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문은 일본어 추천하라고 모든 사람은 어떤 사라다 전화 문의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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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기념회] 왕희지는 왜 난정에서 연회를 열었을까? 천하제일행서 <난정서>를 해부하다!지난 7월 7일 서울 종로 마이크 임팩트 12층 C호실에서 하태형 수원대학교 금융공학과학대학원 교수는 저서 출판기념회를 열고 ‘난정으로 떠나는 중국 귀족문화여행’이라는 주제로 열띤 강연을 펼쳤다. 난정연회(蘭亭宴會)란 중국 동진시대의 명필 왕희지(王羲之)가 난정(蘭亭)이라는 곳에서 주최한 연회를 말한다. 이 연회에서 동양 최고의 행서(천하제일행서)라고 불리는 서예작품 가 탄생했다. 난정연회에 참석한 당대의 명사들이 각각 시를 짓고, 그 시를 모아 책으로 엮은 것이 이다. 그리고 그 책의 서문인 를 동양 최고의 명필인 왕희지가 썼다. 이런 유래 때문에 은서예가라면 누구나 한 번씩은 임서(臨書)해보는 작품이다. 이렇게 중요한 인데도 서예가 사이에서 집중적으로 연구된 일이 많지 않았다. 서체의 아름다움과 서예사적 위치, 왕희지의 명성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연회가 열리게 된 배경과 당시의 상황, 여기서 지어진 시들의 철학적 배경까지 이해해야만 를 제대로 볼 수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이 책은 출발했다. 저자 하태형 교수는 수원대학교 금융공학과학대학원장, 현대경제연구원장을 지낸 경제학자다. 한문 전공이 아닌 하 교수가 난정연회와 를 파고들게 된 것은 한국 서예의 대가 가운데 한 사람인 하석 박원규 선생과의 만남 덕이었다. 서예 자체보다도 한문에 마음을 더 빼앗긴 그는 이내 서예사 최고의 작품인 에 천착하기 시작했다. 10년 동안 진행해 오던 탐구의 여정은 몸담고 있던 현대경제연구원장 자리에서 물러난 뒤 중국 샤오싱(紹興)에 있는 난정에 직접 다녀오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난정연회 현장을 직접 찾아보고, 왕희지의 흔적이 남아 있는 샤오싱을 누볐다. 전공자가 아님에도 치밀한 연구와 끊임없는 집념으로 난정연회의 전모를 밝혀낸 성과가 놀랍다. 난정연회 하나만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어 이토록 다각적으로 살핀 책은 동아시아에서 처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에서는 등 인물 관련 문헌과 풍승소(馮承素)의 , 구양순(歐陽詢)의 등 난정서의 여러 판본을 두루 비교해 살펴본다. 난정서는 어떻게 탄생했는가, 난정서의 내용, 난정서를 둘러싼 이야기, 난정시 읽기, 난정서의 판본 문제 등 난정연회가 열린 시대적·철학적 배경을 바탕에 두어야만 난정서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소상히 분석했다. 한길사 발행. 328쪽. 3만원.2016-08-10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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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홍의 와인여행] 와인 구매 가이드라인 8가지 포인트세상에 와인을 구매하는 행위보다 간단한 것도 없다. 마트나 와인 숍 등에서 여느 상품처럼 그냥 돈을 내고 사면 그만이다. 그러나 원하는 와인을 제대로 구매하는 것만큼 까다로운 일도 드물다. 글로벌 시대에 특히 뉴 월드 와인이 공산품처럼 대규모로 생산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와인은 여전히 규격화된 공산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종류의 와인 중에서 자기가 필요로 하고 자신의 취향에 맞는 와인이 어떤 것인지 알아야 할 것이다.와인의 최고 전문가라 해도, 이 세상에서 생산되는 모든 와인을 모조리 꿰차고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러니 실수하지 않고 와인을 구매하려면 몇 가지 가이드라인을 세우는 것이 바람직하다. 첫째, 자신의 취향에 맞는 와인을 찾아라. 최고로 비싼 와인이 존재할지 모르지만, 향과 맛에 관한 한 최고는 존재하지 않는다. 비록 존재한다고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지극히 주관적인 관점에서 최고일 뿐이다. 게다가 주관적인 관점은 시시각각으로 변할 수 있다. 각자의 취향에 따라, 그리고 그날의 기분, 컨디션, 분위기 그리고 함께하는 사람과 음식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평소 여러 종류의 와인을 접해보고, 자신에게 맞는 것을 고르는 훈련이 필요하다. 와인 선택에도 당신의 개성과 끼를 발휘하라. 둘째, 비싸다고 다 좋은 와인은 아니다. 대체로 값과 질은 비례한다. 저 유명한 1855년 보르도의 ‘그랑 크뤼 클라세’도 가격을 바탕으로 작성되지 않았던가! 그러나 값에 비해 질이 수준 이하인 것들이 생각보다 많다. 특정 AOC의 명성을 배경으로 질에 비해 터무니없이 비싼 와인들도 있다. 그러니 레이블에 너무 연연하지 말고, 아직 세상에 그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가격 대비 질이 우수한 와인을 찾는 노력을 하라. 가격이 적당하면서도 질이 우수한 새로운 와인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은 느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똑같은 와인이 어느 날 유명 전문 잡지에 소개되고 나면 값이 20~30% 이상 치솟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니 먼저 선수를 쳐라! 참고로 프랑스에는 병당 1만5000원 이하의 와인만 모아 놓은 와인 가이드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와인을 레이블이나 값으로 마시지 않고 각 와인의 고유한 특성을 음미하고 즐길 수 있을 때, 진정한 와인 애호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오래된 와인이라고 무조건 좋은 것은 결코 아니다. 대개의 와인은 생산 후 5년 안에 마시는 것이 좋다. 화이트나 로제 와인의 경우는 1~3년, 레드 와인의 경우는 3~5년 정도가 적당하다. 그리고 샹파뉴는 특별한 빈티지 샹파뉴를 제외하면 구매한 후 최대한 이른 시일 안에 소비하는 것이 좋다. 보졸레 누보는 6개월 내에 마셔야 한다. 물론 뛰어난 빈티지의 고급 와인의 경우 보관기간이 10~20년 이상 가는 것들이 대다수지만, 이런 와인은 값이 비싼 만큼 예외적이란 사실을 기억하라. 그리고 이런 고급 와인은 하나같이 타닌이 높아 몸체가 탄탄한데, 너무 일찍 마시면 향과 맛이 채 열리지 않아 절대 고급 와인의 오묘한 진수를 느낄 수 없으니 창문으로 돈을 던져 버리는 것과 같다. 넷째, 빈티지에 너무 연연하지 말라. 많은 와인 아마추어들이 빈티지 표를 마치 수학 공식처럼 신봉하는 경우가 있다. 사실 빈티지는 와인의 출생신고 같은 것으로 중요하다. 그러나 같은 지역, 같은 빈티지라 할지라도 주조하는 사람의 정성과 테크닉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와인이 나올 수 있다. 그러니 빈티지를 참고는 하되 너무 신봉하지 않는 게 좋다. 게다가 나쁜 빈티지는 오랜 보관이 불가능하므로, 고급 와인이라 할지라도 오랜 기간 기다리지 않고도 마실 수 있고 가격도 저렴해 우리 실정에 맞는다고 판단된다. 가끔 활용해보기 바란다. 다섯째, 머잖아 마실 와인과 장기간 보관했다 마셔야 할 와인을 구별하여 구매해야 한다. 귀한 손님을 대접한다고 10년 이상 보관했다 마셔야 제격일 ‘그랑 크뤼 클라세’를 구매해서 그날 바로 마시는 것은 정말이지 어리석은 행위이며, 와인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본다. 자칫 돈만 낭비하고 얼굴을 찡그리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여섯째, 같은 와인을 최소한 여섯 병 단위로 구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여러 사람과 마실 때 한 병으로 모자라는 낭패를 피할 수 있고, 무엇보다도 한 종류의 와인을 일정 시간을 두고 마시게 되면, 그 와인에 대해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다. 또한 같은 와인이 자신의 기분이나 컨디션, 그리고 시간과 더불어 어떻게 발전해 나가는지도 경험해 볼 수 있다. 만약 그러지 못할 사정이면 최소한 두세 병이라도 구매하는 것이 좋다. 물론 매우 귀한 고가의 와인일 경우는 한 병으로 만족해야겠지만. 일곱째, 믿을 만한 와인 가이드북을 한 권 정도 준비하는 것은 필수다. 한글로 번역된 것들도 있으니,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접근이 가능하다. 가이드북을 통해 와인을 구매하기 전에 구매할 와인에 대해 사전에 공부를 할 수 있고, 마시고 있거나 마신 와인이 어떤 것인지 검토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이 내린 평과 전문가의 평을 비교해 봄으로써 와인 시음에 대한 능력과 자신감을 향상시킬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매우 까다로운 문제인 ‘언제가 마시기 적절한 시기인가?’에 대해서도 상세히 일러준다. 가이드북의 종류에 따라서는 생산자나 가격에 대한 여러 유용한 정보를 얻을 수도 있으니, 각자의 필요에 맞는 와인 가이드북을 꼭 한 권 갖추라고 권한다. 한 가지 문제점은 매해 새로운 빈티지가 나오기에 매해 새로운 빈티지를 첨가한 가이드북의 개정판이 나온다는 점이다. 와인 마니아나 이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이 아닌 이상 적당한 간격으로 구매하면 어떨까 한다. 최선의 방법은 아니지만 차선은 되리라고 믿는다. 여덟째, 공동구매를 해보라. 와인을 좋아하는 지인들과 같이 공동구매에 대해 논의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서로 모르는 와인에 대한 새로운 지식도 습득하게 되고, 특히 할인도 받을 가능성이 높다. 가격대가 높은 와인일수록 공동구매는 더욱 유용하리라 본다. “당신이 어떤 와인을 마시는지 말해주면 나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한다. 그만큼 이제 와인은 단순한 음료나 상품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적 아이콘으로 자리를 잡았다는 뜻이다. 그러니 와인의 선택은 간단한 생필품 구매와는 여러 면에서 차원이 다르다. 단순히 주머니 사정을 넘어, 선택하는 사람의 성향과 인품을 나름대로 반영하기 때문이다. &gt;&gt; 장 홍(張洪) 성균관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에서 국제관계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프랑스 알자르 소믈리에협회 준회원이며, 등 다수의 저서를 펴냈다. 사회학적 측면에서 살펴본 와인, 인류역사 속 와인의 의미와 파워, 예술 인문학을 통해 본 와인 등에 대해 강의도 하고 있다.2016-08-05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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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속으로] 잠 못 이루는 밤을 위한 여행 처방전‘잠이 보약’이라는 말이 있다. 건강하고 활기찬 생활을 위해서 숙면은 꼭 필요하다. 그러나 수면의 양은 전 생애를 통하여 점차 감소하며, 65세 이상의 과반수가 얕은 수면 또는 불면증을 경험한다. 불면증의 원인이 정서적인 문제에서 온다는 걸 떠올려 보면, 불면증을 치료할 방법 또한 정서적인 해법에 달려 있을 것이다. 그 누구보다 숙면을 갈구하는 이들을 위한 마음 테라피, 여행 솔루션을 제안해 본다. 글·사진 제공 에어비앤비 불면을 겪어본 사람은 그 무의미함과 피로감에 진저리 칠 것이다. 그런 괴로운 경험이 일상이 된다면? 하루하루가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것이 나이가 들수록 수면의 질과 양을 동시에 잡아야 하는 게 중요한 이유다. 좋은 잠은 평온과 즐거움을 통해 지친 몸과 마음을 회복함으로써 얻을 수 있다. 그렇다면 지친 몸과 마음을 회복할 수 있는 간단하면서 신나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여행’이다. 그러나 촘촘하게 일정이 계획된 여행은 또 다른 스트레스로 작용하여 여행을 휴식이 아닌 의무와 업무로 변하게 만들 수 있다. ‘꿀잠’을 위해서라면 일상처럼 느긋한 여행이 그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숙소 주변에서 가벼운 산책을 즐기고, 마음이 평온해지는 전경을 바라보며, 신선한 산지 식재료를 수확할 수 있는 여행, 모든 걱정을 훌훌 털어 버리고 오롯이 나만을 위한 영혼의 휴식이 그 답이다. 이제 좋은 숙면 환경에서 두 다리 쭉 뻗고 잘 수 있는 편안한 에어비앤비 숙소 4곳을 소개한다. 1.산책 : 일본의 뒤뜰에서 만나는 멋진 자연 일본의 도보 여행 코스는 전 세계인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렇기에 흔치 않은 발견의 즐거움이 있는 곳이다. 뒤뜰로 나가면 숲 한가운데 멋진 폭포가 바로 눈앞에서 펼쳐지며 아름다운 산과 호수, 계곡을 따라 한적하게 걸어보는 일상으로서의 여행을 떠날 수 있다. 199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된 이끼가 많은 숲으로 유명한 규슈(九州)의 야쿠시마(屋久島)를 거닐 수 있는 기회기도 하다. 일본 나가노 natural life at tiny cottage www.airbnb.co.kr/rooms/2207040 2.요가: 발리에서의 나마스테 요가와 휴가는 공통점이 많다. 두 가지 활동 모두 삶의 균형을 회복해 주고, 전환의 계기가 되며,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정신적 에너지를 충전해 준다는 점에서다. 이 두 가지를 함께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발리라는 최적의 여행 환경 속에서 요가 수행자와 살아보며 요가를 배울 수 있는 기회다. 전문가가 알려주는 요가 팁을 전수받고 요가 수업을 들어보자. 온 몸의 기가 순환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인도네시아 발리 #2A UBUD VIBE KOMUNITY,YOGA STUDIO www.airbnb.co.kr/rooms/4533055 3.아름다운 전경: 바다로 가요! 깨끗한 백사장과 맑은 바닷물을 보면 없던 병도 나을 것이다. 모든 사람이 아름다운 바닷가에서 보내는 휴가를 좋아한다. 눈부시도록 흰 모래가 에머럴드 빛 바다와 대조를 이루는 뉴질랜드에서의 휴식이라면 특히 그럴 것이다. 뉴질랜드 아히파라만을 바로 앞에 두고 위치한 이곳에서는 천혜의 자연 환경이 주는 상쾌한 공기와 따스한 햇볕을 매혹적인 바다와 함께 경험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해 준다. 뉴질랜드 노스랜드 Manaia Room www.airbnb.co.kr/rooms/4318287 4.신선한 음식: 멋진 풍경에서 즐기는 산지 음식 뉴욕 가까이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을 누가 알고 있었을까? 뉴욕 북쪽에 위치한 이 숙소에는 뒤뜰에 아름다운 산지 식재료를 기르는 공간이 있다. 신선한 산지 음식, 요가, 목가적인 전원의 삶을 특징으로 하는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한 공동 공간을 체험할 수 있다. 미국 뉴욕 Farm&amp;Yoga Retreat-Walk to Train www.airbnb.co.kr/rooms/1709012 에어비앤비 2008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설립된 에어비앤비(Airbnb)는 전세계에 독특한 숙소를 가진 사람들과 숙박할 곳을 찾는 사람들을 인터넷이나 모바일로 연결해 주는 신뢰할 수 있는 커뮤니티 장터다. 아파트를 하룻밤, 성을 일주일, 별장을 한 달 빌리고 싶을 때처럼 특별한 여행 경험을 각자 예산에 맞게 할 수 있도록 연결해 주는 장터인 에어비앤비는 현재 190개 국가 3만4000개 이상 도시의 여행자 숙소 정보를 사용자 맞춤형으로 제공하고 있다. 또한 세계 최고 수준의 고객 서비스와 회원 수의 지속적인 증가로 수백만 명의 사람들에게 자신의 남는 공간을 가장 쉽게 홍보할 수 있는 사용자 커뮤니티로서도 유명하다. 에어비앤비 코리아 홍보대행사 브라이먼커뮤니케이션스 2016-08-05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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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외투어] ‘발칸의 진주’ 마케도니아 오흐리드 호수 마을엔 문화유적 찬란한국인들에게 마케도니아에 대해 물어봤을 때 가장 먼저 연상하는 것들은 무엇일까? 알렉산더 대왕의 고향? 아니면 마더 테레사가 태어난 곳? 하지만 이 답변은 소수의 마니아급들에게서만 들을 수 있는 말일 게다. 많이 낯설어서 설레는 나라, 바로 마케도니아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오흐리드 호수 마케도니아(Macedonia)의 여러 여행지 중에서도 유럽인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 곳이 오흐리드(Ohrid) 호수 마을이다. 오흐리드는 세계역사문화유산(1979년)과 세계자연문화유산(1980년)으로 지정된 도시다. 오흐리드는 호수를 사이에 두고 알바니아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필자는 알바니아 국경에서 택시를 타고 30km를 달려 오흐리드에 도착해 동상이 많은 선착장 광장 근처부터 여행을 시작한다. 올드 타운 쪽으로 발길을 옮기면서 계속 만나게 되는 비잔틴 방식의 정교회 건물에 깜짝 놀라게 된다. 사실 놀랄 일도 아니다. 오흐리드에는 한때 365개나 되는 교회가 있었고 현재도 ‘마케도니아의 예루살렘’으로 불린다. 엇비슷한 형태의 작은 교회 몇 개를 지나치자 웅장한 성소피아(St. Sophia) 교회를 만난다. 오흐리드에서는 규모가 가장 크고 빼어난 중세 건축물로 손꼽힌다. 이 교회는 음향 설계가 잘 되어 있어 매년 오흐리드 여름 축제를 주최한다. 교회와 골목을 벗어나 절벽 호수 길을 따라 걷는다. 벼랑 밑으로 펼쳐지는 호수 풍경은 마치 바다와 같다. 그도그럴 것이 500만 년 전, 바다 밑이 솟구쳐 올라 만들어진 호수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었고 유럽에서는 가장 깊고(290m) 1년 내내 얼지 않는다. *오흐리드 호수를 정원 삼은 교회와 수도원 호수 길, 벼랑 끝에 카네오 성 요한 교회(Saint John at Kaneo Church)가 그림처럼 걸쳐 있다. 13세기에 요한복음의 저자, 성 요한을 기리기 위해 세운 이 교회에서는 14세기의 프레스코화(1964년 복원)와 20세기의 나무 성화 등을 볼 수 있다. 그것보다 이 교회는 오흐리드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치를 보여준다. 확 트인 언덕받이에 저 홀로 호수를 정원 삼고 있는 비잔틴 양식의 교회. 교회 밑, 호수 위로 기선과 유람선이 호수의 물살을 가르며 유유히 교차하며 한 폭의 수채화를 그려낸다. 영화 은 이 아름다운 교회를 배경으로 촬영했다. 교회를 비껴 언덕으로 올라서면 9세기 말(893년), 오흐리드의 수호성인인 성 클레멘트(St. Clement)가 세운 성 판텔레이몬(Saint Panteleimon) 수도원이 있다. 이 수도원 자리는 슬라브족 최초의 대학이었다. 수도원을 예배당으로, 그리고 제자들에게 ‘글라골 문자’(Glagolitic alphabet)를 가르치는 학교로 사용했다. 글라골 문자란 마케도니아의 토어를 기초로 해 만든 최초의 슬라브 문자. 당시 슬라브족은 언어는 있었지만 문자가 없어 라틴문자를 차용해 사용했다. 그리스 테살로니키 출신의 키릴로스(Kyrillos, 826∼869)가 그의 형 메토디오스(Methodios, 815∼885)와 함께 알파벳을 토대로 슬라브 언어를 만든 것이다. *제 1차 불가리아 제국시절의 유적, 사무엘 요새 오흐리드의 가장 높은 곳에 사무엘 요새(Samuil's Fortress, 2003년 복원)가 있다. 성내에는 부서진 유적들이 흩어져 있고 아직도 발굴 중이다. 성곽을 따라 걸으면서 오흐리드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사무일 요새는 1차 불가리아 제국 시절 사무엘(958~1014 재위 980~1025) 왕에 의해 만들어졌다. 사무일은 인근 프릴레프의 귀족집 아들로 태어나 우여곡절을 겪은 후 불가리아의 실권을 장악하게 된다. 980년, 소피아 근처에서 비잔틴 황제 바실리우스 2세(Basilius II, 958~1025, 재위 976~1025)를 격파한 후 불가리아의 ‘차르(왕)’로 정식 즉위한다. 마케도니아를 통치하다가 독립국 세르비아를 정복하고 나아가 불가리아 북부, 알바니아, 그리스 북부까지 세력을 확장시키고 ‘오흐리다’(오흐리드)에 수도를 정한다. 그러나 비잔틴과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1014년, 결국 벨라시차 전투에서 바실리우스에게 완패하고 말았다. 사무일은 고향 프릴레프까지 도망을 갔고 바실리우스는 불가리아인 포로들(1만5000명에 달했다고 함)을 장님으로 만들어 돌려 보냈다. 사무엘은 그 충격으로 죽었다는 설이 전해온다. 이 사건으로 바실리오스 2세는 ‘불가록토누스(Bulgaroktonos, 불가르족의 학살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불가리아 제국은 비잔틴에 병합되면서 1차 불가리아 제국은 사라진다. *발길에 채이고 채이는 문화유적지의 보고 사무엘 요새에서 멀지 않은 곳에 BC 200년 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고대 원형극장(Ancient Theatre)이 있다. 마케도니아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그리스 시대의 극장으로 현재는 아랫부분만 남아 있다. 이곳에서는 오흐리드 여름 축제 등 여러 행사와 공연이 열린다. 원형극장에서 다시 마을 안쪽으로 들어서면 성 보고로디차 페리블렙타(St. Bogorodica Perivlepta) 교회와 이콘 갤러리가 있다. 1295년, 성모 마리아를 위해 세워진 이 교회는 성 클레멘트의 유해를 안치하고 있어, 성 클레멘트 교회라고 불리기도 한다. 묵은 향 가득한 골목길마다 오랜 역사의 사연이 풍겨나는 곳. 발길에 채이고 채이는 문화유적지의 보고인 호반의 도시 오흐리드. 꼭 가봐야 할 여행지다. *Travel Data 항공편오흐리드 사도 성 요한 국제공항이 있다. 크로아티아, 오스트리아, 알리탈리아, 아드리아, 코렌던더치, 세르비아 항공 등 총 8개 항공사가 취항한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스위스 취리히와 바젤, 벨기에 브뤼셀, 영국 런던은 직항이다. 교통편마케도니아의 수도인 스코페에서 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마케도니아는 기차보다 버스 여행이 편하다. 음식 정보올드타운 입구에 있는 안티코(Antiko) 레스토랑은 상호처럼 옛 건물을 그대로 이용해 만들었다. 인테리어도 돋보이고 음식 맛도 좋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음식으로는 게미스타(Gemista)가 있다. 그리스식 음식으로 피망, 토마토 속에 밥과 고기를 넣고 찐 음식이다. 특산품오흐리드 호수의 물고기 비닐로 윤기를 낸 진주 제품이 있다. 주변 볼거리오흐리드에서 멀지 않은 도시가 스트루가(Struga, 8km)다. 알바니아(20km)와 국경인 이 소도시엔 치미 드림(Crni Drim)강이 흐르고 토요일이면 대형 시장이 선다. 또 해마다 8월 말이면 국제 시 축제(SPE, Struga Poetry Evenings)를 위해 이곳으로 시인들이 몰려온다. 우리나라의 고은 시인은 제53회(2014년) 스트루가 시 축제에서 최고의상인 '황금화관상'을 수상했다. &gt;&gt; 이신화 여행작가 이립(而立)에 여행작가로 시작해 어언 지천명(知天命)에 다다랐다. 그동안 ‘걸어서 상쾌한 사계절 트레킹’, ‘대한민국 100배 즐기기’, ‘on the camino’ 등 여행서 총 14권을 출간했다. ‘인생이 짧다’는 것을 현실적으로 받아들여 2014년 홀로 197일간 30개국의 유럽 배낭 여행을 했다. ‘살아 있을 때 떠나자’가 삶의 모토다. 2016-08-05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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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세대 이야기] 1951년생, 엇나간 나의 꿈고금석 연극연출가 허망한 소싯적 꿈~ 나의 원래 꿈은 외교관이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독문학과로 대학 진학을 했던 것이고 1학년 때부터 경제원론이니 법학통론, 정치외교사 등을 두루 청강하였다. 5개 국어를 마스터할 계획도 세우고 첫 방학부터 중국어, 프랑스어 학원을 찾았다. 당시 독일문화원에는 독일 문학이나 시사 문제에 대해 토론하는 대학생 모임이 있었는데, 모든 의사소통을 독일어로 하였다. 그 모임의 성격이 나의 구미를 자극하였다. 그래서 독일어 정복의 꿈을 구체화하기 위해 2학년이 되자마자 그 모임을 찾았다. 이때가 1971년 4월! 잘못 찾은 방 문을 열고 들어가니 30여 명이 둘러앉아 있었다. 여학생도 많았는데 몇몇은 가슴이 설렐 정도로 예뻤다. 웬 늙수그레한 학생이 발표를 하고 있었다. 프랑스대혁명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런데 소문과 달리 우리말로 발표를 했다. ‘너무 어려운 내용이어서 그러나?’ 기나긴 발표가 끝난 후 웬 책자를 나누어 주더니 윤독을 하자고 했다. 제목을 보니 ‘당통의 죽음’. 연극 대본이었다. 그때서야 뭔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옆 사람에게 물으니 ‘프라이에 뷔네’(Freie Bühne-독일문화원에 소속된 연극단체로 독문학과 학생들이 주축을 이룸)란다. 대본이란 걸 처음 봐서 그런지, 내 차례만 되면 긴장되어 눈앞이 핑핑 돌고 글자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혀는 꼬여 버벅거리기 일쑤였다. 그렇게 천당과 지옥을 오가며 첫 연습을 마쳤고, 시(始)파티 자리까지 가서 막걸리를 진창 얻어 마셨다. 그러나 다시 그 연습장을 찾지는 않았다. 난 원래 연극은 꿈도 꾼 적이 없으니까~. 왜 그랬을까? 그로부터 1주 후. 집으로 낯선 전화가 걸려 왔다. ‘프라이에 뷔네’란다. 왜 그랬을까? 방을 잘못 찾던 날, 자기도 2학년이라고 유난히 친절하게 굴며 집 전화번호를 묻던 그놈, 얼굴이 아련하게 떠올랐다. 왜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던가? 오늘이 캐스팅하는 날이라고, 연출자가 나를 꼭 보고 싶어 한다고. 왜 나갔을까? 캐스팅 자리에 나가지만 않았어도 난 계속 외교관의 꿈을 꿀 수 있었을 텐데…. 연출자는 꼭 보고 싶다던 나에게 대사 여덟 마디짜리 단역을 주었다. 그러나 여덟 마디도 버거울 정도로 난 연기에 문외한이었다. 읽기는 그럭저럭 견뎌냈는데, 블로킹(동작선 긋기 연습) 때부터 문제가 발생했다. 영광스럽게도 난 연극의 첫 장면에 출연하게 되었다. 그건 첫 장면 출연자를 빼고 나머지 45명의 배우가 한꺼번에 내 연기를 보는 끔찍한 사태를 의미했다. 여덟 마디였지만, 첫 대사는 엄청나게 길었다. 대본의 반쪽 페이지가 넘게 길게 이어졌다. 창녀들이 골목길에서 교미하는 개들을 보고 깔깔거리는 모습을 묘사한 내용이었는데, 리딩할 때는 그럭저럭 잘나가던 대사가, 90개의 눈알이 주시하는 가운데 갑자기 하려니 맥락도 잡히질 않고, 얼굴 근육이 떨려 도무지 웃음도 나오질 않았다. 몇 날을 고민하다 한 가지 방법을 고안해 냈다. ‘아무래도 간덩이가 너무 작아 그러는 거 같으니, 연습 전에 술을 마시자.’ 당시엔 왕대포라고, 막걸리를 큰 대접으로도 팔았다. 이 방법은 기가 막히게 통했다. 그렇게 난 매일 음주연습을 했다. 이 습관은 공연 당일까지 이어졌다. 공연장에서 막걸리를 구할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공연 당일, 분장하기 전에 구멍가게에서 미리 매실주 한 병을 구입했다. 병이 납작해서 윗저고리 속주머니에 들어가기 딱 좋았다. 그래도 도수도 높고 500㎖는 족히 되는 사이즈였다. 아니나 다를까, 공연 시간이 임박할수록 가슴이 뛰고 숨이 가빠졌다. 그때마다 몰래 한 모금씩 홀짝이다 결국 공연 직전엔 한 병을 다 마셔 버렸다. 내 데뷔 연기는 성공적이었다. 그런데 그날 저녁 술자리에서, 선배 한 분이 무대에서 술냄새가 진동하더라며 음주공연한 사람을 색출하려 했다. 난 기겁하여 다음 날 공연 땐 술을 준비하지 않았다. 그 덕에 난 예의 창녀촌 장면 도중 대사를 까먹고 말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는 대사! 5초가 지나 10초, 15초~ 결국 나는 머리를 감싸고 고개를 떨굴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관객석에서 격려 박수 소리가 터지며 다음 배우가 등장하여 연극을 진행시켰다. 난 하릴없이 무대를 퇴장할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 연기 데뷔 무대가 이리 허무하게 끝나다니~. 힘없이 무대를 나오는데 갑자기 눈앞에 불이 번쩍 튀었다. 초장부터 연극을 망쳤다며, 누군가가 내 뺨을 후려친 것이었다. 난 그 사람이 연출자인 줄 알았다. 최근 그 연출자에게 내 뺨을 후려친 사람이 당신이냐고 물었더니, 아니라고 했다. 자기 작품을 망친 배우를 응징하지 않는 연출자가 세상에 어디 있을까, 난 아직도 의문이다. 그렇게 2학년의 1학기를 온통 연극에 허비하는 바람에, 1학년 때 올 A에 평점 4를 넘던 학점이 그만 C·D투성이에 평점도 3 아래로 떨어지고 말았다. 왜 또 그랬을까?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여름방학이 시작되자마자, 외교관의 꿈을 이루어줄 책들을 싸 메고 연극과 인연이 닿지 않는 외딴 세계로 기어 들어갔다. 고향에 있는 ‘옥천사’라는 절이었다. 고시생들에게 알려진 명문 절답게 옥천사에는 예닐곱 명의 고시생이 있었다. 나의 꿈 재도전 계획은 성공적이었다. 가져간 책과 참고서적, 문제집 들을 죄다 독파하고 한 달 반 만에 의기양양 하산하였다. 그러나 개학을 열흘도 채 남기지 않은 날, 다시 그놈한테서 운명의 전화가 걸려왔다. 공연이 얼마 안 남았는데 주인공 자리가 비어 있다고, 이번에는 독일어 원어극이라고, 발음은 독일 사람이 봐준다고~. 그래서 생각했다. 독일어로 공연 한 번 하면 회화는 저절로 되지 않겠는가, 더군다나 원어민이 가르쳐 주면 독일어 발음이 얼마나 정확하고 좋아지겠는가? 왜 또 그랬을까? 난 또 반갑게 독일문화원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판단 미스였다. 발음은 좀 나아졌는지 몰라도, 난 지금까지 독일어는 입도 뻥긋하지 못한다. 2학년 말, 극단을 빠져나오려고, 연극을 접으려고 무진 애를 썼다. 그러나 내 동기와 선배들이 모두 군대를 가거나 유학을 떠나 버린 후였다. 극단엔 1학년 신입생과 예쁜 여학생들만 남아 있었다. 이때를 즈음해 외교관의 꿈은 완전히 접혔다. 관객모독 엇나가긴 했지만, 이후 나의 연극인생은 비교적 순탄하게 진행되었다. 계속 배우로 활동했으면 내 인생은 더 달라졌을지 모른다. 그러나 선배들이 없는 상황에서 난 연출을 맡을 수밖에 없었다. 1977년, 난 독일의 걸출한 작가, 페터 한트케를 만나 연출로서의 역량을 발휘한다. 나중에 기국서라는 연출가가 재공연을 해서 더욱 유명해진 . 관객들은 욕먹고 수모를 당하고 모독당하기 위해 줄지어 세실극장을 찾았다. 모독을 당하다 겁을 집어먹고 실신한 나머지 극장 밖으로 실려나간 관객도 있었다. 공연을 마친 다음 날, 단원들이 예매처를 돌며 수금을 해왔다. 여관방에 모여 결산을 하는데 모두들 주머니에서 만 원짜리를 꾸역꾸역 기어냈다. 연극을 해서 처음으로 돈 버는 경험을 했다. 연극에 입문한 지 6년 만의 일이다. 카스파 난 계속 페터 한트케에 매달렸다. 1978년엔 를 선보였다. 16년 동안 갇혀 살다 세상에 나온 소년이 언어를 배우며 겪는 고통을 언어고문극이라는 독특한 형식으로 표현한 작품이었다. 이 작품 역시 충격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는 1983년에 재공연되어 극비평가그룹으로부터 작품상을 받고, 1996년에 앙코르 공연을 가지면서 500회 가까운 공연기록을 남겼다. 다음 해엔 고려대 극예술연구회에서 을 연출하여 전국대학연극축전에서 최우수상을 받고, 그해 국립극단에 입단하였다. 엇나간 꿈은 힘을 받아 탄탄대로를 질주했다. 광대학교 나의 대표작으로는, 1987년 ‘우리극장’이 만든 를 들 수 있겠다. 아마추어 극단을 고수하던 프라이에 뷔네는 1979년 전문 직업극단으로 탈바꿈, ‘우리극장’이라는 명패를 내걸었다. 는 배우를 길러내는 학교에서 훈장과 학생들이 벌이는 코미디극인데, 고리타분한 훈장이 자유분방한 학생들한테 백전백패를 당한다. 는 춘천으로 살러 가 만든 극단 ‘춘천앙상블’의 창단공연으로도 제작되었으며, 1992년 재공연된 후 현대백화점, 서울우유 등 기업체와 학교 순회공연을 다녔다. 1994년에는 LA교민 위문공연을 다녀오고, 2000년엔 전주시립극단 상임연출로 부임하면서 다시 업그레이드되었다. 는 전주 동네 구석구석에 초청 공연된 후 중국 수저우(蘇州)까지 다녀오며, 1000회 이상의 공연 기록을 남겼다. 산너울패 2008년, 아내의 암 투병을 위해 충남 서천에 새 집을 짓고 아예 눌러 앉았다. 아내가 저세상 사람이 되고 바로 ‘산너울패’라는 극단을 만들었다. 2013년의 일이다. 산너울마을 동네 주민들로 이루어진 작은 극단이다. 동네 아이들 7~8명도 따로 모여 연극놀이를 하며 어울린다. 첫 작품으로 어른 팀은 를 공동 창작하였고, 어린이 팀은 고(故) 임길택 시인의 시를 모아 이라는 이름으로 재구성, 공연하였다. 창단 2년째에 산너울패는 의미 있는 행사를 가졌다. 송년공연으로 동네잔치 한마당을 벌인 것이다. 단원들은 낭독공연()을 하고, 초청가수들이 내려와 노래 불러주고, 국립창극단 박성환 배우가 판소리도 들려주고, 서천 토박이 박광배 시인이 자작시 낭송도 했다. 동네 주민들은 막걸리를 사오고 삼겹살을 구웠다. 막판에는 초대가수와 춤꾼 구별 없이 노래 부르고 한데 어우러졌다. 이문재 시인이 옵서버로 이 구경을 하다가 곧장 경향신문 정동칼럼에 이 멋진 광경을 그대로 옮겼다. 시골 극단이 가야 할 길의 모범을 보인 것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gt;&gt; 고금석(高金錫) 1951년 광주 출생. 서울 배재고·고려대 독문과 졸. 극회 프라이에 뷔네 단원. 전국대학연극축전 최우수상. 국립극단 단원. 극단 우리극장 창단. 올해의 작품상(연극비평가그룹 제정) 수상. 전주시립극단 상임연출. 전주대 영상학부 강사 역임. 서천극단 산너울패 창단.2016-08-05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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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장휴의 Smart Aging] 불편을 참지 말고 해결하자, 스마트폰으로 팩스 보내고 받기유장휴 (디지털습관경영연구소 소장/전략명함 코디네이터) 팩스가 필요한 상황이 없어지고 있지만 아직도 필요하다 스마트폰을 현명하게 사용하는 방법은 불편함을 해결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것이다. 그중 하나가 팩시밀리(팩스) 보내기다. 직장을 다닐 때는 팩스가 근처에 있기 때문에 언제든지 불편함 없이 사용할 수 있었지만 직장을 나오면 그 흔했던 팩스를 접하기 어렵다. 팩스 한 장 보내려고 근처 문구점에 가서 500원 혹은 1000원을 내야 한다. 평소에 팩스를 쓸 일이 별로 없다가도 1년에 한두 번은 꼭 필요할 때가 있다. 관공서나 보험사에서 관련 서류를 팩스로 보내라고 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이런 불편함을 해결하기 위해 나온 게 스마트폰으로 팩스를 보낼 수 있는 ‘인터넷 팩스’다. 심지어 스마트폰에서 직접 팩스 내용을 받을 수도 있다. 업무 상 팩스를 자주 쓰는 사람도 외부에 있다가 급하게 팩스를 보낼 일이 생기면 난감한 상황에 처하기도 하는데 스마트폰용 팩스는 언제 어디서나 팩스 받기와 보내기가 가능하다. 편하기도 하지만 있는 것만으로도 든든하다 팩스를 쉽게 보낼 수 있다는 편리함도 있지만, 내가 직접 보낼 수 있다는 든든함도 있다. 어떤 분이 퇴직을 하셨는데 회사를 안 나가니 평상시에 자유롭게 사용했던 팩스가 아쉽기 시작했다고 한다. 있을 때는 몰랐는데 없으니 아쉬움이 생긴 것이다. 팩스를 급하게 보내야 될 상황이 생기면 문구점에 가는 건 귀찮고 해서 옛 직장에 남아 있는 동료에게 부탁하는 방법을 생각해 냈다고 한다. 팩스 보낼 문서를 메일로 보내고 직장 동료가 문서를 받아서 팩스로 대신 보내주는 방식이다. 이렇게 몇 번을 부탁했더니 옛 직장 동료에게 미안해지기도 하고 눈치도 보여서 다시는 부탁을 안했다고 한다. 팩스라는 게 별거 아니지만 그게 뭐라고 없으면 옹졸한 마음이 생긴다. 반대로 없다가 있으면 신기하기도 하고 든든하기도 하다. 퇴직 후 1인 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분께 인터넷 팩스를 알려 드렸더니 딱 필요했던 기능이었다고 했다. 이제 작게 시작하는 1인 기업이라서 사무실도 없고 휴대폰 하나로 활동을 하고 있는데 거래처에서 팩스 번호를 물어보면 난감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인터넷 팩스는 팩스 번호도 받을 수 있어서 요긴하게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스마트폰에 팩스 기계 하나 들여 놓자 “맞아! 팩스 나도 필요했어”라고 하시는 분은 스마트폰에서 바로 이용해보자. 스마트폰 어플을 설치하는 곳에서 ‘인터넷 팩스’라고 검색하면 여러 서비스들이 검색된다. 무료도 있긴 하지만 여러 건을 보내려면 유료로 결제를 해야 한다. 돈을 결제하는 것도 번거롭고 시험 삼아 한번 이용해 보고 싶은 분이라면 ‘모바일팩스’라는 서비스를 추천한다.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에서만 사용 가능하지만 가볍게 쓰기에는 강력한 도구다. 모바일 팩스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팩스를 보내면 돈을 충전해서 사용하지 않고 내 문자에서 차감된다. 일반적으로 파일 한 장을 전송하면 2건의 문자를 사용한 것과 동일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따로 결제를 하지 않아 편하다. 두 번째 특징은 팩스 번호를 무료로 받을 수 있다. 내가 팩스를 받으려면 팩스 번호가 있어야 하는데 이 서비스에 가입하면 팩스 번호 하나를 부여해 준다. 이 번호를 저장해 두거나 명함에 넣고 다니며 상대방에게 알려주면 팩스를 받을 수 있다. 팩스가 오면 스마트폰에서 알람이 울린다. 비용 부담도 없고 간단하게 사용할 수 있어서 개인 사업을 하거나 어쩌다 팩스 보낼 일이 생긴 분이라면 지금 당장 사용해 보시길 바란다. 2016-08-05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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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버스토리 PART3] 시니어의 우정, 좋은 친구가 되려면?나이가 들수록 주변 사람들과 멋진 관계를 맺고 포용할 줄 알아야 한다. 젊었을 때보다 말과 행동이 적을지라도 더 깊은 사랑과 지혜를 전하고, 그 속에서 관계를 맺을 줄 알면 참된 시니어 세대가 됐다는 증거다. 로마의 훌륭한 정치가였던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는 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을 친구의 수준으로 낮추는 것’이라고 하였다. 어떤 말과 마음가짐이 시니어 세대에게 필요한 좋은 친구 되기의 조건일까? 글 박대령 이아당 심리상담센터 소장 시니어의 우정,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라! 시니어가 되면 누군가에게 우월하려고 하거나 이해득실을 따지는 마음이 줄어들어 비로소 마음 열린 대화를 할 수 있게 된다. 젊었을 때는 쉽게 내가 너보다 낫고, 내 말이 옳고 네 말은 틀렸다고 하는 자기중심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제대로 나이를 먹어가는 사람은 자신이 알고 있거나 믿고 있던 것이 편협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독선과 편견이 가득했던 마음이 사라진 자리에 비로소 남이 들어서게 된다. 다른 사람이 어려운 줄 알게 되고, 나보다 더 지혜로울 수 있음을 깨닫는다. 내 이야기보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데 시간을 더 보낼 수 있게 된다. 눈치 덜 보는 친구가 되자 살아가다 보면 편안하고 즐거운 날들도 있지만 때로는 힘들고 우울한 날들도 있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친구에게 연락하고 싶지만, 못나 보이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혹은 매일 같은 얘기만 하는 것 같아서 전화기만 바라보다 고개를 돌리기 일쑤다. 자기가 하고 싶은 얘기를 숨기고, 친구가 하고 싶을지도 모르는 얘기를 외면하다 보면 관계는 멀어지기 마련이다. 그럼 누구를 붙잡고 답답하고 힘든 얘기를 해야 할까? 이때 그저 가까운 사이와 친구를 구별해야 한다. 방법은 간단하다. 바로 눈치를 덜 보고 힘든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관계인지 아닌지 구분하는 것이다. 내 허물, 친구의 흉을 스스럼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친구를 찾아보자. 분명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시니어의 필수 감각은 유머, 마법 같은 말 “괜찮아” 지혜로운 시니어가 관계를 잘 맺는 또 다른 비결은 유머 감각이다. 시니어의 유머는 잔재주를 부리지 않는다. 과장하지 않고, 자신을 내세우지도 않는다. 그저 상대방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언행이 상대방으로 하여금 긴장을 풀게 하고 웃음 짓게 한다. 그리고 그 비결에는 “괜찮아”라는 말이 크게 작용한다. 사별한 부인을 이야기하며 자책하는 친구에게, “왜 그랬어. 있을 때 잘하지”라고 말하는 대신 “그럴 수 있지. 그럴 수밖에 없었을 거야”라고 얘기하자. “괜찮아”는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의 마음에 구원이 된다.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이들의 마음을 녹여, 결국 울고 웃게 한다. 그렇게 마음을 홀가분하게 만드는 “괜찮아”란 말로, 사람을 넓게 보고, 깊이 이해할 수 있다면 좋은 관계를 만들고 유지할 수 있다. 경청의 힘, 젊은이와도 친구가 된다! 남의 말을 들을 줄 아는 시니어는 젊은이와도 친구가 된다. 말을 아끼는 대신 남의 말을 듣는 데 시간을 더 보내며 섣부른 조언 대신, 지혜롭게 질문을 해야 한다. 예컨대 회사 다니기 힘들다고 말하는 손녀딸에게 “요즘 다들 힘든데 참아봐라”라고 하면 “에이, 내가 얼마나 힘든데. 말 안 해!”라는 반응이 돌아온다. 대신, “요즘 많이 힘들구나? 어떤 게 힘드니?”하고 물어보라. 그러면 손녀딸은 자신이 뭐가 힘든지 이야기하다가 “그래도 참고 다녀야겠지?”라고 말할 것이다. 또한, 배우자에게 “뭘 그렇게 화를 내?”라는 말 대신에 “여보 많이 화났어요? 내 무엇이 마음을 상하게 했어요?”라고 물어 보라. “잔소리 좀 그만 하시구려”라는 말 대신 “기분이 많이 나빴어요?”라고 질문하자. 그리고 상대방의 답변을 들어 보라. 전자는 타박을 부르지만, 후자는 대접이 달라진다. 너그러운 마음을 가져라 마음이 여유로운 시니어는 친구 관계에서도 너그럽다. 상대방의 부족함과 실수에도 넉넉하게 웃으니, 친구들은 그 앞에서 마음이 편하고, 긴장이 풀어져서 더 자연스럽고 유쾌해진다. 같이 더 많이 웃게 된다. 이렇게 만남이 즐거운데 어찌 노년의 우정에 흔들림이 있을까. 세상이 점점 더 삭막해지고, 서로 증오하고 싸우는 일이 늘어가는 세태에 시니어의 열린 마음과 따뜻함은 희망이다. 남의 말을 잘 들어주고, 아름다운 점을 알아주고, 사랑스럽게 바라봐 주고, 넉넉하게 웃어 주는 것, 이것이 시니어 세대에게 있어 관계를 잘 맺는 가장 큰 비결이다. 배려하고, 서로에게 일리가 있다는 긍정의 마음 오만과 독선이 어린이와 젊은이의 서툰 모습이라면, 시니어는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하고, 포용할 줄 안다. 미국 대선 민주당 경선 토론회에서 힐러리 클린턴이 국무장관 시절 개인 이메일을 사용해 공격받았을 때 경쟁자였던 버니 샌더스는 “미국 국민은 ‘그놈의 이메일’에 질렸다. 실질적 이슈에 집중하자”며 그녀를 옹호했다. 이 발언을 통해 샌더스는 ‘대인’ 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지지율이 급상승했었다. “그거 아니야”라고 말하는 대신에 “일리가 있구나”, “당신 말이 맞아”라고 말하는 이는 귀한 대접을 받는다. “내가 존중받으려면 남을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을 알고, 실천할 줄 아는 시니어는 참으로 넉넉하고 슬기롭다. 당신은 남 귀한 줄 알고, 마음을 진정으로 품어주는 시니어인가? 그렇다면 당신은 이미 좋은 친구가 될 자격을 갖춘 것이다. &gt;&gt; 박대령(朴大領) 성신여자대학교 대학원에서 임상심리학을 전공했다. 현재 사회불안 자조모임인 이아당(이미 아름다운 당신) 심리상담센터 소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 이 있다.2016-08-05 16:42
  • 홍재기 동년기자 ‘40대, 판을 바꾼다’는책 출간홍재기 동년 기자가 ‘40대, 판을 바꾼다’는바꾼다’는 책을 냈다. 책의 핵심 메시지는 ‘‘40대 인생 기디자인(re-design)이리디자인(re-design)이 왜 필요한가'다. 40대가 지금은 힘들고 어렵지만 10년 후 삶이 윤택해질 수윤택해 질 수 있도록 ‘변화있도록 ’변화, 선투자˅ ‘를선투자’를 제안하고 있다. 먼저 시중에 나와 있는 40대 자기계발서, 실용서는 감성적 조언이나 추상적 성공담이 대부분인데, 실제 마음 깊이 와 닫지 않는다는않는 다는 단점이 있다. 그러다 보니 실제로 40대 내면의 에너지를 끄집어내는 서적을 찾기가 힘든 상황이고, 공감할 수 있는 40대만의 서적은 더더욱더 더욱 그렇다. 가슴 속 깊이 숨겨 있던 자신의 목표를 발견하고,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 그런 책을 기다려 왔다면 이제 ‘40대, 판을 바꾼다’가 상당히 공감을 얻을 것이라 본다. 실질적인 것과 현실적인 사실을 중심으로 평범한 저자 자신의 삶을 접목하여 독자의 눈높이에 다가갔다. 책 제목도 40대가 지어 주었다. 어떻게 스스로 변화를 주도할까? 어떻게 나답게 살까? 어떻게 똑똑하게스마트하게 변할까? 누가 먼저 그런 길을 가고 있을까? 이런 갈증을 해소하고, 40대가 미래를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자기계발서가 시대적으로 절실히 요구됐고, 그런 부분에서 이 책은 기존 책보다 훨씬 효과적으로 독자에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저자는 이투데이 신난다 내 삶브라보마이라이프 동년˅ 기자로동년기자로 활동하면서 기사, 칼럼을컬럼을 통해 40대를통해 40대를 위한 핵심 콘텐츠를 발굴하였다. 물론 동년˅ 기자들의동년기자들의 협력, 격려가 없었으면 이 책이 나오기 힘들었을 것이다2016-08-05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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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니어 리포트②] 늙지 않는 여성들의 식사습관, 운동습관, 수면습관 이태문 일본 통신원 ◇ 늙지 않는 식사습관 오늘 입에 넣는 음식이 10년 뒤 ‘젊음’을 정한다 1. 머리로 먹지 말고 배로 먹는다: 공복 때는 노화와 암의 원인이 되는 활성효소의 피해로부터 몸의 세포를 지키는 ‘장수 유전자’가 활발하게 움직인다. 배가 꼬르륵 울릴 때까지 먹지 않는 것도 젊음으로 가는 첫걸음. 2. 조리온도가 높은 요리를 피한다: 단백질과 당질이 포함된 식재료를 굽거나 튀기면 갈색으로 변하는데, 이때 AGEs가 만들어지고, 이게 체내에 흡수되면 당화를 일으켜 혈관이 굳어지고, 피부의 탄력을 잃고, 뼈가 약해진다. 찜 요리와 조림 등 식재료를 살리는 조리법으로 체내부터 젊게! 3. 하얀 주식은 안녕: 흰 쌀밥, 흰 빵, 우동 등은 탄수화물이 많고 비타민, 미네랄, 식물섬유가 적어 혈당치를 높이고 당뇨병의 위험도 높다. 4. 비타민D와 B군은 매일 섭취 한다: 온몸의 세포에 영향을 주고 뼈를 강화시키고, 면역력을 높여주며 우울증과 근력 저하를 예방하는 효과가 있는 비타민D는 등 푸른 생선으로, 피로 회복과 세포 복원 등 피부와 뇌의 건강 유지에 좋은 비타민 B는 돼지고기, 현미, 달걀 등에 많이 포함되어 있다. 부족한 경우는 보조 식품으로 보완한다. 5. 생선은 하루 한 번 반드시 먹는다: 메뉴를 정할 때 고기보다 생선을 섭취하면 10년 뒤 혈관과 뇌의 젊음이 큰 차이가 생긴다. 6. 매일 발효식품을!: 된장찌개, 낫토, 절임 등 유산균과 식물섬유가 많이 포함돼 편비 개선과 장내 환경을 깨끗하게 만들어주는 발표식품을 먹는다. 7. 좋은 기름만 섭취한다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기름은 생선 기름, 코코넛오일, 올리브오일, 아보카드오일, 참기름 등이며, 초콜릿을 고른다면 식물유지가 없는 걸로. 8. 나쁜 것은 몸에 넣지 않는다 트랜스 지방산이 포함된 기름으로 튀겨 정제된 사탕을 뿌린 도너츠. 맛있는 냄새에 끌려 사 버리게 되지만,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인내도 필요! ◇ 늙지 않는 운동습관 힘들지 않은 운동이 쌓여 젊음과 건강 유지 9. 이야기 나누며 천천히 뛴다: 대화를 나눌 수 있을 정도의 페이스로 달리는 슬로 조깅. 운동 습관이 없는 사람도 손쉽게 시작해 체지방을 줄이고, 뇌세포 증진의 효과도 기대된다. 10. 웃으면서 근육 트레이닝을 한다: 하루 10회의 스쿼트도 효과적. 이동은 자전거로 젊음을 유지. 11. 스트레칭을 습관화: 하반신과 상반식의 근육을 풀어주고, 구르거나 넘어지는 등의 부상을 방지하기 위해서 평소 발가락 힘을 기르는 가위바위보 체조, 혹은 발가락 양말 등 발가락의 힘을 기르도록 한다. ◇ 늙지 않는 수면습관 잠의 리듬과 질을 제대로 확보하자! 12. 잠 드는 시간보다 일어나는 시간에 신경을: 일어나서 커튼을 열어 아침해를 맞으면 체내 시계의 스위치가 켜지면서 14~16시간 뒤에 멜라토닌이 분비돼 수면 리듬의 개선에도 이어진다. 13. 취침 2시간 전부터는 먹는 것과 청색광선의 조명 등을 모두 끊는다: 스마트폰과 컴퓨터 모니터에서는 블루라이트가 나오는데, 자기 직전까지 보면 뇌가 각성화되므로 일찌감치 일을 마치고 전원을 끊는다. 14. 기분 50%로 사람과 사귄다: 친구들과 사귀는 것도 중요하지만, 상대방에 휩쓸려 끌려다니기만 하면 스트레스가 된다. 젊음을 위해 분명히 거절하는 용기를 가져라. 15. 조금씩 땡땡이: 이것도 저것도 해야 한다는 마음에 쫓길 때는 일부러 한 숨 돌리는 시간을 가지면 자연스럽게 마음이 평안해진다. 16. 말과 이미지로 마음을 정화시킨다: 모두에게 축복받는 결혼식 등 행복했던 추억을 떠올리는 습관을 몸에 배게 하면 싫은 기억은 없어지고 힘든 과거에 얽매이지도 않게 된다.2016-08-02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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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원식이 만난 귀촌(귀티나는 촌사람)] 박미향·엄팔수 부부 '산골 꽃차 전문가의유쾌·상쾌·통쾌'박원식 소설가 귀촌이란 단순히 도시에서 시골로의 이주라는, 공간적 이동만을 뜻하지 않는다. 삶의 꿈과 양상, 지향까지 덩달아 변하기 때문이다. 기존의 익숙했던 거주지에서 전혀 다른 장소로 주저 없이 옮겨 간다는 점에서는, 귀촌이란 안주하지 않는 정신의 소산이기도 하다. 충북 괴산의 산골에 사는 박미향(58)·엄팔수(61) 부부는 귀촌으로 인생 제2막을 시원하게 열어젖혔다. 7월의 성성한 초록 숲이 바람에 술렁거린다. 숲 사이 오솔길을 걸으니 나무들의 몸에서 흘러나온 향훈이 상큼하다. 저 멀리 칠칠하게 늘어선 산봉우리들은 비안개의 희롱에 취해 아련하다. 계곡에선 솰솰 냇물이 흐르며, 머잖은 곳엔 호수가 있다. 사방팔방으로 멋들어진 풍광이 펼쳐진다. 박미향 부부의 시골집은 이 모든 수려한 자연경관을 한눈에 쓸어 담을 수 있는 계곡 쪽 둔덕에 자리 잡았다. 터를 잡은 눈썰미가 예사롭지 않구나. 박미향 부부가 산골에 둥지를 튼 건 13년 전의 일. 원래는 청주 시내 아파트에서 살았다. 도회의 아파트생활은 나름대로 안전하고 쾌적했기에 딱히 불만이랄 건 없었단다. 그러나 사람에겐 못 말릴 취향이라는 게 있는 법. 중년 나이에 접어들던 즈음, 박미향씨는 자신의 내부에서 자글거리는 어떤 갈증을 느꼈던 것 같다. 그녀는 유심히 자신을 관찰한 끝에 소녀기 때 경험한 시골살이에 관한 향수가 강렬하게 들끓는 걸 알아차렸다. 산골에서 꽃과 나무, 새소리와 물소리를 벗 삼아 사는 게 자신의 행복에 이바지하는 길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게 귀촌이라는 사건의 단초였다. 부부는 일심동체라는 올드 뉴스가 있지만, 그건 진부한 소식에 불과하다. 아내는 동쪽으로 냅다 뛰는데, 남편은 서쪽으로 쌔앵 돌아서기도 하는 게 부부관계이지 않던가. 귀촌의 경우에도, 부부가 의기투합할 확률은 매우 낮다. 대체로 남정네들이 먼저, 가자, 산골로! 그렇게 선창을 하며 나서는 수가 많지만, 웬걸, 마누라들은 십중팔구 단박에 반기를 들게 마련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여자들은 원래 남자보다 영리하고 영악한 고등생물이다. 그녀들은 모기에 뜯기고 뱀에 시달리기나 할 뿐, 자칫 따분하고 답답해질 가능성이 높은 시골살이라는 걸 입문할 일이 아님을 이미 눈치 채고 있는 것이다. 부부가 귀촌에 의기투합 그러나 박미향 부부는 달랐다. 박미향이 먼저 말을 타고 귀촌의 깃발을 드높이 들었고, 수더분하고 너그러운 남편 엄팔수는 뒤따라오는 수레처럼 선선히 따랐다. 빈틈없는 의기투합과 일심동체의 힘으로 산골살림을 착수하였으니, 그 시발도 과정도 결산도 자못 오붓한 것이었다. 박미향의 얘기를 들어볼까? “일단 귀촌하기로 합의를 본 뒤로는 일사천리로 추진했어요. 남편은 직업군인이었어요, 정년을 채우고 전역한 다음 귀촌을 하기로 했으나, 굳이 뜸들일 게 뭐 있겠나 싶어 서둘렀어요. 정년 5년을 남긴 시점에 후다닥 이 산골로 들어온 거예요.” “남편에게 감사패라도 드리진 않았나요?(웃음)” “어쩌면 매우 공정한 합의였죠. 결혼 뒤 긴 세월 동안 저는 오직 남편을 내조하고 아이들을 공들여 기르는 일에 전념하며 살았거든요. 그건 좀 억울한 거 아니에요?(웃음) 이제는 남편인 당신이 나를 외조해주소서, 제가 그런 요청을 했어요. 그러자 남편이 조용히 수긍해줬어요. 고맙기 이루 말할 수 없는 대목이죠.” “부부가 튼튼한 유대감을 갖고 귀촌을 했을 경우에도, 막상 실제로 촌살림을 시작하고 나서는 예상치 못했던 애환을 겪는 걸 흔히 봅니다. 매우 단기간에 우울증에 걸리기도 하고, 심지어 이혼을 하고 갈라서는 부부도 있더군요.” “맞아요. 우울증을 앓다가 결국은 도시로 되돌아가는 사례를 저도 많이 봤어요. 그런데 왜 그런 일이 벌어지지? 저는요, 귀촌 초기부터 모든 게 다 좋았어요. 남편 역시 마찬가지였고요. 귀촌을 로망으로 삼은 분들이 많을 텐데, 신중하게 생각하셔야 해요. 과연 내가, 우리 부부가, 생소한 산골 생활을 잘 해낼 수 있을지, 정서가 맞는지, 재미를 느낄 수 있을지, 그런 걸 우선적으로 점검해야 해요.” “마을 원주민들과 융화하는 일도 쉽진 않았겠죠?” “저희 집이 마을과 떨어진 외딴집이라서 주민과 교류할 일도 없었지만, 사실 초기엔 심한 소외감을 느꼈어요. 그러나 이젠 살갑게 사촌처럼 지냅니다. 도시 사람들이 흔히 오해하듯이, 저도 처음엔 시골 인심이 사나울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지만, 전혀 사실과 달라요. 문제를 일으키는 건 늘 도시인들 쪽이죠.” 마음을 활짝 열지 않고서는 즐겁게 살 수가 없다. 반면에, 즐겁게 살지 않고서는 마음을 탁 열어 헤칠 수 없다. 소소한 애환과 갈등이 왜 없었으랴마는, 박미향 부부는 산골 생활에 매우 적극적으로 적응했으며, 그럴 수 있었던 기반은 산촌살이의 즐거움이라는 명품을 신속하게 얻었다는 데에 있다. 자연의 제전에 늘 감동과 갈채를 그렇다면 귀촌의 무엇이 즐거움을 주는 것일까? 우선은 도시의 메마른 풍경과는 다른 산골의 자연 풍치가 주는 심미적 만족감과 정서적 위안이 이 부부를 즐겁게 하는 것 같다. 철따라 옷을 갈아입는 나무와 숲, 황홀하게 피었다가 상처처럼 시드는 온갖 들꽃들이 전하는 철학의 표정, 사람이 곤충이나 풀꽃과 하등에 다를 게 없다는 벅찬 상념들, 조화롭게 저 알아서 흘러가는 생태계가 전하는 유유함…. 박미향은 자연이 펼치는 제전에 매번 갈채를 보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그 무엇보다 막대한 즐거움은 박미향이 귀촌의 나날들을 통해 꽃차 전문가로 변신했다는 데에서 비롯한다. 산골에서 풀이나 뽑고 살 수는 없었던 그녀는, 평소에 좋아하던 꽃들로 꽃차를 만드는 취미생활을 일삼아 거듭했다. 그러다가 노하우가 쌓이고, 이름이 알려지고, ‘꽃차연구소’라는 것 까지를 차리게 되었다. 아마추어적 취미를 밀어붙여 프로의 대열에 올라선 것. 요즘의 그녀는 꽃차 강의를 다니느라 부산하다. “아이들 키우는 게 가장 큰 행복이라 알았는데, 이제 저는 더 진정한 행복을 찾았어요. 산과 들에 가득한 들꽃들로 꽃차를 만들어 도시의 친구들에게 나눠주던 취미생활이, 꽃차 전문가로 성장할 계기가 될 줄은 저 자신도 미처 예상치 못했어요.” “근래에 꽃차 붐이 분 것도 행운이었겠어요?” “맞아요. 인생이란 정말 오묘한 것이에요. 제가 원래 꽃을 좋아해서 청주에 살 때에도 미장원이나 옷가게를 가기보다는 틈나면 꽃집을 드나들었어요. 그런데 귀촌을 계기로 꽃차 전문가로 거듭 태어난 셈이에요.” “그걸 제2의 인생이라 하겠죠?” “돈을 벌려고 시작한 일도 아니었고, 그저 내가 좋아서 해온 일이었을 뿐인데, 이젠 사람들이 알아서 찾아오거나 멀리 외지에서 강의 요청도 많아요. 물론 수입도 쏠쏠합니다. 남편의 연금보다는 많으려나?(웃음) 요즘은 세상살이가 참 재미있어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직업으로 삼아 산다는 것, 그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인생이지 않을까요?” “꽃차의 매력은 뭐라 생각하시는지?” “우선 시각적으로 아주 예뻐요. 덖어진 꽃차가, 찻잔 속 뜨거운 물에서 풀어지며, 다시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나는 걸 바라보면서 향과 맛을 음미하는 즐거움. 그게 사람들을 매료하는 거 같아요.” 산골에서 별다른 일이 없는 채로 한가하게 노는 것도 행복이자 도락이다. 텃밭 농사건 약초 채집이건, 소규모로나마 몸을 쓰는 일을 찾아내 귀촌생활의 생기를 불러 넣는 것도 현명하다. 또는, 내가 좋아하고 원했던 일을 드디어 찾아내 몸과 정신을 온전히 쏟을 수 있다면 그건 최상의 복락이겠지. 매우 신중하거나 내향적인 성품의 소유자로 여겨지는 박미향의 안면에 정착한 미소를 보노라면, 귀촌을 통한 자기 변신과, 그에 따른 만족의 크기가 자못 오롯한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면민들과 함께 밴드를 만든 남편 귀촌 직후 한동안, 박미향의 도시 친구들은 후미진 산골에 박혀 사는 박미향을 걱정하고 염려하기를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산골의 자연과 긴밀하게 교류하는 우정, 또는 일을 찾아 투신하는 열정은 고독하기 십상인 인생을 보완하는 질료라는 걸 간과한 것이다. 물론, 친구들의 태도는 이제 싹 바뀌었다. 오히려 박미향을 선망한다는 게 아닌가. “친구들은 처음엔, 미향이가 산골에서 얼마나 견디겠는가 하며, 너 언제 나올 거니? 산골에 살아보니 무섭고 외롭지? 그렇게들 걱정을 했지만, 지금은 그런 소리들이 쑥 들어갔어요.(웃음) 오히려 저를 부러워해요.” “시골 생활의 단순한 패턴은 자칫 귀차니즘을 불러올 수도 있을 거예요. 부부가 날마다 24시간 같이 붙어산다는 게 때로 지겹진 않나요?(웃음)” “왜 안 지겹겠어요?(웃음) 때로 충돌 직전까지 가기도 해요. 그럴 때면 제가 묵언수행이나 해야지, 하고선 아예 입을 봉합니다. 그게 제가 자제하는 방식이며 최선책에요. 덕분에 저희 부부는 싸움다운 싸움을 한 번도 해보질 못했어요. 참. 남편은요, 드럼을 쳐서 스트레스를 신나게 날려 버립니다. 면민 12명과 어울려 밴드도 만들었는데, 경로잔치 같은 곳에 위문공연을 다니곤 해요.” “귀촌을 원하는 시니어들이 많습니다. 그들에게 팁을 주신다면?” “귀촌은 실패할 확률도 많다는 걸 아셔야 해요. 현실은 녹록지않으니까.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해야만 해요. 요즘은 ‘귀촌교육’을 행하는 기관이 많아요. 미리 수강을 해두는 게 좋겠죠. 무엇보다 본인의 성향이 산골과 조화할 수 있는지를 판단해야 한다는 점, 이웃 원주민과 적극적으로 소통해야 한다는 점도 중요해요. 그쯤이면 인생 2막을 성공적으로 누릴 수 있을 거예요.” 공자나 맹자를 길잡이로 삼은 인생도 근사할 수 있지만, ‘웃자’나 ‘놀자’와 동행하는 삶은 한결 경쾌하고 유쾌하다. 박미향은 귀촌을 계기로 매우 만족스러운 인생을 누린다. 꽃차를 통해 평온하게 웃을 수 있는 삶을, 안락하게 노는 일상을 구현하고 있다. 이를 쾌거라 일컬어도 무리가 없으리라. 인생의 쓸쓸한 황혼녘에, 오히려 환하게 생동하며 밝아오는 아침을 다시 맞이한 셈이니까. &gt;&gt; 박원식 중앙대 문예창작과에서 배운 작가. 오랫동안 자연과 문화에 관한 글을 써왔다. 사람이든 자연이든 대상을 좋아할수록 아득해지는 미스터리가 늘 그를 궁리하게 만든다.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안목을 얻는 일의 요원함을 실감한다. 그가 즐기는 것은 산촌의 적막, 암자의 풍경소리, 낯선 여행지의 선술집, 우연한 만남 등이다. 등의 저서가 있다.2016-08-02 08:48