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타고 달리는 어떤 이의 사진을 보며 부러워하던 나를

[단편소설]

어린 이의 희박한 자리

최미래

    묵인은 많은 것을 자라나게 한다. 나는 키가 큰 사람이 되었다. 두애는 방문을 잠그고 한나절 동안 나오지 않는다. 종종 이런 시간이 필요하다. 월경 주기처럼 규칙적으로 그러나 불현듯 찾아오는 이 날에 나는 그다지 날카롭지 않은 칼을 쥐고 두애를 기다린다. 껍질이 끊어지지 않고 길게 길게 이어지도록 사과를 깎는다. 칼은 순간의 세계. 방 쪽에 귀 기울이며 멈칫하다가는 손가락이 베이거나 껍질이 끊어질 것이다. 두애는 자기만의 시간과 생각 속에서 내가 모르는 불행을 견디고 있다. 그런 시간들을 보내고 문을 열 때마다 완전히 지친 모습이고, 먼 미래를 미리 보고 온 사람처럼 허탈한 동작과 표정으로 걸어 나온다. 나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나마 덜 갈변된 사과를 한 조각 건넬 것이다. 두애는 사과를 손바닥에 올린 채로 소파에 늘어져 있다가 결국 먹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 과정은 조립식 가구를 만드는 것처럼 당연한 절차가 되어버렸다. 나는 사과의 속살로 미끄러지는 칼날과 그 감각에 집중한다. 두애의 방문을 의식하지 않는다. 그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나는 모른다. 껍질이 끊어지지 않게 사과를 깎는다는 것은 한 순간 순간이 길게 이어져야 하는 일이다. 이 순간들에 몰두하기 위해서는 그냥 지나쳐야 하는 다른 순간들이 있기 마련이다. 비가 잠깐 쏟아졌다 그치고 해가 어느 쪽으로 기울며 가라앉고 잠자리가 베란다 창에 부딪히는 일들을 모르는 하루. 나는 두애가 나오기 전까지 계속해서 몰두한다. 간단한 일도 몰두해서 하려고 한다. 온갖 쓰레기가 널브러진 거실을 걸으면서 재활용이 가능한 쓰레기만 줍고 그다음엔 종이로 된 것만 줍고, 그러다 보면 신발장 앞에 쓰레기봉투가 여섯 개 정도는 금방 쌓인다. 그래도 혼자는 외롭고 시간이 잘 가지 않는다. 두애의 방문 그 단단한 손잡이를 바라보고 있으면 간신히 먼 곳에 떨어뜨려 놓았던 어떤 기분들이 머릿속으로 밀려들기 시작한다. 미루어 놓았던 만큼 매끈하게 성장해 있는 그것들은 작고 단단한 돌멩이 같은 것이다.
    어렸을 때의 나는 미끄럼틀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시간을 때우는 것에 익숙했다. 벤치에는 옆집 할아버지가 앉아 있었다. 그와 나는 서로에게 단 한 번도 먼저 인사를 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른 새벽 분리수거함을 뒤지는 것, 경비와 사이가 좋지 않은 것, 혼자 사는데 찾아오는 손님조차 없다는 그의 사정을 내가 알고 있듯이 그도 나의 지난한 가정사를 알고 있을 게 뻔했다. 어둑어둑 해가 다 저문 뒤의 놀이터에 끝까지 남아 있는 사람은 우리 둘밖에 없었다. 할아버지는 계속해서 터져 나오는 기침 때문에 손으로 입을 막았다. 휴지나 물, 뭐든지 간에 도움이 필요해 보였지만 나는 미끄럼틀에 가만히 앉아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이'의 어디쯤에서 생각이 멈춰 있었다. 할아버지는 내 쪽으로 걸어오면서 토를 했다. 토사물은 별것 없이 묽게 흘렀다. 그는 내게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토하기라도 한 것처럼 내 앞에서, 굳이 허리를 곧게 세우면서 손바닥을 펼쳤다. 거기 그게 있었다. 조그만 회색 조약돌. 나는 미끄럼틀을 천천히 타고 내려왔다. 가방을 버린 채 집으로 향했다. 거의 매일 보면서도 서로 모르는 체 지내던 옆집 할아버지가 왜 내게 그걸 보여주었는지 나는 지금도 알지 못한다. 다만 그 후 조약돌은 살다가, 걷다가, 시간을 보내다가 종종 내 손에 잡혔다. 나는 조약돌을 손에 쥐게 될 때마다 버려진 강아지마냥 원한 적 없는 것들이 눈앞에 나타나 살랑살랑 꼬리를 흔드는 기분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몰두할 무언가를 찾아 헤매게 되었다.

    가방 앞주머니에, 주머니에, 머릿속에 조약돌이 들어 있고 운이 나쁘면 갑작스럽게 조약돌을 만날지도 모른다고 의식하는 것은 내게 이미 오랜 습관이 되었다. 두애와는 재수학원을 같이 다녔지만 서로에 대해 궁금해 하거나 누가 먼저 자기 얘기를 꺼낸 적 없었다. 수업이 끝나면 맥도날드에서 각자의 메뉴를 시켜 조용히 먹고 헤어졌을 뿐이었는데, 맥도날드 건너편 재즈 바에 가보자고 한 사람은 두애였는지 나였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나는 그날 이미 입안에서 조약돌을 굴리고 있었다. 망친 시험지가 가방에 있던 날이었고 학원비 납입 날짜였으며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간 몇 시간 뒤 아버지의 비상금을 훔치다 걸린 날이기도 했다. 술을 많이 먹었고, 이제 대학 안 갈 거다 어차피 가고 싶은 과도 없다, 따위의 말을 오래도록 했는데 두애는 그 지겨운 얘기를 들었다. 나는 조약돌이 자꾸 혀에 걸려 말을 더듬었다. 그 점이 창피해서 정신을 똑바로 차리려고 애썼다. 두애는 말을 잘했고, 잘 들었다. 눈을 맞추면서 들었다. 그래. 나도 알아 그런 기분. 두애는 취미로 코스프레를 한다고 했다. 숨겨 왔던 정체를 고백하는 것처럼 사실은 말이야 나는 코스프레를 해. 이렇게 말했다. 나는 학원이나 길거리에서나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 두애가 코스프레를 하는 모습이 잘 떠오르지 않았다. 신기하다 신기해 두애는 주로 어떤 옷을 입을까 궁금했지만 그렇구나, 하고 말았다. 두애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표정으로 빙글빙글 사람들을 비추는 보라색 불빛과 리듬에 고개를 끄덕이며 충만함에 대해 이야기했다.
    모나코의 의상을 잘 차려입고 풀 메이크업을 하고 작은 액세서리까지 차면 나는 정말 부풀어 터지기 직전인 풍선처럼 그렇게 완벽해지는 거야.
    나는 무언가로 가득 차 있다는 걸 느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두애의 말이 의아했다. 두애는 나를 이해시키기 위해 풍선이니, 갓 만들어진 케이크니 비유를 하며 충만함에 대해 계속 말했다. 나는 아 그거! 이런 거구나 그런 거구나 이제 알 것 같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이건 예를 들어 고양이 같은 것이다. 나는 고양이를 좋아하지만 고양이의 기분을 알 수 없다. 두애가 하는 말은 마치 고양이가 내게 '높은 지붕에서 잠을 자다가 몸을 쭉 편 후에 아래로 한 번에 훅 뛰어내리는 기분이야'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했다. 그러니까, 전혀 다른 눈높이. 서 있는 곳이 다르거나 보고 있는 것이 다르거나. 나는 두애가 말하는 충만함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다는 사실이 부러웠다. 천장에서 미러볼이 돌아가고 있었다. 어둠이 지나가고 빛이 지나가고 두애의 표정이 사진을 이어 붙인 영상처럼 각도별로 비쳤다. 내가 나 이외의 모든 문제에 대해 토로하는 동안 단체손님들이 들어왔다. 리드미컬한 멜로디가 바를 채웠다. 주변의 소음이 너무 커서 언성을 높여야 했다. 두애는 자꾸만 욕을 뱉는 내 입에 사탕을 넣어 주었다. 지금 우리 둘만 생각해. 미러볼이 몇 십 바퀴를 돌고 돌았다. 나는 사탕을 굴렸다. 옆에는 시시각각 바뀌는 두애가 있었다. 비치는 얼굴마다 전혀 다른 사람 같았다.
    이제 두애는 학원에 다니지 않는다. 우리는 베란다로 들어오는 햇볕을 즐긴다. 볕이 들지 않는 시간에는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배달 음식을 먹고 반쯤 누워 음료수를 마신다. 나는 내가 가진 모든 시간을 두애와 보낸다. 두애의 집에 있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고, 세상이 멈춘 것만 같아. 모두가 다 같이 공평하게 멈추어버린다면. 여기 있으면 허무맹랑한 바람이 실현되는 기분이 든다. 눈앞에 닥친 것들이 없다는 점에서 실제로 그렇기도 하다. 우리가 함께 있어서 혹은 우리끼리만 있기 때문에 시간은 쉽게 멈춘다. 나는 가끔 내가 없는 두애의 집을 생각한다. 내가 없는 두애의 시간에 대해. 두애는 치장하는 걸 좋아해서 다채로운 에스닉 무늬 원피스를 입고 화장을 하고 고데기로 머리를 정리한 채로 집에만 있다. 다리를 끌어안고서 애니메이션이나 영화를 보고 배가 고프면 배달 음식을 시키고. 그리고 또 뭘 할까.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두애는 표정이 없다.

    내가 있거나 없거나 두애의 시간에는 큰 변화가 없다. 자기만의 어떤 것으로 이미 충만하니까. 아주 가끔씩 방에 들어가 나오지 않게 된 것을 제외하면 몇 달 전에 있었던 그 일에도 두애의 일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렇게 보인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모르겠다. 사실은 많은 것들이 두애 안에서 바뀌고 있을지도. 나는 그날 두애의 집에 없었고, 내가 없는 두애의 일은 상상이 잘 되지 않는다. 어떤 순간은 지금까지의 삶이 재정립될 만큼 많은 것들을 바뀌게 한다. 그날이 그랬다. 어떤 하루가 우리에게, 아니 두애에게 있었다. 팬이 다녀갔다고 했다.
    내 팬이 맞는데 사실 내 팬이라기보다 내가 코스프레한 모나코의 팬이면서, 모나코를 코스프레한 모습일 때의 내 팬이라고 해야 하나. 메시지로 깊은 얘기를 주고받기도 했어. 그래 정말로 깊은 얘기를 나누었어. 어느 한때는 그랬어. 그러다가 연락을 끊었는데, 물론 내가 관심에 굶주려 있다고야 할 수 있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여야지. 애정에 정도라는 것이 있다면 그건 원하지 않았던 정도의 애정이었어. 그 사람은 모나코에게 말하고, 모나코가 어떤 말을 해주길 바라고, 때때로 내가 원한 적 없는 것을 주기도 하고 그랬어. 갑자기 집으로 찾아온 그 팬과 나는 현관문에서 몇 십 분 동안이나 얘기를 했는데 슬쩍 살펴보니 칼이나 망치 같은 건 없었어. 그런 것들이 들어 있을 만한 주머니도. 안심하는 마음 조금, 이 사태를 잘 흘려보내자는 마음 조금, 토하고 싶은 마음 조금이 섞여서 다리가 풀릴 지경이었어. 나는 손님이 찾아왔다는 듯이 행동했어. 그러고 싶다면 언제든 방문해도 좋다는 허락을 한 것처럼. 화를 내야겠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어. 현관문 사이에 껴 있는 그 사람의 운동화가 워낙 완강했기 때문에. 그래 그랬던 것 같아. 그 사람을 집에 들여야 하나 말아야 하나 어떤 것이 더 위험한가, 혹은 안전한가에 대한 순간적인 판단. 그게 꼬인 것 같아. 운동화의 앞코가 점점 문 안쪽으로 들어오는 것 같았어. 그리고 나는 이 집에서 적어도 몇 년 동안은 살아야 하니까. 그러니까. 순간이라는 건 선택을 지배하는 어떤 시간성이라는 생각을 그 순간에 했어. 어쨌든 나는 그 사람을 들어오게 한 다음 테이블 앞에 앉았어.
    밥은 먹었어요?
    커피 좋아해요?
    밥과 차를 대접하니 그 사람은 떠났어.
    그날 저녁 두애는 오랫동안 활동해 온 동호회와 인터넷 카페를 탈퇴하고 개인 메신저 계정을 삭제했다. 나는 두애를 도왔다. 두애의 이름과 아이디와 코스프레와 각종 캐릭터를 검색하고 많은 곳에 전화를 걸고 찾아가기도 했다. 불가능한 것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마우스를 붙잡고 자신의 이름을 검색창에 두드리면서 두애가 말했다.
    외계인도 하고 코난이랑 유바바도 하고 동물도 하고 천을 뒤집어쓴 요괴나 괴물 같은 것도 했는데, 지워지지 않는 사진들을 보면 나는 반쯤 벗은 여자 캐릭터만 전문으로 코스프레하는 사람이었나 착각이 들어. 그리고 그것들은 내가 한 게 맞아. 긴 시간과 정성을 들여서 만들어낸 사랑스럽고 자랑스러웠던 코스가 맞아. 그런데 그런 것들만 모아서 보니까 나도 내가 이상하게 느껴진다. 내가 했던 것들이 이상하다. 참 이상해. 그래 이상해. 근데 아무리 보아도 내가 직접 한 게 맞아. 그러면 내가 했으니까 누구 탓을 못 하고 내가 한 게 맞다. 맞네. 맞아. 온통 맞는 거밖에 없구나.
    나는 두애의 말을 들으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네가 잘못한 건 없어. 하지만 그 사람은 여전히 네 집을 알고 있지. 그건 맞아.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면 나는 일부러 그쪽을 쳐다보지 않는다. 두애는 소파에 눕듯이 앉는다. 촛농을 많이 흘린 초 같다. 내가 건넨 사과 한 조각을 꺼지기 직전의 촛불처럼 들고서 우리가 함께하는 집의 시간으로 되돌아온다. 두애가 말한다.
    나 어제 친구 만났는데 그 친구가
    외출했다고?
    응. 들어 봐.
    응.
    그 친구가 옷가게를 하는데 처음으로 그곳에 가봤어. 자기 취향대로 가게를 꾸미고 자기만의 기준으로 옷을 분류해서 정리하고. 5평 남짓한 곳이었는데 보라보라 섬처럼 예뻤어. 색색의 옷들이 물결처럼 걸려 있고 조명은 줄곧 따뜻했어. 야자수처럼 잎이 넓은 나무가 거울 앞에, 피크닉 가방이 마네킹 아래에 배치되어 있었어. 아 물론 나는 보라보라 섬에 가본 적이 없는데, 그 어감이라는 게 분명히 아름다울 것 같은 느낌이 들잖아. 그 친구는 그런 자기만의 정원 같은 데서 종일 시간을 보내. 지치고 지겨울 때도 있겠지만 나는 부러운 마음이 들었어. 적성에 맞을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거기서 친구 일을 돕고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나중에 작은 가게를 함께 운영하는 얘기를 했어. 기분이 괜찮았어.
    요즘 내가 진짜 두려운 것은 두애가 나를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두애는 종종 가본 적 없는 보라보라 섬을 말하고 비유하고, 그럴 때마다 즐거워 보인다. 계획대로 흘러가는 미래를 이야기하는 건 원래 즐거워. 너무 순탄해서 환상 같으니까. 내가 없는 시간에 두애는 앞으로의 일에 대해 생각했구나. 이야기가 계속되는 동안 두애는 이미 보라보라 섬으로 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준비해 놓은 짐 가방이 방 어딘가 숨겨져 있고 마음만 먹으면 그걸 찾아 들고 떠날 수 있을 것 같아.
    듣고 있어?
    응. 근데 뭐?
    내일 모레 언니 온다고 조카랑.
    두애는 언니랑 같이 산다고 했다. 나는 두애의 언니라는 사람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매일 들락거리는데도 언니의 흔적조차 없었으니까. 언니가 오면 내가 없는 시간에도 두애는 다른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다. 어딘가 떠난다든가 하는. 집이 깨끗해질 수도 있고 두애는 고유의 집 냄새나 규칙적인 생활감 같은 것을 얻게 될지도 모른다.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갔을 때 아이는 내 쪽을 흘깃 쳐다보다가 텔레비전으로 시선을 돌린다. 방문을 열어 보고 베란다를 살펴봐도 두애는 보이지 않는다.
    얘, 어른은 없니?
    몰라. 텔레비전을 가리고 있잖아요.
    아이는 유튜버가 소개하는 장난감 아이섀도를 몰두해서 본다. 장난감 화장품은 색조가 다양하고 내가 쓰는 화장품과 별로 달라 보이지 않는다. 아이는 이미 핑크색으로 뒤덮인 얼굴에 볼터치를 한다. 손동작이 제법 유튜버와 비슷하다. 입가에 초콜릿과 립스틱이 덕지덕지 묻어 있다. 나는 티슈를 건네며 립스틱을 먹은 거야 초콜릿을 먹은 거야 농담을 건네지만 아이는 티슈를 받지 않는다.
    나는 두애 이모 친구야. 너는 이름이 뭐야?
    김유성.
    유성아 유성아 이름 예쁘다. 엄마나 두애 이모는 어디 갔어?
    …….
    유성아? 유성이는 몇 살이야?
    …….
    너 유튜브 좋아하는구나. 그거 뭐지 액체괴물 좋아해?
    액체괴물 갖고 있어요?
    지금은 없어.
    아이는 금세 고개를 돌린다. 소파에 위태롭게 세워진 콜라를 마신다. 버르장머리가 단단히 없네. 나는 핸드폰 메모창을 열어 그렇게 쓴다. 잠시 후 들어온 두애는 바닥에 있는 장난감들을 발로 모은다.
    유성이는 너희 언니 딸 맞지?
    유성이?
    응 쟤.
    아 은재?
    김유성이랬는데 이름.
    김유성은 우리 언니 이름이고 쟤는 은재야.
    나는 의문을 담아 아이를 쳐다보지만 아이는 내게 시선을 주지 않는다. 두애의 언니는 작은 짐 가방을 두고 급하게 나갔다고 했다. 은재는 잠자코 텔레비전을 본다. 다른 놀이를 하는가 싶어 채널을 돌리면 소리를 지른다. 일곱 살치고 꽤 크다고 생각했는데 웬만한 어른보다 목청이 더 크다. 나는 은재가 내 말을 무시하거나 반말을 할 때마다 텔레비전을 끄고 대화를 시도하지만 내 행동은 일곱 살의 강력한 분노를 이끌어낼 뿐이다.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 모두를 위한 더 좋은 방법 같다. 그래도 애들치고는 꽤 얌전한 편이지 않나 가만히 앉아서 유튜브만 보니까. 두애는 이미 은재가 하는 반말에 익숙하고, 평소에 전혀 하지 않던 요리를 한다. 은재는 한 시간에 걸쳐 완성된 계란프라이와 야채볶음밥을 한입도 먹지 않는다. 냉장고에는 두애의 언니가 챙겨 놓았는지 초코바와 요구르트 같은 간식이 수북하다. 나는 모처럼의 요리에 나가떨어진 두애를 보다가 난생처음으로 애를 씻긴다. 은재는 세수를 하는 내내 울고 물이 얼굴로 쏟아질 때 숨을 참는 법을 모른다. 나는 자꾸만 주저앉는 애를 일으키고 달래다가 화초에 물 뿌리듯 대강 헹구어버린다. 은재는 밤늦도록 지치지 않고 유튜브를 보고 또 본다. 잠을 자지 않겠다고 도망칠 때가 가장 활기차다. 어르고 어르다가 화가 난 두애는 엄마가 영영 보고 싶지 않다면 마음대로 하라고 으름장을 놓아버린다. 은재는 침대에 누운 채로 쓸데없는 질문을 몇 십 분이나 퍼붓는다. 나는 그냥 불을 끄고 방문을 닫아버린다. 우리는 얼이 빠져 소파에 앉아 하루를 마무리한다. 육아는 적성에 맞지 않는 것 같다는 둥의 얘기를 하다가 야식으로 주문한 족발이 도착했을 때, 은재가 실실 웃으며 방에서 나온다.
    잠이 안 와. 안 오는 걸 어떡해.
    은재는 유튜브를 보면서 가장 커다란 뼈다귀를 뜯는다. 두애가 중얼거린다. 내게 하는 말이기도 하고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아침에 데리러 올 거야.
    그러나 다음날 아침 두애의 언니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 그 다음날에도 다다음날에도.

    일주일 정도는 금방 지나간다. 두애는 언니에게서 메시지 한 통을 받고 내게 말해 주지는 않지만, 나는 그 메시지가 꽤 절망적인 내용인 것을 알 수 있다. 두애는 보라보라 섬 같은 친구의 옷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지 못한다. 은재는 끼니때와 상관없이 자신이 먹고 싶을 때 시리얼을 먹고 초코바를 먹고 가끔은 식빵에 초코 잼을 발라 먹는다. 씻고 싶을 때 얘기하라고 말해 두었으나 아직 한 번도 씻겨 달라고 한 적이 없다. 그리고 여전히 쉽게 잠들지 않는다. 그 점이 두애와 나를 힘들게 한다. 도저히 못 견딜 것 같은 일도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끔찍할수록 오히려 그 안에 잘 흡수되는 타협점이 만들어진다. 그렇게 고착된 시간들은 일주일이 몇 번이나 반복되자 일상에 완전히 스민다. 여전히 끔찍한 채로. 같은 공간에 있지만 각자 다른 시간을 보낸다는 점에서 이제 우리들은 한 가족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집은 예전보다도 빠른 속도로 더러워진다. 은재는 콜라를 자주 흘리고 혼자서 놀다가 잘 넘어지고 그때마다 울지만 우리는 그냥 내버려둔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보면 어느새 울음을 그치고 유튜브를 보고 있다. 종종 내게 와 게임을 방해하면 나는 얼린 요구르트를 손에 쥐여 준다. 그러면 말을 멈추고 요구르트를 녹여 먹으며 노트북 창을 물끄러미 보다가 소파로 돌아간다. 요즘은 나를 찾는 횟수가 잦은데 그건 앞니가 썩고 있기 때문이다. 은재는 손으로 입을 가리키며 아프고 슬프다고 말한다. 그러고는 양치를 시켜 주려고 칫솔에 치약을 묻히는 동안 내가 찾을 수 없는 곳으로 숨어버린다. 자고 있는 은재의 입을 벌려 본 두애는 딸기향이 나는 가글을 주문했다. 은재는 가글을 입안에 오래 머금고 있다가 그대로 삼켜버린다. 나랑 두애는 그 모습이 귀여워서 큰 소리로 웃는다. 우리가 웃으면 은재도 따라 웃는다. 두애는 이제 보라보라 섬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고 자신을 꾸미는 일도 하지 않는다. 두애의 화장품은 점점 은재의 것이 되어 간다. 은재는 이 집에 있는 것들을 다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한다. 그건 비단 화장품만이 아니다. 하루라도 깊게 잠드는 법이 없고 늦은 시간까지 우리와 있으려고 기를 쓴다. 나는 헤드폰을 쓰고 모른 체하는데 두애는 그게 잘 안 되는 모양이다.

    평소와 달리 은재는 음식투정을 한다. 나는 헤드폰을 쓴다. 그러면 금세 저녁시간이 되어 있다. 가끔 뒤를 돌아볼 때마다 거실 바닥이나 소파를 수건으로 훔치는 두애가 보인다. 두애는 콘셉트 자체를 아이 엄마로 잡은 것 같다. 집 안은 여전히 지저분하고 은재는 씻지 않고 해결되는 게 하나도 없는데 두애 혼자 바쁘게 움직인다. 은재는 아무도 자신에게 음식투정의 이유를 물어보지 않자 노래 부르듯 말에 리듬을 붙여 찡얼거린다.
    국물이 먹고 싶어 시리얼은 차가워 따뜻하고 국물이 있는 걸 줘 시리얼은 이제 그만 먹고 싶어 국물을 줘 내게 밥과 국물을 줘.
    두애가 말을 꺼낸다. 나는 그제야 헤드폰을 벗는다.
    아저씨도 아니고 큭큭. 근데 나도 오랜만에 그런 거 먹고 싶다.
    나 아저씨 아니야 나 어린이야 어린이라고. 나는 어린이야.
    그런 거? 뭐?
    밥과 국물 그런 거.
    자신을 빼놓고 이야기하자 은재는 결국 울음을 터뜨린다. 두애와 나는 말을 멈추고 잠시 서로를 장난스럽게 바라본다.
    내일 마트에 가자. 밥과 국물을 사러. 냉장고가 텅텅 비긴 했어. 그런데 있잖아, 우는 애는 버리고 갈 거야.
    그날 밤 우리 셋은 모두 조금씩 들떠 있다. 소풍 가기 전날인 것처럼 잠자리에 쉽사리 눕지 못한다. 은재는 씻고 싶다며 나를 욕실로 이끈다. 머리를 감는 도중에도 두 눈을 꼭 감은 채 콧노래를 부른다. 두애는 내게 슬쩍 다가와 귓속말을 한다.
    올해까지는 데리고 있어야 할 것 같아.
    올해가 끝나려면 얼마나 남았지?
    두 달?
    내 생각에 네 언니는 겨울이 끝날 때까지 저 애를 데리러 오지 않아.
    나도 알아. 별수 없지, 언니의 사정이 있는 거겠지.
    네 사정은 없고?
    별수 없다는 거지. 그치?
    응.
    꿈속에서 나는 두애의 언니를 본다. 그녀는 두애와 닮았지만 이목구비가 조금 더 짙고 화사하게 웃고 자기 인생을 즐기며 여행한다. 클럽의 리듬과 박자를 즐기는 두애의 언니, 알프스 산 정상에 올라간 두애의 언니, 대왕 돈까스 삼십 분 안에 먹기에 성공한 두애의 언니. 그녀가 호탕하게 웃는다. 희고 빛나는 치아가 빼곡하다.

    우리는 마트까지 버스를 탈지 걸어갈지 고민한다. 은재는 레이스가 여러 층으로 겹쳐진 긴 치마를 입고 제자리에서 뱅글뱅글 돈다. 햇빛도 좋고 바람도 좋고 이런 날에는 조금 걸어도 좋을 것 같아. 두애와 나는 눈으로 대화를 나눈 후 시내 쪽으로 걷는다.
    바람이 차.
    더 따뜻하게 입지.
    그러게. 너는 오늘 주부 같네.
    두애는 자신의 옷차림을 의식하며 푸른 치마와 회색 레깅스를 손으로 당겨 본다.
    주부 같은 게 뭐야?
    그냥 그런 느낌. 너한테 부여된 그런 분위기.
    요즘 나한테 독설을 많이 하네.
    나는 어깨를 으쓱해 보인다.
    솔직히 네 스타일은 아니잖아?
    풀어헤친 머리카락이 흔들린다. 은재는 우리의 느린 걸음을 보채지 않고 혼자서 앞으로 달려갔다 돌아온다. 깔깔거리며 뛰어올 때는 특이한 모양으로 찌그러진 나뭇잎이나 벽돌 조각 같은 게 손바닥에 놓여 있다. 자신이 주운 것들을 내 앞에 들이민다.
    멋지다 어디서 이런 걸 가져왔어? 대단한데?
    은재는 내 과장된 반응에 만족한다. 그리고 두애와 나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손을 잡는다. 우리는 좁은 도로를 셋이 나란히 걷는다. 두애는 은재의 신발 끈을 고쳐 묶어 주거나 얼굴에 달라붙은 잔머리를 귀 뒤로 넘겨주기도 한다. 나는 속으로 오 이건 진짜 엄마 비슷한 느낌이네, 생각한다. 욕실 제품이나 가구 광고에 나오는 일반적인 모녀의 모습 같은 거. 환한 운동장을 다 같이 달리는 기분이 든다. 해가 구름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지 햇빛이 우리의 얼굴에 드리웠다가 빠르게 사라진다. 그늘은 춥고 햇볕을 그대로 쐬면 뜨겁다. 셋 다 말없이 서로의 걷는 속도를 맞춘다. 나는 두애의 옆모습을 흘낏거린다. 앞으로 두애와 함께 보내게 될 시간은 이 순간들의 연속일지도 모른다.
    마트 옆 문화센터는 평소와 달리 시끌시끌하고 부스와 천막이 설치되어 있다. 그곳을 지날 때 두애의 걸음이 현저하게 느려진다. 일 년에 두어 번 문화센터 건물을 빌려 애니메이션 축제가 열린다. 두애는 작년부터 이 행사에 참여하지 않았다. 나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 먼 곳에서부터 모여든 많은 사람들의 무리를 본다. 행사장 입구의 줄이 길다. 사람들의 손에는 같은 모양의 쇼핑백이 여러 개 들려 있다. 무거운 짐을 들고, 뜨거운 해를 고스란히 맞으며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표정이 밝다. 나는 그들의 힘든 기색 없이 환한 얼굴에서 은재를 맡은 후 보이지 않던 두애의 욕망을 본다. 빛나는 눈은 무언가 원하는 마음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나는 두애의 눈을 보지 않은 채 마음에 없는 말을 한다. 은재랑 장보고 있을 테니까 잠깐 다녀오는 게 어때? 네가 괜찮다면. 잠시 고민하던 두애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은재의 관심을 마트 쪽으로 돌리면서 행사장에 들어서는 두애를 뒤돌아보지 않는다.
    대형마트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놀이공원 같다. 시식을 권하는 직원들이 목소리를 높인다. 나는 카트를 포기하고 산책하듯 마트 구석구석을 걸으면서 날을 잘못 잡았구나 생각한다. 은재는 카트에 타고 있는 아이들을 물끄러미 보다가 자신이 갖고 싶은 것들을 골라와 들고 다닌다. 사도 되냐고 물어보지 않고 손에 쥐고만 있다가 다시 제자리에 두고 온다. 우리는 냉동식품 위주로 시식을 하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위로 위로 올라간다. 5층에는 잡다한 생활용품과 작은 가구들이 진열되어 있다. 가족 단위의 사람들이 카트를 중심으로 옹기종기 몰려다닌다. 부모가 누구인지 모를 아이들은 희고 매끈한 마트 바닥을 뛰어다닌다. 우리는 신발을 신은 채로 전시된 침대에 누워 지나가는 사람들을 본다. 사람들은 대화를 하면서 걷고 그 모습은 너무 즐거워 보여서 그들만의 놀이 같다. 가족이 다 같이 산다는 건 물건들이 산더미처럼 쌓인 카트를 즐겁게 끌고 다니는 일과 어울린다. 시간이 꽤 지나도록 두애에게 연락이 오지 않는다. 나는 침구세트 담당 직원의 눈치를 보고 침대에서 일어선다. 은재는 눈치 보는 것까지 나를 따라한다. 마트는 너무 넓어서 의미 없이 걸어도 끝에 다다르지 않는다. 어딜 가도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유령처럼 따라온다. 은재가 말한다. 반짝이는 이빨을 갖고 싶어. 나는 생각한다. 환한 얼굴을 갖고 싶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욕실용품 코너로 가 치약과 가글을 꼼꼼히 살핀다. 캐릭터 치약을 집어든 은재가 말한다.
    내가 반짝이는 이빨을 가질 수 있을까?
    내 생각에, 지금은 이미 늦었고 유치가 다 빠지면 새로운 이가 나니까 기다려야 하지 않을까 싶어.
    유치가 뭐야?
    어린이 이빨.
    그럼 어른 이빨을 기다려야 한다는 거지?
    응.
    어린이 이빨은 언제 다 빠져?
    어른이 되는 순간마다 하나씩 빠질걸.
    언니도 그랬어?
    기억이 잘 안 나.
    어른 이빨은 언제 나?
    어느 날 눈을 떠보면 다 자란 어른 이빨이 갑작스럽게 혀에 닿게 될 거야.
    언니도 그랬어?
    응 그랬어.
    은재는 어디선가 장바구니를 가져와 제 치약을 담는다. 나는 쇼핑 나온 다른 사람들을 구경하며 두애를 기다린다. 아 칼을 갈아야지. 무뎌진 과도를 떠올리고 칼갈이를 찾아 생활용품 코너를 돌아다니는 동안 은재는 커다란 장바구니를 잠시 내려놓고 립스틱을 꺼내 바른다. 나는 칼만을 생각한다. 사과 껍질이 단 한 번도 끊어지지 않게 깎으려면 부드럽고 날카로운 칼날이 필요하다. 핑크색 파랑색 핑크색 파랑색 단란하게 걸려 있는 파자마세트, 어린이용 카시트, 온도계와 조명이 갖추어진 어항들. 마트는 사람이 많고 물건도 많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그것들은 나와 전혀 무관해 보인다. 은재는 사람들에 휩쓸리면서도 너무 많은 것들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나는 열대어에 집중해 있는 은재를 두고 마트를 빠져나온다.
    마트 구석 벤치에 앉아 있는 동안 몇 번의 전화가 오지만 받지 않는다. 은재가 제 엄마에게 돌아가면 두애는 옷 가게 직원이 될지도 모른다. 나는 다시 학원에 나가서 잊어버린 것들을 복습하게 될 것이다. 손에 쥔 치약의 몸통을 찌그러트리다가 바닥에 떨어져 있는 담배꽁초 가운데 가장 긴 것을 줍다가 버리기를 반복한다. 주머니에는 손을 넣지 않는다. 조약돌을 생각하지 않는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을 때 두 사람이 손을 잡고 마트 정문에서 내가 있는 쪽으로 걸어온다. 두애는 예전에 내가 알던 두애가 되어 있다. 색색의 매듭이 머리카락과 함께 땋여 있고 눈 밑에 반짝이는 큐빅 세 개가 나란히 붙어 있다. 화려한 메이크업으로 펄이 가득한 두애의 얼굴이 기묘하게 일그러져 있다. 나는 주먹을 한 번 꽉 쥔다. 두애는 나에게 괜찮은지 묻는다. 어깨를 흔들면서 어쨌든 은재를 찾았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한다. 어찌 된 일인지 묻지는 않는다. 은재는 핫바를 먹는 데 정신이 팔려 있고 눈물 자국이 볼과 턱에 선명하다. 우리는 찬바람을 쐬며 집으로 간다. 동네 마트에 들러 우유와 솜사탕을 산다. 돌아가는 길은 올 때보다 더 길게 느껴진다. 나는 짙은 화장이 어울리는 두애의 얼굴을 몰래 훔쳐본다. 본 적 없는 귀걸이가 찰랑거린다. 은색의 별과 달이 부딪힌다. 나와 전혀 다른 부류의 사람 같다.

    푹 자고 싶지만 나는 이미 아까부터 깨어 있다. 몸이 기억하는 것이다. 두애와 나는 남들이 자는 시간에 잠들어 본 적이 거의 없다. 눈을 감고 있어도 뜨고 있어도 어둠은 금방 익숙해진다. 두애는 가끔 나 몰래 컴퓨터를 한다. 나는 그때마다 깨어 있을 때가 많다. 열린 문틈으로 눈을 가늘게 뜨면 두애의 작은 등 너머 컴퓨터 창이 일부분 보인다. 두애는 탈퇴했던 인터넷 카페를 본다. 카페는 애니메이션 캐릭터의 의상 사진으로 가득하다. 색깔이 선명하고 화려해서 멀리서 봐도 알 수밖에 없다. 나는 언젠가 두애가 한 말을 기억한다.
    그런데도 나는 아직 코스프레를 하고 싶고 모나코가 되고 싶고 완전히 같아지고 싶은 마음도 있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모나코이고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은 모나코가 되는 거니까. 나는 모나코를 미워할 수는 없겠지만, 코스프레를 하는 나를 미워할 수는 있어. 그러니까 이제 나는 모순적인 사람이 되어 가는 기분이 든다. 이미 댓글로 많은 사람들이 말해 주었어. 사실 그건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다. 말해 주지 않아도 나는 정말 잘 알고 있어. 알고 있다고 말하니까 진짜 모순의 끝판왕이 된 것 같네.
    나는 그때 뭐라고 했지. 같잖은 위로를 하거나 사실은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해결방법을 권유했을 것이다. 어차피 살고 싶은 대로 살면 되지, 평소와 같이 장난 식으로 퉁치고 무마했을 수도 있다. 두애는 지금 코스프레를 구경하는 게 맞는 걸까. 보라보라 섬이나 일자리 같은 걸 찾고 있을 수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딘가 여행을 다녀오면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을 거라 믿으니까. 두애의 언니도 그런 마음으로 여행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새로운 시작을 잠시 재워 두고 여행에서 여행으로, 계속 여행으로. 검색창이 빠르게 바뀐다. 두애의 손가락은 바쁘다. 나는 눈을 감는다.

    두애는 오늘 방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나는 얼른 저녁이 되기를 기다린다. 사과 서너 개가 담긴 쟁반을 더러운 거실 가운데 놓고 앉아 껍질을 벗긴다. 결국 칼갈이를 사지 못했다. 무딘 칼은 날카로운 칼날보다도 위험하다. 칼을 쓸 때는 그 대상만을 생각해야 하는데, 무딘 날에 익숙해지면 머릿속에서 사과를 쉽게 놓치기 때문이다. 은재는 유튜브를 보면서 우유와 부드러운 식빵을 먹고 있다. 충치가 더 악화된 것 같다. 주로 눅눅해진 시리얼을 먹거나 식빵을 우유에 적셔 먹는다. 그 모습은 팥죽을 오랜 시간 식혀 먹는 노인처럼 보인다. 두애가 방 안에 들어가 나오지 않는 숱한 날 중에 오늘만큼은 은재가 있고 그래서 유난한 날로 느껴지지 않는다. 어린아이 체취와 우유 냄새, 항상 틀어져 있는 텔레비전 소리, 바닥에 흩어져 있는 시리얼 조각들, 햇빛, 베개 두 개, 머리카락. 평소와 다름없는 낮잠의 분위기. 지금 여기 이 안에서라면, 나는 사과를 깎으며 애쓰지 않아도 닫혀 있는 방문과 두애가 의식되지 않는다. 오히려 사과를 깎는 일에 몰입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평소에는 있는 둥 마는 둥 느껴졌던 은재가 무방비한 나의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관찰하려 하지 않아도 모든 감각이 슬그머니 그쪽으로 향한다. 나는 사과의 푸른 향을 맡으면서 껍질이 아닌 속살에 칼날을 밀어 넣어 버린다. 혼자만 아는 실수가 몇 번 일어난다. 반복되는 실수의 이유는 두애가 없는 탓이다. 두애가 없으니까 보호자 딱지가 저절로 내게 붙어버렸기 때문이다.
    매트한 립스틱을 바르기 전에 립밤을 먼저 바르면 속은 촉촉하고 겉은 세련되게 가을 여자의 입술을 연출할 수 있답니다.
    너 연출하는 게 뭘 하는 건지는 아니?
    은재는 나의 말을 무시하고 유튜브 영상과 거울을 번갈아 보며 화장을 고친다. 유튜버는 유행하는 걸그룹의 콘셉트 메이크업에 맞춰 새로운 화장품을 추천한다. 은재는 메이크업보다 표정과 말투를 더 잘 따라한다. 마치 자기가 방송을 하듯 대사를 읊고 화장품을 소개한다. 집중하는 눈과 화장을 덧댄 얼굴이 웃긴다. 내가 보든 말든 의식하지 않고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있다. 장면이 전환되는 사이 새까만 텔레비전 화면으로 은재와 나의 눈이 마주친다. 자기 엄마가 어디 갔는지도 모르면서 조그만 이를 보이며 웃는다. 은재는 버르장머리가 없고 애 같지 않은 말을 하고 그래서 더 애 같기도 하고. 그리고 또 평범한 또래 아이 같을 때는 너무 순수해서 징그럽다. 우리 안에서 자신의 몸을 만지며 관람객을 쳐다보는 오랑우탄 같은 거. 사람들이 오랑우탄을 구경하는지 그 오랑우탄이 사람들을 구경하는지 모를 이상한 광경이 떠오른다. 사람들과 오랑우탄을 감싸고 있던 무료함 같은 게. 나는 깎다 만 사과를 든 채로 은재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혼자서도 잘 놀고. 오늘 귀엽네. 함부로 생각할수록 나는 어떤 기억 속으로 미끄러진다. 축축한 사과를 은재에게 건네지 못하고 손바닥에 올린 채로.
    며칠 내내 멈추지 않고 비가 내릴 때가 있었다. 홍수로 피해 입은 사람들이 중학교 강당에 모여 피신하고 있다고 했다. 고요했던 하천이 뒤집어지고 반지하 창문에서 흙탕물이 쏟아져 나왔다. 며칠 동안 하늘이 컴컴하니까 담배가 간절했다. 나는 부침개를 부쳐 먹고 밖으로 나갔다. 우산이 금세 뒤집어졌고 라이터가 잘 켜지지 않았다. 후드를 쓰고 조금 걸었다. 빵집도 전자담배 매장도 닫혀 있었다. 다리 위에서 하천을 내려다보며 담배의 불씨가 꺼질 때마다 계속해서 불을 붙였다. 하천의 물살을 따라 저 멀리서 인간의 상체 같은 것이 떠내려오고 있는 게 보였다. 그 물체는 아주 빠르게 내가 서 있는 다리 쪽으로 다가오면서 점점 형상이 구체화되었다. 붉은 대야에 들어 있는 작은 개 한 마리. 홀딱 젖은 개가 안절부절 중심을 잡으면서 내려야 할 타이밍을 잡지 못했다. 다리 아래로 고무대야가 지나가기 직전에 나는 그 개와 눈이 마주쳤다. 눈이 정말 맑고 새까맣고 예쁘다. 검은 눈동자가 너무 예뻐서 나는 머릿속으로 예쁘다, 예쁘다 생각했다. 저 눈은 간절한 느낌이다. 뭐든지 간절할수록 예쁘지. 개는 내가 자기를 구해 줄 유일한 동아줄인 것처럼 나를 뚫어져라 응시했다. 물살에 휘말려 멀리 멀리 떠내려가는 내내. 담배를 하천에 버리고 돌아오는 길에 주머니에 손을 넣었을 때, 꺼내어 보진 않았지만 표면이 부드럽고 단단한 조약돌이 만져졌다.
    나 그거 먹어도 돼?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은재는 사과 한 조각을 고심해서 고른다. 하지만 자신 있게 입에 넣어 씹지 못하고 앞니로 살살 긁어먹는다.
    그렇게 아파?
    가만히 있어도 조금 아파.
    은재는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입을 벌린다. 입안에는 작게 바스러진 사과 조각이 돌아다닌다. 조그맣고 네모난 이들이 제멋대로 자라고 있다. 뿌리까지 썩었는지 앞니 하나가 어둡다.
    병원 가야 돼?
    그래야 할 것 같은데.
    치과 가면 주사 맞아?
    글쎄 주사보다 더 아픈 거 맞을걸.
    그래도 아프니까 병원 갈래. 병원 가면 비타민도 주니까.
    오늘 나랑 빨리 갔다 올까?
    두애 언니랑.
    왜 나랑 둘이서는 안 가냐는 질문에 은재는 대답하지 않는다. 고개를 양옆으로 흔들면서 두애의 방문 손잡이를 잡는다. 그러나 문은 열리지 않는다. 내가 다가가자 은재는 문 앞에 주저앉는다. 나는 은재가 겁먹는 모습을 처음 마주하고 마치 이제 막 사건을 저지르려는 범죄자가 된 기분이 든다. 은재가 내 눈치를 잔뜩 보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한다.
    너는 나를 일부러 놓칠 거잖아.
    아 알고 있었네. 그 일에 대해 묻거나 탓하지 않아서, 아무것도 내게 말하지 않아서 나는 모르는 줄 알았지. 그런 줄 알았지. 속으로 생각하는 동안 목 안쪽으로 익숙한 느낌이 차오른다. 언젠가 조심스럽게 삼킨 조약돌이 몸 안에서 자라나 뱉어낼 수도 없이 커다래진 것만 같다. 은재는 두애의 방문 앞에 앉아 나를 쳐다보고 있다. 원망하고 있을까. 나는 은재가 저 까만 눈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전혀 추측하지 못한다. 두애는 언제 나올까. 무언가에 빠진다는 건 핀 조명과 비슷하다. 그것에 집중하고 그것만 생각할 수 있는 거. 그러니까 나는 두애가 필요해. 나를 위해서 두애가 필요하다. 내가 핀 조명 아래 무언가를 놓아두는 동안 꺼진 조명 속에서 너무 많은 것들이 자라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두애의 방문이 잠기고 그런 날들이 문득 찾아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주저앉은 은재를 본다. 은재의 몸과 바윗돌의 형상이 겹친다. 두애가 혼자 무언가를 견디는 날 방문 앞에는 바윗돌이 있다. 나는 오래 전부터 그것을 보아 왔다. 바윗돌은 환한 눈밭을 구르다 온 것처럼 매끈하고 빛나고 둥그렇고 너무 무거워 보인다. 손님이 다녀간 그날 이후, 우리는 인터넷을 뒤져 코스프레한 두애의 사진을 지우기 시작했다. 연락해야 할 곳이 많았다. 그건 그러니까 눈으로 잔뜩 덮인 곳을 걷는 것과 비슷했다. 두애는 없는 길을 걷고 다른 길을 찾고 방향을 틀었다가 이 길이 맞는 건지 틀린 건지도 모른 채 다시 되돌아가는 걸 반복한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면 그사이 쌓인 눈 때문에 발자취를 찾을 수 없다. 나는 사진 지우는 걸 도왔으나 사실 많은 곳에 연락하지는 않았다. 내가 하지 않은 일과 할 수 없는 일은 두애 혼자 하거나 누구도 하지 않거나. 시간이 해결해 주거나 해결해 주지 않을 것이다. 지금 방 안에서 두애는 여전히 눈밭을 걷고 있을 것이다. 걷고 걷다가 완전히 진이 빠졌을 때 나에게 와서 쉬게 될 것이다. 나는 바윗돌을 치우고 두애의 방문을 열지 못한다. 어쩔 수 없는 것들은 조용히 견디는 것이 심신에 이롭다. 안정적인 일상, 목표를 세우지 않아도 괜찮은 삶, 변함없음의 안심. 누구도 나의 소망을 비난하지 못한다. 그동안 바윗돌이 커지고 단단해져 가는 건 어쩔 수 없는 것의 일종일 뿐이다. 두애가 견뎌야 하는 것과 내가 견뎌야 하는 것들이 다를 뿐이다. 그리고 은재는, 은재는 나를 빤히 쳐다본다. 식빵에 낀 곰팡이를 긁으면서. 나는 은재를 설득하지 않는다. 은재는 눈으로만 나를 따라온다. 내가 집을 나와 현관문을 닫는 순간에도.

    그 후에도 은재와 나는 한 달에 한 번쯤 둘만 남겨진다. 우리는 그때마다 조금 어색해진다. 나는 은재가 오기 전에 그랬던 것처럼 사과를 깎고 청소를 한다. 하지만 그 어떤 것에도 몰두하지 못한다. 은재는 치과에서 충치 치료를 받는다. 앞니 한 개는 안쪽부터 너무 썩어버려 일반적인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판정을 받는다. 두애와 내가 심각한 표정을 짓자 은재는 일부러 우리 앞에서 가글을 하고 삼킨다. 그건 일종의 퍼포먼스이고 두애와 나는 착한 관객이 되어 웃는다. 우리는 집 밖으로 잘 나오지 않고 계절이 바뀌는 것을 체감하지 못한다. 두애는 새로운 취미로 집을 꾸민다. 잎이 넓은 인조 식물을 사들이고 나무로 된 드림캐처와 풍경을 창문마다 달아 놓는다. 두애의 방은 온갖 조잡스러운 것들이 모여 점점 정체 모를 섬이 되어 간다. 플라스틱 식물과 각종 쓰레기들 사이에 잘 차려입은 두애와 은재가 앉아 있다. 그 모습은 이상하다. 나는 이상한 기분을 익숙하게 접하지만, 왜 그런 기분이 드는지 알지 못한다. 그냥 이상한 채로 두 사람 곁에 앉아 함께 텔레비전을 본다. 화면에 비친 우리는 표정이 없고 가족사진을 찍기 위해 잔뜩 멋 부린 얼치기 가족처럼 보인다. 따분하다 따분해. 어디서 들었는지 은재는 요즘 따분하다는 단어를 자주 쓴다. 너무 많이 쓰니까 지금은 거슬리지만, 나는 은재가 따분하다고 말하는 것이 점차 들리지 않게 될 것이고 은재는 은재의 따분함에 곧 익숙해질 것이다.
    예상치 못한 밤에 갑자기 초인종이 울린다. 두애는 눈을 굴리며 어찌할 줄 모르고 내 눈치를 본다. 나는 두통이 인다. 갑작스레 누군가 찾아오는 것, 두애가 자기 집 현관문을 열지 못하는 것, 내 눈치를 보는 것. 우리는 이따금 발생하는 상황에서 견딜 수 없는 긴장감을 느낀다. 아마도 두애는 사는 내내 그 긴장감을 되새길 것이다. 나는 걸쇠를 걸고 조심스럽게 누구냐고 묻는다. 낯선 여자의 목소리가 두애를 찾는다. 처음 보는 두애의 언니는 내 생각보다 나이가 훨씬 적어 보인다. 그녀는 조용히 들어와 신발장 옆에 작은 트렁크를 세운다. 나는 은재의 짐을 챙기기 위해 가져온 것인가 옷이나 용품을 더 전해 주기 위해 가져온 것인가 트렁크의 용도를 가늠한다. 그녀는 나에게 인사를 건네지 않는다. 가만히 의자에 앉아 숨을 고를 뿐이다. 여행을 다녔다기에 그녀는 너무나 지쳐 보인다. 중학생만큼이나 덩치가 작고 얼굴이 수척하다. 내 상상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나는 당황스럽고, 그녀에 대해 쌓아 왔던 이질감이나 분노 같은 것이 다른 알 수 없는 감정으로 변하는 것을 느낀다. 그녀는 아주 느리게 팔을 들어올린다. 머리에 꽂혀 있던 작고 흰 리본을 뽑아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다. 두애는 찬물을 한 잔 떠다가 테이블 위에 놓는다. 아무도 손대지 않는 유리잔 위로 먼지가 떨어진다. 방문 너머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난다. 두애의 언니와 두애와 나는 잠자코 기다린다. 칭얼거림. 한번 터지면 멈추지 않는 은재의 울음이 시작되려는 전조가 들려온다. 우리 세 사람 가운데 누구 하나 먼저 움직이지 않는다. 나는 은재가 잠들기 직전에 나의 소곤거림에 대답하던 것이 떠오른다.
    왜 점점 아기가 되어 가니.
    아기 맞아. 나는 어린이야. 너는 어른이고.
    두애의 언니는 마른세수를 한다. 나는 방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추측한다. 은재는 작은 손으로 옆자리를 더듬고 아무도 없는 침대에서 일어나 눈을 비빈다. 그리고 어둠이 만든 무한한 침실을 둘러본다. 은재는 거기서 뭘 볼까. 본격적으로 우는 소리가 들린다. 은재는 잠에서 깰 때마다 엄마를 찾는다. 몇 번이고 찾는다. 나는 어른이 되어서도 엄마를 부르며 깨어나는 은재를 잠시 상상한다. 문고리가 들썩거리며 열린다. 은재는 부신 눈을 가늘게 뜨고 우리를 본다. 쉽사리 울음을 그치지 못하고 잠결에 휘청거린다. 그리고 자기 엄마를 바로 앞에 둔 채 두애에게 가서 안긴다. 두애의 언니는 그 모습을 말없이 지켜본다. 두애가 은재를 달래며 몸을 들썩일 때마다 유리잔이 조금씩 자리를 옮긴다. 나는 방 안으로 들어간다. 자연스럽게 그들의 장면에서 사라진다. 불 꺼진 방 안에서 보는 거실은 영화관의 스크린 같다. 은재와 두애와 두애의 언니는 짙은 눈썹과 힘없이 긴 목이 닮았고, 그 세 사람을 동시에 보는 일은 마치 한 사람의 성장 과정을 한눈에 보는 것 같다. 한 사람의 세 가지 모습. 전혀 다른 세 사람. 나는 괜히 이부자리를 정리한다. 조그만 베개에서 아기 냄새가 난다. 그리고 희끄무레한 이. 너무 작은 이. 이를 들여다볼수록 지금까지 내 머릿속에서 돌아다니고, 목까지 차오르고, 종종 주머니 속에서 만져졌지만 모른 척 무시해 왔던 조약돌의 실물을 보는 기분이 들어. 밤은 언제나 낮보다 길다. 오늘 밤은 더욱이 그럴 것이다. 나는 은재의 이를 쥐고 그들의 장면 속으로 들어간다.

말을 타고 달리는 어떤 이의 사진을 보며 부러워하던 나를

작가소개 / 최미래

1994년 출생. 2018년 웹진 《비유》 14호 단편소설 발표. 2019년 《실천문학》 가을호를 통해 단편소설 발표.

   《문장웹진 2020년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