런데도 가슴에 답답함과 통증이 밀려온다고 합니다. 대구에서 중국음식점을 운영하는 아주버님은 장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임대료와 관리비를 감당할 수 없어 애끓는 심정으로 하루하루 보내느라 힘드셨던 것 같습니다. 또한 오피스텔을 하나 계약한 것이 있었는데 등기가 떨어지지 않아 속을 썪인다고 했습니다. 건설사에서 일이 잘못됐는지 개인적으로 등기를 받을 수 없는 상태라, 세입자에게 전세금대출을 받아 주는 조건으로 계약을 했는데 등기를 못 내고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사정이라고 이번에서야 알게 됐습니다. 또한 가까이 사는 아들의 걱정거리도 알게 되어 아주버님의 마음고생이 그간 컸음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심적인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임을 주변에서 많이 들어 알고 있는데, 그동안 고생고생하며 지내다가, 심적인 어려움이 겹쳐 생기니 몸이 견디는데 한계가 왔다 싶습니다. 백세시대라고 하는 요즘, 내발로 다니고 내손으로 먹을 수 있고, 주변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건강을 지니며 살아야 하는데, 혹여나 그렇지 못할까 염려스럽기만 합니다. 오래 사는 것이 복이 아니라, 건강하게 사는 것이 복임을, 또한 그렇게 살기를 간절히 희망합니다. 주변 사람들 모두 건강을 잃지 않고, 나이 들어가면 정말 좋겠다라는 생각이 간절하게 드는 요즘입니다.



2021/07/21 <오늘도 걷는다.>

Jul 21 2021 3 mins  

수진 언니를 만난 건 10년 전 모 박물관대학에서 우연히 옆자리에 앉게 되고 부터였습니다. 70을 넘기셨고 고등학교에서 독일어를 가르쳤는데 정년퇴임하고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 박물관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등록했다고 했습니다. 학생들을 가르쳐서인지 멤버들을 잘 챙기고 먹을 것도 자주 만들어 오니 인기 짱 입니다. 언니는 걷는 모임에도 적극 활동하고 있습니다. 동호인들과 국내는 물론 해외로 나가기도 하는데 6년 전에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비롯해 포르투갈, 독일, 프랑스, 영국, 일본, 중국을 가기도 했는데 코로나가 창궐하자 작년부터 한 달에 한 번 꼴로 동해안 해파랑 길 구간을 팀원들과 걷는다며 톡으로 사진을 보내왔습니다. 언니 남편은 70대 중반이신데 가끔 모임에 나가 보면 부인들이 아파서 약 먹는 얘기, 수술한 얘기, 치료받는 이야기를 하는데, 우리 집사람은 전국을 수시로 걸어서 건강하다고 자랑하니 벌금을 내라고 했다고 합니다. 저는 중2 때 아버지 따라 등산을 시작했는데 퇴약 볕을 머리에 이고 20k 넘는 배낭을 맨 혹서 훈련, 30-40cm 무릎을 덮는 눈밭에서 적설기 훈련을 밥 먹듯 해서 인지 웬만한 더위와 추위는 타지 않는 편입니다. 그리고 28살 되던 해 집 근처에 요가원이 생겨 다니다 보니 60대 중반인 지금까지 하고 있습니다. 기초부터 착실하게 배우며 몇 년 하다 보니 남 앞에서 가르치게 되었고, 결혼하고 아이가 어느 정도 컸을 때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는데 작년 2월부터는 코로나로 수업을 못하고 대신 매일 2-3시간씩 걷고 있습니다. 덥다고 춥다고 핑계대고 운동을 안 하면 노화는 빨라지고 몸 안에 독소가 쌓이면서 기능이 저하되어 노년의 건강을 해치기 쉽습니다. 코로나와 더위로 집 콕만 하지 말고 적당히 시간을 내어 운동을 하면 면역력도 높아지고 삶의 질도 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나이 들면서 더욱 건강이 우선입니다.
















2021/07/15 <밥 먹자>

Jul 16 2021 3 mins  

밥 먹자,,,,이 말을 들어본지 언제쯤인지 기억도 가물가물하네요. 그런데 아침에 출근하는데 ‘딩동, 점심 먹자.. 엄마가 택배 보내줬어’ 라는 친구의 문자 한통.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전에는 가끔 엄마가 보내주신 택배반찬으로 같이 모여 밥을 먹었는데 근 일 년이 넘도록 모이지 못했습니다. 입가에 미소가 번지면서 발걸음이 가벼워집니다. 오전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후딱 가버리고 우린 친구 집에 모였습니다. 솜씨 좋은 친구엄마께서 이것저것 친구들과 나누어 먹으라고 푸짐하게 보내주셨네요. 따끈한 밥에 양념 냄새가 폴폴 풍기는 배추겉절이를 얹어서 먹는데 꿀맛입니다. 쌈장에 싸서 먹는 호박잎 찜도 최고이고, 알맞게 잘 익은 열무물김치와 아삭이 고추, 들깨머위볶음, 곤드레 된장국,,,고등어 묵은 지 찜, 절로 맛있다 말이 나오면서 엄지 척...우리 집에서도 가끔 내가 해서 먹는데 이 맛이 나지 않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허리띠 풀어놓고 우린 하하 호호 웃어가면서 배부르게 맛있게 잘 먹고 어머니께 고맙다는 인사까지 드렸습니다. 친구가 둘이 먹기에 좀 많다며 이것저것 조금씨 싸주니 밥 잘 먹고 반찬까지 덤으로 얻어왔답니다. 가끔 이렇게 모여서 보내주신 반찬으로 먹을 때마다 고맙고 감사한 마음에 언제 올라오시면 맛있는 것 사드릴 테니 올라오시라고 해도 말씀만 알았다고 하시곤 올라오셨다가가 금방 내려가셔서 아직 한 번도 대접을 해드리지 못했는데 코로나가 좀 물러가면 꼭 어머니 모시고 맛있는 것 사드려야겠습니다. 역시 엄마 솜씨는 어딜 가나 최고입니다,,,






























2021/07/03 <내 삶의 길목에서>

Jul 04 2021 3 mins  

12년이라는 세월이 지나도 머릿속에 절대 지워지지 않는 숫자가 있습니다. 아버지의 핸드폰 번호입니다. 아버지 살아 계실 적엔 기쁜 일이 있어도, 속상한 일이 있어도, 부모님 안부를 물을 때도 손이 가는 것은 항상 엄마 번호였습니다. 어쩌다 엄마의 핸드폰에서 아버지 목소리가 들리면 당황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멈칫 할 때가 많았습니다. 아버진, “엄마 핸드폰 놓고 잠시 나가셨다. 잘 사냐? 몸은 아픈데 없냐? 애들 키우랴 일하랴 고생한다.” 며 내 걱정을 하시곤 하셨지요. 속없던 그 때의 나는 “네 괜찮아요. 이따 엄마 오시면 다시 전화 드릴게요.” 하며 어색한 순간을 빨리 끝내려했습니다. 그 때는 왜 그랬을까? 아버지 번호를 누르는 게 왜 그리도 힘이 들었을까? 그 때의 죄스러움, 아쉬움, 그리움 등이 마음을 흔들 던 어느 날, 아버지에게 무척이나 전화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자식들이 전화 주기를 마냥 기다리셨을 그 아버지의 번호로 전화를 걸고 싶었습니다. 아버지 떠나시고 안 계시는 동안, 당신의 셋째 딸은 어느 새 훌쩍 세월을 먹어 아버지가 가족들에 대한 책임감으로 많이 힘드셨던 그 때의 아버지와 같은 나이가 되었고, 아버지가 그렇게 예뻐하셨던 손녀들은 원하는 대학에 다 들어가 잘 크고 있고, 작은 사위는 지점장이, 셋째 사위는 부장이 되었다고 그 동안의 이야기를 쫑알쫑알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아버지가 안계시니 세상 살아가는 재미가 없고, 아버지의 빈자리가 너무나 크다고 그리고, 자식들이 전화 주기를 얼마나 기다리셨냐고 전화 자주 못 드려 정말 죄송했었다고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엄마가 그러셨습니다. 아버지 핸드폰 울리는 날이 거의 없었지만 그래도 혹여 자식들 전화 올까봐 항상 허리끈에 차고 놓지 않으셨다고...살다 보면 가슴이 사무치게 먹먹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 시리고 시린 감정이 가슴을 정말 아프게 합니다. 오늘이 그런 날입니다. 아버지의 멋스럽고, 따뜻한 목소리 한 번만 들으면 참, 소원이 없을 것 같다.



2021/07/02 <친정집에서의 하루>

Jul 04 2021 3 mins  

요즘 농사일이 바쁜데, 일손구하기가 힘들다고 하셔서 아침 일찍 친정으로 향했습니다. ‘아이고, 멀리서 오느라 고생했네, 김 서방은 도시에서 자라 농사일은 힘 들 텐데..’ 걱정부터하시는 아빠는 밀짚모자, 장화, 작업복까지 꼼꼼하게 챙겨주셨습니다. 넉살좋은 우리남편은 아빠 손에 있던 삽부터 바로 이어받더니, ‘아버님, 제가 이래뵈도, 군대있을 때 삽질을 꾀나 잘했거든요. 힘든 일은 무조건 저를 시키세요.’ 합니다.그렇게 시작된 밭일..남편과 아빠는 양파를 캐고, 엄마와 저 그리고 우리딸아이는 햇마늘을 캐었습니다. 한 시간 정도는 거뜬하게 해냈는데 두 시간, 세 시간쯤 지나자 쪼그리고 앉았던 다리에서 쥐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엄마가 어느새 준비한 점심으로 콩국수를 먹고 다시 밭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많던 햇양파와 마늘도 다 수확하고 감자 캐기에 도전했습니다. 갑자기 딸아이가 ‘엄마. 감자가 땅속에서 주렁주렁 자꾸만 나와.’ 너무 신기해했고 개미알도 있다하면서 ~책으로만 보던 것들을 직접 보고 느끼는 것만으로 공부가 되었습니다. 아침부터 노을이 질 무렵에야 끝난 밭일.. 엄마는 사위와 딸 고운 얼굴 고운 손 망가졌다며 계속 미안 해 하시는데 솔직히 일을 끝내고, 호미질을 한 어깨가 너무 아팠고 손목이 후덜덜 물 컵을 들 기운이 없었습니다. 젊은 우리도 고작 하루일하고 이렇게 고달픈데 부모님은 긴 세월 어떻게 버티신 걸까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그래서 그날 저녁 온 가족 몸보신하자며 집 앞마당에서 소고기파티를 하며 하루를 마무리했습니다. 집에 돌아와 시골에서 가져온 햇 양파, 마늘, 감자를 정리하는데 부모님의 고생스런 시간이 다시 그려지며 차마 아까워서라도 먹지 못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부터라도 말로만하는 효도 말고 부모님의 손과 발이 되 드리는 효도를 해야겠다 다짐을 해봅니다.



2021/07/01 <안전이 우선이지요.>

Jul 01 2021 3 mins  

더워서 낮에는 문을 열고 지내는 철이라 리 모델링을 하거나 부분 수리하는 집이 있으면 소음에 시달리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이해하다가도 짜증이 날 때가 있는 건 코로나로 집 콕 하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겪는 일이지요. 며칠 전 그날도 날씨가 더운 날이었습니다. 아파트 단지 입구 고층에 어느 집이 이사를 가고 들어오고 이사업체 직원들이 구슬땀을 흘리며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가보다 했는데 저녁 준비 차, 장을 보러 나가는데 황색 조끼를 입은 소방관, 소방차, 순경, 앰블런스도 보이고 주민들이 웅성거리며 발을 동동 구르는 모습이 보입니다. 테이프로 펜스를 쳐 주민들 통행을 우회를 시키고 있었는데 작업하던 사다리차가 갑자기 공중에서 멎는 응급 상황이 발생해서 소방차 두 대가 출동한 것이었습니다. 단지가 넓어 우회해서 다니는 게 불편했지만 얼마 전 광주에서 건물 철거하면서 사고를 당한 직후라서 인지 모두불평 없이 돌아서 움직였습니다. "안전이 우선이지, 요즘 여기저기 안전 불감증으로 사고가 나서 무서운 세상인데 불편하다고 하지 말고 안전하게 수리할 수 있게 주민들이 조금씩 인내하고 이해를 합시다.'. "그럼요, 그래야죠, 빨이 보수를 해서 저분들도 작업 마치고 돌아가 쉬셔야죠." 연세 드신 분이 자원봉사 하시면서 주민들 이동 동선을 안내해 주었습니다. "더운데 수고 많습니다. 시원한 물 한 잔 드시고 하세요." 서로 격려해 주고 배려해 주는 가운데 시간이 꽤 지나서 다행히 사다리차는 원상복귀 되었고, 업체 직원들과 경찰, 소방관들은 각자 원위치로 돌아갔습니다. 말로만 듣던 아찔한 상활을 마주하고 보니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짧은 몇 시간이 어찌나 길게 느껴지는지... 날씨가 더워지면서 바다로, 계곡으로 휴가를 떠날 텐데 안전에 만전을 기하며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고 즐거운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021/06/27 <궁중떡볶이의 추억>

Jun 27 2021 3 mins  

그날은 시골 먼 친척 어른의 잔칫날이었습니다. 아침부터 곱게 한복을 차려입은 엄마는 6살인 나에게 신신당부를 하셨습니다. “오늘 얌전히 있어야 해. 뭐가 맘에 안 든다고 땅바닥에 드러누워서, 울고불고 하면 집에 와서 혼난다. 알았지?” “네~” 마지못해 대답을 한 나는 드디어 기대하던 잔칫집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잔치 음식들은 정말 맛있었습니다. 그중, 색색의 야채와 고기 속에 하얗고 쫀득한 뭔가가 숨어있는 음식을 먹게 되었는데 맵지도 않고, 짭조름한데 달달하기도 했습니다. 그것은 단번에 내 입맛을 사로잡았습니다. 나는 그 음식의 이름이 너무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옆에 있던 사촌누나에게 입 속의 것을 “아~” 하고 보여주며 물었습니다. “누나, 이게 뭐야?” “그거? 떡이야.” “떡?” 나는 그 음식의 이름이 ‘떡’이라는 것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화장실에 다녀온 순간, 누군가가 그 ‘떡’ 이라는 음식을 치워버린 것입니다. 나는 놀라서 엄마를 불러 ‘떡’이 어디 갔냐고 물었습니다. “떡? 얘는 집에선 줘도 안 먹던 떡을 왜 여기 와서 찾고 그래?” 엄마는 부엌으로 들어가 푸르죽죽한 덩어리 하나를 들고 나오셨습니다. “이거 맛있는 쑥 개떡이야.” “이거 떡 아니야.” ”나는 그 자리에서 벌러덩 드러눕고 말았습니다. “으아앙~ 떡 달라고, 떡!” “아니, 얘가 왜 이래? 여기 있잖아. 떡!” “아냐, 그거 아냐, 예쁜 떡 달라고” 당황한 엄마는 황급히 다시 부엌으로 들어갔고, 이번엔 빨 주 노 초가 들어간, 예쁜 덩어리를 들고 나왔습니다. “이건 예쁜 무지개떡이야.” 나는 아까보다 더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거 말고 떡 달라고~” 나는 그날 결국 엄마의 손에 이끌려 잔칫집 밖으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철이 들면서 나는 그날 먹은 음식이 ‘떡’이 아닌 ‘궁중떡볶이’였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음식의 이름을 ‘떡’이라고 가르쳐준 사촌누나를 친척 결혼식에서 만났습니다. 그녀는 뷔페에 나온 ‘궁중떡볶이’를 가리키며 내게 말했다. “저 떡 잡채, 맛있더라. 먹어봐.” 그러자 옆에 있던 매형이 “저게 왜 떡 잡채야? 저건 간장 떡볶이라고 하는 거야. 간장 떡볶이!” 친척들은 그날 내가 왜, 피식피식 웃었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






2021/06/25 <버리고 비우기>

Jun 27 2021 3 mins  

아직 날짜가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7월이 끝나기 전에 이사를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이사. 처음이라 설레기도 하고 막막하기도 합니다. 결혼하면서부터 살았던 여기, 오래된 아파트를 떠나 새로 지은 곳에 입주를 하게 되다니..새집에 처음 살아보는 거라 아이들도, 저도 어서 그날이 오기만을 고대하고 있지만..이삿짐 생각만하면 한숨이 절로 납니다. 얼마 전부터 조금씩 정리한다고 옷도 버리고 책도 버리고 하는데, 오늘 잠깐 싱크대를 뒤져보니 버릴 것이 금 새 하나 가득 쌓입니다. 쓰다가 바닥이 벗겨진 냄비나 프라이팬도 아까워서 쌓아두고 있고, 한번 쓰고 버리기 아까워 모아둔 일회용기도 한 가득이고, 반찬통도 찾을 땐 안보이더니 여기저기서 끝도 없이 나옵니다. 저기 구석의 높은 선반위에는 아이들이 아가 때 썼던 보온병이랑 도시락통도 나오고, 어디선가 받아온 플라스틱 물병은 쓰던 것 새것 합치니 열 몇 개나 됩니다. 처음엔 다 버리고 가려고 시작한 건데, 어느새 버릴 것 골라내는 손이 점점 망설이고만 있습니다. 그래도 이만큼 덜어낸 것에 만족해하며 이사 가기 전에 한번 또 추려내자ㅡ하며 물러났습니다. 내일은 서랍장을 한번 뒤집어야겠습니다. 그리고 베란다 창고도 한번 봐야겠고...제일 큰 문제는 큰딸 방인데...거긴 정말 하루 날 잡고 큰 맘 먹고 싹 비워야겠습니다. 버리고 비우고 가야하는데..아직 멀쩡한데 라는 생각이 자꾸 들어 멈칫하게 되는 나. 멀쩡해도 안 쓰니까, 필요하지 않으니까 비우자 라는 걸 명심, 또 명심하며 잘 정리해 가볍게 이사 가야겠다 싶습니다. 그리고 이사 가서도 더 채우지 말고 부족 한 듯 아쉬운 듯 그렇게 지내고 싶습니다.















2021/06/19 <내 삶의 길목에서>

Jun 21 2021 3 mins  

열심히 판촉행사를 하고 있는데, 낯익은 얼굴이 저 만치서 나를 보며 다가옵니다. "언니! 나야~~양순이. 언니! 정말 열심히 산다. 최고다." "어머! 양순이~그래, 나이가 드니 이름도 잘 안 떠오른다." "언니 아파서 쉰다고는 들었는데 또다시 일하는 거야? 혼자되었다는 얘긴 들었어. 힘들어서 어떻게 살아?" "사니깐 살아지더라고..이젠 담담해..모든 것에서 자유로워지려고 애쓰고 있어. 양순이 넌, 어때?? 남편이 잘 버니 괜찮지?" "괜찮긴 언니! 우리 집도 빚만 안고 살잖아. 남편 직장이 어떻게 될지 몰라. 요즘 뉴스에도 나오잖아. 법정관리에 들어가고 안 되면, 청산하게 될지도 모른데.." "그렇구나. 나도 어렴풋이 들어는 본 것 같은데 그쪽으로는 생각하기도 싫어서 말이지.." "그래서 언니, 나도 일을 해야 할 것 같은데, 언니네 사람 안 구해??" "아마 구할걸? 내가 알아볼게." 그렇게 양순이는 내 전화번호를 가지고 돌아갔습니다. 갑자기 깊은 한숨이 흘러 나왔습니다. 양순이의 남편과 전남편은 같은 직장을 다니고 있었습니다. 별로 듣고 싶지 않았던 소식을...게다가 회사가 안 좋은 상태라는 소식을 듣게 되니 다른 때 같았으면.. "천벌을 받은 거야~~나와 두 아이를 버리고 빚 만 지고 나간 몹쓸 사람..하늘이 벌을 주는 거야. 우리가 겪었던 고통을 한번 그대로 겪어보라지." 했었을 텐데...마음이 좋질 않았습니다. "엄마! 아빠회사가 정말 잘못 되는 거 아니에요? 엄마! 아빠가 정리해고 당하면 어떡해요?" 두 아이의 걱정소리에도 난, 화가 나기보단 걱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 때문에 아팠던 날들, 그 사람 때문에 슬펐던 나날들, 그 사람 때문에 고통 받고 힘겨웠던 나날들...다시 복구조차 못할 것 같았던 많은 상처들..근데, 시간이란 게 세월이란 게...흐르고. 흘러서.. 무디고 무뎌져 내안에서 치유하고 또, 치유되고 있었나 봅니다. 한 없이 밉기만 했던 그 사람이..이제는 안쓰럽고 불쌍하게 느껴졌습니다. 나하고는 남이 되어버린 사람이지만, 두 아이의 아빠이기에 그래도 힘내라고...나이가 든다는 것은 그렇게 익어가는 것인가 봅니다.






2021/06/17 <3개월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Jun 17 2021 3 mins  

3월부터 5월까지 물류센터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전국 각 대리점에서 올라 온 겨울의류 반품수량을 확인하고 같은 제품끼리 분류하는 일이었죠. 하루 종일 서서 하는 일은 처음이라, 처음에는 다리가 아프더니, 그 다음 어깨가 아프고 일주일이 지나니 손가락 마디마디가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온 몸이 뻐근한데 그래도 버스정류장까지 걸어가면 그나마 몸은 풀리곤 했는데 저녁이면 파김치가 되어 집에 오곤 했습니다. 힘든 일이었지만, 3개월 동안 잘 버티면서 일을 할 수 있었던 건 사람들 때문이었습니다. 20여명의 직원들과 30여명의 아르바이트생이 함께 일을 했는데, 누구도 일을 못한다고 타박하지 않았고, 손이 느리다고 잔소리하지 않았습니다. 할 수 있는 만큼 천천히 정확하게 하라고 했지요. 함께 일을 하는 거라, 내가 손이 느리면 다른 사람이 내 몫의 일을 더 할 수 있는데, 그 더하는 일에 대해서도 아무도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쉬는 시간에는 미숫가루며 녹차 물을 나눠 주고, 빵이며 샌드위치를 간식으로 주고, 틈틈이 사탕과 초코렛을 나눠 주는, 직원들을 참 잘 챙기는 회사였습니다. 아르바이트가 끝나는 마지막 날에는 1시간이나 일찍 마감을 하고, 사장님이 직접 오셔서 감사인사를 전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이 힘들게 일해 주셔서 빠르게 작업을 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모두들 몸 건강하세요.’ 하며 아르바이트생들에게 일일이 참기름 들기름 세트를 나눠 주셨습니다. 힘든 아르바이트였지만,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 보는, 많이 배운 3개월 이었습니다. 사는 곳이 모두 달라서 연락처를 주고받기는 했는데, 막상 같이 일했던 언니 동생들과 얼굴 보기는 쉽지가 않네요. 어느 곳에서 일을 하든 건강하길 바래봅니다. 코로나로 칸막이가 설치되어 있어서 함께 먹지는 못했지만, 즐거웠던 식당을 오고 가는 길, 그리고 솜씨 좋으신 주방 아주머니의 음식이 많이 그리운 요즘 입니다.






2021/06/15 <코미디언들이 사라졌다! >

Jun 16 2021 3 mins  

오늘부터 다시 책읽기를 꾸준히 하리라 생각하며, 책장을 넘겼습니다. (커트 보니것의 ‘나라 없는 사람’) 그러나,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특정한 몇 줄의 문장에 계속 머물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문장은 “나는 미국에서 코미디가 최고 인기를 누리던 시대에 자랐다. 대공황이 휩쓸던 시절이었다. 라디오를 틀면 언제나 최고의 코미디언들이 등장했다” 아~ 코미디언~~맞다. 나의 젊은 시절에도 많은 코미디언들이 웃음과 유행어로 내 삶의 일부가 되어주었는데... ‘웃으면 복이와요’ 라는 프로그램을 떠올리자, 코미디언들의 이름이 자동으로 되뇌어집니다. 구봉서, 배삼룡, 송해, 이기동, 이대성, 권귀옥... 매번 구봉서에게 핀잔을 받는 배삼룡은 어리석은 듯하면서도 결국에는 자기 나름대로 행복을 찾아내는 모습으로 보는 이에게 안심을 주었고, 후덕한 정으로 소통하는 송해는 원만한 캐랙터 역할을 다 했습니다. 배우 못지않게 잘 생겼던 이대성은 선한 이미지로 그 만의 매력이 있었지요. 나의 20대를 같이 했던 코미디언들은 주병진, 김형곤, 최양락, 김병조, 김미화 씨의 이름이 떠오릅니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 막막함에 힘들고 지쳤을 때, 그들은 나에게 좋은 쉼터가 되어 주었습니다. 주병진과 노사연의 콤비 연기는 배꼽을 잡고 방바닥을 뒹굴게 했고, 고 김형곤의 유행어였던 ‘잘 돼야 할텐데’ 하며 턱을 주먹으로 툭툭 치던 모습도 친근하게 느껴졌던 기억이 납니다. 한때, 여성들의 기를 끌어올려주는 테마로 인기몰이를 한 김미화씨의 ‘음메 기 살아’도 치마저고리에 일자 눈썹으로 독특한 캐랙터는 많은 이들이 따라하면서 즐거워했지요. 요즘, 코로나로 모두가 우울한 때라 그런지 웃을 일도 많이 줄어든 듯한데.. ‘웃음을 주는 사람들’ 의 설 자리가 점점 줄어든다는 것은 어쩜 웃을 일이 적어지는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는 의미가 될 지도 모르겠다 싶어 씁쓸하기도 합니다.



2021/06/14 <유월엔,, 사탕과 엄마>

Jun 14 2021 3 mins  

14살 딸아이 방에는 간식 통이 있습니다. 곰돌이 젤리부터 각종 사탕들이 가득 담겨 있습니다. “어떤 게 제일 맛있니?” 딸아이에게 장난을 치고 싶은 마음에 간식 통을 뒤적거리다 알사탕 한 알을 입 안 가득 굴려봅니다. 갑자기 돌아가신 엄마 생각이 납니다. 딱 요맘때.. 시골에서는 모내기로 분주했습니다. 논마다 가득 물을 대고, 어떤 논은 야리한 모판이 자라고 있고, 어떤 논은 하늘하늘 뿌리를 내려 운동회 만국기처럼 하늘거렸습니다. 해가 지고 어스름 저녁이면 낮에는 들리지 않았던 풀벌레 소리와 개구리 울음 소리로 동네 어귀는 밤새 요란했습니다. 챙 넓은 모자, 팔 토시, 체크무늬 남방과 꽃무늬 몸 빼 바지를 입은 엄마는, 긴 고무장화를 신고 남의 집 모내기를 품앗이 하러 다니셨습니다. 고무장화에 묻은 뻘을 씻을 겨를도 없이 손에 묻은 뻘만 급히 닦아내고는 주머니에서 한 움큼 사탕을 꺼내 내 방문을 열고 던져 주고 가셨죠. 모내기 하는 동안 받은 사탕 간식을 하나도 입에 넣지 않고 다 받아다 제게 갖다 주신 엄마..왜 그때는 엄마도 달달한 사탕을 먹고 싶을 거란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요. 사탕 하나 뜯어 입에 넣으면 쑤신 삭신도 잠시 풀렸을 텐데..허기진 배도 잠시 진정됐을 텐데.. 설탕이 오돌 도톨 붙은 왕사탕, 상큼한 청포도 사탕, 달달한 자두 맛 사탕,, 다시 그때로 돌아가 모내기 다녀온 엄마를 만나고 싶습니다. 뻘이 묻은 장화를 신고 나에게 사탕을 건네주는 엄마를 말입니다. 그러면 가장 달달한 자두 맛 사탕을 뜯어 엄마 입속에 쏙 넣어 드리고 싶습니다. 꼭 그리 해봤으면 좋겠습니다.








2021/06/11 <부모님 나라를 선택한 자랑 스런 딸>

Jun 13 2021 4 mins  

오전 시간 여느 날처럼 컴퓨터 메일을 열었는데 반가운 소식이 들어와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미국에 사는 한나 엄마에요. 지난주에 한나가 졸업을 했어요. 학생회장도 하면서 값진 경험도 쌓고 멋진 대학생활을 마쳤네요. 돌이켜 보면 지난 4년 동안 감사한 분들이 참 많았는데 이렇게나마 꼭 소식 전해드리고 싶었어요. 이번 졸업과 동시에 국무부에서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선발 돼, 내년 일 년 동안 한국 중,고등학교에서 문화 교류와 영어를 가르치게 되었는데, 다른 국가를 지원할 수도 있는데 짧은 시간이었지만 한국에서의 기억이 좋았다고 다시 선택하게 됐다고 해요. 저나 한나의 고국 첫 방문이 따뜻하고 소중한 추억이 되도록 챙겨 주셨던 고마움도 잊지 않고 있어요. 내년에 방문 기회가 생기면 꼭 한번 다시 뵙고 싶어요.’ 2018년 봄, 저희 집에서 6주 홈스테이하고 돌아간 그레이스 김이 보낸 메일이었습니다. 88서울 올림픽이 끝나고 양쪽 가족이 미국으로 이민 가서 한국에 들어온 적이 없는데, 대학 다니는 딸이 모기업 후원으로 단기 어학연수를 오게 되어 잠시 인연을 맺었습니다. 부모님 나라가 어떤 곳인지 관심과 호기심으로 똘똘 뭉친 대학생 한나 김은 한국어도 유창하게 잘 했고 친구들 사이에 인기가 많았습니다. 81개국 나라에서 유학 온다는 남부의 하버드라 불리는 대학에서 한국계 학생이 총 학생회장을 했으니 대단한 거죠. 이번에 풀브라이트 장학생에 뽑혀 한국을 지원했다는 게 부모님도 저도 너무 고맙고 기쁘다고 문자를 주고받았습니다. 6주 과정이 끝나기 이틀 전, 한나 어머님이 30여 년 만에 고국을 방문했고 마지막 날 저희 집에서 저녁식사를 같이 했는데 된장찌개와 불고기, 잡채, 김치에, 막걸리로 건배를 하며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안 된다며 울고 웃던 추억이 있습니다. 딸이 부모님 나라에 문화 교류와 영어를 가르치겠다고 해서 자식 키운 보람을 느낀다고 했습니다. 이제 내년, 한나 킴의 한국에서의 멋진 활약을 기대합니다.













2021/06/06 <내 삶의 길목에서>

Jun 06 2021 3 mins  

며칠 전, 대구에 사는 동서가 울먹이며 전화가 왔습니다. "형님" "그래 동서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동서는 잠시 동안 흐느끼며 울기만 합니다. ’그래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속상하면 울면 속 후련하고 시원하지.‘ 저는 한참을 핸드폰 속으로 흐느끼는 동서를 말없이 기다려 주었습니다. "형님, 미숙이 아빠가, 작년부터 허리도 아프고, 소변도 잘 안 나오고 그래서 이번에 건강검진을 했는데 전립선 4기 라고, 수술도 해야 한답니다.’ 시동생이 전립선 4기 라고 하는 순간 머리가 아찔했습니다. ‘에궁! 어떡하니, 힘 내거라. 동서야. 수술하고 치료받으면 좋아질 거야! 동서가 곁에서 위로의 따듯한 말도 해주고, 힘 들 땐 부부가 최고야." ’형님 가슴이 무너지고 터질 것 같아요.‘ ‘그래 동서. 동서 맘 알 것 같아. 울지 말아. 인생을 살다보면 때론 비도 맞고, 눈도 맞고, 먹구름 소낙비도 맞고 그렇게 넘어지고, 그러다 또 다시 햇빛 쨍쨍 오뚜기처럼 일어나기도 하지. 그래도 이런 일은 없으면 좋았겠지만 어떡해. 할 수 없잖아. 요즘 의학이 좋아서 수술하고, 치료 잘 받으면 금방 회복 될 거야. 젊으니까 괜찮아!’ 그렇게 위로를 하고 전화를 끊고 한참을 거실 식탁에 주저앉자있자니 저 또한 맘 넘 아프고, 쓰려 한참을 울었습니다. 혼자말로, 어쩌다 그 지경 될 때까지 몰랐을까, 시동생 도움을 줄 일이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가, 여행 가려고 형제들 매달 모아 논 회비생각이 났습니다. 통장을 꺼내어 보니 그래도 꽤 모였습니다. 주말에 형제들한테 통화를 해서 시동생 도와주기로 하고 그렇게 통장과 도장을 시동생 부부를 만나서 전달을 했습니다. 우리 멋진 시동생이 전립선 수술 잘 되기를, 그리고 수술 후도 빠른 회복되기를 기도합니다.













2021/06/01 <나와 함께 춤을>

Jun 01 2021 3 mins  

이상했습니다. 분명,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런 상황은 용납이 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다니는 곳에서, 삼삼오오 모여 운동을 하는 곳에서, 음악을 틀어놓고 춤을 추다니... 예의가 없는 사람이라고, 옆에 있는 남편에게 흉을 봤을 겁니다. 그런데, 그날은 그 장면을 아주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해가 기울고, 땅거미가 세상을 다 덮었고, 가로등이 조용히 주위를 밝히는 시각. 저녁을 먹고 운동을 하자고 나간, 무학산 초입의 정자 앞에서였습니다. 60대 후반에서 70대 초반쯤이었을까. 남편은 앉아서, 아내가 훌라후프를 돌리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꽤, 오랫동안 훌라후프는 아내의 허리에서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뻐꾸기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주 가까이에서.. 남편이 손을 모아 입으로 소리를 만들었고 "뻐꾹뻐꾹" 아내의 훌라후프는 여전히 돌고, 남편은 소리를 내려놓고, 딸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손자와 동영상으로 통화를 했는데 요란스럽지 않았습니다. 일상의 안부가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 아내는 훌라후프를 내려놓고 춤을 추기 시작했습니다. 핸드폰 동영상에 맞추어서 사교댄스 중의 하나 인거 같았습니다. 꽤 오랫동안 춤을 춘 듯, 동작 하나하나가 매끄러웠습니다. 마치 둘이 추는 듯, 호흡이 잘 맞았습니다. 가슴 저 깊은 곳에서 울컥. 아름다웠고, 멋있어보였습니다. 불과 얼마 전만해도, 쑤군거렸을 그 모습 앞에서 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벅찬 감동으로 숨죽이며 바라보았습니다. 바라봄의 시선이 달라졌을까요? 젊은 이보다는 이제는 중년의, 노년의 일상을 더 자세히 보게 됩니다. 그들의 깊이를 보게 되고, 그들의 짙은 세월의 흔적을 살피게 됩니다. 그렇게 시선이 옮겨가고 있습니다. 운동을 마치고, 집으로 오면서 남편에게 기회가 되면 같이 춤을 배우자고 했습니다. 남편은 그냥, 웃었습니다. 언젠가, 같은 방향을 바라보면서 열심히 걷다가 멈춰서, 마주보는 시간이 많아질 때. 그 때는 두 손을 마주잡고 춤을 춰볼까. 그렇게 해볼까 싶습니다.




2021/05/31 <옆집 할머니>

May 31 2021 3 mins  

옆집 할머니는 세상 무뚝뚝하십니다. 얼마 전엔 상추를 담 너머로 휙~ 던져 주시며 "쌈을 싸서 먹든, 겉절이를 해서 먹든, 맛있게 해서 먹어봐" 하시고 또 얼마 전엔 "할일 없으면 우리 집에 와서, 저 뒤뜰 버찌나무에 열린 버찌나 따가서 먹어...난 허리 아파서 도와줄 수가 없응께...다~ 따 가" 하십니다. 처음엔 할머니의 성난 말투에, '나에게 화가 나셨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허나 시간이 조금씩 지나...할머니의 말투에 익숙해질 무렵...할머니의 속마음은 따뜻한 분이란 걸 알게 되었습니다. "어이 어이~" 아니나 다를까...어제, 할머니는 담 너머로 또 나를 부르시며, 뭔가를 또 던져주십니다. "할머니! 이게 뭐에요?" "입 아프게 뭘 물어봐! 눈이 있으면 보면 알거 아녀? 더 먹고 싶으면 말혀...겁나 많은께" 하십니다. 그제 서야, 우리밭쪽으로 떨어진 게 뭔가? 하고 보니, 완두콩이었습니다. 마당에 불을 지피고...불판 위에 완두콩을 올려놓으니 아이들은 캠핑이라도 온 것 마냥 신이 나서 엄지 척을 계속 날립니다. 할머니 덕분에 우리 입은 호강이지만, 매번 이렇게 얻어먹으니, 마음이 편치 않은 건 사실입니다. '고마운 할머니께 무얼 드리면 좋을까?' 고민하다가...오후 3시 무렵부터, '소소한 분식집'을 열어보기로 했습니다. 아이들 간식도 만들 겸, 옆집 할머니께 감사의 마음도 전할 겸, 첫날은 옆집 할머니가 주신 가래떡을 활용해서, 떡볶이를 만들었습니다. 씩씩한 첫째에게 떡복이 배달을 시켰습니다. 다녀온 첫째는, 할머니 낮잠 시간이라, 마루에 떡볶이를 올려놓고 왔다고 합니다. 이제는 오후 3시만 되면, 아이들은 자기들 간식거리 챙기기보다, 옆집 할머니 간식 챙기기에 바쁩니다. 텃밭에서 일군 귀한 것들을, 사시사철 늘 우리에게 나눠주시는 옆집 할머니 덕분에 나와 아이들은 그 귀한 것들을 맛있게 잘 먹고 마음도 키도 쑥쑥 키웁니다. 어제는, 늘 시크하시던 할머니가, 담 너머로, 우리가 만들어서 드린 감자피자 전을 드시며 말씀하십니다. "맛나! 겁나 맛나당께! 고마워"할머니의 수줍은 웃음이 봄 같아서, 마음이 흐뭇했다.












2021/05/26 <이미 너무 많이 가졌다>

May 26 2021 2 mins  

젊은 날 녹음해서 듣고 다니던 카세트 테이프를 꺼내 듣다가 까맣게 잊었던 노래 그 노래를 좋아했던 시간까지 되찾고는 한다 그러니 새 노래를 더 알아 무엇 하나 이미 나는 너무 많은 노래를 좋아했고 그 노래들은 내 한 시절과 단단히 묶여 있는데 지금 들으면 간주마다 되새길 서사가 있어 귀에 더 두툼하고 묵직하니 이제, 모아둔 음반, 가려 녹음해둔 테이프를 새겨듣기에도 내 세월이 넉넉하지 않음을 안다 옷장을 열어보면 기워 입지 않고 버리는 부유한 세상으로 건너오며 한 시절 내가 골라 입었던 적지 않은 옷들 오늘 내 생애처럼 걸려 있거나 쌓여 있다 다 아직 입을 수 있는 옷들 반팔, 반바지는 헌 자리 하나 없다 그러니 새 옷을 더 사 입어 무엇 하나 문득 열 해, 스무 해 전 옷을 입고 거리에 나서면 나는 그때 나이로 돌아간다, 그렇게 여긴다 사진첩 속에 멎어 있던 젊은 내가 햇살 속을 활보한다 새 사람을 사귀어 무엇 하나 내가 챙기지 못해 멀어진 사람들 아직도 할 말, 들을 말이 남은 헤어진 사람들 옛 주소록 여기저기 간신히 남아 있다 아주 늦기 전에, 그들을 찾아 지난 세월의 안부를 물으며 위로하고 위로 받고 거듭 용서를 구하기도 하고 간혹 용서하기도 하면서 우리가 낳지 않은 사람들의 안부를 알아볼까 그 이름을 낮게 불러볼까 이희중 시인의 어느 날 서랍장에서 발견한 사진 한 장, 그 속에서 웃고 있는 그리운 얼굴을 봅니다. 어디서 무얼 하며 어떻게 살고 있나 싶어 앨범도 찾아보고, 낡은 수첩도 뒤적여보고, 편지함까지 뒤져서 찾아 낸 전화번호. 하지만 그간의 무심함에 미안한 마음이 앞서 선뜻 연락하지 못하고 번호만 만지작거립니다.


2021/05/26 <이번 주 토요일 시집가는 딸이>

May 26 2021 3 mins  

저는 어릴 때부터 부모님과 함께 저녁스케치를 들으며 자랐습니다. 그런 제가 어느덧 스물아홉이 되었고 이번 주 토요일에 결혼을 합니다. 결혼 전 엄마에게 소중한 추억을 선물해드리고 싶어서 이렇게 사연을 보냅니다. 저 열두 살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엄마 혼자 저를 키우셨습니다. 지금은 은퇴하셨지만, 거의 26년을 저를 위해서 고생 하셨습니다. 결혼준비 하면서 정신없이 지내다보니, 어느덧 결혼식이 코앞으로 왔더라구요. 평생 엄마는 저를 위해 사셨는데 저는 그렇지 못한 거 같아서 엄마한테 너무 죄송하고, 엄마만 두고 가는 거 같아 맘이 너무 아프고.. 결혼을 꼭 해야 하나 맘이 싱숭생숭하기도 합니다. 저번에는 "엄마 뭐 필요한 거 없어?" 라고 물어보니, 엄마가 "시집가기 전에 아스파라거스나 하나 사 놓고 가~"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아스파라거스라는 식물을 찾아보는데 꽃말이 너무 외로워 엉엉 울었습니다. 아스파라거스의 꽃말은 '불변'이더라구요. 엄마가 저를 생각하는 맘도, 제가 엄마를 생각하는 맘도 불변이라 생각하니 그래도 선물을 잘 한 거 같습니다. 엄마도 저 결혼한다고 제가 좋아하는 보라색 꽃들로 꽃다발을 주시면서 편지도 써 주셨습니다. 내가 엄마에겐 힘든 삶을 버티게 하고, 그 힘든 삶 속에서도 숨을 쉬게 해주는 존재였다고 하시는데 우리 엄마, 아빠의 빈자리를 채우려, 부족함 없이 저를 키우시느라 그동안 얼마나 외롭고 고단했을지 이제야 알거 같습니다. 이젠 그 고단함 다 내려놓고 행복하게 꽃길만 걸을 수 있도록 효도하며 행복하게 잘 사는 모습 보여드릴 겁니다. 멋지고 예쁜 우리엄마 저를 낳아주셔서, 저의 엄마가 되어주셔서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엄마, 나 시집가도 예쁜 딸로 영원히 엄마 지켜줄 거니까 나 떠난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엄마가 오지 말라고 할 정도로 자주 올 거예요! 지금처럼 건강하게 내 옆에서 오래오래 계셔주세요! 엄마 많이 많이 사랑해요!!!..



2021/05/25 <사장님, 어르신>

May 25 2021 4 mins  

오랜만에 동네 마트에 갔더니 여사장님이 요새 왜 자주 안 왔냐고 물으십니다. “좀 바빴어요. 그런데 사장님은 마스크 썼는데도 제 얼굴 기억하시네요?" ”손님들 중엔 할머니, 아줌마, 이봐요. 어이, 그러는데 댁은 나보고 꼭 사장님~, 사장님~ 그러잖아. 기분 좋더라고." 하십니다. 자주 가는 생선가게에서도 제가 가면 늘 사정없이 깎아 미울만한데도 요새 안 보였다며, 궁금해 하십니다. 속으로 ‘생선 값이 많이 비싸졌네? 좀 깎아달라고 할까?’ 고민하다가 ‘에이, 요새 남는 것도 없을 텐데..“ 라며 평상시완 다르게 말없이 주시는걸 보고만 있었더니 사장님이 "오늘은 왜 안 깎아요? 이상하네?" 합니다. "누가 그러던데 상대방을 돈 벌게 해줘야 저도 번대요." 하니 하하 웃으십니다. 그러더니 생선 값에서 오백 원을 빼주시네요. “내가 손님 그 말 한마디에 기분이 좋네. 자, 오천만원 빼드렸으니 손님도 부자 되고, 나도 부자 됩시다.” 몇 년 전, 남편이 거래처에 갔다 오더니 표정이 무척 안 좋았습니다. “거래처에서 무슨 일 있었어요?” 라고 물으니 거래처에 갔는데 사장은 없고, 그 아들이 있더라고? 그런데 ‘어이! 물건 값 좀 빼줘 ’ 라고 했다는 겁니다. 한참은 어린 앤데, 억지로 화를 참았다고 무조건 가게에 가면 나이가 많든, 적든 간에, ‘사장님’이라 하고, 연세가 좀 많으신 분들께는 무조건 ‘어르신’이라고 하라며 당부를 합니다. 동네 언니는 동생식당에서 도와주는데, 마침 아들 친구 엄마가 왔답니다. 친한 사이는 아니지만 얼굴도 아는 사이였는데 "아줌마" 라고 했다며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분개해 합니다. 시골에 계신 시어머님 연세가 올해 93세십니다. 그곳 마을 회장님 연세가 60대십니다. 그런데도 마을 회장님께 “회장님, 이건 이렇게 좀 해 줘요. 저건 저렇게 좀 해봐요.” 라며 깎듯이 존대를 붙입니다. 저는 오늘도 연세가 있으신 분들은 무조건 ‘어르신’. 가게를 가면 알바 생이건 누구건 무조건 ‘사장님’, 어리고 예쁜 아가들은 무조건 “귀염둥이들‘ 이라고 부른답니다. 그래서 그런지, 제가 가면 사과도 주시고, 가격도 깎아주시고, 반갑게 맞아주시는 거겠지요?


















2021/05/18 <세월이 흘러도 잊히지 않을 소중함>

May 19 2021 3 mins  

햇살 좋고, 그리고 바람에 실려 오는 아카시아 향이 행복함을 느끼게 해주는 오후입니다. 쫒기 듯 살다보니 정작 살면서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사는 건 아닌가 싶을 때가 많습니다. 어버이날이었던 며칠 전. 두 아들이 집에 오겠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전 날은 출근하지 않고 아이들과 함께 식사할 수 있다는 기쁨에 반찬 만들고 메뉴도 간단하게 정리 했습니다. 비어있던 아이들 방과 화장실, 베란다 청소도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엄마가 너무 보고 싶었습니다. 고향이 시골인 저는 집에 내려간다고 하면 엄마는 "뭐 먹고 싶은 거 있는지 말해봐. 엄마가 다해줄게" 라고 하셨고, 비어있던 방에 보일러도 틀어놓으시고, 이불빨래도 하고, 방이며 마당청소도 깨끗하게 해놓으셨죠. 엄마 떠나신지 6년이 되어가는 지금. 엄마가 해주시던 겉절이김치, 닭볶음탕, 콩나물잡채, 팥 칼국수가 너무도 그립습니다. 잠시, 그리움에 젖어있다 베란다에 널 부러져 있던 화초들 정리를 하는데 나무 한그루가 죽어 있습니다. 이사 온 후로 영양제도 꽂아주고 햇빛 잘 드는 베란다로 옮겨주었는데도 말이죠. 장갑을 끼고 화분을 정리하는데 어찌나 뿌리가 단단하고 화분에 꽉 들어찼는지 빠지지가 않습니다. 미니 톱으로 잘라서 나이테를 보니 30년 동안 함께했던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순간 울컥해짐이 느껴졌습니다. 어버이날 찾아온 아이들에게 얘기를 하니 "엄마. 요즘엔 사람 목숨도 순간에 잃는 사고도 많은데 잊어버리세요." 합니다. 그런데 집에 들른 작은 녀석이 미니화분을 전해주며 "이 화분은 관리도 쉽고 잘 죽지 않는다니까 키워보세요" 하면서 화분을 전해주네요. 형 꽁무니만 쫒아 다니던 어린 시절의 녀석이 이젠 엄마마음을 다독여줄 줄도 아네요.. 행복이란 바로 이런 게 행복이 아닐까 싶습니다. 함께 할 수 있을 때 한번이라고 더 만나고, 표현할 수 있을 때 감추지 말고 내 마음 전하며 살아야겠습니다.



2021/05/17 <장모님과 추어탕...>

May 17 2021 4 mins  

내 인생에 가장 기억에 남는 만남이 있다면 우연히 들어선 교회에서의 장모님과의 만남입니다. 온화하면서도 조용한 성격의 장인어른에 비해 호탕하게 웃으시는 장모님의 웃음소리는 언제나 주변 사람들을 즐겁게 했고, 삶에 지쳐 있던 나를 웃게 했습니다. 부모님이 나의 든든한 울타리였다면 하루하루 허덕이듯 살아 온 내 삶에 있어 장인어른, 장모님 두 분은 늘 편안하게 기댈 수 있는 언덕이었습니다. 몇 년 전, 조카 결혼식이 있어 아내는 새벽같이 일어나 시골 어르신들에게 드릴 선물과 아버님이 즐겨 드시는 음식들을 준비해 본가로 내려가는 길이었습니다. 한 시간여를 달렸을까, 아내가 뭔가 하나 빠진 게 있다며 혼자 중얼거립니다. "아, 국거리를 빠트리고 왔네!" 차는 이미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던 터라 다시 돌아간다는 건 시간적으로 여의치가 않았습니다. 아내는 어쩔 수 없다며 본가로 들어가기 전에 추어탕을 사가지고 가자고 했습니다. 진주로 들어서자 추어탕 집으로 가 양손가득 들고 나오는데 왠지 모를 미안함이 오버랩 됩니다. 아내가 먼저 차에 오르는 틈을 나 장모님에게 전화를 드렸습니다. "장모님, 내일 추어탕 한 그릇 하실래요?" 하자 장모님은 "자네, 말만 들어도 고맙네. 그런데 뭣 하러 우리 내외까지 신경을 써!" 하십니다.. 다음 날 조카 결혼식이 끝나고 고향집 여기저기 수리할 곳, 꼼꼼하게 살피다 보니 어느새 해는 서산으로 기울고 있었습니다. 서둘러 아버님 저녁상을 봐드리고 아내와 장모님 댁으로 출발 했습니다. 이미 외출 준비를 마치신 두 분은 차 소리만 듣고도 달려 나오셨습니다. 추어탕 집에 도착해 차 문을 열어드리는데 장모님은 단아한 구두에 화산 꽃무늬 투피스를 입으셨고 장인어른의 팔짱을 살짝 끼셨습니다. 오랜만의 외출에 기분이 좋으셨나 봅니다. 두 분의 팔순을 앞두고 있던 터라 앞으로 이런 기회가, 얼마나 더 있을까" 싶었는데... 그 사이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도, 장모님도 하늘나라 먼 여행길에 오르셨습니다. 함박꽃 미소를 지으시는 장모님의 모습이 못내 그립기만 합니다.






2021/05/15 <정들었던 교직생활을 회상하며>

May 16 2021 3 mins  

저는 1975년 3월, 중학교 교사로 교단에 섰습니다. 미혼인데다가 스포츠를 좋아했던 저는, 수업이 끝난 후 아이들과 야구를 즐기며 사제 간의 정을 나누었습니다. 이 후, 서른둘에 결혼을 하고 부장교사, 교감을 거쳐 2008년, 중학교 교장으로 승진했습니다. 교장으로서 제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학생안전사고예방'이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체험활동을 갈 때나 전체조례 때 질서와 안전수칙을 잘 지킬 것을 늘 강조했습니다. 그런데 교장이 되고 몇 달 후였습니다. 학생들이 체험활동을 떠났는데 불과 한 시간 후, 학년부장 선생님으로부터 교통사고가 났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기러기 대열로 주행하던 버스들이 커브 길에서 서로 추돌했다는 것입니다. 아이들 여러 명이 부상을 당해 병원으로 이송되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저는 정신없이 사고현장으로 달려갔습니다. 사고버스는 충격으로 앞쪽 출입문이 심하게 구겨져 있었고 유리창은 통째로 깨져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입원한 병원으로 갔습니다. 열다섯 명의 아이들이 다쳤는데, 진단결과 큰 부상이 아니라는 의사의 말을 듣고서야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다행히 평소 강조했던 대로, 모두 안전띠를 잘 매고 있어서 큰 부상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멋진 제자들이 성장하는 것을 지켜보는 행복함도 있었습니다. 그해 가을에 '한국과학영재학교' 입시에서 다섯 명이 한꺼번에 합격하는 큰 경사가 있었고 음악에 소질이 있던 제자는 나중에 유명한 가수가 되기도 했습니다. 저는 2012년 8월에 38년 교직생활을 마치고 정년퇴직을 했습니다. 돌이켜보니, 학생들 모두에게 깊은 관심과 격려를 충분히 주었는지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그래서 몇 년 전부터 지역자원봉사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지역 내 아이들을 돕고 응원하면서 은퇴이후의 '소 확 행'을 즐기고 있습니다. 제가 하는 활동과 응원으로 많은 아이들이 꿈을 향해 힘차게 나아가기를 기대해봅니다.



































2021/05/01<유리창을 닦으면서>

May 02 2021 3 mins  

가게 문을 열고 창문을 보니 비가 내려 창문이 지저분합니다. 신문지를 비벼서 박박 닦았습니다. 잘 닦여지지 않는 곳은 입김으로 호호 불어가며 닦다보니 어느새 창문이 환하게 맑아졌습니다. 팔은 좀 아팠지만 기분은 좋아졌습니다. 이렇게 더러워진 유리창은 내 수고로 깨끗하게 될 수가 있는데 우울한 내 마음은 그 무엇으로 닦아내야 맑아질 수가 있을까...평소 잘 웃던 내가 요 며칠은 입을 굳게 다물고 있습니다. 누구와 말도 하기 싫고 내 생각에 빠져 헤어 나오지를 못하고 있었는데 유리창을 닦으면서 조금씩 더러움이 없어져가는 것을 보면서 그 무엇인가가 필요로 했던 거 같습니다. 그게 무엇일까,,,,,,그래...봄 꽃 보러 가자,,,,가게 문을 닫고 자전거를 타고 뒤 냇가로 갔더니 비가 내려 꽃잎이 다 떨어져버렸습니다. 자전거를 세워놓고 걷고 또 걸었습니다. 스쳐지나가는 풍경들이 나의 마음을 위로해주었습니다. 봄 향기를 담은 바람, 길옆 이름 모를 꽃들, 가지에 작은 새순들,,,,작은 가게 안에 혼자 꽁꽁거리며 앓지 말고 잠깐 이렇게 나와 보면 많은 것들이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무한정으로 주고있는데.. 참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리가 뻐근할 때까지 걷고 또 걸었더니 복잡했던 머리도, 답답했던 마음도 숨을 쉴 수가 있을 정도로 여유가 생겼습니다. 참 고맙다 세상에 그 어느 누구도 나의 이런 마음을 귀 기울여주지 않는데.. 풍경들이 나를 위로 해주네요. 살아가는 것이 다 거기서 거기겠지만 마음이 여린 나는 유독 더 힘이 드는 것 같습니다. 이제 다시 일상의 생활에서 열심히 살아봐야겠습니다.

























2021/04/21 <쁘라, 마이나>

Apr 21 2021 4 mins  

학교에서 줌으로 한창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오디오도 비디오도 꺼둔 채 이름만 둥둥~ 떠다니고 있는 학생이 있습니다. “OO아? 샘 말 듣고 있는 거니? 샘 목소리 들리면 대답 좀 해봐.” 아무리 불러도 응답은 없고, 친구들이 보내는 카톡에도 무반응...수업을 마친 후, 부랴부랴 교무실로 달려갔습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간신히 성공한 통화~! “OO아? 어떻게 된 거야, 무슨 일 있어?” 얼마가 흘렀을까요? 들려온 말은 잠에서 이제 막 깬 것 같은 웅얼거림과 횡설수설이었습니다. 혹시나 긴 시간 동안 이어지는 화상수업이 지루해 잠이 들었던 것인가 걱정하는 저에게 “다른 반 아이와 게임을 하다가 그만...” 너무도 정직한 그 말에 힘이 쑥~ 빠집니다. 밀려오는 피곤함에 잠시 넋을 놓고 있는데, 같은 교무실 선생님이 “여~러~분, 마이나가 쁘라로 전환되었습니다. 통장 확인하고 잠시 기쁨을 누리세요.” 라고 외칩니다. 다들 무슨 뜻인지 몰라 당황하고 있을 때 퍼뜩 떠오른 생각, 아, 월급날...선생님 말씀인 즉슨, 통장이 지금 막 마이너스 상태에서 플러스 상태로 전환되었으니, 잠시나마 기쁨을 누려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월급이 스치듯이 통장에 들어왔다 순 삭하는 게 저만의 일이 아니었나 봅니다. 과학 선생님다운 재치 넘치는 입담에 다들 배꼽을 잡고 웃었습니다. 잠시 피로를 잊고 마음껏 웃고 있는데, 다른 동료가 말을 이어갑니다. 휴대폰에 ‘통장 잔고 3천원! 잔액부족으로 정수기 렌탈비 결제 불가’ 라는 메시지가 뜨기에, 남편에게 통장으로 돈을 좀 넣어달라고 부탁을 했더니 잠시 후 남편에게서 돌아온 응답, 계좌로 5만원 보냈으니 아껴 쓰라고...500만원도 아니고, 50만원도 아니고, 고작 5만원에 아껴 쓸 게 뭐가 있냐고...한참을 깔깔대며 웃다 보니 어느새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다 보면 행복해지나 봅니다. 좀 피곤하고 힘들면 어떻습니까, 언제인들 우리네 삶에서 고단함이란 녀석이 영원히 사라질 때가 있을까요? 중요한 건 고단함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아니겠어요? 여러분의 통장 잔고는 어떠하신가요? 쁘라와 마이너가 교차하는 순간, 한바탕 크게 웃어보시지요. 냇킹 콜 & 나탈리 콜의 Love 부탁드립니다.










2021/04/17 <코 묻은 돈>

Apr 18 2021 4 mins  

그날은 정말 눈 코 뜰 새 없이 바빴습니다. 실수로 손도 베이고..밴드를 붙이고 장갑을 꼈음에도 부딪칠 때 마다 너무 아팠습니다. 게다가 냉동고에서 상품을 꺼내다가 머리를 찧어서 이마엔 멍이 들었습니다. 일을 마칠 때 쯤 큰아이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엄마! 언제 올 거예요?" "아니~~지금 엄마! 정말 바쁜데.." "저녁 안 드셨잖아요? 저희가 회사근처 가서 기다릴까요?" "아니, 오지 마! 엄마, 지금 정말 바빠..왜, 전화 한 건데?" "아니 엄마가 저녁을 항상 안 드시고 오니깐..걱정 돼서요. 그럼, 집에서 기다릴게요." 다른 직원들이 퇴근을 하고 한참 지나고 나서야 20분을 절뚝거리며 걸어 버스에 타니 장갑 속에 감추어졌던 손가락에서 피가 나와 하얀 장갑을 적셨습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신으로 흐르는 피곤함이 온몸을 아프게 만들었고, 배에선 꼬르륵 소리가나며, 머리까지 어지러웠습니다. 창가에 머리를 기대고 오는데, 서러움이 복받쳐 흐릅니다. "아, 너무 힘들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 아픔에...슬픔에..터벅터벅 파김치가 되어 집 현관문을 열었습니다. "어마마마~~오셨습니까? 오늘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큰아이가 내 백을 받아들고, 작은아인 가스렌지 앞에서 바쁘게 움직입니다. "어~~이게 미역국 냄새 같은데?" "오늘 엄마 생신이잖아요~~빨리 손 씻고 오세요." 나도 잊고 있었던 음력생일을 두 아이가 챙긴 겁니다. 이미 식탁엔 케익과 와인..그리고 미역국이 있었습니다. "뭐야, 그런 줄도 모르고 아까 화냈잖아..미안해서 어떡해." "맛있게만 드셔주시면 됩니다요." 아이들이 불러주는 생일축하노래! 그리고 "짜잔~~엄마! 이건 우리 둘이 마련한 생신선물예요." 이어폰 한쪽이 망가져서 테이프로 붙여서 썼더니만, 그게 보였나봅니다. 새 이어폰과 두둑한 현금봉투를 내밉니다. 봉투엔 "코 묻은 돈!" 이라고 써 있습니다. "코 묻은 돈 이라고.. 이걸 엄마가 어떻게 써." "맛있는 것도 사드시고, 봄도 됐고 하니 예쁜 블라우스도 하나 사세요." 내가 너무 아이들 앞에서 돈돈 했나? 싶으니 민망하고 미안했습니다. 아장 아장 걸으며 "엄마!" "엄마" 부르던 어린 시절 두 아이가 생각 나며, 감동의 눈물이 흘렀습니다. 두 아이가 내 생일선물로 준 코 묻은 돈은 아마도 평생 날 위해선 절대로 못 쓸 것 같습니다.


















2021/04/10 <이름>

Apr 11 2021 3 mins  

나는 내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정애. 너무 여성스런 이름 같고, 약한 것 같고..나는 평범하면서도 중성적인 이름이 좋았습니다. 유진이나, 정민, 선우.. 같은..약국에서 일을 하다 보니 많은 사람의 이름을 보게 됩니다. 연세 드신 어르신들이 대부분인데, 할아버지들은 그냥, 좀 특이하다 생각되는 성함을 가진 분도 계시지만, 할머님들 중에서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게 하는 성함을 가진 분들이 있습니다. 그중 서운ㅡ이라는 이름을 가진 분이 두 분 계시는데, 그 분들 성함을 보고 드는 생각은 딸이라서 서운하다고 이렇게 이름을 지으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 역시도 대놓고는 아니지만 첫딸을 낳았을 때, 둘째딸이 태어났을 때 시부모님의 은근한 아들바람을 느꼈었고, 뿐만 아니라 모르는 지나가던 어르신들께서 임신 중인 내 배를 보고는 아들 배라 하기도 하고, 뿌리 깊은 남아선호사상에 속을 끓이기도 했었는데, 그분들은 어떠셨을까요. 서운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섭섭했을 것 같은 생각을 하는 것 역시 편견이겠지만..반대로 정말 마음이 편해지는 이름도 있습니다. 귀님이라는 할머님도 계시고 소중이라는 할머님도 계시는데...귀님, 소중 그 집에서 귀하고 소중하게 자라셨을 것만 같은 이름이었습니다. 그분들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 이름, 우리 5남매 이름, 할아버지께서 손수 지어주신 이름이니, 흔하다고, 안 예쁘다고 불만만 가질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 세 아이, 다들 무난하면서 촌스럽지 않은 이름인데, 마음에 드는지 어쩐지 여태 한번 물어본 적이 없네요. 요즘은 개명하는 사람도 많긴 하지만, 어쨌든 우리가 정해준 이름으로 살고 있는 내 아이들. 어렸을 적 나처럼 별로 안 좋아하는 건 아닐까요? 우리 세 아이에게 이름이 마음에 드는지 물어봐야겠습니다.

























2021/03/31 <봄을 담은 화전>

Apr 01 2021 3 mins  

아빠는 가끔씩 아픈 엄마를 위해 드라이브를 하러 나가십니다. 주말에 저희 집에 오실 때도 아빠가 운전하고 엄마는 밑반찬 몇 가지를 해서 가져와 4살과, 9개월 된 손자를 봐 주곤 저녁에 집으로 가십니다. 엄마한테 건강도 좋지 않은데 아무것도 가져오지 말고 그냥 와서 아이들과 놀아주면 된다고 해도 두 애 보느라 잠이나 실컷 자겠느냐며 잠깐 눈이라도 붙이라 하십니다. 엄한 시부모 모시며 우리 세 자매를 어떻게 키우셨는지 부모가 되어 보니 엄마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드라이브 나가셨던 부모님이 시골에 다녀오셨다며 진달래 꽃잎을 수북이 따 오셨습니다. "엄마, 시골에는 진달래가 활짝 피었네요, 그런데 꽃을 꺾어 오지. 왜 꽃잎을 따오셨어요?" "응, 어릴 때 먹을 것이 귀해서 시골에서 진달래 꽃잎을 따서 부쳐 먹었는데 옛 생각이 나서 좀 땄어. 공해가 없는 곳이라 안심하고 먹을 수 있어. 냉장고에 찹쌀가루 있지," 김장 때 쓰다 남은 찹쌀가루를 꺼냈습니다. 아빠와 남편, 아들들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지켜보았습니다. 반죽을 하고 동그랗게 모양을 만들어 팬에서 노릇노릇 부치고 꽃잎을 올려 부친 뒤 소쿠리에 담아 식혔습니다. 노릇노릇 바탕에 진홍빛 진달래 꽃잎이 예술이었습니다. "엄마, 이거 아까워서 어떻게 먹어요." "예쁘지, 어릴 때 나눠 먹던 우리 친구들 생각난다. 서로 예쁘게 만들려고 경쟁을 하며 종알종알 수다를 떨고 그랬는데.. 지금은 아픈 친구도 있고, 저 세상 먼저 간 친구도 있고 그렇네." 쓸쓸 해 하십니다. "장모님, 음식 솜씨가 좋으세요. TV에서 몇 번 봤는데 먹는 건 처음이예요. 꽃잎 따러 일부러 시골에 가신 건 아니죠." "장모가 사위한테 점수 따려고 일부러 갔는데,ㅎㅎ." ‘엄마 건강도 안 좋으신데 늘 맛있는 반찬 해주시고, 주말마다 애도 봐주시고 넘 고마워요. 두 분 건강하시고 행복하게 오래오래 함께 해요. 사랑합니다.’
































2021/03/18 <내 마음에 남아 있는 사람>

Mar 18 2021 3 mins  

봄맞이 대청소를 하는데 귀한 액자가 나왔습니다. "7678m, 캉츙체에서" 산 친구의 싸인이 든 히말라야 에델바이스 7송이 액자. 3년 전에 놀러온 어린 조카가 “이모, 이거 무슨 꽃이에요.” “응, 에델바이스.” “예쁘네, 내가 가지고 싶어요.” “그건..,이모가 귀하게 여기는 사연이 있어서 미안하지만 줄 수가 없네.” 결혼 전 여성 알피니스트를 꿈꾸며 주말마다 암벽, 빙벽을 하며 전국을 다녔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다 37년 전 포항 내연산에서 생면부지의 여성 산악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금방 친해져 버너에 불을 피워 점심을 지어먹고 바위를 탔습니다. 자일을 내려주고 끌어올리며 땀범벅이 된 채 정상에서 상쾌한 공기를 맛보고, 저녁에는 그 분 집에 가서 숙식을 했습니다. 초면인데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내 고향 제주도 주소를 적어 주었고, 다음 해 제주 한라산에서 2박3일 산행을 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연말 직장 일로 나는 서울로 올라와 산에 가는 일은 잠시 접게 되었어요. 그러다 2년이 지난 어느 날 산 친구가 배낭을 메고 안국동 제 일터로 찾아왔습니다. 히말라야에 다녀왔다며 배낭 깊숙이 은색 테두리로 된 액자를 선물이라며 불쑥 내밀었습니다. 히말라야 등반 중 체력이 고갈되어 베이스캠프에 내려가는 도중 휴식을 취하는데 눈 속에 핀 에델바이스가 눈에 띄어 채취했다는 겁니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꽃의 생명력을 보며 살아 돌아가야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는 후배를 부둥켜안고 한 동안 말을 잊지 못하였습니다. 제가 무슨 복이 많아 생사의 갈림길에 있던 한 사람으로부터 이렇게 귀한 선물을 받나 싶어 산 친구의 혼이 담긴 액자를 고이 간직할 수밖에 없습니다. 20대 청춘이었던 시절, 한 때 마주친 인연, 지금 어디서, 아니 포항에서 계속 살고 있는지 무척 궁금합니다.









2021/03/15 <내 삶의 길목에서>

Mar 15 2021 4 mins  

1995년 학교 졸업과 동시에 잊고 지내다 1997년 나의 결혼식에서 한 번, 그리고 중간에 몇 번 만난 것 같고 그리고 거의 20여년 만인 2016년 3월 6일의 일요일, 정말 오랜만이었지만 어제 만난 것처럼 친구와 집 근처에서 보게 되었다. 어떻게 변했을까? 너무 늙어버린 내 모습을 못 알아보면 어떻게 하지? 전화를 끊고 잠시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참, 쓸데없는 걱정이었음을 지하철역에서 만난 친구를 보고 알게 되었다. 20년의 시간이 무색하게 우린 한 번에 알아보았습니다. 몇 시간의 만남동안 우린, 그 동안 잊고 지냈던 20년 전의 젊었던 친구와 나도 만나고 또한, 녹록치 않았던 20년이라는 세월도 열심히 살아왔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꽃 피는 봄에 다시 만나자 약속했는데 서로 애들 키우며 세월을 살다보니 또 잊고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며칠 전, 독일로 떠났다가 몇 달 전 한국으로 돌아온 남편 친구가 수소문 끝에 연락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저녁 먹으면서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딸들이 ‘엄마는 연락하는 학교 친구가 없는 것 같아’ 하는데 불현 듯 잊고 지냈던 친구가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혹시나 바뀌었을지 모르지만 저장된 번호로 전화를 했습니다. 전화에서 친구의 반가운 목소리가 들립니다. 여전히 그대로였습니다. 20년 전 그대로 아니, 이제 25년 전 그대로. 친구가 그럽니다. 우리 마지막 만날 때 ‘혹시 우리 쉰의 나이에 다시 만나는 건 아니겠지’ 했는데 정말 지천명의 나이에 다시 만나게 되었다고...약속을 정했습니다. 얼마나 설레었는지 모릅니다. 약속 당일 날, 잠시 인사만 하겠다며 남편과 두 딸들이 함께 나갔습니다. 친구가 ‘딸들이 엄마, 아빠를 똑같이 닮았다’ 며 반갑게 맞아 주었습니다. 피부도 백옥 같고 영어도 잘해 마냥 부러워했던 내 친구의 모습도 그대로였고, 애들도 잘 커서 참, 평안해 보였습니다. 이젠 많은 세월을 지나 만나지 말고 예쁜 꽃 피는 봄에 다시 만나자 했습니다. 이제는 꼭 그래야겠습니다.








2021/03/12 <지난해 10월20일>

Mar 14 2021 3 mins  

지난 가을에 코로나로 인해 취업을 하기 힘들어 지내다보니 구청에서 희망일자리 모집한다는 현수막이 길거리에 걸려 있는 걸 운동 다녀오다가 본 후에 구청에 신청해서 길거리에서 풀 뽑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10명이서 한조가 되어 아침에 출근하면 길 거리표 커피를 한잔씩 마신 후 풀 뽑는 일을 시작하는데, 한 시간 정도 한 후 공원 벤취에 앉아 쉬면서 동료들과 얘기를 나누는데 띵똥 문자가 오길 래 받아 봤더니 딸아이라면서 번호는 딸 핸드폰 번호가 아니었습니다. "엄마, 나 휴대폰 고장 나서 가까운 센터에 맡기고 인터넷 문자사이트로 보내는 거야, 뭔 일 있으면 이쪽으로 문자 보내." 였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진짜 딸 인줄 알고 "응, 알았어." 했지요. "안 바쁘면 부탁하나 해도 되?" 하길 래 "응, 해봐" 했죠. "내가 온라인으로 뭘 신청해야 되서 폰 인증해야 하는데 폰 고장으로 인증이 안 되서 엄마 거로 한번만 해줄 수 있어?" 하길래 "그래, 알았어." 했더니 "신청하려면 엄마 주민등록번호와 신용카드 앞, 뒷면 사진 찍어 보내 줘, 엄마 폰으로 인증 받는 거라 필요해. 부탁할게." 주민번호~ 문자로 보내라 하는 게 이상해 동료에게 말하니까 ‘보이스피싱’ 이라고 합니다. "이거 보이스피싱 이구만.." 그랬더니 그다음은 문자가 안 오더라구요. 딸에게 톡을 남겼더니 "엄마, 잘 했어, 문자로도 또 카드 쓴 것처럼 내역문자 오면 주소 클릭하거나 보내지 마세요." 라고 알려 줍니다. 이런 문자가 오면 보이스 피싱 사기 문자이니까 절대로 주민번호, 신용카드 사진 찍거나 복사해서 보내지 마세요. 동료가 말해줘서 그렇지.. 하마터면 다 날릴 뻔 했네요. 진짜 딸 인줄 알고 당황하게 되드라구요...그날만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떨린답니다.

























































2021/02/16 세상에, 봄이라니요

Feb 16 2021 2 mins  

그해 겨울에도 봄은 오지 않을 줄 알았지요 마음 바깥에도 마음 안에도 쩡쩡 얼어있던 고드름, 겨울을 건너 겨울이 오고 그 겨울을 거듭 건너고 건너 창틀에 반짝이는 봄을 보지 못할 줄 알았지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빙판의 겨울을 수없이 건너 세상에 봄이라니요, 다시는 영영 끝끝내 오지 않을 줄 알았던 봄이 부드럽고 하얀 깃털처럼 무거웠던 어깨에도 손등에도 몰래몰래 내려앉고 있었네요, 중요한 건 마음에 희망을 간직하는 일, 실오리만 한 희망이라도 끝끝내 놓지 않는 일, 봄이라니요 봄이라니요 혼잣말하는 당신, 눈 속에서 피어나는 복수초처럼 꽝꽝 얼어버린 얼음장 밑 숨을 죽이며 숨을 참으며 혹한의 겨울을 견디는 당신, 지금 울고 있는 당신, 울지 말아요 홍수희 시인의 겨우내 가로수가 입고 있던 뜨개 옷들이 이젠 좀 덥지 않을까 싶었는데 다시 겨울이 왔네요. 하지만 가로수 꼭대기에 잡힌 봉오리에도, 점점 늦어지는 해넘이 끝자락에도, 얼어붙은 마음에도 봄은 오고 있어요. 그러니 조금만 더 힘내요. 우리.







2021/02/14 택배는 사랑을 싣고

Feb 14 2021 3 mins  

"택배가 왔는데 김치 국물이 다 새서 잠깐 나와 보셔야겠습니다." 택배 기사님의 전화였습니다. 사무실이어서 나갈 수가 없으니 경비실에 맡겨달라고 해 놓고는 관리 사무소로 전화를 해서 자초지종을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친정 엄마께 전화를 했습니다. "엄마, 택배 보내지 말라니깐, 다리도 아프고 날도 추운데 뭘 반찬을 해서 보내고 그랬어. 지금 기사님한테 전화 왔는데 김치 국물이 다 샜다고 연락이 왔어요. 사무실이라서 가보지도 못하는데.." 그러자 엄마는 "아고, 엄마가 봉지를 여려 겹으로 해서 넣었는데 그게 터져서 어쩐다니. 너 좋아하는 굴 생채랑, 겉절이 조금 담아서 보냈는데.." 하십니다. 퇴근길 경비실에 들려 택배 박스를 간신히 집으로 들여와 싱크대에 털썩 올려놓고 박스를 열어보니 겉저리, 생채무침, 냉이, 콩조림, 깻잎짱아찌가 봉지 봉지 들어 있습니다. 대충 정리해놓고 맨손으로 생체 맛을 보니 시원한 굴 향기가 제가 너무도 좋아하는 거였습니다. 밥 한 그릇 뚝딱 비웠지요. 허기를 면하고 나니 그제 서야 엄마얼굴이 떠올라 휴대폰을 들었습니다. "엄마, 좀 전에 퇴근해서 박스 열어보니 생체 국물이 조금 터진 거고 다른 반찬들은 다 멀쩡해. 생채가 너무 맛있어서 지금 밥 한 그릇 비웠네...엄마 아깐 미안했어. 바쁜데 택배 기사님이 전화 오지, 내가 집에 있는 것도 아닌데 김치 국물이 샜다고 하니 나도 모르게 짜증이 났어. 엄마 고생한 것도 모르고.." 라고 눈물 찔끔 거리며 엄마께 사과를 했습니다. 엄마는 "아고, 다행이다. 고생은 무슨 집에서 할일도 없는데...이런 거 해서 보내는 건 일도 아니니깐 걱정하지 말어. 그 냉이는 무공해다. 국도 끓여먹고 무침도 해먹고 그려." "엄마도 식사 잘 챙겨 드시고 약도 잘 챙겨 드시고. 내가 조만간 시간 한번 내서 갈께." 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자식을 키워봐야 부모 마음을 안다고 했는데...엄마가 되었어도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못난 딸인가 봅니다.




2021/02/13 소소했던 어느 날

Feb 14 2021 3 mins  

집 콕 라이프가 장기화되면서, 우리 세 식구 함께할 수 있는 꺼리를 자꾸 찾게 되는데 그중에서 가장 훌륭한 주제는 요리입니다. ‘여보. 우리 김치만두나 만들어먹을까? 넉넉히 만들어서 장모님 댁도 갖다드리자.’ 칼칼한 묵은 지 쫑쫑 썰어 반나절 꼬박 김치만두 만들어서 부리나케 친정으로 갔습니다. ‘아이고..우리 강아지가 왔구나. 안본사이 또 키가 커서 안아주기도 힘드네.’ 그런데 만두가 담긴 반찬 통을 보는 엄마의표정이 영..심상치가 않습니다. ‘엄마, 우리 저녁에 만둣국 끓여 먹자. 엄마 좋아하잖아.’ 반가워하실 줄 알았는데 자꾸만 저녁은 다음에 먹자 하십니다. 그때, 남편이 놀란 목소리로 ‘장모님, 가스레인지 어디 갔어요?’ ‘어..그거 버렸어.’ ‘그럼 그동안 어떻게 식사를 해 드신 거예요? 이 휴대용가스레인지로 쓰신 거예요?’ 가까이 가보니, 가스레인지가 있던 자리는 휑하고 대신 휴대용 버너가 놓여있습니다. ‘고장이 나서 몇 번 고쳤는데 이제 부품이 없어서 안 된데. 나 혼자인데 뭘 새 걸 또 사.‘ 어릴 때부터 우리 집의 가장이었던 엄마..자식 넷을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려면 어쩔 수 없이 짠순이가 되어야했지요. ’엄마!! 돈도 돈이지만, 먹는 걸 제대로 드셔야 되잖아! 저 휴대용가스레인지하나로 어떻게 삼시세끼를 해 드신다는 거야?! 그리고 나한테 전화라도 하지. 내가 엄마 때문에 못살아 정말.‘ ’왜 내 자식 피 같은 돈을 써.‘ 고개를 숙인 체 딴청 피우며 혼잣말하는 엄마..그렇게 제가 언성을 높이고 있던 사이, 눈치 빠른 남편이 새 가스레인지를 사왔습니다. ’장모님, 장모님이 편안하게 사셔야 자식들도 마음이 편하답니다.‘ 만두국은 끓여먹지도 못하고, 속 만 상해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우리 딸 삐졌어? 김 서방 퇴근하면 엄마네로 와..김 서방이 사준 신식 가스레인지가 얼마나 좋은지 저번에 못 먹은 만두 국 맛있게 끓여놓을게.‘ 그냥 제 바램은 딱 하나입니다. 일평생 일 하다 좋은 시절 다 보낸 우리 엄마, 이제 편안하게 노후를 즐기셨으면 한답니다. ’엄마 사랑해.’


















































2021/01/23 지리한 대화

Jan 24 2021 2 mins  

그 탱자나무 울타리, 어머니 생각나세요? 이젠 네 아들이 거기서 놀게다, 네가 뜻을 바꾸거라. 희뜩하니 문지방까지 내려온 하늘... 나는 중얼거리며 돈과 안락한 생활이 모든 인간을 만족시킬 수는 없어요, 어머니가 절 포기하세요. 나는 너를 낳고 온몸에 두드러기로 고생했다. 알아요, 그러셨어요. 바느질감을 내려놓으시며 어머니, 긴 한숨이 차고 슬프다. 나는 시계를 본다. 왜 이렇게 어수선한지 모르겠군요, 날 좀 내버려둬요. 가족을 버리겠다는 거냐? 가족이 나를 필요로 하진 않아요, 벌써 오래된 일이잖아요. 그건 네가 환상을 꿈꾸어 왔기 때문이야, 이제라도 뜻을 바꾸면 행복해질 게다. 행복? 그래요, 행복... 하늘은 매양 왜 저 모양인지, 나는 집을 나선다. 한 곳으로 몰리던 바람이 저만치 날 밀어다 놓고 골목길 접어 사라진다. 멍든 곳을 훤히 드러낸 나무들 몸통은 어떤 힘으로 겨울을 버티는 걸까. 어머니, 이 손톱 끝을 보세요, 아직도 가시에 찔린 자국이 시퍼런 걸요. 이연주 시인의 어릴 적엔 되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참 많았었죠. 하지만 먹고살기 위해 가장 먼저 버려야했던 것은 바로 꿈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꼭 그러지 않았어도 됐을 것을, 가족보단 나를 좀 더 챙겼어도 됐을 것을, 지금이라도 내 인생을 살겠노라 외쳐보지만, 돌아오는 건 공허한 메아리뿐. 이젠 뭐든 양보만 하지 말아요. 우린 행복해지질 자격이 충분히 있으니까요.













2021/01/18 1월에 꿈꾸는 사랑

Jan 19 2021 2 mins  

인연이 만날 땐 꽃으로 피었다가 인연이 헤어질 땐 낙엽으로 저물지요 오는 사람은 석 달 열흘 오더라도 가는 사람은 하루아침에 가더이다 진달래 아득하고 철새도 따나버린 이 풍진 세상, 앙상한 나뭇가지 새하얀 눈이 내리면 인생 구만리 하늘에서 땅으로 수많은 인연이 머물다간 자리마다 하얗게 피어나는 눈꽃, 눈꽃송이 덮어주는 저 온기는 사랑의 가슴이요 쌓여가는 저 무게는 그리움의 몸짓이라 오, 당신과 내가 다한 인연인 듯싶어도 어느 세월 어느 바람으로, 또 만날지 누가 알리오 만나고 헤어지는 인법의 굴레 속에서도, 부디 당신과 나의 아름다운 인연의 향기 처음과 끝이 같았으면 좋겠네 그때, 우리 예쁜 뜨락에 고운 발자욱 하나씩 남기기로 해요 이채 시인의 누구나, 언제든, 시작할 수 있는 사랑이라 그럴까요? 영원할 거란 믿음도 잠시, 이별은 너무나도 빨리 다가오는 것 같아요. 하지만 끝이 보인다고 해서 서로에게 상처가 되진 말아요. 처음보다 마지막이 아름다운 사람,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는 사람, 우린 그런 인연이었으면 좋겠습니다.









2021/01/15 내 삶의 길목에서

Jan 17 2021 3 mins  

한 달 전부터 독립을 해서 집 근처에서 살고 있는 저 때문에 부모님께서 걱정이 많으십니다. 날씨가 좀 풀리면 이사를 하라는 부모님의 말씀도 안 듣고 자유를 누리고픈 막연한 생각에 이 추운 겨울에 굳이 집을 나왔습니다. 그런데, 벌써 집에서 엄마가 하나부터 열까지 다 챙겨주시던 시간들이 그리워지기 시작합니다. 특히, 영하 10도를 밑돌던 날에는 혹시라도 밤사이 떨어진 수도관이 얼까봐 엄마가 한 잠도 못 주무셨다고 합니다. 직장에 나와 있는 시간에도 엄마는 제가 사는 방에 수시로 오셔서 수도가 동파되지 않았나 보일러가 얼지는 않았나 수시로 들여다보셨답니다. 그런데, 제가 사는 방이 5층이고 엘리베이터도 없는 곳인데 계단으로 오르락 내리락 하려면 젊은 저도 힘든데, 무릎도 안 좋으신 엄마가 얼마나 힘드셨을까 싶어 추운데 안 오셔도 된다고 말씀 드려도 막무가내십니다. 그런데, 요사이 며칠 야근을 하며 무리를 했는지 감기가 걸려 입맛이 통 없습니다. 안 되겠다 싶어 반차를 쓰고 집에 와서 이불을 덮고 누웠습니다. 보일러를 안틀어서 방은 냉골이라 전기장판을 켜고 누었는데, 밖에서 무슨 소리가 났습니다. 부모님이 아시면 걱정하실까봐 말씀도 안 드렸는데, 누구지? 하며 밖으로 나가보니, 엄마가 엿기름으로 만든 식혜를 한광주리 들고 오셨습니다. “엄마? 어떻게 알았어? 나 지금 집에 있는거?” “너 있는지는 몰랐지? 니가 이맘 때 쯤 엄마 식혜 좋아하잖아, 이것만 놓고 가려고 했는데...근데 딸 얼굴이 왜 그래? 어디 아프구나? 열 있어?” 엄마가 제 이마에 손을 짚어주시는데, 갑자기 눈물이 나는 걸 꾹 참았답니다. 방금해서 뜨근뜨근한 식혜를 세 그릇을 원 샷하고 푹 자고 일어나니 온 몸에 땀이 흠뻑 났습니다. 코로나 시대 모두가 서로를 경계하는 요즘, 가족이라는 끈은 나를 살게 해주는 버팀목입니다. 부모님의 그늘은 이 세상 어느 것보다 크고, 바꿀 수 없는 귀한 것이라는 것을 독립을 해보면서 비로소 뼈 져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2021/01/13 진추하, 라디오의 나날

Jan 13 2021 2 mins  

둥글게 커트한 뒷머리, 능금빛 얼굴의 여학생에게 편지를 썼다, 밤을 잊은 그대에게 신청곡은 졸업의 눈물, 사랑의 스잔나 진추하가 홍콩의 밤 열기를 담은 목청으로 내 마음을 전했다 그 여학생은 내게 능금빛 미소만을 쥐어주고 달아났다, 금성 트랜지스터 라디오 속으로 들어가 그녀를 기다리며 서성이던 날들, 폴 모리아 질리오라 친케티, 사이몬 & 가펑클, 모리스 앨버트 그리고 한 순간 수줍게 라디오를 스쳐가던 그녀 그와 함께 진추하를 듣고 싶어요, 그 작은 라디오의 나라 가득히 드넓은 한여름 밤과 무수한 잔별들이 두근두근 흘러들어오고 난 그녀의 흩날리는 단발머리를 따라 새벽녘의 샛별까지…… 그렇게, 열다섯 살의 떨림 속에 살던 나와 그녀는 영영 사라져 버렸다, 트랜지스터 라디오에 건전지처럼 업혀 있던 그 풋사랑의 70년대도, 퇴락한 진추하의 노래를 따라 붉은 노을의 어디쯤을 걸어가고 있으리 유하 시인의 이름 모를 누군가의 이야기에 ‘어머 내 얘기네~’하며 깔깔 대다가도, 가슴을 적시는 추억의 노래 한 곡에 금세 눈가가 촉촉하게 젖어 옵니다. 늘 나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고, 힘이 들면 토닥여주는 벗들이 있는 공간. 그래서 우린, 오늘도 라디오를 켭니다.




2021/01/12 피부과에 오신 한 할머니 이야기...

Jan 12 2021 3 mins  

저는 정형외과 의사입니다. 얼마 전 같이 운동을 하는 후배 의사가 병원에서 겪었던 이야기를 해주는데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할머니 한분이 피부 관리를 하겠다고 오셨는데, 1회하는 데는 30만원, 10회 쿠폰으로 하시면 150만원, 그러니까 150만원에 5회하는 것보다 당연히 같은 값에 10회 쿠폰을 선택해서 할 줄을 알았는데, 피부 관리를 딱 5번 정도만 받겠다고 하셨답니다. 후배가 의아해서 여쭤보니 할머니는 당신이 말기 암 환자인데 10회까지 받을 시간은 없다고 하면서 자식들에게 죽기 전에, 살아생전에 좋은 얼굴로 보이고 싶어서 피부 관리를 하는 거라고 하셨답니다. 그렇게 그 할머니는 4번째 오신 날 후배와 대화를 나눈 이후 수개월이 지났는데 오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2011년에 고인이 된 스티브 잡스는 그 유명한 2005년 스탠포드 대 졸업식 연설에서 ‘제가 열일곱 살이었을 때, 이런 구절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매일을 삶의 마지막 날처럼 산다면 언젠가 당신은 대부분 옳은 삶을 살았을 것이다.” 저는 그 말에 강한 인상을 받았고, 이후 33년 동안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면서 제 자신에게 말했습니다. “만일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내가 오늘 하려는 것을 하게 될까?” 그리고 여러 날 동안 그 답이 ‘아니오’ 라고 나온다면, 저는 바꿔야 한다고 깨달았습니다. 어쩌면 오늘을 잘 살 수 있는 방법 중의 하나는 역설적으로 죽음을 잘 준비하고,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일 것입니다. 고귀했던 생애의 마지막을 앞두고, 죽음을 예쁘게, 또 아름답게 준비 하시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통해서 다시한번 저를 뒤돌아보게 된 하루였습니다.






2021/01/10 미니멀 라이프를 응원합니다

Jan 10 2021 3 mins  

언니네 집에 다녀오신 어머니가 혀를 내두르며 놀라십니다. 집에 쌀이며, 고구마, 감자, 라면, 생수, 조리된 포장 음식 등이 너무 많다고..코로나 사태 초기에 생필품과 식재료를 구할 수 없을까봐 걱정하던 언니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안타까운 마음도 들지만 한편으로는 왜 그렇게 유난스러울까 아쉬움도 있었습니다. 언니는 코로나 사태가 아니어도 늘 스마트폰으로 쇼핑을 하는 게 취미입니다. 살만한 물건이 있나하고 검색을 하다보면 계획에도 없던 물건을 사게 되는 건 당연하지요. 싸다는 이유로, 할인한다는 이유로 수시로 물건을 삽니다. 그러다보니 혼자 소화를 못해서 어머니 댁이나 형제들에게 물건을 넘길 때도 많습니다. 옷이 올 때도 있고, 화장품, 각종 간식 류가 택배로 올 때도 있습니다. 받을 때는 고맙다가도 왜 이렇게 물건을 사들이나 하는 마음에 따끔하게 충고를 하고 싶을 때도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마음 상할까봐 섣불리 말도 못합니다. 이번에도 음료수가 싸다고 두 박스를 택배로 보내왔다며 어머니께서 넋두리를 하십니다. 냉장고에 넣어둘 데도 없는데 하시면서..그래서 제가 한 박스 가져오면서 손만큼이나 마음도 무거웠습니다. 필요한 물건만 사고, 구입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는 소비생활을 했으면 좋겠는데 ..싶습니다. 돌아보면 꼭 필요한 물건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꼭 먹어야 하는 음식도 그리 많지 않고요. 집안에 물건을 쌓아놓기보다는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빈 공간을 살려 두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비어 있는 곳이 있는 삶, 조금은 부족한 듯 한 삶, 물건이 아니라 경험으로 채우는 삶, 물질보다 관계를 중요시하는 삶...그런 미니멀 라이프 그런 삶을 지향하는 사람이 많아지길 응원합니다.






2021/01/08 초보의 길목에서

Jan 10 2021 3 mins  

얼마 전 급하게 차를 몰고 나갈 일이 있었습니다. 운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도 초보운전을 붙이고 다니는데, 원래 급한 성격이 아닌데도, 익숙한 길이 아니니 빨리 일을 처리하고 가야겠다는 생각에 저도 모르게 서둘렀나 봅니다. 일을 처리하고 돌아와 보니 좁은 동네 길목에 주차해 놓은 제 차량은 바퀴도 돌아가 있고, 차량 한 대가 겨우 지나갈까 말까하게 대충 주차가 되어 있습니다. 다행히 지나가는 차가 없어서 얼른 차 시동을 켜고 빨리 빼려고 하는데 세상에 차 시동이 안 걸리는 겁니다. 마음은 급하고, 손은 덜덜 떨리는데, 핸들은 무겁고, 키를 이리저리 돌려봐도 꿈쩍도 안합니다. 최근에 교체한 밧데리 방전은 아닐 테고, 핸드브레이크도 제대로 한 채 주차했는데 이유를 전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제 뒤로 두 대의 차량이 빵빵거리는 상태까지 되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들면서 창피함이고 뭐고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어요. 다급하게 뒤 차 운전자에게 가서 시동이 안 걸린다고 말하니 젊은 남자분이 제 차로 와서 몇 번 핸들을 왔다 갔다 하더니 시동을 걸어 주셨습니다. 알고 보니 아까 시동을 끄면서 키를 급하게 뺐을 때, 핸들이 돌아갔는데, 그 때 핸들 락이 걸려버렸나 봅니다. 감사하다고 말하고 서둘러 차를 빼서 머리가 백지장이 된 채 집으로 겨우 돌아왔습니다. 집 앞에서 한숨을 크게 쉬고 돌이켜보니 도움주신 분께 제대로 인사도 드리지 못한 것 같아 죄송한 마음도 들고, 본의 아니게 좁은 골목에서 민폐를 끼쳐서 제 스스로가 어찌나 민망한지요. 이 방송을 혹여나 그 분이 들으신다면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 글을 쓰게 됐습니다. 그 때 지나치지 않고, 도움 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2021/01/04 첫마음

Jan 04 2021 2 mins  

1월 1일 아침에 찬물로 세수하면서 먹은 첫 마음으로 1년을 산다면.. 학교에 입학하여 새 책을 앞에 놓고 하루 일과표를 짜던 영롱한 첫 마음으로 공부를 한다면.. 사랑하는 사이가 처음 눈이 맞던 날의 떨림으로 내내 계속된다면.. 첫 출근하는 날 신발 끈을 매면서 먹은 마음으로 직장 일을 한다면.. 아팠다가 병이 나은 날의 상쾌한 공기속의 감사한 마음으로 몸을 돌본다면.. 개업 날의 첫 마음으로 손님을 언제고 돈이 적으나, 밤이 늦으나 기쁨으로 맞는다면.. 세례 성사를 받던 날의 빈 마음으로 눈물을 글썽이며 교회에 다닌다면.. 나는 너, 너는 나라며 화해하던 그날의 일치가 가시지 않는다면.. 여행을 떠나던 날 차표를 끊던 가슴 뜀이 식지 않는다면.. 이 사람은, 그때가 언제이든지 늘 새 마음이기 때문에 바다로 향하는 냇물처럼 날마다가 새로우며, 깊어지며, 넓어진다. 정채봉 시인의 삶이 지루하고 갈 길 잃었다고 생각될 땐, 처음이었던 순간들을 떠올려봅니다. 첫 아이를 품에 안았던 날, 처음 엄마, 아빠라고 불리던 날, 따뜻한 햇살 가득한 집으로 이사하던 날. 기쁨과 희망이 가득했던 그 때의 마음, 그 다짐들은 다시 한 번 힘을 내어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주거든요.







2021/01/02 작심 일년

Jan 03 2021 3 mins  

재작년 겨울까지 체중이 90k가 넘어 비만으로 몇 가지 질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허리가 아파 병원을 갔는데 살을 빼든지 아니면 당장 수술을 해야 한다는 의사 선생님 말씀에 특단의 조치를 취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그래, 무슨 일이 있어도 체중 20k를 뺀다." 작년 1월 1일부터 식사량을 줄이고 하루도 빠짐없이 근처 산을 오르내렸습니다. 가족들은 "작심삼일이야, 두고 봐, 며칠 산에 다니고 나면 아이고 죽겠다, 수술하러 가자. 이러고 말걸." "그래 두고 보자, 해병대까지 다녀온 내가 마음먹으면 히말라야도 갈 수 있는데 뭐라고 작심삼일. 흥 20k 빼서 나의 의지를 보여주고 말거야." 첫 날, 둘째 날, 셋째 날까지 별 무리 없이 걸었는데 안하던 운동 갑자기 했더니 관절이랑 근육에 통증이 생겨 드러눕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습니다. 그래서 인터넷 검색을 해 내 체력에 맞게 하는 운동법을 찾아 서서히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습니다. 다행이 코로나로 회식, 모임이 별로 없어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산을 걸었습니다. 장마, 더위 때는 모기와 전쟁을 하느라 힘들었지만 열심히 걸었습니다. 가족들이 다시 수군거렸습니다. "뭐야, 이번에는 뭔가 하네. 살이 조금 빠지는 것 같네, 병원비 저축하겠네." 정말 10월 쯤 되니 15k 정도 빠지고 그 자리에 근육이 자릴 잡아가고 있었습니다. 산에서 신선한 공기를 마시니 폐 속까지 깨끗해지는 듯했습니다. 그렇게 1년, 산에 다니다 보니 목표했던 20k를 뺐습니다. 일주일에 육류를 두 번 그것도 소량, 그리고 현미밥, 채소 위주의 반찬, 간식 생략, 2리터 생수 하루 8병 마시기. 연말에 병원에 갔더니 의사 선생님이 원래 체중으로 돌아와서 각종 질환이 없어지고 건강해졌다고 축하해주셨습니다. 뭐든지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생각합니다. 작심삼일이 아니라 적어도 작심 3개월, 작심 1년을 해보면 뭔가 이루어지리라 생각합니다.




2021/01/01 새로운 출발

Jan 03 2021 3 mins  

취 준 생이었던 막내가 드디어 직장을 나가게 되자 많은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나 혼자 집에서 뭘 하며 보내지. 애들 결혼 까지는 몇 년이 시간이 있는데 그럼 나도 슬슬 제2의 인생 준비를 해야 하는 게 아닐까 곰곰이 생각한 끝에 어느 날 가족회의를 했습니다. 남편은 “그 동안 애들 키우고 하느라 힘들었는데 친구들 하고 여행도 하고 취미 생활을 하는 것도 좋지” 했고, 딸들은 “엄마 인생인데 엄마가 하고 싶은 일 하세요. 우리는 무조건 오케이” 라고 합니다. 아들은 “난 무조건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어야 하는데 어떡하죠.” 딸들이 들고 일어납니다. “엄마도 인생이 있고 자유를 줘야지. 그럴 거면 여친 만나서 결혼하고 밥 먹고 다녀.” 가족들의 의견을 듣고 나니 남편도 고맙고, 아이들도 무척이나 고맙고 대견했습니다. 제2의 인생을 무슨 일을 할까, 막상 시작하려고 보니 할 수 있는 것도 별로 없고, 전공을 써먹기에는 너무나 동떨어진 느낌에 무력감이 밀려 왔습니다. 친구 남편이 한의원을 하고 있는데 내가 나가서 간호사 일을 하고 싶다고 했더니 50대 중반 아줌마는 힘들어서 못하니 다른 일을 알아보라고 합니다. “흥, 못할 건 뭐야, 남들 하는 만큼 할 수 있는데.” 오기가 생겨 남편 모르게 간호조무사 학원 등록을 하고 딸 뻘 되는 젊은이들과 공부를 했습니다. 처음에는 안절부절, 취소할까, 말까 힘들었지만 저녁에 돌아와 파김치가 되어도 열심히 했습니다. 도시락을 싸 가서 짝꿍과 같이 먹으며 “나이 들어서 머리에 잘 안 들어오는데 선생님이 이거 뭐라고 했지, 설명해줄래.” “어머니, 대단하세요. 저희 어머니는 오빠 애들 봐준다고 맨 날 어깨 아프다고 하시는데, 감동이 예요.” 과정이 끝나고 자격증 시험 다행히 합격을 했습니다. 7월부터 한의원에 나갔는데 엄마가 일을 하니 남편과 아이들도 집에 오면 모두 집안일을 돕는데 웃을 일도 많아졌고, 능률도 오르고 있습니다. 50대 중반 인생 2막 새로운 일을 하며 가족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행복합니다. 2021년 모두 힘내시고 새로 세운 계획 꼭 이루시길 기원합니다.



2020/12/31 진짜와 가짜

Jan 03 2021 4 mins  

“가짜 뉴스”, “팩트 체크”, 라는 말이 이젠 제법 익숙해졌습니다. 세상엔 진짜처럼 보이는 가짜들이 너무 많으니까요. 그래서 진실 혹은 사실을 ‘가짜가 아니고 진짜야’ 라고 증명해야 하는 시대가 된 거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짜에 대한 냉냉한 온도만큼, 진짜에 대해 발현되는 온도는 배가 되는 듯합니다. 2020년, 우리 사회에도 선행을 몸소 실천한 진짜인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아파트 대형화재에서 몸으로 난간을 부숴 주민을 구한 시민, 코로나19로 헌혈자가 모자라다는 소식에 팔을 걷어붙이고 뛰어나온 시민들, 주택가 쓰레기 더미 화재를 보고 차에서 내려 즉시 진화한 시민, 그리고 코로나 19의 최전선에서 일하시는 의료 종사자 분들입니다. 마음이 따뜻해졌고, 힘든 일상이지만 지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반면, 진짜 같은 가짜의 모습을 드러냈던 일도 있었습니다. 우리들은 코로나 19에 관한 다양한 가짜 뉴스들에 혼동했었고, 텔레그램에서 발생한 N번방 사건, 각종 미투 사건 등이 그렇죠. 진부한 이야기이지만, 진짜가 되는 방법은 결국 ‘사람들을 사랑하며 사는 것’ 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의 일상을 사랑하고, 주어진 현실을 사랑하며, 더불어 나를 둘러싼 이웃의 일상을 사랑하는 것 말이죠. 그리고 또 하나의 방법이 있다면, 일상을 성실히 살아내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루를 시작하며 허락된 오늘에 감사하기, 잘못했을 때, ‘미안해’를 진심으로 말할 수 있는 용기, 감사의 미소 표현하기, 매 끼니 맛있고 감사하게 잘 먹기, 절망하며 잠들지 않기 등 우리가 성실하게 지켜갈 수 있는 것들을 적어봅니다. 이렇게 적어보니 진짜가 되기 위한 노력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네요. 오히려, 가짜가 진짜가 되기 위한 노력이 참 치열하고 어려울 것입니다. 새로운 2021년 한해는 부디 진짜 뉴스, 진짜 착한 사람들, 진짜 아름다운 사랑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만들어가는 하루가 거짓이 없었으면 좋겠고 나 자신을 정말 사랑하는 새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020/12/30 엄마들도 고생이 많답니다.

Dec 30 2020 3 mins  

해가 중천에 뜬 시각, 종강한 딸이 기지개를 켜며 묻습니다. “엄마! 오늘, 점심은 뭐예요?” “김치콩나물국 있는데...아니면 어제 먹던 된장찌개도 있고..” “엄마. 그거 말고, 떡볶이 해 주시면 안 될까요? 치즈 듬뿍 넣은 걸루.” ‘냉장고에 사골 국 먹던 거도 남아 있고, 멸치조림에 소고기 장조림도 있는데....’ 속마음은 그랬지만 냉동실에 있던 가래떡에 어묵 양파, 대파, 고추장 양념 등을 넣고 딸이 원하는 대로 치즈도 듬뿍 넣어 줬더니 아주 맛있게 먹습니다. 저녁 어둠이 내릴 무렵...알바에서 돌아 온 아들이 “엄마! 오늘 등갈비 김치 찜 먹고 싶은데.” 제 맘속은 또 한바탕 소동이 일어납니다. ‘에고, 냉장고에 된장찌개에 사골 국, 나물이 잔뜩 인데..‘ 그러면서도 아들 좋아하는 김치 찜을 만듭니다. 저희 집은 메뉴 선택이 달라도 너무 다릅니다. 남편은 꼭 국이나 찌개가 있어야 하고, 매일 똑같은 반찬을 올릴 수 없어서 각종 나물이며 이런저런 밑반찬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대학생인 우리 두 아들, 딸은 그런 걸 거의 먹지 않습니다. 어떤 날은 ’아휴, 나는 그냥...갓 지은 밥에, 김치와 달걀 후라이, 김 몇 장으로 간단하게 먹고 싶은데 아이들과 남편의 식성이 다르니 매일 ’오늘은 뭐 먹지?’ 고민스러운 요즘입니다. 아이들은 딱히 본인들이 좋아하는 게 없으면...아침도 안 먹고, 점심은 거르고 저녁 메뉴로 라면을 끓여 먹네요. 그러니 해달라는 거 안 해 줄수도 없지요. 어차피 올 한 해, 비대면 수업을 한 터라 매일같이 뭐 먹어야 하나 고민하며 지내긴 했지만 앞으로 긴긴 겨울방학 내내 아들, 딸의 삼시세끼를 생각하니 걱정이 앞섭니다. 집에 있는 엄마들도 많이 고생하니 우리 아들, 딸을 포함해서 다른 가족들도 좀....엄마가 차려준 음식..두루뭉술하게 맛있게 잘 먹고, 가끔씩은 엄마의 어깨도 주물러주고, 맛있었다, 감사하다, 따듯한 한 마디도 건네주는....그런 따듯하고 평화로운 연말을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2020/12/12 삶에서 소중한 것

Dec 13 2020 3 mins  

단풍이 가을의 절정을 향해 타오르던 어느 일요일, 연로한 어머니가 내 전화를 받으러 거실로 나오다 넘어지는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거실에 주저앉아 계신 어머니를 동생과 함께 응급실로 모시고 가 엑스레이 찍고, CT찍고, 피검사 하고 골반골절이라고 판명 날 때까지 그래도 고관절을 다치지 않은 게 어디냐고 위로했습니다. 수술도 입원도 못하는 증세라 집으로 모시고 와서 일주일을 곁에서 간호할 때도 어머닌 비교적 괜찮아 보여 안심을 했었는데..하지만 25년 이상 혈전용해제를 복용하고 있고, 심장혈관이 안 좋을 뿐 아니라 부정맥까지 있는 어머니가 넘어지며 속으로 내출혈이 진행되고 있음을 몰랐습니다. 혈관 속 피가 서서히 줄고..소변 땜에 비뇨기과에 가서 야 혈액이 부족함을 안 뒤 긴급 수혈을 시작했으나 의사는, 일어서다 호흡곤란으로 주저앉은 어머니에게 인공호흡기를 달아야 한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그렇게 중환자실로 옮겼습니다. 텅 빈 어머니 댁에 앉아 소리 내어 울어 봐도 답답하긴 마찬가지, 그렇게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고 자책하며 기운이 빠져갈 무렵, 지혈하는 시술을 성공적으로 했다는 의사의 말과 곧 호흡기를 뗄 수도 있다는 말에 한줄기 희망이 보입니다. 드디어 폐 속에 찼던 물이 빠져 인공호흡기를 떼고, 짧은 면회를 하니 어머닌 날 알아보시고 말씀도 하십니다. 죽도 드시면서 우유가 먹고 싶다고도 해 사다 드렸습니다. 무엇이 삶에서 가장 소중한가? 싶습니다. 스스로 호흡하고, 두 다리로 걷고, 세끼 밥 잘 먹으면 그게 행복임을 우린 자주 잊고 사는 것 같습니다. 욕심 내지 말고 살아야 할 텐데... 건강한 삶이야말로 우리가 평생 지켜나가야 할 소중한 가치임을 다시 한번 가슴 속 깊이 새겨봅니다.



























2020/12/01 짠한 내 남편

Dec 01 2020 3 mins  

작은아이가 티셔츠 하나를 내 놓습니다. “엄마, 이 옷은 버려야겠어요. 목이 너무 늘어났어요.” “그래?” 하고 보니 이 정도면 입어도 될 듯한데..목이 늘어졌다는 건 아이가 안 입겠다는 말이죠. 옆에서 tv를 보고 있던 남편이 “옷 버린다고? 줘 봐, 내가 입어보게” 하며 티셔츠를 입는데 딱 맞습니다. “내가 입어야겠다.” “애들 옷인데 당신이 어떻게 입어? 영어도 막 써 있잖아” “왜 속에 입는 건데 누가 보는 것도 아니고 서랍에 넣어 둬.” “경민아, 너 버리는 옷 아빠 다 줘. 아빠가 다 입을게.” 합니다. 남편은 아들들 옷을 잘 물려 입습니다. 지금은 큰아이가 남편보다 더 커서 이제는 남편이 물려 입을 옷이 없지만, 큰아이가 남편과 비슷한 체격일 때는 큰아이 티셔츠, 바지, 패딩도 물려 입었습니다. 작은 아이와 6살 차이가 나서, 작은아이가 물려 입기는 터울이 너무 많은 탓에, 큰아이가 안 입는 다는 옷은 다 남편이 입었습니다. 작은아이는 남편과 신발 사이즈가 똑같습니다. 남편이 지금 신고 다니는 운동화 2켤레 모두 작은아이 운동화입니다. 그 모습이 안쓰러워서 신발 하나 사자고, 하면 남편은 아무렇지도 않다 합니다. 그러고 남편을 보니, 입고 있는 티는 큰아이의 낡은 티고, 반바지는 작은아이가 입다가 고무줄이 느슨해진 츄리닝 반바지입니다. 27살 때 결혼을 해서, 30대 초반에 이직 준비 하느라 한 달 쉰 게 전부인, 50대 초반 나이에 일만하는 남편. 친구들도 참 좋아해서 친구도 많고, 낚시도 좋아하는데, 코로나도 문제지만 친구들 만나면 술 값 나간다고, 낚시가면 오며 가며 돈 든다고 취미도 접어두고 사는 남편. 그렇게 열심히 일해서 벌은 돈, 아들들과 아내가 다 쓰고 정작 본인은 아들들 낡은 옷 물려 입네요. 올 겨울에는 남편 옷 좀 사줘야겠습니다. 셔츠도 사고, 낡은 운동화대신 스니커즈라도 하나 사줘야겠습니다.













2020/11/26 남편과 다툰 날

Nov 26 2020 3 mins  

40년 다닌 직장을 퇴직한 남편은 집에만 있는 게 적응이 안 되는지 하루 종일 서랍을 닫았다 열였다, 책상을 닦고 창문을 닦고 합니다. 김장철이 다가오자 고추 두 봉지 방앗간에 가서 빻아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고추씨를 따로 받아 와, 국수 육수 낼 때 쓰려니 까요." 한 시간 뒤 고추 가루를 들고 왔는데 고추씨가 안 보입니다. "고추씨는 어디 있어," "한 봉지는 씨를 빼고 빻았고, 한 봉지는 고추씨를 넣고 빻았지." "여보, 내가 평소에 고추 가루 빻아서 씨를 따로 쓰는 거 몰랐어." "나야 당연히 몰랐지," 그랬습니다. 차려놓은 음식 먹기만 했지, 남편이 뭘 알겠어요. 오후에 방앗간에 가서 고추씨를 챙겨 왔습니다. 이틀 후 신문에 알타리 무 세일하는 전단이 들어왔길래 남편에게 알타리 무 세 단을 사오라고 했습니다. ‘마트에 가서 알타리 사진 찍고 전송해 줘요.’ 잠시 후 알타리 무 사진을 보내왔길래 ‘이파리가 초록인 걸로 사 올 것.’ 문자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사가지고 온 알타리는 잎사귀가 노란색을 띠고 있습니다. "초록색 잎이 없으면 다음에 사면되는데 이걸 사왔네," 무거운 짐을 들고 온 사람한테 바꿔 오라고도 못하겠고 누런 잎을 떼어 내고 김치를 하니 반 정도 양입니다. 엊그제 고추 가루 빻은 것도 그렇고, 알타리 사온 것도 그렇고 생각이 짧은 것인지 말귀를 못 알아들은 것인지....퇴직하고 이제부터 잘 지내야 되는데..내가 하나하나 일러줘야 되나 어쩌나 하다가 친구에게 전화해서 화풀이 겸 남편 흉을 봤습니다. "얘, 방앗간에 가서 고추 가루 빻아주고, 알타리 사다 주면 그걸로 만족해, 우리 남편은 정수기가 부엌에 있는데 나한테 시킨다. 그 깐 일로 타투지 마." 친구는 이제 와서 못 고치니 참고 살던지 그게 싫으면 따로 살던지 하랍니다. 회사만 다닌 남편 분들, 집안 일 하는 아내 눈치껏 도와주시고 모르면 물어가며 알콩달콩 행복하게 사시길 바랍니다.







2020/11/23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

Nov 23 2020 2 mins  

가장 낮은 곳에 젖은 낙엽보다 더 낮은 곳에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 그래도 살아가는 사람들 그래도 사랑의 불을 꺼트리지 않고 사는 사람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 그래도, 어떤 일이 있더라도 목숨을 끊지 말고 살아야 한다고 천사 같은 김종삼, 박재삼, 그런 착한 마음을 버려선 못쓴다고 부도가 나서 길거리로 쫓겨나고 인기 여배우가 골방에서 목을 매고 뇌출혈로 쓰러져 말 한마디 못해도 가족을 만나면 반가운 마음, 중환자실 환자 옆에서도 힘을 내어 웃으며 살아가는 가족들의 마음속 그런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섬, 그래도 그런 마음들이 모여 사는 섬, 그래도 그 가장 아름다운 것 속에 더 아름다운 피 묻은 이름, 그 가장 서러운 것 속에 더 타오르는 찬란한 꿈 누구나 다 그런 섬에 살면서도 세상의 어느 지도에도 알려지지 않은 섬, 그래서 더 신비한 섬, 그래서 더 가꾸고 싶은 섬 그래도, 그대 가슴 속의 따스한 미소와 장밋빛 체온 이글이글 사랑과 눈이 부신 영광의 함성 그래도라는 섬에서 그래도 부둥켜안고 그래도 손만 놓지 않는다면 언젠가 강을 다 건너 빛의 뗏목에 올라서리라, 어디엔가 걱정 근심 다 내려놓은 평화로운 그래도 거기에서 만날 수 있으리라 김승희 시인의 유난히 지치는 날이면 주문처럼 되뇌는 말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말처럼 힘 있는 말은 없을 거예요. 어떤 절망도 희망으로 바꿔놓는 말, 다시 내일을 살아갈 용기를 주는 말, 그 말은 바로 ‘그래도’입니다.


















































2020/11/03 내 삶의 길목

Nov 04 2020 3 mins  

동생과 농구를 하러 갔습니다. 농구장은 등산로 근처에 있어서 찾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저희가 등산로로 진입해서 올라가는데, 어디선가 끙끙 앓는 소리가 들립니다. 순간 길고양이 울음소리 인가?? 생각 했지요. 그런데 앓는 소리가 사람의 소리였습니다. 숲을 헤치고 들어가니 할아버지께서 쓰러져 계셨습니다. 저와 동생은 할아버지를 일으켜 세우고 옆에 의자에 앉혀드리며 "괜찮으세요??? 다치지 않으셨어요?" 하며 할아버지 얼굴과 옷에 묻은 흙을 털어드리고, 티셔츠 단추를 풀어서 편하게 해드렸습니다. 그리고 가지고 있는 음료수를 드시게 했죠. 할아버지는 기력이 살아 나셨고, 등산 갔다가 어지러워서 넘어지셨다고 하십니다. 할아버지를 부축해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로 옮겨서 의자에 앉으시게 했습니다. "내 안경 못 봤어??? 넘어지며 안경이 떨어져나 봐.." 할아버지가 쓰려지셨던 장소로 가서 안경을 찾아 드렸습니다. "할아버지 핸드폰 있으세요? 집이 이 근처세요?" 할아버지 자녀한테 전화를 해서 집이 근처면 이곳으로 와달라고 할 생각이었죠. 그런데 할아버지는 가족들이 걱정할까봐 그러시는지 괜찮다 하십니다. 그래도 걱정이 돼서 ‘할아버지, 정해진 넓은 등산로로 다니는 게 좋아요. 자칫 사고가 발생하면 지나가는 사람에게 도움을 받을 수도 있거든요.’ 말씀드렸습니다. 제가 소리에 예민해진 건, 예전에 비슷한 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친구 생일날이라 즐겁게 집을 나서는데..어떤 아저씨가 벽에 기대어계시는 겁니다. 모자, 핸드폰이 옆에 널 부러져 있고..저는 술 드시고, 길에서 주무시는 구나. 생각했죠. 그런데 잠시 후 제 뒤에서 사람들이 웅성웅성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술 드신 게 아니고, 쓰러지신 거였습니다. 제가 의심하고 걱정했으면, 더 빨리 아저씨를 도와 드릴 수 있었는데...119가 와서 병원으로 이송했는데 그때 이후 작은 소리에도 예민해지고, 쓰러진 모습만 봐도 걱정을 하게 됩니다. 날씨가 점점 추워지고 있습니다. 연세 드신 분들에게 특별히 관심을 가져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2020/10/27 띵똥~~문자가 도착 했습니다.

Oct 29 2020 3 mins  

출근을 하는데, 가을바람이 제법 차가왔습니다. 아이들 아침을 서둘러 챙긴다고 챙겨 주다보니 출근길이 경보수준에 가까웠습니다. 세상에나 바람은 겨울을 재촉하는데, 여직 봉숭아꽃이 아파트 화단에 피어 있습니다. "저 얼마 전에 아카시아 꽃을 봤잖아요." "에이~~그건 좀 너무 했다.. 거짓말이죠~~" "아니..정말요~세상에..자기계절도 모르고 한 송이가 피어 난 거예요. 게다가 울 아파트엔 다시 라일락이 피었어요.~~" 안 믿길 레 그 직원을 데려와 보여주기까지 했습니다. 그렇게 두 계절을 온몸으로 느끼며 회사에 다다랐을 때였습니다. "띵동~~~" 문자가 왔습니다. 택배기사님 이셨습니다. "오늘 택배를 문 앞 배송 예정입니다." 허걱!!! 집에는 아무도 없는데..복도식 아파트라 분실도 잘되기에...제가 다시 문자를 드렸죠. "부재중이니, 게다가 꼭대기 층이라 힘드시니 그냥, 경비실에 맡겨주세요~~" 그러자 띵똥! "알겠습니다~^^" 문자가 왔습니다. 그렇게 회사 일을 하며 한참 힘에 겨울 때..직장상사로부터 안 좋은 소리까지 들어 기분도 안 좋은 상태였는데 "띵똥~~"하며 택배기사님의 알림문자가 왔습니다. "택배를 문 앞에 배송 하였습니다.." 나 참, 분명 경비실에 맡겨달라고 했는데..퇴근시간이 얼마 남지 않긴 했지만..집까지 가기엔 1시간가량 걸리기에 걱정이 되었습니다. 전, 택배기사님께 전화를 걸었죠. "기사님~~ㅎㅎ 아까 분명히 경비실에 맡겨주신다고 하셔놓고, 다시 문 앞에 배송을 하셨다니요~ 정말, 그러시기 있기?? 없기??“ 그러자, 택배기사님이 "ㅎㅎ 없기~~” 하며 웃으십니다. "아마~~제가 잘못알고 문자를 잘못 보낸 거 같아요. 죄송합니다." "ㅎㅎ 아니에요.~~ 고생 많으셨어요. 수고 하세요." 택배기사님과 전화를 하는 사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기분이 좋아 졌습니다. "그러시기 있기 없기?" 물음에 "없기~~"라고 답하신 기사님! 택배기사님도 웃고 저도 웃고...택배는 다행이도 기사님이 문 앞에 있는 재활용상자에 넣어두셔서 안전하게 받았습니다. 가을바람은 겨울을 재촉하는데, 저에겐 참으로 훈훈하고 따뜻한 날이었습니다. 택배기사님! 감사합니다.






2020/10/25 비워내기

Oct 28 2020 2 mins  

아침에 긴팔셔츠를 입고 나섰는데 쌀쌀한 기운이 훅 들어와 깜짝 놀랐습니다. 출근이 바빠 그냥 그대로 발걸음을 재촉하며, 퇴근할 땐 괜찮겠지..했는데 낮에도 바람이 제법 불더니 퇴근길 이젠 겉옷이 필요하구나, 더 따뜻하게 입어야겠구나 싶습니다. 저녁을 먹고 나서 내게는 어려운 일, 힘든 일, 그래서 미루고 미루던 일을 시작했습니다. 바로 옷장정리. 옷장 문을 열고 여름옷들을 다 쏟아내고, 꽁꽁 담아뒀던 옷들과 자리를 바꾸는데..나는, 내가 까만 바지가 이렇게 많은 걸 갖고 있었나? 싶습니다. 매일 입을게 없다고 고민했었는데.. 맞다! 이것도 있었지~!하는 옷들이 이렇게 많은 건지..텍을 뜯지도 않은 것도 몇 개나 있습니다. 그리고, 살 빼고 입어야지, 이상하긴 하지만 새 옷이라 아까우니까, 좀 낡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옷이니까, 나름 비싸게 산거라 아까워서 ....여러 가지 이유로, 아니 핑계로 쌓아뒀던 옷들을 과감히 버리려고 커다란 비닐 봉투에 넣었더니, 한 봉지 가득입니다. 대충 정리를 해놓고 다음을 기약했습니다. 그때는 지난주에 대충 한 아이들 옷도 다 정리하고, 내 것도 한 번 더 비우고 해서, 좀 널 널하고 여유 있는 옷장으로 만들어야겠습니다. 옷뿐만 아니라 온갖 물건들이 가득한 우리 집. 열심히 비워내 봐야겠습니다. 엊그제만 해도 분명히 여름의 끝자락을 잡고 있었던 것 같은데, 오늘 문득 정신차려보니 가을의 한복판에 서있습니다,.





































2020/10/10 아내의 음식솜씨

Oct 12 2020 3 mins  

11년 다닌 회사를 그만 둔 아내는 우울해했습니다. 아이들도 다 자랐고, 좋아하는 영화도 코로나로 보기 어렵고, 가까이 사는 친구들 만나는 것도 조심스러워, 관심을 음식으로 돌렸습니다. 음식을 쉽게 만들고 맛을 잘 내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아내는 자주 해 먹는 어묵볶음이나 김치찌개도 매 번 다른 맛을 내고, 닭볶음탕 한 번 만든다 하면, 씽크대가 난리가 납니다. 정리를 하면서 음식을 해야 하는데, 재료를 모두 꺼내 놓고 음식을 하는 스타일입니다. 그나마 다행인건, 저는 반찬을 간만 맞으면 먹고, 두 아이들도 엄마가 해 준 음식이면 두 말 하지 않고 먹는다는 겁니다. 그런 아내가 음식을 주로 배우는 건 유튜브입니다. 일반인이 올린 레시피까지 꼼꼼하게 보면서 메모를 합니다. 며칠 전에는 감자전을 했습니다. 감자를 채 썰어서 소금 조금 넣고, 노릇하게 부치면 된다고 하는데, 아내의 감자채전은 모두 제각각 놀고 있습니다. 작은아이가 보조를 하는데 둘이 티격태격합니다. "엄마가 유튜브 보고 그대로 했는데 왜 안 되는 거니? 이 사람이 한 건 노릇노릇 하잖아. 그치." "엄마, 어디서 본건데요. 찾아 주세요." "여기~" "엄마, 감자를 소금 조금 넣고 부침가루나 밀가루를 넣어야, 떨어지지 않는다는데, 엄만 그냥 부쳤으니 떨어지죠." "아,, 그렇구나. 그건 못 봤네." 전 그 날 얌전히 대기하다가 감자채전 두 장을 먹었는데, 감자 철이라 그런지 엄청 맛있었습니다. 묵은 지 볶음을 한다고 묵은 지를 씻어서 볶다가 멸치 몇 개를 넣고 물을 넣고 졸였다 하는데 씁쓰름한 맛이 납니다. 아내가 먹어보더니 들기름을 넣고 볶아야 하는데 들기름이 떨어져서 참기름을 넣어서 그런가 보다 하는데, 웃음이 나오는 걸 간신히 참았습니다. 가지 밥을 한다고 일찍 오라고 하더니, 가지 밥이 아니라 가지 죽이 되어 씹기는 좋았습니다. 매번 새로운 메뉴를 만들어 본다고 도전하는 아내, 음식은 자주하면 늘고, 나이가 들면 손맛이 생기고 감이 생긴다는데, 마냥 신혼 같은 아내의 음식솜씨, 그래도 계속 열심히 만들다보면 늘긴 늘까요?



























2020/08/29 내 삶의 길목에서

Sep 17 2020 3 mins  

나이 칠십. 이제 그만 쉬어도 될 텐데...남편은 ‘건강한 몸과 마음이 나를 가만히 쉬게 하질 않네.‘ 합니다. 부지런한 하고 성실한 사람으로 소문난 남편. 성실만이 우리들의 무기라고 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그 세월이 벌써 46년입니다. ‘여보, 직장생활 다시 할 수 있겠어요? 아들 같은 사람들과 일한다는 게 힘 드는 게 아니라, 적응이 힘들 것 같은데,,’,‘사람과의 관계는 자기하기 나름이야 걱정 마.’ 기다리던 출근 첫날. 아침 일찍 일어나 작업복도 챙기고 대단한 각오로 출발합니다. 몇 개월 ‘잘 다녀오세요.’ 하지 않았는데, 또 새롭게 시작하는 말 ‘잘 다녀오세요." 그렇게 남편의 출근길을 한참 쳐다봅니다. 남편은 나이보다 몇 살 어려 보이고. 깔끔한 성격이라 머리에 염색을 해서 단정합니다. 평소 지저분한 걸 못 보는 사람이라, 적응이 더 힘들 것 만 같아 행여 근무 중 전화라도 오면 어쩌나 했는데, 전화는 없어 다행이다 싶습니다. 드디어 6시 퇴근. 남편 얼굴에 미소가 보입니다. ’어째 할 만하던가요? 평소 안하던 일이라 힘들었을 텐데.’ ‘괜찮아. 못할게 뭐 있어.’ 사무실 근무를 했던 남편이 현장 직으로 출근했으니 힘든 건 당연하겠죠. 첫날이라 별일 안하고 안전교육 받고, 일터 둘러봤다고 합니다. ‘나이든 사람 힘든 일시키면 못한다고 하세요.’ ‘못한다고 하면 집에 가시오. 라고 하지.’ 남편의 말을 듣고 보니 귀가 뻔쩍 뜨입니다. 집으로 가라고하면 큰일이지. 그렇게 일하고 싶어 했는데,.. ‘그럼 해야지, 그 어떤 일도 해낼 수 있다고 걱정 하지 마.‘ 남편의 말이 든든합니다. 그렇게 며칠 출근하고 하는 말, ’일하는 즐거움이 나에게 최고의 행복이야. 놀고먹는 게 절대 행복한 게 아니라고.‘ 하는 남편의 어께에 힘이 들어가 보입니다. 남편이 동료들과 사이좋게 지내며, 즐겁고 행복한 날들이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뿐입니다.




2020/08/28 먼저 양보할게요.

Sep 17 2020 3 mins  

아기를 낳고 처음 우리 집에 왔다 가는 조카를 배웅하려고 나갔는데 차 유리문에 이런 문구가 붙어 있습니다. "아기가 타고 있어요! 제가 먼저 양보할게요!" 왕 초보, 알아서 피해라, 지금 밥하러 갑니다. 등 재미있게 써 붙인 것은 봤지만, 조카가 쓴 문구는 좀 특별해서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었습니다. "전에는 아기가 타고 있어요! 이렇게 써 붙인 차들을 보면, 그래서 어쩌라구 했었는데, 이제는 그 마음을 다 알겠더라구요. 아기가 있으니까 더 조심하게 되고, 내가 먼저 양보해야지 그래지고..." 그래서 아기를 카시트에 앉히며 그랬죠. "아이구, 요 작은 녀석이 성질 급한 엄마를 마음까지 넉넉해진 아줌마로 바뀌게 했네! 네가 효녀다 효녀." "이모 식탁에 봉투 놓고 왔는데 얼마 안 되지만, 일찍 할머니 되게 한 거 미안해서 할머니 된 축하 금이야! 그래도 손녀 생겨서 좋지?" "얘, 나 아직 용돈 받을 할머니 아니다! 무슨 용돈은?" 말썽쟁이였던 조카가 잘 살아주는 게 고맙고 대견했는데, 훌쩍 어른이 된 것 같아 뭉클했습니다. "너 좋아 하는 반찬들이야! 애기만 챙기지 말고 너도 잘 먹어야지!" 조카의 차가 안 보일 때까지 손을 흔들어주었습니다. 유독 길고 심한 사춘기를 보내는 아이를 다그치고, 무섭게 혼만 낸 이모였는데, 천천히 지켜보며, 기다려줄걸 왜 그리 조바심을 냈는지 후회가 되네요. 첫 조카라 더 사랑을 준다는 게 마음은 서투르고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었지요. 아이를 낳고, 더 잘 살아가는 조카가 고맙고 대견합니다. 게다가 이제는 제 얘기도 잘 들어주고, 고민거리를 터놓는 친구가 되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엄마가 된 게 걱정스럽고, 안쓰러웠는데, 역시 엄마는 강하다는 걸 새삼 느끼고 있습니다.






2020/08/26 김치와 할아버지

Sep 17 2020 4 mins  

대학 자취할 때, 싼 방을 찾아 간 집은, 마당엔 가지만 앙상한 나무 몇 그루와 국화꽃이 핀 작은 화단, 그리고 수돗가가 있는 그런 허름하지만 아담한 한옥이었습니다. 본체에는 할아버지가 혼자 사셨고, 그 옆으로 길게 늘어선 방 한 칸을 제가 썼습니다. 가끔 부엌에서 딸그락거리는 소리만 들릴 뿐, 이사 온 지 며칠이 지났는데도 할아버지의 모습이 안 보입니다. 하루는 골목길에서 흰 내의 차림으로 담배꽁초를 줍고 게시는 할아버지 모습이 보여서 어색한 인사를 주고받고는 들어왔는데 그 다음 날, 도둑이 들었습니다. 훔쳐 갈 만한 것은 없었지만 누군가 내 소중한 것을 침범하였다는 것에 화가 났습니다. 잃어버린 것이 없나 살펴보았는데, 돼지저금통에 든 동전 몇 개마저 그대로 있었습니다. 그러다 저녁을 하려고 냉장고를 열어 보았더니 어머니가비닐봉투로 싸둔 빨간 김치 통이 안 보였습니다. 할 수 없이 밖에서 저녁을 해결하고 집에 들어서는 순간, 할아버지가 제 것과 똑같은 빨간 플라스틱 김치 통을 설거지 통 속으로 얼른 감추시며 저를 쳐다보고 계셨습니다. 저도 당황스러워서 후다닥 집 안으로 들어갔지요. 그리고 창밖으로 할아버지 모습을 보는데 노을이 지는 오후, 마루에 쪼그리고 앉아서 말없이 담배연기를 뿜어내십니다. "왜 혼자 사세요? 자식이 없으세요?" 돌김 한 봉지를 갖다 드리며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아들이 방 얻어 줘 놓곤 연락이 안 되야, 몇 년 되았지," 눈시울이 붉어진 할아버지는 이내 고개를 떨구셨습니다. 그 이후 저는 종종 할아버지와 애기도 나누고 할아버지 댁에서 밥도 같이 먹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무슨 애기를 할 때마다 꽁초를 꺼내 피우시는데 할아버지는 담배가 유일한 친구인 듯 했습니다. 그래서 큰 맘 먹고 선물을 드렸습니다. '방학이라 집에 갔다 와야 해요. 할아버지 꽁초 주워 피우지 말고 이거 피우세요." 긴 겨울방학이 끝나고 돌아왔을 때 할아버지는 안 계셨습니다. 자식으로서 부모님께 최소한의 봉양의 도리를 지키는 것도 어려워져만 가는 지금,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담배를 태우시던 흰 내의 차림의 할아버지가 떠오릅니다..





2020/08/23 열정 만수르

Aug 23 2020 3 mins  

저는 약국에서 일합니다. 그런데 갑자기‘이게 뭐 게요?’하고 묻는 나의 고용주 약사님. 'number two넘버 투? 2인자? 아님, 뭐지?' 잠깐 동안 머릿속이 하얘졌다 복잡해졌다 하는데.. 내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응가!' 하고 답을 말하는 약사님. ‘응?’ 하고 의아해 하는 나와는 달리 재미있다는 듯 설명하는 약사님. 엊그제 설치한 영어공부 어플에서 배운 참신한 표현이라고 합니다. 답을 말하고, 설명하고 재밌다고 싱글벙글하며 공부를 이어가는 약사님. 참 열심이다 싶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자공부해서 한문으로 된 책을 읽어보고 싶다며 4급부터 시작하더니 1급을 절반정도 공부하고 있었는데.. 또 그 전엔 독서에 꽂혀서 단테 신곡, 셰익스피어 4대 비극 같은 것도 읽고,..서양미술사라는 엄청난 두께의 책도 읽고 그랬습니다. 또 언젠가는 운동을 해야겠다며 틈틈이 팔 굽혀 펴기를 하루에 100개를 하기도 했습니다. 하루는 150개했다 보고인지 자랑인지도 하고...암튼 대단히 열심이신 분입니다. 끝까지 쭈우~~욱 은 아니지만, 그래도 책도 두 달 여 만에 열권 정도 읽어내고, 한자도 한 달 여 만에 천자 넘게 익히고, 운동도 두 달 넘게는 한 것 같고..확실히 작심삼일보다는 오래하는 거 같습니다. 뭐든 참 잘 시작 하는 분이랄까요? 나는, 꾸준히 할 것이 걱정되고 미리 안 될 거라, 못할 거라 생각해서 시작이 쉽지 않은데...지금도 어플 다운 받아놓긴 했는데, 저렇게 열심히 할 엄두가 안 나서 아직 한 번도 실행해보진 않고 있습니다. 학교 다닐 때, 저런 친구가 옆에 있었으면 나도 덩달아 열심히 했겠다 싶은데.... 열정 만수르 약사님과 일하며, 내게도 그 열정의 불꽃이 일기를 바랍니다.




2020/08/22 매미가 줄었대요.

Aug 23 2020 4 mins  

새벽부터 매미 우는 소리가 가까이서 크게 들립니다. 부엌 쪽 방충망에 아슬아슬하게 달라붙어 날개를 떨며 매~앰앰맴 소리 내고 있습니다. 17년 동안 땅 속에 있다가는 나와서 2주 정도 살다가 가는 매미 소리는 짝짓기를 위한 생존의 몸부림이라고 하더라구요. 매미의 이러한 삶을 생각하니 결코 그 소리에 짜증을 낼 수 없었습니다. 신문을 보니 긴 장마 탓에 개체 수가 줄었다고 하죠. 보통 매미는 6월 말부터 개체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해 7월이면 성충들이 활발히 울며 짝짓기를 해야 하는데 올해는 그럴 만한 시간이 없었다는 겁니다. 장마가 길어지면서 성충이 되지 못하고 쓸려간 유충도 많고 습기 때문에 번데기에서 성충이 되는 일에 실패한 개체도 많을 것이라 추측 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제가 국민 학교 때는 여름방학 숙제로 식물채집, 곤충채집이 있어 들로 산으로 친구들과 엄청 돌아다녔습니다. 여학생은 식물채집, 남학생은 곤충채집을 하는데 방학이 시작되는 날부터 우리들 세상이었습니다. 지금이야 잠자리채를 쉽게 살 수 있지만 우리 때는 대부분 직접 만들어야 했습니다. 망으로 쓰기에는 모기장 쪼가리가 딱 좋은데, 여간 귀한 게 아니었지요. 긴 나뭇가지를 이용해 엉성한 잠자리채를 만들어 날개 있는 곤충을 잡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동네 친구들과 장마가 지나고 매미의 울음소리가 터져 나오면 본격적인 곤충채집에 나섰는데 10종이 넘는 곤충을 다 잡으려면 2~3일은 쏘다녀야 했습니다. 채집 연,월,일,시와 학년, 반, 번, 이름을 쓰고 교본을 만들어 개학하는 날 가져갔죠. 지금처럼 방학에 학원에 다니던 때가 아니라 친구들과 놀러 다니고, 시골 외갓집에도 가서 감자, 옥수수 쪄먹으며 사촌들과 물장구치며 놀고 더우면 근처 하천에서 새우, 가재 잡는 게 공부하는 것 이상으로 즐겁고 재미있었습니다. 수영하고 나와 배가 출출해지면 수박, 참외 서리를 해서 먹고는 36계 줄행랑을 치기도 하던, 마치 엊그제 같은 그 시절이 마냥 그립기만 합니다.













2020/08/16 여름 이불 만들기

Aug 18 2020 3 mins  

이웃에 사는 할머니께서 염색 일을 하는 딸이 인견으로 이불을 만들어 보내 주었는데, 천까지 보내줘서 여유가 있다고 주시겠다고 합니다. "할머니, 제가 재봉틀은 있지만 고작 바짓단 박음질 수준은 되는데 이불은 만들어 본 적이 없어서 다른 분 드리세요." "나도 젊어서 어른들과 만들어 봤는데, 자신 없어도 한 번 도전해 봐요." 인견에 감물 염색해서 색상도 좋고 여름에 덮고 자면 딱 이겠다는 싶었는데 문제는 실력이었습니다. 할머니한테 설명을 듣고 천을 가져 와서 신문지로 재단을 하고 안감을 겉감과 박고 다시 한번 안감을 박는 3중으로 만드는 일인데 천이 세 겹이라 제 작은 재봉틀로 힘겨웠습니다. 고수들은 한 두 시간이면 후다닥 할 수 있는 일인데 왕초보인 저는 3일 걸려 엉성하게나마 완성품이 나왔습니다. 사진을 찍어 언니, 동생에게 전송했습니다. "에구, 굼벵이도 기는 재주가 있다더니 잘 했다. 근데 어떻게 좋은 이웃을 만나 그런 호사를 누리고 있니, 부럽다." 다음 날 맛있는 음식을 만들고 할머니 집에 갔습니다. "할머니, 봐 주세요," "잘 만들었어요. 그런데 네 귀퉁이가 뭉툭한 게 안 좋아 내가 뜯어서 문제점을 가르쳐 줄게요." "할머니, 제가 덮을 건데 힘들게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니에요. 본인이 덮을 것이라도 잘 해야 돼요. 덮으면서 그 부분이 눈에 밟혀요." 하시면서 쪽가위로 네 귀퉁이로 뜯는데 속에 감춰 논 천들을 보고 웃으셨습니다. "이래서 끝이 뭉툭한 것인데요. 이 천은 이 방향으로, 저 천은 저 방향으로 순서대로 접어서 박고 뒤집어서 바늘 끝으로 살짝 당겨주면 날렵해요." 고정된 핀을 뽑으며 조심조심 박고 뒤집었더니 모양이 제대로 나왔습니다. 풀을 먹이고 깃은 손바느질로 마감을 해서 난생 처음 제 손으로 이불을 만들었습니다. 와!! 남편과 아들은 눈을 크게 뜨고 쳐다보았습니다. 덥고 습한 이 여름에 인견 감물 들인 이불을 시원하게 덮고 꿀잠을 자고 있습니다.



2020/08/15 나만의 멍 때리기

Aug 18 2020 3 mins  

베란다 빈 공간에 나만의 명상쉼터를 마련했습니다. 의자 하나, 탁자하나, 화초하나, 책 몇 권 등 최소한의 물건만 두고.. 창문을 열면 옆집 감나무와 옥상 정원이 푸르게 보여 경치는 덤으로 얻고 있습니다. 차 한 잔 마시며 혼자서 멍 때리기도 좋고 사색에 잠기기에도 안성맞춤입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냐며 참견하는 남편의 매너 없는 언행도 피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그동안 새로 사고, 얻어 오고, 주워온 온갖 물건들이 집안 여기저기에 쌓여있어 답답했습니다. 그래서 얼마 전부터 집안 공간 다이어트를 시작했죠. 추억이나 설레 임도 없고, 있어도 없어도 그만인 물건들을 과감히 버리고 있는 중인데, 버리기 아깝고, 수차례 망설이는 진통은 있지만 눈 딱 감고 미련 없이 버리니 몸과 마음이 해방되는 홀가분함에 너무도 좋습니다. 물건들을 꾸역꾸역 쟁여 놓고 찾으려면 어디에 있는 줄도 몰랐는데 정리된 가벼워진 공간에 새로운 환기가 되어 시원합니다. 필요한 물건을 얼마나 많이 갖고 있는가 보다, 불필요한 물건을 얼마나 더 버리는가에 초점에 맞추다 보니 새로운 물건을 구입하는 기쁨보다 불필요한 물건을 미련 없이 버리는 통쾌함이 더 큽니다. 여기 저기 벽에 못들도 다 빼어버리고, 사진 액자도 떼어버리며 집안 공간을 단순하고, 간소화시키니 좋은 생각들도 연달아 떠오릅니다. 잠시 방심한 틈을 타 잡동사니가 좀 들어 찰만하면 후다닥 버리고 뭔가 물건이 필요할 때면 신중히 생각해 구입을 미루어보니 결국 시간이 흘러 필요 없게 되는 경우도 종종 경험하게 됩니다. 편안하고 고즈넉한 나만의 베란다카페에서 다짐해 봅니다. 더 간소하게 더 단순하게 더 가볍게 살자고......결국 언젠가는 이 몸마저도 버리고 세상을 떠나게 될게 분명한 이상, 아무리 소중한 물건인들 무슨 대수겠어요


















2020/08/08 괜찮아요, 그럴 수도 있어요.

Aug 10 2020 3 mins  

근 20여년 가까이 해왔던 일을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찾다가 근처 유치원으로 출근하게 되었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순환 등교를 하는 유치원은, 그럼에도 아이들 목소리로 북적북적 합니다. 초보인 제게 맡겨진 일은 아이들 수업에 쓸 재료를 자르고 붙이는 것이었는데, 그렇게 일주일을 보내고 드디어 중요한 임무를 맡게 되었는데, 바로 강당에서 아이들에게 페이스 페인팅을 해주는 거였습니다. 얼굴 가득 마스크를 쓴 터라, 손과 팔에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는 페인팅이 전부였지만, 해본 적이 전혀 없는 저는 혹시라도 아이들이 어려운 그림을 그려달라고 할까봐 내심 조마조마했지요. “토끼 그려주세요” “고양이 그려주세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이들이 팔을 내밀면 저는 순간 얼음이 되었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 그렸습니다. 하트와 튤립은 그나마 수월했는데, 사자나 펭귄이라도 그려달라고 할라치면 제 손은 얼음이 되고 맙니다. “선생님 펭귄 잘 못 그리는데 어쩌지?” “괜찮아요. 그래도 그려주세요” 떨리는 손으로 펭귄을 그리다보면 금세 낯선 동물이 아이들의 팔에 그려집니다. “선생님, 이게 뭐예요?” “이거 펭귄인데....” “이상하다, 원숭이 같은데요.” “그래, 그러고 보니 원숭이 같아 보이네...어쩌지? 선생님이 펭귄을 잘 못 그려서..” “괜찮아요, 그럴 수도 있지요. 저는 괜찮아요.” 미안해하는 저를 오히려 아이들이 위로를 합니다. 이제 막 일곱 살 된 아이들이 말이죠. “다른 것으로 다시 그려줄까?” “괜찮아요. 선생님. 저는 좋아요. 고맙습니다.” 인사를 꾸벅하고 자리를 뜨는 아이들을 보는데, 왜 그리 울컥 하던지요. 마흔 넘어, 새로운 시작을 하면서 앞으로 많은 시행착오를 거칠 테지만 아이들이 해 주었던 “괜찮아요, 그럴 수도 있어요.” 라는 말이 큰 위로로 다가오는 요즙입니다.













2020/08/03 이 땅에 살면서..

Aug 03 2020 3 mins  

이 땅에 살면서 농부의 후손이 아닌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게릴라성 폭우에 국지적으로 쏟아지는 장맛비가 예사롭지 않아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시는 시이모님과 큰 시누이 에게 안부전화를 했습니다. 팔순 노구의 시이모님은 손이 많이 가는 딸기하우스를 하고, 큰 시누이 형님은 하동에서 배 과수원 농사를 짓고 계십니다. "괜찮으셔요? 비 피해는 없으셔요?" 여쭤보니 두 분 모두 "모든 게 하늘의 뜻“ 이라며 체념한 듯 "요즘 같은 시국에 도시에서 생활하기가 더 힘들지 않냐?" 되물으십니다. 수확을 앞 둔 시기에 힘들게 지어 놓은 자식 같은 배가, 과일이, 농작물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많이 아플 터인데.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아픔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죠. 저 또한 가난한 농부의 딸로, 힘들게 농사를 지어놓고도 하늘의 도움 없이는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아니, 모든 걸 순리에 맡겨놓고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엔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자고, 살아내자고. 당부의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습니다. 올 여름 장마는 유난히 길기만 합니다. 이번 주 내내 국지성 호우가 계속된다고 하고, 거기다 태풍까지 같이 온다고 하니 많은 비로 인한 침수 피해는 또 얼마나 될지... TV방송을 보다 사망, 실종, 부상 인명피해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안타까운 현실에 가슴이 시리도록 아파옵니다. 도로, 하천범람, 주택붕괴, 집의 침수로 이재민도 많이 발생했을 터인데 코로나19 바이러스에 이어 뜻하지 않는 재난으로 이중고를 겪어야 하는 그들은 또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할지..거대한 자연 앞에 우리는 그저 연약한 존재이지만 우리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같이 힘을 합해 농부들의 떨어진 낙과를 팔아주고 인명피해, 침수피해로 힘들어 하는 우리들의 이웃들을 따뜻한 사랑으로 안아줘야겠습니다. 어려울 때 일수록 뜨거운 힘을 발휘하는 우리 국민들의 성원으로 하루빨리 그들이 용기를 내어 일어서기를,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2020/07/27 내 삶의 길목에서

Jul 27 2020 3 mins  

우리 집 베란다에는 가득 정원박람회가 열렸습니다. 저마다 사연도 많은 화초랑 나무들이 이 무더운 여름 얼마나 화려하게 푸르러 가는지 아침저녁 볼 때마다 감탄사 연발입니다. 얻어온 녀석, 주워온 녀석, 사온 녀석들이 한데 어우러져 반들반들 초록의 건강미를 뽐내는데 그저 감동입니다. 핑크빛 일일 초, 목베고니아, 댄드롱, 엔젤트럼펫, 산세베리아, 기린 초, 만세선인장 등 사시사철 피고 지는 그 모습 사진 담아내기가 요즘 행복의 일상입니다. 혼자 보기 아까워 동영상 찍어 지인들과 공유하노라면 다들 깜짝 놀라며 여기가 도대체 어디냐고 이구동성 묻습니다. 비결이 뭐냐 구 어떻게 하면 이렇게 잘 크냐구 그럴 때마다 딱 한 가지 저의 대답은 "햇빛, 바람, 물 그리고 사랑. 맨날 들여다보며 예쁘다~사랑해~대견하구나~이렇게 속삭여주며 쓰담 쓰담 해주지"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데..자녀를 키울 때도, 화초를 키울 때도 애정과 관심, 칭찬이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새삼 놀라게 됩니다. 그래서 틈만 나면 시골 노부모님께도 다 큰 아들, 딸, 사위에게도 옆 지기에게도 "사랑해~ 사랑해요~ 건강하세요~ 정말 대견하구나~,역쉬 당신은 멋져~" 아낌없이 사랑의 표현을 합니다. 처음에는 어색해하던 가족들도 지금은 서로 뿌잉 뿌잉 표현이 지극히 자연스러워졌습니다. 가족 간에는 웃음꽃 만발~베란다는 울긋불긋 꽃 대궐. 이렇게 소중한 사랑으로 송이송이 꽃피는 황혼을 채워간답니다.










2020/07/23 아내와 아버님

Jul 23 2020 3 mins  

출근을 하며 아내에게 삼십만 원을 주었습니다. 아내는 “보너스 받았어?” 합니다. “이 시국에 뭔 보너스. 아버님 잠바랑 속 옷 사서 보내 드려.” 아내 입이 귀에 걸립니다. 아내는 모릅니다. 10여년 직장에 다니다 집에 있는 아내가 매일 갑갑하다며 바람 쐬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얘기하길래 어디라도 데려가려고 모으는 건데, 어차피 아내에게 사용하나 아버님께 사용하나, 아니 아버님께 사용하는 걸 아내는 더 좋아할지도 모르겠다 싶었습니다. 퇴근을 하니 못 보던 택배 박스가 보입니다. 아버님이 결혼식이 있어 가야 하는데, 혼자 나가서 사기도 뭐하니 하나 사서 보내 주었음하신다고.. 아내는 그 길로 나가서 사온 모양입니다. 아버님 좋아하시는 분홍색 티도 하나 샀답니다. ‘아니 딸이 셋이나 있는데 맏딸은 호구냐고 왜 나한테만 전화를 하시냐고.. 결혼식에는 아무거나 입고 가시지 왜 꼭 와이셔츠냐고.. 내가 돈이 어딨다고!’ 투덜투덜 입니다. 장모님이 가신지 올 해가 10년째, 76세이신 아버님도 혼자 사신지 10년. 태어나서 평생을 사신 곳이라 한동네에 사시는 분들이 챙겨 주시고 고모님과 작은아버님이 자주 내려가시고, 사남매가 챙긴다 하지만, 장모님과 함께 사시는 것만큼은 아니죠. 그래도 워낙 깔끔하신 분이라 처갓집은 늘 깔끔하고, 화단에는 철따라 꽃이 피고 집니다. 내려 간다하면 삼겹살을 솥뚜껑에 얹어 구워주시고, 사 먹는 건 맛없다며 고추장도 담가 작은 항아리에 담아 주십니다. 농사도 지어서 보내 주시고. 동네 분들과 여행도 다니시고, 초등학교 동창 분들이랑 등산도 다니시는 아버님은 그래서 그런지 건강하십니다. 그런 아버님의 단 하나의 걱정은 옷을 혼자 못 사시는 겁니다. 그래서 아내가 늘 아버님 옷을 사 드립니다. 아내가 고르는 옷을 제일 맘에 들어 하십니다. 계절마다 아버님 옷과 속옷, 양말. 겨울에는 내의사서 보내드는 건 아내의 몫입니다. 처갓집 내려가면, 아내가 사 준 점퍼가 처갓집 안방 옷걸이에 걸려 있겠죠. 아내와의 여행은 조금 더 미뤄야겠습니다.

























2020/07/13 어떤 저녁

Jul 13 2020 4 mins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데, 모처럼 아버지가 돼지갈비가 생각난다 하시며 전화를 하셨습니다. 엄마는 요즘 치과치료를 하시느라 갈비는 못 드신다기에 아버지와 함께 돼지갈비 집으로 갔습니다. 비가 오는 날씨임에도 사람들로 붐볐습니다. 우리 테이블의 불판을 두 번째 갈 때 쯤, 꼬마들 네 명이나 앞세운 대가족이 가게로 들어왔습니다. 언뜻 보니 꼬마들의 할아버지로 보이는 분은 등이 많이 굽어있었으나, 밝고 푸근해 보이는 인상이 참 좋았습니다. 아버지는 늘 상 그러듯이 당신의 몸 아픈 이야기, 쓸쓸한 노년의 이야기, 주변 친구들 이야기들을 담담하게 하십니다. 난 잘 구워진 돼지갈비를 아버지의 접시에 놓아드리며 다른 테이블을 이리 저리 둘러보았습니다. 혼자 고기를 구워 소주를 마시는 중년 남자. 그리고 20대로 보이는 두 아들을 데리고 온 부부가 환하게 웃으며 자식들과 이야기 하는 모습. 여러 모습의 사람들이지만, 살아가는 구색은 별반 달라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속에 아버지와 딸이 오롯이 앉아있는 우리모습이 다른 사람들과 섞여 있는 듯이 보이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듯도 했습니다. 내가 어렸을 땐 아버지가 어렵고 무서웠습니다. 교육자 이셨던 아버지는 항상 근엄하고 엄격하셨습니다. 근데, 지금의 아버지는 하나도 무섭지도 않고 오히려 너무도 힘이 빠진 모습입니다. 아버지가 점차 노년으로 접어들면서 당신 스스로 희망의 끈을 놓아버리는 모습에 마음이 아픕니다. "내가 살면 몇 해나 더 살겠누?" 아버지는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월급을 타기 전까지 꼭 밥을 사주셨습니다. 그때 아버지가 사주셨던 고기가 귀한 것 인줄 모르고 그저 당연하게 먹기만 했는데 근데, 아버지는 고기를 사드리면 항상 "참 잘 먹었다~" 라고 하십니다. 난 그 말이 몹시 마음이 아프고 죄송했습니다. "아버지! 다음번에는 더 맛있는 고기 집으로 모시고 갈게요~그때는 엄마랑 함께 가요~" 아버지가 싱긋 웃어 보이며 엄지 척을 하십니다. 아버지를 모셔다 드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차 속에서 얼마나 눈물이 나는지... 아버지, 힘 내시구요. 건강하세요.

























2020/07/03 내 삶의 길목에서

Jul 06 2020 3 mins  

저희 옆집에는 72세 되신 할머니 한분이 사십니다. 올해로 혼자되신지 삼십년이 넘으신 할머니는 자식들 네 명을 다 출가시키고 지금은 넓은 평수에 혼자 사십니다. 남편 살아계실 때는 안 해본 장사가 없을 정도로 고생을 많이 하셨는데, 지금은 자식들이 다 잘 살아서 그 덕에 호강을 하고 있다고 자식 자랑을 많이 하십니다. 어제는 수제비를 끓였는데, 가족들이 다들 밥을 먹고 온다기에 냄비에 담아 할머니 집으로 갔습니다. 뭘 이런 걸 가지고 왔느냐며 잠깐 들어왔다 가라십니다. 설거지도 안 한 채 그대로 집안일이 걱정이 되었지만, 그래도 할머니가 들어오라 하시니 그냥 갈 수가 없었습니다. 할머니가 수제비를 한 입 드시더니 맛있다며 연신 칭찬을 하시며 국물 비법이 뭐냐며 물어 보시길 레 가르쳐드리니 배워야겠다고 하십니다. 이제는 혼자 사니 해먹기가 귀찮아 끼니를 건너뛰기 일쑤라 하십니다. 수제비를 다 드신듯해 일어나려하니 중국에서 아들이 보내온 과자가 있는데 먹어보라며 제 앞에 놓아주시고 중국차라며 보이 차까지 주십니다. 그리고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자녀분들 자랑을 하십니다. 큰 아드님은 중국에서 성공을 하셔서 자주 볼 수는 없지만, 보약이며 용돈을 척척 보내오고, 작은 아들은 돈은 좀 못 벌지만, 주말이면 아들, 며느리, 손주가 와서 입과 귀를 즐겁게 해준다고 하십니다.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이제 자리에서 일어서려는데, 설거지를 깨끗이 한 냄비와 약병을 하나 주십니다. 중국에서 아들이 사 온 약인데, 툭하면 체하는데 이거 먹고 좋아졌다며 한번 먹어보라 하십니다. 벌써 이웃으로 산지 이십년이 다 되어가는 할머니께서 오래오래 사셔서 앞으로도 지금처럼 서로 맛있는 것도 나눠먹고 수다도 떨어가며 재미나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2020/06/28 우리 동네는

Jun 29 2020 3 mins  

주말아침이면 일찌감치 눈을 떠 한 주간 가족들이 벗어놓은 옷을 빨아 옥상에 널어두고 남편과 함께 카메라 매고 동네 마실을 갑니다. 빽빽한 아파트와, 호화찬란한 레온사인으로 가득했던 번화가를 벗어나 이곳으로 이사 온 지 7개월째. 수도권이긴 하지만 이제는 젊은이들은 신도시로 빠져나가고 대부분 어르신들이 살고 있어 곧 다른 동네와 통합이 될 수도 있는 아늑하고 아담한 동네로 50년도 더 된 단독주택을 신랑이 직접 한땀 한땀 리모델링하여 작년 10월에 이사를 왔습니다. 처음엔 쓰레기 버리는 일도 귀찮고, 불편한 게 많았지만 그렇게 긴 겨울을 보내고 봄이 오니 꼬불꼬불 끝을 알 수 없는 골목길에 대한 기대와 사각형, 삼각형, 사다리꼴 모양의 집들과 한 두평 남짓의 빈 땅에 올망졸망 토마토며 고추, 가지, 콩, 그리고 알록달록 예쁜 꽃들을 심어놓은 다양한 모습들에 흠뻑 빠지게 됩니다. 단독주택에 사시는 분들은 다들 부지런 하십니다. 이른 아침부터 잡초도 뽑고, 아침 준비할 상추랑 깻잎도 따고, 화단정리도 하고...오늘 아침은 화단정리를 하고 계신 한 아주머니를 만나 집이 너무 예뻐 구경을 하고 싶다 했더니 선뜻 들어오라 하십니다. 대문을 여는 순간 와 하는 탄식과 함께 저희 부부의 눈이 빛났습니다. 그 집안에는 우리 부부의 꿈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처음 본 사람에게 커피도 내려주시며 집안 구석구석을 보여주며 그 집만의 매력을 설명해 주시는데 당신도 살고 있는 아파트는 전세를 주고 이 동네로 이사 온지 3년 되었다며, 이 동네에서 아이들에게 동화를 읽어주는 선생님을 하고 계시답니다. 다음에 제가 직접 만든 차를 가지고 오겠다는 약속을 하고 나오는데 남편이 "우리도 집 예쁘게 꾸미자." 남편과 저의 꿈이 다시 살아나는 그런 아침을 선물해 주신 조은숙 동화선생님 너무도 감사합니다.





















2020/06/20 꼬마와 편견

Jun 22 2020 3 mins  

벌써 초여름에 접어 든 걸까요? 아침을 먹고 집을 나서는데 마스크를 써서 그런지 이른 시각 임에도 덥기 시작 합니다. "엄마! 빨리 가셔야 해요. 10시 반에 오픈예요. 선착순 100명만 반값에 준대요." 인근 백화점에서 행사를 하는데, 아이들이 좋아하는 삼겹살이 행사품목이었습니다. 100명안에는 들겠지..하며 여유롭게 가려는데 백화점에 가까워질수록 가족단위로 몰려가는 게 보입니다. 두 아인 토익시험이 있어서 저 혼자 나선 길! 저녁에 삼겹살 먹고 싶다던 아이들을 위해 사러가는 길이었습니다. 거의 경보에 가까운 걸음으로 백화점 앞을 지나는데, 한 아저씨가 누워 계십니다. 누구한테 맞았는지..얼굴은 온통 멍투성이에 옷은 흙 범벅이 되어 있습니다. 백화점엔 가야하고, 그냥 지나치기엔 맘이 아프고, 땡볕은 따가운데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어떻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옆에 술병이 놓여있고, 잠이 드신 것 같아 백화점으로 들어갔습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 늘어선 줄에 가까스로 삼겹살을 살수가 있었습니다. 트로피처럼 삼겹살을 들고서 역 앞을 지나치려는데, 땡볕은 더 따가웠고, 마스크 속으로 땀방울들이 흘러내릴 정도로 더웠습니다. 그런데, 그 아저씨가 그때까지 그곳에 누워있는 겁니다. "저러다가 뭔 일이 나는 거 아냐? 다들 보고 그냥 지나기만 하고...어쩌지?" 고민을 하고 있는데 마침 할머니와 손을 잡고 가던 유치원생정도로 보이는 꼬마아이가 자신의 손에 들고 있던 물과 할머니가 쓰고 계시던 양산을 그분 머리맡에 놓아둡니다. "어구~~그걸 거기에 놓으면 어쩌누? 할미는 뭐 쓰고 가게..." 그러자 꼬마아이는 해맑게 웃으며 "할무이는 집에 또, 많이 있잖아요. 아저씬 없고요." 할머닌 못내 양산이 아쉬운 듯 계속 뒤를 돌아 보셨고, 전 한참을 꼬마와 할머니가 멀리 가시는 모습을 바라보았습니다. 몇 번을 망설인 제가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릅니다. 세상속의 만연한 편견들!! 아이의 해맑은 미소와 순수한 그 마음이 그런 편견은 사치란 것을 알려주고 있었습니다.





2020/06/18 내 남편의 좋은 습관

Jun 18 2020 3 mins  

아침에 일어나 아이 방문을 열어보니 난리도 아닙니다. 술을 얼마나 먹었는지 양말까지 신은 채로 침대에 코골고 누워있습니다. 책상위에는 음료수 빈병이 보이고 바닥에는 옷들이 널브러져 있습니다. 작년 고3을 치열하게 보낸 아이는 올해 대학 새내기가 되었는데 학교 딱 한 번 가보고, 친구들 얼굴은 온라인으로 보고 있지요. 과 친구들을 만나 함께 강의실에서 수업을 해야 할 시간에 방에서 온라인으로 수업하고 새로운 친구들과 놀아야 할 시간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친구들 만나겠다는 걸 그냥 봐주고 있는데, 이건 영 아닌 듯싶습니다. 그래도 아들이라고 북엇국을 끓여서 느지막이 일어난 아이와 마주 앉았습니다.“얘, 아무리 술을 먹어도 옷 좀 갈아입고, 양치는 하고 자. 옷은 왜 그렇게 바닥에 벗어 놓는 건데? 옷걸이에 걸어 놓고 빨건, 빨래 통에 담아 놓고,.술은 누구랑 그렇게 먹은 거야??”“중학교 1학년 때 반 친구 만났어요.”그렇게 북엇국에 밥을 한 그릇 말아 먹더니, 방으로 들어갔다가 한 시간 정도 있더니 또 모자를 쓰고 나옵니다. “너 또 어디 가는데?”“정우가 잠깐 보자고 해서 나갔다 오려고요.”혹시나 하고 아이 방문을 열어보니, 역시 난리도 아닙니다. 아들과 달리 남편에게는 참 좋은 습관이 몇 가지 있습니다. 첫 째는 반찬 투정이라는 게 없습니다. 그리고 술을 아무리 먹고 와도 꼭 씻고 잡니다. 양치하고 잠옷으로 갈아입고, 물 한 컵 마시고...아침에 일어나면 겨울이든 여름이든 창문 열고 환기를 시킵니다. 그리고 침대 이불을 털어서 개어 놓습니다. 남편은 화장실 청소를 아주 잘 합니다. 다른 곳은 몰라도 화장실에서 냄새 나는 건 무척 싫어하더라고요. 그리고 젤 중요한 게 제 남편은 다음날을 준비합니다. 퇴근하고 집에 와서 입던 바지를 세탁 바구니에 넣고 내일 입고 갈 바지를 꺼내 놓습니다. 지갑을 챙겨서 넣고 손수건도 하나 넣고. 내일 입고 갈 옷을 말끔히 정리해서 옷걸이에 걸어 놓고 잠자리에 듭니다. 남편의 이런 좋은 습관을 아이들이 닮았으면 좋겠는데... 작은 아이 올 해 스무 살인데, 좀 더 크면 나아질까요?





















2020/06/10 꽃을 가꾸는 마음으로♡

Jun 10 2020 3 mins  

얼마 전 오랜 지기들과 만나 점심을 먹고, 그냥 헤어지기 아쉬워 근처 화원에 들렀습니다. 하우스 안으로 들어서니 전에 맘에 두었던 꽃이 눈에 들어옵니다. 작은 화분 2개와 종류가 다른 것으로 하나를 사서 집으로 돌아와 분갈이를 했습니다. 처음엔 활짝 핀 꽃과 맺힌 꽃송이가 앙증맞게 잘 피는가 싶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시들시들 하더니 누렇게 말라갔습니다. 일주일도 못가 그 많던 꽃송이들은 다 시들어버렸습니다. 이듬해도 그 이듬해도 꽃을 볼 수 있다고 화원 주인은 말했었는데, 오래 보겠다고 대 여섯 배 쯤 넓은 화분에 분갈이를 했는데, 시름시름 시들해지는 화초 옆에 쪼그리고 앉아 한참 들여다봤습니다. 말라진 누런 잎을 떼 내려 했지만, 얼기설기한 줄기 사이 손가락 하나 들어갈 틈이 없습니다. 너무 촘촘히 붙여 심은 것이 화근인 듯싶었습니다. 게다가 더운 날씨에 창문을 닫아 환기를 시키지 않은 것도 한몫 했겠구나 싶고요. 그렇게 바람 한 점, 햇볕 한 줌 없이 물만 듬뿍 주었으니 영양분이 가득한 젖은 흙은 외려 뿌리를 썩게 만드는 원인이 되었던 듯싶습니다. 빈틈없이 모아 심었던 줄기를 드문드문 떼어냈습니다. 얽힌 가느다란 줄기들을 빚질 하듯 손으로 풀어 주고, 볕을 온 몸으로 쬘 수 있도록 자리도 옮겨주고, 그렇게 2주가 지나고, 한 달이 지나니 시들했던 줄기에 생기가 돌더니 다시 꽃봉오리가 맺히고 연분홍 작은 꽃이 피기 시작합니다. 사람과 사람사이 관계도 이처럼 적당한 거리가 유지돼야 오래 지속되지 않을까 싶네요. 관심이 지나치면 자칫 집착으로 변질돼 시든 꽃이 될 테고, 무관심 또한 조화롭지 못한 안개꽃 다발처럼 군데군데 상채기를 남긴 채 돌아 설테니 말입니다. 잃었던 물줄기를 다시 찾았으니 머지않아 휑하게 드러난 자리도 다시 풍성해지겠지요.










2020/06/06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Jun 08 2020 3 mins  

퇴근길에 조카 생각이 나서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언니, 바빠? 나 지금 퇴근하는 길인데 갈까? 오랜만에 애들도 볼 겸.” 그러자 언니는 “그래? 잘됐네, 그럼 올 때 막걸리도 한 병 사 올래?” 술을 마시지 않는 언니 부부인지라 웬 막걸리를 사 오라고 하는 거지? 하면서 도착하니 큰 상위에 잡채며 불고기며 음식이 한가득 차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언니네 아래층에 사시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와 계셨습니다. “아이고, 이모도 오시네.” 무슨 일인가 싶어 눈치를 보니 두 분이 이사를 가신다고 합니다. 언니가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 오기 전, 아래층에 사는 사람들과 층간소음으로 인해 얼굴을 붉히며 지낸 터라 언니의 마음은 그야말로 불안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다 계단에서 우연히 아래층에 사시는 분들을 뵙고 “죄송해요, 시끄럽지요? 애들을 못 뛰게 혼내고 있는데 제가 없을 때는 이 녀석들을 어떻게 할 수가 없네요. 어르신들 정말 죄송합니다.” 그러자 두 분은 손사래를 치며 “아니 아이들이 당연히 뛰어놀아야죠. 아무 신경 쓰지 말아요. 우리 딸도 애들이 뛰어다녀서 항상 불안해하는 모습이 영 보기 안 좋더라고요. 우린 두 늙은이끼리 사는데 그런 소리라도 들려야 사람 사는 것 같고 좋아요. 아무 신경 쓰지 말아요.” 너무 감사해서 과일을 가져다 드리니 또 직접 빚으신 만두를 가져다주시고, 그렇게 요즘 시대와는 다르게 이웃사촌으로 정을 나눈 지 벌써 4년이 되었습니다. 이제 딸 집으로 들어가 사시게 되었다고 합니다. 언니는막걸리를 따라드리며 그간의 고마움을 표현했고 조카 녀석들도 ‘할아버지, 할머니 감사합니다, 건강하게 오래 사세요.’ 인사를 하는 통에 우리는 웃으면서도 눈물을 훔쳤네요. 요즘 세상에 좋은 이웃을 만나는 건 정말 행운 인 것 같습니다. 층간소음으로 서로 싸우는 시대에 이렇게 푸근한 정을 나누며 산 언니네 가족들은 당분간 아쉬운 마음이 쉬이 가라앉지 않을 것 같습니다. 어르신들, 정말 감사했습니다.


2020/06/05 꿈꾸는 사업

Jun 08 2020 2 mins  

집을 한 다섯 채 지어서 세놓을까 한 채는 앞마당 바람 생각가지 사이에, 한 채는 초여름 쥐똥나무 그 뿌리에, 다른 한 채는 저녁 주황베란다에, 또 한 채는 추운 목욕탕 모퉁이에 지어, 한 집은 잔물결구름에게 주고, 한 집은 분가한 일개미가족에게 주고, 또 한 집은 창을 기웃대는 개망초흰풀에게, 한 집은 연못가 안개새벽에게 그리고 한집은 혼자 사는 밤줄거미에게 주어, 처음에는 집세를 많이 받겠다고 하다가 다음에는 집세를 깎아주겠다고 하다가 결국은 그냥 살아만 달라고 하면서 거기 모여 사는 착한 이웃 옆에 나도 그렇게 세를 놓을까 정복여 시인의 거실 한 쪽은 강아지에게 세를 놓고, 앞 베란다는 예쁜 화분들에게 세를 놓고, 저쪽 뒷마당은 붉은 노을에게 세를 주면서... 그렇게 다복하게 살면 행복은 절로 오겠다 싶습니다.



2020/06/05 친구의 개업식

Jun 08 2020 3 mins  

친구가 미용실을 개업했습니다. 알뜰한 친구는 중고마켓에서 개업에 필요한 새것 같은 중고물품을 하나둘씩 사 모으더니, 어느 날 단 톡 방에 미용실 이름을 공모했습니다. 몇 가지 이름 중에 가장 맘에 들었던 건 힐링헤어...머리를 하러 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힐링의 마음을 전하고픈 친구의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퇴근길에 친구 미용실로 갔습니다. 개업식에는 가보지 못한 터라, 맘이 담긴 무엇을 할까? 고민을 하다가..친구가 필요한 물건을 살 수 있도록 예쁜 돈 봉투를 준비했습니다. 도착하니 먼저 온 친구들이 하나둘씩 나를 반겼습니다. 그리고 미용실 문을 닫는 시간..저희는 고기파티를 시작했습니다. 고기와 상추, 김치, 쌈장, 불판과 그릇, 수저를 하나둘씩 날라서 한상 차리니 근사한 식탁이 완성되었습니다. 저희는 고기를 맛있게 먹으면서, 또 다른 친구가 담아온 맛있는 김치에도 연신 감탄했습니다. 복닥복닥 살아가는 얘기로, 또 어느새 갱년기 즈음에 들어서 건강 챙기는 얘기로, 사소하지만 삶의 기쁨을 얘기하면서 저희는 그렇게 힐링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맛있게 고기를 먹고, 정리를 마친 후 돌아가는 길....마음 가득 차오르는 건 친구들의 따뜻한 마음이었습니다. 서로의 안녕을 빌어주며, 다시 만날 날까지 건강하길 또 빌어주었습니다. 친구의 미용실에서 우리가 그랬듯이...동네의 많은 분들이 두런두런 사랑방같이 이야기보따리를 많이 풀어놓으며, 힐링의 장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곳은 우리의 아지트야..언제 건 와..." 산다는 건, 늘 같은 일상인 것 같지만, 때때로 찾아오는 소박한 즐거움에 새삼 감사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미용실 친구는 날마다 저녁스케치를 들으며, 혹시나 제 글이 또 나올까? 고대한다고 했습니다. ‘친구야 듣고 있지? 오늘도 손님이 가득하길 빌며, 개업 축하해...오늘도 네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손님들과 행복하길 바란다..화이팅!!!’



2020/06/04 내 삶의 길목에서

Jun 08 2020 3 mins  

시골에 계신 엄마가 우리 집에 오셔서 식사를 하시는데 엄마 친구 얘기를 하십니다. 저는 사뭇 놀라서 “엄마한테도 친구들이 있었어요?” 하고 무심코 말했지요. 순간, 아차 했습니다. 미처 놓치고 있었던 사실, 엄마에게도 풋풋한 소녀시절이 있었다는 사실..거의 55여 년 만에 연락이 되었다며 강씨 집성촌에서 나름 귀하게 자란, 엄마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해서 한 친구가 알음알음 엄마의 연락처를 알아 전화를 했다는 겁니다. 어느 날, 눈떠 보니 80이라는 세월을 살아가고 있었고, 그 사이, 남편은 저 세상으로 떠나고, 자식들뿐만 아니라 손주들도 커서 오롯이 ‘나’만 남게 되니 어릴 적 같이 자랐던 친구가 그토록 보고 싶었다고 하시네요. 그래서 노년의 두 소녀가 한 걸음에 만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여쭤봤죠. ‘어떻게 서로 쉽게 찾으셨어요?’ 그 수많은 시간을 건너 만난 두 소녀는 세월이라는 장벽이 무색할 정도로 정말, 한 번에 알아보셨다고 합니다. 살아왔던 지난 과정들을 단 몇 시간 만에 어떻게 다 이야기 하실 수는 없었지만 세상을 떠난 친구 이야기에 함께 눈물 흘리고, 자식들이 잘 커서 호강 하고 사는 친구들 이야기에 잘했다, 잘됐다 공감하며 추억여행 하셨다면서, 그래도 살아 있으니 이렇게 만나 손잡고, 함께 밥 먹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고 하시면서 앞으로는 자주 보자고 새끼손가락 거셨다고 하십니다. 엄마의 그런 모습을 보는데 얼마나 수줍은 소녀 같으신지 참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이야기 나온 김에 전화 한 번 해야겠다면서 전화를 거시는데 80세 할머니의 모습은 저리 가고 10대 소녀가 앉아 있는 듯 했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많이 친구 분들을 만나실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행복감이 더 충만하도록 용돈 좀 넉넉히 드려야겠습니다. 다시 만난 엄마의 10대가 더 푸르러서 더 건강해지시기를 바래봅니다.















2020/05/29 엄마의 틀니

Jun 03 2020 3 mins  

어버이날에 찾아뵙지 못하고 2주가 지나 지방에 계신 엄마를 찾아뵀습니다. 올해 88세이신 엄마는 농사일로 너무 고생하셔서 이곳저곳 안 아픈 곳이 없으십니다. 40여전 전 농사일을 하다 한쪽 눈의 각막을 다쳐서 시력도 안 좋으십니다. 설상가상 치아까지....예전에는 엄마뿐만 아니라 시골 어르신들 모두가 치아 관리가 잘 되지 않아 성한 이가 사실상 없으십니다. 할머니도 그랬고 지금 생각하면 오래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도 치아가 듬성듬성 남아 있고 그나마 남아 있는 이도 성하지 않아 음식을 잘 드시지 못했던 기억이 납니다. 엄마는 오래 전부터 틀니를 하셨습니다. 근데 최근에 겨우 아래 4대 남은 치아도 이젠 깨져버리고 흔들리며 더 이상은 역할을 하지 못하는 듯합니다. 틀니가 잇몸에 마주쳐 아프고 혀끝이 자꾸 깨진 이빨에 쓸려서 헐고, 그러니 도무지 음식을 씹지 못하시니, 입맛도 없다 하십니다. 특히 고춧가루가 들어간 음식은 혀끝이 헐어 매워서 못 드시니까 물김치를 숟가락으로 떠서 밥을 비벼서 드시는 둥 마는 둥 하십니다. 엄마가 식사하는 모습을 보는데 눈물이 핑 돕니다. 식사가 끝난 다음 엄마께 “엄마, 틀니 다시 맞추자”. 하니 엄마는 “이제 곧 죽을 나이인데, 얼마나 써먹는다고, 써먹지도 못하고 죽으면 돈만 아깝지, 작기나 하나 5~600이라던데” 하십니다. “엄마, 하루를 살더라도 하고 싶은 거 하고, 먹고 싶은 거 먹고, 그래야지 행복한 거야. 그리고 돈 걱정 하지 마, 그 정도 아닌 걸로 알고 있어, 그리고 나 그 정도 돈은 있어“ 그제 서야 ”그래, 다시 더 가라앉지 않으면, 그때 하는 거 생각해보자“ 하십니다.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말하니, 아내는 흔쾌히 그러자고 합니다. 얼른 치과를 알아봐야겠습니다.

































2020/05/16 시작이 반이던가

May 18 2020 3 mins  

육십만 되면 치매검사를 받아야 한다며 전화가 옵니다. ‘사모님 시간 날 때 보건소에 들려 치매검사를 받으셔야 합니다.’ 대답은 야무지게 합니다. ‘네’ 라고.. ‘갔냐구요?’ 한참 시간이 지났는데 아직 안 갔습니다. 내 나이에 무슨 치매냐고 스스로 반문하면서...그런데 모르는 척 넘길 때가 아니었습니다. 어느 날 친구가 전화를 했는데 ‘영순이가 정신이 없어. 무슨 말을 했는지, 방금 무얼 했는지 아무것도 모른다고 하네.’ ‘누구한테 들었는데?’ ‘동생이 우리 아파트에 이사 왔거든, 글쎄 동생이 언니 치매 맞다고 하더라고. 요즈음은 주간 요양보호소에 간데. 혼자 집에 있으며 화재도 겁나고 혼자서 무얼 하질 못해서 주간 요양보호소에 간다고 하네. 삼시 세끼 먹고, 약도 먹었는지 모른다고 하니 심한 거 아닌가.’ 저녁까지 먹고 동생이 데리려 간다는데 여동생이 없다면 누가 해 주겠는가. 영순이는 여동생 있어 다행이다. 나는 딸도 없고, 여동생도 없는데... 영순이는 갑자기 신랑이 세상 떠나고 나서 혼자 살더니만 저런, 치매 맞는가봅니다. 시누이가 요양보호사로 근무하는데 가끔 해주는 말을 빌리면 ‘언니야, 치매는 외로움에서 많이 온다고 하더라구, 사람과 자주 만나 이야기도 하고 수다도 떨고 그래. 혼자 우두커니 있다 보면 치매라는 병은 나도 모르게 온다고 알겠지?’ 미룰게 아니라, 치매 검사부터 받고, 예방법을 배워 실천해야겠습니다. 아직은 우리 요양보호소에 갈 나이는 아니잖아요. 인생은 육십부터라는 말을 하지만,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한다는 말 우리 명심하며 건강검진이 우선이라는 걸 꼭 실행으로 옮겨야겠습니다. 내 발로 걸어 다닐 때가 제일 행복하니까요...




























2020/05/04 어머니의 밥상

May 05 2020 4 mins  

온라인 수업 중이라 점심을 친정어머니 댁에 가서 먹습니다. 학생들이 없으니 학교에 급식이 안 되어서 점심을 각자 해결하고 있거든요. 어머니께서 차려주신 밥을 먹으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제, 어디에 가든 누가 이렇게 내 입맛에 딱 맞는 밥상을 차려줄까 하는 생각입니다. 오늘 밥상만 해도 제가 제일 좋아하는 콩밥을 하셨는데, 씹으면 씹을수록 단맛이 나는 서리태를 넣어, 질지도 되지도 않게, 제가 제일 좋아하는 밥을 하셨더라고요. 김치는 제가 좋아하는 열무김치와 깍두기를 차리셨는데 저는 열무김치는 푹 익은 걸 좋아하고 깍두기는 잘 익은 걸 좋아하는데, 딱 제가 좋아하는 맛일 때 꺼내서 상에 올려놓으셨습니다. 감자는 양파 넣고 고추 넣고 볶았고,멸치는 큰 멸치를 간장, 고추장, 매운 고추를 넣고 볶았고, 제가 제일 좋아하는 상추쌈과 쌈장으로 차린 밥상을 보면서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어머니께 제가 어떤 김치를 언제 먹을 때가 제일 맛있는지 따로 말씀드린 적은 없습니다. 감자도 볶은 걸 좋아하고, 닭고기 국을 좋아하고, 돼지고기는 고추장볶음을 했을 때가 제일 맛있다고 말씀드린 적도 없습니다. 어머니의 사랑이 얼마나 섬세하고 깊은지를 느끼면서 천천히 밥을 먹었습니다. 처음에는 조금만 먹어야지 했다가 멸치에 한 숟가락, 쌈에 한 숟가락 하다 보니 한 그릇을 뚝딱 다 먹었습니다. 등교 개학을 하고 나면 급식을 먹어야 하니 어머니의 밥상을 매일 접하는 날은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아침부터 제 밥상을 준비하시고, 제가 들어올 시간에 딱 맞춰 밥을 안치셨을 겁니다. 제 나이도 내년이면 오십인데, 어머니께는 마땅한 밥상 한 번 차려드리지 못했습니다. 유명한 맛 집을 모시고 가면 대접을 잘 한 양 생색을 냈던 걸 생각하면 참으로 어머니께 죄송하고 부끄럽기만 합니다. 등교 개학이 되기 전에 어머니께 밥상 한 번 차려 드려야겠습니다. 어머니께서 저를 생각하며 하나하나 정성들여 차리신 것처럼 저도 어머니를 생각하며 밥상을 차려 보려고요. 어머니의 사랑에 만 분의 일이라도 갚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2020/04/30 요즘 정말 어려운가 봅니다.

May 03 2020 3 mins  

저희 집에도 세 사람이나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아내는 지난 달 말 권고사직을 받았습니다. 장판 타일을 판매하는 대리점에 다녔는데 작년 봄부터 매출이 없다 수금이 안 된다, 직원 한명이 그만뒀다 얘기를 했는데, 이사를 하거나 여유가 있어야 장판을 새로 하고 마루도 시공 할 텐데, 우선 먹고 사는 일이 해결되지 않으니 집 꾸미는 일은 미뤄지게 되는 게 당연한 일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올 봄을 넘기기가 어려웠나봅니다. 아내는 9년 동안 다녔던 회사를 그만두면서 많이 아쉬워했습니다. 누나는 집 근처 칼국수 집에서 점심시간에만 근무를 했습니다. 아침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인데, 솜씨 좋은 누나는 겉절이 김치를 만들고 칼국수를 미는 일을 좋아했기에 열심히 다녔습니다. 그런 데 칼국수 집에 손님이 이젠 없답니다. 그렇게 누나도 일을 그만 두었습니다. 그리고, 이달 초에 처남댁도 회사를 그만두었습니다. 처남댁은 병원근처 약국에서 처방전 받아 입력하는 일을 했는데 그 병원이 코로나19 지정병원으로 되고, 병원에 코로나 19 검사를 받으러 오는 사람들이 드나드니, 약국에는 사람이 없나봅니다. 몇 백 명씩 드나들던 약국은 하루에 몇 십 명이 오고, 그것도 혈압약이나 당뇨약 받으러 오는 사람들뿐이랍니다. 저녁에 아내와 통화하는 걸 보니 어디 아르바이트 자리라도 알아본다고 하는지, “당분간은 아르바이트자리도 없을 거야. 이참에 너도 좀 쉬어라.” 하며 전화를 끊더라구요. 하루하루 열심히 사는 사람들의 일상이 이렇게 무너지고 있으니, 참으로 답답하기만 합니다. 코로나19 가 어여 끝나서, 다시 예전의 일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020/04/24 내삶의 길목에서 19.4마임, 1화과자, 20.1 코르테

Apr 26 2020 3 mins  

이모가 저 때문에 엄마와 다투셨다는 얘기를 듣고, 저에게 또 다른 엄마이신 이모께 죄송한 마음을 전하려고 합니다. ‘이모 엄마랑 화해하세요. 엄마는 절대 그냥 못 넘어 간다고 화를 내시기만 하니까, 이번에도 마음 넓은 이모가 엄마께 먼저 전화하시라고 부탁드려요.’ ‘아들 같은 조카 걱정한 게 뭐가 기분 나쁘다는 거야? 아니, 니 엄마가 먼저 물어보니까 내 딸이 승진했다고 한 건데, 괜히 심술을 내잖아!" "아이 부러워서 그런 거잖아요. 엄마가 진짜 서운했으면 이모한테 축하한다고 전화하라고 하셨겠어요?" "아 몰라. 그런데 너는 왜 니 엄마 편만 드냐? 말로는 이모도 엄마라면서" 절대 먼저 연락 안 하신다면서도, 하루 종일 전화를 기다리고 계실, 두 분 생각에 웃음이 났습니다. ’아들 걱정하는 마음에 투정부린 엄마를, 이모가 이해해 주세요. 누나들은 취업도, 결혼도 이모가 걱정할 틈도 없이 척척 잘했지만, 저는 그렇지 못하잖아요. 죽어라 열심히 했는데, 잘 안 되서 제일 속상한건 저인데, 또 누나들과 비교하실 엄마 걱정에 마음이 무거워요. 이모가 제일 친한 친구이긴 한데, 세상 부러울 것 없을 것 같은 이모가 부럽고 샘이 나신데요. 장사하느라 바쁜 엄마를 대신해 저를 키워주신 이모가 저에게 엄마이듯 저도 이모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라고 하셨죠? 사랑으로 길러주신 덕분에 시험에는 떨어졌어도, 도전이 두렵지 않은 건강한 청년이 되었잖아요. 제가 돌이 됐는데도 걷지 못하는 걸 걱정하시는 엄마께 건강하게 잘 자라려고 뛸 준비까지 같이 하느라 애쓰네. 하며 늘 엄마께 힘이 돼주시고, 엄마와 같이 기다려 주셨던 그때처럼, 이번에도 지켜봐 주세요. 사랑하는 두 엄마가 웃으실 때가 저는 가장 행복하답니다. 두 분 화해하실 거죠?‘




2020/04/23 마스크와 식혜 20.1코르테, 18.12화과자, 18.8마임

Apr 23 2020 3 mins  

며칠 전 친구로부터 소포가 왔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풀어보니 마스크 5개와 종이팩, 식혜가 들어 있습니다. 바로 전화를 했죠. ‘귀한 마스크를 너나 쓰지. 그리고 식혜는 왜?’ 했더니 웃음소리와 함께 ‘마스크가 아무리 귀해도 너만큼 귀하겠니? 그리고 식혜는 요즘 코로나19 때문에 여러 가지로 마음이 쓰일 테니까 달달한 거 먹고 기분전환 하라고’ 갑자기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친구는 지금 항암치료를 받고 있는 중입니다. 이런 선물은 내가 보냈어야 하는데 미안하고 부끄러웠습니다. 올 초에 친구 집으로 병문안을 갔을 때 친구의 머리카락은 많이 빠져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니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그 날부터 뜨개질을 시작했습니다. 친구의 모자를 뜨면서 간절히 기도했죠. 잘 이겨내게 해달라고.. 친구가 좋아하는 화사한 연두색, 내가 좋아하는 청량한 여름빛 남색, 그리고 학창시절 우리가 함께 좋아한 동네 대학생오빠의 기타소리 같은 달콤한 분홍색, 3개의 모자를 들고 친구의 집을 갔습니다. ‘넌 여전해. 모자 사오면 되지. 이걸 힘들게 여전히 미련하지?‘ 우리는 마주보고 웃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친구가 내 손을 잡습니다. 네가 이 모자를 한 땀 한 땀 뜨면서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겠니? 걱정 마. 나 잘 이겨낼 거야.’ 사랑이 힘이 된다는 친구. 남편의 사랑, 자식들의 사랑, 그리고 친구들의 사랑, 그걸 잡고 친구는 지금 눈부시게 일어나는 중입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도 사랑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 동안 우리는 앞만 보고 달렸지. 내 옆에 누가 있는 지 관심 갖지 않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비로소 옆을 둘러보게 되었습니다. 함께 견디고 이겨내야만 이 긴 어둠의 터널을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려면 내 주변을 내 이웃을 동시대에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을 사랑해야만 합니다. 사랑의 기본원칙은 상대를 지켜주는 것입니다.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것, 손을 잘 닦는 것, 안전거리를 유지하는 것, 외출을 자제하는 것, 이 모두가 사랑의 표현입니다. 사랑은 백신만큼 힘이 쌥니다. 이 또한 지나갈 겁니다.
















2020/04/15 정원이의 스케줄

Apr 15 2020 2 mins  

우리는 이제 102동 304호 정원이의 스케줄을 모른다 동무가 와서, 정원아정원아 소리쳐 부르면 베란다에서 목을 길게 빼고, “나, 오늘은 유치원 갔다가 외할머니네 가야 돼. 네 시쯤 올 거야, 그때 보자” 날마다 같은 시간에 온 동네가 알아들을 만큼 큰 목소리로 친구의 스케줄을 묻고 쟁, 쟁, 쟁…… 제 동선(動線)을 알리던 어린 동무들의 대화가 들리지 않는다 우리는 못내 궁금하다, 정원이와 친구의 행방이, 벌써 그립다, 막 내린 연속극 주인공들처럼 귓속을 환히 밝히던 실로폰 소리 정원아정원아 아침 햇살이 반듯이 펴질 때면 친구가 되어 외쳐 보고 싶은 정원아정원아 순례자들을 위해 발코니에 모습을 드러내는 바티칸의 교황처럼 시간 맞춰 나타나던 정원이와 정원이 친구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이제 정원이의 스케줄을 모른다 윤제림 시인의 예전에는 골목골목이 애들 놀이터였죠. 말뚝 박기, 술래잡기 하면서 얼마나 떠들어대는지 온 동네 사람들이 쟤는 어디 살고, 학교는 어디 다니는지, 몇 시에 밥 먹으러 가는지도 다 알았죠. 딱히 코로나19가 아니더라도 동네 뛰어다니는 아이들 보기가 힘든 요즘, 그 많던 정원이들은 다들 어디서 놀고 있는지...




































































2020/03/19 남동생의 두 번째 자취

Mar 22 2020 3 mins  

남동생이 지방 발령 받아서 두 번째로 자취하게 되었습니다. 동생의 첫 자취는 대학 때문이었습니다. 대학 입학하자마자 휙 집을 나가서 따로 살게 되니 연락도 뜸해지고 사실 남처럼 지내게 되더라구요. 졸업 후 다시 집으로 들어와 엄마, 저, 동생 이렇게 세 식구 살게 되었는데... 반가움도 잠시 그동안 몰랐던 불편함이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물 내릴 때는 변기 뚜껑 닫아야지!. 문 꼭 닫고 들어와. 저번에 문 제대로 안 닫혀서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두 사람이 살던 집에 예전처럼 세 사람이 살게 되었는데, 뭐가 그렇게 번잡스러운지... 엄마와 저만 불편하고 짜증스러운 줄 알았는데, 사실은 동생이 제일 힘들었나 봅니다. ‘왜 자꾸 나한테만 그러는데! 나라고 뭐, 집에 들어와서 좋은 줄 알아?!’ 동생이 처음으로 큰소리 내며 화를 내었을 때, 처음엔 어이가 없었습니다. 아니 지가 뭘 잘했다고 큰소리야? 그런데 생각해보니 동생이 제일 힘들고 불편했겠구나 싶더라구요. 사 년 동안 혼자 자취하면서 세상 편하게 생활하다가, 다시 셋이서 살게 되었으니 자기 딴에는 얼마나 힘들고, 지 나름대로 얼마나 눈치 보며 지냈겠나 싶었습니다. 동생이 그렇게 불만을 내비치고는 우리 세 사람은 조금 어색해졌는데 그러던 차에 동생이 다시 다른 지방으로 발령 받아 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소원대로 다시 집 나가니까 좋냐?’ 장난스럽게 물으니 동생은 씩 웃고는 대답 안하는데 이제와 생각하니 괜히 아쉽고... 사람 마음이라는 게 참 그렇더라구요. 동생은 그렇게 두 번째 자취를 시작했고, 다시 저희 집은 조용해졌습니다. 그래도 조금 달라진 점이 있다면... 요즘은 동생에게 먼저 전화합니다. ‘밥 먹었냐? 언제 집에 좀 와. 밥이나 같이 먹게. 엄마도 기다려.’ 밥을 같이 먹어서 식구라는 이야기도 있지요? 같이 살든, 따로 살든 더 늦기 전에 진짜 '식구'로 지내고 싶어졌습니다. 불편해도, 때로는 싸우게 되어도 그래도 우리 세 식구, 가족인 걸요. 이 세상에 하나 뿐인 내 동생에게, 늘 미안하고... 그래도 사랑합니다.






























2020/03/07 내 삶의 길목에서

Mar 08 2020 3 mins  

3년 전, 머리가 아프고, 어지러움 증이 심해서, 혼자서 빈혈인가 그랬지요. 그런데 지속적으로 하루에 3-4번 어지럽고, 머리가 아프곤 해서, 남편한테 "여보 내가 머리가 아프고, 어지럽기까지 하네.“ 하니 ‘그래 그럼 병원 가서 C/T를 찍어 봐야지?’ 그렇게 직장에 오후에 반가를 내고, 병원 가서, 뇌 C/T를 찍고, 결과를 기다리는데, 의사선생님이 "뇌동맥류" 라고 하면서 남편과 함께 오라고 합니다. 문득 정신이 순간 패닉 상태라 할까요? 겁이 덜컥 났습니다. 직장에서 일 하고 있는 남편을 병원으로 불렸습니다. 의사선생님이 남편에게 설명을 하는데 머릿속에 혈관이 부풀어 있는데 그게 하나도 아니고 두개라서 수술도 두 번 해야 한다고 합니다. 어쩔 수 없이 수술 날짜를 잡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저를 남편이 위로해줍니다. ‘여보! 걱정하지 마. 내가 있잖아. 힘 내. 다 잘 될 거야!’ 하지만 그 힘든 뇌수술을 두 번씩이나.. 하늘이 노랬습니다. 수술 날짜를 기다리며 하루하루 남편과 아들에게 편지를 써, 어디에 뭐가 있고, 뭐가 있고 하면서 편지를 써 내려가는데 뜨거운 눈물이 흘러 내렸습니다. 그렇게 해서 3년 전 4월과, 9월 두 번에 걸쳐 뇌동맥류수술을 끝내고 집 에서 회복하고 있을 즈음 아들과, 며느리가 집으로 와서는 "엄마 내가 좋은 친구 하나 소개해 줄게." 하면서 cbs레인보우 깔아 주었는데 그때 처음 접한 방송이 바로 이 시간 저녁스케치였습니다. 좋은 음악과 멋진 사연들이 크게 위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정상적으로 생활을 하며 하루하루 더 소중히 여기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요즘 코로나19 바이러스 인하여 두려움과 공포가 있지만, 조금만 더 참고 견디다 보면 반드시 이 또한 지나갈 겁니다. 우리 모두 힘을 내자구요.











2020/03/03 내 아내

Mar 04 2020 3 mins  

퇴근하는 길, 지하에 주차하려고 주차장으로 내려가면서 보니, 경비아저씨가 바뀌셨나봅니다. 얼떨결에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고는 집으로 들어 왔습니다. 아내에게, “지난번 경비 아저씨 그만두고 다른 분이 오신 것 같은데?” 하니. 아내는 그 전에 계시던 경비 아저씨는 8개월을 일하셨는데, 무릎이 너무 아프셔서 그만두셨다고 합니다. 이번에 새로 오신경비 아저씨는 고향이 아산이고, 딸만 셋이라는 얘기도 덧붙입니다. “당신이 어떻게 알아?” “그만두신 경비아저씨가 그만두기 며칠 전에 얘기 하시더라구요. 음료수 한 박스 사다 드리면서 고생 많으셨다고, 얼른 무릎 나으시라고 했지요.” “당신이? 왜??” 그 아저씨가 아부지랑 동갑이셔, 올 해 71세, 그 연세에 일하시는 게 얼마나 고마운 건데, 근데 무릎이 아프셔서 걱정이네.” 아내를 신기한 듯 쳐다보는데, 아내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부지런히 계란말이를 합니다. 올 해 45세인 아내와 18년을 함께 살았는데도 저는 아내를 잘 모르겠습니다. 아내는 성격이 그닥 좋은 편이 아닙니다. 길거리에서 교복입고 담배 피는 아이들 보면 꼭 한마디 합니다. “뭐 좋은 거라고 담배를 펴.” 요즘 아이들은 무섭다고, 해코지 당하면 어쩌냐고 걱정을 하면, 우리 애들 같다고, 어른인데 한마디 해도 된다고 합니다. 식당에서 밥 먹다가 머리카락 나오면, 그 머리카락 들고 카운터에 가서 꼭 얘기합니다. 머리카락이 나왔다고, 위생 모자를 쓰고 일하셔야 한다고. 새치기하는 사람은 절대 봐주는 법 없이 “저도 시간 내서 기다리고 있거든요. 줄 서세요.” 하며 앙칼지게 얘기하는 아내였는데, 이렇게 경비아저씨와 친하게 지낼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아내 성격을 차갑다고, 남을 의식하지 않고 얘기한다고 생각했는데 아내의 본모습은 다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아이 또래의 아이들은 모두 내 아이 같다고, 내 동생과 비슷한 나이면 다 내 동생 같고, 내 부모와 비슷한 연배의 어르신들은 다 내 부모 같다는 아내가 예전에 했던 말이 다시 생각나며 그러고 보니, 제 아내가 저보다 훨씬 난 사람이다 싶으네요.





































2020/02/17 3박 4일 동안 느낀 것

Feb 17 2020 3 mins  

요 며칠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고 우울해있었습니다. 남편의 9년 된 승용차는 출근하다가 그냥 멈춰서 백오십만 원이나 들여 수리를 하니 안 그래도 빡빡한데 큰돈이 나가니 정신도 없고 짜증이 났습니다. 새 차를 하나 구입했으면 하는데 올 해 대학 입학하는 작은아이가 있어서 쉽지 않습니다. 올해는 급여를 좀 올려 주신다 하셨던 사장님은 이번에도 어렵다하십니다. 된장국 끓였더니 치킨 한 마리 시켜서 먹으면 안 되냐고 묻는 두 아이, 그 와중에도 여전히 친구들과 술 한 잔 마시고 들어온다 전화하는 남편, 열심히 산다고는 살았는데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 같은 상실감에 짜증나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데 작은아이가 비중격 만곡증이라고 코 안쪽의 연골이 휘어서 그걸 바로 펴는 수술까지 해야 했습니다. 입원하고 다음 날 바로 수술을 했습니다. 아이는 수술실로 들어가고 대기실에서 기다렸습니다. 길었던 두 시간이 지나고 아이 이름 옆에 수술 중이 회복 중으로 나오고 30여분 있다가 아이가 나왔습니다. 의식이 가물가물한지 희미하게 쳐다보는 아이 손을 잡고. “엄마야,,엄마 알아보겠어?” 했더니 아이 눈에서 눈물이 또르르 흐르는데, 그렇게 눈물이 났습니다. 수술실 앞에서의 그 무서움을 견딘 터라, 아이가 그렇게 대견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나 퇴원을 했습니다. 집에 오니 설거지는 가득, 빨래도 가득, 물 끓여 놓은 건 하나도 없고 뭐가 그리 발에 밟히는지 청소기 먼저 돌려야했지만, 웃음이 나왔습니다. 작은아이 수술 잘 되어서 집에 온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이젠 코로 편히 숨 쉴 수 있을 테니까요. 직장생활 15년째하고 있지만, 두 아이가 건강하게 자란 거, 남편이나 저나 크게 아프지 않은 거 정말 행복이란 걸, 아픈 사람들이 가득한 병원 갔다 와서 느꼈습니다. 조금 더 빡빡하면, 조금 더 아끼고 열심히 살아봐야지요. 작은아이 코 괜찮아지면, 아이들이 좋아하는 돼지갈비 집으로 저녁 먹으러 가야겠습니다.








2020/02/14 인심 좋은 야채가게 사장님

Feb 16 2020 3 mins  

3교대 근무를 해서 이른 퇴근을 하는 시간에는 재래시장 단골가게에 들러 필요한 식자재를 구입합니다. 어제는 톳이랑 냉이, 달래등 야채를 장바구니에 담는데 톳이 조금 얼었다며 그냥 주시는데 이천 원을 드렸더니 받지 않으십니다. 다른 고객들에게도 항상 넉넉하게 담아주시니 단골이 많아 한 자리에서 40여 년을 장수하는 가게입니다. 없는 거 없이 온갖 야채를 다 취급하시느라 점심을 제대로 먹을 수가 없다고 하시는데 어쩌다 빵이나 과자를 갖다 드리면 손 사레를 치며 거절하시다가 마지못해 받으시며 "고마워요. 나 같은 사람을 다 챙겨주다니. 자 이거 좀 가져가요." 하면서 야채를 챙겨주십니다. "배보다 배꼽이 커지겠어요. 이러면 제가 부끄럽습니다." "내 성의니 어서 가져가요." 단골들에게는 덤으로 팍팍 담아주시고 조금 시들었다며 돈을 안 받고 주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사장님은 70을 넘기신 분인데 허리를 펼 시간 없이 일을 하셔서 그런지 등이 많이 굽었습니다. 어릴 때 아버지 사업 실패로 어머니가 텃밭에 이런저런 채소를 심어 내다 판 적이 있습니다. 하루아침에 빚더미에 앉게 되자 마땅히 도움을 청할 곳도 노는 땅이 눈에 들어온 어머니는 팔 걷어 부치고 온갖 씨앗들을 뿌리고 농사를 지었습니다. 등짐을 지고 시장 한 쪽에서 팔고 들어오는 길에는 고등어 한 마리, 콩나물, 고무신, 연필, 등을 사 오셔서 자식들 먹이고 학교를 보내셨죠. 이러기를 십 수 년, 어머니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등을 조금씩 굽더니 키가 줄어들고, 곱던 얼굴이 구리 빛으로 바래고 주름이 생기고 손마디도 굵어지시고,,,,,,,지금은 부모님 돌아가시고 우리 형제들은 장성하여 각자 제 갈 길을 가고 있는데 가끔 부모님이 보고 싶을 때는 차를 몰고 산소에 가서 풀을 뽑으며 이야기 나누다 오곤 합니다. 야채가게 여 사장님도 어쩜 우리 어머니와 같은 사연을 가지고 40년 동안 이 일을 하고 계시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사장님, 자식들에게는 어머니 자리가 매우 크답니다. 오래오래 그 자리에 계셔 주세요.


2020/02/13 글피

Feb 13 2020 2 mins  

내일 모레면 몰라도 글피는 너무 먼 미래, 한 밤 자고 또 한 밤 자도 너무 먼 미래, 내일 모레면 몰라도 글피는 글쎄, 하루 지나고 또 하루 지나도 오지 않는 너무 먼 미래, 그새 두릅 잎은 너무 억세 먹지 못하게 되고 머위는 쓴맛이 더 받치지, 내일 모레면 몰라도 글피는 너무 먼 미래, 당신이 잠든 뒤 별들도 잠든 뒤 소곤거리는 소리, 내일 모레면 몰라도 글피는 너무 먼 미래, 한 밤 자고 또 한 밤 자도 너무 먼 미래, 아이들은 벌써 자라 저녁이 늦어도 돌아오지 않고, 나는 어제 한 약속도 종종 잊어 먹지, 내일 모레면 몰라도 글피는 글쎄, 하루 지나고 또 하루 지나도 오지 않는 너무 먼 미래, 한 밤 자고 또 한 밤 자도 먼 미래,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 같은 그대, 내일 모레면 몰라도 글피는 글쎄. 성선경 시인의 [글피] 눈 깜짝할 새 흐르던 시간도 간절히 기다리는 것이 생기면 10분이 1시간처럼 흘러가지요. 내일! 아니 내일 모레면 몰라도 글피라니...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너무 먼 미래입니다.






















2020/02/05 모든 일은 마음먹기 나름

Feb 05 2020 3 mins  

새해부터 감사 일기를 쓰기로 했습니다. 감사 일기는 하루 동안 있었던 일중 감사한 일을 글로 옮기는 걸 말하죠. 감사 일기를 쓴 다음부터 주변에 감사한 게 많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잠을 잘 수 있는 집, 즐거움을 주는 강아지, 맛있는 식사, 일을 할 수 있는 직장 등, 생각하면 모두 감사한 것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동안은 감사한 그많은 것들에 감사를 하지 않고 살았습니다. 오히려 감사한 것들을 대할 때 마다 짜증을 내고, 미워 한 적도 있었습니다. 제가 다니는 회사에는 존경하는 선배도 있지만, 정말 싫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싫어하는 사람은 틈 날 때 마다 다른 동료직원을 헐 뜯고, 회사 상사 욕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는 능력이 많은데, 왜 승진을 안 시켜주는 지 모르겠다며 늘 회사에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왠지 모르게 이 사람을 피하고 싶었고, 얼굴만 봐도 짜증이 났습니다. 저에게 말을 걸면 바쁜 척 모르는 체 할 때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럴 필요도 없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분명 이 사람에게도 장점은 있을 것입니다. 나는 그것을 알려고 하지 않고, 단점에 대해 불만만 가졌습니다. 어느 날인가 그 사람에게 다가가 웃는 모습으로 말을 걸고,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마음을 열고 말을 하니, 상대편도 남들의 불만을 표현하기보다 긍정적인 말을 했습니다. 이 때 느꼈습니다. 남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문제였구나 하고 말이죠. 불만은 내가 갖고 있었고, 그렇기에 다른 사람들을 그렇게 봤던 것입니다. “모든 일은 마음먹기 나름이다.” 라는 것을 절실히 느끼는 요즘입니다.








2020/02/02 복도도 같이 사용해요

Feb 02 2020 3 mins  

아래층에 새로 이사 온 집에서 좁은 복도에 유모차와 자전거를 내놓아서 다니기가 불편했습니다. 이삿짐 정리가 다되면 안으로 들여 놓겠지 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치우질 않았습니다. 치워달라고 얘기를 할까 하다가, 나중에 인사나 하게 되면, 그때 해야지 했는데, 기회가 생기지 않았습니다. 하필 그날 장바구니에 우산까지 들고 올라오다가, 자전거에 다리를 부딪쳐서 아프기도 하고 화도 났습니다. 당장 한소리 하려다 이웃 간에 그러지 말아야지 하고 참았습니다. 그래도 다닐 때 마다 계속 거슬러서 안 되겠다 싶었습니다. 시장에서 사온 쌀강정을 봉지에 가득 담아, 메모와 같이 자전거 바구니에 넣어 두었습니다. "새로 이사 오셨는데 인사가 늦었어요. 우리 동네 시장에서 유명한 강정 인데 아이들 주세요! 그리고 자전거는 안에 들여 놓아주시면 좋겠어요! 부탁드려요! 302호예요." 기분 상하지 않게 메모를 남겼는데, 오해하면 어쩌나 살짝 걱정도 됐습니다. 저녁에 동생이 들어오면서 "문에 이게 걸려있던데" 하며 종이 봉지를 내밉니다. "죄송해요 불편하셨을 텐데, 제 생각만 했네요! 저희 집에 커피 드시러 오세요." 롤 케익 상자에 붙어있는 메모를 보니 반갑고, 좀 참을 걸 그랬나 미안하기도 했습니다. 이웃 간 소음문제를 메모로 주고받으며 친해졌다는 뉴스를 보고, 따라 해 봤는데 잘 해결 되서 다행이었습니다. 자전거와 유모차가 치워진 복도가 훤해졌고, 아래층 애기엄마와는 같이 차도 마시고, 빈대떡도 나누어 먹는 친한 이웃이 되었네요.






















2020/01/24 내 삶의 길목에서

Jan 27 2020 3 mins  

아버지가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이 세상에는 나 하나뿐이라는 생각으로 살아야한다. 누구를 믿고 누구에게 기댄다는 생각을 하면 절대 안 된다.‘ 우리 형제는 칠 남매로, 저는 다섯째며 위로 형들이 많다보니 어디 기댄다거나, 누굴 믿으면 안 된다는 말씀을 하신 게 아닌가 싶습니다. 내가 잘 살려면 성실과 노력 외, 나에게 그 어떤 무기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남들 앞에 내세울게 하나도 없는 저는, 성실하게 움직이는 몸과 부지런한 행동, 바른 생각, 그리고 건강이 바로 나의 전 재산입니다. 새벽바람이 볼을 스치는 추운 아침 마스크를 하고 종종 걸음으로 나섭니다. 결혼하여 앞 만 보고 산지 어느 듯 42년, 말없는 세월은 언제 흘렸는지, 아들은 분가하여 살고, 어느 날 손주들이 할아버지 하며 달려 올 때면 지난 어려움과 힘들었던 일들이 봄눈처럼 녹아듭니다. 살다보면 힘든 일, 어려운 일, 생각대로 안 되는 일들이 수없이 많이 있습니다. 이를 슬기롭게 극복하는 게 아버지의 역할이 아닌가 싶습니다. 후회 없는 삶을 살았다고 해도 지나고 보면, 미련도 후회도 남는 게 우리네 인생. 지난 날, 휴일 출근도, 연장근무도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했는데도 되돌아보니 아직도 미련이 남습니다. 남들이 하는 말, 이제는 쉬어야 할 나인데.. 놀고먹는 다는 일은 행복이 아닙니다. 일한 만큼 보람을 가지고, 일한 만큼 기쁨과 행복을 찾는 것, 내 인생 스스로 움직일 때 무엇과도 바꿀 수없는 행복이 느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세월은 변하지만, 아버지의 말씀은 귓전에 꺼지지 않는 등불로 남아 있습니다. 아버지 우리 칠남매 오늘도 아버지의 말씀에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14명 모두 건강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부모님이 가신지 수십 년이 지났건만, 못다 한 그 한마디, 아버지 감사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2020/01/21 신 구간 이사하기

Jan 21 2020 4 mins  

제가 제주도에 사는데 어제 퀴즈시간에 제주의 이사풍습인 신 구간에 대한 얘기를 해서 얼마나 흥미로웠는지 모릅니다. 신구간은 제주도의 전통 풍습 중 하나로 대한 후 5일째부터 입춘 3일 전까지 7~8일 동안 행해지는 이사 풍습이지요. 이 시기에 이사를 하는 이유는 인간의 길흉화복을 관장하는 신들이 임무 교대를 위해 하늘로 올라간다고 해서 예부터 제주에서는 이 기간에 이사하거나 부엌, 울타리, 산소 이장, 화장실을 수리 등을 했는데, 시대가 바뀌어 풍습이 많이 달라지기도 했지만 지금도 이 기간에 이사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한꺼번에 많은 가정이 움직이다 보니 수요가 많고 공급이 부족해서 집세가 평소보다 비싸고 이삿짐센터는 물론 집수리하는 분들, 전기 공사, 수도 공사, 도배하시는 분들 모두 밤을 세며 일을 하시기도 합니다. 어린 시절 우리 집이 이사하는 날은 춥고 배고픈 날이었습니다. 며칠 전부터 짐을 싸느라 정상적인 생활이 안 되었습니다. 춥고 스산한 계절이라 매서운 하늬바람에 눈보라가 앞뒤 없이 퍼붓는데 감기 걸린 형제들이 마차 뒤로 따라 갔습니다. 새집에는 가장 먼저 불씨를 들여갔는데 화로에 숯불을 담아 가거나 연탄을 사용하던 시절에는 불이 붙은 연탄을 모셔 갔습니다. 옛날에는 이사 갈 때 청소를 안 하고 가는 풍습 때문에 청소하고 짐을 내리고 솥단지를 걸어 밥부터 지어 주린 배를 채운 뒤 파김치가 된 몸을 쉬기도 했습니다. 포장이사가 없던 시절이라 가족들이 짐을 싸고 옮기고 정리가 끝나면 감기, 몸살로 고생하는 일이 통과의례이기도 했습니다. 어느 해 큰 집으로 이사를 갔는데 마당도 넓고 감나무, 귤나무, 무화과나무, 복숭아나무가 있고 특히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얼마나 많이 달리는지 친구들 데려다 시식시키고, 바구니에 감, 귤, 복숭아, 무화과를 넣어 이웃집 경이네 할머니한테 가져다 드리면 돈 10원 받아 오곤 했는데 그 재미를 잊을 수가 없고 어느 해는 자고 일어났는데 문단속을 소홀히 해 도둑이 어머니 패물 상자를 가져가 많이 속상해하기도 했죠. 돌이켜보면 왁자지껄했던 그 시절에 처마 밑에 달린 고드름을 따먹고, 솔방울 주워 다 아궁이에 넣어 고구마 구워먹었던 일들이 새삼 정겹게 느껴집니다.





2020/01/19 또다시, 다음에..

Jan 19 2020 3 mins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다보니 새벽 한시가 넘었습니다. 그리고 문득 생각이 났습니다. 한참 전부터 한번 연락 해야지...했던 친구에게 여태 연락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지난번에 친구가 우울증으로 입원까지 했었다는 얘기를 듣고 ‘그랬어?’ 하고 아무렇지 않은 듯 넘겼지만, 사실 제겐 큰 충격이었습니다. 우울증. 저도 작은 것에도 짜증이 나고 가끔씩 아이들에게 버럭 화를 내게 될 때 우울증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하지만, 누구에게 말도 못 하고, 우울증이라는 걸 인정하기도 싫어서 그냥 혼자 화낸 걸 후회하고 미안해하며 그러면서 지내고 있었는데, 입원까지 했다니...옛날사람들은 우울증 걸렸다고 하면, 팔자 좋아서, 할일이 없어서, 여유가 많아서 그런다고,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고 먹고살기 바쁘면 우울증 같은 것에 걸릴 틈도 없다고 그렇게들 말했었고, 저도 어릴 적, 어느 정도는 그런 것들에 동의하는 편이었는데, 결혼하고, 아이 키우고 그러다보니 아니구나 싶습니다.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게 가끔 저도 마음에 감기가 든 것 같은 때가 있었다가도, 다행히 가볍게 지나가 주었는데 친구는 그렇지 못했나봅니다. 너무 늦은 시각이었지만, 지나고 나면 또 얼마나 잊고 연락을 안 할지 몰라서 눈 딱 감고 장문의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매번 연락할 때마다 하는 말 ‘우리 언제 만날까?’ 라는 말과 함께.. 친구는 아침에 답문을 보내왔고 다행히 마음감기의 후유증은 없어보였습니다. 세 시간도 안 걸리는 거리. 그리 멀리 사는 것도 아닌데 왜 이리 다음으로만 계속하게 되는지...이제는 진짜로 꼭 만나고 싶습니다. 그때엔 친구도 저도 한없이 밝은 모습이기를..‘친구야! 우리, 몸도 마음도 모두 감기 앓지 말고 잘 살자!’






2020/01/17 책상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Jan 19 2020 3 mins  

직장생활을 오래한 회사원들은 모두 공감되는 말이 있지요. 책상을 보면 그 사람의 성격을 알 수 있다. 우리 사무실은 스무 명 정도의 직원들이 근무하고 있는데 높지 않은 파티션이 쳐져 있는 책상 안쪽의 얼굴은 제각각입니다. 언제나 깨끗하게 잘 정리되어 있는 사람이 있는 반면 헝클어진 머리처럼 서류가 뒤죽박죽인 사람도 있습니다. 내 옆에 신입사원은 유명한 커피의 광팬인지 그 회사 로고가 새겨져 있는 컵, 텀블러, 볼펜, 카드지갑을 책상위에 전시하듯 올려놓고 의자에도 그 로고가 찍힌 에코 백을 걸쳐놓고 있습니다. 내 앞에 있는 김 대리의 책상은 웬만한 편의점 저리 가라할 정도로 편의점에서 인기 있는 인절미꼬치, 호두파이, 요플레부터 시작해 신상 젤리, 초콜렛, 모찌롤까지 책상에 수북이 쌓아놓았습니다. 인심도 좋아서 지나가다 직원들이 하나씩 집어가도 허허, 웃으면서 새로 나온 것도 먹어보라고 권하기 까지 합니다. 그리고 내 뒤편의 박 팀장은 골드미스인데 택배 광입니다. 의자 좌우에 항상 택배상자가 쌓여있습니다. 뭘 그렇게 많이 사는지, 또 반품은 어찌나 많이 하는지, 아무래도 월급의 절반 이상은 쇼핑으로 날라 가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내 위편에 앉아있는 최부장님의 책상 위는 빨래걸이입니다. 조금만 더우면 양말부터 벗어서 책상위에 던져놓습니다. 거기다 한 번도 책상을 닦지 않아서 컴퓨터 키보드엔 만년설이 내려앉아 있지만 신경을 쓰지 않는 듯합니다. 그래도 사람 냄새가 나는 직원들의 책상이 전 참 좋습니다. 책상을 보면서 요즘 박 팀장이 변비에 시달리고 있나보네. 유산균 음료를 자주 사다 놓네. 최부장님이 무좀이 심해졌나. 발가락 양말로 바꾸셨네. 김대리가 요즘 낚시 취미가 생겼나? 낚시 잡지가 보이네. 혼자 직원들의 요즘 변화를 짐작해 볼 수 있어 좋습니다. 그나저나 제 책상엔 대출 정보를 뽑아놓은 자료들이 한 가득입니다. 전세로 옮기려고 하는데 아무래도 대출을 더 받아야 할 것 같아서요. 내 책상을 지나가던 김대리가 "과장님. 전세자금 대출 받으시려고요? 저도 얼마 전 받았는데 그 은행 소개시켜 드릴까요?" 이렇게 책상은 정보공유의 장이 되기도 합니다. 오래 만에 책상을 반짝 반짝 닦으며 싱긋 웃어봅니다.




2020/01/16 가깝고도 먼 그대, 이제 한걸음씩 다가가려합니다.

Jan 16 2020 3 mins  

이제 중학생이 되는 딸아이와, 초등학교 6학년이 되는 아들이 있는 40대 가장입니다. 언젠가부터 제 곁에 있는 가족의 소중함을 잊은 채, 가족을 위해 힘들게 돈을 번다는 변명으로 가족에 대한 소홀함을 합리화 시키려 했던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얼마 전, 이제 곧 중학생이 되는 딸아이에게 오래 만에 데이트를 신청을 했습니다. 물론, 딸아이는 그리 반기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제가 부탁을 하니 못이긴 척 가게 되었죠. 그 동안 못 해준 걸 보상이라도 하듯 나름 계획을 철저하게 짰습니다. 그런데 너무 어린아이들 영화를 선정한 나머지, 헛되이 2시간을 날려버렸죠. 그래도 심기일전하여 미리 준비한 선물을 짜짠...제가 보기에는 너무 예뻐 보이는 옷이었지만, 딸아이에게는 너무 유치한 옷이었나 봅니다. 하나 둘씩 계획이 틀어지는 상황에 그래도 괜찮은 아빠가 되기 위해 데이트에 최선을 다했죠. 물론, 아주 실패한 데이트였지만 말이죠. 이 데이트를 계기로 내가 아이들에 대해서 대체 얼마큼을 알고 있나? 좋아하는 건 뭐고, 제일 먹고 싶어 하는 건 뭐고... 등등 수많은 질문을 제 자신에게 던져 보았지만 대답은 모르쇠였습니다. 딸과의 데이트 이후 오히려 내 자신에게 속이 상해 드라이브를 핑계 삼아 바람을 쐬러 나갔죠.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받게 된 휴대폰 메세지...그건 다름 아닌 그 유치하다고 한 저의 옷 선물을 입고 환히 웃고 있는 딸아이의 사진이었습니다. "아빠! 오늘 너무 고마워, 나도 아빠랑 이런 시간이 처음이다 보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비록, 아빠와의 서툴렀던 데이트였지만 아빠와 함께 한 자체가 나에게는 감동이었어, 사랑해." 이제 중학생이 되는 딸이 마치 저를 토닥토닥 위로해주는 느낌에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늦었다고 생각될 수도 있지만, 이제라도 아이들과 같은 곳을 바라보며 함께 걷고 싶은 아빠가 되기 위해 노력하려고 합니다. 많이 응원해 주세요.






















2020/01/06 내 삶의 길목에서

Jan 06 2020 3 mins  

아르바이트지만, 매일 출근하는 일을 시작하면서, 엄마가 주신 체크카드를 돌려드렸습니다. 절약하는 편이라 용돈을 많이 쓰지는 않았지만 정확히 얼마를 쓰고 있는지 몰랐는데, 막상 제가 번 돈으로 생활을 하려니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들었습니다. "엄마 그동안 내가 얼마를 쓴 거야? 차비랑 식비도 꽤 많이 들던데" "그것뿐이니 통신비랑 보험료까지 말도마라. 얼른 취직해서 다 네 앞으로 자동이체 해 갔으면 좋겠어." "보험료가 얼만데? 다음 달부터 제가 낼 게요." "정식으로 취직하면 그때 다 가져가. 공부시간 쪼개서 알바 하는 것도 속상한데..." 거기까지는 미처 몰랐다가 부담을 덜어드려야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초조해졌습니다. '아르바이트를 하나 더 할까? 공부하는 시간이 줄어들면, 시험은 어쩌지? 계속 아르바이트만 할 수도 없고..' 카드를 돌려드리면서, 독립을 한 거라며 혼자 기특해 했었는데, 여전히 저는 부모님께 기대고 사는 덩치만 큰 아이어른이었습니다. 먼저 취직을 하고, 꿈은 나중에 이루는 게 맞는 건지, 면목 없지만 끝까지 도전해야 하는 건지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기대와 걱정으로 힘든줄 모르고, 채워주셨던 화수분 카드를, 당연한 듯 쓰면서도 엄마의 고생을 외면하고, 모른 척 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힘들게 돈을 벌어보니, 꼭 합격해야겠다는 각오도 새로워지고, 더구나 돈은 더욱 아껴 써야겠다 싶습니다.. 엄마께 한도액 없는 카드를 드릴 수 있는 그날을 위해 공부도, 일도 더 열심히 해야겠습니다.








2020/01/03 이렇게 또 오늘도 한걸음 멀어지네요.

Jan 06 2020 3 mins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꼭 너 같은 딸 하나 낳아서 키워봐. 그래야 엄마 마음을 알지!!" 아마도...저희 엄마가 저에게 가장 많이 하신 말씀일거에요. 그런데 전...저와 똑 닮은 딸은 낳을 수도 있을 것 같지만, 내가 과연 우리 엄마 같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며칠 전, 한 해를 정리하면서 우연히 2019년의 지출내역을 보다가...지난 한해 제가 공연과 음반, 책을 사는데 쓴 돈이 한 달 급여에 가까운 금액이라는 걸 발견했습니다. 이 사실을 얘기하면 "이 철딱서니 없는 지지배." 하며 등짝을 한대 맞을 것이 뻔했지만 엄마께 이 사실을 털어놓았습니다. "엄마 엄마~ 내가 작년에 공연이랑 책에만 쓴 돈이 한 달 월급이네. 공연 몇 개 덜 다녔으면 명품 가방 하나는 살 수도 있었는데..." 그런데 이 말을 들으신 엄마의 반응은 예상과 달랐습니다. "우리 딸내미, 그 좋아하는 거, 나이가 들어서도 지금만큼만 다 할 수 있어야 할 텐데.." 의외의 반응에 제가 갸우뚱 하자, ‘엄만 명품백 보다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모으고, 좋아하는 음악을 듣기위해 공연을 다니는 딸이 더 좋아. 나이가 들면 배우지 않아도 자꾸만 더 현실적이고, 실리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으니까...너무 일찍부터 그러지는 않았으면 좋겠어. 지금 그런 감성은 좀 늦게 철들고, 조금 늦게 나이 먹어도 괜찮아, 그러러면 우리 딸 돈 더 많이 벌어야겠네." 늘 칭찬보다는 타박에 익숙하고, 당근보다는 채찍이 많았던 엄마가 이런 생각을 가지고 계실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왠지 모를 뭉클함에 엄마 앞에서 엉엉 울어버렸네요. 그러면서 생각했습니다. 내가 나중에 엄마가 되어서도 딸에게 이런 말을 해 줄 수 있을까...아마도 전 딸에게 공연 보다는 명품 가방을 사서 엄마랑 같이 쓰자고...그러지 않을까...팍팍한 현실에 적응하느라 당신은 너무 일찍 잃어버린 그 마음을, 저 만큼은 오래 가지고 있었으면 좋겠다는 엄마의 바람을 이뤄드리려면...전 앞으로도 몇 년은 더 철들지 말아야겠네요


















2019/12/27 저녁에 있었던 일

Dec 29 2019 3 mins  

저녁을 먹고 나서, 아내가 한숨을 쉽니다. “햐~ 남이가 우리 집 우렁각시였네. 이 많은 빨래를 누가 다 갤 거야.” 아내가 빨래를 걷어서 거실에 펼쳐 놓는데, 빨래가 어마어마합니다. “사람이 든 자리는 모르고 난자리만 안다고 하더니 그 말이 딱 맞네. 퇴근시간 되면, 남이가 쌀도 씻어놔, 빨래 널고 개는 걸 도맡아 하고, 청소기도 돌리고, 아 그 시절이 내 장밋빛 인생이었네.” “당신 내가 집안일 안 하는 거 우회적으로 말하는 거지?” “그럴 리가, 당신은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니까 우리 집 깍두기지 뭐,” “그나저나 오늘은 전화 안 하나보네.” “그냥 냅 둬, 혼자 편하라고..” 25살 큰아이는 올 해 소방공무원시험에 합격 했습니다. 9월에 최종합격 확인하고, 바로 대형운전면허를 취득하고, 벼르던 라식수술도 하고 아르바이트도 했습니다. 그 아르바이트 한 돈을 들고 지금은 태국 여행 중입니다. 아이는 음식 경치 숙소,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한국친구들 사진을 아내에게 보내주고 있습니다. 아들 둘을 키우지만, 딸 가진 사람 부럽지 않게 두 아이는 아내에게 참 살갑습니다. 오늘은 아이에게 방콕 야시장 찍은 사진을 두 장 받고는 아내 입이 귀에 걸렸습니다. 성격 급한 아내는 기어이 큰아이에게 전화를 합니다. “남아, 너 먹는 거 조심해야해. 푹 익혀서 먹고, 찬 거 너무 많이 먹지 말고,, 근데 거기 커피는 맛있어? 아,,수박주스? 해산물?? 그래 엄마두 해산물 좋아하는데, 그래 그래,” 아내 몰래 삼십 만원이나 줬는데, 나한테는 전화 한 통 없는 아들 녀석, 괘씸하다 하고 있는데, 얼마 전 수능 끝나서 PC방에서 저녁 내내 있던 작은아들 들어오면서 뭔가를 쓱 냅니다. “아빠. 붕어빵 드세요..” 그 모습을 보고 아내가 소리를 버럭 지릅니다. “저녁 먹으러 오라했더니 밥 먹었다고 하고선, 너 저녁을 붕어빵으로 때우는 거야?” 방으로 쏙 들어가는 작은아이. 화살이 내게 올까봐, 전 열심히 수건을 갭니다.























2019/12/18 아내라는 이름으로, 엄마라는 이름으로...

Dec 18 2019 3 mins  

한참 힘들게 직장생활 하던 때, 아기를 유모차에 태우고 카페에 가는 엄마들의 모습이 그렇게 부러웠습니다. 매일아침 지옥 철, 날씨가 조금이라도 추워지면 눈뜨기 어려워지던 동절기 출근. 눈이나 비가 오면 대중교통마저도 타기 힘들어지던 시절, 잠시 쉬고 싶다 라고 생각이 들 무렵, 어느덧 결혼 2년차가 되었을 때였습니다. 계속되는 임신시도에 끊임없이 실패하던 나날들 속에 병원으로 어렵게 향하던 제 발걸음과 주위의 기대감 속에 전 참으로 힘겨웠습니다. 2019년 2월을 마지막으로 용기를 내어 그나마 계약직이던 제 신분을 떨쳐내고, 이젠 그냥 누구의 아내, 가정주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6개월이 지났을까? 저에게 귀한 아기가 찾아와주었습니다. 혼자가 아니라는 기쁨, 부모님과 주위의 축하에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세상에 태어난 이유 중 하나가 엄마가 되는 것 이었나봐...하는 생각도 하면서 말이죠. 그런데 임신기간이 지나갈수록 열심히 일하며 커리어를 쌓아가는 친구들이 부럽게 느껴졌습니다. 또 승진했구나! 부럽다...를 나도 모르게 친구들 앞에서 이야기 하고 있었고, 이제는 매달 꼬박꼬박 들어오던 월급마저 없어지니 밖에서 고생하는 신랑에게 생활비를 받는 것도 미안했습니다. 아기를 얻은 기쁨과 동시에 시작된 이제 앞으로 펼쳐진 가정주부로서의 삶, 그리고 가끔 제게 찾아오는 외로움과 적막함은 조금씩 저를 움츠려들게 했습니다. 이제 고작 쉰지 1년인데...앞으로 태어날 아가에게 집중하고 좋은 생각만 해야 하는데 태어나 처음 느껴보는 여유로움이 제겐 아직 익숙하지 않나봅니다. 다가오는 제 생일은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저의 아가 소망이와 함께 맞는 첫 생일입니다. 이 땅의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로 인해 잠시 사회에서 벗어나게 된 저와 같은 또 누군가의 엄마가 계시다면 얼굴한번 본적 없을 지라도 예쁜 장미 꽃 한 송이 나누고 싶습니다. 그리고 우리 힘내자고 우리 잘하고 있다고, 절대 뒤쳐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은 겨울날의 오후입니다.










2019/12/14 딸을 낳으면 보여줘야겠어요

Dec 15 2019 3 mins  

새해가 시작되면 달력을 펼치고 제일 먼저 내 생일에 빨간 동그라미를 그려 넣고 손꼽아 그 날을 기다리던 때가 있었는데...언제부턴가 생일이라는 것에 무뎌지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일요일, 그래도 잊지 않고 축하해 주는 지인들이 있고, 소박하지만 오붓한 저녁 식사를 함께 할 수 있는 가족들이 있어 고마웠습니다. 엄마가 장농 구석에 있던 제 앨범과 저를 키우며 쓰셨다는 일기장을 꺼내오셨습니다. 빵빵한 얼굴의 갓난아기 사진부터, 내복만 입고 마냥 웃고 있는 꼬맹이 사진...놀이공원에서 음료 장식용 우산을 들고 포즈를 취한 사진까지.. 약간 바랜 사진의 색이 흐른 시간을 오롯이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 뭉클했습니다. "딱 요만할 때가 예뻤는데.. 이젠 너무 커버려서 엄마랑은 잘 놀아주지도 않고...너 어릴 때 진짜 대단했다. 맨날 울고, 떼쓰고...그래도 그때가 좋았는데..." 저도 저였지만 엄만 제 어릴 적 사진들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드시는 것 같았습니다. 제 방에 돌아와 엄마가 쓰신 그 일기장을 한장 한장 넘기는데 이런 글이 적혀 있습니다. [강렬한 태양보다는, 은은한 달빛 같은 아이로 자라주길. 제 빛을 잃지 않으면서도, 주위 별빛을 가리지 않는, 다들 잠든 밤 홀로 길을 걷는 한사람의 귀가 길을 조용히 비춰줄 수 있는 조화롭고 따듯한 아이로 자라주길. 성긴 옷감의 씨실과 날실처럼 그 안에 공기를 품을 여유를 늘 잃지 않는 넓은 마음의 아이가 되어주길...] 32년 전 힘들게 낳은 울보에 떼쟁이 딸이 가끔은 얄밉고 야속했을텐데...힘든 하루의 끝에 일기를 쓰며 딸을 위한 바람을 차곡차곡 쌓아오셨을 엄마를 생각하니 마음이 먹먹했습니다. 비록 지금은...얼굴만!! 동그란 보름달을 닮아 있지만 앞으로는 마음 씀씀이도, 생각도, 넓고 따듯한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엄마의 일기, 나중에 제가 혹시 딸을 낳으면, 보여줘야겠습니다.









2019/12/11 산다는 건 다 그런 거죠

Dec 11 2019 3 mins  

여고 동창 모임. 그 동안 일하느라 바빠서 나가지 못한 것도 있었고 그냥 가기 싫기도 해, 바쁘다는 핑계를 대면서 안 나갔는데 몇 달 전에 일을 관두었기에 어쩔 수 없이 나갔습니다. 벌금 10만원을 물린다기에.. 모임에 가려고 보니 결혼 전에 사 입었던 유행지난 옷들뿐이고, 머리도 질끈 묶고 다녔었기에 부스스 한 게 엉망이고, 거울을 보니 그 동안 야근하느라 지친 얼굴이고.. 큰맘 먹고 2000원짜리 팩 하나를 구입해 붙였습니다. 다음날 동창모임에 나가니 오랜만에 봤다고들 반갑게들 맞아 주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제 모습을 보고서는 한 마디씩 합니다. "넌 돈 번다면서 머리랑 옷이 그게 뭐니. 좀 꾸미고 다녀야겠다." "얼굴은 왜 그렇게 상했니?" 라고들 하길래 그냥 웃으면서 "얼굴이 좀 상했지. 너는 얼굴 좋다. 좋은 일 있나봐?" 그러자 그 친구는 이때다 싶은지 "좋은 일? 우리 남편 승진 한 거가 좋은 건가? 승진하니까 자동차도 회사에서 나오더라구. 남편이 타던 차 내가 이제 타게 되었지." 옆에서 듣고 있던 친구들도 지지 않고 자랑 삼매경에 빠져들기 시작했고 저만 부러워서 또 '나만 이제껏 뭐 하고 살았나' 하는 마음에 고개 숙이고 밥만 먹었더니 급체를 했는지 집에 돌아오는 길에 링거를 맞으러 갔습니다. 누워있는데 별 생각이 다 듭니다. 장남인 남편을 만나서 시부모님 생활비 보태드리고, 대출 받아서 집 사고, 친정 부모님 병원비 보태 드리느라 늘 아끼고 아끼느라 딸아이 공주 드레스 한 번 못 사주고, 무슨 날 때도 장난감 한 번도 못 사주고 저를 꾸밀 여유는 더더욱 없었습니다. 아직도 현관만 우리 집이고 화장실이며 베란다, 방은 은행 것이기에 갈 길이 멀기만 하지만. 내 젊음을 돈 버느라 살아왔다는 생각에 링거를 다 맞고서는 생애 첫 과도한 쇼핑을 해 보았습니다. 크리스마스 선물 겸 생일 선물로 딸아이 좋아하는 인형과 엘사드레스, 햄버거, 그리고 소매 끝이 반질반질 해진 남편 패딩점퍼, 시부모님 친정부모님 내복 한 벌씩, 그리고 저에게는 미용실가서 파마를 했습니다. 건강한 가족이 있고, 쉴 보금자리가 있고, 주위에 따뜻한 온정을 가진 사람들이 있으니 전 행복한 사람이겠죠.










2019/12/07 동정심

Dec 09 2019 3 mins  

이력서를 넣을 때마다 서류 전형에서 탈락하니 속이 타들어 갔습니다. 그렇게 1년 넘게 백수로 지내다, 동네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는데 저를 알아보는 동네 분들이 너무도 불편해 결국 그만두고 말았습니다. 또 다시 하루하루를 무의미하게 보내고 있을 때, 지방에 있는 조미 김 제조업체에서 타 지역 사람은 기숙사를 제공해 준다길래 무작정 면접을 보러 갔습니다. 열흘정도 지나 합격 통보를 받고 너무도 기뻐했습니다. 백수 생활 2년 8개월 만에 서른이 되어서야 제대로 된 기업체에 취직을 한 것입니다. 그렇게 저는 기숙사로 들어갔습니다. 기숙사는 빌라식이라 나쁘지는 않았지만, 문제는6명이 함께 생활해야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특별한 생활비가 들어가지 않는 장점은 있었지만, 갈수록 갈등이 깊어졌습니다. 한 친구는 술을 먹고 늦은 새벽에 들어와 소리 소리를 지르고, 또 한 친구는 너무도 안 씻어서 냄새도 나고 방 정리도 안 해서 불편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그래도 참고 참으며 1년이란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이제는 제법 필요한 기계도 잘 다루게 되었고 공정과정도 어느 정도 파악을 했을 무렵, 회사에서 생산직 주부사원을 모집했습니다. 생산량은 늘어만 갔고, 일손이 더 필요했던 이유였지요. 얼마 후, 주부사원 6명이 신입으로 들어오셨습니다. 그중에 연희엄마도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저는 대리로 진급을 했습니다. "연희 아줌마! 나 대리로 진급했어요." "축하드려요!" 연희 아줌마도 기뻐하는 것 같아 좋았습니다. "며칠 후, 자재 공급이 일시 중단되어 생산라인을 가동할 수가 없어 환경청소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연희아줌마가 "저기..급해서 그러는데 잠시 조퇴 좀 해도 될까요. 초등학교 다니는 딸아기가 아프다고 집으로 오고 있다네요." "얼른 가보세요. 과장님께 보고 드릴테니 다녀오세요." 퇴근 후 연희아줌마께 문자를 보냈습니다. "남편분이 잘해주시나요? " "사실..저...이혼하고 아이랑 살고 있어요." 벚꽃이 만발한 어느 휴일 날, 연희아줌마께 전화를 걸었습니다. 연희아줌마는 저보다 14살이나 많은 연상이었고, 부모님의 반대에도 연애 2년 만에 결혼을 했습니다. 마음으로 낳은 이제는 다 큰 딸과 저를 쏘옥 빼닮은 초등학교 6학년이 된 아들과 행복하게 살고 있답니다. 축하해 주실 거죠.
















2019/12/01 멈추면 보이는 것~!!

Dec 01 2019 3 mins  

남편에게서 “미안합니다, 같이 귀가하기 어려울 것 같아요.” 라는 메시지를 받아 홀로 퇴근길에 나섰습니다. 기다림 끝에 만난 마을버스는 사람으로 가득했습니다. 겨우 자리를 잡고, 교통카드가 들어있는 지갑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뒤져도 카드지갑이 보이지 않습니다. 아침 출근길 남편차를 타고 오느라 지갑을 확인할 일이 없었던 나는, 당황스러운 사태에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정류장마다 들어오는 승객들의 길을 막고 있는 것도 민폐여서, 망설이고 망설이다, 기사님께 카드지갑을 놓고 왔다고, 무임승차인데 괜찮겠냐고 양해를 구했습니다. 빨갛게 달아오른 내 모습이 안쓰러웠던지 기사님은 “그렇게 하세요.” 라며 무안함을 달래주셨습니다. 하나의 산을 넘고 보니 또 다른 걱정이 밀려옵니다. 버스를 내려 환승하게 될 지하철역에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개찰구 밑으로 기어들어가 볼까? 아님 개찰구를 지나가는 사람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같이 통과하게 해달라고 부탁을 해볼까? 온갖 생각을 하며 지하철 개찰구에 다가섰을 때, 역무원이 떡하니 지켜서 있었습니다. 평소에는 시간에 쫓기듯 다니다보니 앞만 보며 빠르게 개찰구를 통과해 환승버스를 놓치지 않으면 그만이었지, 주변을 둘러볼 여유는 없었습니다. 매일 그렇게 바쁘게만 살다보니, 개찰구 주변에는 역무원들이 대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조심스럽게 역무원에게 다가가 상황설명을 했죠. 얌전히 사무실로 따라가니 그분이 의자를 권하셨습니다. 그리고 친절하게 지하철을 이용한 후 계좌이체 해야 할 내용들을 적어주셨습니다. 그렇게 저는 집으로 귀가할 수 있었습니다. 5G의 흐름에 따라, 인간의 노동을 무인기계로 대체하는 것이 대세인 요즘. 이렇게 나는, 기계로는 대체할 수 없는, 사람만이 해줄 수 있는 일이 있다는 소중한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바쁜 일상 속, 잠시만 발을 멈추면, 문득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2019/11/25 김장하는 날이 그립습니다.

Nov 25 2019 3 mins  

친구가 전화를 했습니다. “뭐하냐? 집이지? 10분 뒤에 1층으로 내려와. 친정 가서 김장하고 올라오는 중이여. 한통 주려고.” “그래? 집에 와서, 저녁 먹고 가.” “아냐, 또 시댁 가야해.” 10분 후 친구에게서 전화가 오고, 전 내려가서 김치 한 통을 받았습니다. 집으로 들어와서 김치 통을 열어보니 색도 곱게 선명하고,, 한 포기 반으로 잘라 남편 입에 넣어줬습니다. 엄마가 계셨다면 저희도 이맘때 김장을 했을텐데... 연한 보쌈용 고기를 사서 토요일 아침에 내려가면, 밭에서 직접 배추를 다듬고, 아부지 경운기로 실어 집으로 옮긴 다음 마당 한쪽에서 배추를 절였죠. 저희 4남매의 김치에 큰이모네 작은엄마네 김치까지, 300포기가 넘었습니다. 배추김치만 한 게 아니라. 깍두기 총각김치 갓김치까지, 그야말로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아이들은 마당에서 뛰어 놀고, 아부지는 삼계탕을 끓이시고,..해가 지면 마루에서 무채를 썰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들로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습니다. 다음날 새벽 5시에 일어나 배추를 씻어 물기 잘 빠지게 정리해 놓으면 한쪽에서 아침을 준비하고, 아이들과 배추 속을 넣을 주전 선수들이 식사를 합니다. 중요한 양념 간은 아부지가 정하셨습니다. “젓갈 좀 더 넣어~” “마늘이 덜 들어갔어.” 하면 바로 더 넣곤 했습니다. 김장은 12시 정도면 끝납니다. 각자 김치 통을 차에 싣고, 김장 한 것을 정리하고, 마당 쓸고 아부지와 엄마, 그리고 남은 우리 4남매는 모두 목욕탕을 갑니다. 그리고 목욕탕 앞 순대국밥 집에서 아부지가 사 주는 순대국밥 한 그릇 먹고, 집으로 올라오면 김장 끝입니다. 엄마가 먼 곳으로 가기 전 까지 매년 하던 일입니다. 엄마가 떠나시고 다음해 아버지와 저희 4남매 김장을 했는데, 그 김장 맛이 안 나더라구요. 친구에게서 김장을 얻고, 하루 종일 엄마와 김장하던 날이 그리웠습니다. 다음 주 아부지 보러 갈 때 친구네 집에 들려 친구어머님 과일이라도 사 드려야겠어요.










2019/11/19 엄마의 옷을 사보내고

Nov 19 2019 3 mins  

몇 년 전만 해도, 여기저기서 아이들 옷을 물려받았는데, 올해는 목을 빼고 기다려도, 들어오는 옷이 없습니다. 별수 없이 애들 옷을 사러 옷가게를 기웃거리는데 아이들 옷이 왜 그렇게 비싼지.. 큰 치수의 옷들로 두 아이의 겨울용 티셔츠, 바지, 점퍼를 사고 남편의 겨울 잠바 하나를 사니 생활비의 반이 훅 하고 나갑니다. 집에 돌아오니 남편은 "아이들 옷이 왜 이렇게 커? 당신이 입어도 되겠다." 하기에 "그래야 내년에도 입고, 내후년에도 입지." 그러자 "아이들 옷은 둘째 치고, 당신도 옷 하나 해 입어! 학교엄마들도 만나고 할 텐데, 왜 맨 날 초라하게 입고 다녀? 애들 눈도 있는데.." 합니다. 거울을 보니 늘어진 티셔츠에, 보풀 잔뜩 올라온 가디건, 그 위에 10년 전 5일장서 샀던 점퍼를 입고 있는 초라한 아줌마가 있습니다. 낡은 옷들이 비상금 좀 쓰세요. 비상금 조금 쓴다고 지구가 멸망하지는 않아요.' 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다음날, 전쟁에 나가는 용사처럼 비상금을 들고, 옷집으로 갔습니다. 분명 내 옷을 사러 갔는데, 갑자기 빨간 점퍼와 꽃무늬 티셔츠 앞에 발걸음이 멈춰집니다. 꽃무늬 옷을 좋아하는 엄마가 떠올랐습니다. 엄마가 좋아하시는 진 핑크색의 목도리와 내복 한 벌을 샀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우체국으로 가 택배를 부쳤습니다. 다음날 친정엄마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나는 죽을 날이 코 앞 인디, 뭔 옷을 보냈냐? 연애 할 사람도 없고, 잘 보일 사람도 없는 디, 이렇게 고운 옷을 보내면 어쪄? 다시 도로 보낼팅 게, 니가 입어! 애들 학교도 들어 갔는 디, 니가 이쁘게 입어야지! 너 갈 때마다 보면, 거적데기 입은 것 같아. 너나 입어! 내일 택배로 보낸다." 하십니다. "엄마! 나는 아직 젊음으로 커버되는 나이야. 그러니깐 엄마 이쁘게 입고 다니셔요." 지금은 전업주부지만 곧 일자리 얻어 조금이라도 숨통이 트이면 엄마 꽃무늬 잠바 하나 더 사드려야겠습니다.




2019/11/18 행복한 생일날

Nov 18 2019 3 mins  

오늘 49번째 생일입니다. 내년이면 50대가 된다는 느낌에 며칠 동안 기분이 묘했습니다. 어제는 퇴근길에 마트에 들려 양지를 샀습니다. 예전에 엄마가 끓여주신 것처럼 양지를 먼저 삶아서 건져내고, 그 안에 국 간장을 넣고 미역을 넣었습니다. 제 생일 이라 참기름 몇 방울 더 넣으니, 맛이 환상입니다. 큰아이는 미역이 너무 많다고 투정을 부립니다. “미역이 몸에 좋다 잖아, 엄마 생일이니까 그냥 먹어.” 남편은 “당신 생일 내일인데, 오늘 미역국 먹는 거야?” “그치, 오늘은 미역국 먹고, 내일은 우리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당신이 쏘는 거야?” 남편이 웃습니다. 오늘 아침은 수능을 끝낸 작은아이와 미역국을 먹는데 작은아이 역시, 미역 양에 놀랍니다. 미역이 두뇌회전에 좋다고 건더기는 다 건져 먹으라는 말에 다 먹는데 그 모습이 참 예쁩니다. 결혼 후, 첫 생일은 시어머니가 챙겨 주셨습니다. 잡채에 갈비에 해물 탕까지 해 주셨죠. 그 다음해는 미역국을 못 먹었습니다. 다른 집 남편은 즉석 미역국이라도 끓여준다는데, 투덜투덜하며 친정엄마한테 전화를 하니 “미역국 네가 끓여 먹으면 되지, 그게 뭐가 어렵다고, 서운해 해? 미역국 끓여주는 남편도 있고, 안 그런 남편도 있는 거지? 네 아버지처럼 주방 왔다 갔다 하면서 냉장고가 더럽니? 반찬을 언제 적에 만든 거냐? 잔소리하면 좋겠어?” 하십니다. 남편은 청소를 엄청 잘합니다. 빨래도 잘 개고, 아이들 방 정리도 잘 하고, 냉장고 열어 보는 일이 물 꺼낼 때와 맥주 꺼낼 때뿐이니, 잔소리 할 일은 없습니다. 형님에게서 동생에게서 아이 친구들 엄마에게서, 친구들에게서, 생일 축하한다는 문자도 오고. 이 정도면 행복한 생일이죠. “울 엄마 나 낳느라고 고생했네. 첫애가 딸이라고 할머니한테 구박 많이 받았다며?” 하며 매 년 생일에는 친정엄마한테 전화해서 장날에 순대국밥 사 드셔요. 하고 오 만원 보내 드렸는데 올해는 “엄마, 엄마 딸 이제 50이다. 미역국 잘 끓여 먹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요.” 혼자 중얼거려봅니다.






2019/11/16 가을 나들이

Nov 17 2019 3 mins  

마음이 맞는 친구...글쎄 열 살이 넘게 차이 나는 젊은이 둘과 한 달에 한 번씩 모여서 맛있는 것을 먹으며 쌓였던 스트레스를 풀어내다보면 나이차이는 저만치 멀어지고 머리도 맑아지면서 몸도 가뿐해지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한 친구의 남편이 돌아 올수 없는 먼 곳으로 가버렸습니다 근 일 년 간 자리에 누워 있다가 막상 먼 길을 떠나보내고 보니 마음이 헛헛한지 집에서 나오질 않길래 억지로라도 불러내야 될 것 같아 일박이일로 가을 나들이를 떠났습니다. 새벽 일찍 막내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우린 안개가 자욱하게 낀 새벽도로를 하하 호호 재잘거리며 달렸습니다. 휴게소에 도착해 각자 가방에서 검은 봉지를 한 개씩 꺼내 놓은데 고구마 삶은 것, 빵, 커피, 육포, 양갱 등등 ,,,먹거리들이 수두룩 나옵니다. 그렇게 간단하게 아침을 해결하고 우린 또 달려 산청에 도착을 했습니다. 산청에는 요리에 관심이 많은 친구가 산사음식을 배우러 가끔 가는 곳인데 마침 약초 축제도 하니까 잠시 구경하고 통영으로 갔습니다. 예약해둔 숙소에 짐을 풀고 바닷가를 거닐며 모처럼 집안일에서 해방된 기분을 만끽했습니다. 다들 새벽 일찍부터 서둘러 고단할 텐데도 파도 소리를들으며 맥주 한잔하니 피곤함도 씻은 듯이 없어졌습니다.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뒹굴 거리는 친구와 밖으로 나왔습니다.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보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친구가 엉엉 소리를 내며 웁니다. 그동안 마음 한 켠이 꽉 막혀있었는데 친구들 덕분에 좋은 여행도하고 기분 전환도 하게 해주어서 고맙다고... ‘그래...그동안 많이 힘들었지...니가 너무 힘들어하면 먼저 간 사람의 마음도 무거우니까 이젠 울지도 말고 마음 아파하지고 말고 지금처럼 열심히 같이 살아가는 거야,,,알았지?’ 그렇게 우린 얼떨결에 무작정 가을 소풍을 떠나왔지만 참 잘했다 싶습니다. 하루 빨리 친구가 슬픔을 툭툭 털고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2019/11/10 내 삶의 길목에서

Nov 12 2019 2 mins  

전 빌라에 삽니다. 아파트야 주차공간이 넓으니깐 새로 이사와도 주차를 어떻게 할 지 의논할 필요가 없지만 오래된 빌라고, 주차공간이 넓지 않아서, 새로 이사를 오면 주차문제를 의논해야 합니다. 두 달 사이에 3집이 이사를 왔는데 다들 차를 가지고 있어서, 아침 마다 차를 빼는데 아침잠이 덜 깬 비몽사몽 한 상태로 분주하게 움직입니다. 집집마다 출퇴근 시간이 다르고 약속이 있다면서 저녁에도 나가니 밤에도 차를 빼줘야 합니다. 반상회를 열어 서로 출퇴근 시간, 밤에 약속시간, 그리고 차 크기에 따라서 주차 순서를 정했습니다. 너무 큰 차가 앞에 주차하면 입구가 좁아져서 다른 차가 안쪽으로 주차하기가 힘드니 차 크기도 중요했습니다. 또 다른 의견이 나왔는데 주차장에 있는 화단을 없애서 주차공간을 넓히고, 주차장 구석에 철조망도 없애서 오토바이 주차도 할 수 있게 하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선 철조망 제거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일요일 날 이웃끼리 모여서 철조망을 절단하고 걷어냈습니다. 302호 아저씨가 청소 일을 하시는데 고철 버리는 곳을 잘 아신다고 해서, 302호 아저씨 트럭에 실어 철조망을 버려주셨습니다. 이제 문제는 주차장에 있는 작은 화단인데.. 화단에 있는 풀부터 뽑고, 쓰레기 줍고, 흙을 걷어내고 근처에 인테리어 회사에 화단 철거를 부탁했습니다. 주차공간이 조금 넓어졌습니다. 이웃끼리 힘을 합치니깐, 어려운 문제도 빠르게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아침이고 밤이고 차를 빼달라고, 서로 불편을 끼치는 일이 줄어들어들었답니다.






2019/11/8 부부싸움

Nov 12 2019 3 mins  

동생 댁은 부부싸움을 하면 꼭 저에게 전화를 합니다. "놀러가도 되죠?" "뜬금없이 놀러온다는 거 보니까 또 부부싸움 했구나?" "속상해서 나오긴 했는데, 갈 때가 있어야지요. 항상 편들어 주니까 편해서 그런가 봐요" 시댁식구들이 내 편을 들어줄 때만큼 속 시원할 때가 없을 것 같아 들어주긴 하지만, 솔직히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동생 흉을 보는 소리가 듣기 좋진 않습니다. 그렇지만 속이라도 시원해지라고, 무조건 동생이 잘못했다며 동생 댁 편을 들어 줍니다. 어느 정도 풀린 것 같기에 밖에 나가서 쇼핑이나 하자며, 오랜만에 백화점에 갔습니다. "이 원피스 예쁘다. 입어봐! 잘 어울리겠다." "아니에요 이런 옷 입고 갈 데도 없어요! 너무 비싸기도 하구요" 결국 동생 댁은 이월상품 매 대에서 고른 치마가 훨씬 예쁘다며 좋아했습니다. 그리고는 언제 남편 흉을 봤던가 싶게 남자 옷 매장을 기웃거리는 동생 댁에게 "왜 미운 신랑 옷 사려고?" "같은 옷을 몇 년 째 입고 있는지 몰라요. 애들도 부쩍 얼마나 컸는지 제 옷은 꿈도 못 꿔요." 엄마는 또 아내는 어쩔 수 없구나 하다가, 꼼꼼히 남편과 아이들 옷을 고르는 동생 댁이 고맙고, 미안하고, 예뻤습니다. "우리도 레스토랑에 가서 근사한 밥 한번 먹어보자! 맛있는 거 사줄게." "저녁 해야죠! 식품코너 세일할 시간 됐어요. 빨리 가요." 부지런히 다니며, 세일 스티커가 붙어있는 식재료만 골라 담습니다. '그래 속마음 터놓고, 풀 곳이 있어서, 다행이구나! 그 편한 대상이 나라고 하니, 더 잘 들어주고, 다독여 주면서 살아야지' 싶습니다. 장바구니 가득 신랑이 좋아하는 것들만 사더니 바삐 집으로 갔습니다. 동생에게 전화를 했지요 "너 참 장가 잘 갔다." "그럴 줄 알았어! 누나한테 또 일렀지? 자꾸 들어주니까 자기가 다 잘한 줄 안다니까! 혼 좀 내줘!" "혼은 네가 나야지! 네가 잘한 건 딱 한가지야! 백점짜리 아내와 결혼한 거"



2019/11/7 가을품은 소박한 기차여행

Nov 07 2019 3 mins  

저희부부에게도 예외 없이 한 해 한 해 '세월의 색'이 덧입혀져 갈 즈음, 우리 부부는 약속했죠..아이들 모두 내보내고 나면, 대한민국 구석구석 손잡고 떠나자 구요. 드디어 올봄 막내까지 다 보내고 맞이한 이 가을 ~남편이 "여보 ~ 우리 기차여행 갈까? 부산 어때"? "글쎄?, 난 다리가 불편해 많이 못 걷는데?~~ 갈 수 있을까?" 그러자 남편이 단숨에, "우리 예전에 나이 들면 꼭 손잡고 다니자고 했잖아" 하며 제 마음 다칠까봐, 진심어린 너스레를 떱니다. 그렇게 해서 '부산 행 기차를 탔습니다. '차창'을 '화폭'삼아 가다보니, 낙동강이 끝없이 펼쳐지고, 여행객들을 수없이 흔들어대는 낭만적인 갈대무리에 넋을 잃고 ~~"어머 어머 벌써 종착지네." 저희는 그 풍경이 너무 아쉬워, "해 지기 전에 돌아오며 꼭 다시 봐야지" 했습니다. 그리곤 첫코스로 '자갈치 축제'에 갔습니다. 남편은 어린애 마냥, 바지 둥둥 걷고 물고기 잡는 체험도 하고, 잡은 생선으로 회도 만들어 먹고, 그리곤 거기서 제일 가까운 '영도'에 있는 '흰여울 문화마을'로 갔습니다. 저는 예전엔 관심 밖이었던 그 '가파른 계단'이 먼저 눈에 들어 와서 좌절 할 순간에, 너무나 예쁘게 펼쳐지는 멋진 '바다절경'에 매료되어, 남편 손에 의지해 그 많던 계단을 다 지나 해안도로 끝까지 걸었습니다. 그리곤 서둘러 해 지기 전에 기차를 타러 갔지만 시간이 촉박해 놓치고 다음차를 탔죠. '아뿔싸' 막 출발한 차창 밖은 하나둘 '조명등'이 켜지고, 올 때의 그 바깥풍경은 볼 수 없어 아쉬워 할 즈음, 갑자기 상상도 못했던 거대한 '저녁 노을'이 '장관'처럼 펼쳐졌습니다. 몇 년 전 다리를 크게 다쳐 의기소침해 하며, 세상과 단절했던 제 자신을 잠시 돌아보며....~~이렇게 저의 손발이 되어주고, 삶의 용기를 불어넣어주며 이 '아름다운 세상' 을 보여 주는 남편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릅니다. 그래요 유명한곳, 소문난 맛 집을 향해 떠나는 '거창한 여행'도 좋지만 '가는 세월'에 서로 향한 '따뜻한 사랑'하나 얹어 가볍게 떠나는, 소박한 여행도 '감동의 배'가 되는 것 같습니다. 남편에게 정말 고맙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2019/11/6 참 고마운 남편

Nov 06 2019 3 mins  

남편이 집에 도착하자마자 큰아이를 부릅니다. “컴퓨터 좀 켜 봐. 공인중개사 답안지 나왔나 봐 봐.” 큰아이가 급하게 컴퓨터를 켜고 답안지를 찾습니다. “아빠, 나왔는데, 채점하게?” “1번부터 답 불러봐.” 옷도 못 갈아입고, 하는걸 보니 어지간히 긴장이 되나 봅니다. 2차는 세 과목을 보는데, 과목당 40점 이상이고 평균 60점을 넘어야 한다네요. 채점결과 남편은 68.5 점이 나왔습니다. 혹시 모른다고 1차 시험도 찬찬히 다시 답안지를 맞춰 보더니, “와~~아빠 공인중개사 시험 합격했다!” 소리를 지릅니다. “아빠 학원도 안 다니고 삼수 만에 합격이면 대단하신 거네요. 요즘 공인중개사 응시하는 사람은 나이도 어려지고, 다 학원가서 공부한다잖아요. 그 공부만 한 게 아니라 아빤 회사까지 다니셨으니 정말 대단하신 거예요. 아빠,, 저녁에 한 잔 하지죠. 엄마가 쏜대요.” 저 몰래 남편한데 용돈을 받았는지 큰아이는 아부가 술 술 나옵니다. 남편은 삼겹살에 소주도 기분 좋게 마시고, 일요일 내내 누워서 심부름만 시킵니다. “나 물, 커피도 한 잔 주고. 피자도 시켜 먹을까? 시험공부를 너무 열심히 했더니, 기운이 다 빠지네.” 큰아이는 쉽게 끝날 일은 아니라고, 최소한 일주일 최대한 한 달은 갈 거라며 눈을 찡끗하는데, 전 남편의 유세가 더 길더라도 그냥 봐 주려구요. 직장 다니면서 틈틈이 공부한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거든요. 남편이 보는 책을 한 번 봤는데 속으로 허걱했습니다. 일상용어가 아닌 전문용어라 읽은 것도 벅차더라구요. 남편은 지금은 직장에 다니지만, 아직 큰아이도 작은아이도 가르쳐야하고, 우리의 노후도 준비해야하는데, 이렇게나마 내일을 준비하는 남편이 참 고맙습니다. 자신감 급상승한 남편은 “나 이젠 주택관리사 도전해야겠다.” 합니다. “여보, 주택관리사는 공인중개사보다 훨씬 더 어렵대.” “내 나이 51살인데 환갑 전에는 합격하지 않을까? 해 보는 거지 뭐.” 남편의 도전의 부러운 하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