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존재한다면 왜 우리들만은 사랑해주지 않는것일까

피앙세 3부(1) : 존재의 목적<1>

나레이션 : (라디오 방송) 한밤중에 일어나, 냉장고 소리에 귀 기울여 보겠어요?
               추운 겨울 아침, 밤새 돌았던 보일러를 느껴 보겠어요?
               이들이 눈물겨운 것은 존재의 목적이 있기 때문...
영 군 : (중얼거리며) 냉장고....귀....겨울....아침....보일러....존재....목적....
나레이션 : 다음 시간에 계속...
영 군 : (라디오를 끄고, 탄식하듯) 나도 존재의 목적 하나만 있었으면....

                                                                                      -영화 ‘사이보그지만 괜챦아’의 시나리오 중에서-

  ‘개미’는 벌목 개미과에 속하는 곤충들을 통털어 일컫는 말입니다. 이 친구들은 약 1억년 전 지구상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고 그 이후로 급속 확산되어 현재 만 여 종에 이르는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여 생존하고 있습니다. 개미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가 바로 ‘개체성이 최대한 억압된 사회성’이며, 벌, 말벌 등과 함께 대표적인 고등한 사회성 곤충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런 사회성 곤충들이 자연 속에서 보여주는 기이한 행태는 생물학의 역사적인 수수께끼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수컷이 사냥하고 암컷이 양육하는 정도의 분업은 다른 동물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개미는 여왕개미, 일개미, 수개미의 역할이 개체 단위를 뛰어 넘어 산업사회의 분업화된 공장 노동자들처럼 확연히 구분됩니다. 일개미는 주로 애벌레를 키우면서 여왕개미가 생식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헌신합니다. 어떤 종류의 일개미는 천장에 달라붙어 일생동안 먹이 저장고로만 사용되기도 합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생명체라면 당연히 있어야 할 교미나 생식 과정에 일개미는 전혀 참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일개미의 자기 집단에 대한 충성은 완벽하며 타 집단과의 전쟁이 일어날 경우 목숨에 연연하지 않고 헌신적으로 싸웁니다(E.O. Wilson은 마르크스가 그의 이론의 대상이 되는 생물 종을 잘못 골라잡았다고 꼬집기도 했습니다. 개미 데리고 사회주의했으면 성공했을 것이라는 이야기죠^^). 반대로 여왕개미와 수개미는 다른 일에 관여하지 않고 생식 과정만을 위해 존재합니다.

  개미들은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일종의 종교적 가르침 같은 것을 따르는 것일까요? ‘기사도 정신’이나 ‘사무라이 정신’ 같은 어떤 교육이나 전수를 통한 집단 정신을 따르는 것일까요? 생명체는 모두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며 살아가도록 되어있다는 대전제를 비웃기라도 하는 것처럼 보이는 개미의 타 개체를 향한 희생적 삶의 원동력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요?

  개미에게도 영혼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들의 개체 희생과 이타성, 집단에 대한 충성심이 고귀한 영혼의 활동이라고 생각한다면 앞으로 할 이야기는 큰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우리와 똑같이 생식세포의 분열을 통해 발생 과정을 거친 생명체임에 동의한다면, 고유한 유전 정보에 의해 그들의 형태가 결정되고, 그들의 행동이 결정된다는 사실에 동의한다면 존재의 목적을 찾기 위한 탐구에 이 개미 이야기가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냉장고가 신선한 상태로 음식물을 보관하기 위해 존재하듯이, 보일러가 집 안을 따뜻하게 하기 위해서 존재하듯이, 이 개미에게는 어떠한 존재의 목적 같은 것을 찾아볼 수 있을지...

개미 이야기

개미 집단은 대부분 1마리의 여왕개미로부터 출발합니다. 수백의 처녀공주 개미 중 1마리 정도만이 여왕이 될 행운을 얻게됩니다.

여왕개미는 혼인비행에서 수개미로부터 정자를 전달받아 저장낭에 듬뿍 저장해놓고 일생 알을 낳게 됩니다. 알이 수정되는 방법에 따라 일개미와 수개미로 나뉘어지게 되는데 저장낭이 열려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정이 되면 암컷 일개미가 되고 정자없이 미수정 상태로 난자 혼자 발생하면 수개미가 됩니다. 태어난 일개미들은 여왕의 생존과 생식 활동이 원활히 일어날 수 있도록 돕고 새로 태어난 애벌레(일개미 입장에서는 자매가 됩니다)를 키우는 일에 헌신하게 됩니다. 수개미는 짧게 생존하며 대개는 일을 하지않고 일개미들에게 의존하며 빈둥빈둥 놀다가 혼인비행 후 수시간에서 수일 지나면 사망하게 됩니다. 그들은 정자 전달에만 삶의 목적을 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여왕개미는 길게는 수십년까지 생존하며 알을 낳고 개미 왕국은 그 규모가 점점 커집니다. 물론 이 과정에는 개체의 행복 추구라는 입장이 아닌 개미 군체의 성공을 위한 철저한 분업 시스템과 조화가 큰 몫을 합니다.

개미 집단 간의 싸움은 인간 전쟁보다 자주 일어난다고 합니다. 일단 전쟁이 일어나면 개미들은 물불 안가리고 전투에 참여합니다. 비행기를 타고 타국으로 내빼지도 않으며 적군에 항복하지도 않습니다. 일개미는 일견 고아들을 위해 자신의 생식 과정을 희생하며 아이들을 돌보는 수녀원의 수녀들과 같고, 신의 영광을 위해서 목숨조차도 초개같이 여기는 순교자나 십자군의 기사들 같습니다. 이것이 어쩌면 그들을 지구상에서 이토록 번성하게 했는지도 모릅니다.


피앙세 3부(1) : 존재의 목적<2>

신이 존재한다면 왜 우리들만은 사랑해주지 않는것일까

앞서 이야기 한 것 처럼 일개미의 생식 불능, 개체 희생, 이타성 등은 자연에서 쉽게 그 예를 찾아볼 수 없는 수수께끼와 같은 일입니다. 다윈도 개미의 이런 행태에 대해 어떻게든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론에 끼워 맞춰보려고 고민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풀리지 않는 한가지 의문, ‘어떻게 생식불능이란 상태가 도태되지 않고 진화하여 널리 퍼질 수 있었는가?’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쯤되면 생명체 자체의 본성에 자기 보존과 번식을 위한 성 본능 외에 어떤 전적인 이타성 같은 것이 내재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윈의 종의 기원이 나온 지 무려 100년 뒤인 1963년 영국의 곤충학자이며 유전학자였던 윌리엄 해밀턴에 의해 완전히 수학적인 방식으로 이들의 이타성에 대한 이해의 결정적인 실마리가 얻어졌습니다. 그 결론은 벌목 곤충(벌, 말벌, 개미)은 성을 유전하는 그들 나름대로의 방식 때문에 이미 유전적으로 그렇게 될 소질을 타고 났다는 것입니다. 개미의 이타성이 ‘생명체는 이기적’이라는 보편성에 위배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적극적이고 원초적인 이기성을 표방하는 것이며 다만, 그 이기성의 주체가 ‘개체’가 아닌 ‘유전자’라는 것을 재확인시켜주는 결과였습니다. 결국 ‘개체 이기성’보다는 그 개체 이기성을 포함하는 상위 개념인 ‘유전자 이기성’이 더욱 주목을 받게 된 것입니다.

  해밀턴은 이 어려운 숙제를 풀기 위해 여왕개미, 일개미, 수개미의 유전적 근연 관계를 따져보았습니다. 근연도란 말 그대로 우리가 누구와 유전적으로 얼마나 가깝느냐를 나타내주는 단위입니다. 일반적으로 형제 자매는 평균 1/2(50%)의 근연 관계(대략 유전자의 1/2을 공유한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어머니와 나 사이는 평균이 아닌 정확한 1/2의 근연관계를 갖습니다. 개미들도 이와 마찬가지일 것 같으나 위에 언급한 것처럼 성을 유전하는 독특한 방식 때문에 이 수치가 달라집니다.

  수개미가 미수정란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염색체 수가 2n이 아닌 n을 가지게 되고(위 그림 참조) 결국 한 수개미에서 나온 정자는 교차와 감수분열 과정을 거치지 않기 때문에 모두 동일합니다. 그러니까 일개미 자매 사이에는 엄마와의 근연도 1/4+아빠와의 근연도 1/2이 되어서 자매와의 근연도가 합이 3/4이 됩니다. 자매가 공유하는 아빠 쪽의 유전정보가 50%가 아니라 100% 동일하기 때문에 나온 결과입니다. 결국 일개미의 입장에서 자기가 자손을 낳아 길렀을 때 그 자손과의 근연도 1/2보다 여왕개미를 도와 알을 낳게 해서 자신의 자매를 길렀을 때 근연도가 3/4으로 더 크기 때문에 자신은 생식을 포기하고 자매의 양육과 그 자매를 낳아주는 여왕개미의 보좌에 전적인 투자를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설명은 몇 가지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고등한 사회성 곤충에 해당되는 것으로 결코 우연에 의한 결과가 아님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타적이었던 것이 아니라 유전적 이득을 얻기 위해 맹렬히 투쟁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개체 수준의 이타성’은 겉보기 효과에 불과한 것이고 ‘유전자 수준의 이기성’이 그 본질인 셈입니다. 결국 반대급부를 기대하지 않는 본능적 관용과 희생같은 진정한 이타주의는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을 가능성이 큰 직계 가족의 구성원 사이에서만 존재할 가능성이 커진 것입니다...


피앙세 3부(1) : 존재의 목적<3>

...진리는 어딘가에 반드시 존재한다. 그리고 우주는 그 진리를 통해 ‘존재의 목적’을 부여받았을 것이다... -찰스 미스너(물리학자)-

  앞 선 두 편의 글에서 개미의 일생을 살펴보았습니다. 이를 통해 그들이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 생각해보았습니다. 지금 피앙세는 존재의 목적에 대해서 다그쳐 묻고 있습니다.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자연에 속한 대상들을 목적론(teleology)적인 관점으로 보는 것이 어떤 문제가 있는지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그 지적에 따르면 ‘목적’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 보다는 ‘지향적’이라는 단어가 오히려 더 적절한 선택이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미 친숙해진 ‘목적’이라는 단어를 ‘지향적’이라는 개념을 내포한 상태로 차용한다면 그것 또한 괜챦습니다.

  이런 개념에 따른다면 냉장고와 보일러는 분명한 ‘존재의 목적’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 냉장고와 보일러는 냉장과 난방이라는 지향점을 향하여 고도로 계획된 존재들입니다. 개미의 삶을 통해서도 ‘존재의 목적’을 찾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본성적으로 생존과 번식이라는 뚜렷한 삶의 방향, 지향점이 있습니다. 이 땅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자기 보존과 복제라는 존재의 목적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보이지 않는 손

  일개미가 자기 희생적으로 여왕개미와 애벌레를 돌보는 힘, 병정개미가 자기 왕국을 위해 죽음을 불사하고 싸울 수 있는 힘, 여왕개미가 알만 낳으며 일생을 보내게 하는 힘, 수개미가 짧은 시간 동안 살다가 교미 후 바로 사망하게 만드는 힘, 누가 이들을 그렇게 하도록 조정하는지 보이지는 않지만, 어떤 방법을 써서 그들을 깃발을 향해 달려가도록 만드는지 불명확하지만, 이 힘들은 모두 보이지 않는 한 손에서 나온 동일한 힘이며, 그 보이지 않는 손의 정체는 지금까지 계속 살펴본 것처럼 ‘유전자’였습니다.

  ‘보이지 않는 손’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그 쪽 업계의 대표 주자로 널리 알려져있는 ‘신 또는 절대자’는 아직까지 우리에게 그 모습을 한번도 드러낸 적이 없는 반면, 또 하나의 ‘보이지 않는 손’은 이제 우리 앞에 최소한 그 실제 존재 여부와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려지게 됨으로써 더 이상 이제는 보이지 않는 손으로 남아 있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손이 존재의 목적을 지정하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이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본능적으로 자신을 보존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며,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번식을 위해 힘씁니다. 어떤 생명체들은 마치 번식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번식’이란 유전자들이 자신의 복제물을 생산하고 퍼뜨리는 과정입니다. 유전자는 능동적으로 자기를 복제하는 복제자로서, 자기보존과 복제에 대해 마치 편집증 비슷한 고도의 집착을 보이며, 개체를 통해 다양한 수단과 방법으로 이 목표를 이뤄내고 있습니다. 개미들에게서 볼 수 있는 삶의 방식도 바로 이런 와중에서 채택된 독특한 삶의 형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유전자는 개체의 특성을 결정짓습니다. 여기서 특성이라 함은 개체의 형태뿐만 아니라 행동 특성까지도 포함됩니다. 생명체들은 이 때문에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에 좀처럼 반항하지 않습니다. 일개미는 일을 하고 여왕개미는 알을 낳습니다. 벌은 꿀을 모으고 거미는 거미줄을 치며 비버는 댐을 만듭니다. 연어는 알을 낳기 위해 강물을 거스르고 철새는 계절에 따라 먼 길을 이동합니다. 그들의 삶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 다름이 없고 수백년 전, 수천년 전이라 하더라도 유전적 변이가 없었다면 삶의 형태는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유전자에 의해 생명체들에게 그러한 본능이 그대로 전해져 내려왔기 때문입니다.

  유전자는 개체의 번식을 통해야만 자신의 복제물들을 퍼뜨릴 수 있습니다. 유전자들의 운명은 그가 몸담고 있는 개체에게 달려있기 때문에 그들은 정확히 개체를 조종해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개체는 개체 자체가 목적 또는 지향점이 아니며 유전자의 목적 또는 지향점에 종속됩니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은 어떨까요


피앙세 3부(1) : 존재의 목적<4>

...‘인간 본성’이라는 용어는 많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용어이다... -로저 트리그-

...인간의 모든 행동 특성은 유전적이다... -에릭 투르크하이머-

  '본능'이라는 단어는 왠지 인간보다는 인간 이외의 생명체들에게 잘 어울리는 단어입니다. 앞서 보았던 개미 같은 곤충들이나 여타 동물들의 삶을 관찰해보면 그들이 얼마나 본능에 충실한 삶을 살고 있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인간은 이전부터 본능에 따르지 않는 존재로 여겨져 왔습니다. 즉, 욕구에 저항하며 정해진 길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다른 동물들과는 다른 존재라는 것입니다. 아무데서나 성행위를 하는 동물들에 빗대어 ‘개 같다’고 표현하거나, ‘짐승만도 못한 놈’이라는 표현은 우리 사회에서는 매우 큰 욕(잘못하면 칼부림을 불러 올 수도 있는)에 해당됩니다.

  인간들이 행하는 복잡하고 다양하며 이성적이고 윤리적인 행위들은 언뜻 동물들의 본능에 따른 행동과는 거리가 멀어보였습니다. 하지만 다양한 생명들에 대한 인간의 인지 범위가 확대되면서 이러한 사실에 점차 의문을 갖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많은 생물학자들은 곤충이나 어류, 조류, 양서류, 파충류, 다른 포유류의 삶 속에서 인간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행하는 짝짓기 행동, 서열 정하기 행동, 양육 행동, 사냥 행동들이 변형된 형태로 인간의 행동들과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남녀 간의 열정적인 사랑은 동물들에게서 광범위하게 나타나는 짝짓기 행동과 유사했으며, 부성-모성 간의 협조와 갈등은 새ㄲ l 양육 문제와 유사하였으며, 경제 활동은 사냥 행동과, 인간 세계의 권위 문제는 한 집단 내 동물들 사이에 벌어지는 서열 정하기 행동과 비슷한 맥락에 놓여있었습니다.

  다른 생물들과 인간이 그렇게 다른지 점점 의문을 갖게 되던 시점에 결정타를 날린 것은 챨스 다윈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역시 진화론을 완성해 놓고도 발표를 못하고 주저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인간이 단순한 하등 생물들로부터 진화되어 왔으며, 그 때문에 동일한 속성을 공유하고 있고, 써커스단의 구경거리에 불과하던 원숭이가 인류와 조상을 공유할 수도 있다는 그 당시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불쾌하기 짝이 없는 주장이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인간으로부터, 신의 자녀로서 존재해야만 했었기 때문입니다.

  다윈이 진화론을 주창할 당시는 ‘유전자’의 존재가 베일에 가려져 있을 때였습니다. 만약 그 당시 유전자의 존재가 알려져 있었다면 다윈은 이런 가설을 제시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만약 진화론이 맞다면, 향후 유전자 정보에 대해 구체적인 분석을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모든 생명체들은 유전 정보 간에 연관성을 보일 것이다. 그리고, 원숭이와 같은 영장류들은 인간과 상당히 유사한 유전 정보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현재 인간 게놈 전체의 염기 서열 정보를 손에 쥐고 있습니다. 이 가설을 검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결과는 오히려 차고 넘쳤습니다. 침팬지와의 비교에서 최고 98.77%까지 유전 정보가 유사하게 나왔으며 현미경으로만 보이는 미생물까지도 우리와 유전 정보를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유사하다면 본능적인 삶을 사는 동물들의 존재의 목적이나 그렇지 않다는 인간의 존재의 목적이나 그리 큰 차이점이 없는 것은 아닐까요?

존재의 목적은 어디에...

  인간이 다른 생명체들과 다른 물적 토대를 갖춤으로써 특별한 존재가 되고 전혀 다른 존재의 목적을 가지려했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우리는 일단 코페르니쿠스와 허블에 의해 우주의 중심에서 변방으로 밀려났으며, 다윈에 의해 생명 계보의 끝자락으로 밀려났습니다. 현대 분자생물학과 신경과학은 인간의 의식마저도 그 고유성을 넘겨줄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게임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행성들이 갖지 못한, 다른 생명체들이 갖지 못한 무형의 토대, 즉 사회, 종교, 문화, 교육, 윤리, 이데올로기, 종교와 같은 것들을 인간만이 갖게 만드는 원동력에 대해서 아직 살펴 볼 여지가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자신의 존재의 목적을 물어볼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우리 밖에 없습니다. 되묻지 않는 그들이 오히려 행복할 수 있겠습니다만...

처음 글에 인용했던 시나리오 일부를 다시 인용해봅니다.

나레이션 : (라디오 방송) 한밤중에 일어나, 냉장고 소리에 귀 기울여 보겠어요?
               추운 겨울 아침, 밤새 돌았던 보일러를 느껴 보겠어요?
               이들이 눈물겨운 것은 존재의 목적이 있기 때문...
영 군 : (중얼거리며) 냉장고....귀....겨울....아침....보일러....존재....목적....
나레이션 : 다음 시간에 계속...
영 군 : (라디오를 끄고, 탄식하듯) 나도 존재의 목적 하나만 있었으면....

  영군이라는 여주인공이 냉장고나 보일러를 부러워할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들을 보면서 눈물겨워할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갖고 있는 확고한 존재의 목적 때문이었습니다. 혹시 존재의 목적을 알 수 없더라도 사용설명서를 보면 어떤 목적으로 이 기계가 만들어졌으며 어떻게 사용해야 할 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너는 이렇게 사용해야 된다는, 너는 이런 목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용설명서 같은 것이 없습니다.

  ‘나도 존재의 목적 하나만 있었으면...’ 정말 묻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존재의 목적은 존재의 목적을 묻는 이에게만 어렵고 힘든 일입니다. 정말 우리에겐 존재의 목적같은 것이 한 개라도 있는 것일까요?...


피앙세 3부(2) : ‘이타주의’를 수사해 주세요!

-어느 더운 여름날, 에어콘도 없는 피앙세 탐정 사무소-

  피앙세는 이제 좀 한숨을 돌리고 있었다. 지난 주 까지 잃어버린 존재의 목적을 찾아달라는 의뢰인 때문에 심신이 많이 지쳐있는 상태였다. 그러기에 뭐든지 잃어버리기 전에 간수를 잘 해야 된다. 한 번 잃어버리면 찾기가 쉽지 않다.

언제나 그렇듯이 여비서가 서류 한 뭉치를 챙겨 들고 들어왔다. 항상 먼저 눈이 가는 것은 의뢰인의 인적사항이다.
‘들어오시라고 하지.’
많은 사건을 다루다보니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만 들어도 대충 그 사람의 성향을 파악할 수 있다. 뭔가 비밀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피앙세의 직감이었다. 서류에서 눈을 떼고 고개를 들어보니 문 앞에 서 있는 의뢰인은 독특한 모양의 이중 나시를 입은 젊은 여인이었다. 하지만 서류 상에 기입된 그녀의 나이와는 무척 많은 차이가 있어 보인다. 왜 이렇게 젊게 보이는 것일까? 피앙세는 전에도 다른 사건과 연루되어 이 여인의 이름를 들어 본 적이 있다. 하지만 막상 이렇게 대면하기는 처음이다.
‘앉아도 되나요?’
피앙세는 당황해서 앉으라는 이야기도 못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다. 이미 그녀는 내 앞에 앉아 있다. 다시 한 번 그녀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본인 맞냐고 물어보려고 그러는 건가요? ‘renewal’이라고 들어봤는지 모르겠네요. 프훗’
‘renewal이라... 그래서 늙을 수 없다 이 말이죠. 불멸의 여인이라...’
그녀의 화려한 외양과는 대조적으로 이름은 구식이었다. 하긴 옛날엔 의례히 여인들 이름 끝에 자(子)자를 붙이곤 했다. 피앙세의 어머니 역시 자(子)로 끝나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무슨 일로 저희 사무실을..’
그녀는 피앙세의 말을 바로 끊었다. 피앙세가 무척이나 싫어하는 일 중의 하나였다.
‘이타주의자들의 뒷조사를 부탁드려요. 그들이 내 마음을 굉장히 불편하게 만들고 있어요. 그 자들이 퍼트리고 다니는 말이 사실이라면 내 영업 기반을 위협하는 심각한 범죄행위예요.’
‘흠...그래요... 뭐, 뒷조사야 제가 원래 전문이지만, 특정인이 아닌 어떤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조사해야한다는 게 좀 낯설군요.’
‘착수금은 두둑히 드리죠.’
그녀가 내미는 두툼한 봉투가 피앙세의 맘을 흔들었다.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으로 봐서 아드레날린에 몸이 반응하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그 돈으로 누릴 행복을 생각하며 뇌는 도파민에 흠뻑 적셔진다. 아니다. 이럴수록 침착해라. 의뢰인에게 값싸게 보여서는 안된다. 피앙세는 일부러 봉투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여유있어 보이려는 미소를 지었다. 가볍게 지으려했는데 입꼬리가 계획했던 것보다 좀 더 올라갔다. 제길.
‘일단 방향을 이렇게 한 번 잡아보도록 하죠. 먼저 이타주의자들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감별하는 것이 순서일 것 같군요. 그들은 실제 이기주의자이면서 겉으로만 이타주의를 표방하고 있을 수 있으니까요.’
‘맞아요! 나는 솔직히 이타적이라는 것은 거짓말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들은 너무 지능적이라 증명하기가 쉽지 않아요. 당신을 찾아온 이유도 거기에 있죠.’
‘염려마세요. 돈만 많이 준..’
피앙세는 황급히 입을 닫았다. 우리는 은연 중 자신의 속마음이 입 밖으로 삐져나오는 것을 틀어막아 다시 밀어넣어야 할 때가 있다.
‘아니, 저는 결코 돈 때문에 사건을 맡지 않습니다. 저를 찾아오는 사람들의 골칫거리를 해결해주는 것이 사명이라고 느끼고 있어요. 그리고, 이 사건 자체가 참 흥미롭습니다. 제 명예를 걸고서라도 해결해보도록 하죠.’
‘그렇죠. 지금 당신이 한 것과 같은 그런 거짓말들을 낱낱이 밝혀주세요^^’
이런 상황을 간단히 ‘허걱~’이나 ‘헐~’이라는 감탄사로 표현하는가보다-_-:;
‘이전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이 사건을 맡겨봤지만 도중에 모두들 손을 들고 말았죠. 피앙세 탐정님은 믿어도 되겠죠? 언제쯤 결과를 알 수 있을까요?’
‘글쎄요. 그리 복잡한 일은 아니니 많이 걸릴 것 같지는 않군요. 오늘 오후부터라도 우리 요원들을 풀어 자료를 수집해오라고 할께요. 뭐 존재의 목적을 찾아달라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이것 쯤이야. 하하’
피앙세의 상황모면용 웃음을 뒤로 한 채 그녀는 혼잣소리를 중얼거리며 문을 나서고 있었다.
‘적어도 내 밑에 있는 애들 중에선 칠칠맞게 존재의 목적같은 것을 잃어버리고 다니는 애들은 없었어...’

-다음 날-

  탐정 사무소 안은 여비서의 비명 소리로 진동했다. 피앙세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문을 힘껏 열어제쳤다. 가끔씩 상대방이 사무실을 찾아와 난리를 피는 경우가 있다. 네 이놈들을!
‘아니, 이런... 이게 뭐야...’
그렇다. 이번에는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 사무실에는 이타주의에 대한 자료가 담긴 수많은 우편물과, 요원들이 시시각각 보내오는 팩스 용지로 난리법석이었다. 팩스 전송받는 소리가 끊이질 않고 있었다.
‘이거 보통 일이 아니군. 쩝...’
피앙세는 어느새 이 사건을 맡은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위하여

  이타적 행위란 일반적으로 ‘자기를 희생하여 남을 이롭게 하는 행위’를 일컫는 말이며, 이타주의는 ‘어떤 보상이 주어지냐와 상관없이 다른 사람을 돕고자 하는 동기를 가지고 이뤄지는 지속적인 행동의 내재적 경향’이라고 정의를 해볼 수 있습니다.

  이타주의는 자기 이익을 취해야 할 상황에서 이익을 포기해 다른 사람이 그 이익을 취하게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개체의 생존에 해악을 끼치게 됩니다. 그래서 유전자(遺傳子)에게는 이타주의가 일종의 범죄이며 용납되어서는 안 될 일입니다. 다만 그런 경향이 일시적이며 향후 다른 이득을 취하기 위한 ‘이보전진을 위한 일보후퇴’일 경우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또한 개체에 해악이 되더라도 유전자의 보존 및 복제에 도움이 된다면 그것은 진정한 ‘유전자 이기주의’에 해당됩니다. 반대급부를 기대하지 않는 본능적 관용과 희생 같은 행동이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을 가능성이 큰 직계 가족의 구성원 사이에서 유달리 자주 나타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이처럼 이타주의를 분석하는 일은 관련 요소들이 많기 때문에 매우 복잡하며 이기주의 vs 이타주의의 철학적 논쟁은 끝을 못 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기주의를 조롱이라도 하듯이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위하여’라고 표방하는 행위들은 만연되어 있습니다. 그 중 몇가지 극적인 예들을 살펴보겠습니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옛날, 우리 국가가 사라질 뻔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 내용은 체포 당시 윤봉길 의사 사진의 진위 논란 때문에 한참 언론에 등장했던 내용입니다. 정작 우리가 보고자 하는 것은 윤봉길 의사의 이타주의입니다. 아직 어린 두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와 함께 ‘동포에게’라는 유서의 일부분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고향에 계신 부모 형제 동포여, 더 살고 싶은 것이 인정입니다. 그러나, 죽음을 택해야 할 오직 한 번의 가장 좋은 기회를 포착했습니다. 백 년을 살기보다 조국의 영광을 지키는 이 기회를 택했습니다. 안녕히, 안녕히들 계십시오.’

2005년 11월 지하철 6호선 안암역에서 당시 고등학생 김대현 군이 선로에 떨어진 아이를 구해내는 장면입니다. 김군은 인터뷰에서 그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밝혔습니다.

‘사고 당시 열차가 들어온다는 소리는 들리는데 빨리 구하지 않으면 위험하겠다는 생각뿐이었다’며 ‘그 순간이라면 누구라도 그랬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열차가 곧 도착한다는 표시를 봤지만 ‘내가 위험하겠다’는 생각보다 ‘빨리 아이를 구해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고 말했다.

이런 이타주의도 있습니다.

그는 애절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미쳤었습니다..... 제 앞에는 아무것도 보이는 게 없었습니다. 오직 이 연구를 통하여, 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세계의 중심에 우뚝 설 수 없을까 그것 하나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가정을 포함한... 모든 것에... ’

이런 특이하면서 집단적인 이타주의도 있습니다.

김일성이 사망한 뒤에도 북한의 최대 명절은 여전히 4·15 태양절, 즉 숨진 김일성의 생일날입니다. 김일성의 유해가 안장된 평양 금수산 광장에서 생일을 하루 앞두고 육·해·공 북한군 지도부가 대거 참석해 충성을 맹세했습니다. 조명록 군 총정치국장의 연설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조선인민군 육해공군 장병들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 대원수님께 숭고한 경외와 영원 무궁한 영광을 드립니다!’

외견상 북한 주민들은 김일성-김정일-? 부자에게 대를 이어 숭고한 이타주의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 대상인 수령 역시 인민을 위해 온 몸을 바쳐 희생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이타주의의 모습들이 다양하다면 피앙세 탐정이 난감할만 하겠지요?


피앙세 3부(3) : 추억 속으로...

생각해보니 고등학교 다니던 시절의 일이었군요. 제가 일찍 쾌락주의의 신봉자가 되어 공부는 안하고 한참 뺀돌거리던 때였습니다. 교과서보다는 소설을 즐겨 읽고, 영화 보기를 좋아했으며, 책상에 앉아있는 것보다 기타를 두들기거나, 친구들과 함께 ‘섰다’나 ‘고스톱’같은 잡기를 즐겨하던 시절 말입니다. '인생은 즐기다 가는 거야'라는 생각을 너무 일찍해 나중에 제대로 즐기고 살려면 공부도 열심히 해야 됐거늘 그렇게 의지대로 되지가 않더군요. 그러던 중 어떤 좀 충격적인 계기가 있어 늦게나마 책을 잡게 되었습니다. 늦게 시작한 공부라 정말 4시간 정도만 자고 열심히 하여 우연히 좋은 성적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같은 반에 공부 잘하는 친구가 하나 있었는데 집이 가난했던가 봅니다. 항상 보면 옷이 똑같았습니다. 허름한 점퍼 차림에 닳아있는 운동화, 도시락은 언제나 밥과 김치 뿐이고, 그리고 왠지 표정에서 삶이 좀 고달퍼보이는 그런 친구였습니다. 담임선생님이 제안을 해서 다른 친구들 두세명과 함께 그 친구 가정방문을 가게 되었는데 역시 예상대로였습니다. 집은 단칸방에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고 어머니와 살고 있었는데 어머니는 가게도 아닌 시장 바닥에서 야채를 팔아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래도 아버지, 어머니 계시고 그 당시 그리 어렵지 않은 형편이어서(나중에 기울기는 하였지만) 그 친구를 보며 가슴이 아팠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환경에서도 공부를 상위권에 들 정도로 한다는 게 존경스러워 보였습니다.

  시험 결과가 나오고 종례시간, 담임선생님이 들어오셨습니다. 학교에서는 그 때 담임 선생님 추천으로 한 반에 한 명 씩 장학금을 주었는데 꼭 원칙은 아니지만 의례적으로 성적 우수자에게 돌아갔었습니다. 내심 제가 호명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담임 선생님 입에서는 제 이름이 아닌 얼마 전에 가정 방문을 했던 그 친구의 이름이 흘러나왔습니다. 다른 모든 친구들은 당연하다는 듯 박수를 치고 선생님은 환한 웃음으로 등을 두드려주며 앞으로도 공부 열심히 하라고 격려를 해 주셨습니다. 저 역시 박수를 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웃음이 잘 지어지질 않았습니다. 화가 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창피한 것도 아니고 말로 표현 안 되는 왠지 모를 그런 기분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이 아마도 그 흔해빠진 ‘질투’라는 감정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터벅터벅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스스로에게 다그쳐 물었습니다.

‘너는 왜 그 친구를 진심으로 축하해주지 못하는 거지?’
‘먼저 장학금을 양보할 준비를 하고 있었어야 되는 것 아닌가? 네 마음 씀씀이가 그 정도 넓이밖에 안 됐어? 실망인데...’

  제 이성은 분명히 그 친구가 타는 것이 옳다고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장학금을 받아야 될 정도로 형편이 안 좋은 것도 아니었고, 좋은 성적만으로도 매우 기뻐하실 부모님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친구에게는 아마도 장학금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돈이었을 것입니다. 저는 나름대로 당시만해도 자신을 상당히 관용적이며 사소한 욕심이 없고 천박한 이기주의자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자신도 예상치 못한 반응이 더욱 충격으로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피앙세는 그날 밤, 잠자리에 누워 자신의 뇌에 소속되어 있는 각 연방의 대표자 회의를 소집하였다. 몇몇이 불참한 가운데 피앙세는 도대체 자기에게 일어난 이 알 수 없는 감정이 어디에서 연유한 것인지 분석해보기로 하였다. 변연계와 전전두엽 연방이 안 좋은 output을 내보낸 것 같았다. 특히 분석적인 좌뇌보다 정서적인 우뇌가 이 사건에 관여한 게 틀림없다. 하지만 답답한 것은 우뇌는 말로 표현하는 것에 상당히 서툴러 제대로 따져물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 당시 집에 일본 작가 미우라 아야꼬(三浦綾子)의 전집이 있었습니다. ‘빙점’,‘양치는 언덕’을 비롯한 소설 몇 종류와 수필집들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영화화되고 드라마로도 방영되었던 그녀의 대표적인 소설 ‘빙점(氷點)’은 줄거리가 이렇습니다.

  아내가 다른 남자와 있는 동안 사랑하는 어린 딸이 밖에 나가 있다가 살해를 당합니다. 이 사실에 분노한 남편은 살인자의 딸을 아내 모르게 입양해 키우도록 함으로써 아내에게 복수를 합니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된 아내는 그 딸을 목졸라 죽이고 싶을 정도로 괴로워하게 되다가 그런 고통을 안겨준 남편에게 복수를 다짐하게 됩니다. 그 아이는 자라나 예쁘고 영리한 아가씨로 성장하지만 자신이 입양아이며 실제로는 살인자의 딸이었음을 알고 정체성에 혼란을 겪게 되며 자살을 기도합니다.

  이런 심상치 않은 내용을 담은 이 소설은 곳곳에 인간의 이기성, 자기 중심성, 그리고 궁극적인 원죄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소설과 함께 ‘길은 여기에’, ‘빛이 있는 동안에’라는 수필집이 있었는데 책을 읽고 그녀가 예리하게 지적한 원초적인 인간의 이기성에 대해 한참 여운이 있었던 시점이라 친구와의 장학금 사건이 더욱 가슴깊이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그 이후로 인간의 본성에 담겨있는 이기성 또는 이타성의 배후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비슷한 시기에 시작된 ‘우리에게 자유의지란 실재하는가’라는 질문과 함께 일생의 화두가 된 것 같습니다. 다행히 그 이후로 많은 사람들을 접할 기회가 있었고, 그들의 내면 이야기를 듣고 의견 교환을 할 기회도 있었습니다. 상당히 많은 인원이 참여하는 심리프로그램에도 우연히 참여하게 되어 그들의 원초적인 성적 욕망, 질투, 미움, 분노가 포함된 이기적 욕망 등을 비교적 가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접할 기회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많은 부분은 여전히 미궁 속에 있은 채 작은 사실 하나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인간이 이기적인 존재인지 아니면 이타적인 존재인지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결국 인간이 무엇인가를 이야기하는 것과 동일하다는 것을 말입니다...

...‘자기 하나 쯤은 하고 생각해선 안 된다. 그 하나 쯤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자기에게 여러 사람들이 관련되어 있는 것이다. 어느 한 사람이 함부로 살아가면 그 사람이 일생동안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불쾌해지든가 피해를 입게 되는 거야. 그리고 불행하게도 되는 거지.’ 할아버지는 찬찬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진정한 의미에서 자기 스스로를 소중히 할 수 없는 사람은 다른 사람도 소중히 여길 줄 모른다고도 말씀하셨어요. -소설 ‘빙점’ 중에서-


피앙세 3부(4) : ‘톰 소여’ 이타주의

신이 존재한다면 왜 우리들만은 사랑해주지 않는것일까

일반적으로 현대의 생물학자들은 타자에게 이로운 행위를 하는 동물을 보면 그가 그 타자에 의해서 조종되고 있다고 간주하거나 아니면 그것이 교묘하게 위장된 이기성이라고 간주한다... -조지 윌리엄스-

  피앙세는 벤이라는 소년의 제보를 받고 급히 이동하고 있는 중이었다. 사건을 의뢰 받은 뒤 첫 현장 확인 작업이다. 이타주의자들이 하는 일에 대해 앉아서 백 번 듣느니 한 번 직접 현장을 보는 것이 낫다. 첫 단추를 잘 채워야 하는 법.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가 향하고 있는 곳은 미시시피 강변에 있는 톰 소여(Tom Sawyer)의 집. 톰의 친구인 벤은 톰 소여가 이타주의를 실현하고 있다며 신고해왔다.

  드디어 약속 장소에서 벤을 만났다. 벤이 가리키는 곳에서는 아이들이 뜨거운 햇빛 아래 줄을 서 자기 집도 아닌 톰의 집 울타리에 페인트칠을 하고 있었다. 그 뒤에는 순서를 기다리는 아이들까지 있었다. 반면 톰은 나무 그늘에 누워 아까 벤이 페인트칠을 하도록 허락한 댓가로 받은 사과를 맛있게 먹고 있었다.

‘벤! 이건 뭔가 잘못 된 것 같구나. 이타주의자는 톰이 아니라 너희들인 것 같은데...’
‘아니예요! 울타리 칠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하고 재미있는 일인데요. 톰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꾹 참고 우리를 위해 양보를 했거든요.’

요즘 지겹도록 듣고 있는 말이다. 누구누구를 위해, 위해, 위해... 정말 지겹다.
‘그래? 톰이 너희들을 위해 괴롭지만 손해를 참고 있다는 얘기지? 직접 한 번 이야기해보자꾸나.’

가까이 다가가보니 톰 주위에는 울타리 칠하는 댓가로 피셔에게 받은 연과, 조니 밀러에게 받은 죽은 쥐, 그리고 그 쥐를 묶는 끈 등 귀중한 물건이 많이 있었다. 톰이 다가오고 있는 피앙세를 발견하고 귀챦은 듯 거만한 표정을 지어보인다.
‘아저씨, 아저씨도 페인트칠 해보고 싶어서 그러세요? 하긴 어른들에게도 울타리 칠하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죠. 보통 솜씨 가지고는 되지도 않거든요. 그런데 어떻게 하죠? 순서가 꽤 멀었는데... 가지고 계신 것 중 쓸만한 것 있으면 순서를 좀 바꿔드릴 수도 있지만 말이예요. 험..’

피앙세는 톰이 고단수라는 것을 금방 알아챌 수 있었다. 톰은 남에게 일을 시키려면 그 일을 하는 것이 대단하다고 생각하게 만들면 된다는 위대한 법칙을 발견했던 것이다.
‘톰, 네가 정말 저 아이들을 즐거움을 느끼게 해 주려고 페인트 칠을 시키는 거 맞니?’
톰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럼요. 저는 이런 재미있는 일을 못해서 마음이 아프지만, 친구들을 위해서 희생하고 있는 거예요.’

  피앙세는 더 이상 질문하는 것이 의미가 없음을 알았다. 본인이 그렇다고 하는데 어떻게 하겠는가? 그래서 처음 이런 우스꽝스러운 일이 생기게 된 경위를 조사해보기로 했다. 톰을 키워주고 있는 폴리 이모를 만나면 실마리가 잡힐지 모른다. 폴리 이모 집에서 일하는 흑인 소년 짐을 만나봐도 어떤 단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폴리 이모는 언제나 그렇듯이 집안 일에 여념이 없다. 피앙세는 폴리 이모에게 밖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해 설명을 했다.
‘뭐라구요? 네 이 녀석을!’

  폴리 이모는 당장 빗자루를 들고 밖으로 내달렸다. 자초지종은 이러했다. 전날 톰은 학교에 가질 않고 강가에서 수영을 하며 하루종일 놀았다. 그 사실을 학교 다녀온 것처럼 하려다가 들켜 벌로 울타리에 페인트칠을 하게 된 것이었다. 이 사실은 짐에게서도 확인되었다. 톰이 일하기 싫어 짐에게 자기 발가락에 난 상처를 보여줄테니 페인트 칠을 대신해 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짐은 그 상처를 보고 싶은 호기심에 하마터면 유혹에 넘어갈 뻔 했다고 한다.
‘벤, 안됐구나. 네 눈에는 톰의 행동이 이타적으로 비추어졌는지 몰라도 톰은 사실 이기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었던 거야.’
벤은 풀이 죽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탐정님, 죄송해요. 전 사람들이 겉으로 말하는 것이 진짜 행동의 동기인 줄 알았어요...’

  피앙세는 강물에 비치는 지는 태양의 바랜 적광을 감상하면서 강을 따라 터벅터벅 걷고 있었다. 그렇다. 이제 의뢰받은 사건의 첫 발을 내딘 것이다. 가장 벗기기 쉬운 겉껍질 한 꺼풀을 벗겨냈을 뿐이다. ‘이타성’이라는 과일은 얼마만큼 껍질을 벗겨내야 진짜 알맹이가 나올까? 아니면 혹시 원래 아무 알맹이도 없는, 껍질 밖에 없는, 먹을 수 없는 과일이진 않을까?

내가 손해보는 것처럼, 상대방이 이득을 취하는 것처럼 행동하라

  자연에서 자기 이득을 취하기 위해 상대방을 속이는 일은 매우 흔하게 벌어지는 일입니다. 낚시고기는 머리 위에 움직이는 낚시대 같은 기관을 이용해 작은 물고기로 착각하고 접근하는 다른 물고기들을 사냥합니다. 부전나비 애벌레는 페로몬을 분비해 개미들로 하여금 자신을 개미 애벌레로 생각하게 만들어 부양하게 만듭니다. 많은 곤충들이 ‘의태’라는 과정을 통해 독성을 가진 다른 생물이나 주변 환경을 모사함으로써 생존에 유리함을 얻습니다.

  인간 사회에서는 이러한 일이 매우 복잡한 양상으로 일어납니다. 나에게 손해가 되는 일은 되도록이면 남이 하도록, 나에게 이득이 되는 일은 남이 돕도록 상대방의 생각을 조작하는 고도의 두뇌 게임이 펼쳐집니다.

  ‘밑지고 판다’는 장사꾼의 말을 그냥 흘려듣지 못하며, 앞으로 개발될 땅이라면서 자신이 사면 크게 이득이 될 땅을 굳이 양보하면서 남에게 사도록 하는 희생에 감동하곤 하며, ‘다 너를 위해서 하는 거야’라는 말에 쉽게 남의 일을 떠맡곤 합니다. 이러한 ‘위장 이타주의’ 또는 ‘기만적 이타주의’는 ‘악랄한 사기꾼’에게서만 나타나는 특별한 행태가 아닙니다. 굳이 특정한 상황이 아니더라도 항상 보답을 하되 실제 받은 것보다는 조금씩 덜 갚아줌으로써 이득을 취하는 ‘약삭빠른 사기꾼’이 넘쳐나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주인은 종업원들에게 너무 많은 월급을 주고 있는 자신이 희생자라는 사실을 주지시켜 월급을 깎으려하며, 종업원들은 박봉에도 열심히 일하고 있는 자신들이 희생자라고 불평함으로써 월급을 올리려합니다. 남편은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서 자신이 희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지시켜 대접을 받으려하며, 아내는 남편과 아이들 뒷바라지를 위해서 자신이 희생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여 이득을 얻으려 합니다. 이처럼 ‘내가 손해보는 것처럼, 상대방이 이득을 취하는 것처럼 행동하라’라는 전략을 통해 이득을 얻으려는 행위는 우리 주위에 광범위하게 퍼져있습니다.

첫 껍질 벗겨내기

  속아서 페인트칠에 동원된 아이들도 그 일을 함으로써 일정 시간 동안 재미를 느꼈다면 분명 무엇인가를 얻은 것이므로 어찌보면 성공적으로 거래가 성사된 것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거래가 시작된 근원을 살펴보면 이 아이들은 톰과 똑같이 전에는 울타리에 페인트 칠하는 것을 고통으로 여겼던 아이들입니다. 그 시간에 수영을 하거나 전쟁놀이를 하는 게 훨씬 재미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톰의 의도적이고 교묘한 일종의 해킹같은 것에 의해 타인의 선호도가 자신의 선호도가 있어야 할 생각의 자리를 차지함으로써 혐오하던 행위들을 스스로 하게 되었다면 톰이 훨씬 이득을 본 거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톰 소여 이타주의’를 통해 벗겨낸 첫 이타주의의 껍질은 이렇습니다. 상대방이나, 그 관계를 관찰하고 있는 제3자에게 이타적으로 보이는 행위들은 그 근본 동기나 사건의 근원을 추적하다보면 자신의 이기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된 경우가 무척 많다는 잘 알만한 이야기였습니다. 그래도 ‘톰 소여 이타주의’에서는 상대방이 조금이라도 이득을 얻어가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히 기만당하는 ‘멍청한 이타주의자’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피앙세 3부(5) : 뻐꾸기 알을 품지 말 것! (1)

신이 존재한다면 왜 우리들만은 사랑해주지 않는것일까

신이 존재한다면 왜 우리들만은 사랑해주지 않는것일까

무지 덥다. 바람도 없고 습도도 높다. 불쾌지수는 급상승한다. 이런 상태에서 짜증나는 일까지 생기면 최악이다. 피앙세가 짜증이 난 이유는 오후 시간 상담자 명부 첫머리에 빨간 밑줄과 별표 두 개가 달린, ‘붉은머리오목눈이’라는 다소 긴 ‘새’이름이 올라와 있었기 때문이다. Oh, my God!

  

탐정 일을 시작한 이래로 ‘새’에게 사건을 의뢰받기는 처음 있는 일이다. 예약 전화가 있었다는데 도대체 어떻게 내 사무실을 알게된 것일까? 그리고말이다. 새가 전화를 해서 2시쯤 찾아뵐께요 했다니 이걸 나보고 믿으란 말인가? 혹시 상담료를 벌레로 지급하겠다고 할지도 모르는 일이다...제길... >_<

  

시계 바늘이 2시를 가리킴과 동시에 노크 소리가 들렸다. 슬슬 눈치를 살피며 빼꼼이 안을 쳐다보는 비서의 모양새가 그 문제의 의뢰인(?)이 도착한 모양이다.

‘저기... 밖에...상담할 분...도착하셨습니다...’

‘들여보내면 되지 뭘 그렇게 머뭇거리나!’

종종 걸음으로 뒤따라 들어오는 이는 보아하니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그저 그런 아담하게 생긴 평범한 새였다. 차를 내오라고 하기도 그렇고 자리를 권하기도 그렇다...

‘붉은머리오목눈이...씨...?’

‘네, 처음 뵙겠습니다. 그냥 편하게 뱁새라고 부르셔도 됩니다.’

‘그래요... 아! 그 황새 따라가다 가랭이가 찢어졌다는?’

오목눈이가 곤란한 표정을 짓는다.

‘아마 우리 조상 중에 어떤 분이 술기운에 객기로 한 번 그랬던 모양인데, 그 일로 마치 우리가 허영심의 대명사처럼 불리우게 된 것은 불만이예요...’

‘알았습니다. 좀 가까이 오실까요?’

  

훌쩍 날아올라 책상 위에 자리를 잡는다. 손가락 하나 구부린 것만한 저 머리 속에 도대체 얼마만한 고민을 담고 있는 것일까?

‘제가 여기에 오게 된 것은...’

붉은머리오목눈이는 말을 꺼내다가 갑자기 창밖을 내다보며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여느 때 같으면 담배라도 한 개피 권하면 딱 어울리는 상황이건만... 니코틴 모이라도 준비했어야 하는가 -_-:;

‘그러니까 제 아내와 첫 신방을 차리고 달콤한 신혼 생활을 즐기던 때의 이야기입니다. 아내는 얼마 안 있어 임신을 하게 되었고 산달이 되어 예쁜 알을 낳게 되었습니다. 저는 너무 기뻤고 아내와 번갈아가며 열심히 알을 품고 둥지를 더 튼튼히 꾸몄습니다. 곧 알을 깨고 나올 우리의 2세를 위해서 말입니다.’

  

피앙세는 감이 오기 시작했다. 첫머리가 이런 식으로 시작되면 대부분이 치정 사건이다. 암컷이 어디서 다른 씨를 받아온 경우 말이다. 아, 불쌍한 수컷이여...

‘저는 끊임없이 먹이를 물어다 알에서 나온 그 아이를 먹였습니다. 어찌나 먹성이 좋던지... 그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다 못해 저와 제 아내보다도 더 커졌습니다. 뭐 그냥 우량아인줄로만 생각했었죠. 헌데 갈수록 생긴 모습이 저와 너무 안 닮은 것이었습니다. 친척들이 말들이 많았죠. 아내도 제 눈치를 슬금슬금 보고... 저는 자연스럽게 아내를 의심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니, 정 의심스러우면 친자 감별 검사라도 받아보지 그랬어요?’

‘물론입니다. 고민 끝에 아내 몰래 친자 검사를 의뢰했습니다. 그런데 전혀 엉뚱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피앙세는 갑자기 흥미가 땡겼다. 엉뚱한 결과라니? 어떤 결과이길래?

‘검사 결과는 말이죠.. 충격적이게도 저와 제 아내 모두 그 아이의 친부모가 아니라는 거였습니다.’

‘그래요? 그럼 혹시 병원에서 아이가 바뀐 것은 아닐까요?’

오목눈이는 어이없다는 듯 피앙세를 쳐다보았다. 피앙세는 어깨를 살짝 들며 멋적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애교로 봐 주시라^^

‘그래요. 그래요. 지금 썰렁한 농담 듣고 있을 기분이 아니겠죠... 어쨌든 흥미롭군요. 이 사건을 맡겠습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한 번 조사해보도록 하죠!’

  

다음 날 피앙세는 현장을 찾았다. 정말 어미새의 몇 배나 되는 아기새가 나뭇가지에 앉아서 밥 달라며 시끄럽게 울고 있었다. 그동안 이 덩치를 먹여 키우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일단 깃털 하나라도 단서를 잡아야한다. 먼저 둥지 주변을 샅샅이 뒤져보기로 했다. 그런데, 단서는 금방 나타났다. 둥지 바로 밑 쪽으로 여러 개의 깨진 알껍질들이 발견된 것이다.

‘어이쿠! 이런 이런! 쯧쯧...’

피앙세가 화들짝 놀란 것은 알껍질들이 발견된 지점 바로 옆 수풀 사이로 오목눈이 새끼들의 사체가 널부러져 있었기 때문이다. 부패 정도로 봐서 꽤 되어보였다.

‘이거 단순 사건이 아니지 않는가? 살해 사건과 맞물려 있다. 누가 이런 끔찍한 일을 저질렀을까?...’

  

현장 조사를 어느 정도 마친 피앙세는 곧바로 용의자를 찾기 위한 탐문 조사에 들어갔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런 일들이 다른 붉은머리오목눈이 둥지에서도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피앙세의 호기심은 더욱 자극되었다. 일단, 최근 알을 낳기 시작한 오목눈이 둥지에 촬영장치를 설치하기로 했다.

  

며칠 후, 사무실로 촬영된 필름을 가져와 돌려보았다. 과연 뭔가 잡혔을까? 긴장된 마음으로 화면을 지켜보던 피앙세는 무릎을 탁 쳤다. 결정적 단서를 찾아낸 것이다. 사단은 붉은머리오목눈이 부부가 집을 비운 사이 벌어졌다. 오후에 잠깐 둥지를 비운 사이 뻐꾸기 한 마리가 날아와 몰래 자신의 알을 낳고 가버리는 것이 아닌가!

  

뻐꾸기 알은 오목눈이의 알보다 먼저 부화했는데 기막힌 것은 갓 깨어난 새끼가 마치 프로그래밍된 자동로봇처럼 오목눈이의 알을 제거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무도 그런 고난도의 행위를 가르쳐주지 않았는데 말이다. 등에 지고 오목눈이 알을 하나씩 둥지 밖으로 밀어내기 시작했고 이미 알을 깨고 나온 경우는 그 새끼를 밀어냈다. 오목눈이는 그것도 모르고 자신의 둥지에 있기 때문에 당연히 자기 새끼로 알고 계속 정성으로 보살핀 것이었다. 자신의 아이를 죽인 살해자를 말이다.

  

물론 붉은머리오목눈이들이 바보처럼 무작정 당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약 80% 정도는 크기와 색깔이 다른 뻐꾸기 알을 자기 알에서 구별해내어 쪼아서 깨버렸다. 하지만 20% 정도는 구별에 실패했다. 그만큼 어미 뻐꾸기의 전격 알 낳기 작전과 아기 뻐꾸기의 밀어내기 전략은 사전 준비된 치밀한 역사적 프로그램이었던 것이다.

  

피앙세는 붉은머리오목눈이 부부를 불러 촬영한 비디오를 보여줬다. 부부는 이 어이없는 현실에 혼절 직전이다. 아비새는 연신 머리로 벽을 들이받았다. 어미새는 낮은 신음소리와 함께 계속 흐느꼈다. 그러나 어찌하겠는가... 그들의  둥지에는 이미 제 갈길을 찾아나선 새끼 뻐꾸기가 남기고 간 빈 둥지 뿐이다. 그렇다. 지금도 많은 붉은머리오목눈이들이 남의 알을 자기 알처럼 열심히 품고 돌보고 있을 것이다. 뻐꾸기는 어딘가에서 흐뭇해하고 있을 것이고 새끼 뻐꾸기는 비웃으며 둥지를 떠난다. 이들은 어쩌면 이런 사실을 끝까지 모르고 사는 게 더 행복했을 수도 있다...

  

피앙세가 일견 허섭해보이는 이번 사건을 맡기로 결심했던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얼마 전 한 여인에게 의뢰받았던 ‘이타주의’ 건과 이 건과의 관련성 때문이었다. 이 사건을 바라보는 제 3자들은 어떤 관점을 가지게 될까? 아마 전후사정을 모르는 제 3자들은 붉은머리오목눈이가 이타주의를 실현하고 있다고 평가했을지 모른다(그가 자신과 아무 관련이 없는 뻐꾸기를 위해 희생하고 있었기 때문에). 하지만 오목눈이의 행동은 최소한 몰랐거나 속아서 한 이타적 행동이었다. 남들 눈에 그렇게 비취었을 뿐이지 정작 본인은 그 일이 자신에게 이득이 되기 때문에 한 것이었으며 결코 이타적 동기를 가지고 한 행동이 아니었다. 여기에서 많은 이타적 행동들의 출현  배경에 대해 힌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피앙세는 오목눈이 부부를 배웅하고 돌아오면서 생각에 잠겼다. 혹시 나는 지금 뻐꾸기 알을 품고 있지는 않은가? 내 삶의 둥지에 나 몰래 누군가가 자기 알을 갖다 놓지는 않았는가?

  

사무실에 들어가자마자 피앙세는 비서에게 소리쳤다.

‘이봐! 사무실에 혹시 뻐꾸기 알이 있을지 모르니 샅샅이 뒤져봐!’

‘네? 뻐꾸기 알이라뇨?’

‘그리고, 이거 크게 써서 당장 벽에 붙여놓도록 해!’

피앙세는 메모지를 꺼내 힘차게 휘갈겼다.

- 뻐꾸기 알을 품지 말 것! -


피앙세 3부(5) : 뻐꾸기 알을 품지 말 것! (2)

속이려는 자 vs 속지 않으려는 자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이 방법에 포함된 빼놓을 수 없는 테크닉 중에 하나가 바로 상대방을 속이는 기술입니다. ‘톰 소오여 이타주의’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자연 속에 많은 개체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상대방을 속입니다. 특히 인간은 상대방을 속일 뿐만 아니라 필요에 따라서는 자신을 속이기도 합니다.

  뻐꾸기가 쓴 전략은 몰래 붉은머리오목눈이의 둥지에 알을 낳아 오목눈이가 자신의 알처럼 돌보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속이려는 자에 대항해 생물들은 속지 않기 위한 전략을 개발해왔습니다. 만약 오목눈이가 뻐꾸기 알을 전혀 골라내지 못했다면 번식률이 0이 되어 멸종했겠지요.

  이렇게 속이려는 자와 속지 않으려는 자의 팽팽한 긴장 속에 결국은 속는 개체들이 나타나며 이들은 자신의 생존과 번식에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됨으로써 속은 것에 대한 댓가를 톡톡히 치르게 됩니다. 남에게 속아 넘어가기 잘하는 어리숙한 가장이 집안 말아먹는 이치와 똑같습니다. 대신 속이는 자는 들키지만 않는다면 남들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대신해 줌으로써 삶의 여유와 풍성함을 얻게 됩니다.

  ‘속는 자’는 이런 전후 관계를 알지 못하는 제 3자가 관찰했을 때 이타적인 행동을 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분명히 자신이 아닌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붉은머리오목눈이 이타주의’는 타자(他者) 입장에서 볼 때만 이타주의의 형태를 지닌 ‘겉보기 이타주의’입니다. 뻐꾸기 알을 열심히 품었던 것은 이타적이어서가 아니라 뻐꾸기의 이기적 행동에 속아 넘어가 헛수고를 하고 있었을 따름입니다.

내 삶의 둥지는 안전한가?

신이 존재한다면 왜 우리들만은 사랑해주지 않는것일까
어찌보면 우리들도 각자 자신의 알을 품고 사는 것 같습니다. 그 알들이 아직 부화하지 않았을지라도 품고 있으면 언젠가는 알을 깨고 나와 나에게 기쁨을 주리라, 나에게 뭔가 이득을 제공하리라 기대하게 됩니다. 어떤 때는 밥을 굶어가면서, 밤을 새우기도 하고, 돈과 시간과 노력을 투자합니다. 그러나, 막상 알을 깨고 나온 것을 보니 지금까지 품었던 알이 내 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알이었다면 얼마나 허망한 일일까요? 그나마 알게 되면 다행이지만 끝까지 그 사실을 모르고 계속 먹이를 물어다 주었었다면 이만한 비극도 없을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교묘하게 위장된 뻐꾸기 알을 자기 알처럼 품고 사는 사람들을 주위에서 꽤 볼 수 있습니다. 그만큼 자신에게 필요한 것들을 타인들이 채워주도록 조작하며, 타인들이 그 길을 가는 것이 스스로에게 이득인 것처럼 생각하게 만드는 재주를 가진 사람들이 꽤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천국을 주리라

  가장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아마 사이비 종교의 교주들일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이비 종교에 빠져 몸과, 마음, 재산을 탕진합니다. JMS와 같은 곳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여성의 성을 상납받기도 합니다. 사이비 종교의 신도들이 품고 있는 알은 실제로는 교주의 알이거나 그 종교 재단의 알입니다. 교묘하게 신도들의 둥지에 자신의 알을 낳아놓은 것입니다. 그 알을 열심히 품고 있으면 나중에 세상 종말이 왔을 때 자신들만이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여기거나, 사후(死後)에 천국에 들어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살아있는 동안은 보이지 않는 존재의 축복을 받게되며 신의 보호를 받는 특별한 사람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고등학교 선배 중에 착하고 성품이 온순한 병원 원장님이 계셨었습니다. 이 분이 그 유명한 ‘다미선교회’의 휴거 교리를 믿게 되어 결국에는 잘 나가던 병원 문을 닫고 하늘로 들려 올라간다는 10월 28일만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1992년 10월 28일, 자정은 점점 다가오고 "지상에서의 마지막 예배"가 시작되었습니다. 수많은 구경꾼뿐만 아니라 경찰을 비롯해 국내 TV방송사, CNN, 아사히TV등의 외국TV 방송사들도 모여들었습니다. 당시 추산 1백 55개 교회 8천 2백명의 신봉자들이 자정까지 휴거를 기다렸는데 물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여기저기서 신도들의 탄식 소리만 울려퍼졌고 심신이 지쳐 탈진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소동이 있고나서 한참 뒤 그 선배는 다시 병원 문을 열었습니다. 물론 한동안 사람 만나기를 꺼려 하더군요.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다미선교회의 수장인 이장림 목사가 사기 혐의로 체포되었는데 체포 과정에서 수만 달러를 갖고 있는 것이 발견된 것입니다. 결국 사기 혐의에 앞서 외환관리 관계 법령 위반으로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조사 과정에서 이장림이 수십억원치의 재산을 선교회 운영 과정에서 쌓아두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곧 세상이 끝날 거라고 주장하던 사람이 왜 재산을 쌓아두었을까요? 나중에 밝혀진 바 그 재산 중에 휴거 이후 1993년이 되어서야 현금화 할 수 있는 채권이 있었다니 기막힐 노릇입니다.

  세상에는 신출귀몰한 뻐꾸기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이들이 낳아놓은 알은 신도들이 낳아놓은 알들을 밀어내고 안방을 차지하였습니다. 개인의 삶은 파괴되고 그만큼 교주의 배는 불러갔습니다.

연민을 불러 일으키는 황우석 지지자들

신이 존재한다면 왜 우리들만은 사랑해주지 않는것일까
얼마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황우석 논문 조작 사건’을 통해 또한 많은 붉은머리오목눈이들이 탄생하였습니다. 그들은 몰래 갖다 놓은 ‘환자맞춤형줄기세포’,‘300조 국익’이라는 뻐꾸기 알을 지금도 자신들의 알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품고 있습니다. 분신을 하기도 하고 같은 지지자들끼리 상해를 입히기도 하고 주말, 공휴일에는 집회를 하고 힘들여 벌은 돈을 갖다바치기도 합니다. 그러다 서로 싸우고 헐뜯고 만신창이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옆에서 보고 있으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이 사건이 없었다면 그냥 열심히 사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가장이요, 주부요, 직장인, 학생들이었을텐데... 그 시간에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든지 자기 자신에게 투자하여 공부를 하든지 책을 읽든지 했으면 현재보다 훨씬 더 훌륭하고 좋은 모습일텐데... 우리들이 그냥 평범한 상식만 가지고도 쉽게 무엇이 잘못되어 있는지를 알 수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마저도 속이고 있는 한 과학자(?)의 교묘한 술수에 빠져 헤어나오질 못하고 있습니다.

  정말 그 알을 열심히 품고 있으며 특허 수호와 국익 사수로 대한민국이 눈부시게 발전하고 그를 따르던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을까요? 아니면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고 빈둥지가 되어있을까요? 뻐꾸기 알인지 의심해보려는 사람들에게 자꾸 네 알이 맞으니 계속 열심히 품으라고 부추기고 있는 몇 몇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책임을 져야할까요?

수령의 알을 품게 하라!

  솔직히 전 세계 국가 중 북한만큼 연구대상인 국가도 없습니다. 악의 축이라 불리우며 간혹 기아에 굶주린 아이들 사진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북한이 우리와 같은 민족이요 동포라는 것이 미국이나 서구 국가들을 열심히 뒤따라 가고 있는 남한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참 아이러니한 현실입니다.

  북한에 살고있는 이들은 인민 해방과 제국주의의 지배로부터 해방을 추구한다는 당과 수령의 목표가 자신들의 이익과 부합한다고 생각할 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들의 부자유스럽고 억압된 삶이 자신들이 그토록 떠받드는 수령의 뱃살을 3대에 이어서 불려오고 있음을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선택을 할 수 없다는 저주를 받았습니다. 어려서부터 한가지 생각만을 하도록 강요받고 조정당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수많은 독재 정권들이 언론과 교육, 종교와 사회 조직들을 통해 자신의 체제를 유지해 온 방법과 동일합니다.

속아서 하는 이타주의는 이타주의가 아니다

  사이비 종교에 빠져있는 이들, 자신의 재산을 타인에게 헌납하고 자유를 즐길 시간에 스스로 얽매여 살아가고 있으니 얼마나 이타적입니까... 황우석 살리기 운동을 하는 이들, 자기를 위해 시간을 투자해도 모자랄 상황에서 우리 모두의 이익인 국익을 위해 열 일 제쳐두고 열심히 활동하고 있으니니 얼마나 이타적입니까... 개인의 욕구를 희생하고 당과 수령을 위해, 인민을 위해 살고 있으니 얼마나 이타적입니까...

  하지만 이들은 타자에게 속아서 하는 이타적 행동일 뿐이며, 실제로 자신을 향한 동기를 갖고 있는 겉보기 이타주의일 뿐입니다.

  톰 소오여 식의 이타주의나 붉은머리오목눈이 식의 이타주의를 제거하면 피앙세가 고민해봐야 할 이타주의에 대한 수사 범위는 상당히 좁아집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우리 주변에서 그리 어렵지않게 볼 수 있는 이타적으로 보이는 많은 행위들은 대부분 이기적 목적을 갖고 있거나 타자에게 속거나 이용당해서 발생한 이타주의입니다. 진정한 이타적 행위는 아마도 매우 드물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한가지 고민이 발생하였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이타적 행동에 대한 역사적 고찰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뻐꾸기와 오목눈이와의 관계는 단시간 내에 이루어진 일이기 때문에 확인이 바로 가능했지만 서서히 진행된, 그리고 그 시발점이 아주 오래된 관계인 경우 그 상호작용에 대한 역사적 또는 진화적 고찰없이는 잘못된 판단을 내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p.s. 우리도 가끔씩 자기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혹시 내 둥지에 누군가가 다른 알을 낳고 간 것은 아닌지 자신이 품고 있는 알들을 점검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뻐꾸기 알이 발견된다면 가차없이 둥지 밖으로 밀어내버려야 합니다. 내가 아무리 뻐꾸기 알을 열심히 품어준다한들 뻐꾸기는 내 알을 품어줄 의사가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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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피앙세와 함께 떠나는 존재의 여행 : 프롤로그
II.
피앙세와 함께 떠나는 존재의 여행 : 1부, 잃어버린 조상을 찾아서
III. 피앙세와 함께 떠나는 존재의 여행 : 2부, 이기적 유전자에 대하여
Ⅳ. 피앙세와 함께 떠나는 존재의 여행 : 2부, 유전자! 너는 내 운명

피카소님의 피앙세 시리즈는 계속됩니다.


(Pespective는 BRIC의 정책과는 무관하며, BioJob 소리마당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